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여기서 김동인이 말하는 소위 예술관이라는 것은 사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유치한 느낌이 있다. 니체의 초인 사상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예술가가 과연 범죄자일 수가 있는가?'하는 주제는 예술에 대한 논쟁에서도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인은 가장 죄 없는 영혼'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 반대의 의견도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의견이 다수인가 하는 것보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작가의 경험과 예술적 형상화에서의 내적 필연성이다. 여기서 김동인의 예술관은 작가의 체험에 기초했다기보다 서양 근대문명의 어설픈 수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소화 불량 현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가 소개]
김동인(金東仁, 1900~1951) : 한국 근대문학의 성립 과정에서 문단을 주도했던 이광수 식의 계몽적 교훈주의에서 본격적으로 탈출을 시도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예술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이른바 본격 근대문학의 확립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관은 전주.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人) 춘사(春士). 평안남도 평양 출생. 일본 도쿄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 졸업,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중퇴하였다.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創造)>를 발간했으며 <배따라기> <감자>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혁신에 공헌하였다. 신경향파(新傾向派)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표방하고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1935년부터 <왕부(王府)의 낙조(落照)> 등을 발표하고 야담사(野談社)를 설립하여 월간지 <야담(野談)>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와 함께 마약 중독에 걸리기도 했다. 6·25 때 숙환으로 서울에서 작고하였다. 평론 <춘원연구(春園硏究)>가 남아 있다. 1955년 <사상계(思想界)>에서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을 제정·시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