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벨트는 그 이후 오랫동안 무척 고독한 생활을 했다. 그는 이미 그 전부터, 아내의 이상한 과거 때문에 불안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떤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늘 두려워했고 우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완전히 자기 분열 상태에 빠져버렸다. 친구를 살해하던 그 광경이 끊임없이 눈앞에 어른거렸고,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살아야 했다.

기분 전환을 하려고 그는 이따금 가까운 도시로 가서, 모임이나 축제에 참석하곤 했다. 그는 친구를 사귀어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고도 해봤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발터 생각을 하게 되면 친구를 사귀겠다는 생각이 두려워지곤 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친구와 사귀더라도 그 관계가 다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아주 평온하게 베르타와 살아왔고, 또 발터의 우정으로 인해 여러 해 동안 무척 행복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 다 너무나 갑자기 죽어버렸다. 순간 순간 그의 인생은 현실의 인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상한 동화처럼 생각되곤 했다.

그렇게 말이 없고 우울한 에크벨트에게 후고라는 젊은 기사가 접근해왔다. 서로 사귀게 되면서, 그는 에크벨트에게 참된 우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에크벨트는 이것이 무척 놀랍고 이상했지만, 예기하지 않았던 우정이었던 만큼, 한층 더 급속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자주 함께 지내게 되었고 이 새 친구는 에크벨트에게 정성을 다해 호의를 베풀었다. 야외로 나갈 때는 거의 언제나 둘이서 같이 나갔고 어떤 모임에서나 그들은 함께 만났다. 그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에크벨트의 이런 즐거움은 언제나 순간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는 후고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떤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후고는 그를 잘 모르고 있었고, 그의 과거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후고가 정말 자기의 친구인지 아닌지 확인해볼 수 있도록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것은 과거 발터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느꼈던 그런 충동이었다. 그러나 후고가 이야기를 듣고 나면 또다시 발터처럼 자기를 꺼려할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두려움으로 생각을 돌이키곤 했다.

에크벨트는 자기가 보잘 것 없는 사실을 언제나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은, 실상 자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마음 속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어느날 두 사람만 거닐던 호젓한 산보 길에서 그는 친구에게 자기의 과거를 모두 털어놓고 살인자를 친구로서 좋아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후고는 마음속으로 감동을 느끼고 그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에크벨트는 마음이 무척 가벼워져서 그를 따라 시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사람을 신뢰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의심을 품는 것이 그의 영원한 형벌인 모양이다. 그들이 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환한 불빛에 비치는 친구의 표정이 에크벨트에게는 뭔가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후고가 음흉한 미소를 짓는 것 같았고, 자기와는 별로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고가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자기에게는 일부러 시선을 돌리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 자리에는 늙은 기사가 한 사람 앉아 있었다. 이 사람은 언제나 에크벨트를 적대시하고, 때때로 그의 재산과 아내에 대해서 이것저것 기분 나쁘게 따져 묻곤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후고가 이 노인과 같이 앉아서, 둘이서 에크벨트 쪽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한동안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에크벨트는 자기가 의심하던 것이 지금 사실로 드러났고, 자기가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다. 무서운 분노가 그의 마음을 거세게 사로잡았다.

그가 계속 그 쪽을 노려보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발터의 얼굴이 나타났다. 발터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였고, 자기가 그렇게도 잘 알던 얼굴이 실제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그 쪽을 노려보면서, 저 노인과 이야기할 사람은 발터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놀랐다. 그는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가서, 그날 밤으로 그 도시를 떠났다. 에크벨트는 몇 번씩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가까스로 자기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떠돌아다니는 망령처럼 그는 이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잠시도 한 자리에 있지를 못했다. 어떠한 생각도 집중할 수 없었으며, 머리 속으로 무서운 생각을 떠올리다가 그것이 한층 더 무서운 생각으로 이어지곤 했다.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때로 그는 자기 머리가 돌아서 모든 것이 자기 머리 속으로 꾸며댄 망상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다시 발터의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모든 것이 점점 더 수수께끼처럼 생각될 뿐이었다.

그는 혼란한 머리 속을 정리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따뜻한 우정과 친교를 바라는 마음을 그는 이제 영원히 포기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