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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 때 이집트에 있는 아버지 보리밭에 씨를 뿌렸어. 씨 뿌리기가 끝나면 파란 보리 싹이 움트기를 기다렸어. 시간이 흐르면 보리 줄기가 자라고, 줄기에서 이삭이 솟아 오르더군. 그리고 녹색 밭은 황금빛으로 변하는 거야! 해마다 보리밭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면 나는 우리 아버지가 이집트에서 제일 부자라고 생각했지.
그 때 이집트에는 왕이 있었어. 그 왕을 부르는 이름은 아주 여러가지였지. 그 이름 가운데 가장 짧은 것이 '라'였어. 그래서 나는 그 왕을 '라'라고 불렀지. 라 왕은 큰 도시에서 화려하게 살고 있다는 거야. 아버지의 보리밭은 그 도시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왕을 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왕의 화려한 궁전과 멋진 옷차림에 대해 얘기했지. 왕관과 보석, 재물이 가득 들어찬 상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 왕은 은 접시에 든 음식을 먹고, 금으로 만든 잔에 술을 따라 마신다더군. 저녁에 잠을 잘 때는 테두리에 진주를 장식한 자주색 이불을 덮는다는 거야.
나는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좋았어. 하지만 왕이 우리 아버지처럼 가까운 사람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어. 그리고 왕의 황금빛 망토가 우리집 보리밭처럼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
어느날 나는 보리밭 그늘 아래 누워 있었지.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아버지의 보리는 길게 자라났고, 나는 보리 이삭을 뽑아 한 알씩 입에 넣고 씹고 있었어. 그 때 누군가 내 머리 위에서 웃는 소리가 들리더군. 봤더니 덩치가 큰 어떤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더군.
그 남자는 새까만 수염이 길게 자라 가슴까지 내려왔고, 날카로운 눈매가 마치 독수리 같았어. 머리에 단 장식과 옷이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었지. 난 그 남자가 라 왕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어. 라 왕과 조금 떨어져서 호위병들이 말을 타고 서 있더군. 호위병 한 명은 왕의 말 고삐를 붙잡고 있었어. 왕은 나를 보기 위해서 그 말에서 내린 거야.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한동안 서로 물끄러미 쳐다보았어. 왕은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왕을 올려다보고 있었지...
"얘야, 너는 무척 만족스러운 모양이구나!"
"네 그렇습니다, 라 왕이시여!"
"그 보리를 마치 맛있는 음식처럼 씹고 있다니..."
"라 왕이시여, 이것은 먹는 것입니다."
"얘야, 너는 도대체 누구냐?"
"저는 제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럼 너의 아버지는 누구냐?"
"우리 아버지는 이집트에서 제일 부자입니다."
"그건 왜 그런 거냐?"
"아버지는 이 보리밭을 갖고 있으니까요."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했어!
라 왕은 눈을 번쩍이더니 우리 보리밭을 휘 둘러보더군.
"나는 이 이집트를 모두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말했지. "그건 너무 많아요!"
"뭐라고? 너무 많다고? 너무 많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 어쨌든 나는 네 아버지보다 더 부자란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어. "아니에요!"
"내가 더 부자란 말이다! 네 아버지는 무슨 옷을 입고 있지?"
"저와 똑 같은 옷이지요!" 나는 무명 옷감으로 만든 내 옷을 왕에게 보여 주었어.
"그렇다면 내가 입고 있는 것을 한 번 볼 테냐?" 라 왕은 몸에 걸친 금빛 망토를 활짝 펼치면서 말하더군. 그 바람에 망토 자락이 내 뺨을 할퀴고 지나갔어. 어휴, 꽤나 따끔거리고 쑤시더군.
"이래도 네 아버지가 더 부자라고 우길 테냐?"
"아버지의 황금이 훨씬 더 넓어요. 아버지는 이 밭의 주인이잖아요!"
그러자 왕의 얼굴 표정이 참으로 무섭게 바뀌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