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남자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으로 거론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군대에서 끓여먹었던 라면이다. 하지만 나는 묘하게도 라면의 맛에 어떤 매력도, 추억도 느껴본 적이 없다. 여러 사람 먹을 때 마지못해 함께 먹기는 해도 내가 알아서 찾아 먹은 적은 없다.
군대 가기 전 대학교 시절 술에 떡이 되어서 하숙방에 누워있을 때 하숙집 아주머니(이분은 나에게 일종의 특별대접이라고 느껴질만큼 잘해주셨다)가 "숙취에는 라면 국물이 제일이다"며 정성껏 끓여주신 라면조차도 정말 죄송한 마음에 억지로 국물만 비우고 면발은 그대로 남겨서 너무 송구했던 기억이 새롭다.
군대 훈련소에서도 라면이 나왔다. 이 라면은 특이하게 요리를 한 것이었다. 수많은 훈련병들에게 일일이 라면을 끓여주는 방법을 찾지 못한 탓인지, 면발은 수증기로 찌고, 라면 국물은 수프만 넣고 별도로 끓여서 면과 국물을 따로따로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취사병 한 사람이 플라스틱 식판에 찐 면발을 하나 얹어주면 다른 취사병이 거기에 국자로 국물을 부어주는 것이다.
원래도 라면을 싫어했던 터에 그런 라면이 구미에 당길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같이 훈련받는 동기들은 그 라면에 환장을 했다. 훈련소 8주 동안 내가 받은 라면은 다 누군가에게 나눠줬던 것 같다. 나중에 동기들과 얘기 나누다가 "훈련소에서 먹었던 그 라면이 일생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다"고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 많이 놀랬던 기억이 난다.
나도 요즘은 가끔 라면을 찾아먹게 됐다. 여전히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점심시간을 놓쳐 식당을 찾기가 애매한 경우에는 그냥 간단히 라면 한그릇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아졌다. 다만, 먹고난 느낌은 여전히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식성이 까다로운 편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같이 식사하는 직원 한 사람이 내게 "식당에서 음식 먹으면서 맛없다고 타박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칭찬인지 놀림인지 좀 아리송한 말을 했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별로 맛에 관심이 없는, 일종의 의무처럼 밥을 먹는 내 스타일이 그의 눈에 간파된 것이리라.
한 상 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어도 내가 챙겨먹는 것은 대개 두세가지에 불과하다. 두 살 위의 내 형님은 어렸을 때 반찬이 열 가지 이상 차려져 있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이 상에 없으면 반드시 그걸 차려오라고 시키는 스타일이었다. 김을 구워오라느니, 싱건지(물김치를 내 고향에선 이렇게 불렀다)를 새로 떠오라느니... 그럼 나는 몇 번 두고 보다가 버럭 성질을 내고, 그러다 형제간에 말다툼이 오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