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

그 사나이는 말했다.

"영감님은 지금 부정한 여자를 며느리로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지난 2년 동안 나의 정부(情婦)였습니다. 내 얘기를 증명할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바로 이 편지가 그것입니다...! 여자의 부모들도 모두 다 우리의 결혼을 승낙했습니다. 나에게 그년을 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영감님의 아들이 그년에게 청혼한 뒤부터는 그년의 부모도 그년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하지만 나는, 그런 과거가 있는 계집이 설마 다른 남자와 결혼해 그 사람의 아내가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왔어요."

"좋소!"

에스떼브 영감은 편지에 눈길을 주었다.

"안에 들어가 포도주나 한 잔 하시면서 목이라도 축입시다."

사나이는 말했다.

"싫습니다. 난 원통해서 술이고 뭐고 마실 생각조차 나지 않습니다."

사나이는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버지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와 식탁에 앉았다. 그래서 그날 저녁 식사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무사히 끝났다...

그날 밤, 에스떼브 영감과 큰아들은 함께 들로 나갔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밖에 있었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지주영감은 아들을 어머니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면서 말했다.

"애한테 키스를 해주구려! 딱하고 가엾은 놈이야..."


장은 이제 아를르의 여인에 대한 일은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과거와 조금도 다름없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른 남자의 것이라는 것을 안 뒤부터 오히려 전보다도 더욱 사랑하게 된 것이다.

다만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이 그를 죽게 한 씨앗이었다. 가엾게도! 장은 가끔 방구석에서 혼자 꼼짝도 않고 하루종일 앉아 있곤 했다. 또 어떤 때에는 정신없이 밭에 나가 일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럴 때 그는 품팔이꾼 열 사람씩이 달라붙어야 해낼 수 있는 일을 혼자서 해치우곤 했다... 저녁이 되면 아를르의 길거리로 나가 마을의 높고 긴 종루가 서쪽 하늘에 희미하게 보일 때까지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까지 갔다가 그는 다시 돌아왔다. 더 멀리 가는 법은 절대 없었다.

그가 이렇게 늘 슬픔에 잠겨 외롭게 지내는 것을 보고 가족들은 모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안절부절했다. 무슨 좋지 못한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모두들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가 눈에 눈물을 가득히 머금고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 좋아, 장! 그렇게도 그 여자가 좋다면 아내로 맞아들여도 좋다."

부친은 치욕스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장은 고개를 흔들더니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날부터 그는 부모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생활 태도를 바꾸고 일부러 명랑한 태도를 꾸몄다. 무도회나 술집, 그리고 소들에게 낙인을 찍은 후 으레 열리는 마을 잔치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퐁비에유의 축제에서 파랑돌 춤을 앞장서서 이끌기도 했다.

부친은 "저 녀석이 이젠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모양이야" 하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전보다도 더 자세하게 아들의 태도를 살피곤 했다... 장은 누에 치는 곳 바로 옆방에서 동생과 함께 자고 있었다. 그래서 늙은 어머니는 두 아들이 자는 바로 옆방에 자기 침대를 옮겨 놓고 잤다... 밤중에 누에를 돌보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는 핑계를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