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잔인한 운명은 이렇게 인간을 조롱하곤 한다. 우리가 평소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움켜쥐고 있던 자존심 따위는 어느 한 순간 전혀 무용지물이란 것이 드러나고 만다. 하기야 이렇게 삶의 한 순간, 눈 깜짝할 새에 우리를 후려 갈기고 지나가는 그 진실이 미래의 어느날에는 또 남김없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삶 전체가 한 순간에 다시 보인다는 그런 얘기도 있던데...
다시 읽어보니 끔찍한 생각도 든다. 식민지 시대의 암울한 삶, 그 끈끈한 냄새를 피할 수 없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겐 그런 냄새는 아예 인연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런 냄새를 모르고 평생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우연일 뿐이다. 아내를 박대하는 김 첨지의 모습... 요새 같으면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남자겠지만, 그래도 그 애정은 더 진한 것일 수도 있다.
[작가 소개]
현 진 건(玄鎭健, 1900-1943) : 소설가. 한국 사실주의 단편소설의 기틀을 다진 작가이다. 본관은 연주(延州). 아호는 빙허(憑虛). 1920년대 전반기에는 자전적 요소가 강한 개인적 체험소설인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성(性)의 문제와 애정문제를 다룬 <B사감과 러브레터> <새빨간 웃음> 등이 있으며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피아노> <우편국에서> <불> <고향> 등 세태에의 관심과 식민지 상황하의 현실인식이 두드러진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운수 좋은 날>도 이러한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1930년대 이후에는 역사의식과 예언주의적 문학관에 근거한 역사소설 중심의 <무영탑> <흑치상지(黑齒常之)> <선화공주> 등 장편소설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