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그저 안 들어왔에요? 들어오건 같이 먹지요.”
동혁은 벌떡 일어나며 아우를 찾는다.
“누가 아니. 수동이네 주막에서 대낮버텀 술을 처먹는다더니 여태 게 있는 게지. 뭐구뭐구 그 애가 맘을 못 잡아서 큰일났다. 글쎄, 요샌 매일 장취로구나. 형두 형세가 부쳐서 하다만 공부를, 뭘 가지구 하겠다구 하고한날 성화를 바치니 온 살이 내릴 노릇이지. 큰말 강도사네 작은 아들이 대학 가 졸업하구 와설라문 꺼떡대는 걸 보군, 버쩍 더 거염을 내니 어쩌면 좋으냐. 뱁새가 황새를 따르려다간 다리가 찢어지는 줄 모르구, 덮어놓구 날뛰는구나.”
“아닌게 아니라, 큰 걱정이에요. 암만 사정하듯 타일러두, 점점 외 먹기만 하는걸. 성미가 여간내기라야 손아귀에 넣어 보지요.”
하는데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동화가,
“아아니, 이 집에선 바 밥들을 호 혼자 먹나?”
하고 혀끝을 굴리지 못하고, 비틀걸음을 치면서 들어온다. 눈동자까지 게게 풀린 것이 막걸리 사발이나 좋이 들이킨 모양이다. 평소에는 성이 난 사람처럼 뚜웅하니 남하고 수작하기도 싫어하면서, 술만 들어가면 불평이 쏟아진다. 근자에는 안하무인으로 술 주정까지 함부로 해서, 아버지조차,
“저 자식은 하우불이야.”
하고 그만 치지도외를 한다.
동화는 썩은 연시 냄새 같은 술 냄새를 후후 하고 내뿜으며 방으로 뛰어들더니,
“아 그래, 형님은 공부는 혼자 하고, 밥꺼정 혼자 먹는거유?”
하고 지게미가 낀 눈을 부라리며 생트집을 잡는다. 싹 깍은 머리가 자라서 불밤송이처럼 일어났는데, 형만 못지 않게 건강한 몸집은 올해 스물 두 살이라면 누구나 곧이를 안 들을 만하게 우람스럽다.
“어서 밥이나 먹어라. 얘긴 술이 깨건 하구…”
아우의 성미를 건드렸다가는 마구 뚫린 창구멍으로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라서 형은 점잖이 타이른다.
“아아니, 내가 술이 취 취한 줄 아우? 술도 안 먹는 형님은 도무지 대체 하는 게 뭐유? 밤낮 그 잘나빠진 공동답이나 주물르구 콧물 흐르는 아이들을 외놓구서 언문 뒷다리나 가르치면 제일의 강산이란 말이요? 나 하나 공부도 못하게 말끔 팔아 없애구서 큰 소리가 무슨 큰 소리유? 어디 할 말이 있건 해보.”
하면서 사뭇 형의 턱 밑에다 삿대질을 하더니 이빨을 부드득부드득 갈다가,
“아이구…”
하고 주먹으로 앙가슴을 친다. 그러다가는,
“제길할 두 번 못 올 청춘을 이 시골 구석에서 썩혀야 옳단 말이냐?”
하고 벽이 무너져라고 걷어차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더니 그만 넉장거리로 자빠져 버린다.
동혁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앉아서 아우의 폭백을 받았다. 금새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하는 동화의 머리를 들고 목침을 베어 주고는 뱃속이 몹시 괴로운 듯 눈살을 잔뜩 찌푸린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려니까, 속도 상하고 식곤증이 나서 팔베개를 하고 그 곁에 누웠는데,
“편지 받우… 박동혁이 있소?”
하는 소리가 싸리문 밖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동혁은 벌떡 일어나 고무신짝을 끌며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편지는 영신에게서 온 것이었다.
동혁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내려올 때에 정거장에서 굳은 악수로 작별을 한 뒤에 올봄까지 오고간 편지가 조그만 손가방으로 하나는 가득 찼으리라.
그후 한 사람은 고향인 한곡리로, 한 사람은 기독교 청년회 연합회 농촌 사업부의 특파원격으로, 경기 땅이지만 모든 문화시설과는 완전히 격리된 청석골이란 두메 구석으로 내려가서 일터를 잡은 뒤에는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한가히 찾아다닐 시간과 여비까지도 없었거니와 피차에 사업의 기초가 어느 정도까지 잡히기 전에는 만나지 말자는 언약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삼 전 짜리 우표가 두 장 혹은 석 장씩 붙은 편지가 일 주일에 한 번, 열흘에 한 번씩은 걸르지 않고 내왕을 하였다.
그 편지의 내용이란, 젊은 남녀 간에 흔히 있는 달콤한 사랑을 속삭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사업 보고요, 의견 교환이요, 또는 실제 운동의 고심담이었다. 서로 눈을 감고 앉았어도 한곡리와 청석골의 형편과 무슨 일을 어떻게 해 나가는 것이며, 심지어 틈틈이 무슨 책을 읽고 어떠한 느낌을 받았다는 등, 머리 속까지 환하게 들여다보이도록 적어 보냈고 적혀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피차에 사사로운 생활이나 신변에 관한 일은 단 한 줄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던 터에 오늘은 편지를 뜯어보고 동혁은 적지 아니 놀랐다.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건만 그 동안 과로한 탓인지 몸이 매우 쇠약해졌어요. 또 참다가는 큰 병이 날 것만 같은데요. 단 며칠동안이나마 쉬고는 싶고요. 잠시 쉬는 동안이라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동혁씨가 계신 한곡리로 가서 얼마 동안 바닷바람이나 쏘이다가 올까 합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당신이 착수하신 사업을 직접 보고 '결단코 시찰은 아니지만…' 많이 배워 가지고 오려고 합니다.
꼭 친히 뵙고 의논할 일도 있고요, 겸사겸사 가고 싶은데 과히 방해나 되지 않으실는지요. 가면은 이 편지를 받으시는 다음 다음날(화요일) 아침 그곳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동혁은 흐릿한 등잔 밑에서 눈을 꿈벅꿈벅하며 몇 번이나 편지를 내려읽고 치읽고 하였다.
'그다지 튼튼하던 사람이 얼마나 고생을 했길래 큰 병이 날 것 같다구 했을까? 대관절 꼭 친히 만나서 의논하겠다는 일이란 무엇일까? 오는 거야 반갑지만, 도대체 무엇을 보여 주나? 무슨 일을 했다고 그 동안의 보고를 한단 말인가?'
이러한 의문과 걱정이 쥐가 쥐꼬리를 물듯이 줄달아 일어난다. 더구나, '정양을 하러 오는 사람이, 당장 거처할 데가 없으니 어떻거나?' 하는 것이 당면한 큰 문제다. 동혁은 가슴이 설레면서도 갑갑증이 나는데, 동화의 코고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마당으로 나왔다.
감나무 가지에 낫(鎌) 같은 초생달이 걸린 것을 쳐다보면서 이런 생각 저런 궁리를 하다가 '참 벌써 회원이 다들 모였겠네' 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 전번 일요일에 모였을 때의 회록과 오늘 저녁에 여러 사람에게 들려 줄 이야기를 초잡아 놓은 공책을 꺼내 가지고 나와서 작은 마을 건배 네 집 편으로 걸었다.
아직 여럿이 모일 장소가 없어서 김건배(金建培)라는 동지의 집 머슴방을 빌려서 야학당 겸 농우회(農友會)의 회관으로 쓰는 중이다.
이번 일요일에는 입에 침들이 말라서 가물어서 큰일이 났다는 걱정들만 하다가, 진종일 고역에 너무 지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회원이 태반이나 되었다. 그래서 동혁은,
“내일두 비가 오건 안 오건, 우리 샘물을 길어다 퍼붓더래두 공동답에만은 못자리를 내두룩 하세.”
하고 일찌감치 헤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