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유월 그믐께- 어느덧 더위도 고개를 넘은 늦은 여름철이었다. 올해는 비가 알맞게 와서 T촌 사람들도 농사를 잘 지었다. 이제는 기심도 거진 다 매서 한편으로는 두령풀도 베기 시작하였고 일손을 일찍이 뗀 사람들은 산으로 기어올라서 '나무갓' 뜯기도 하였다.
그들이 살포를 집고 들에 나가서 장한 벼가 허옇게 팬 것을 볼 때에는 비록 남의 곡식이라도 배가 저절로 부른 것 같았다. 그래서 올 칠 월 백중에는 '두레'를 한 밥 잘 먹자고 그들은 벌써부터 개를 잡느니 돼지를 잡느니 하며 벼르고들 있었다. 이런 기미를 안 건성이는 그날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는 그날을 어떻게 보낼까? 하고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그날에 완득이와 음전이의 결혼식을 거행했으면 좋겠다 하였다.-
치백이는 건성이의 이 말을 들을 때-
"아모 준비도 없는데 별안간 어떻게 지내나!"
하고 입맛을 다시었지마는
"가을에 가면 별 수 있겠오- 공연히 새잡이로 빚을 지느니 그런 계제에 간단히 치르고 맙시다!"
하는 건성이의 말에 그도 그렇다고 동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뜻밖에 장가들게 된 완득이는 너무나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 그는 주인집에서 선 삭영을 몇 십 원 타오고 점순[음전]네도 건성이가 주선을 하여서 의복감과 약간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물론 모든 혼인 절차는 건성이가 지휘하게 되었다.
그는 재래의 '구습'을 타파하고 아주 간단한 농민의 결혼식을 새로 만들어서 거행하기로 하였다.
어느덧 기다리던 백중날은 돌아왔다.-
일랑풍청(日朗風淸)한 좋은 날이었다― 이날 식전부터 T촌 일경은 발끈 뒤집혀서 잔치 차리기에 분주하였다. 백중놀음에 혼인까지 겸하였으니 촌에서 이만큼 큰 일을 치르기는 과연 처음이었던 것이다.
건성이는 먼저 결혼식부터 거행하자 하였다. 그래 마을 뒤 느티나무 정자 밑에다 차일을 치고 결혼식장을 베풀었다. 그 밑에다가는 멍석을 깔고 신랑 신부가 들어올 길에는 정한 볏짚을 두 귀에 맞추어서 쪽 깔아놓았다.
탁자 위에는 들꽃을 꺾어서 한 병을 꽂아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신랑 신부의 예물이 놓였다― 예물은 호미와 낫이었다.
구경꾼은 차일 안팎으로 꽉 들어찼다. 기다리던 신랑 신부가 초례청에 들어섰다. 이때 쇠잡이들은 농악을 쳤다. 피아노 대신이다. 신랑은 베 고의 적삼에 두루마기를 입었다. 신부도 모시 치마적삼을 수수하게 입었을 뿐이다. 그는 분도 바르지 않았다… 들러리로는 신랑 편에는 원식이가 서고 신부편에는 일룡이 부인이 섰다-
풍악 소리에 그들이 들어서자 이 예식의 주례인 건성이는 지금부터 신랑 박완득과 신부 김음전의 결혼식을 거행하겠다는 개회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우선 종래의 강제혼인과 매매혼인과 정략혼인의 옳지 못함을 통론한 후 혼인이란 진실하게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결합할 것이란 뜻을 말하고 또한 예식에 있어서도 가난한 농민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거행되는 혼인 예식이 도리어 감당치 못할 큰 빚을 지게 하여 일가파산하는 비극을 낳게 한다.
혼인을 잘 지냈다는 것은 결코 음식을 많이 차렸다거나 기구가 놀라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오직 두 사람의 만남이 행복하야 않느냐 한데 달린 것이다. 그러므로 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초례를 지낸다 할지라도 그 혼인이 두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진실한 혼인이라면 그것을 잘 지낸 혼인이라 할 것이지 비단 치마자락으로 눈물을 씻는 혼인은 그것이 혼인이 아니라 죄악이라고 열렬히 부르짖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도 앞으로는 재래의 모든 허위와 허식을 버리고 이 두 신랑 신부같이 간단한 예식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끝을 맺은 후에-
"지금은 신랑 신부가 이 결혼을 맹세하는 의미로서 예물을 주고 받겠습니다. 그런데 농민에게 제일 귀중한 게 무엇이냐 하면 호미와 낫과 같은 농구올시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는 도모지 당치도 않은 금가락지니 보석반지니 하는 그런 허영(虛榮)을 바리고 우리와 가장 친한 호미와 낫을 우리의 결혼 예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럼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청중에서는 좋소 좋소 하는 소리가 일어난다.)"
"신랑 신부는 예물을 교환하겠습니다."
건성이가 이렇게 선언하자-
신랑은 신부의 바른 팔에 호미를 걸쳐주고 신부는 신랑의 왼편 어깨에 낫을 얹어주었다. 낫은 날이 서지 않았다.-
이것으로써 결혼식은 마치고 말았다. 신랑신부가 나갈 때에 쇠잡이들은 또 농악을 쳤다. 군중 속에서는 나가는 신랑 신부에게 '여물'을 끼얹어주었다.
식이 파하자 그들은 다시 잔치를 베풀었다. 원래 백중놀음으로 준비된 음식과 혼인집에서 따로 준비한 음식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배를 두들기며 한바탕 잘 먹을 수 있었다. 술, 떡, 고기, 국수, 과실 모든 것이 골고루 있었다. 그때 그들은 진종일 잘 놀았다. 농기를 내다 꽂고 풍물을 치며 뛰놀기도 하였다. 신랑을 달아 먹는다고 헹가래질도 치고 춤도 추고 소리도하고― 이리하여 백중놀음과 결혼식은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완득이는 내년부터 음전이 집으로 오기로 하고 올 일 년은 그대로 장접장의 집에서 머슴을 살기로 하였다.
그들 부부는 참으로 결혼 예물인 호미와 낫을 귀중히 여기었다―
홍 수 (이기영) - 8. 백중날 치른 결혼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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