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자의 등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곡예사 마리온의 벌거벗은 등이었다.

 

그녀는 지친 등을 보이고 무심히 앉아있다. 우리는 모노크롬이 주는 차가운 잿빛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 순간 그 등에 따스한 살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점점 그 색이 복숭아의 과육이 익듯이 따뜻한 색깔로 변해간다. 점차 화면은 그녀의 등만을 컬러로 부각시킨다. 주위의 회색 사물들을 배경으로 그녀의 등은 활짝 피어난다. 등은 그녀의 무의식이다. 그녀의 감춰진 욕망과 좌절이 등을 통하여 드러난다. 그녀의 꿈이, 고달픈 일상이, 사랑과 시름이 그대로 등에서 묻어날 것 같다. 누군들 그녀의 등에 손 얹고 싶지 않으랴. 누군들 그녀를 위로하고 싶지 않으랴. 그녀의 등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 따뜻하게 젖어있는 삶의 온기를 누가 거부할 수 있으랴. 어떤 천사라 할지라도 잿빛의 영생보다는 그녀의 등을 만질 수 있는 그 장밋빛 한 순간을 택할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잿빛의 우울한 거리에서 회색 외투를 입고 감추어진 여인의 등을 찾고 있는 타락한 천사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