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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밭을 내가 태워버리면 어떻게 되지? 네 아버지에게는 뭐가 또 있지?"
"보리는 다시 나와요. 다음 해에도 우리 밭의 보리가..."
"감히 이집트 왕을 보리 따위에 비교하다니!" 라 왕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군.
"왕은 보리보다 훨씬 더 찬란하게 빛난다! 그리고 보리보다 훨씬 더 오래 살지 않느냐!"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그래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지. 그러자 라 왕의 눈에서 마치 폭풍이 일어나는 것 같더군. 왕은 갑자기 호위병들을 돌아보며 사납게 소리치더군.
"이 밭을 모조리 불태워라!"
병사들은 밭 모퉁이에 불을 질렀어.
불이 커다랗게 타오르자, 라 왕은 또 말했지.
"이것 봐라, 꼬마야! 네 아버지의 보물이 어떻게 됐는지를! 이 보물이 이렇게 찬란하게 빛난 적이 있느냐? 그리고 앞으론 두 번 다시 이렇게 빛나지 못할 거다!"
보리밭이 새카맣게 타버리자, 왕은 그곳을 떠났어. 그러면서 소리치더군.
"자, 어떤 것이 더 찬란한 금빛이냐? 보리냐, 왕이냐? 라 왕은 네 아버지의 보리보다 훨씬 더 목숨이 길단 말이다!"
왕이 말에 오르자 망토가 휘날리며 찬란하게 빛났어.
아버지는 그제서야 오두막집에서 슬그머니 나와서 중얼거렸어.
"우리는 이제 끝장이 났다. 도대체 왕은 왜 우리 보리밭을 태운 거지?"
나는 그 이유를 아버지께 이야기할 수 없었어. 나도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었거든. 나는 집 뒤 조그마한 채마 밭으로 달려가서 막 울었어. 그런데, 눈물을 닦으려고 손을 펼쳤더니, 손바닥에 절반쯤 익은 보리 이삭이 착 붙어 있더군! 몇 천 개나 되는 황금빛 보리 이삭 가운데 오직 하나... 마지막으로 남은... 그건 보물이었어!
나는 그것마저 왕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얼른 흙을 파고, 그 구멍에 보리 알을 하나씩 하나씩 묻었지.
다음해 여름, 이집트의 보리가 무르익을 무렵이었어. 우리 밭의 꽃과 참외 사이로 지난해 심은 보리 이삭 열 줄기가 솟아올라 있더군!
그 해 여름, 라 왕이 죽었지. 그리고 호화롭게 묻혔어. 이집트 왕들이 죽으면 단단하게 틀어막은 방에 보석과 비싼 옷, 갖가지 황금 그릇들과 함께 들어가서 잠이 드는 거야. 그런데 그 가운데 보리도 함께 가져가야 해. 왕이 저승으로 먼 길을 가려면 배고프지 않게 보리가 있어야 한다는 거야.
도시에서 어떤 남자가 그 보리를 가지러 나왔더군. 그 남자는 보리를 갖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집 앞을 지나갔어.
몹시 더운 날이어서 보리를 갖고 가던 남자는 우리 집에서 잠깐 쉬었지. 그리고 너무 덥고 피곤한지 잠이 들었어. 나는 그 남자가 잠들자, 그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 마치 라 왕이 다시 나를 내려다보며 소리치는 느낌이더군.
"이집트 왕은 보리보다도 훨씬 더 찬란하게 빛난다! 이집트 왕은 보리보다 훨씬 더 목숨이 길다!"
나는 서둘러 밭으로 달려갔지. 그리고 밭에서 보리 이삭 열 개를 잘랐어. 나는 그 황금빛 줄기를 잠자고 있는 남자가 가지고 온 보리 단 속에 집어 넣었지.
남자는 잠에서 깨어나자 곧장 보리 단을 들고 도시로 돌아갔어. 왕이 온갖 보석들과 함께 묻힐 때 내 보리도 왕과 함께 거기 들어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