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덕미라는 곳은, 하루 한 번 똑딱이(석유 발동선)가 와 닿는 그 조그만 포구로, 주막 몇 집과 미류나무만 엉성하게 선 나루터다. 고무신 운두가 넘도록 발이 진흙에 폭폭 빠져, 동혁은 신바닥을 모래에다 비비며, 비에 젖은 바윗돌 위에 털퍼덕 주저앉아서 물참이 되기만 기다리는데,
“여보게 동혁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동혁은 소리나는 편을 돌아다보며,
“건밴가? 어서 오게…”
하고 손짓을 하였다. 가마솥 뚜껑 만한 농립을 쓰고, 육척 장신에 밀짚 도롱이를 껑충하게 두르고서 휘적휘적 오는 걸음걸이만 보아도 틈림 없는 건배였다. 그 뒤에는 정득이, 갑산이, 칠룡이, 석돌이 또 동화까지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농우회의 회원들이 유지로 만든 우장을 하고 그것도 없는 사람은 포대 쪽을 두르고 칠팔 명이나 주렁주렁 따라온다. 그네들이 가까이 오자,
“자네들 미안하이그려.”
하고 무심코 동혁은 한 말이언만,
“자네가 우리더러 미안하달 게 뭐 있나? 그야말루 진날 개사위 꼴을 하구 나왔어두 자네 장가드는데 배행 나온 셈만 치면 좋지 않은가?”
건배는 동혁의 말을 얼른 채뜨려 가지고, 이번에는 빗대어 놓고 놀려댄다.
“앗다 이 사람 또 그런 소릴…”
하고 동혁은 눈을 슬쩍 흘기면서도 어쩐지 건배의 놀리는 말이 그다지 듣기 싫지는 않았다.
바람결에 통통통통하는 소리가, 바위에 철썩철썩 부딪치는 파도소리에 섞여 차츰차츰 가까이 들려 왔다.
조금 있자,
“뛰윗!”
새되인 기적 소리는 동혁의 가슴속까지 찌르르 하도록 울렸다.
이윽고 파아란 페인트칠을 한 똑딱이가, 선체를 들까불며 들어온다. 갑판 위에서 손수건을 흔드는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가 보인다. 동혁은 손을 높직이 들며 허공을 저었다.
조그만 거루는 선객과 짐을 받아 싣고 선창으로 들어와 닿았다. 동혁은 반가운 웃음을 얼굴 가득히 담고, 영신의 손을 잡아 뭍으로 끌어올렸다.
“이번 비, 참 잘 왔죠?”
한 마디가 첫번에 하는 영신의 인사였다.
“잘 오구 말구요. 그래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하셨소?”
하며 동혁은 영신의 얼굴빛을 살핀다. 상상하던 것보다는 나아도 어글어글하던 눈이 전보다 더 커다래 보이는 것은, 그 복성스럽던 얼굴의 살이 그만큼 빠진 탓일듯, 그러나 반가운 김에 상기가 되어 그런지 혈색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 우선 안심을 하였다.
“그거 내 들어다 드릴까요?”
“아아니, 괜찮어요.”
“글쎄 이리 주세요.”
“이 속엔 비밀 주머니가 들어서 안돼요.”
바스켓 하나를 가지고, 네가 들리 내가 들리 승강이다.
'고집이 여전하군'하면서 동혁은, 우산을 받쳐 주며 나란히 서서 주막 앞까지 와서
“참 인사들 하시지요. 편지루 아셨겠지만, 같이 일하는 동지들인데…”
하고는,
“이 키 큰 친구는 건배 군이구요.”
하고 건배를 위시하여 인사를 시킨다.
“감사합니다. 비오는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영신은 활발히 손을 내밀고, 서양 여자처럼 차례차례 악수를 한다. 여러 청년들은 입 속으로 간신히 제 이름을 대면서 계집애처럼 얼굴들을 붉혔다. 피차에 악수를 교환한 것이 아니라, 얼떨김에 생후 처음으로 젊은 여자에게 악수를 당한 셈이었다. 두 사람이 앞장을 서고, 여러 청년은 그 뒤를 따라온다.
“허어 이거, 정말 우리가 별배 노릇을 하는군.”
“여보게 말 말게. 손을 어떻게 쥐구 잡어 흔드는지 하마터면 아얏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네.”
하고 뒷공론을 하는 소리가 동혁의 귀에까지 들려서, 픽하고 혼자 웃었다.
신작로로 나오자, 잠시 뜨음하던 빗발이 다시 뿌리기 시작한다. 자갈도 깔지 않은 길바닥은 된풀을 이겨놓은 것처럼 발을 옮겨놓을 수가 없도록 끈적끈적하다. 영신은 미끄럼을 탈까 보아 길바닥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진데 용하게들 나오셨군요.”
하고 길가의 아카시아 나무를 붙들고 신바닥에 붙어 달린 진흙을 문지르고는 언덕의 잔디를 이리저리 골라 딛는다.
어젯밤 비만 해도
보리에는 무던하다.
그만 갤 것이지
어이 이리 궂이 오노.
봄비는 차지다는데
질어 어이 왔는가.
비맞은 나뭇가지
새 움이 뾰죽뾰죽
잔디 속잎이
파릇파릇 윤이 난다.
자네도 이 비를 맞아서
정이 치〔寸〕나 자랐네.
이런 때 이런 경우에 동혁이가 시(詩)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더라면 '비맞고 찾아온 벗에게'라는, 조운(曹雲)의 시조 두 장을 가만히 입 속으로 읊었으리라.
영신은 바라던 대로 바닷가 한가한 집에서 편안히 쉴 수가 있었다. 동혁이가 신문지로나마 도배를 말끔히 하고 자리까지 새 것을 깔아놓고 저를 기다려 준 데는 무어라고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고마왔다.
더구나 농우회원들은 비를 맞으며, 갯고랑으로 나가서 낙지를 캐어오는 사람에, 손 그물을 쳐서 새우를 잡아오는 사람에, 대접이 융숭하다. 그것도 못하는 사람은 이제야 고추 잎만한 시금치를 솎아 가지고 와서 몰래 주인 마누라를 주고 간다.
“경치두 좋지만, 우리 청석골버덤 인심두 여간 후하지 않군요.”
하고 영신은 너무 미안해서 몸둘 곳을 몰라 한다. 회원들은 선생으로 숭앙하는 동혁이와 가장 뜻이 맞는 동지요, 또는 공부도 많이 했지만, 농촌 사업을 헌신적으로 하는 여자라니까 (실상 그네들은 십여 리 밖에 있는 보통학교 여훈도 밖에는 신여성과 대해 본 경험이 없다)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 무슨 까닭이 있는 줄로 짐작을 하는 눈치면서도 자기네 힘껏은 대접을 하는 것이다.
그 중에도 어느 사립학교 교원으로 있을 때 ** 사건에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이태 동안이나 콩밥을 먹고 나온 경력이 있는 건배는, 남의 일이라면 발을 벗고 나선다. 주선성이 있어서 한 동리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농우회의 선전부장 격으로 진 일 마른 일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활동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동혁이 보다도 몇 해나 먼저 야학을 개설한 선각자로 동혁이와는 어려서 싸움도 많이 하였지만, 뜻이 맞는 막역한 동지였다.
그는 무슨 여왕이나 모셔다 놓은 것처럼 수선을 부리며 돌아다닌다. 그 멋없이 큰 키를 바람에 불리는 바지랑대처럼 내젓고 돌아다니며 광고를 하여서, 여학생이 동혁을 찾아왔다는 소문이 하루 동안에 동네에 파다하게 돌았다.
“그게 누구냐 응? 그 여학생이 누구야? 어디 나두 좀 보자꾸나.”
며느리를 못 보아 상성이 난 어머니는, 꼬부랑거리고 아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성화를 받친다. 박첨지도 마누라를 염탐꾼처럼 놓아서 며느리감을 보고 오라고 넌지시 이르기까지 하건만 동혁은,
“글쎄 얼토당토않은 말씀은 입 밖에두 내지 마세요. 신병이 있어서 잠깐 휴양두 할겸 우리들이 일하는 걸 보러 온 여자이니까요.”
하고 골까지 내었다. 그런 때는 동화가 형의 편을 들어서 제가 무슨 속중이나 아는 듯이 그렇지 않다는 변명을 해준다.
이래저래 동혁은 오던 날 하루는 여러 회원들과 얼려다니며 영신을 대접하고, 일부러 단 둘이 앉을 기회는 피하였다. 한편으로는 몸도 쇠약해진 데다가 밤배를 타고 우중에 시달려 온 사람을 붙잡고 길게 이야기를 하기도 안되어서, 마음을 턱 놓고 쉬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녁 뒤에 건배는,
“이 사람, 그이가 귀양살이를 왔단 말인가? 혼자 적적해 할테니, 우리 가서 청석골서 활동하는 얘기나 듣구 오세.”
하고는 회원들을 끌고 가서 저 혼자 한바탕 떠들다가 돌아왔다.
영신은 그동안 동혁이가 내려와서 한 일과 계속해서 하는 일이며, 동네 형편까지도 '선전부장'인 건배의 입을 통해서 자세히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영신은 '저이가 원체 묵중하겐 생겼지만, 내가 누굴 찾아왔다고, 저렇게 뚜웅하니 앉았다가, 다른 사람보다도 앞을 서서 갈까' 하고 동혁의 태도가 섭섭할 지경이었다. 비는 그치고 바닷가의 밤은 깊어갔다. 영신은 공연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잠을 청하느라고 조그만 등잔 밑에서 공부 삼아 볼까 하고 가지고 온 잡지의 농촌문제 특집호를 뒤적거리고 누웠다. 모래사장을 찰싹찰싹 가벼이 두드리는 파도소리를 베개삼고서…
그때에 창밖에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만 주무시지요. 고단하실 텐데…”
하는 것은 틀림없는 동혁의 목소리였다. 그는 집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나와서 홀로 해변을 거닐며 영신의 신변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네 자겠어요, 난 벌써 가셨다구요.”
하고 영신이가 반가이 일어나 문을 열려니까,
“문고리를 꼭 걸구 주무세요.”
한 마디를 남긴 뒤에, 동혁의 그림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