그런 내가 얼마 전부터 꼬꼬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마 꼬꼬면은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특정 라면상품에 대해 "사먹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 라면인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쑥스럽게 집 근처 슈퍼에 가서 꼬꼬면 달라고 했다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뻘줌하게 돌아왔다. 왜 느닷없이 꼬꼬면을 먹고 싶었을까?
아마 닭국물이라는 컨셉, 맵지 않은 맑은 국물이라는 특성이 그런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나도 그렇고, 꼬꼬면을 찾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러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이 컨셉이 이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이 컨셉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어떤 맛의 원형, 미각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어떤 그리움의 기억을 건드리는 것 같다. 그 원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춧가루에 점령되기 이전 오랜 세월 전해내려오던 우리맛의 전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음식을 먹으며 놀란 것 가운데 하나가 콩나물을 고춧가루로 버무려 내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무친 콩나물도 나름 맛이 있다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어머니 손으로 직접 참기름과 파, 마늘만 주물러 맛을 낸 원래 콩나물의 그 소박한 품위(?)가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티없는 시골 색시가 서울에 올라와 천박한 화장을 한 것을 본 느낌이랄까.
포장마차에서 안주라며 내놓는 닭발은 더욱 충격이었다. 내 고향집에서 먹는 닭발은 그렇게 거칠게 칼로 대충 두들겨서 기름과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굽는 음식이 아니었다. 내가 먹어온 닭발은 닭을 잡은 후 닭발만 말갛게 씻고 발톱을 끊어낸 뒤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부엌칼로 완전히 난도질해서 씹을 것조차 없이 곱게 반죽처럼 만들고 그걸 기름과 소금에 찍어먹는 음식이었다.
하긴, 서울에 와서 먹는 닭은 애초부터 기형이라고 할 만했다. 고향집에선 닭을 잡은 뒤 내장을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다. 길고 구불구불한 닭 내장을 칼로 길게 갈라내고 뒤집고 펼쳐서 굵은 소금으로 우물가 빨랫돌 위에 박박 문질러 깨끗이 씻은 후 닭똥집, 간, 살코기 등과 함께 말갛게 삶아내곤 했다. 맑고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맛이 고소했다.
그 국물에는 마늘 외에는 다른 향신료 등을 넣지 않았다. 삼계탕은 서울 올라와서 처음 먹어봤다. 꿀에다 인삼을 재운 것은 먹어봤어도 닭과 인삼의 조합이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느끼지는 못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니 닭을 삶으면서 웬 한약재 나부랑이는 그리도 많이 집어넣는지. 내 생각에는 닭국물에는 딱 통마늘 외에 더 넣을 것이 없을 것 같다. 거기에 더하는 것은 다 악에서 나온 것이라고나 할까.
서울에서 파는 닭은 애초에 내장 따위는 없었다. 생닭을 사면서 한번 물어봤더니 다 버린다고 했다. 내 고향에서는 그걸 깨끗이 요리해 먹는다고 했더니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봤다. 하긴, 내 고향에서도 이제 그렇게 닭 내장까지 챙겨 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닭도리탕도 서울 와서 처음 먹어본 것이지만 맛이 있었다. 하지만 왜 그리도 고춧가루로 범벅을 했는지, 너무나 격렬한, 붉고 매운 감각이 부담스러웠다.
삶은 꼬막도 서울에서는 오밀조밀하게 일일이 까서 양념(역시 고춧가루로 범벅을 한)을 해서 내놓았다. 저렇게 먹다 보면 감질나서 사람 성질 버리기 딱 좋을 것 같다. 내 고향에선 대개 꼬막을 양푼에다 푸짐하게 삶아서 내놓으면 먹는 사람이 알아서 껍질을 까서 먹고 남은 껍질은 화단을 장식하거나 마당 한켠에 쌓아놓곤 했다. 그러면 거무튀튀했던 꼬막 껍질이 빗물에 씻기고 햇빛에 바래면서 투명할 정도로 하얗게 색이 변하곤 했다.
내 고향 음식은 양념을 많이 쓰고 맛이 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보면 실제로는 서울에 와서 접한 음식들보다 훨씬 더 담백한 것이 많았던 것 같다. 김장 담글 때도 백김치는 거의 빠지지 않았고, 특히 동치미 국물의 기억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달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을 뒤흔들곤 한다. 서울에서 가끔 먹는 동치미 국물도 사랑하지만, 어찌 내가 그 옛날의 맛을 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