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 날, 만년 샤쓰 창남이가 늦게 오지 않았건마는, 그가 교문 근처까지 오기가 무섭게 온 학교 학생이 허리가 부러지도록 웃기 시작하였다.

창남이가 오늘은 양복 웃저고리에 바지는 어쨌는지 얄따랗고 해져 뚫어진 한복 겹바지를 입고, 버선도 안 신고 맨발에 짚신을 끌고 뚜벅뚜벅 걸어온 까닭이었다. 맨가슴에, 양복 저고리, 위는 양복 저고리 아래는 한복 바지, 그나마 다 떨어진 겹바지, 맨발에 짚신, 그 꼴을 보고, 이십 리 길을 걸어왔으니 한길에서는 오죽 웃었으랴…. 그러나, 당자는 태평이었다.

"고아원 학생 같으니! 고아원 학생."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아이 같구나."

하고들 떠드는 학생들 틈을 헤치고, 체조 선생이 '무슨 일인가?' 하고 살펴보니까 창남이의그 꼴이라, 선생도 놀랐다.

"너 양복 바지를 어쨌니?"

"없어서 못 입고 왔습니다."

"어째 그리 없어지느냐? 날마다 한 가지씩 없어진단 말이냐?"

"예에, 그렇게 한 가지씩 두 가지씩 없어집니다."

"어째서?"

"예." 하고 침을 삼키고 나서,

"그저께 저녁에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저희 동네에 큰 불이 나서 저희 집도 반이나 넘어 탔어요. 그래서 모두 없어졌습니다."

듣기에 하도 딱해서 모두 혀끝을 찼다.

"그렇지만, 양복 바지는 어저께도 입고 있지 않았니? 불은 그저께 나고…"

"저희 집은 반만이라도 타서 세간을 건졌지만, 이웃집이 10여 채나 다 타 버려서 동네가 야단들이어요. 저는 어머니하고 단 두 식구만 있는데, 반만이라도 남았으니까 먹고 잘 것은 넉넉해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먹지도 못 하고 자지도 못 하게 되어서 야단들이어요.

그래 저희 어머니께서는, 우리는 먹고 잘 수 있으니까 두 식구가 당장에 입고 있을 옷 한 벌씩만 남기고는 모두 길거리에 떨고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셔서, 어머니 옷, 제 옷을 모두 동네 어른들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양복 바지는 제가 입고 주지 않고 있었는데, 저의 집 옆에서 술 장사 하시던 영감님이 병든 노인이신데, 하도 추워하시길래 보기가 딱해서 어제 저녁에 마저 주고, 저는 가을에 입던, 해진 겹바지를 꺼내 입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죽은 듯이 고요하고, 고개들이 말없이 수그러졌다. 선생도 고개를 숙였다.

"그래, 너는 네가 입을 샤쓰까지도 양말까지도 주었단 말이냐?"

"아니오. 양말과 샤쓰만은 한 벌씩 남겼었는데, 저희 어머니가 입었던 옷은 모두 남에게 줘 놓고 추워서 벌벌 떠시길래, 제가 '어머니 제 샤쓰라도 입으실래요?' 했더니, '네 샤쓰도 모두 남 주었는데 웬 것이 두 벌씩 남았겠니?' 하시기에 저는, 제가 입고 있는 것 한 벌뿐이면서도, '예, 두 벌 남았으니 하나는 어머니 입으십시오' 하고 입고 있던 것을 어저께 아침에 벗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먼 길에 학교 가기 추울 텐데 둘을 포개 입을 것을 그랬구나' 하시면서 받으셨어요. 그리고 아주 발이 시려 하시면서 '얘야, 창남아, 양말도 두 켤레가 있느냐?' 하시기에 신고 있는 것 한 켤레였지만, '예, 두 켤레올시다. 하나는 어머니 신으시지요' 하고 거짓말을 하고, 신었던 것을 어제 저녁에 벗어 드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나올 때에 '얘야, 오늘같이 추운 날 샤쓰를 하나만 입어서 춥겠구나. 양말을 잘 신고 가거라' 하시기에 맨몸 맨발이면서도 '예, 샤쓰도 잘 입고 양말도 잘 신었으니까 춥지는 않습니다' 하고 속이고 나왔어요. 저는 거짓말쟁이가 됐습니다."

하고, 창남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네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어머니께서 너의 벌거벗은 가슴과 버선 없이 맨발로 짚신을 신은 것을 보시고 아실 것이 아니냐?"

"아아, 선생님…."

하는 창남이의 소리는 떨렸다.

그리고 그의 수그린 얼굴에서 눈물 방울이 짚신 코에 뚝뚝 떨어졌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눈이 머셔서 보지를 못 하고 사신답니다."

체조 선생의 얼굴에는 굵다란 눈물이 흘렀다. 와글와글 하던 그 많은 학생들도 자는 것같이 고요하고, 훌쩍훌쩍 우는 소리만 여기저기서 조용히 들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