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오후였다. 세 시 이십 분이 된 것을 보고 챈퍼넌은 바깥 공기를 쏘이려고 밖으로 나갈 참이었다. 유리창을 모조리 열어 놓아 교실이 텅 비어 있는데도 공기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의 눈 앞에 핸더슨의 숙제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그는 이 숙제 노트 한 권을 이십 분씩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열심히 틀린 곳을 찾아 눈을 굴렸지만 정작 채점은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상하게 점수를 좋게 주고 있었다.
핸더슨은 아직도 지난 번에 챈퍼넌이 시킨 숙제를 해오지 않고 있었다. 베번 교장은 여전히 여러 가지 구실을 붙여 핸더슨을 크리켓 연습장에 붙잡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숙제를 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반드시 시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숙제를 시키고야 말겠다! 챈퍼넌은 결심했다. 그 숙제를 교장이 못하게 할 정도라면 사표를 내는 것이 낫다. 끝까지 철저하게 해야 한다.
그는 피곤한 듯, 쌓인 연습장들을 책상 서랍 속에 집어넣고 쾅 소리 내어 닫았다. 그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교내 예배당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그는 몇 명의 학생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몸이 축 늘어진 학생을 떠메고 가는 중이었다.
"핸더슨입니다... 네트 안으로... 공이 정면으로 들어와서... 그 네트는 언제나 위험하다고들 그랬는데...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맞았어요... 제일 경기 성적이 좋은 녀석인데..."
학교 전체가 다섯 시까지 어두운 구름에 휩싸인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 다친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발표가 나왔다. 학생이 이제 괜찮으니까 보통 때처럼 지내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의사가 진단한 결과 역시 상처는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챈퍼넌은 여섯 시 반경 망서리던 끝에 병실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는 당연히 면회를 허락 받았다. 그리고 그가 그 학생의 상태를 걱정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는 그 소년의 담임 선생 아닌가.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그는 납으로 모서리를 두른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계단을 지나 벽에 소화기가 걸려 있을 뿐 아무 장식도 없는 복도를 걸어갔다. 녹색 천으로 커텐을 드리운 문을 열다가 그는 병실 안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간호부장님. 취침 시간까지는 이대로 두시고 학생들이 잠든 뒤에는 제 방으로 보내 주세요."
"안 됩니다, 교장 선생님. 오늘은 밤새 여기 누워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도 같이 밤을 새겠어요."
"아니, 간호부장님. 그렇게 하면 다들 부상이 무척 심각한 것으로 알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스레이더 선생이 진찰한 얘기를 들으셨지요? 너무 중병 환자 취급을 하면 시끄러워지고 나쁜 인상만 줄 겁니다. 이미 전교가 떠들석해졌어요. 이제 돌려 보내야 합니다."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 저에겐 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간호부장님..."
챈퍼넌은 돌아서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지금 들어가는 것은 현명치 않다. 조금 있다가 다시 오는 것이 좋겠다...
다음날 아침, 그는 아침 식사 시간에 좀 늦었다.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학생들의 인사를 받고 어색함과 기쁨의 감정이 얽힌 그런 상태로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그는 식당에서 인사한 학생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뭔가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식당 안 쪽 테이블까지 걸어온 그는 교장의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식당 안에 있는 교직원은 겨우 세 사람 뿐이었다. 모두 표정이 어두웠다.
"얘기 못 들었습니까?"
"무슨 얘기 말입니까?"
"핸더슨 말입니다."
"핸더슨? 핸더슨이 뭐가 어쨌단 말입니까?"
"어젯밤에 그 학생이 죽었습니다."
"뭐요? 거짓말...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정말입니다. 밤중에 갑자기 침대에서 일어나 앉더래요. 그리고 눈을 치켜 뜨고 큰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더니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는 거에요."
챈퍼넌은 자기 주위 방 안이 빙빙 돌기 시작하는 착각을 느꼈다.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쨌든 이번 일로 간호부장의 주가만 오르게 됐어. 그 여자는 어젯밤 철야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는 거야. 운이 좋았던 거야. 이제 검시를 할 텐데, 교장은 어젯밤 간호부장이 고집을 피워 자기 말을 듣지 않은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할 걸?"
정신을 차려 주위를 제대로 알아보게 됐지만, 챈퍼넌은 식욕이 생기질 않았다. 그는 커피만 한 두 모금 마시고 식당을 나왔다. 식당 문간에서 그거 보라는 듯, 의식적으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간호부장을 스쳤다. 2분쯤 지나서 챈퍼넌은 교장실 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지금은 만날 수 없어요. 챈퍼넌 선생, 나는 지금 매우 바쁩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왔습니다... 사표를 내러 왔을 뿐입니다."
교장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 앉았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뒤적였다. 창백하고 병자 같은, 주름 투성이의 노인 같은 얼굴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자 나중에 봅시다. 지금은 아무래도 챈퍼넌 선생과 앉아서 이야기할 수가 없으니까..."
"챈퍼넌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발을 굴렀다.
"저는 그만 두는 겁니다." 그는 외쳤다. "사직한단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사직을 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내뱉고 그는 획 돌아서 나왔다. 그는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훌쩍거리면서 복도를 구르듯이 뛰어갔다. 복도가 꺾이는 곳에서 그는 동료 교사와 부딪혔다. 그 젊은 교사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리고 그가 달려가는 뒷모습을 열심히 눈으로 쫓다가 낮고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대단하군." 그는 놀랐다는 듯이 소리쳤다. "저 사람이 저럴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걸..."
그러나 챈퍼넌은 학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온 몸을 엄습해오는 무엇인가 때문에 그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한 사람의 교사로서 어떤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어떤 식으로 취급 당하고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슬프지는 않았다. 오직 핸더슨을 놓쳐 버렸고 그에게 한 대 얻어 맞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는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 날 오후라도 병실로 달려 가서 시체라고 끌고 와서 아무도 없는 교실 책상에 앉혀 놓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끝>
숙제 - 3. 그럴 리가 있나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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