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그 큰 미륵님은 큰 눈을 딱 뜨고, 그 넓은 입을 딱 다물고 점잖게 듣고 있더니, 두더지 영감의 말이 간신히 끝난 후에야 천천히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으응, 자네 말이 그럴 듯하네. 나는 키도 크고 무서운 것도 없이 지내네. 해가 뜨거나 말거나, 어듭거나 밝거나, 춥거나 덥거나 걱정해 본 일이 없고, 또 구름이 항상 내 머리 옆을 지나다니지만, 그놈이 비를 뿌리건 천둥소리를 지르건 조금도 두렵거나 겁나는 일이 없었고, 또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와도, 콧구멍에 아무리 찬바람을 불어넣 어도 까딱한 일이 없으니, 내가 참말 이 세상에 제일은 제일일 걸세.”

 

하는 말을 듣고 두더지 영감은 그만 좋아서,

 

“예, 제일이고 말고요. 그러니 제 딸하고 혼인해 주시겠지요, 예? 혼인하시지요.”

 

하고 승낙하기를 독촉하였습니다. 미륵님은 천천히 또 말하기를,

 

“으응, 그런데 내게도 꼭 한 가지 무서운 놈이 있다네.”

 

하므로 두더지 영감은 눈을 부릅뜨고 바싹 다가앉으면서,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어요?”

 

하고 조급히 물었습니다. 미륵님은 역시 천천히,

 

“그 꼭 한 가지 무서운 놈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 발 밑에 구멍을 파고 살고 있는 두더지 한 마리라네. 그놈이 호미 같은 발로 흙을 자꾸 후벼파고 있으니 어찌 겁이 나지 않겠나? 해도 무섭지 않고 구름도 바람도 무서워하지 않는 내가 그 두더지에게는 어떻게 당할 재주가 없으니 어쩐단 말인가. 

 

그놈이 그렇게 내 발 밑에 구멍을 자꾸 파 면, 나중에는 세상에 제일이라던 내 몸이 그냥 쓰러져 버리고 말 터이니, 그렇게 무섭고 한심스러운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아아, 참말이지 이 넓은 세상에 두더지처럼 무섭고 두더지보다 더 잘난 놈은 없는 줄 아네.”

 

하고 탄식하는 것을 보고 두더지 영감은,

 

‘이 세상에 제일 무섭고 제일 잘난 것은 역시 우리 두더지밖에 없구나!’

 

생각하고 곧 그 은진미륵님 밑에 산다는두더지를 찾아가 보니, 아주 젊디젊은 잘생긴 사내 두더지였습니다.

 

그래서 혼인 이야기도 손쉽게 이루어져서, 곧 좋은 날을 가려 혼인 잔치를 크게 차리고, 그 잘생긴 딸을 젊은 두더지에게로 시집 보냈습니다.

 

잔치도 즐겁고 재미있게 무사히 치르고, 이 젊고 잘생긴 두더지 신랑·색시는 복이 많아서 오래도록 오래도록 땅속에서 잘 살았답니다.

<어린이>192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