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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은 6할은 공포, 나머지 4할은 호기심에 이끌려 한동안 숨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옛사람의 기록을 본 따 말한다면 '머리칼이 굵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노파는 불이 붙은 솔가지를 마루 틈새에 꽂고 그때까지 들여다보던 시체의 머리에 두 손을 대고는 마치 어미 원숭이가 새끼의 이를 잡아주듯이 그 긴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뽑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손만 대면 그대로 쑥쑥 뽑혀나오는 것 같았다.머리카락이 한 올씩 뽑히면서 하인의 마음 속에서는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와 함께 이 노파에 대한 무서운 증오심이 조금씩 치솟았다 - 아니 이 노파에 대한 증오심이라고 하면 모순이 있을지 모른다. 차라리 모든 악에 대한 반감이 순간 순간 강도를 더해간 것이다.
이 때 누군가 이 사나이에게 아까 문 아래서 생각하던 문제 - 굶어 죽느냐 도둑질을 하느냐 하는 문제를 새로 끄집어 낸다면 아마 하인은 아무 미련 없이 굶어죽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만큼 악에 대한 이 사나이의 증오심은 노파가 마룻바닥에 꽂아놓은 관솔불처럼 무럭무럭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나이는 물론 노파가 왜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는지 알지 못했다. 따라서 그것을 선악의 관점에서 어느 쪽으로 해석해야 할지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사나이에게는 이 비오는 밤에 라쇼몽 위에서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용서할 수 없는 악이었다. 물론 이 사나이는 아까 전까지 자기가 도둑이 될 생각이었던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사나이는 두 발로 사다리를 차며 번개처럼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는 장식도 없는 긴 칼 자루를 손으로 잡고 성큼성큼 노파 앞으로 다가갔다. 노파가 놀란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노파는 사나이를 보자마자 마치 활시위에 퉁기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었다.
"요게 어디로 달아나려구!"
사나이는 당황해 달아나다가 시체에 걸려 넘어진 노파를 막아서며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노파는 그래도 사나이를 떠밀고 달아나려고 한다. 사나이는 또 놓칠세라 노파를 다시 떠민다. 둘은 그렇게 시체들 속에서 서로 붙잡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승패는 처음부터 뻔하다. 사나이는 마침내 노파의 팔을 비틀어 강제로 그 자리에 넘어뜨렸다. 닭다리 같은, 뼈와 가죽뿐인 팔목이었다.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말해 봐. 말 안 하면 이거다."
사나이는 노파를 밀어 넘어뜨리고는 갑자기 긴 칼을 쑥 뽑아 하얀 강철 빛 칼날을 눈앞에 들이댔다. 그래도 노파는 말이 없다. 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어깨로 숨을 몰아쉬면서,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눈을 부릅뜨고 벙어리같이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것을 보자 사나이는 비로소 이 노파의 목숨이 오로지 자기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의식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지금까지 험악하게 불타고 있던 증오심을 어느새 식혀 버렸다. 뒤에 남은 것은 다만 어떤 일을 하고 그것이 원만히 이뤄졌을 때의 편안한 자긍심과 만족감뿐이었다. 그래서 사나이는 노파를 내려다보며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게비이시청(檢非違使廳, 교토 시내의 범죄인 감찰과 재판을 하던 관청)의 관리도 아무것도 아니다. 방금 이 문 아래로 지나가던 나그네란 말이다. 그러니 너를 잡아가거나 어쩌고 할 것도 없다. 다만 이 밤중에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만 말하면 되는 거다."
그러자 노파는 눈을 더욱 크게 뜨더니 뚫어지게 사나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꺼풀이 벌개진, 육식조 같이 날카로운 그런 눈이었다. 그리고는 주름으로 거의 코에 달라붙은 것 같은 입술을 마치 무엇을 씹기라도 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가느다란 목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울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목에서 까마귀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헐떡이며 하인의 귀에 들려왔다.
"이 머리카락을 뽑아서 말이야, 이 머리카락을 뽑아서 말이지, 가발을 만들려고 한 것이야."
사나이는 노파의 대답이 뜻밖으로 평범한 것에 실망했다. 그리고 실망과 동시에 아까 느꼈던 증오심이 차가운 모멸감과 함께 마음 속에 되살아났다. 그 기색이 노파에게도 전해졌는지 노파는 한쪽 손에 시체 머리에서 뽑은 긴 머리카락을 아직 움켜쥔 채 두꺼비가 중얼거리는 것 같은 소리로 우물거리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물론,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뽑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 있는 송장들은 모두 그만한 일을 당해도 싼 인간들이야. 지금 내가 머리카락을 뽑은 이 계집만 해도 뱀을 네 치씩 토막 내 말린 것을 말린 생선이라고 하면서 다데와끼(太刀帶, 동궁을 지키던 무사들) 부대로 팔러 다녔단 말이야. 염병에 걸려 죽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팔고 다녔겠지.
게다가 말이야, 이 여자가 파는 말린 생선은 맛이 좋다고 갈 때마다 다데와끼들이 다투어서 찬거리로 사갔다는 거야. 나는 이 여자가 한 일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죽게 생겼으니 어떻게 안 할 도리가 있느냐 말이야. 그러니 지금 내가 한 일도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이렇게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게 생겼으니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을 이 여자도 잘 알 테니까, 아마 내가 하는 일도 너그럽게 생각해줄 거야."
노파는 대강 이런 뜻의 이야기를 했다.
사나이는 칼을 칼집에 꽂고 칼자루를 왼손으로 누르며 차갑게 이 말을 듣고 있었다. 물론 오른손으로는 볼에 벌겋게 고름이 잡힌 커다란 여드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사나이의 마음에는 차차 어떤 용기가 솟구쳤다. 아까 문 아래 있을 때는 찾아볼 수 없었던 용기였다.
이 용기는 또 아까 이 문 위에 올라와 노파를 붙잡았을 때의 용기와는 전혀 반대로 움직이는 용기였다. 이제 사나이는 굶어 죽느냐, 도둑질을 하느냐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굶어 죽는다는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의식 밖으로 멀리 밀려나 있었다.
"정말 그런가?"
노파의 말이 끝나자 사나이는 비웃는 것처럼 다그쳐 물었다. 그리고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더니 갑자기 오른손을 여드름에서 떼어 노파의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물어뜯을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가 네 껍질을 벗겨가도 날 원망하지 않겠지.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판이니 말이야."
사나이는 벼락 치듯이 재빨리 노파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는 발목을 붙잡고 매달리는 노파를 거칠게 송장들 위로 걷어차 버렸다. 사닥다리까지는 불과 다섯 걸음 안팎이다. 사나이는 빼앗은 짙은 자주빛 옷을 옆구리에 끼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가파른 사닥다리를 넘어 땅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잠시 죽은 듯이 엎드려 있던 노파가 시체들 가운데서 벌거벗은 몸을 일으킨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노파는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 같은, 신음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아직도 타고 있는 불빛에 의지해 사닥다리 입구까지 기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짧은 머리카락을 거꾸로 하면서 다락 아래를 살폈다. 밖에는 다만 칠흑 같이 캄캄한 밤이 있을 뿐이다.
하인 차림의 사나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