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내가 쓰는 얘기는, 거짓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이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누군가 그대로 믿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걸 바라고 싶지도 않다. 사실 나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도 믿기 어려운 일을 남들에게 믿어달라고 한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겐 이것이 미치광이의 잠꼬대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미친 것도, 꿈을 꾸는 것도 아니다. 내일이면 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이 가기 전에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다. 어쨌든 나는 지금부터 내 가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 사건의 결과는 나를 공포에 빠뜨리고, 번민을 안겨 주었으며 끝내는 파멸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에 대해 시시콜콜 설명하지는 않으련다. 내게는 공포감만을 안겨준 사건이었지만, 많은 세상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그저 터무니없는 헛소리 정도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탁월한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나의 악몽조차도 평범하고 시시한 일로 간단하게 정리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냉정하고 논리적이고 침착한 그 지성의 소유자는 내가 지금 두려움에 떨며 얽혀 있는 이 사건 속에서도 하나의 분명한 인과 관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겪은 이상한 경험도 극히 사소한 일상사의 하나로 만들 수 있게 되리라.

어릴 때 나는 온순하고 무척 동정심이 많은 아이였다. 마음이 너무 여려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나는 특히 동물을 좋아했다. 부모님은 그런 내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애완동물을 사 주셨다. 나는 날마다 동물들과 함께 지냈고,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쓰다듬어 줄 때가 가장 즐거웠다.

나의 이 성격적인 특성은 나이를 먹어가며 한층 강해졌다.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동물을 사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즐거움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충실하고 영리한 개를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 이런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간들의 우정과 신의가 얼마나 천박하고 경박한 것인지 몇 번씩 느껴본 사람이라면 동물의 사심 없는 사랑, 이기심 없는 헌신 속에서 뭔가 가슴 뭉클한 것을 느낄 것이다.

나는 일찍 결혼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 역시 나와 성품이 비슷했다. 내가 동물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귀여운 애완 동물들을 여러 마리 구해 왔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작은 새, 금붕어, 영리한 개, 토끼, 조그만 원숭이, 그리고 한 마리의 고양이들이 우리 부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고양이는 몸집이 무척 큰 멋진 녀석으로 온몸이 새까맣고 놀랄 만큼 영리했다. 이 고양이의 영리함을 화제에 올릴 때마다 아내는 검은 고양이는 모두 마녀의 화신이라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을 입에 올리곤 했다. 아내는 적지 않게 미신적인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물론 아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나 또한 지금 그 때 일이 우연히 떠올라서 이렇게 쓰고 있을 뿐이다.

지옥의 왕인 플루토 ― 이것이 그 고양이의 이름이었다. 플루토는 나의 귀여운 놀이 동무였다. 먹이도 늘 내가 주었으며, 집안 어디든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외출할 때도 따라 나오려고 해서 그것을 말리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우리의 우정은 여러 해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그 동안 내 기질과 성격은 과거에 비해 너무나 변해 버렸다. 털어놓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술을 폭음하는 버릇 때문에 나는 과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나날이 변덕이 심해져 화를 잘 내고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게 되었다. 아내에게도 욕설을 퍼붓고 마침내는 폭력까지 휘두르기에 이르렀다.

귀여워하는 동물들도 내 성격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나는 동물 돌보는 일을 게을리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들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플루토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토끼, 원숭이, 개들이 우연히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곁에 다가오면 나는 사정없이 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내 병은 ― 사실 음주보다 더 심한 고질병이 또 어디 있으랴! ― 점점 악화됐다. 그리고 마침내 플루토까지, 이제는 늙어서 성격이 상당히 까다로워진 플루토까지 나의 고질병의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어느 날 밤, 나는 늘 다니던 선술집에서 만취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그 때 내 눈에는 플루토가 어쩐지 나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양이를 붙잡았다. 그러자 그 놈은 나의 난폭한 태도에 놀란 듯 내 손목에 가벼운 상처를 내고 말았다. 순간 나는 악귀와도 같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나는 내 자신을 잊어버렸다. 나의 순수한 영혼은 단숨에 내 몸을 빠져나가 버리고, 술에 절어 일그러진 사악한 증오가 온몸을 전율로 떨게 했다.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조그만 칼을 꺼냈다. 그리고 고양이의 목을 움켜잡고 한쪽 눈을 태연히 도려냈다. 이 잔인하고 소름 끼치는 행동을 쓰고 있노라니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대며 몸이 떨려온다.

다음날 아침 어느 정도 술에서 깨어나자 나는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내가 저지른 죄악에 대해 공포와 회한이 뒤섞인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결국은 미약하고 일시적인 기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 기분이 내 마음의 뿌리를 뒤흔들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폭음으로 지새면서 내 잔인한 행동에 대한 기억을 술 속에 완전히 파묻어 버렸다.

한편 고양이는 조금씩 상처가 나아갔다. 도려낸 눈의 뻥 뚫린 구멍은 보기에도 끔찍했다. 하지만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는 않는 듯했다. 고양이는 전이나 마찬가지로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나 내가 가까이 가면 공포에 질려 재빨리 달아나 숨곤 했다. 고양이의 달라진 태도 때문에 나는 처음에 조금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추악한 증오심으로 이어져 마침내 구원 받을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나를 몰아넣고야 말았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철학은 아직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본성이야말로 인간 마음에 깊숙이 숨어 있는 원초적 충동의 하나일 것이다. 그 충동은 인간 성격을 형성하는 근원적 기능 또는 감정의 하나이다.

나는 내 영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믿듯이 그러한 충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어리석은 행위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오히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행동을 참지 못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어기고 싶은 욕구를 늘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추악한 감정이 나를 파멸로 이끌었다. 죄도 없는 동물을 계속 학대해서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까지 이르게 한 것은, 이 헤아리기 어려운 영혼의 욕구였다. 자신을 나무라며 자신의 본성을 학대하고 죄악이 죄악을 낳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태연하게 고양이의 목에 밧줄을 걸어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가슴은 비통한 회한으로 쓰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고양이의 목을 매단 것이다.

내가 가슴 아파한 것은 그 고양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는 나의 분노를 일으킬 만한 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행동이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내 불멸의 영혼은 ― 만일 그런 게 있다면 ― 신의 무한한 자비로도 구해 낼 수 없는 깊은 심연 속에 빠지게 되리라.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