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최초 발표 - 1936년 "조광"
천재 작가 이 상의 대표작. ‘박제된 천재를 아시오'란 프롤로그로 시작, 돈과 정조를 주로 한 기존가치의 부정, 의식의 흐름에 의한 심리주의적 기법이 구사된 작품이다. 마지막 ‘날개야 돋아라. 한 번만 날아 보자꾸나'고 비상(飛翔)을 절규한 이 작품은 한국 현대소설이 신소설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게 만드는 몇 가지 지표를 제시한다.
<날개>는 기생이었던 금홍과의 2년 여에 걸친 무궤도한 생활을 배경으로 한다.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갔다가 만난 기생 금홍과 그는 함께 서울로 돌아와 백부가 물려 준 집을 처분해 다방을 차렸다. 이 무렵 그는 격심한 고독과 절망, 그리고 자의식에 침전돼 수염과 머리를 깎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온종일 어둠침침한 방에 박혀 술만 마시기도 하였다고 한다. <날개>에 나오는 '나'가 바로 이 상 자신의 자화상인 셈이다. <날개>를 발표할 무렵 그는 같이 폐를 앓던 작가 김유정과 함께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
[작가 소개]
이 상(李箱, 1910-1937) : 서울 출생. 본명 김해경(金海卿). 경성공고 건축과를 졸업하고 1931년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하는 한편 이 해 조선미술전람회에 양화 [자화상]을 출품, 입선했다. 1932년 역시 <조선과 건축>에 시 <건축 무한 6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그의 초기 시들은 주로 일본어로 씌어져 있는데, 내용이나 형식이 실험적이고 이색적이어서 당시의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난해한 문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식세계에 대한 추구였으며 지금도 일부 추종자 또는 유사한 시도를 낳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934년 대표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 학예란에 연재, 항의와 투서가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신문사로 날아들었다. 다방과 카페를 차렸다가 실패한 그는 아우 운경의 청소부 봉급으로 생활을 지탱해 갔으며 방세를 못내 거리로 쫓겨나기도 했다. 1936년 친구인 화가의 여동생과 결혼했으나 생활은 비참했고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이해 도일, 이듬해 도쿄 거리를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며 배회하다 사상불온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기도 했다. 일생의 결산과도 같은 장편 <종생기>를 남기고 그해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