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내 말에 대꾸하지 않고 말했다.
"있잖아, 내가 지구에 온 게... 내일이면 벌써 일 년이야..."
그리고 잠시 말이 없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바로 이 근처였어..."
그리고 얼굴을 붉혔다.
또다시 나는 까닭 모를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의문이 생겼다.
"그럼 우연이 아니었구나? 여드레 전 내가 너를 만난 날 아침에 사람들로부터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을 너 혼자 돌아다닌 것 말이야.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구나?"
어린 왕자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나는 망설이며 덧붙여 물었다.
"틀림없이 일 년이 맞는 거야?"
어린 왕자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어린 왕자는 묻는 말에 결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굴을 붉히면 `그렇다'는 뜻 아닌가?
"나는 두려워." 내가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저씨는 이제 일을 해야 하잖아. 기계 있는 데로 다시 가야 해.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내일 저녁에 다시 와..."
나는 맘이 놓이지 않았다. 여우 생각이 났다. 길들여진다는 건, 울 염려가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우물 곁에 무너지다 만 돌담이 있었다. 이튿날 저녁, 일을 하고 돌아오던 나는 멀리서 어린 왕자가 그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늘어뜨린 것을 보았다. 그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 기억 안 나니? 바로 이 자리는 아니야!"
분명 그 말에 대답하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어린 왕자가 다시 이렇게 대꾸하는 것 아닌가!
"아냐, 아냐! 날은 바로 그 날이지만 장소는 여기가 아니야..."
나는 돌담을 향해 그대로 걸어갔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다시 대꾸했다.
"...그렇지. 내 발자국이 모래 속 어디서 시작됐는지 보면 알 거야. 거기서 나를 기다리면 돼. 내가 오늘밤 거기로 갈 거야."
담에서 이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갈 때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다시 얘기했다.
"네가 가진 독은 좋은 거니? 오래 아프게 하지 않을 거지?"
나는 가슴이 조여 발을 멈추었다. 그때까지도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너는 가 봐." 그가 말했다... "내려가야겠어!"
그제서야 나는 담 밑을 내려다보곤 펄쩍 뛰었다! 거기, 삼십 초 안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노란 뱀이 어린 왕자를 향해 대가리를 쳐들고 있지 않은가. 나는 권총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지며 뛰어갔다. 뱀은 내 발 소리에 잦아드는 분수처럼 천천히 모래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가벼운 쇳소리를 내며 돌 틈으로 교묘히 사라졌다.
담 밑에 이르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눈처럼 창백해진 꼬마 왕자를 겨우 품에 받아 안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뱀하고 이야길 다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