童骸
[소개]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과 묘하게도 결혼 비슷한 인연을 갖게 된 주인공. 그러나 이 여인은 주인공도 아는 어떤 남자가 이미 소유했던 여인이다. 도덕의 모순과 자기 모멸을 일부러 즐기는 태도, 그러면서도 끝내 어떤 순수함에 대한 최후의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주인공의 여린 심성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사랑도 배신도 아니지만, 주인공은 자살을 생각한다. 여자의 전 소유자였던 윤(尹)이라는 사내는 이런 부도덕의 유희를 얼마든지 희롱할 수 있는, 인문을 떠난 방탄 조끼를 입은 자이다. 제목은 그냥 '철부지 어린아이'란 뜻의 동해(童孩)에 일부러 해골이란 의미를 집어넣은 것이다.
[작가 소개]
이 상(李箱, 1910-1937) : 서울 출생. 본명 김해경(金海卿). 경성공고 건축과를 졸업하고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는 한편 이 해 조선미술전람회에 양화 '자화상'을 출품, 입선했다. 1932년 역시 <조선과 건축>에 시 <건축 무한 6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그의 초기 시들은 주로 일본어로 씌어져 있는데, 내용이나 형식이 실험적이고 이색적이어서 당시의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난해한 문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식세계에 대한 추구였으며 지금도 일부 추종자 또는 유사한 시도를 낳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934년 대표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 학예란에 연재, 항의와 투서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신문사로 날아들었다. 다방과 카페를 차렸다가 실패한 그는 아우 운경의 청소부 봉급으로 생활을 지탱해 갔으며 방세를 못내 거리로 쫓겨나기도 했다. 1936년 친구인 화가의 여동생과 결혼했으나 생활은 비참했고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이해 도일, 이듬해 도쿄 거리를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며 배회하다 사상불온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기도 했다. 일생의 결산과도 같은 장편 <종생기>를 남기고 그해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