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점."
"선생님!"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군, 그럼 오 점으로 깎아주지."
"억울합니다, 선생님!"
"러셀 군, 잘 알아둬. 내 채점에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고쳐 주겠어. 점수를 깎아주겠단 말이야."
"선생님! 너무하세요."
"이만하면 됐나? 아직도 불만이라면 더 고쳐 줄 수도 있어."
학생은 어이가 없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은근히 구박을 받고 있다고 느낀 학생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다.
로저 챈퍼넌 선생은 고개를 숙이고 교과서를 들여다보았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뭐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교과서의 다음 몇 줄을 유심히 살펴봤다. 일부러 어려운 부분을 골라 준 것은 아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틀리기 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떳떳하지 못한 짓일까. 그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학생의 성격을 판단해서 실수하기 쉬운 문제를 시킨다는 것은? 하지만 저 바보 같은 학생은 단어의 뜻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은가.
"핸더슨, 네가 한 번 해석해보렴."
단정하게 생긴, 금발 머리 소년이 놀란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 말씀입니까? 선생님."
"네 이름이 핸더슨 아니던가?"
"그렇습니다."
"이름 부르는 소리 못 들었나?"
"들었습니다, 선생님."
챈퍼넌은 순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학생의 푸른 눈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 문장을 해석해 봐. 그래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도록 말이야."
소년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양쪽 팔 소매를 약간 걷어 올리고 바지를 치켜 올리고는 책상 앞에 반듯하게 앉아 자세를 똑바로 했다. 다시 한 번 남을 깔보는 듯한 미소를 짓고는 교과서를 보았다. 순간적으로 그는 문제를 훑어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것이다. 지금 그의 태도는 자기가 지정 받은 문제가 무척 까다롭다는 것을 일부러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저..."
"빨리 해라." 챈퍼넌은 낮은 음성으로 가까스로 이렇게 말했다. 말을 뱉어놓고는 스스로에게 타이르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보, 바보, 얕보이면 안 돼.
"선생님, 잘 모르겠습니다."
"신경을 써서 한 번 해봐." 챈퍼넌은 다시 말했다.
소년은 다시 한 번 교과서를 들여다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데..." 그는 라틴어를 읽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혹은 그 이래..." 그는 읽는 것을 멈추고 재롱을 부리고 난 뒤 주인의 칭찬을 기다리는 개처럼 챈퍼넌을 바라봤다. 챈퍼넌은 자기 교과서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데..." 핸더슨은 되풀이했다.
"그 이래... 혹은 그로부터... 아니, 그 이래... 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래 '아트로큐스 겔타멘..." 그는 말이 막혔다. "잔학한 싸움이..."
챈퍼넌은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틀렸습니까, 선생님?" 듣는 사람은 기분이 좋았지만, 소년은 당황한 것처럼 몸 둘 바를 모르며 물었다.
"다키도스(로마의 역사가)는 알고 있을 테지." 교사는 비꼬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끔 동사를 빠트리는 버릇이 있어."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는 부주의한 작가입니다."
"뭐라구?"
"네, 선생님. 그 사실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는 왜 같은 잘못을 자꾸 거듭하나?"
"선생님, 버나드 쇼도 '인간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는 존재'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챈퍼넌은 기가 막혔다. 이 학생은 일부러 내 화를 돋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경 쓸 필요는 없어. 학생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핸더슨은 분명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챈퍼넌에게 미움을 받고 있으니 분명 어려운 문제를 시킬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까다로운 단어가 있는 어려운 문제만 준비해 왔음에 틀림 없다. 그러나 챈퍼넌은 핸더슨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한 수 앞질러서 쉬운 것을 시킨 것이었다. 이 추측은 맞아 떨어졌다. 이제 가만히 앉아서 이 수업 태도가 좋지 못한 학생이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을 기다리면 된다.
챈퍼넌은 어떤 충동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적절한 심판을 내려야 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핸더슨, 너는 제대로 예습을 해오지 않았으니까 오늘 오후에는 교실에 남아서 보충 수업을 하고 가도록 해라."
"보충 수업이라구요, 선생님?"
"예습해오지 않은 문제를 제대로 하고 가야지."
"선생님, 죄송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고개를 흔들며 소년은 그 푸른 눈에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왜?"
"네, 베번 교장 선생님과 크리켓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챈퍼넌은 억지로 꾹 참았다.
"그렇다면 좋다. 내일 오후에 남아서 해라."
"내일도 역시 곤란합니다. 실체스터에서 시합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