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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킨 이후, 민족운동이 침체에 빠지고 국내에서도 공산주의 사상이 풍미하던 시기에 농촌 계몽 운동과 인도주의를 뼈대로 쓴 작품이다. 1932년 4월에서 1933년 9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으며 작자의 계몽사상이 가장 짙게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광수의 계몽주의 문학은 이 작품으로 끝을 맺고 이후부터는 현실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범종교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작품 세계라 할 수 있는 <사랑> <무명> <세조대왕> <원효대사> 등 작품이 등장하게 된다. 지금 읽어보면 어딘지 신파조의 분위기가 강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통찰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당시 이광수를 비롯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이 고민했던 숙제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무게를 갖고 있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작가 소개]

이광수(李光洙, 1892-1950) : 한국의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사상가.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계몽주의, 민족주의 문학가 및 사상가로 한국 근대 정신사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본관은 전주. 아명은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고주(孤舟)·외배 등.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유랑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소년 시절에는 동학 활동을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에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었으나 일제 말엽에는 친일 행각으로 논란을 빚었으며 이 때문에 해방 이후 반민특위 활동에 따른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서울에서 인민군에 납치돼 그 해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랑> <흙> 등 장편소설이 많으며 작품에는 초기에는 계몽주의적 성향이 강했으나 차츰 불교와 톨스토이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야학을 마치고 돌아온 허숭(許崇)은 두 팔을 깍지를 껴서 베개 삼아 베고 행리에 기대어서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가만히 누워 있느라면, 모기들이 앵앵하고 모깃불 연기를 피하여 돌아가는 소리가 멀었다 가까왔다 하는 것이 들린다. 인제는 음력으로 칠월에도 백중을 지나서, 밤만 들면 바람결이 선들선들하는 맛이 난다.

 

이태 동안이나 서울 장안에만 있어서 모기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허숭은 고향에서 모기 소리를 다시 듣는 것도 대단히 반가왔다.

 

"어쩌면 유순이가 그렇게 크고 어여뻐졌을까."

 

하고 숭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럴 때에 숭의 앞에는 유순(兪順)의 모양이 나타났다. 그는 통통하다고 할 만하게 몸이 실한 여자였다. 낯은 자외선 강한 산 지방의 볕에 그을러서 가무스름한 빛이 도나 눈과 코와 입이 다 분명하고, 그리고도 부드러운 맛을 잃지 아니한 처녀다. 달빛에 볼 때에는 그 얼굴이 달빛 그것인 것같이 아름다왔다.

 

흠을 잡자면 그의 손이 거치른 것이겠다. 김을 매고 물일을 하니, 도회여자의 손과 같이 옥가루로 빚은 듯한 맛은 있을 수 없다. 뻣뻣한 베 치마에 베 적삼, 그 여자는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그는 맨발이었다. 발등이 까맣게 볕에 그을렀다. 그의 손도, 팔목도, 목도, 짧은 고쟁이와, 더 짧은 치마 밑으로 보이는 종아리도 다 볕에 그을렀다. 마치 여름의 햇볕이 그의 아름답고 건장한 살을 탐내어, 빈틈만 있으면 가서 입을 맞추려는 것 같았다.

 

허숭은 유순을 정선(貞善)과 비겨 보았다. 정선은 숭이가 가정교사로 있는 윤 참판집 딸이다. 정선은 몸이 갸날프고 살이 투명할 듯이 희고, 더구나 손은 쥐면 으스러져 버릴 것같이 작고 말랑말랑한 여자다. 그는 숙명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투는 미인이었다.

 

물론 정선은 숭에게는 달 가운데 사는 항아(姮娥)다. 시골, 부모도 재산도 없는 가난뱅이 청년인 숭, 윤 참판집 줄행랑에 한 방을 얻어서 보통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 숭으로서는 정선 같은 양반집, 부자집, 미인 외딸은 우러러보기에도 벅찬 처지였다.

 

그러나 유순이 같은 여자면 숭의 손에 들 수도 있다. 지금 처지로는 유순의 부모도 숭이에게 딸을 주기를 주저할 것이지마는, 그래도 학교나 졸업하고 나면 혹시 숭을 사윗감으로 자격을 붙일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숭은 자기 신세를 생각하여 한숨을 쉬었다.

 

숭은 이 동네에서는 잘 산다는 말을 듣던 집이었다. 숭의 아버지 겸(謙)은 옛날 평양 대성학교(大成學校) 출신으로 신민회 사건이니, 북간도 사건이니, 서간도 사건이니, 만세 사건이니 하는 형사 사건에는 빼놓지 않고 걸려들어서, 헌병대 시절부터, 경무총감부 시절부터 붙들려 다니기를 시작하여 징역을 진 것만이 전후 팔 년, 경찰서와 검사국에 들어 있던 날짜를 모두 합하면 십여 년이나 죄수 생활을 하였다.

 

이렇게 기나긴 세월에 옥바라지를 하고 나니, 가산이 말이 못되어 숭의 학비커녕 집을 보존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겸은 남은 논마지기, 밭날갈이를 온통 금융조합에 갖다 바치고, 평생에 해보지도 못한 장사를 한다고 돌아다니다가 저당한 토지만 잃어버리고, 홧김에 술만 먹다가 어디서 장질부사를 묻혀서 자기도 죽고 아내도 죽고 숭의 누이동생 하나도 죽고, 숭이 한 몸뚱이만 댕그렇게 남은 것이다.

 

현재의 숭에게는 집 한간 없다. 지금 숭이 잠시 와서 머무는 집은 숭의 당숙 성(誠)의 집이다.

 

유순의 집은 이 집에서 등성이 하나 넘어가서 있다. 순의 부모는 순전한 농부다. 순의 아버지 진희(鎭?)는 아직도 젊었거니와 그 늙은 조부 유 초시는 글을 공부하여 초시까지 한 사람이다. 원래 이 동네는 수백 년래로 허씨가 살고, 등성이 너머 동네에는 유씨가 살았는데, 허씨나 유씨가 다 이 시골에서는 과거장이나 하고 기와집 간이나 쓰고 살아왔다. 그러나 유 초시의 말을 빌면,

 

"갑오경장 이후에야 글이나 양반이 다 쓸데 있나"

 

하여 이 두 동네도 점점 쇠퇴하여서, 용감한 사람들은 모두 관을 벗어버리고 수건을 동이고, 책과 붓대를 집어던지고 호미를 들고 들로 나갔다. 그러나 그 중에는 여전히 옛 영화를 생각하여 관을 쓰고 꿇어앉는 이도 한둘은 있고, 또 숭의 아버지 모양으로 <개화에 나서서>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다니다가 옥살이를 하는 이도 이삼 인은 있었다. 이를테면 유순의 집은 약아서 제 실속을 하는 패의 대표요, 허숭의 집은 세상 일을 합네, 학교를 다닙네 하고 날뛰는 패의 대표였다.

 

예정한 일주일의 야학이 끝나고 내일은 허숭이가 서울로 올라간다는 마지막 날 야학에, 허숭은 더욱 정성을 다하여 남은 교재를 가르치고, 또 강연 비슷하게 여러 가지 권유를 하였다.

 

야학은 부인반과 남자반 둘로 갈렸었다. 부인반에는 숭의 아주머니, 할머니뻘 되는 사람도 있고, 숭의 누이뻘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숭이가 설명하는 위생 이야기, 땅이 둥글다는 이야기, 해가 도는 게 아니라 땅이 돌아간다는 이야기, 비행기, 전기등 이야기, 무엇이 비가 되고 무엇이 눈이 되는 이야기 같은 것을 다 신기하게 들었다.

 

"그 원 그럴까."

 

하고 혹 의심내는 이도 있었으나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남자반은 이와 달라서 질문하는 이도 있고 반대하는 이도 있었다.

 

"대관절 어째서 차차 세상이 살아가기가 어려워만 지나."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도 있었다.

 

"요새는 대학교 조립(졸업)을 하고도 직업을 못 얻는대."

 

하는 세상 소식 잘 아는 이도 있었다.

 

"너도 그만큼 공부했으면 인제는 장가도 들고 살림을 시작해야지, 공부만 하면 무엇하니"?

 

하고 할아버지뻘, 아저씨뻘 되는 이가 말을 듣다 말고 교사인 숭에게 뚱딴지 훈계를 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이 허씨들인 중에 간혹 등 너머 유씨들도 와서 섞였다. 여자반에도 그러하여서 유순이도 이렇게 와 섞인 이 중의 하나였다.

 

유순이는 보통학교를 졸업했지마는 야학에 출석하였다. 그는 가장 정성있게 듣는 이 중의 하나였다.

 

내일이면 떠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허숭은 자연 서운한 맘이 생겼다. 숭은 이야기하는 중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순을 바라보았다. 순의 눈도 숭의 눈과 가끔 마주쳤다. 숭은 이야기를 끝내기가 싫었다.

 


 

남녀반의 야학이 끝난 뒤에, 늙은 느티나무 밑에 남자들만 수십 명이 모여서 숭의 송별연을 열었다. 참외도 사오고 술도 사오고 옥수수도 삶아오고, 모두 둘러앉아서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너 이번 가면 또 언제 올래"?

 

"글쎄요. 내년에나 오지요."

 

"조립(졸업)이 언제야"?

 

"내후년입니다."

 

"법과라지"?

 

"네."

 

"그거 조립(졸업)하문 경찰서장이나 되나"?

 

"……"

 

"군 서기도 되겠지. 군수는 얼른 안될걸."

 

"변호사를 하면 돈을 잘 버나보더라마는-그건 또 시험이 있다지"?

 

"네."

 

"걔야 재주가 있으니까 변호사도 되겠지."

 

"변호사는 사뭇 돈을 번대."

 

"돈벌이는 의사가 제일이야."

 

"큰 돈이야 그저 금광을 하나 얻어야."

 

"조선에야 돈이 있어야 벌지. 물 마른 것 모양으로 바짝 마른걸."

 

"우리네같이 땅이나 파먹는 놈이야, 십원짜리 지전 한 장 손에 쥐어볼 수 있다구!"

 

"자, 채미(참외) 한개 더 먹지."

 

"아암, 밤이 꽤 깊었는걸."

 

이러한 회화였다. 숭은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혹은 낯도 후끈후끈하고, 혹은 한숨도 쉬었다. 그러나 숭은 이 무지한 듯한 사람들이 한없이 정답고 귀중하였다. 그들의 말속에는 한없는 호의가 있는 듯하였다. 저 인사성 있고, 눈치 밝고 쏙쏙 뺀 도회사람들보다 도리어 사람다움이 많은 것이 반가왔다.

 

이 밤에 숭은 협동조합 이야기를 하여 다수의 찬성을 얻었으나, 조직하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새벽차를 타려고 가방과 담요를 들고 당숙의 집을 떠나, 길가 풀숲에 우는 벌레 소리를 들으며 정거장을 향해 나갈 때에, 무너미로 갈리는 길에서 숭은 깜짝 놀랐다.

 

"내야요."

 

하고 나서는 유순을 본 까닭이었다. 숭은 하도 의외여서 깜짝 놀랐다가 부지불식간에 유순의 손을 잡았다.

 

"언제 와요"?

 

"내년 여름에 올께."

 

하고 숭은 자기의 가슴에 이마를 대고 기대어 선 유순의 머리를 쓸었다.

 

떠날 때에 순은 숭에게 삶은 옥수수 네 자루를 싼 수건을 주었다.

 

숭이가 탄 기차가 새벽 남빛 어둠속으로 씩씩거리고 지나 무너미 모루를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순은 손을 내어두르며 눈물을 지었다.

 

숭은 무너미 모루를 돌아갈 때에 행여나 순이가 보일까 하고 승강대에 나와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새벽빛은 반 마일이나 떨어져 산 그늘에 서 있는 처녀의 몸을 숭의 눈에서 감추었다. 숭은 순이가 섰으리라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하여 손을 두르며,

 

"순이 내 내년 여름에 올께."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차는 살여울의 철교를 건넌다. <살여울!> 어떻게 정다운 이름이냐, 하고 숭은 철교 밑으로 흐르는 물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여름 밤을 머금은 검은 물. 눈이 그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초가을의 특색인 골안개가 뽀얗게 엉긴 것이 보인다.

 

촉촉하게 젖은 땅 위에, 들릴락말락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물 위에 꿈같이 덮인 뽀얀 안개,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 가운데 가장 인정다운 아름다움의 하나다.

 

살여울의 좌우 옆은 살여울 물을 대어서 된 논이다. 한 마지기에 넉 섬씩이나 나는 논이다. 본래는 그것은 풀이 무성한 벌판이었을 것이다. 혹은 하늘이 아니 보이는 수풀이었을 것이다.

 

사슴과 여우가 뛰노는 처녀림 속으로 살여울 맑은 물이 흘렀을 것이다. 지금도 흰 하늘이 고개라는 고개가 있지 아니하냐. 그 고개를 나서서야 비로소 흰 하늘을 바라보았다는 말이라고, 숭은 어려서 그 아버지에게 설명 받은 일이 있었다.

 

그것을 숭의 조상들이-아마 순의 조상들과 함께 개척한 것이다. 그 나무들을 다 찍어내고 나무뿌리를 파내고 살여울 물을 대느라고 보를 만들고, 그리고 그야말로 피와 땀을 섞어서 갈아놓은 것이다. 그 논에서 나는 쌀을 먹고, 숭의 조상과 순의 조상이 대대로 살고 즐기던 것이다. 순과 숭의 뼈나 살이나 피나 다 이 흙에서, 조상의 피땀을 섞은 이 흙에서 움 돋고 자라고 피어난 꽃이 아니냐.

 

그러나 이 논들은, 이제는 대부분이 숭이나 순의 집 것이 아니다. 무슨 회사, 무슨 은행, 무슨 조합, 무슨 농장으로 다 들어가고 말았다. 이제는 숭의 고향인 살여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뿌리를 끊긴 풀과 같이 되었다. 골안개 속에서 한가하게 평화롭게 울려오던 닭, 개, 짐승, 마소의 소리도 금년에 훨씬 줄었다. 수효만 준 것이 아니라, 그 소리에서는 한가함과 평화로움이 떠나갔다. 괴롭고 고달프고 원망스러웠다.

 

차가 가는 대로, 숭은 가고 오는 산과 들과 촌락을 바라보았다. 알을 밴 벼와, 누렇게 고개를 숙인 조와 피와,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는 용사와 같은 수수를 보았다. 새벽 물을 길어 이고 가는 여자들을 보았다. 아침 햇빛이 물 묻은 물동이를 비치어 금빛을 발하였다. 물동이를 인 여자는 한 손으로 물동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쳐내어버리고, 한 손으로는 짧은 적삼 밑으로 나오려는 젖을 가렸다.

 

기차가 우렁차게 달리는 소리를 듣고, 빨강댕이 아이들이 만세를 부르고 내달았다. 긴 장마를 겪은 초가집들은 마치 긴 여름 일을 치른 농부들 모양으로 기운이 빠져서 축 늘어졌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속이 썩은 모양으로 지붕의 이엉도 꺼멓게 썩었다. 그 집들 속에는 가난에 부대끼고, 벼룩 빈대에 부대끼고, 빚에 졸리고, 병에 졸리고, 희망을 빼앗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뭉개는 것이다.

 

정거장에를 왔다. 역장과 차장과 역부와 순사의 모자의 붉은 테와, 면장인 듯한 파나마 쓴 신사와, 서울로 가는 듯싶은 바스켓 든 여학생과, 그의 부모인 듯싶은 주름잡힌 내외와….

 

호각 소리가 나고 고동 소리가 나고….

 

큰 도회와 작은 정거장을 지나자, 숭은 차츰 배고픔을 깨달았다. 순이가 싸다 준 옥수수를 꺼내었다. 두 자루를 뜯어먹고는 좀 창피한 듯하여 도로 싸 놓았다.

 


 

 

경성역에 내린 때에는 숭은 꿈에서 깬 것 같았다. 바쁜 택시의 떼, 미친년 같은 버스, 장난감 같은 인력거, 얼음 가루를 팔팔 날리는 싸늘한 사람들.

 

숭은 전차를 타고 삼청동 윤 참판의 집으로 들어왔다. 방에 짐을 놓고 큰사랑에 가니, 윤 참판은 없고 웬 갓 쓴 사람만이 이삼 인이 앉았다. 작은사랑에 가니 윤 참판의 맏아들 인선(仁善)도 없다. 돌아나오다가 찌개 뚝배기를 든 어멈을 하나 만났다.

 

"학생 서방님 오셨어요"?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맏서방님이 대단히 편찮으시답니다. 영감마님도 안에 계세요."

 

한다.

 

원체 일개 가정교사, 시골 학생 하나가 다녀왔기로 윤 참판집에 대하여서는 이웃집 고양이 하나 들어온 이상의 중요성이 있지 아니할 것이다. 더구나 맏아들 인선이 중병으로 죽을 지 살 지 모르는 이 판에, 온 집안이 난가가 된 이 판에 허숭이 따위가 왔대야 아랑곳할 사람은 밥 갖다주는 어멈 하나밖에 없다.

 

허숭은 어멈을 통하여 인선의 병 증상을 대개 들었다. 원래 인선은 체질이 허약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인선이가 난 지 몇달이 아니되어서 폐병으로 죽었다. 본래 폐병이 있는 이가 아이를 낳고는 죽은 것이었다. 인선은 그 어머니의 체질을 받아 살빛이 희고, 피부가 엷고, 여자같이 부드럽고, 가슴이 좁고, 몸이 가늘고 길었다. 미남자는 미남자이지마는 퍽 약하였다. 그러나 재주는 있어서 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았다.

 

인선과는 반대로, 그 아내는 몸이 건강하고 또 육감적인 여자였다. 숭도 가끔 그를 보았거니와 눈웃음을 치고 교태가 있는 여자였다. 인선의 친구들은 인선이가 아내 때문에 몸이 늘 허약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던 것이 인선이가 금년에 석왕사에 피서를 갔다가 설사병을 얻어가지고 돌아와서부터는 신열이 나고, 소화 불량이 되고 잠을 못 잤다. 윤 참판은 이것을 성화하여 의사도 불러대고 한방의도 불러대었으나 병은 낫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약 일주일 전에 어느 유명하다는(지리산에서 이십 년 공부했다는) 한방의를 불러다가 보인 결과, 녹용과 무슨 뽕나무 뿌리 같은 약과를 달여 먹였다. 이것을 먹고 병자는 전신이 뻘겋게 달고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하고 웃고 날뛰었다. 그러기를 일주야나 한 뒤에 의사가 와서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여서 잠이 들었으나, 그로부터 영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다고 한다.

 

지금도 사랑에는 갓 쓰고 때묻은 두루마기 입은 무슨 진사, 무슨 사과 하는 한방의가 이삼 인이나 모여앉아서, 서로 금목수화토 오행을 토론하고 갑을병정의 육갑을 주장하여 병인 머리 둘 방향을 날을 따라 고치고, 약 달이는 물을, 혹은 동쪽에서, 혹은 서쪽에서 방위를 가리어 길어오게 하고, 혹은 약물을 붓는 시간을 묘시니 진시니 하여 큰 문제나 되는 듯이 논쟁을 하였다.

 

약을 달일 때에도 제가 처방한 것은 제가 지키고 앉아서 달이고, 그 곁에는 심부름하는 계집애 종이 시중들고 섰었다. 갓 쓴 의원은 그 계집애더러 담배를 붙여들이라고 연해 명령하였다.

 

인선은 윤 참판의 맏아들일 뿐더러 어려서 어미 잃은 아들이요, 또 허약한 아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맘에 늘 두었다. 더구나 윤 참판이 나이 환갑을 지나면서부터는 재산에 관한 사무, 가사에 관한 사무를 거의 다 인선에게 맡기고, 자기는 다만 최고 권위자로 비토권만 가지고 있었다. 인선도 다른 부자집 아들 모양으로 허랑방탕하지 않고 적어도 돈 아낄 줄을 알았다. 윤 참판에게는 그 아들의 돈 아낄 줄 아는 것이 가장 기쁘고 믿음성 있는 일이었다.

 

이러하던 인선이가 앓는 것을 보고는, 윤 참판은 화를 내어 조석도 잘 아니 먹고 담배와 술만 마시었다.

 

허숭이가 돌아온 이튿날 아침에, 큰사랑에 가서 윤 참판을 만나 절을 하였다. 윤 참판은,

 

"오, 댕겨왔냐."

 

한마디를 하고는 돌아앉은 갓 쓴 의원들에게,

 

"어디 그 약이 효험이 있나."

 

하고 화를 내었다.

 

또 의원들간에는 상초가 어떻고 하초가 어떻고, 명문이 어떻고 수기니 화기니 하는, 말하는 자기들도 잘 알지 못하는 토론이 시작되었다.

 

마루의 약탕관에서는 꼬르륵꼬르륵하는 소리가 나고, 덮은 종이를 통하여 야릇한 향기를 가진 김이 올랐다. 날은 맑고 더웠다.

 


 

 

인삼도 녹용도 쓸데없이, 허숭이가 온 지 닷새 만의 새벽에 인선은 마침내 죽어버렸다. 인선이가 위태하단 말을 듣고 초저녁부터 친척들이 모여들어서 안팎이 웅성웅성하였다. 그 중에는 참판의 삼종형이요, 사회에 명망이 높은 한은(漢隱) 선생이라고 세상이 일컫는 이도 오고, 또 죽은 이의 재종 삼종 되는, 혹은 일본 유학도 하고, 혹은 구미 유학도 한 젊은이들도 오고, 또 숭이 알지 못하는 사내들과 부인들도 왔다.

 

또 허숭과는 고등보통학교 선배 동창이요, 지금 경성제대 법과에 다니는 김갑진(金甲鎭)이라는 학생도 왔다. 갑진은 칠조약 때에 관계 있어 남작을 받은 김남규(金南圭)의 아들로서 보통학교 시대부터 교만한 수재로 이름이 높았다. 다만 그 아버지 남규가 주색과 투기사업으로 돈을 다 깝살리고, 마침내는 파산을 당하고 또 사기로 몰려 불기소는 되었으나, 남작 예우는 정지되고 죽었기 때문에 갑진은 가난하고 또 습작(襲爵)도 못하였을 뿐이다. 그는 아버지와 윤 참판과 막역한 친구이던 인연으로 윤 참판이 학비를 대어서 지금까지 공부를 시키고, 그러한 까닭으로 마치 친척이나 다름없이 세배 때나 기타 무슨 일이 있을 때에는 윤 참판 집안에도 출입하였다.

 

인선이가 죽은 뒤로, 사람들의 시선-부러워하는 듯한 시선은 윤 참판의 딸 정선에게로 쏠렸다.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정선의 모양은 더욱 아름다움을 더한 듯하였다.

 

정선은 윤 참판의 둘째 아내의 몸에서 난 딸이다. 정선의 어머니는 윤 참판이 전라감사로 갔을 때에 도내에 제일 부호라는 말을 듣던 남원 김 승지의 딸에게 장가들어 얻은 아내로, 인물이 아름답기로, 재산을 많이 가져오기로 유명한 부인이다. 그때 서울에서는 윤 참판이 돈을 탐내어서 시골 상놈의 딸에게 장가든 것이라고 비웃었거니와, 그 비웃음은 사실에 가까왔다.

 

이 김씨 부인은 만석을 가져왔다고도 하고, 오천 석을 가져왔다고도 하거니와, 어쨌든 윤 참판이 전라감사 이태에 약 만석의 재산이 붙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 중에는 뇌물 받은 것, 학정한 것도 있겠지마는, 적어도 그 중에 삼분지 이는 김씨 부인이 가지고 온 것이었다.

 

김씨 부인에게 장가를 듦으로, 또는 전라감사를 다녀옴으로부터 윤 참판은 일약 장안에서 부명을 듣게 되었고, 세상이 바뀌고 호남 철도가 개통됨으로부터는 곡가와 지가가 몇갑절을 올라서, 윤 참판의 재산은 무섭게 늘었다.

 

김씨 부인은 그러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놓고 아직 사십이 다 못되어서 죽었다. 아들은 얼마 아니하여 죽고, 그의 유일한 혈육으로 남은 것이 정선이다.

 

정선은 그 모습이 천연 그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키가 호리호리하고 살이 희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죽은 오라버니와 같이 허약한 빛이 없고, 부드러운 중에도 단단한 맛이 있었다. 코가 너무 오똑하고 눈에 젖은 빛을 띠어 여염집 처녀로는 너무 애교가 있는 것이 흠이면 흠이랄까.

 

정선은 숙명에서도 두어 번 수석을 한 일이 있고, 이화 전문학교 음악과에 들어간 뒤에도 미인, 수재의 평이 높다. 천만 장자요, 양반의 따님이었다, 미인이었다, 수재였다. 그 어머니가 친정에서 가지고 온 재산의, 적어도 한부분은 상속할 수 있다는 정론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들 가진 사람, 재주 있는 청년의 시선이 그리로 모일 것은 물론인데다가 이제 윤 참판의 맏아들 인선이 죽으니, 윤 참판의 평소의 성미로 보아서 이 딸의 남편이 될 사위가 윤 참판의 작은아들 예선이 자랄 때까지 윤 참판 집에 채를 잡을 것이 분명한 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정선의 몸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가 이러한 정선의 남편이 되는 행운의 제비를 뽑을 것인가-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이 중대 문제였다.

 

아들이 운명하는 것을 본 윤 참판은 사랑으로 뛰어나와서, 갓 쓴 의원이며 음양객들을 모두 몰아내었다.

 

"이놈들, 아무것도 모르고 내 아들 죽인 놈들!"

 

하고 호령하는 서슬에, 갓 쓴 무리들은 혼이 나서 쫓겨나갔다. 나가다가 한 사람이 돌아와서,

 

"집으로 갈 노자나 주시지요."

 

하고 애걸하였으나 윤 참판은,

 

"저놈들이 또 기어들어와! 네 저놈들 몰아내어라.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서, 저놈들 깡그리 묶어가게 하여라."

 

하는 바람에 다시 입도 벙끗 못하고 다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윤 참판은 화로에 놓인 약탕관을 집어 던졌다. 약탕관은 사랑 마당에 끓는 검은 물을 토하며 데굴데굴 굴렀다.

 

문 뒤에 붙어 섰던 허숭은 윤 참판의 성난 것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윤 참판의 앞에 나서며,

 

"무어라고 여쭐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조상하는 인사를 하였다.

 

"응, 인선이 죽었어."

 

하고 윤 참판은 허숭을 바라보았다.

 

허숭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그 귀신 같은 놈들 잘 내쫓으셨습니다."

 

하고 안에서 나오는 것은 김갑진이었다. 갑진은 안에서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이러한 때에도, 그는 J자 붙은 검은 세루 대학 정복을 입고 손에 <大學>이라는 모장 붙인 사각모자를 들기를 잊지 아니하였다.

 

"인선이가 죽었다."

 

하고 윤 참판은 갑진을 보고도 같은 소리를 하였다.

 

"글쎄올시다. 그런 변고가 없습니다. 그 귀신 같은 놈들이 독약을 먹여서 그랬습니다. 애초에 제 말씀대로 입원을 시켰더면 이런 일은 없는 것을 그랬습니다. 그런 귀신 같은 놈들이 사람이나 잡지 무엇을 압니까."

 

하고 갑진은 모든것을 다 아는 듯이 단정적으로, 훈계적으로 말을 한다. 안하무인한 그의 성격을 발로한다.

 

"왜 의사는 안 보였다든"?

 

하고 윤 참판은 갑진의 말에 항변한다.

 

"의사놈들은 무얼 안다더냐. 돈이나 뺏으려 들지."

 

"애초에 조선 의사를 부르시기가 잘못이지요. 그깐 놈들, 조선놈들이 무얼 압니까. 요보놈들이 무얼 알아요? 등촌 박사나 이등 박사 같은 이를 청해보셔야지요. 생사람을 때려잡았습니다."

 

하고 갑진은 여전히 호기를 부린다.

 

윤 참판은 갑진을 한번 흘겨보고 일어나서, 무어라고 누구를 부르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허숭은 차마 갑진의 말을 들을 수가 없어서,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하고 갑진을 나무랐다.

 

"왜? 자네 따위 사립학교 부스러기나 다니는 놈들은 가장 애국자인 체하고, 흥, 그런 보성전문학교 교수 따위가 무얼 알어? 대학에 오면 일년급에도 붙지도 못할 것들이. 자네도 그런 학교에나 댕기려거든 남의 집 행랑 구석에서 식은 밥이나 죽이지 말고, 가서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이나 파. 괜히시리 아니꼽게 놀고 먹을 궁리 말고…."

 

하고는 입을 삐죽, 고개를 끄덕하고 나가버린다. 아마 밤을 새웠으니까 졸려서 어디로 자러 가는 모양이었다.

 

허숭은 그만한 소리는 갑진에게서 밤낮 듣는 것이니까 별로 노엽게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서울사람, 시골놈, 양반, 상놈이 아직도 남았구나"하는 것을 한번 더 생각하고 한숨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허숭의 마음은 자못 편안하지 못하였다. "행랑 구석에서 남의 집 식은 밥이나 죽이고"하는 것이나, "아니꼽게 놀고 먹어 보겠다고" 하는 것이나, "조상 적부터 파먹던 땅이나 파!"하는 것이나, 갑진의 이런 말들은 갑진이가 생각하고 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그의 경멸적인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허숭의 가슴을 찌르는 바가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파기가 싫어서 아니꼽게 놀고 먹어 보겠다고 시골 남녀 학생들이 서울로 모여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선조 대대로 피땀흘려 갈아오던 논과 밭과 산-그 속에서는 땀만 뿌리면 밥과 옷과 채소와 모든 생명의 필수품이 다 나오는 것이다-을, 혹은 고리대금에 저당을 잡히고, 혹은 팔고 해서까지 서울로 공부하러 오는 학생이나, 자녀를 보내는 부모나, 그 유일한 동기는 땅을 파지 아니하고 놀고 먹자는 것이다.

 

얼굴이 검고 손이 크고 살이 거칠고 발도 크고 눈이 유순하고 몸이 왁살스러운, 대대로 농촌의 자연에서 근육 노동하던 집 자식이 분명한 청년 남녀가, 몸에 잘 어울리지 아니하는 도회식 옷을 입고 도회의 거리로 돌아다니는 꼴-아무리 제깐에는 도회식으로 차린다고 값진 옷을 입더라도, 원 도회사람의 눈에는<시골 무지렁이, 시골뜨기>하는 빛이 보여 골계(滑稽)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그러한 청년 남녀들이 땅을 팔아가지고, 부모는 굶기면서 종로로, 동아, 삼월, 정자옥으로 카페로, 피땀 묻은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일종의 비참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지 아니하냐.

 

그렇게까지 해서 전문학교나 대학을 마친다 하자. 그리고는 무엇을 하여 먹나. 놀고 먹어보자던 소망도, 벼슬깨나, 회사원, 은행원이나 해먹자던 소망도 이 직업난에 다 달하지 못하고, 얻은 것이 졸업장 한 장과 고등 소비생활의 습관과 욕망과, 꽤 다수의 결핵병, 화류병, 자연속에서 생장한 체질로서 부자연한 도시 생활에 들어오기 때문에 생기는 건강의 장애와-이것뿐이 아닌가. 조상 적부터 해먹던 땅을 파자니 싫고, 직업은 없고, 그야말로 놀고 먹자던 것이 놀고 굶게 되지 아니하는가.

 

"나도 그 중의 하나다"

 

하고 숭은 낙심이 되었다. 도리어 갑진의 기고만장한 어리석음이 유리한 듯도 하였다.

 

안으로는 이따금 세 줄기 여자의 곡성이 흘러나왔다. 하나는 정선의 소리요, 또 하나는 죽은 인선의 아내 조정옥(趙廷玉)의 소리였다. 그리고 하나는 아마 인선의 계모의 소리일 것이다.

 

인선의 아내 조정옥은 재동 조 판서라면 지금도 양반 계급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는 이의 손녀요, 남작 조남익(趙南翊)의 딸이다. 재동여자고보를 졸업하고, 또 기모노에 하까마를 입고 제이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이 왕직 인연으로 동경도 한 일년 다녀온 여자다. 윤 참판집은 아들 복은 없어도 미인 복이 있다는 말을 듣느니만치 정옥은 미인이었다. 다만 위에 말하였거니와 그가 눈웃음을 치고 여염집 부녀로는 너무 애교가 많았다.

 

그리고 그가 받은 교육에는-가정에서는 물론이어니와, 보통학교나 고등보통학교나, 또 고등여학교나-개인주의, 이기주의 이상의 아무 자극과 훈련이 없었다. 애국이라는 말은 원래 조선 교육에서 찾을 수가 없거니와, 전 인류를 사랑하는 그리스도교적 인도주의라든지, 또 삼세 중생을 다 동포로 알고 은인으로 알아 그것을 위하여 제 몸을 희생하여 봉사하는 석가모니의 사상이라든지, 또는 조선사람이니, 조선사람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그들에게 조그마한 기쁨이라도 더하여주기 위하여 네 몸을 희생하라는 말이라든지, 또는 실제적 훈련이라든지는 받아보지 못하고, 기껏 부모에게 효도를 하라든지, 남편을 수종하라든지, 돈을 아껴 쓰라든지, 자녀를 사랑하고 깨끗이 거두라든지, 이러한 개인주의 내지 가족주의 이상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본 일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친정인 조 남작집은 가정이 문란하기로 이름이 있는 집이요, 그의 시집인 윤 참판집도 금전에 대한 규모밖에는 아무 높은, 깊은, 넓은 인생의 이상이 없는 집이요, 정옥이가 교제하는 사람들도 거의 다 정옥과 어슷비슷한 개인주의자, 이기적 향락주의자들이었다.

 

이러한 정옥이가 삼십이 넘을락 말락 해서 남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정옥은 절제를 잃었다. 그의 남편의 숨이 넘어간 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슬픔이 더하였다. 그는 마침내 완전히 절제력을 잃어 통곡하였다. 방바닥을 두드리고 풀어놓은 머리채로 목을 매려들고 한없이 울었다.

 

"언니, 언니."

 

하고 올케를 말리던 정선도 같이 울었다. 집안 어른들이,

 

"아버님 계신데 그렇게 우는 법이 아니다."

 

하고 책망하였으나, 정옥의 귀에는 그런 말이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요새 계집애들은 저래서 병이야. 부모도 모르고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늙은 부인들은 정옥의 흉을 보았다. 그 늙은 부인들은 자기네가 젊었을 때에 지키던 엄격한 풍기가 깨어지는 것을 슬퍼하고, <요새 계집애>들의 방종한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윤 참판의 슬픔은 돈이 구제할 수 있었다. 돈은 윤 참판의 삼위일체신 중에 제 일위다. 첫째가 돈, 둘째가 계집, 세째가 아들. 비록 인선이가 죽었다 하더라도 아직 미거하나마 예선이가 있고, 또 돈이 있지 아니하냐.

 

백만 원 가까운 돈을 주고 받아들이고 지키고 하는 사무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비록 밑에 부리는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사람도 유만부동이다. 은행 통장이나 도장이라도 맡길 만한 사람은 인선이밖에 없었는데, 이 충실한 사무원 하나를 잃은 것이 아들을 잃은 데 지지 않을 큰 타격이었다. 그래도 윤 참판은 아들의 장례가 끝나자 곧 예사대로 생활을 계속하고 사무를 계속하였다. 비록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은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인선의 처 정옥에게는 무엇이 있느냐. 이러한 가정에 자라고 이러한 교육을 받은 여자로, 특별한 천품이나 있기 전에는, 남편과의 재미와 새 옷 만드는 낙밖에 있을 수 없지 아니하냐. 새 옷도 남편을 위하여 입는 것이 주라 하면, 남편 인선을 잃은 정옥에게는 슬픔, 캄캄함, 막막함밖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늙은이의 마누라인 시어머니(학교 시대에는 서너 반 윗동무다)라 하여 속으로 멸시하던 이가 도리어 청승스러운 청상과부라고 자기를 멸시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자식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잊기도 하련마는, 정옥은 일남 일녀를 낳아 다 말도 하기 전에 죽이고, 한번 낙태를 하고는 다시 소생이 없었다.

 

무시로 정옥의 방에서 들리는 울음소리-그것은 차마 못 들을 것이었다. 그를 위로하는 이로는 오직 정선이가 있을 뿐이나, 구월 새학기가 되어서 정선이 마저 낮에는 온종일 학교에 가게 되어서부터는 정옥은 혼자 한없이 울 뿐이었다. 친정이나 가까우면 거기라도 가련마는 그의 친정은 충청남도 예산(禮山)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돌아가고, 간댔자 난봉 오빠와 올케가 있을 뿐이었다.

 

허숭은 그럭저럭 이 집에는 없지 못할 사람이 되었다. 한 가지, 두 가지 심부름을 시켜본 윤 참판은 차차 숭을 신임하게 되어 은행 예금, 서류 정리, 통신을 맡게 되어, 마치 윤 참판의 비서 모양으로 되고 마침내는 가장 비밀한 장부까지도 맡아서 아들이라는 자격을 제하고는 인선이가 보던 사무 전부를 맡게 되었다. 윤 참판은 숭을 줄행랑에서 옮겨서, 인선이가 있던 작은사랑에 있게 하고, 하인들도 차차 <시골 서방님>이니 <학생>이니 하는 칭호를 고쳐서 <작은사랑 서방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숭은 이 복잡한 사무가 공부에는 방해를 줌이 적지 아니하였지마는, 늙은 윤 참판의 신임이 결코 불쾌하지는 아니하였다. 더구나 예전 같으면 인사를 해도 잘 받지도 아니하던 문객들까지도 이제는 제 편에서 먼저 인사를 하는 양이 통쾌도 하였다.

 

하루는 큰사랑에서 윤 참판의 지휘로 장부 정리를 하고 있는데, 김갑진이가 들어왔다.

 

갑진은 일본식으로 윤 참판의 앞에 인사를 하고는,

 

"자네 요새 승격했네그려."

 

하고 장부를 기입하고 앉았는 숭을 보고 빈정거렸다.

 

숭은 여전히 붓을 움직이며 픽 웃었다.

 

"이놈을 반포오(사무장에 해당하는 일본말)로 쓰십시오."

 

하고 갑진은 윤 참판을 향하였다.

 

윤 참판은,

 

"내 비서관이다."

 

하고 빙그레 웃었다.

 

"명년에 내 판사 되거든 재판소 서기로 써줄까."

 

하고 갑진은 허허허허 하고 웃었다.

 

"시골놈이 양반댁 청지기가 되면 명정(銘旌)에 고이고 위패(位牌)에 고이지 않나."

 

하고 갑진은 여전히 빈정대었다.

 

장부가 다 끝난 뒤에 숭은 갑진을 끌고 작은사랑으로 왔다.

 

갑진은 작은사랑에 숭의 모자와 외투가 걸리고 책상이 놓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숭이가 작은사랑으로 승차한 것을 처음 보는 것이다.

 

"이게 자네 방인가"?

 

하고, 갑진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는 진정으로 놀란 것이었다.

 

"아니, 인선군 방이지. 방이 비니까 날더러 같이 있으라시데그려."

 

하고,

 

"왜 섰어? 앉게그려."

 

하고 갑진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갑진은 숭이가 앉으라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숭이가 행랑으로부터 이 방에 올라오게 된 것을 보고 놀란 갑진의 심장은 용이히 진정되지를 아니하였다. 과연 윤 참판의 말마따나 숭은 서기나 청지기가 아니라 <비서관> 대우였다.

 

"그러나 설마-"

 

하고 갑진은 숭을 바라보았다. 숭의 손발이 크고 얼굴이 좀 거친 맛이 있는 것이 비록 시골티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시골사람을 낮추보는 갑진의 눈에도 숭은 당당한 대장부였다.

 

체격뿐 아니라 숭의 두뇌(이것은 갑진이가 심히 존중하는 것이었다)는 고보 시대부터 좋기로 이름이 있었다. 또 숭은 폿볼 선수(이것은 갑진이가 부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이었다)요, 일본말을 썩 잘하였다(이것은 갑진이가 심히 존중하는 것이었다). 만일 숭도 갑진과 대학에를 다닌다 하면, 갑진은 시골 상놈이라는 것밖에는 숭을 낮추볼 아무 조건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갑진의 눈에는 조선사람이 하는 것은(자기가 하는 것을 제하고는) 다 낮게 보이고, 값없이 보였다. 그래서 숭을 사립전문학교 생도라고 보면 자기보다 한없이 떨어지게 보였다.

 


 

 

"그러나 설마, 윤 참판이 허숭이로 정선의 사위야 삼을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갑진은 한번 더 숭을 바라보았다.

 

"나, 김갑진을 두고 누가 정선의 남편이 되랴."

 

이렇게 갑진은 속으로 믿어왔던 것이다. 대학만 졸업하는 날이면 자기는 정선과 혼인을 하고, 그리 되면 정선은 적더라도 천석 하나는 가지고 올 것이요, 또 그리고-이렇게 다 셈쳐놓았던 것이다. 혹시 갑진에게 청혼하는 집이 있더라도 갑진이가,

 

"아, 나는 아직 혼인할 생각 없소. 공부하는 사람이 혼인이 무슨 혼인이오"?

 

하고 뽐낸 것도 다 이러한 배짱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갑진에게 있어서는, 가난한 귀족의 아들인 그에게 있어서는 혼인이란 재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자야 어디는 없느냐. 카페에 가도 수두룩하고 여학생을 후려내더라도 미처 주체를 못할 형편이다. 오직 돈 있는 아내-그것이 갑진에게는 가장 귀하고 또 필요품이었다.

 

그런데 윤 참판집 작은사랑을 독차지한 대장부 허숭을 대할 때에는 갑진의 분홍빛 장래에는 일종의 회색 안개가 낌을 아니 깨달을 수 없었다.

 

"자네 한턱 내야겠네그려."

 

하고 갑진은 소침한 기운을 억지로 회복하여 농치는 웃음을 웃으며 숭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한턱? 줄행랑에서 이리로 승차한 턱인가"?

 

하고 숭도 웃었다.

 

"암, 자네 조상 적에야 윤 참판집에 오면 정하배할 처지 아닌가. 이만하면 자네 고향에 가면 소분(掃墳)해야겠네그려."

 

하는 갑진의 말은 농담을 지나서 일종의 독기를 품었다.

 

"마찬가지지."

 

하고 숭도 농담으로 대꾸를 하였다.

 

"무엇이 마찬가지여"?

 

"우리 조상같이 시골 사는 상놈은 자네네 같은 양반집에 정하배를 하였지마는, 그 대신에 자네네 같은 양반은 호인의 집에 정하배를 하였거든. 지금은 일본사람의 집에 정하배를 하고… 안 그런가."

 

갑진의 얼굴에 떠돌던 빈정거리는 웃음이 사라지고 낯빛은 파랗게 질리려 하였다.

 

"갑진군. 자네는 너무도 양반에 관심을 가지는 모양이야. 지금 우리 조선사람은 모조리 세계적 시골뜨기요 상놈이 아닌가. 그런데 이 조그마한 조선, 몇 명 안되는 조선사람 중에서 양반은 다 무엇이고 상놈은 다 무엇인가. 서울사람은 다 무엇이고 시골사람은 다 무엇인가. 또 관립학교는 다 무엇이고 사립학교는 다 무엇인가. 김갑진이나 허숭이나 다 한 가지 이름밖에 없는 것일세-<조선사람>이라는."

 

"상놈인 걸 어쩌나. 자네 같은 사람은 특별하지만 시골놈은 원체 무지하거든. 내흉하고, 또 시골놈들이란 지방열이 강해서 서울사람이라면 미워하고 배척한단 말야. 안 그런가. ○○학교로 보더라도 교장이 시골놈이니깐으로 교원들도 시골놈이 많거든. ○○은행도 안 그런가. ○○신문사도 안 그런가. 그러니깐으로 시골놈들이 고약한 게지, 우리네 서울사람 탓이 아니란 말야. 그야말로 인식 착오, 자네의 인식 착올세, 인식 착오."

 

하고 갑진의 말은 연설 구조다.

 

"그건 안되는 말야. ○○학교에 시골사람이 많다고 하나, ○○학교에는 서울 사람뿐이 아닌가. ○○은행에는 시골사람이 있던가. ○○신문사에는 대부분이 서울사람이 아닌가. 그러면 그 기관들이 다 서울사람들의 지방열로 나온 기관이란 말인가. 자네 눈에는 시골사람만 눈에 띄우는 게지. 서울사람들만 있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이고, 시골사람이 한두 사람 섞이면 아마 수상하게 보이는 겔세. 아마 옛날부터 조정에는 시골 상놈은 하나도 아니 섞이고, 뉘 집 자식이라고 알 만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다가, 보학에 들지 아니한 시골사람이 하나 옥관자라도 얻어 붙이면 변괴로나 알던 그 인습이 남아 있는 게지.

 

그렇지만 자네 같은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까지 그런 생각을 가져서 쓰겠나. 자네와 나와 같이 친한 경우에야 무슨 말을 하기로 허물이 있겠나마는 시골놈, 상놈 하고 입버릇이 되어 말하면 민족 통일상 불미한 영향을 준단 말야. 자네나 내나, 더구나 자네와 같이 귀족의 혈통을 받은 사람이 나서서, 양반이니 상놈이니 서울놈이니 시골놈이니 하는 걸 단연히 깨뜨리고, 오직 조선사람이라는 한이름 밑에 서로 사랑하도록 힘써야 될 것 아닌가."

 

숭의 말에는 정성과 열이 있었다.

 

갑진은 눈을 멀뚱멀뚱하고 듣고 앉았었다. 숭은 그가 의외에 빈정대지도 않고 듣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그러나 숭의 말이 다 끝난 뒤에 갑진은,

 

"인제 시조 다 했니? 이런 전쑥이. 누굴 보고 강의를 하는 게냐, 훈계를 하는 게냐."

 


 

 

익선동 한 선생이라면 배재학당 계통과 보성전문학교 학생들에게만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내 중등 이상 학교 학생간에는 아는 이가 많았다. 그는 본래 배재고보에 영어 교사로 있다가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와 있게 된 그러면서도 여전히 배재와 이화에 영작문 시간을 맡아보는 한 오십 된 사람이다. 그는 계통적으로 공부한 학력이 없기 때문에 전문학교에도 교수가 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어니와 고등보통학교에서도 교원 자격이 없다. 그래서 월급이 싸다.

 

한 선생의 이름은 민교(民敎)다. 그는 한민교(韓民敎)라는 그 이름이 표시하는 대로, 조선 청년의 교육 지도로 일생의 사업을 삼는 이다. 그는 일찍 동경에서 중학교를 마치고는 정칙영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역사, 정치, 철학 이러한 책을 탐독하였다. 그리고 조선에 와서는 그러한 조선사람이 밟는 경로를 밟아 감옥에도 들어가고, 만주에도 가고, 교사도 되고, 예수교인도 되었다. 그가 줄곧 교사 노릇을 하기는 최근 십년간이다.

 

한 선생의 집은 익선동 꼬불꼬불한 뒷골목에 있는 조그마한 초가집이다. 대문이 한 간, 행랑 겸 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한 간, 안방이 간 반, 건넌방이 한 간, 그런데 웬일인지 마루만은 넓어서 삼 간, 그리고는 광이라고 할 만한 것이 뒷간 아울러 두 간, 그리고 장독대, 손바닥만한 마당, 부엌이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익선동 조그만 초가집이라면 한 선생 집이다.

 

방이 좁고 내객은 많으니까 턱없이 넓은 삼 간 마루에는 당치도 아니한 유리분합을 드렸다. 이 방을 놀러 다니는 학생들은 한 선생네 양실이라고 일컫는다. 딴은 양실이다. 조선식 방은 아니니까 양실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하나씩 기부한 교의가 너덧 개 있다. 혹은 졸업하고 가면서 제가 앉던 교의, 혹은 초전골 고물전에서 사온 교의, 그러니까 둘도 같은 것은 없고 형형색색이다. 나무만으로 된 놈, 무늬 있는 헝겊을 씌운 놈, 가죽으로 된 놈, 그 중의 한 개는 아주 빨간 우단으로 싼 놈까지 있다.

 

선생의 부인은 벌써 백발이 다 된 할머니다. 선생보다 사오 년은 더 늙어 보였다. 가족이라고는 내외밖에는 금년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딸 하나가 있을 뿐이요, 아들은 기미년에 의전에 다니다가 해외로 달아나서 이따금 편지가 있을 뿐이었다.

 

허숭도 물론 이 집에 다니는 학생 중의 하나다. 김갑진도 배재 시대 관계로 가끔 놀러 온다. 이화의 여학생들도 간혹 놀러 온다.

 

하루는 한 선생 집에 만찬회가 열려서 학생이 십여 명이나 모였다. 눈 오는 어느 날, 한 선생네 양실에는 방울만한 난로가 석탄불에 달아서 방이 우럭우럭하고, 난로 뚜껑 위에 놓인 주전자에서 하얀 김이 소리를 지르고 올랐다.

 

부엌에서는 한 선생의 부인이 이웃집 행랑어멈을 임시로 청하여다가 음식을 만들고, 한 선생의 딸 정란(廷蘭)은 들며 나며 심부름을 하고 있다.

 

이때에,

 

"문 열어라."

 

하는 이는 한 선생이다.

 

"아버지."

 

하고 정란은 앞치마로 손을 씻으며 뛰어나간다.

 

"아이, 아버지 외투에 눈 봐요."

 

하고 정란은 하얀 조그만 손으로 한 선생의 외투 가슴과 어깨에 앉은 눈을 떤다.

 

"아직 아무도 안 오셨니"?

 

하고 한 선생은 쿵쿵하고 발에 묻은 눈을 떤다.

 

"어느새에."

 

하고 정란은 아버지의 모자를 받고 신 끈을 끄른다.

 

"내 끄르마."

 

"아녜요. 내 끄를께요."

 

한 선생은 양실에 들어가서 외투를 벗어 정란에게 주고, 정란이가 오늘 손님을 위하여 애써 차려놓은 방을 둘러보고 만족한 듯이 웃었다.

 

정란은 아버지의 책상과 이 양실을 아버지의 뜻에 맞도록 차려놓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알았다. 분합문의 문장은 정란이가 손수 자수한 것이었다. 아직 솜씨가 서투르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는 정성을 담은 것이다. 한 선생은 딸의 그 정성을 잘 알아줄 만한 아버지였다.

 

또 정란은 나무때기 교의에는 수놓은 방석을 만들어 깔았고, 테이블에는 테이블보를 수놓아 깔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책상(이것은 또 집에 어울리지 않게 큰 서양식 데스크였다)에는 잉크병 놓는 쿠션, 팔 짚는 쿠션, 필통 놓는 쿠션, 벼루 놓는 쿠션 등, 큰 것, 작은 것, 귀찮을이만치 많은 쿠션이 있었다. 정란의 생각에는 난로 뚜껑에까지 무엇을 짜서 깔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무지한 난로는 정란이가 정성들여 만든 예술품을 탐내어 집어먹었을 것이다.

 

한 선생은 정란이가 아버지를 위해서 난로 앞에 놓은, 나무때기 팔 놓는 의자에 앉았다. 수척한 한 선생에게는 바깥 날이 추웠던 것이다.

 

"과히 덥지 아니하냐."

 

하고 한 선생은 난로 문을 열어보며, 안방에서 아버지의 조선옷을 내어 아랫목에 깔고 있는 정란에게 물었다.

 

"아녜요. 바로 아까 육십 오 도던데."

 

하고 양실로 뛰어나와서 아버지 책상 위에 놓은 한란계를 본다.

 

"칠십 도야."

 

하고 정란은 웃는다.

 

"건넌방 문을 좀 열어놓아요"?

 

하고 아버지 뜻을 묻는다.

 


 

 

한 선생은 퍽 수척하였다. 광대뼈가 나오고 볼은 들어갔다. 약간 벗어진 머리는 반 넘어 희었다. 오직 그 눈만이 힘있게 빛난다. 본래는 건장한 체격이던 것은 그의 골격에만 남았다. 그는 일생의 고생-가난의 고생, 방랑의 고생, 감옥의 고생, 노심초사의 고생, 교사 노릇의 고생, 청년과 담화하는 데 고생으로 몸은 수척하고, 용모에는 약간 피곤한 빛을 띠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와 일생을 같이한 부인도 일찍 그가 낙심하거나 화를 내거나 성을 내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 그는 언제나 태연하고 천연하였다. 그는 도무지 감정을 움직이는 빛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는 야멸치거나 냉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딸을 사랑하고, 친구와 후배를 사랑하였다. 더구나 그는 조선이란 것을 뜨겁게 사랑하였다. 그의 책상머리 벽에는 조선 지도가 붙고, 책상 위에는 언제든지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같은 조선의 역사나 또는 조선사람의 문집을 놓고 있었다.

 

그는 매일 반드시 단 한 페이지라도 조선에 관한 무엇을 읽는 것으로 규칙을 삼고 있었다.

 

손님들이 모이기를 시작하였다. 손님은 다 학생들이다. 맨 처음 온 이가 경성대학 문과에 다니는 김상철(金相哲)이다. 그는 키가 작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사람이었다. 이어서 경성의전, 세브란스의전, 보성전문, 고등상업, 고등공업 정모와 정복을 입은 학생들이 오고, 이화전문의 여학생이 둘이 왔다. 한 여학생은 미인이라고 할 만하였으나, 한 여학생은 체조 선생이라고 할 만하게 다부지게 생긴 여자였다. 그들은 심순례(沈順禮), 정서분(鄭西芬)이라는 이름이었다.

 

전기가 들어오고 시계 바늘이 여섯시를 가리킬 때에 세비로 입은 두 청년이 왔다. 하나는 키가 후리후리하고 혈색이 좋은, 눈이 어글어글한 서양식 하이칼라 신사요, 하나는 키가 작고 몸이 가냘프고 눈만 몹시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건영(李健永) 박사와 윤명섭이라는 발명가였다.

곰국을 끓이고 갈비와 염통을 굽고 뱅어저냐까지도 부쳐놓았다. 정란은 수놓은 앞치마를 입고 얌전하게 주인 노릇을 하였다.

 

"자, 변변지 않지마는 다들 자시오."

 

하고 한 선생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오래간만에 조선 디너를 먹습니다."

 

하고 미국으로부터 십여 년 만에 새로 돌아온 이건영은 극히 감격한 모양으로 감사하는 인사를 하였다.

 

"미국 계실 때에도 조선음식을 잡수실 기회가 있었어요"?

 

하고 체조 교사같이 생긴 정서분이가 입을 열었다.

 

"예스, 프롬 타임 투 타임(예, 이따금)."

 

하고 이 박사는 분명한 액센트의 영어로 대답을 한다. 그리고는 이어서 조선말로,

 

"서방(캘리포니아 등지)에 있을 때에는 우리 동포 가정에서 조선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있습니다. 김치도, 그렇지마는 이렇게 김치 맛이 안 나요. 선생님 댁 김치 맛납니다."

 

하면서 김칫국을 떠서 맛나게 먹는다.

 

"김치 맛이 아마 조선음식에 있어서는 가장 조선정신이 있지요."

 

하고 대학 문과에서 조선극을 전공하는 김상철이 유모러스한 말을 한다.

 

"브라보우!"

 

하고 이 박사가 영어로 외치고,

 

"참 그렇습니다. 김치는 음식 중에 내셔널 스피리트(민족정신)란 말씀이야요."

 

하고 그 지혜를 칭찬한다는 듯 이 상철을 보고 눈을 끔쩍한다. 상철은 픽 웃고 갈비를 뜯는다.

 

"갈비는 조선음식의 특색이지요."

 

하고 어떤 학생이,

 

"갈비를 구워서 뜯는 기운이 조선사람에게 남은 유일한 기운이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응, 그런 말이 있지."

 

하고 한 선생이 갈비를 뜯던 손을 쉬며,

 

"영국사람은 피 흐르는 비프스테익 먹는 기운으로 산다고."

 

하고 웃는다.

 

"딴은 음식에도 각각 국민성이 드러나는 모양이지요."

 

하고 또 한 학생이,

 

"일본요리의 대표는 사시미(어회)지요. 청요리의 대표는 만두, 양요리의 대표는 암만해도 토스티드 치킨(닭고기 구운 것)이지요."

 

"여기는 토스티드 하트(염통 구운 것)가 있습니다. 하하."

 

하고 이건영 박사는 염통 구운 것 한 점을 집어먹으며, 서분과 순례 두 여자를 본다.

 

순례의 입에는 눈에 띌 듯 말 듯 적은 웃음이 피었다가 번개같이 스러진다.

 

"김군. 어째 오늘 그렇게 얌전하오"?

 

하고 한 선생이 김갑진을 바라본다.

 

"제야 언제는 얌전하지 않습니까"?

 

하고 커다란 배추김치를 입에 넣고 버적버적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씹는다.

 

"이 사람은 변덕장이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하고 어느 동창이 웃는다.

 

다들 따라 웃는다. 사람들-더구나 처음 보는 두 손님의 시선이 갑진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하고 갑진은 입에 물었던 밥을 김칫국과 아울러 삼키며,

 

"그런데 미국 유학생들은 왜들 다 쑥이야요? 그놈들 영어 한마디 변변히 하는 놈도 없으니 웬일야요"?

 

하고 아주 천연스럽게 이 박사를 본다. 이 박사는 하도 의외의 말에 눈이 둥그레지고 순례는 제가 창피한 꼴이나 당하는 듯이 고개를 폭 수그린다. 다른 학생들은 픽픽 웃는다.

 

"이 사람아."

 

하고 허숭이가 갑진의 옆구리를 찌른다.

 

"선생님, 제 말이 잘못되었어요? 이 사람들이 픽픽 웃으니."

 

하고 갑진은 더욱 천연스럽다.

 

"그야 미국 유학생이라고 다 공부를 잘하겠소.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하고 한 선생도 빙그레 웃는다.

 


 

 

"어디, 미국서 박사니 무엇이니 해가지고 온 사람치고 무어 아는 사람은 어디 있고, 하는 사람은 어디 있어요? 다들 쑥이지."

 

하고 갑진은 이 박사를 바라보며,

 

"아마 이 박사는 안 그러하시겠지마는."

 

하고 그도 웃는다.

 

다들 웃는다.

 

"미국도 하버드나 예일 같은 대학은 그래도 괜찮다지요"?

 

하고 갑진은 여전히 미국을 낮추보는 주의자다.

 

"프린스턴대학도."

 

하고 갑진은 이 박사가 프린스턴 출신인 것을 생각하고 한마디를 첨부한다.

 

다들 갑진의 말을 어떻게 수습할지를 모른다.

 

이 박사는 아직도, 이 경우에 무슨 말을 해야 옳을는지 몰라서, 마치 방망이로 되게 얻어맞은 사람이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양으로 우두커니 앉아서 밥만 먹는다.

 

"선생님, 안 그렇습니까."

 

하고 갑진은 혼자서 기운이 나서,

 

"그 박사 논문이란 것들을 보니까는, 우리들 보통학교에 다닐 때에 작문한 것만밖에 더 해요? 그런 논문으로 박사를 한다면 이애들도 박사 다 됐게요."

 

하고 동창들을 가리킨다.

 

"그건 또 싸구려 박사라고 있다네."

 

하고 연극 학생 김상철이가 한마디 던진다.

 

갑진의 말로 해서 깨어진 흥은 용이하게 회복할 도리가 없었다. 마치 탈선하여 철교에서 떨어진 열차와 같아서 원상 회복은 절망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밥도 거진 끝이 났다.

 

한 선생은 밥숟가락을 주발 위에 뉘어놓고 인사말을 시작하여 이 파열된 원탁회의를 계속하려 하였다-

 

"오늘 저녁 여러분을 오시게 한 것은 다들 아시겠지마는, 존경할 만한 친구 두 분을 소개하기 위함이외다. 한 분은 이건영 박사, 또 한 분은 윤명섭씨. 이 박사는 배재고보를 졸업하시고 미국으로 가셔서 스탠포드대학에서 에이비, 프린스턴대학에서 엠에이와 피에취디 학위를 얻으셨습니다. 전공은 윤리학과 교육학, 그리고 예일대학에서 신학사의 학위도 얻으셨습니다. 놀라운 독학자시요, 또 십여 년을 고학으로 공부하신 이입니다. 우리 조선에 이러한 큰 학자와 일꾼을 얻은 것은 참으로 큰 힘이요 기쁨입니다."

 

이 말에 이 박사는 한 선생과 여러 사람을 향하여 골고루 목례한다.

 

갑진은 코가 밥상에 닿도록 고개를 숙인다.

 

"또 이 윤명섭씨는."

 

하고 한 선생은 눈에 일층 빛을 내며,

"윤명섭씨는, 조선에서는 보통학교도 고등보통학교도 다닌 일이 없으십니다. 그 대신, 윤명섭씨는 종교와 실인생의 학문을 하셨습니다. 윤명섭씨는 혹은 농가의 머슴이 되시고, 혹은 상점의 사환, 혹은 도장을 새기고, 혹은 인력거를 끌고, 혹은 자동차 운전수가 되어 어디까지든지 희망과 자신과 신앙으로 조선을 위하여 무슨 큰 공헌을 하려고 힘을 쓰셨습니다. 윤명섭씨는 <모세의 지팡이>를 구하는 것으로 인생의 임무를 삼으신다고 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여러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바다를 치면 바다가 갈라지고, 바위를 치면 샘물이 솟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지팡입니다. 그렇게 믿고 힘쓴 결과로 윤명섭씨는 벌써 삼십여 종의 발명을 하여 전매특허권을 얻으셨고, 그보다도 세계를 놀랠 만한 대발명, 그것은 아직 비밀이나 거의 완성된 대발명을 하시는 중입니다. 금후 일년이면 이 발명이 아주 완성되어서, 다만 세계의 학계를 놀라게 할 뿐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생활에 대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대한 발명가를 낳은 것을 민족의 자랑으로 기쁨으로 알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일동의 시선은 윤명섭의 초라한, 조그만한 몸으로 쏠렸다.

 

한 선생은 무엇을 적은 종이조각을 꺼내어 들고,

 

"나는 이 윤명섭씨의 일상 생활 좌우명을 여러분께 읽어드리려 합니다. 내가 깊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께도 그 감동을 나누려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맹세한 나의 일상 생활

 

1. 아침에 3분간 기도(자리 속에서 하루의 계획)

 

2. 밤에 3분간 점고, 그 날을 반성하여 기도, 성경 낭독

 

3. 과거의 고생을 생각하여 3분간 묵상(위인의 과거를 생각), 더욱 분투를 결심, 모든 이의 은혜를 잊지 아니할 것

 

4. 사명?(이상과 희망을 실현하기에 노력하고 평생 생각할 일)

 

5. 연구와 범사에 충실할 일

 

6. 기회로 생각하면 주저치 말고 할 일

 

7. 물건을 살 적에는 3분간 생각할 일

 

8. 건강에 주의할 것

 

<나의 시간>

 

1. 학교 수업 7시간

 

2. 통학, 식사, 편지 회답, 기타 3시간

 

3. 학교 학과 복습 예습 3시간

 

4. 돈벌이 3시간

 

5. 발명 연구 4시간

 

6. 수면 4시간

 

도합 이십 사 시간

 

일요일은 교회, 오락, 독서, 방문, 이러합니다."

 


 

 

한 선생의 이 박사와 윤명섭 소개가 끝나자, 일동은 이상하게 고요한 침묵 속에 있었다. 저마다,

"나도 한 가지 조선을 위해서 무슨 큰일을 해야겠다. 그리하자면 이씨나 윤씨와 같은, 또는 한 선생과 같은 극기, 헌신, 분투의 생활을 해야겠다."

 

하는 심히 단순한, 그러나 심한 감격 깊은 생각을 하였다.

 

"옳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고 허숭은 생각하였다.

 

"농민 속으로 가자.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몸만 가지고 가자. 가서 가장 가난한 농민이 먹는 것을 먹고, 가장 가난한 농민이 입는 것을 입고, 그리고 가장 가난한 농민이 사는 집에서 살면서, 가장 가난한 농민의 심부름을 하여주자. 편지도 대신 써주고, 주재소, 면소에도 대신 다녀주고, 그러면서 글도 가르치고 소비조합도 만들어주고, 뒷간, 부엌 소제도 하여주고, 이렇게 내 일생을 바치자."

 

이러한 평소의 결심을 한번 더 굳게 하였다. 대규모로 많은 돈을 얻어 가지고 여러 사람을 지휘하면서, 신문에 크게 선전을 하면서 빛나게 하자는 꿈을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나부터 하자!"

 

하는 한 선생의 슬로건의 맛을 더욱 한번 깨달은 것같이 느꼈다.

 

대학에서 극 연구를 하는 김상철이나, 이전에서 음악을 배우는 심순례나, 다 저대로 조선사람의 생활을 돕기에 일생을 바치기 위하여 한번 더 결심을 굳게 하였다. 조선민중 예술-가장 가난한 조선 민중을 기쁘게 할 만한 소설과 극과 음악을 지어내는 것, 이것도 한 선생의 말에 의하건댄 큰일이요, 필요한 일이요, 새로운 조선을 짓는 데 각각 한 주추요 기둥이었다.

 

김갑진은 우선 명재판관이 되어 이름을 높이고 다음에 조선에 일등가는 변호사가 되어 돈도 많이 벌고 인권을 옹호하는 큰 인물이 되자는 것으로 자기의 천직을 삼는다고 하였다. 한 선생의 말에 의하면 그것도 조선에 필요한 일이라고 하였다.

 

무릇 조선과 조선사람을 생각하여 저를 희생하고 하는 일이면, 그리하고 그것을 동일한 이데올로기와 동일한 조직하에서 하는 일이면 다 좋은 일이라고 하였다. 더구나 부패하고 마비된 양반 계급에서 갑진과 같이 활기 있고 양심 있는 청년을 찾은 것을 한 선생은 기뻐하였다.

 

심순례의 마음은 차라리 윤명섭에게로 끌렸다. 만일 어느 편으로 끌린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러나 정서분의 마음은 단정적으로 이건영 박사에게로 끌렸다.

 

순례의 맘이 명섭에게로 끌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대개 그의 아버지는 본래 가난한 집 유복자로서, 그 어머니조차 일찍 여의고 외가로 고모의 집으로 불쌍하게 자라나서 종로 어느 지물전에 사환으로 다니다가 점원이 되었다가 그가 삼십이나 되어서 월수로 돈을 좀 얻어가지고 독립하여 지물전을 내어서, 이래 근 이십 년간 신용과 근검과 저축으로 볏백이나 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치부책에 치부를 할 만한 글밖에 몰랐다.

 

그는 술도 아니 먹고, 놀러도 아니 다니고, 재산이 생긴 뒤에도 첩도 아니 얻고(종로 상인은 열에 아홉은 중년에 돈이 생기면 첩을 얻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꼭 가게와 안방을 세계로 삼고 왔다갔다할 뿐이었다.

 

순례의 어머니 역시 그 남편과 근검, 저축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였다. 그의 동무들이 모두 금비녈세, 비취비녈세, 하부다일세, 굿일세, 물맞일세 하건마는, 그는 소화불량(그의 본 병이었다)이 심하기나 해야 악박골 약물에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이른 새벽에 다녀올까, 그리고는 시흥 사는 친정에도 큰일이나 있기 전에는 가지 아니하였다. 오직 내외가 늦게 얻은 딸 순례 하나를 기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을 뿐이었다.

 

그래서 순례는 여자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서 남들은 그만하면 시집을 보내라는 것도 물리치고 순례에게 음악 재주가 있다고 하여 이화전문학교의 음악과에 넣은 것이었다.

 

"내야 음악이 무엇인지 전문학교가 무엇인지 아오? 그저 재산 물려줄 것도 없으니깐두루 나중에 무슨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굶어 죽지나 말라고 자격이나 하나 얻어주려고 그러지요."

 

하는 것이 순례아버지의 순례 전문교육에 대한 의견이었다.

 

이러한 자립, 근검, 절제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순례는 예술적 천품을 가지면서도, 마치 시골 농가에서 세상 모르고 귀히 자라난 처녀와 같이 모양낼 줄도 모르고 말숱도 없고, 천연스럽고 정숙스러웠다. 처음 보면 무언하고 유치한 것도 같지마는, 속에는 예술가의 예민한 감정이 있었다.

 

이러하기 때문에 순례는 호화로운 이 박사보다도 저와 같이 검소하고 겸손한, 어찌보면 못생긴 듯한 명섭이가 도리어 맘을 끈 것이었다.

 

순례는 아직 학교 선생 외에는(그것도 교실에서만) 일찍 남자와 교제해본 일이 없었다. 있었다면 전차 차창일까. 간혹 그의 뒤를 따르는 남자 학생들이 없음이 아니었지마는 그는 천연하게 본 체 만 체하였다. 그 남학생들은 얼마를 따라다니고 건드려보다가는 실망하고 달아나버렸다.

 

순례가 한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이화에 들어가서부터이었다. 순례는 이화에 들어가서 비로소 조선사람 남자선생을 대해보았다. 그 전에는 보통학교에서도, 늘 조선 남자선생 담임 밑에 있을 기회가 없었다.

 


 

 

순례는 그 부모에게 한 선생 말을 하였다.

 

"아주 점잖으시고, 엄하시고, 친절하시고, 잘 가르치시고, 또 사회에 명망도 높대."

 

이것이 순례가 그 부모에게 한 한 선생에 대한 보고였다. 그 부모는 교육계나 사회에 나와 다니는 인물을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딸 순례를 믿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었다. 그래서 한번 순례의 아버지가 한 선생을 찾아가서 딸의 장래를 부탁하였다.

 

"저야 장사나 해먹는 놈이 무얼 압니까. 그저 공부가 좋다니, 자식이라고 그것 하나밖에 없구 해서, 학교에를 보냅지요."

 

하고 순례의 아버지는 한 선생에게 말을 붙였다. 그는 얼굴이 둥그레하고 눈이 크고 턱이 둥글고, 아래와 위에 조선식 수염이 나고, 골격이 크고 뚱뚱하다고, 할 만한 조선사람 타이프의 신사였다.

한 선생도 순례아버지의 꾸밈없는, 순 조선식인 성격에 많이 호감을 가졌다. 조선식 겸손, 조선식 위엄, 조선식 대범, 조선식 자존심, 조선식 점잖음(태연하기 산 같은 것)-이런 것은 근래에 바깥바람 쐰 젊은 사람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 선생은 생각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청년 남녀들의 일본 도금, 서양 도금의 경망하고 조급하고, 감정의 움직임이 양철 남비식이요, 저만 알고, 잔소리 많고, 위신없는 양을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순례의 아버지의 이 간단한 말속에는, 순례가 학교에 있는 동안 잘 감독하고 훈육할 것과, 또 부모에게는 특히-옛날 조선식 부모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가 되는 혼인까지도 맡아서 해달라는 뜻이 품겨 있었다.

 

한 선생은 순례아버지의 청을 쾌히 받았다.

 

며칠 뒤에 순례아버지는 한 선생 집에 강원도에서 온 것이라 하여 꿀 한 항아리를 보내었다. 한 선생이 담배도 아니 먹고 술도 아니 먹는다는 말을 들은 순례아버지는 생각하고 생각한 결과로 꿀을 보낸 것이었다. 오늘 이 박사와 윤명섭을 주빈으로 이 만찬회를 베푼 데는 순례의 신랑 될 이를 고르는 뜻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 한 선생의 심중에 있는 후보자는 누구던가. 그것은 이건영 박사였다. 한 선생은 순례를 지극히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자기가 지극히 믿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시집보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건영은 배재에 있을 때에 가장 재주있고 얌전하기로 한 선생의 사랑을 받은 학생이요, 또 서양 간 뒤에도 몇 대학에 있는 동안에 항상 뛰어나는 성적을 가졌을 뿐더러 일찍 남녀간에든지 무엇에든지 좋지 못한 풍문을 낸 일이 없었다. 또 그 학식이나 표현 능력으로 말하면 그곳 일류 신문과 잡지에 여러번 게재되어 칭찬을 받을 정도였었다. 그래서 한 선생은 이 박사를 일변 보전이나 연전이나, 이전의 교수로 추천하는 동시에 순례의 남편을 삼았으면 하고 내심에 생각한 것이었다.

 

며칠 후 한 선생은 건영과 단둘이 만나서 순례에게 대한 인상을 물었다. 건영은 백 퍼센트로 좋다는 뜻을 표하였다. 그리고 건영의 청으로 순례는 건영과 십여 차나 만나서 단둘이서 이야기할 기회도 얻었다. 이삼 차는 단둘이서 호텔에서 저녁도 같이 먹고, 극장에서 활동사진도 보았다.

 

순례는 그리 뛰어난 미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아버지와 같이 얼굴이 둥그스름하고, 눈이 조선식으로 인자하고 유순함을 보이고, 피부가 희고 윤택하고, 사지가 어울리고, 특히 손과 코가 아름다왔다. 건영의 말을 듣건댄 그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좋고, 그보다도 맘이 가장 아름다왔다.

 

순례는 일찍 누구와 다툰 일이 없고, 큰소리 한 일이 없고, 많이 웃지도 아니 하고, 우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조선의 선인들과 같이 좀처럼 희로애락을 낯색에 나타내지 아니하고 마치 부처의 모양과 같이 항상 빙그레 웃는 낯이었다. 그의 말은,

 

"네."

 

"아니오."

 

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옛날 조선의 딸이었다.

 

"순례의 값과 아름다움은 아는 사람만 알지."

 

하는 한 선생의 말에 건영은,

 

"참 그렇습니다. 이건영이 하나만 압니다."

 

하였다.

 


 

 

봄이 되어 허숭은 졸업시험을 막 치르고 집으로-윤 참판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날은 웬일인지 윤 참판이 사랑방에 혼자서 앉아 있었다.

 

"댕겨왔습니다."

 

하는 허숭의 인사에 윤 참판은,

 

"이리 들어오게."

 

하고 친절하게 불렀다.

 

허숭은 들어가서 윤 참판의 앞에 읍하고 섰다. 윤 참판은 양실 사랑에 난로를 피워놓고 테이블 앞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기 앉게."

 

하고 윤 참판은 턱으로 맞은편 교의를 가리켰다.

 

허숭은 앉았다.

 

"시험 다 치렀나"?

 

"네, 마지막 치르고 왔습니다."

 

"내가 오늘은 자네에게 할말이 있네."

 

하고 윤 참판은 턱수염을 한번 만졌다. 그 수염은 하얗다.

 

허숭은 다만 윤 참판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을는지 모르겠네마는, 나는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야. 인제는 자네도 졸업을 했으니 혼인도 해야 아니하겠나"?

 

하고 윤 참판은 허숭의 눈치를 보았다.

 

"아직 혼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고 허숭은 분명히 말하였다.

 

"혼인할 생각이 없어? 왜"?

 

하고 윤 참판은 눈을 크게 떴다.

 

"공부도 더 하고 싶구요."

 

하고 허숭은 누구나 하는 말로 대답을 하였다. 직업도 없고 재산도 없이 어떻게 혼인을 하느냐고 말하기는 싫었다.

 

"공부는 또 무슨 공부를"?

 

하고 윤 참판은 물었다.

 

"이왕 법률을 배웠으니 변호사 자격이나 얻어두고 싶습니다."

 

"암, 그래야지."

 

하고 윤 참판은 뜻에 맞는다는 듯이,

 

"변호사가 되려면 고등문관 시험을 치러야 한다지"?

 

"네."

 

"갑진이도 금년에 고등문관 시험을 치르러 간다니까 자네도 같이 가 치르지. 칠월이라지"?

 

"네."

 

"그럼, 유월쯤 해서 동경으로 가지."

 

허숭은 동경 갈 노자가 없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동경에 가서 시험을 치르고 오자면 안팎 노자 쓰고 적어도 이백 원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윤 참판을 보고 그 돈을 달라고 할 명목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숭이 대답을 못하고 앉았는 뜻을 윤 참판도 짐작하였다. 그래서 허숭을 괴로운 생각에서 건져주려는 듯이,

 

"그럼 동경은 가기로 하고…"

 

하고 잠깐 머물렀다가,

 

"그런데 내가 자네보고 하자는 말은 그것이 아니고, 또 하나 중대한 말일세. 내 딸자식 말야, 정선이 말일세. 그거 변변치는 않지마는 자네 혼인해주지 못하겠나. 나도 인선이 죽은 뒤로는 도무지 의탁할 곳이 없고, 또 자네가 두고 보니까 요새 젊은 사람들 같지는 아니해. 그래서 내가 오래 두고 생각했어. 내 자식을 내가 말하는 것도 무엇하지마는 그리 몹쓸 자식은 아니구, 또 자네를 보고 직접 말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지마는 어디 말할 데가 있나. 그러니까 자네도 어떻게 알지 말게."

 

하였다.

 

이 말은 허숭에게 있어서는 과연 청천에 벽력이었다. 일찍 이런 일은 몽상도 아니한 일이었다.

 

허숭은 기실 어떻게 대답해야 옳을지를 몰랐다. 다만 저도 모르게,

 

"변호사 자격을 얻기까지는 혼인 문제를 생각하지 아니하겠습니다."

 

하고 물러나왔다.

 

윤 참판은 이 날 아침에 그가 가장 존경하는 재종형 윤 한은 선생을 찾아갔다. 가서 정선의 혼인 문제를 말하고 허숭이가 사위로 어떠냐 하고 뜻을 물었다. 한은 선생은 깜짝 놀라며,

 

"자네, 어찌 그 사람과 혼인을 할 생각이 났나"?

 

하고 물었다.

 

"두고 보니까 사람이 진실하고, 문벌은 없지마는 양반다운 점이 보이더군요."

 

하고 윤 참판은 자기의 지인지감을 자랑하였다.

 

"허게, 해!"

 

하고 한은 선생은 당장에 찬성하였다. 기실 한은 선생은 자기의 손녀 은경(恩卿)과 허숭과 혼인할까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었다. 한은 선생의 손녀 은경은 지금 동경 성심여학원에서 영문학을 배우고 있는 이였다.

 

이렇게 한은 선생의 찬성을 얻은 윤 참판은 집에 돌아오는 길로 딸 정선을 불러 허숭에 대한 의향을 물었다. 정선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실상 정선은 일찍 허숭에게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자기를 허숭 같은 시골사람에게 주려는가 하는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없다 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윤 참판은 딸의 말 없음을 이의 없는 것으로만 해석하였고, 그뿐더러 딸이 혼인에 대하여 가부를 말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혼인은 되는 것으로 혼자 작정한 것이었다. 허숭이가 윤 참판의 청혼에 거절할 리가 있느냐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허숭에게는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아니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허숭에게는 두 가지 의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으면 농촌에 돌아가 농민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유순에게 대하여 그의 어깨를 안고 머리를 만지며,

 

"내 또 올께."

 

한 약속이었다. 이 약속은 물론 약혼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허숭은 속으로,

 

"이 여자와 일생을 같이하자."

 

하고 생각도 하였거니와, 적어도 유순은-꾸밈도 없고 옛날 조선식 여성의 맘을 가진 유순은, 허숭의 가슴에 제 이마를 대었다는 것이,

 

"나는 이 몸을 당신께 바칩니다. 일생에, 죽기까지 나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나는 이것으로써 맹세를 삼습니다. 내 맹세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는 것을 표한 것이었고, 이러한 조선식 신의 관념을 가진 유순으로는, 반드시 자기는 허숭의 처가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매 허숭은, 자기는 이미 혼인한 사람과 같은 책임감을 아니 가질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이유, 즉 농촌으로 가자는 이유도 정선과의 혼인을 불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서울서 여러 백년 동안 흙이라고 만져본 일도 없는 정선이 농촌으로 들어가기는 불가능보다 더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허숭은 단연히 윤 참판의 통혼을 거절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다시 윤 참판이 말하거든 자기는 단연히 거절하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윤 참판은 허숭은 벌써 자기의 사위가 된 것으로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하기 때문에 다시 허숭에게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

 

유월 어느 날, 허숭은 김갑진과 함께 동경역을 향하여 경성역을 떠났다. 허숭은 윤 참판이 해입으라는 양복도 거절하고 학교시대 옷을 그냥 입고 새 맥고모자 하나를 사 쓰고 윤 참판이 주는 가방 하나를 들고 길을 떠났다. 김갑진은 세비로에, 스프링 코트를 입은 훌륭한 신사였다. 역두에는 두 사람의 동창생들의 정성스럽고도 유쾌한 전송이 있었다.

 

날은 맑고 더우나 차창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차가 차차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모내는 일이 바쁜 듯하였다. 어제, 그저께 이틀 연해서 온 비가 넉넉지는 못해도 모를 낼 만하게는 논에 물이 닿았다. 해마다 모낼 때에는 가문다, 죽는다는 소리가 난다. 그러나 사흘만 더 가물면 죽겠다 할 만한 때에는 대개는 비가 오는 법이다. 금년에도 그러하였다. 마치 하느님이 나는 나 할일을 다 한다, 너희들만 너 할일을 하여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없는 줄 알지 말아라, 나는 있다, 너희가 하느님이 없나보다 할 만한 기회에 내가 있다는 것을 보인다, 하는 것 같다.

 

허숭은 나불나불 바람에 나부끼는 모를 보고, 허리를 굽히고 모를 심는 농부들을 볼 때에, 하늘에 찬 볕과 땅에 찬 생명이 모두 그들을 위하여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 중에 오직 농사하는 일만이 옳고 거룩하고 참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차에 올라앉은 사람들은 다 저 농부들의 땀으로 살아 가는, 그러면서도 저 농부들의 공로를 모르고, 그들에게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같이 보였다.

 

"자네 무얼 그리 내다보고 앉았나."

 

하고 김갑진은 어디로 돌아다니다가 자리에 돌아와서 허숭의 무릎을 탁 친다. 그리고 허숭이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본다. 갑진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저 모내는 것을 보고 있네."

 

하고 숭은 갑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건 무엇하러"?

 

하고 갑진은 한번 더 허숭이가 바라보던 곳을 내다보았으나, 이 때에는 벌써 열차는 벌판을 다 건너와서 어떤 산찍은 틈바구니를 달리고 있었다.

 

"자네네 조상이 대대로 해 오던 짓이니까 그리운가 보네그려. 그러니까 개꼬리 삼년이란 말이거든."

 

하고 또 빈정대기를 시작했다.

 

"자네 눈에는 농사가 그렇게 천해 보이나"?

 

하고 숭은 약간 감상적이었다.

 

"그럼, 요새 상공업 시대에 농사라는 게야 인종지말이 하는 게지 무에야. 다른 건 아무것도 해먹을 노릇이 없으니까 지렁이 모양으로 땅을 파는 게 아닌가. 이를테면 자네 같은 사람은 똥 개천에서 용이 오른 셈이고, 하하. 지렁이 속에서 용이 올랐다는 게 더 적절할까, 하하."

 

갑진은 차바퀴 굴러가는 소리보다도 더 큰 소리로 떠들었다. 곁에 앉은 사람들도 갑진의 말을 듣고 빙긋빙긋 웃었다. 그래도 갑진의 천진난만한 태도엔 악의나 미운 생각이 섞이지 아니하였다.

 

"자네 그게 진정인가"?

 

하고 허숭은 엄숙하게,

 

"그렇게도 농사와 농민을 이해하지 못하나? 자네 눈에는 그처럼 농민이 버러지같이 보이나? 만일 진실로 그렇다면 참말로 큰 인식 착오일세."

 

"어럽시오. 이건 또 훈계를 하는 심이야. 흥, 농자는 천하지 대본야라, 그것을 설법을 하는 심야. 아따 이놈아, 집어치워라. 우리 집에도 시골 마름놈들이 오지마는, 그놈들 모두 음흉하고 돼지 같고 어디 사람놈들 같은 것 있더냐. 시골 구석에서 땅이나 파먹는 놈들이 순실키나 해야 할 텐데, 도무지 그놈들 서울사람 한번 못 속여먹으면 삼년 동안 복통을 한다더라. 그저 그런 놈들은 꾹꾹 눌러야 해. 조금만 늦구면 버릇이 없어지거든. 안 그러냐, 이놈아. 너는 인제는 전문학교깨나 졸업을 했으니 좀 시골놈 껍질을 벗어보아. 괜히시리 없는 가치를 붙이려고 말고…머 어째? 네가 농촌에 들어가서 농민들과 같이 살 테야? 그럴 테면 공부는 무얼하러 해? 허기는 그렇기도 하겠다, 고등문관 시험에 낙제나 하는 날이면 그밖에는 도리가 없겠지, 하하하."

 


 

 

기차는 산 끊은 데를 지나고 산굽이를 돌아서, 게딱지 같은 농가들이 다닥다닥 붙은 촌락을 지나고, 역시 남녀가 바쁘게 모를 내는 논들을 바라보며 달아났다.

 

갑진도 숭의 말에 자극이 되어 그 대단히도 가난해 보이는 농가들과, 대단히도 힘들어 보이는 모심는 광경을 주목해 보았다. 갑진은 장안 생장으로 이러한 농촌의 광경은 마치 자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어떤 외국의 것과 같이 보였다.

 

갑진은 낯을 숭에게로 돌리며,

 

"그러니 저런 집에서 어떻게 하룬들 사나."

 

하고 탄식하였다.

 

"겉으로 보기보다 속에 들어가면 더하다네."

 

하고 숭은 갑진이 농가에 대하여 새로운 흥미를 느끼는 것이 신기한 듯이,

 

"저 집 속에를 들어가면 말야, 담벼락에는 빈대가 끓지, 방바닥에는 벼룩이 끓지, 땟국이 흐르는 옷이나 이불에는 이가 끓지, 여름이 되면 파리와 모기가 끓지, 게다가 먹을 것이나 있다던가. 호좁쌀 죽거리도 없어서 풀뿌리, 나무껍질을 먹고 사네그려…."

 

하는 숭의 말을 다 듣지도 아니하고 갑진은,

 

"아따, 이 사람, 초근목피라는 옛말은 있다데마는, 설마 오늘날 풀뿌리, 나무껍질 먹는 사람이야 있겠나. 자네도 어지간히 풍을 치네그려, 하하."

 

하고 숭의 어깨를 아파라 하고 철썩 때린다.

 

숭은 깜짝 놀랐다. 어깨를 때리는 데 놀란 것이 아니라, 갑진이가 조선 사정을 모르는 데 놀란 것이었다.

 

숭은 이윽고 벙벙히 갑진을 바라보고 있다가,

 

"자네 신문 잡지도 안 보네그려"?

 

하고 물었다.

 

"내가 신문을 왜 안 보아? 대판조일, 경성일보, 국가학회 잡지, 중앙공론, 개조, 다 보는데 안 보아? 신문 잡지를 아니 보아서야 사람이 고루해서 쓰겠나."

 

하고 갑진은 뽐내었다.

 

"그런 신문만 보고 있으니까 조선 농민이 요새에 풀 뿌리, 나무껍질 먹는 사정을 알 수가 있겠나? 자네는 조선 신문 잡지는 영 안 보네그려"?

 

하고 숭은 기가 막혀 하였다.

 

"조선 신문 잡지"?

 

하고 갑진은 도리어 놀라는 듯이,

 

"조선 신문 잡지는 무엇하러 보아. 무엇이 볼 게 있다고. 그까짓 조선 신문기자놈들, 잡지권이나 하는 놈들이 무얼 안다고. 그런 걸 보고 있어, 백주에 낮잠을 자지."

 

숭은 입을 딱 벌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갑진은 더욱 신이 나서,

 

"그 어디 조선 신문 잡지야 또 보기나 하겠든가. 요새에는 그 쑥들이 언문을 많이 쓴단말야. 언문만으로 쓴 것은 도무지 희랍말 보기나 마찬가지니, 그걸 누가 본단 말인가. 도서관에 가면, 일본문, 영문, 독일문의 신문, 잡지, 서적이 그득한데, 그까짓 조선문을 보고 있어? 그건 자네같이 어학힘이 부족한 놈들이나, 옳지 옳지! 저기 저 모심는 시골 농부놈들이나 볼 게지, 으하하."

 

하고 갑진은 유쾌한 듯이 좌우를 바라보며 웃는다.

 

"왜 자네네 대학에도 조선 문학과까지 있지 않은가"?

 

하고 숭은 아직도 갑진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 보려는 뜻을 버리지 아니하였다.

 

"응, 조선 문학과 있지, 나 그놈들 대관절 무얼 배우는지 몰라. 원체 우리네 눈으로 보면 문학이란 것이 도대체 싱거운 것이지마는 게다가 조선 문학을 배운다니, 좋은 대학에까지 들어와서 조선 문학을 배운다니, 딱한 작자들야. 저 상철이 놈으로 말하더라도 무엇이-춘향전이 어떻고, 시조가 어떻고, 산대도감이 어떻고 하데마는 참말 시조야. 미친 놈들."

 

하고 갑진은 가장 분개한 빛을 보인다.

 

"미치기로 말하면…"

 

하고 숭은 기가 막혀 몸을 흔들고 웃으면서,

 

"미치기로 말하면 자네가 단단히 미쳤네."

 

"누가 미쳤어"?

 

하고 갑진은 대들 듯이 눈을 부릅뜬다.

 

"자네 말야."

 

"자네가 누구야"?

 

"법학사 김갑진 선생이 단단히 미쳤단 말일세."

 

"어째서"?

 

"모든 것을 거꾸로 보니 미치지 아니하고 무엇인가. 자네 눈에는 모든 것이 거꾸로 비친단 말야."

 

"무엇이"?

 

하고 갑진은 대들었다.

 


 

 

"글쎄, 안 그런가."

 

하고 숭은,

 

"자네는 가치비판의 표준을 전도한단 말일세. 중하게 여길 것을 경하게 여기고 경하게 여길 것을 중하게 여긴단 말야. 조선하면 농민 대중이 전 인구의 팔십 퍼센트가 아닌가. 또 사람의 생활자료 중에 먹는 것이 제일이 아닌가. 그 다음은 입는 것이요-하고 보면, 저 농민들로 말하면 조선민족의 뿌리요 몸뚱이가 아닌가. 지식 계급이라든지 상공 계급은 결국 민족의 지엽이란 말일세. 그야 필요성에 있어서야 지엽도 필요하지, 근간 없는 나무가 살지 못한다면 지엽 없는 나무도 살지 못할 것이지.

 

그렇지마는 말일세, 그 소중한 정도에 있어서는 지엽보다 근간이 더하지 않겠나. 그러하건마는 조선 치자계급은 예로부터-그 예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말할 것 없지만-지엽을 숭상하고 근간을 잊어버렸단 말일세.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고래로 조선의 치자계급이던 양반계급이 말야, 그 양반계급이 오직 자기네 계급의 존재만을 알았거든. 자기네 계급-그것이야 전 민족의 한 퍼센트가 될락말락한 소수면서도-자기네 계급이 잘 살기에만 몰두하였거든.

 

그게야 어느 나라 특권 계급이나 다 그러했겠지마는, 조선의 양반계급이 가장 심하였던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는 국가의 수입을 민중의 교육이라든지, 산업의 발달이라든지 하는 전 국가적 민족적 백년 대계에는 쓰지 아니하고, 순전히 양반계급의 생활비요 향락비인-이를테면 요새 말로 인건비에만 썼더란 말일세.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는고 하면 자네도 아다시피, 전 민족은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모든 방면으로 다 쇠퇴하여져서 마침내는 국가 생활에 파탄이 생기게 하고, 그리고는 그 결과가 말야, 극소수, 양반 중에도 극히 권력 있던 몇십 명, 백명은 넘을까 하는 몇 새 양반계급을 남겨 놓고는 다 몰락해 버리지 않았느냐 말야."

 

"어느 서양 사람이 조선을 시찰하고 비평한 말을 어디서 보았네마는, 그 사람의 말이, 나무 없는 산, 물 마른 하천, 좋지 못한 도로, 양의 우리 같은 백성들의 집, 어리석고 쇠약한 사람들, 조선에서 눈에 띄우는 것이 모두 다 실정(失政=maladministration)의 자취라고."

 

"이 사람의 말에 자네 반대할 용기가 있나. 조선의 모든 쇠퇴가 정치를 잘못한 자취라는 말을? 그것이 다 양반계급의 계급적 이기욕과 가치판단의 전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말야. 아냐, 내 말을 끝까지 자세히 듣게. 그런데말야, 자네와 같은 지식 계급이 아직도 그러한 전도된 가치판단을 한다는 것은 심히 슬픈 일이 아닌가. 우리네 새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여러 백년 동안 잊어버렸던, 아니, 잊어버렸다는 것보다도 옳지 못하게 학대하던 농민과 노동 대중의 은혜와 가치를 깊이 인식해서 그네들에게 가서 봉사할 결심을 가지는 게 옳지 아니하겠나"?

 

숭은 말을 끊었다.

 

두 사람이 부산 부두에 내린 때에는 여름의 긴 날도 저물었다. 낮에 날이 좋던 모양으로 밤도 좋았다. 바다로 불어오는 바람은 온종일 차 중에서 부대끼던 허숭, 김갑진 두 사람에게는 소생하는 듯한 상쾌함을 주었다. 더구나 오륙도 위에 달린 여름의 보름달은 상쾌 그 물건이었다.

 

두 사람은 짐을 들고 연락선으로 향하였다. 정거장에서 부두까지에는 일본으로 향하는 노동자가 떼를 지어 오락가락하였다.

 

머리를 깎은 이, 상투 있는 이, 갓쓴 이조차 있었고, 부인들도 여기저기 보였다. 그 중에는 방직 여공으로 가는 듯한 처녀들도 몇 떼가 있었다.

 

고무신을 신은 이, 게다를 신은 이, 운동 구두를 신은 이, 잘 맞지도 않고 입을 줄도 모르는 시마 유까다(일본 여름옷)를 입은 이, 도무지 형형색색이었다.

 

말씨도 대개는 경상도 사투리지마는, 길게 가냘프게 뽑는 호남 말도 들리고, 함경도 말, 평안도 말도 들리고, 이따금은 단어의 첫 음절과 센텐스의 끝 음절을 번쩍번쩍 드는 경기도 시골 사투리도 들렸다. 각 지방에서 모여든 모양이다.

 

쓰메에리, 무르팍 양복을 입고 왼편 팔에 붉은 헝겊을 두른 사람들이 위압적 태도와 언사로 군중을 지휘하는 것은 이른바 노동귀족인 패장인가 하였다.

 

배에 오를 때에는 보통 여객과 노동자와는 특별한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사다리 밑에 좌우로 늘어선 사복 형사는 용하게도 조선사람을 알아내어서는 붙들고 여행증명서를 검사하였다. 허숭도 김갑진도 증명서를 내어보였다.

 

"여행권 검사요"?

 

하고 갑진은 불쾌한 듯이 경관에게 물었다.

 

"여행권이 아니야, 증명서야, 신분증명서야."

 

하고 형사는 굳세게 여행권이라는 말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갑진을 눈을 흘겨보았다.

 

"어서 가세."

 

하고 허숭은 또 갑진이가 무슨 말썽을 부리지나 아니할까 하여 소매를 끌었다.

 

갑진은 형사에게 대꾸로 한번 눈을 흘기고 허숭의 뒤를 따랐다.

 


 

 

갑진이가 배만은 이등을 타자고 하는 것을 숭은 삼등을 주장하여 뒷 갑판 밑 삼등실로 내려갔다.

삼등실에서는 후끈하는 김이 올랐다. 구역나는 냄새가 올랐다. 벌써 들어와서 자리를 잡은 객들-그 중에 반수 이상은 조선 노동자였다-은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담요 조각을 깔고 드러누웠다. 뒤에 들어가는 사람은 먼저 들어간 사람이 잡은 자리의 한 부분을 얻어서 궁둥이를 붙였다.

 

숭도 한편 구석에 자리를 잡았으나, 갑진은 아무리 하여도 여기는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숭은 갑진의 가방을 빼앗아다가 제 가방 곁에다가 놓고, 갑진의 팔을 잡아 잡은 자리로 끌어다가 어깨를 눌러서 앉혔다.

 

갑진은 숭이가 하는 대로 복종하였다.

 

사람은 많건마는 다들 떠들지는 아니하였다. 마치 앞날의 알 수 없는 운명을 바라보는 듯이, 또 두고 온 고향의 산천과 이웃-그것은 그다지 유쾌한 기억을 자아낼 재료도 못 되련마는-을 생각하는 듯이 눈을 껌벅껌벅하고 앉았을 뿐이었다.

 

"자, 이 사람."

 

하고 숭은 갑진의 모자를 벗겨서 가방 위에 놓으며,

 

"오늘은 자네 평생에 처음 조선 대중과 함께 하는 날일세. 저 사람들이 얼마나 가난한지, 얼마나 영양불량인지, 얼마나 무식한지, 또 얼마나 더러운지, 또 무엇을 생각하는지, 또 어찌하여 고향을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떠나는지, 저 사람들의 장래가 무엇인지 좀 알아보게."

 

하고 웃었다.

 

갑진은 끄덕끄덕하였다.

 

삼등 선실은 찌는 듯이 더웠다-무더웠다. 배가 떠나기도 전에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배를 타 보는 모양인 노동자들과, 그 중에도 여자들은 멀미나기 전에 잠이 들려고 베개에다가 이마를 박고 애를 쓰지마는, 애를 쓰면 쓸수록 잠이 들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전전반측하는 불안의 상태는 그들 자신의 생명의 불안, 그 물건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젖먹이가 어미의 젖에 매달려서 보채는 양이 실내의 공기를 더욱 암담하게 하였다. 반백이나 된 늙은이가 멀거니 허공을 바라보고 앉았는 양도 갑진에겐 무겁게 내려누르는 무엇이 느껴졌다.

 

쿵쿵쿵쿵 하고 배는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쇠사슬 마찰되는 소리가 울려왔다. 가만히 앉아서도 배가 방향을 돌리는 것이 감각되었다. 여러 번 이 뱃길을 다녀본 듯한, 이들 중에는 개화꾼인 듯한 젊은패 몇 사람이 일본사람 식으로 다리를 꼬고, 두 팔로 무릎을 짚고 앉아서 서투른 일본말로 떠드는 것만이 있고는 모두 고요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갑판에 올라가서 해풍을 ?6.59.5쐬다든지, 또는 멀어가는 고향 산천을 바라본다든지 할 마음의 여유도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나를 어디나 편안히 살 곳으로 실어다 주오. 그저 살려주오. 못 살 데로 데려다 주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소"

 

하는 것 같았다.

 

"나가세, 좀 밖으로 나가세."

 

하고 갑진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몸의 더움에, 맘의 압박에 견딜 수가 없었다.

 

숭도 갑진을 따라 갑판으로 나왔다. 갑판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에이, 시원하다."

 

하고 갑진은 체조할 때 모양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시원한 해풍은 그의 명주 와이샤쓰를 보기 좋게 팔랑거렸다.

 

검푸른 바다, 밝은 달, 시원한 바람, 드문드문 반짝거리는 하늘의 별과 바다의 어선, 때때로 보이는 하얀 물결의 머리.

 

"어, 시원해."

 

하고 갑진은 구조정 밑, 조용한 난간에 가슴을 기대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부산항의 불이 신기루 모양으로 보였다. 오륙도 작은 섬들도 물결 틈에 앉은 갈매기와 같았다. 동으로 보면 망망대해다. 어디까지 닿았는지 모르는 물과 물결.

 

숭도 가슴에 막혔던 것이 쏟아져 나온 것같이 가벼워짐을 깨달았다.

 

"참 바다는 좋네그려. 밤 바다는 더욱 좋은데."

 

하는 갑진의 긴 머리카락도 기쁨에 넘치는 듯이 춤을 추었다.

 

"바다에 나와 보면 우주도 꽤 크이."

 

하고 숭은 맘 없는 대꾸를 하였다.

 

두 사람은 가지런히 서서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선실에서 보던 모든 무거운 생각을 해풍에 날려보내고 잠시 신선이나 되려는 듯이.

 

이 때에 뒤에서,

 

"여보세요!"

 

하는 여자의 말이 들렸다.

 

숭과 갑진이는 깜짝 놀라서 돌아섰다. 눈앞에는 머리를 땋아 늘인 십 오륙 세나 되었을까 한 여자가 서 있다. 달빛에 비친 그 얼굴은 마치 시체와 같이 창백하였다. 바람에 펄렁거리는 그 여자의 치마는 분명 남 인조견이었다.

 

숭과 갑진은 대답할 바를 모르고 멍멍히 섰다.

 

"저를 살려 주세요."

 

하고 여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속삭였다. 어느 사람에게 의지할 것인가 하는 듯하였다.

여자는 사람의 눈을 피하는 듯이 염치 불고하고 두 사람이 섰는 틈에 들어와 끼어 섰다. 숭은 두어 걸음 물러나서 여자의 설 자리를 비켜 주었다.

 

갑진은 곧 놀란 것을 진정하고 그 여자와 가지런히 서서 갑진의 특색인 쾌활하고 익숙한 어조로,

 

"웬일이요"?

 

하고 물었다.

 

여자는 또 한번 좌우를 돌아보았다. 숭은 여자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큰 갑판에서 바라보이는 곳을 막아섰다. 여자는 그제야 안심하는 듯이,

 

"저는 밀양 삽니다."

 

하고 여자는 억양 있는 경상도 말로 시작하였다.

 

"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의 빚을 져서 빚 값에 저를 팔았어요. 아버지는 일본으로 시집을 간다고 속이지마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까 갈보로 팔려가는 거래요."

 

하고 말이 아주 분명하였다.

 

"빚은 얼마나 되오"?

 

하고 갑진이가 묻는다.

 

"촌에 농사하는 사람치고 빚 없는 사람 어디 있나요? 울아버지 빚은 일백 오십 원이랍니다. 소를 한 마리 사느라고 오십 원을 꾼 것이 자꾸만 이자는 늘고, 농사는 안 되고 해서 그렇게 많아진 거래요. 소는 빼앗기고도 일백 오십 원이랍니다. 그러니 죽으면 죽었지 일백 오십 원을 어떻게 갚습니까. 그래서 저를 빚 값에 팔았읍데다. 오십 원 더 받고…"

 

하고 부끄러운 듯이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갑진의 맘에 이만하면 갈보로 살 생각이 나겠다 하리만큼 그 여자는 이쁘장하였다.

 

"학교에 다녔소"?

 

하고 숭이가 물었다.

 

"네. 우리게 보통학교 졸업했습니다."

 

갑진과 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만하기에 말이 이렇게 조리가 있는 것이다 하였다.

 

"대관절, 그럼 어떡허란 말요"?

 

하고 갑진은 성급한 듯이 결론을 물었다.

 

여자는 어린 듯이, 또 애원하는 듯이 갑진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그럼 날더러 이백 원을 내어서 물러 달란 말요"?

 

하고 갑진은 또 물었다.

 

"네."

 

하고 여자는 더욱 고개를 숙이면서,

 

"선생님 댁에 가서 무엇이든지 시키는 일은 다 해 드릴께 저를 물러 주세요. 밥도 질 줄 알고 방도 치울 줄 압니다. 갈보 되긴 싫어요!"

 

하고 여자는 울기를 시작했다.

 

"어, 이거 큰일났군."

 

하고 갑진은 숭을 돌아보며 기막힌 웃음을 하였다.

 

이 때에 웬 작자가 무르팍 바지를 입고 허둥거리며 오는 것이 달빛에 보였다. 그 작자는 분명 무슨 소중한 것을 찾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야요, 저 사람야요."

 

하고 여자는 두 주먹을 가슴에 꼭 대고 갑진의 곁에 바싹 다가선다. 마치 무서운 것을 보고 숨는 어린애 모양으로.

 


 

 

그러나 그 작자는 마침내 바람에 펄렁거리는 여자의 치맛자락을 보았다. 그리고는 붉은 헝겊을 본 소 모양으로 길을 막아 선 숭을 떠밀치고 여자의 곁으로 달려들어 여자의 팔을 꽉 붙들었다.

 

"이년이 왜 여기 나와 섰어"?

 

하고 불량한 눈으로 갑진과 숭을 둘러보며 일본말로,

 

"웬 사람들인데 남의 계집애를 후려내어, 고얀놈들 같으니."

 

하고 여자를 끌고 가려 하였다.

 

여자는 안 끌리려고 난간을 꼭 붙들었다. 여자의 모시 적삼 소매가 끊어져서 토실토실한 팔이 나왔다.

 

여자는 소리를 내어서 울며,

 

"살려 주세요, 네."

 

하고 갑진과 숭을 애원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웬 놈이야."

 

하고 갑진은 그 작자를 때릴 듯이 주먹을 겨누었다. 그러나 분이 난-갑진이가 그 여자를 꾀내는 줄만 안 그 작자는 다짜고짜로 갑진의 따귀를 때렸다. 그러는 동안에 옷소매를 찢긴 여자는 숭의 곁으로 와서 숭의 등에 낯을 비비며 울었다. 숭은,

 

"여보!"

 

하고 그 작자의 멱살을 잡아 홱 끌어 내었다.

 

그 작자는 숭의 주먹에 끌려 비틀거리며 갑진에게서 물러났다.

 

숭은 그 작자의 목덜미를 꽉 내려 누른 채로,

 

"왜 말로 못하고 사람을 때린단 말요? 세상에 당신헌테 얻어 맞고 가만 있을 사람 있는 줄 알았소? 우리가 이 여자를 꾀여냈다고 하니 누가 꾀여 냈단 말요. 이 여자가 서러운 사정을 하니까 우리가 듣고 있었을 뿐요."

 

하고 타이를 때에 갑진은 분을 못 이겨,

 

"이놈은, 이것은 웬 도둑놈야. 남의 집 딸을 도적하여다가 숫제 갈보로 팔아먹으려 들어. 이놈! 너는 좀 콩밥 먹지 못할 줄 알았니"?

 

하고 들이대어도, 그 작자는 암 말도 못하고 눈만 껌벅거렸다.

 

"여보."

 

하고 숭은 그 작자의 목덜미를 놓아 주며,

 

"이 여자가 당신을 따라가기를 싫어해. 또 법률로 말하더라도 제 뜻에 없는 것을 창기 노릇은 못 시키는 법이오. 허니까, 이 여자를 제 집으로 돌려 보내시오. 우리가 이 일을 안 이상엔 하관에 가서라도, 동경까지 가서라도 가만 있지는 아니할 것이니까. 어서 이 여자를 돌려 보내시오."

 

하였다.

 

"나도 돈 주고 샀소. 돈 주고 산 것을 어느 법률이 내놓란단 말요"?

 

하고 그 작자는 숭에게 꼭 달라붙은 여자의 손목을 잡아 끌며,

 

"가자, 들어가!"

 

하고 되살았다.

 

"여보."

 

하고 숭은 그 작자의 팔을 꽉 붙들며,

 

"당신이 이백 원에 이 여자를 샀다지? 옜소, 이백 원 줄테니 이 여자를 돌려보내시오."

 

하고 숭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주었다. 이백 원은 숭이가 가진 돈의 전부였다.

 

그 작자는 깜짝 놀라는 빛을 띠우더니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하, 당신 이 여자가 퍽 맘에 드시는 모양입니다그려. 그렇지마는 본값에 파는 장사가 어디 있어요? 하나만 더 내시오."

 

하고 왼손 식지를 내밀었다.

 

"삼백 원"?

 

하고 숭은 물었다.

 

"계집애 이만하면 삼백 원도 싸지요. 열 여섯 살이야요, 다 길렀지요."

 

하고 아주 흥정하는 상인의 어조였다.

 

그러나 숭에게는 백 원은 없었다. 숭은 갑진을 바라보았다. 갑진은 픽픽 웃더니,

 

"옜다, 이 더러운 놈아, 백 원 더 받아라."

 

하고 십원 지폐 열 장을 세어 주려다가,

 

"가만 있어라, 이 여자를 사올 때에 무슨 증서가 있겠지. 그 걸 받아야지."

 

하고 돈 든 손을 옴츠렸다.

 


 

 

그 작자는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 적삼 단추를 끄르고, 그 속주머니에서 쇠사슬을 맨 지갑을 꺼내어서, 달빛에 비치인 여러 가지 서류를 뒤져 인찰지에 쓰고, 수입인지 붙인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달빛에 읽어 보고,

 

"자,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대단히 분명하신데, 헤헤."

 

하고 누구를 줄까 하고 갑진과 숭을 둘러보다가 돈을 쥐고 있는 갑진에게 내어주었다.

 

배에서 내릴 때에는 아침볕이 하관의 시가에 찼다. 또 형사의 조사가 있었다. 그때에는 숭과 갑진을 따른 어린 계집애에게 대한 조사가 더 까다로왔다. 갑진은 어젯밤 배에서 삼백 원을 주고 샀다는 말을 웃음 섞어 말하고 그 표까지 내어보였다. 형사도 웃고 감복한 듯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그래 이 여자를 어찌 하시려우"?

 

하고 형사는 직업 의식을 버린 듯이 은근하게 물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소이다."

 

하고 갑진은 숭을 건너다보며,

 

"이 사람이 이백 원을 내고 내가 백 원을 내어서 샀는데, 이 계집애를 어떻게 분배를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법률깨나 배우고 지금 사법관 시험을 치르러 가는 길이지마는, 아직 실제 경험이 없으니 어디 당신이 판결을 내려주시구려."

 

하고 시치미 떼고 말하는 바람에, 형사 두 사람은 픽 웃고 다른 데로 가고 말았다.

 

"이 사람, 웬 수다야"?

 

하고 숭이 갑진의 팔을 끌었다. 형사들은 웃으며 두 사람을 힐끗힐끗 돌아보았다. 형사들 생각에 갑진과 숭과 계집애와 셋이 걸어가는 꼴이 우스웠던 것이었다.

 

"얘."

 

하고 갑진은 가방을 벤치 위에 놓으며 숭더러,

 

"이놈아, 돈을 다 없앴으니 동경 가서 무얼 먹고 사니? 이 색시를 잡아먹고 살 수도 없고."

 

하고 정말 걱정이 되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자네, 아직도 백 원은 있지"?

 

하고 숭도 미상불 걱정이 되었다.

 

"백 원은 있지마는 백 원을 가지고 둘이-둘이라니 이 색시도 먹고야 살지. 얘, 이거 뭣이고 큰일났다."

 

하고 갑진은 머리를 득득 긁더니,

 

"아무려나 통쾌하기는 했다."

 

하고 숭의 어깨를 두들기며,

 

"글쎄, 이 시골뜨기놈의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통쾌한 생각이 났어? 나도 얘, 모두 이백 원밖에 없는 돈에서 백 원 타내 꺼내려니까 손이 떨리더라. 뽐내기는 했지만두, 한번 뽐낸 값이 일금 삼백 원이라면 좀 비싼데, 하하하하."

 

하고 갑진은 유쾌하게 웃는다.

 

"헌데 이 색시를 동경으로 데리고 갈 수야 있나"?

 

하고 숭은 그 여자더러,

 

"집으로 가오, 표 사줄께."

 

하고 물었다.

 

"싫어요. 집에 가면 아버지가 또 팔아먹을걸요."

 

하고 여자는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의붓아버지야"?

 

하고 갑진이가 물었다.

 

"아니야요, 친아버지입니다."

 

하고 여자는 낯을 붉히며 대답하였다.

 

"아, 친애비가 제 자식을 팔아먹는담."

 

하고 갑진은 눈을 부릅떴다.

 

"울아버지만 그런가요. 우리 동네에서 딸 안 팔아먹은 사람이 몇이나 돼요? 빚에 몰리면 다 팔아먹는답니다. 장사 밑천 하려고도 팔고, 먹을 거 없어져도 팔고, 빚에 몰려서도 팔고…"

 

"제 몸뚱일 팔지, 그래 백지 제 자식을 판담, 에익!"

 

하고 갑진은 더욱 분개하며,

 

"그러니까 시골놈들은 무지하단 말야. 안 그런가"?

 

하고 발을 탕탕 구르며, 성냥을 픽 그어서 담배를 피워 문다.

 

"자식을 팔아먹는 아비의 맘은 어떠하겠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나를 생각해 보게."

 

하고 숭은 추연해진다. 숭의 눈앞에 눈에 익은 농촌의 참담한 모양이 나뜬다. 할수없이 숭과 갑진은 그 여자(이름은 옥순이었다)를 데리고 차를 탔다. 도무지 어울리지 아니하는 일행이었다.

 

그러나 도시락을 사도 셋을 사고, 과일을 사도 세 개를 사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옥순은 얌전한 계집애였다. 아무쪼록 적게 먹고 잠도 적게 자고 두 사람에게 매양 미안한 빛을 보였다.

 

그것이 가련하여 옥순이 듣는 곳에서는 두 사람은 돈 걱정은 아니하였다. 그래도 속으로는 여비가 걱정이 되었다. 무어라고 무슨 체면에 윤 참판에게 돈을 더 청하나. 그러지 아니하여도 본래 넉넉하게 준 돈을 무엇에다가 다 써버리고 무슨 염치에 돈을 더 달라나.

 


 

 

구월 어느 날 아침. 허숭은 윤 참판의 심부름으로 예산에 가고 없을 때, 저녁 때나 되어 윤 참판이 내객 몇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전보 한 장이 왔다.

 

"거 웬 전보냐."

 

하고 윤 참판이 물을 때에 문객은,

 

"기오수우, 기오수우."

 

하고 일본 말대로 그냥 읽었다.

 

"오, 허숭에게 왔구나. 이리 주게."

 

하여 윤 참판은 전보를 받아서 뜯어 보았다.

 

"고문 시험 본일 발표 귀하 입격."

 

이라고 하였다. 허숭은 고문 시험에 입격한 것이었다.

 

"응, 허숭이가 고등문관 시험에 급제했네그려."

 

하고 윤 참판은 자기 아들의 일이나 되는 듯이 몹시 기뻐하였다.

 

"허숭이가 누구오니까."

 

하고 어떤 객이 물을 때에 윤 참판은,

 

"내 사윌세, 사위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선이 어디 갔느냐."

 

하고 노인은 안 대청을 바라보고 불렀다.

 

"아가씨 후원에 계십니다."

 

하고 계집 하인이 뒤꼍으로 뛰어 갔다.

 

윤 참판은 대청 안락의자에 앉아서 딸이 오기를 기다렸다.

 

정선은 학교 동창인 동무 두 여자와 함께 후원으로부터 돌아왔다. 정선은 형의 복도 벗어서 하늘빛 하부다이 남치마에 은조사 깨끼저고리를 입었다. 날은 구월이지마는 아직 더웠다.

 

정선의 두 동무는 윤 참판을 보고 경례하고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동무들과 같이 건넌방으로 들어가려는 정선을 불러 윤 참판은,

 

"숭이가 고등문관 시험에 급제했다는 전보가 왔다. 옛다, 보아라."

 

정선은 마지못하여 아버지의 손에서 전보를 받아 들고 읽었다. 건넌방에 있는 두 동무들은 정선을 향하여 눈짓을 하고 아웅을 하였다.

 

"잘 됐어요."

 

하고 그 전보를 탁자 위에 놓았다.

 

윤 참판은 정선의 표정을 보려는 듯이 빙긋 웃는 눈으로 정선을 보았다. 정선은 아무 감동도 없는 듯이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얘, 숭이가 누구냐"?

 

하고 한 동무가 정선의 귀에다 입을 대었다.

 

"누구는 누구야, 정선이 허즈번드이겠지."

 

하고 다른 동무가 코를 흥, 하였다.

 

"이 애는."

 

하는 정선은 코 흥 하는 동무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때렸다.

 

"그러냐. 네 서방님 될 사람이냐."

 

하고 귀에 대고 말하던 동무가 묻는다.

 

"아냐. 우리 집에 있는 학생야-고학생야."

 

하고 정선은 시들하게 대답하였다.

 

"오. 그, 저, 행랑에 있던 그 사람이로고나, 보성전문학교 학생"?

 

하고 한 동무가 눈을 크게 떴다.

 

"에"?

 

하고 코 맞은 동무가 놀란다.

 

"너 그 사람한테 시집가니"?

 

하고 또 한 동무가 눈을 크게 뜬다.

 

"이 애들은."

 

하고 정선은 몸을 뿌리친다.

 

그 날 저녁 차에 허숭이가 왔다.

 

"전보 왔다."

 

하고 윤 참판은 숭이가 인사도 다 하기 전에 서랍을 열고 전보를 꺼내어 숭에게 주었다.

 

숭은 그 전보를 받아 읽었다. 숭은 기뻤다. 그의 숨결은 높았다. 그것이 무엇이 그리 끔찍한 것이길래, 하면서도 역시 기뻤다. 숭은 팔백여 명 수험생, 전 일본에서 모인 수재 중에서 뽑힌 소수 중에 자기가 든 것이 기뻤다.

 

"갑진군은 어찌 되었습니까"?

 

하고 숭은 자기의 기쁨을 감추고 물었다.

 

"갑진이 아직 소식이 없다."

 

하고 윤 참판은 숭의 손에서 다시 전보를 받아 들었다.

 

"거기 앉어."

 

하여 윤 참판은 숭을 앉힌 뒤에,

 

"인제 고등문관 시험도 지났으니, 혼인 일을 작정해야지."

 

하고 혼인 문제를 꺼내었다.

 


 

 

"저를 지금까지 공부를 시켜 주시고, 또 일본 갈 여비까지 주시고, 또 따님과 혼인 말씀까지 하시니, 그 은혜를 무어라고 말씀할 수가 없습니다마는, 저같이 집 한 간도 없고 돈 한 푼도 없는 놈이 지금 혼인을 어떻게 합니까. 시험에 합격을 했댔자 곧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숭은 거절하는 뜻을 표하려 하였다.

 

"그건 염려할 것 없지. 내가 그것을 모르는 배가 아니고, 그러니까 그것은 염려할 것 없고, 만일 내 딸이 맘에 안 들면 그것은 할 수 없지마는…나는 접때에도-인제 작년이지마는-말한 것과 같이 너를 자식같이 믿으니까. 아다시피 내가 나이 많고 집 일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거든.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겠지마는 어디 믿을 사람이 쉬운가. 또 정선이도 인제 이십이 다 되었으니 혼인을 해야지. 도무지 안심이 안 되어. 요새 이십이 넘도록 시집 안 가는 계집애들이 많지마는 어디 다들 믿고 맘을 놓을 수가 있다고. 나는 사람만 보지, 문벌이나 재산이나 도무지 보지 않어."

 

하고 윤 참판은 아버지로의 걱정, 재산가로의 걱정, 세상을 위한 걱정까지도 하여 가며 숭의 승낙을 구하였다.

 

숭은 한마디로,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따님과 혼인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는 유순이라는 여자가 있고, 또 저는 일생을 농촌에서 농민 교육 운동을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따님과 혼인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따님과 혼인을 하며는, 첫째로 유순이라는 여자에게 대한 의리를 저버리게 되고, 둘째는 농촌에, 농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게 됩니다. 저는 단연히 농민에게로 돌아가야 하고, 저를 믿고 기다리고 있는 유순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숭의 인격의 명령이요, 양심의 명령이었다. 만일 이렇게 대답했다면 얼마나 갸륵하였을까.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숭에게는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의 눈 앞에는 서울에서도 미인으로 이름있는 정선이가 있지 아니하냐. 정선은 숭의 맘을 아니 끌지 아니하였다. 지금까지는 종과 상전과 같아서 평등의 지위에서 교제한 일은 없지마는, 이삼 년간 숭이가 이 집에 있는 동안에는 먼 빛에 가까운 빛에 볼 기회도 많았고, 인선이가 죽고 숭이가 이 집 살림의 대부분, 그 중에도 회계 사무를 맡은 뒤로부터는 숭과 정선이 마주서서 이야기할 기회도 없지 아니하였거니와, 정선의 옥 같은 살빛, 조그맣고 모양 있는 손, 무엇을 생각할 듯한 눈, 양반집 아가씨다운 기품, 그것은 울려 나오는 피아노 소리와 아울러 숭의 맘을 끌지 아니할 수 없었다-그러한 정선이가 있지 아니하냐. 게다가 그는 재산이 있다. 누구나 말하기는 정선에게는 삼천 석 이상이 돌아오리라고 한다. 그 어머니가 전주 친정에서 가지고 온 재산의 절반은 당연히 정선에게로 오리라고 한다.

 

어디로 보아 이 청혼에 거절할 이유가 있나. 숭은 속으로는 백번 승낙하였다. 그러나 숭은 무슨 말이나 한 마디 거절하는 말을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거절하는 말은 정말 거절이 아니 될 정도의 말이 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숭은 한참이나 말을 못하고 가만히 앉았다. 그는 고향에 있는 유순이를 생각하였다. 유순이가 옥수수 삶은 것을 치맛자락에 싸 가지고 아직 어두운 새벽에 정거장 길에 나와서 자기를 기다리던 것, 말은 못하면서도 자기의 가슴에 안기던 것, 자기가 그 등을 만지고 머리를 만진 것, <내, 내년에는 올께>하고 자기가 그에게 약속을 준 것과, 순진한 유순은 그 가슴에 자기의 모양을 그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였다.

 

숭은 동경에 가서 고등문관 시험을 치르느라고, 또 서울 돌아와서는 성적 발표를 기다리느라고 구월이 되도록 고향에를 못 갔다. 유순은 얼마나 숭을 기다렸을까. 몇번이나, 아침 저녁으로 서울서 오는 차를 바라보고, 이번에나 이번에나 하고 기다렸을까. 만일 숭이가 윤 참판의 딸 정선과 혼인을 하여버린다 하면 유순은 얼마나 슬퍼할까. 얼마나 실망하고 울고 인생을 원망할까. 조선의 딸의 매운 마음으로, 혹은 물에 빠져 죽지나 아니할까. 그 뿐 아니라 숭 자신은 의리를 배반하는 것이 아닐까.

 

"또 농민에게 간다던 맹세는 어찌하나. 일생에 내 한 몸의 고락을 생각지 아니하고, 이 몸을 가루를 만들어서라도 불쌍한 농민-조선 민족의 뿌리요 줄거리 되는 농민을 가르치고 인도하여 보다 힘있고 보다 안락한 백성을 만들자던 맹세는 어찌하나. 한 선생과 여러 동지들에게 큰소리 하던 것은 어찌하나. 아니다, 아니다. 나는 윤 참판의 청혼을 거절하여야 한다. 그리고 유순과 혼인을 해 가지고 농촌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숭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서 윤 참판을 바라볼 때에는 그러한 담대한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싱거운 일이다!"

 

하고 숭은 다시 생각을 돌려 본다.

 

"내가 유순과 약혼을 하였느냐. 그의 몸을 버렸느냐. 내가 유순에게 대하여 지킬 의리가 무엇이냐. 내가 유순을 사랑하는 것은 내 맘밖에 아는 이가 없고, 유순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유순의 맘밖에 아는 이가 없지 아니하냐. 하느님? 신명? 그런 것이 정말 있느냐. 있기로니 내가 유순에게 죄를 지은 것이 무엇이냐"?

 

또 숭은 이렇게 생각해 본다-

 

"유순은 좋은 여자다. 얼굴이나 몸이나 또 맘이나 다 든든하고 아름다운 여자다. 그러나 정선은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유순은 보통학교밖에 다닌 일이 없는 시골 계집애, 정선은 신식으로 구식으로 모두 다 컬처가 높은 서울 양반집 딸…."

 

하고 숭은 여기서 스스로 제 생각에 아니 놀랄 수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평소에 갑진이가 시골, 서울, 상놈, 양반 하는 것을 비웃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자기에게도 시골보다도 서울을, 상놈보다도 양반을 좋아하는 생각이 뿌리깊이 숨은 것을 깨달은 까닭이다.

 

"나와 같이 고등한 교육을 받고, 고등한 정신 생활을 하는 사람이"

 

하고 숭은 생각을 계속한다.

 

"일개 무식한 시골 여자하고 일생을 같이할 수가 있을까. 불만이 아니 생길까. 아니다! 도저히 불만이 아니 생길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유순과 혼인을 할 생각을 하는 것은 일종의 호기심이다. 실수다. 그것은 다만 나 자신을 불행하게 할 뿐이 아니라, 그보다도 더 유순이라는 죄없는 여자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나를 불행하게 할 권리는 있다 하더라도 남, 유순을 불행하게 할 권리는 없지 아니하냐. 그렇고말고!"

 

숭은 마치 큰, 무서운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쁨과 가벼움을 깨달았다. 이러한 분명한 진리를 어떻게 지금까지 생각지 못하였던가, 하고 앞이 환히 열림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농촌 사업은"?

 

하고 숭은 또 양심의 한 편 구석에서 소리침을 깨달았다. 그러나 숭의 머리는, 양심(?)은 마치 지금까지 가리워졌던 모든 운무가 걷힌 것같이 쾌도로 난마를 끊듯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다.

 

"농촌 사업은 정선이하고 하지. 정선이야말로 훌륭한 동지요, 동료가 될 수 있는 짝이 아닌가. 아아,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고 숭은 한번 한숨을 내어 쉬었다. 가슴에 막힌 것이 다 뚫린듯이 시원하였다. 그리고 자기 전도가 백화가 만발한 꽃동산같이 보였다. 그의 양심, 의리감, 진리감, 이러한 것들은 그 분홍 안개 속에 낯을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어서 대답해."

 

하는 윤 참판의 말이 떨어진 것을 다행으로 허숭은,

 

"그처럼 말씀하시니 저를 버리시지 아니하신다면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분명히 승낙하는 뜻을 표하였다.

 


 

 

허숭과 윤 참판의 딸 정선과의 약혼은 성립되었다. 정선으로 말하면 원래 숭을 사랑한 것이 아닐 뿐더러 집에 와서 심부름하던 시골사람을 제 남편으로 삼으려는 아버지의 처사가 불쾌하기조차 하였다. 그렇지마는 정선은 아버지의 뜻이 곧 제 뜻인 것을 안다. 딸은 혼인지사에는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라는 조선의 딸의 전통적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는 이에 반항하려는 생각은 없고 도리어 숭을 사랑하려고 힘을 썼다. 숭의 좋은 점을 종합해 보았다.

 

숭의 건강, 도저히 서울 양반계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차라리 야만적이라고 할 만한 건강, 그의 남성적인 행동, 힘있게 다문 입, 보기에는 좀 흉하지마는 억센 손, 어깨, 가슴통, 그의 재주, 그의 아첨하는 빛 없는 솔직한 표정과 음성, 여자에 대하여 심히 범연한 듯한 것, 그의 거무스름한 살빛, 좀 과히 많은 듯한 눈썹, 두툼한 입술, 얼른 보기에는 둔하다고 할 만하도록 체격과 태도가 무거운 것,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정선은 숭을 남성적이요, 영웅적인 남편을 만들었다.

 

숭의 깊이있는 눈과 힘있게 뻗은 코는 더구나 정선에게 인상이 깊었다. 다만 꺼리는 것은 그가 고래로 천대받던 시골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외국사람과 같은 생각을 주었다. 시골사람이면 물장수, 기름장수, 마름, 산소 주인, 이런 것밖에 더 상상할 수 없는, 해라나 하게 이상으로 말할 사람이 없는 듯한 그런 관념을 가진 정선이, 더우기나 그의 어머니가 문벌 낮은 시골여자라는 것을 일가간에서도 수군거리는 것을 아는 정선이에는 이것이 고통이 아니 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위로되는 것은 윤씨 집에서 가장 존경 받는 어른인 한은 선생이 그 딸들을 모조리 시골사람에게 시집보낸 것이었다. 한 사위는 함경도, 한 사위는 평안도, 한 사위는 황해도, 그리고 한은 선생이 가장 사랑하는 손녀 은경도 시골 사람에게 시집보낸다고 늘 말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한은 선생은 계급 타파, 지방 감정 타파를 위하여서도 이러한 혼인 정책을 쓰지마는, 또 한 가지는 강건한 혈통을 끌어 들이려는 것도 한 까닭이었다.

 

이 모양으로 정선은 그 아버지의 자기 혼인에 대한 처분을 순복하였다.

 

정선보다도 이 약혼에 타격을 받은 이는 갑진이었다. 갑진은 떼논 당상으로 정선은 자기의 아내로 생각하였고, 또 윤 참판집 재산의 반분은 의례히 제게로 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리하던 것이 그는 고문 시험에 불합격이 되고(이것은 갑진의 변명에 의하면 자기가 치른 행정과 시험이, 숭이가 치른 사법과 시험보다 어렵다는 것과, 또 자기는 원래 학자 되기를 지원하기 때문에 시험을 도무지 중대시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제 또 그것이 이유가 되어 (갑진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름다운 정선과 그 재산을 허숭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사실상 숭이라는 경쟁자가 아니 나섰던들 정선은 갑진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숭이가 고문 시험에 합격을 못하였더라도 아마 그러하였을 것이다.

 

"이놈아, 구구로 있지, 백지 네까짓놈이 고문 시험을 치르어"?

 

하고 동경 가는 찻속에서 뽐내던 갑진의 코가 납작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배에서 삼백 원에 산 계집애도 동경에 있는 동안에 숭보다 갑진을 따랐다. 그래서 마침내 갑진의 것이 되어 버렸다. 이 계집애는 지금 밀양 제 친정에 있거니와 불원에 갑진의 혈육을 낳을 것이다. 갑진이가 울고 불고 안 떨어진다는 이 여자를 밀양으로 쫓아보내고 서울로 온 것은 이 말이 윤 참판의 귀에 들어갈 것을 두려워함이다.

 

허숭과 윤정선과의 약혼이 발표된 후로 갑진은 윤 참판 집에서 발을 끊어버렸다.

 

혼인 날은 시월 보름이었다. 시월 보름은 공교하게도 음력으로는 구월 보름이었다. 시월 십 오일 오후 세시, 정동 예배당에서 허숭과 윤정선은 만인이 다 부러워하는 혼인식을 하기로 되어 시월 초승에 벌써 청첩이 발송되었다. 허숭측 주혼자로는 숭의 청에 의하여 한민교의 이름을 썼다.

 

한 선생은 속으로 숭의 이 혼인에 반대의 생각을 가졌으나, 이왕 약혼이 된 것을 보고는 오직 내외 일생에 행복되기를 빌었다.

 

"허군."

 

하고 한 선생은,

 

"그리되면 서울서 변호사 생활을 하시오."

 

하고 약혼했다는 보고를 듣던 날, 숭에게 질문의 뜻을 품은 권고를 하였다.

 

숭은 한 선생의 이 간단한, 평범한 말이 심히 가슴을 찌름을 깨달았다. 마치 한 선생이 자기의 비루한 속을 꿰뚫어 보고 조롱하는 것 같이도 생각하였다.

 

"농촌으로 갑니다."

 

하고 숭은 대답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있나. 서울서 생장한 부인이 농촌 생활을 견디오? 또 농촌 사업만이 사업의 전체는 아니니까, 변호사 생활을 하는 것도 민족 봉사가 되지요. 돈벌기 위한 변호사가 되지 말고 백성의 원통한 것을 풀어주는 변호사가 된다면 그것도 민족 봉사지요. 또 변호사란 사람을 많이 접촉하는 직업이니까 좋은 사람을 많이 고를 기회도 있겠지요. 링컨도 변호사 아니오"?

 

하고 한 선생은 숭의 마음을 안정케 하였다.

 

숭은 마치 연기가 자욱하여 숨이 막힐 듯한 방에 갇혀 있다가 환하고 시원한 바깥으로 나아갈 문을 찾은 듯하였다. 한 선생의 이 말은 숭 자기의 맘을 안정시키는 말임을 잘 안다. 그러하기 때문에 숭은 한 선생의 발 앞에 엎드려 그 발등을 눈물로 씻고 싶도록 고마왔다.

 


 

 

나중에 한 선생은,

 

"무엇이든 개인주의로, 이기주의로만 마시오. 허군 한 몸의 이해와 고락을 표준하는 생각을 말고 조선사람 전체를 위하여 하겠다는 일만 하시오. 그 생각으로만 가지면 서울에 있거나 시골에 있거나 또 무슨 일을 하거나 허물이 없을 것이오."

 

하였다.

 

이 말에 허숭의 가벼워졌던 몸은 다시 무거운 짐으로 눌리는 것 같다.

 

"과연 내 혼인이 조선사람 전체를 위하여 내 몸을 바치기에 가장 적당한 혼인일까"

 

하고 허숭은 생각하고 거기 대한 대답을 아니하기로 힘을 썼다.

 

허숭이 집에-윤 참판집에, 지금은 처가에 돌아왔을 때에는 양복집에서 와서 기다리는 지가 오래였다.

 

"글쎄 어디 갔다가 인제 오시우"?

 

하고 정선이가 숭을 대하여 눈을 흘겼다. 벌써 그만큼 친밀하여진 것이었다.

 

"왜 걱정하셨어요"?

 

하는 허숭의 말에,

 

"하셨어요? 다 무에야? 했소? 그러지. 그저 시골뜨기 티를 못 버리는구려."

 

하고 정선은 서양부인이 하는 모양으로 숭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했다. 허숭은 약혼한 뒤에도 정선에게 극존칭을 썼다. 말이 갑자기 고쳐지지를 아니한 것이다. 정선은 그럴 때마다 오금을 박았다. 정선은 아무도 다른 사람이 없을 때에는 숭에게 와서 안기기도 하고, 제 조그마한 손을 숭의 큼직한 손에다가 갖다 쥐어주기도 하였다.

 

"자, 겨냥해요. 감은 내가 골랐으니."

 

하고 정선은 숭의 저고리 단추를 끌렀다. 귀에 연필을 낀 젊은 양복장이는 권척을 들고 빙그레 웃으면서 사랑하는 두 남녀의 하는 양을 보았다.

 

"무슨 양복이오"?

 

하고 숭은 저고리를 벗으며 웃었다.

 

"아이, 참! 자, 어서!"

 

하고 정선도 기가 막히는 듯이 웃었다.

 

숭은 연미복과 모닝과 춘추복 한 벌, 동복 한 벌, 딴 바지 하나씩 껴서 춘추 외투 한 벌, 겨울 외투 한 벌을 마추고, 정선도 혼인식에 입을 드레스 기타 철 찾아 입을 양복 일습(一襲)을 마추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집에 있는 침모 외에 임시로 여러 침모들을 고용하여 신랑 신부의 의복 금침을 마련하고, 또 서양식 장농과 조선식 장농과 침대 같은 것도 마련하였다. 그것뿐 아니라 윤 참판은 허숭이가 장차 변호사를 개업할 것을 고려하여 재판소도 가깝고 조용도 한 정동에 한 사십 간 되는 집을 사서, 일변 수리도 하고 일변 도배하고 살림 제구를 준비하였다. 살림 제구뿐 아니라 남녀 하인들까지도 준비하였다.

 

"너희들이 살 집이니 너희들 맘대로 꾸며라."

 

하여 윤 참판은 숭과 정선에게 집을 수리하는 전권을 주었다.

 

정선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 하여서는, 숭이 미국 영사관 모퉁이에서 기다리다가 둘이 나란히 새 집으로 들어가서,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하고 도배장이와 하인들에게 잔소리를 하였다. 그리고는 장차 어떻게 할 것까지도 의논을 하였다. 그 계획은 거의 날마다 변하는 것이었다.

 

정선은 이 집이 친정집만 못한 것이 불평이었다. 더구나 양실이 없는 것과 넓은 정원이 없는 것이 불평이었다.

 

"이 집이 협착해서 어떻게 살어!"

 

하고 정선은 가끔 가다가 짜증을 내었다. 그럴 때에는 숭은 놀랐다. 사십 간 집, 이렇게 좋은 집이 협착하다는 정선을 어떻게 섬겨가나 한 것이었다.

 

"가만 있으우, 내 변호사 노릇 해서 돈벌어서 저 석조전만한 집을 하나 지어 드리리다."

 

하고 웃었다. 그러나 이 말을 한 끝에는 숭은 스스로 놀랐다. "어느 새에 나는 내 집만을 크게 꾸미려는 생각이 났는가, 이것이 과연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아니요, 조선 전체를 생각함인가"하고.

둘째로 정선이가 이 집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은 대문이 평대문인 것과, 바로 대문 앞까지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숭은 변호사로 돈을 벌어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서울에서는 숭과 정선과의 약혼은 청년 남녀간에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키었다. 일개 시골 고학생과 서울 양반 만석꾼의 딸과의 배필, 청년 수재와 미인 재원과의 배필, 어느 점이나 센세이션거리 아니되는 것이 없었다.

 

모모 잡지의 시월호에는 숭과 정선과의 사진이 나고, 시와 같이 아름다운 기사가 났다.

 

이 혼인과 한 쌍이 되는 혼인이 동일 동처에서 거행되게 되었으니, 그것은 한은 선생의 손녀 은경과 청년 발명가 윤명섭과의 혼인이다.

 

이 혼인에도 한민교가 관계가 되었다. 그것은 한 선생이 한은 선생에게 윤명섭을 소개하고 그 연구비 보조를 청촉하였더니, 한은 선생은 윤명섭의 인물과 내력을 듣고 내렴에 사위의 후보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복잡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이건영 박사 문제, 이건영 박사와 심순례라는 여자와 의혼이 되어 서로 사랑의 말을 주고받고 또,

 

"선생님, 심양은 참으로 제가 바라던 여자입니다."

 

라고까지 하다가 약 일 개월 전부터 돌연히 태도가 변하였다. 이 박사는 심순례에 대하여 피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 태도를 본 순례는 그 아버지 심 주사에게 말하고 심 주사는 한 선생을 청하여 말하였다.

 

한 선생은,

 

"그럴 리 없으니 염려 마시오."

 

하고 심 주사를 돌려 보내고는 곧 이 박사를 찾아서 그 연유를 물었다.

 

그 때 이 박사의 대답은,

 

"제가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그것은 심양과의 혼인이 저보다도 심양에게 큰 불행일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로는 관계가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끊는 것이 심양을 위한 도리인가 합니다."

 

함이었다.

 

이 박사의 말을 들은 한 선생은 크게 놀랐다. 이 일은 도저히 있을 일이 아니었다. 그가 믿던 이건영은 이러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건영이가 심순례에 대한 약속을 헌신짝같이 내어버리는 것은, 그가 의리라는 관념을 잃어버렸거나 또는 여자를 희롱한 것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이 중의 어느 것도 한 선생이 평소에 믿고 있던 이건영 박사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정말요"?

 

하고 한 선생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건영 박사에게 물었다.

 

"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고 이 박사는 자신있는 듯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이 박사는 심순례를 사랑하지 아니한단 말이오"?

 

하고 한 선생은 다시 물었다.

 

"심순례를 사랑은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지마는 심순례와는 아직 혼인을 약속한 일은 없었습니다."

 

"여자를 사랑하는 것과 혼인을 약속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오"?

 

하고 한 선생은 다시 물었다.

 

"사랑이 혼인의 전제는 되겠지요. 그러나 사랑과 혼인과는 전연 다른 것인가 합니다."

 

"그러면 심순례를 사랑은 하지마는 혼인을 못하겠단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오"?

 

"이 혼인이 두 사람에게 행복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행복되지 못하오"?

 

"……"

 

"그러면 처음부터 이 여자와는 혼인할 생각을 아니 두고 사랑을 시작하셨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혼인할 생각을 가지고 사랑하였소"?

 

"네."

 

"그러면 어째서 그 사랑이 변하였소"?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변하였소"?

 

"……"

 

"그 여자와 혼인해서는 아니 될 무슨 사정이 생겼나요"?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어째서 그동안 거진 반년이 가깝도록 그 여자에게는 혼인한다는 신념을 주어 놓고, 그 여자의 집에서는 혼인 준비까지 하고 있는 이 때에 돌연히 그 여자와 교제를 끊는다고 하시오"?

 

"기실은 부모가 반대를 하십니다."

 

하고 이 박사는 고개를 숙인다.

 

"부모께서"?

 

"네."

 

"부모께서 무에라고 반대를 하시는가요"?

 

"이 혼인이 합당하지 아니하다고요."

 

"무슨 이유로"?

 

"그것까지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박사는 부모의 반대를 예상하지 아니하고, 심순례와의 혼인을 목적하고 심순례라는 여자를 사랑하였는데, 불의에 부모께서 반대를 하시니까 못한단 말씀이오"?

 

"그렇습니다. 자식된 도리에, 십여 년이나 못 뫼시던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여서까지 제가 사랑하는 여자와 혼인을 할 수야 있습니까"?

 

하고 이 박사는 가장 엄숙한 태도를 취하였다.

 


 

 

한 선생은 이윽히 이건영을 바라보며 그의 얼굴과 눈에 나타난 양심의 말을 읽으려는 듯이 가만히 생각하고 있더니 비장하다고 할 만한 어조로,

 

"나도 이 박사를 지사로 믿고 또 친구로 사랑하오. 그러니까 나는 이 박사에게 생각하는 바를 꺼리지 아니하고 말하오마는, 이 박사의 이번 일은 크게 잘못된 일이오. 이 박사는 자기의 인격의 약점을 부모에게 대한 의리라는, 듣기에 매우 노블한 말로 꾸미려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아니하오."

 

"선생님, 그것은 저를 너무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고 이건영은 분개하였다.

 

"내가 이 박사를 크게 믿던 바와 어그러지니까 하는 말이오."

 

하고 한 선생은 이건영을 책망하는 눈으로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제가 부모에게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을 어찌해서 이해하시지 아니합니까"?

 

하고 이건영은 자못 강경한 어조로 항의하였다.

 

"이 박사는 그러면 심순례라는 여자가 부모께서 반대하시는 바와 같이 이 박사의 배필이 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오"?

 

하고 한 선생은 다시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저는 심양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모가 반대하시니까, 자식이 되어서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까지 제가 좋아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어찌해서 옳지 아니합니까. 저는 요새 청년들이 연애는 자유라고 해서 부모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에 반감을 가집니다. 자식된 자는 혼인 같은 중대사에 있어서는 부모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고 건영은 뽐내었다.

 

"이 박사의 말씀이 대단히 옳소이다."

 

하고 한민교 선생은 앉은 자세를 고치어 몸을 교의에 기대고,

 

"허지마는, 이 박사에게는 두 가지 과실이 있소이다. 첫째는 만일 그렇게 부모의 의사를 존중한다 하면 심순례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부모의 의향을 듣지 아니한 것이외다. 둘째는 이 박사가 부모의 받으실 타격과 심순례라는 여자가 받을 타격과의 경중을 잘못 판단한 것이외다. 만일에 이 박사가 부모께서 반대하심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심순례와 혼인을 하신다면, 부모께서는 응당 불쾌하심을 가지실 터이니 그만한 정도의 타격을 받으실 것이외다.

 

그러나 이제 이 박사가 심순례와 혼인을 아니 하신다면, 심순례는 여자의 일생에 그 이상이라고 할 것이 없는 대타격을 받을 것이외다. 혹 그 여자는 자살을 할는지도 모르고, 혹 그 여자는 일생을 혼인을 아니하고 혼자서 불행한 생활을 할는지도 모를 것이외다. 그렇다 하면 부모께서 받으실 타격은 가벼운 타격, 스러질 수 있는 타격이지마는, 심순례가 받을 타격은 회복할 수 없는 무거운 타격일 것이외다."

 

하고 한 선생은 어조를 고치어,

 

"그뿐 아니라 원래 의리란 사회 존립을 중심으로 보면 가까운 데보다 먼 데 더 무거울 것이외다. 가령 채무로 본다하면, 형제간에 또는 친우간에 갚을 빚보다도 서투른 이에게 갚을 빚이 더 무거운 빚이외다. 왜 그런고 하면 가까운 이는 여러 가지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지마는, 서투른 남은 그러할 수가 없는 것이외다. 원래 도덕이란 나와 및 내게 속한 이를 위하여 나 이외 사람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것이 본의니까, 윤리학을 연구하신 이 박사는 나보다도 그 점을 잘 아실 줄 압니다."

 

하고 한 선생은 한층 소리를 높이고 한층 힘을 더하여,

 

"별로 이유도 없는<부모께서는 심순례라는 여자를 모르시니까 심순례 개인에 관한 무슨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오>, 부모의 반대를 이유로 혼인을 믿게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한 뒤에 그 여자를 차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칭찬할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지 아니하시오"?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아니합니다. 행복될 가망이 없는 혼인은 미리 아니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이건영은 대항하는 어조였다.

 

"이 박사는 조선의 지도자가 되려거든 그 개인주의 행복설의 도덕관을 버리시오!"

 

하고 한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선생은 일어나서 마루 끝에 서서 남산을 바라보면서도 가끔 고개를 돌려 이건영을 엿보았다. 그는 이건영의 입에서,

 

"제 생각이 잘못되었습니다."

 

하는 말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한 선생은 이미 누구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한은 선생이 이건영으로 그 손녀 은경의 사위를 삼으려 한다는 말이었다. 한은 선생은 그 집에 이건영을 청하여 만찬을 대접하고 그 석상에서 그 부인 이하 모든 가족을 이건영에게 소개하였고, 그 자리에서 은경도 소개하였다.

 


 

 

은경은 그 날 이건영이 보기에 대단히 귀족적이었다. 몸이 갸냘프나, 그 갸냘픈 것이 도리어 건영에게는 귀족적으로 보였다. 그 얼굴이나 몸맵시나 이 세상 사람은 아닌 듯한 우아함이 있었다. 이건영의 생각에 이 우아함은 도저히 심순례에게서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때에 이건영은,

 

"아아, 내가 왜 벌써 심순례라는 여자와 깊이 사귀었나. 그를 내 아내로 알고 있었다. 내게는 그보다 더 훌륭한 아내가 있지 아니한가. 아아, 내가 경솔하였다!"

 

이렇게 후회하였다.

 

그러나 이건영은 다시 도망할 길을 찾아내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심순례와 약혼한 것은 아니어든, 약혼을 발표한 것은 아니어든"

 

하고 혼자 다행으로 여겼다.

 

딴은 이건영은 심순례와 약혼은 아니하였다. 한 선생이 심 주사의 뜻을 받아 이건영에게 약혼을 청할 때에 이건영은,

 

"선생님, 그것은 일편의 형식이 아닙니까. 약혼은 다 무엇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한 선생은 그대로 믿고, 심 주사 내외와 심순례도 그대로만 믿었다. 그리고 이 박사의 취직 문제가 해결이 되는 대로 혼인식은 거행될 것으로 믿었다. 사실상 심 주사 집에서는 혼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건영이가 공주에 가 있는 동안에 순례에게 하루 건너 한 장씩 보내는 편지를 보고는 아무도 이 혼인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 편지들 중에 아무 것이나 한 장을 골라 눈에 뜨이는 대로 읽어 보자-

 

"어젯밤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소. 그것은 웬일인지 아시오? 그대 때문이오. 그대를 내 품에 품어 영원히 놓지 아니하고 싶은 때문이오"

 

또 어떤 곳에서는,

 

"아아, 내 순례여. 이 세상에 오직 하나인 내 순례여. 그대는 어떻게 이렇게도 내 피를 끓게 하는가, 내게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였던 정열이 어떻게도 그대의 고운 눈자위, 보드라운 살의 감촉으로 이렇게도 불이 타게 하는가. 아아, 그대의 살의 감촉, 그 체온!"

 

이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편지가 온 뒤로는 통신이 뚝 그쳤다. 그가 공주를 떠나 광주로 목포로 다니는 동안에는. 그가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그는 순례에게 대해서는 편지 한장, 말 한마디 없었다.

 

이것이 곧 은경에게 관한 말을 들은 뒤였다. 이 말을 들은 것은 공주에서였다. 한은 선생은 공주에 있는 그의 족질을 시켜 이건영에게 서울 오는 대로 만날 것을 말하였고, 그 족질은 이것이 혼인에 관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한은 선생의 족질이라는 이는 미국에서 이건영과 동창이었던 사람이다.

 

한 선생은 이러한 사정을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나 대강은 들었다.

 

"그러나 설마"?

 

하고 한 선생은 이건영을 믿어서 스스로 부인하였다. 은경과 건영과의 혼인말이 심 주사 집에까지 굴러 들어가서, 심 주사가 한 선생을 찾아왔을 때에도 한 선생은,

 

"이 박사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십년을 못 볼 곳에 있더라도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여 굳세게 부인하였다.

 

"선생님, 저는 갑니다."

 

하고 이건영이 일어났다.

 

"내게 더 할말이 없소"?

 

하고 한 선생은 힘있게 물었다.

 

"없습니다."

 

하고 이건영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대문 밖에 나섰다.

 

한 선생이 이건영을 따라 대문 밖에 나설 때에, 무심코 한 선생집을 향하여 걸어 오던 심순례가 이건영을 보자마자,

 

"악!"

 

한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비틀비틀 땅에 쓰러지려 하였다. 한 선생은 얼른 순례를 안아 일으키었다.

 

순례가 한민교의 팔에서 기절하는 것을 보고 이건영은 손에 들었던 지팡이를 땅에 떨어뜨리도록 놀랐다. 그러나 그는 곧 지팡이를 집어들고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 나가버렸다.

 

한민교는 순례를 안아서 방에 들어다 뉘었다. 부인과, 한 선생의 딸 정란은 놀라서 어안이 벙벙하였다.

 

"냉수 떠와!"

 

하고 한 선생은 소리를 질렀다. 한 선생은 해쓱한 순례의 낯에 냉수를 뿌리고 손발을 주물렀다.

 

이 때에 허숭이가 말쑥한 스코친 춘추복에 스프링 코트를 벗어 팔에 걸고 들어왔다. 그는 학생복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훌륭한 신사가 되었다. 아무도 그를, 바로 몇 달 전까지의 남의 집 심부름을 하고 고학하던 사람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벌써 만족의 빛이 나타나고 분투하려는 힘이 줄었었다.

 

허숭은 혼인에 관한 의논을 하려고 한 선생을 찾아 온 것이었다.

 

허숭은 순례의 꼴을 보고,

 

"웬일입니까"?

 

하고 한 선생에게 물었다.

 

이때에 순례는 정신을 돌려서 눈을 떴다.

 

한 선생은 허숭의 말에는 눈으로만 대답하였다. 그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허숭은 안동 네거리에서 이건영을 만난 것을 연상하여, 얼른 이건영과 심순례와의 사이에 일어난 비극을 연상하였다. 그도 어디서 얻어들은 이건영과 은경과의 혼인말도 연상하였다. 그리고는 한 선생의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이 다 의문이 해결된 듯하였다.

 

허숭은 가슴에 무엇이 찔림을 깨닫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합당치 아니함을 느껴 한 선생의 집에서 나왔다.

 

"유순!"

 

하는 생각이 허숭의 가슴을 찌른 것이다. 만일 자기가 정선과 혼인하는 것을 안다고 하면 유순도 저렇게 되지나 아니할까, 저보다 더한 비극을 일으키지나 아니할까 할 때에 허숭은 전율을 깨달았다. 허숭은 정처없이 발가는 대로 걸었다.

 

정신을 차린 순례는 한 선생 앞에 엎드려서 울기를 시작했다.

 

"순례!"

 

하고 한 선생은 손으로 순례의 어깨를 흔들었다.

 

순례는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저는 어떡하면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큰 사람이 되지!"

 

하고 한 선생은,

 

"지금까지는 이건영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되는 것으로 목적을 삼았지마는, 이제부터는 조선의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기로 목적을 삼어.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아서 순례에게 소개한 것을 가슴이 아프게 생각하지마는, 그것도 다 순례를 큰 사람을 만들려는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새로운 큰 길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하고 한 선생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래도 제게는 너무도 견디기 어려운 아픔입니다."

 

하고 순례는 또 느껴 울기를 시작하였다. 순례의 어깨가 흔들리는 것을 볼 때에, 한 선생도 눈을 감아 눈에 맺힌 눈물을 떨어버렸다. 정란도 구석에 서서 울었다.

 

순례는 오랫동안 건영에게서 소식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알았고 또 여러 가지 풍설도 들었지마는, 그는 한 선생을 믿는 것과 같이건영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학교 동무로부터 이건영과 은경이가 오늘 저녁에 은경의 집에서 약혼식을 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순례는 그저 울다가 돌아갔다.

 

"너 이 박사를 한번 만나 보련"?

 

하고 한 선생이 물으면 순례는,

 

"만나면 무얼 합니까."

 

하고,

 

"그러면 네 생각에는 어찌하면 좋으냐"?

 

고 물으면,

 

"어떡합니까."

 

할 뿐이었다.

 

순례의 말은 오직 눈물뿐이었다. 불완전한 말로는 이 짓밟힌 처녀의 가슴의 아픔을 도저히 발표할 수 없다는 듯하였다.

 

"그까짓 녀석을 무얼 생각하니"?

 

하고 그 어머니가 위로할 때에도 순례는 다만,

 

"그래두."

 

한마디를 할 뿐이었다.

 

"한번 만나 보고 실컷 야단이나 쳐 주렴."

 

할 때에도 그는,

 

"그건 그래서 무엇하오"?

 

할 뿐이었다.

 

순례는 이건영으로 하여서 받은 아픔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오직 제 가슴에 싸두고 혼자 슬퍼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밤중이면 제 방에서 일어났다 누웠다 부시럭거리는 양을, 그 부모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이 아팠다고 한다.

 

순례는 한 선생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로 이건영에게서 온 편지와 사진을 꺼내어 모두 불살라버렸다.

 

"그건 왜 살라버리니? 두었다가 증거품으로 그놈을 한번 혼을 내지."

 

하면 그는,

 

"그건 무얼 그리우"?

 

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혼자 울 뿐이었다.

 

순례가 돌아간 뒤에 한민교는 한참이나 괴로와하였으나, 마침내 모자를 쓰고 나가버렸다.

 

"아버지, 저녁 잡수세요."

 

하고 대문까지 따라나가서 묻는 정란에게 한 선생은,

 

"오냐."

 

하고 가버렸다.

 


 

 

한은 선생은 사랑에 있었다.

 

"아, 청오 오시오!"

 

하고 한민교를 반가이 맞았다. 청오라는 것은 한민교의 당호였다.

 

"아, 참 마침 잘 오셨소이다."

 

하고 한은 선생은 희색이 만면하여 하얀 아랫수염을 만지며,

 

"그렇지 아니해도 지금 사람을 보내서 오시랄까 하였던 길이외다."

 

하고 한은은 매우 유쾌하였다.

 

"오늘 이건영군과 내 손녀와 약혼을 하기로 되어서, 약혼 피로연을 할 것도 없지만 집안 사람들끼리 저녁이나 같이 먹으려고 해서 들으니까, 건영군은 선생께 수학도 하였고 또 많이 지도를 받았다고도 하고… 어, 그런데 마침 잘 오셨소이다."

 

하고 한 선생은 말을 꺼낼 새도 없이,

 

"이애, 저 이 박사 이리 오시라고 하여라."

 

하고 곁에서 놀고 있는 칠팔 세나 되었을 손자를 시킨다. 손자는 조부의 명령을 듣기가 바쁘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래 건강은 어떠하시오"?

 

하고 그제야 한은은 한민교에게 인사를 하였다.

 

"괜치않습니다."

 

하고 한민교는 모든 말하기 어려운 사정을 누르고,

 

"그런데 제가 선생께 온 것은 약혼이 되기 전에 한 말씀 여쭐 말씀이 있어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벌써 약혼이 되었다면, 저는 이 말씀을 아니하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벌써 약혼은 되었습니까"?

 

한은 선생은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놀라는 빛을 보였다.

 

"이 약혼에 대한 말씀이오"?

 

하고 한은은 겨우 물었다.

 

"그렇습니다."

 

하는 말은 더욱 한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날 밤에 탑골공원 벤치에는 어떤 젊은 신사 하나가 고개를 폭 수그리고 앉아 있었다-그는 이건영이었다.

 

공원 벤치에 앉은 이건영-그는 마치 구만 리나 높은 하늘에서 나락의 밑으로 떨어진 듯하였다. 그에게는 이제는 재산 있고, 양반이요, 명망 높은 집 딸인 은경도 없고, 그를 따라 올 재산도 없고, 또 아마도 열에 아홉은 다 될 뻔하였던 연전 교수의 자리도 틀어져버렸다. 왜 그런고 하면 한은 선생은 연전의 이사요, 아울러 유력하게 이건영을 추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래 일도 장래 일이려니와, 아까 한은 집에서 일어난 일, 자기의 망신을 생각할 때에 건영은 마치 앉은 벤치와 함께 땅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한민교가 한은과 같이 앉은 것을 보고 건영은 가슴이 내려앉았었다. 그러나 설마 하고 건영은 다만 하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손님들이 오고 나중에는 시골서 올라온 건영의 아버지까지도 왔다. 저녁상이 나왔다.

 

한은 선생은 아무일도 없는 듯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세상 이야기를 꺼내었다. 마치 약혼에 관한 것은 잊어버리기나 한듯이. 건영은 초조한 마음으로 한은 선생의 입에서 오늘 모임의 목적인 혼인말이 나오기를 바랐으나 식사가 거의 다 끝이 나도록 아무말이 없는 것을 보고는, 한은 선생의 입에서 무슨 무서운 선고나 아니 내릴까 하여 도리어 그 음성이 무서워서 감히 한은 선생 쪽으로 눈을 향하지를 못하였다. 건영도 남과 같이 수저를 움직이기는 하였지마는 무엇을 집었는지, 무엇이 입에 들어갔는지 말았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식사가 끝난 뒤에 한은 선생은 한참이나 입을 우물우물하고 침묵을 지켰다. 손님들도 어리둥절하였다.

 

마침내 한은 선생의 입이 열렸다.

 

"오늘, 이건영 박사와…"

 

하고 한은 선생의 말이 열릴 때에 건영은 등에다가 모닥불을 끼얹는 듯하고 눈이 아뜩하였다.

 

"오늘, 이건영 박사와 내 손녀와 약혼을 하려고 하였는데 의외의 사정이 생겨서 아니하기로 되었소이다. 그 사정이 무엇인지는 내가 말하기를 원치 아니하지마는, 다만 내가 분명치 못해서 그리 된 것만은 사실이외다."

 

하고 냉랭하게, 그러나 엄숙하게 말을 맺고, 특별히 건영의 아버지 되는 이 장로를 향하여,

 

"모처럼 먼 길을 오셨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미안하기 그지없소이다."

 

하고 말하였다.

 

건영의 등에서는 기름땀이 흐르고, 이 장로의 낯은 파랗게 질렸다. 이 장로도 벌써 이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이 장로는 건영과 순례와의 관계를 알았고 또 기뻐하였던 사람이다. 그러나 한은 선생의 손녀인 은경과의 혼인말이 있다는 것을 그 아들 건영에게서 듣고는, 그 아들과 함께 순례로부터 은경에게로 맘이 옮아온 것이었다.

 

이 장로는 그래도 체면상, 이 망신에 대해서 한마디 항의를 아니할 수 없었다.

 

"지금 선생께서 영손애와 제 자식과 혼인 못할 사정이 있다 하시니, 그 사정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였다.

 

그의 음성은 심히 냉정하지마는, 떨림을 먹은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니 물으시는 것이 좋겠소이다. 만일 굳이 묻고 싶으시면 자제에게 물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한은 선생은 대답을 거절하였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건영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버렸다.

 

나와 가지고는 발이 가는 대로 가는 것이 탑골공원이었다. 그러나 나온 뒤에 어떤 광경이 연출된 것을 건영은 모른다. 그러나 건영의 일생이 파멸된 것만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리하여 건영과 은경과의 혼인이 틀어지고 말았고, 그 결과로 발명가 윤명섭과 은경과의 혼인이 맺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또 우연한 인연으로 허숭과 정선과의 혼인과 한 날인 시월 십 오일에 정동 예배당에서 거행되게 된 것이었다.

 


 

 

탑골공원 벤치에 앉은 건영은 이른바 윗절에도 못 믿고 아랫절에도 못 믿는 격이어서 순례와 은경을 둘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모두 한민교의 책동인 것을 생각하면 한민교를 찾아가서 그 다리라도 분질러주고 싶었다. 그러나 건영에게는 그런 용기도 없었다. 다리를 분지르기는커녕, 한 선생과 대면하여 톡톡히 항의를 할 용기도 없었다. 그것은 제 잘못도 잘못이려니와 원체 그만한 기력이 없었다.

 

건영은 가슴이 텅 비인 것 같아서 도무지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조선에는 젊은 여자가 많다. 순례나 은경이 아니기로 여자 없어서 사랑 맛 못 보랴-이렇게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순례나 은경이만한 여자는 쉽사리 만날 것 같지를 아니하였다.

 

"그러면 순례한테로 다시 찾아갈까"-이렇게도 건영은 생각해보았다.

 

"순례는 참된 여자라, 만일 내가 돌아간다면 반드시 모든것을 용서하고 환영해 줄 것이다. 그렇고말고. 순례는 그렇게도 맘이 착하고 너그러운 여자다. 한번 맘을 작정하면 변할 줄 모를 여자다. 그렇고말고, 나는 순례한테로 돌아갈까"?

 

건영은 이렇게 생각하니 맘이 가벼워지고 캄캄한 앞길에 한 줄기 빛이 비치어옴을 깨달았다.

 

"요, 이거 누구요? 이 박사 아니오"?

 

하는 술 취한 소리와 함께 건영의 어깨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김갑진이었다. 그리고 모를 청년 둘이었다.

 

건영은 비밀히 하던 생각을 들키기나 한 듯이 일변 놀라고 일변 낯을 붉히며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웬일이야"?

 

하고 갑진은 건영이의 목에 팔을 걸어 안으로 잡아 끌며,

 

"들으니까 한 은경이하고 약혼을 했데그려. 자, 오늘 한잔 내게."

 

하고 두 동행을 한팔로 끌어 당기며,

 

"이놈들, 다 이리 와. 이 양반은 누구신고 하니 말이다, 저 아메리카 가셔서 닥터 오브 필로서피를 해 가지고 오신 양반이란 말이다. 하하, 이 박사, 여보, 이 박사. 이놈들은 내 동문데 대학을 졸업하고도 소학교 교사 하나 못 얻어 하고 꼬르륵꼬르륵 밥을 굶는 못난 놈들이란 말요. 내임도 그렇지마는, 하하."

 

"이놈아."

 

하고 동행 중의 하나가 갑진의 뺨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이놈아, 네 놈은 계집까지 빼앗기지 않았어? 못난 놈 같으니. 우리는 직업은 못 얻고 카페 신세는 질망정 오쟁이는 안 졌단 말이다. 오라질 놈."

 

"이놈들아."

 

하고 갑진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득득 긁으며,

 

"아서라 이놈들아, 그 말일랑 제발 말아라. 하하하, 이런 제길. 이 박사, 이놈들의 말 믿지 마시오. 내가 어디로 보면 오쟁이 질 양반이오? 하하하헙, 자, 이 박사, 폐일언하고 우리 카페 가서 한잔 먹읍시다. 이 박사와 같이 만사가 순풍에 돛을 달고 뜻대로 되는 이는 우리네 같은 룸펜을 한잔 먹여야 한단 말이오, 경칠 것, 가자."

 

하고 갑진은 두 팔로 세 사람의 목을 멍에를 매어 끌었다. 건영은 후배인 갑진에게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이 불쾌하였으나, 갑진의 팔을 뿌리칠 기운이 없었다.

 

갑진은 공원을 나와서 이 박사와 두 동무를 끌고 낙원동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붉은 등, 푸른 등, 등은 많으나 어둠침침한 기운이 도는 방에는 객이라고는 한편 모퉁이에 학생인 듯한 사람 하나, 웨이트레스 하나를 끼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아직 손님은 많지 아니하였다.

 

"이랏샤이."

 

하는 여자,

 

"어서 오십시오."

 

하는 여자, 사오 인이나 마주 나와서 네 사람을 맞았다. 모두 얼굴에는 되박을 쓰고 눈썹을 길게 그리고, 입술에는 빨갛게 연지를 발라 금시에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 주둥아리 같고, 눈 가장자리에는 검은 칠을 해서 눈을 크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엉덩이를 내어두르고, 사내 손님에게 대해서는 마치 남편이나 되는 듯이, 적어도 오라버니나 되는 듯이 응석을 부렸다.

 

"아이, 왜 요새는 뵙기가 어려워요"?

 

하고 양복 입은 계집애는 갑진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다가 제 뺨에 비볐다.

 

"요것이 언제 보던 친구라고 요 모양이야"?

 

하고 갑진은 주먹으로 그 여자의 볼기짝을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아야, 아야, 사람 살리우!"

 

하고 그 여자는 갑진의 뺨을 꼬집어 뜯고, 성낸 모양을 보이며 달아났다.

 

네 사람은 테이블 하나를 점령하였다. 의자는 푸근푸근하였다. 테이블에는 오일 크로스를 깔아서 

살을 대기가 불쾌하였다.

 

"위스키, 위스키!"

 

하고 갑진은 집이 떠나갈 듯이 호령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갑진은 예쁘장한 계집애 하나를 무르팍 위에 앉히고 으스러져라 하고 꼭 껴안았다. 다른 사람 곁에도 계집애들이 하나씩 앉아서 껴안아 주기를 기다리는 듯하였다.

 

유리잔에 위스키 넉 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이년들아, 너희들은 안 먹니"?

 

하고 갑진은,

 

"에이, 귀찮다! 병째로 가져오너라. 백마표, 응!"

 

"올라잇!"

 

하고 한 여자가 술 벌여 놓은 곳으로 갔다. 거기는 회계당번인 여자와 남자 사무원 하나가 점잔을 빼고 앉아 있었다.

 

여덟 잔에 노르무레한 위스키가 따라진 뒤에 갑진은 술잔을 들며,

 

"제군! 미국 철학박사 이건영 각하와 한 은경양과의 약혼을 축하하고 두 분의 건강을 빕니다."

 

하고 잔을 높이 들었다. 다른 두 사람도 갑진과 같이 잔을 높이 들었다. 오직 이 박사만이 술잔을 들지 아니하였다.

 

"드세요."

 

하고 한 친구가 재촉하였다.

 

갑진은 술잔을 든 채로 로보트 모양으로 물끄러미 건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갑진의 눈은 <이놈!> 하는 빛을 띠고,

 

"나, 나, 나는."

 

하는 건영의 입술은 떨렸다.

 

"나는 약혼한 것이 아니야요. 또 장차도 약혼할 생각도 없고, 또…."

 

"이건 왜 이래."

 

하고 갑진은 들었던 잔을 도로 놓으며,

 

"대관절 어찌 된 심판야. 약혼 축하 건배를 하다말고 정전이 되니 이거 될 수 있나."

 

다른 사람들도 들었던 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아, 약혼하셨어요"?

 

하고 건영의 곁에 앉은 계집애가,

 

"나는 멋도 모르고 짝사랑야."

 

하고 팔을 들어 건영의 목을 안았다.

 

"약혼 아니요."

 

하고 건영은 힘없이 말하였다.

 

"대관절 웬 일이오"?

 

하고 갑진은 아주 점잖게 건영을 바라보며 동정있는 음성으로,

 

"그래, 정말 약혼을 아니했단 말요"?

 

하고 묻는다.

 

"아니했어요."

 

하는 건영의 음성은 비창했다. 두 친구와 계집애들의 시선은 건영에게로 옮겨갔다. 다들 이상하구나 하는 듯하였다.

 

"그럼, 오쟁일 졌구려"?

 

하고 갑진의 눈은 빛났다.

 

건영은 픽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웃었다.

 

"압다, 그러면 오쟁이 진 위로로 건배, 자, 다들 이 박사의 오쟁이 진 위로로 잔을 들어, 하하하."

 

하고 갑진은 위스키를 쭉 들이켰다.

 

다른 사람들도 들이켰다.

 

건영만 가만히 앉아 있다.

 

"이건 사내가…."

 

하고 갑진은 건영의 잔을 들어 건영의 입에다가 대며,

 

"사내가 오쟁이를 졌다고 여상고비하게 기운이 죽어서야 쓰나. 자, 벌떡벌떡 들이켜 보우. 세상에 계집애가 그애 하나밖에 없나. 수두룩한데 무슨 걱정야. 자, 이년아, 이건 무얼 하고 있어? 자, 이 양반 입을 벌리고 이 술을 좀 흘려 넣어!"

 

하고 건영의 곁에 앉은 시즈꼬라는 계집애를 향하여 눈을 흘긴다. 시즈꼬라는 계집애는 물론 조선 계집애지마는 다른 카페 계집애들 모양으로 일본식 이름을 지었다. 시즈꼬는 한편 눈이 좀 작은 듯하지마는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이라든지, 통통한 몸매라든지, 꽤 어여쁜 편이요, 또 천태도 적은 편이었다. 건영은 그 손이 순례의 손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아, 잡수세요!"

 

하고 시즈꼬는 건영의 목을 껴안고 갑진에게서 받은 위스키를 건영의 입에 부어 넘겼다. 술은 건영의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한 잔, 두 잔, 독한 위스키는 사람들의 양심이라는, 알콜에는 심히 약한 매균을 소독하여버렸다. 그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동물성을 폭로하였다. 계집애들을 껴안고 음담을 하고 못 만질 데를 만지고 입을 맞추고…

 

"원체 혼인이란 것이 시대 착오거든-약혼이란 것은 시대 착오의 자승이고. 안 그런가, 이 사람들아."

 

하고 갑진이가 또 화제를 꺼낸다.

 

"암, 그렇고말고."

 

하는 것은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문학사다. 눈이 가늘고 입이 좀 빼뚜름한, 약간 간사기가 있을 듯한 사람이다.

 

"혼인은 해서 무얼 하나. 천하의 여성을 다 아내로 삼으면 고만이지. 오늘은 시즈꼬, 내일은 야스꼬, 안 그러냐 요것아."

 

하고 문학사는 시즈꼬의 허리를 껴안는다. 그는 시즈꼬를 못 잊는 모양이었다.

 

"왜 이래"?

 

하고 시즈꼬는 문학사의 팔을 뿌리치며,

 

"나는 이 양반하구 약혼할 테야. 이 박사하고-무슨 박사, 김 박사? 아니, 이를 어째, 용서하셔요, 응. 이 박사, 나하구 약혼하세요, 응? 혼인은 말구 약혼만 해, 응"?

 

"얘, 시이짱. 너는 대관절 몇 번이나 약혼을 하니"?

 

하고 의학사가 묻는다.

 

"나요? 이 양반과는 첫번이지."

 

하고 시이짱이라는 시즈꼬는 의학사인 거무스름한, 건강한 키 작은 사람을 향하여 눈을 흘긴다.

 

"요것도 오쟁이를 졌다나."

 

하고 문학사는 시이짱의 뺨을 손가락으로 찌른다.

 

"여자도 오쟁이를 지우"?

 

하고 시이짱은,

 

"사내한테 오쟁이를 지우지."

 

"요것이."

 

"왜 사람더러 요것이라우? 난 이 박사가 좋아. 우리 약혼해요. 응, 자, 이 술잔 드세요. 반만 잡숫고 날 주셔야지."

 

하고 시이짱은 건영의 입에 술잔을 대어 준다.

 


 

 

윤 참판집에서는 내일이 혼인날이라 하여 손님도 많이 오고 예물도 많이 들어와서 바쁘기가 짝이 없었다.

 

그 날 저녁때에 허숭은 들러리 설 친구, 기타의 주선을 위하여 밖에 돌아다니다가 늦게 윤 참판집에 돌아왔다.

 

방에 돌아온 숭은 의외의 광경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정선이가 잔뜩 성을 내어 가지고, 들어오는 자기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사람이란 성을 내면 흉악한 모양으로 변하는 것이지마는, 이때 정선의 얼굴은 실로 무서웠다. 숭은 그 눈초리가 좌우로 쑥 올라가고 입귀가 좌우로 축 처진 정선의 상을 볼 때에 몸에 소름이 끼침을 깨달았다. 그것은 평상시에 보던 정선은 아니었다. 그 마음에는 독한 불이 붙고, 눈에서는 수 없는 독한 칼날이 빗발같이 쏟아져 나와서 허숭의 가슴을 쏘는 듯하였다.

 

허숭은 어안이 벙벙하여 섰다. 섰다는 것보다도 다리의 근육이 굳어지고 말았다.

 

"웬일이오"?

 

하고 허숭은 마침내 이 의문을 해결하는, 처음으로 입을 열 사람은 자기라는 것을 깨닫고 말을 붙였다.

 

"에익, 더러운 놈!"

 

하는 것이 정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더런 놈"?

 

이 말에 숭은 한번 더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일종의 모욕과 분노를 깨달았다.

 

"말을 삼가시오."

 

하고 허숭은 남편의 위엄을 부려 보았다.

 

"말을 삼가, 흥"?

 

하고 정선은 코웃음을 쳤다. 그 얼굴은 분노의 형상에서 조롱의 냉소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대관절 무슨 일이오"?

 

하고 허숭은 교의에 앉았다. 그 때에 허숭은 정선의 손에 쥐어진 종이 조각을 보았다. 숭은 거의 반사적으로 <유순>을 생각하였다.

 

"그건 무엇이오"?

 

하고 숭은 손을 내어밀었다.

 

"자, 실컷 잘 보우."

 

하고는 정선의 낯에는 경련이 일어나더니, 테이블 위에 엎드려 울기를 시작한다.

 

숭은 정선의 손에 꾸기었던 편지를 펴가며 읽었다. 그리 익숙치 못한 연필 글씨로 보통학교 작문 책장을 찢어서 잘게잘게, 그러나 선생에게 바치는 작문 글씨 모양으로 분명하게, 오자는 고무로 지워가며 쓴 편지다. 안팎으로 쓴 것이 석 장 여섯 페이지요, 끝에는 <兪順(유순)>이라고 비교적 자유로운 글씨로 서명을 하였다.

 

그 편지는-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올립니다》

 

를 허두로,

 

《그 동안에도 편지라도 자주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사오나, 여자가 남자에게 편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와 편지도 못 올렸나이다. 그러하오나 재작년 여름에 작별하온 후로 작년 여름에도 여름이 다 가도록 서울서 오는 차마다 바라보고 기다렸사오나 마침내 오시지 아니하시고, 금년에도 여름이 다 가도록 기다리었사오나 소식이 없사와 혼자 어리석은 마음을 태우고 있사옵던 차에, 일전 어떤 동무의 집에서 잡지를 보고야 이번 어떤 유명한 부자집 따님과 혼인을 하시게 되었다는 글을 보았나이다. 당신께서 고등문관 시험에 급제하셨단 말을 신문으로 볼 때에는 온 동네와 함께 저도 기뻐하였사오나, 이번 어떤 부자집 따님과 혼인을 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네는 다 기뻐하지마는 저와 제 부모님은 슬픔에 찼나이다》

 

유순의 편지는 계속된다.

 

《제 어리석음을 용서하세요. 저는 재작년 여름에 당신께서 저를 특별히 사랑하여 주시길래 그것을 꼭 믿고 저는 당신의 아내거니 하고 꼭 믿고 있었나이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아버지께서 자꾸만 시집을 가라고 조르실 때에 저는 어리석게도 당신께 허락하였다고 말씀하였답니다. 제 부모께서도 그러면 작히나 좋으냐고 기뻐하셨나이다. 작년에는 꼭 오실 줄 믿고, 작년 여름에 오시며는 부모님께서 약혼만이라도 하여준다고 하시고 기다렸사오나 도무지 오시지를 아니하시니, 부모님께서는 그 사람이 너를 잊었으니 다른 데로 시집을 가라고 또 조르시기를 시작하였사오나, 저는 울면서 아니 갑니다, 아니 가요, 하였나이다.

 

당신께서도 아시는 바여니와, 우리 동네에서는 아직 한번 맘으로 허락하였던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로 시집을 간 사람은 없었나이다. 내 조고모께서는 사주만 받고도 그 남자가 죽으매 일생을 그 집에 가셔서 늙으셨고, 당신 댁에서도 남편이 죽은 뒤에 소상을 치르고는 뒷동산 밤나무 가지에 목을 달아 돌아가신 이가 있다 하나이다. 그것을 다 구습이라고 동네에서는 말하는 이가 없지 아니하나, 어리석은 제 맘은 그 본을 따를 수밖에 없다 생각하나이다. 부모님께서 정해 주신, 한번 얼굴도 대해 보지 못한 남자를 위해서도 절을 지키거든, 저와 같이 제 맘으로 사랑하고 또 비록 잠시라도 당신의 품에 안겨 본 당신께서 저를 잊어버리신다고 저마저 당신을 잊고, 이 몸과 이 맘을 가지고 또 다른 남자를 사랑할 생각은 없나이다.

 

그러하오나 당신께서는 부자댁 아름다운 배필과 혼인을 하시게 되시었으니 저는 멀리서 두 분의 행복을 빌겠나이다.

 

저는 쓸 줄도 모르는 솜씨로 이런 편지를 쓸까말까 하고 쓰려다가는 말고, 썼다가는 찢고 하기를 오륙 일이나 하다가, 그래도 두 분이 혼인 예식을 하시기 전에 이러한 말씀이나 한번 드리고 싶어서 이 편지를 쓰나이다. 두 분이 혼인 하신 뒤에는 다른 여자가 당신께 편지를 드리는 것이 옳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한 까닭이로소이다.

 

 시월 오일 兪順 上(유순 올림)》

 

이라고 쓰고 그 끝에 추고 모양으로 이렇게 썼다.

 

《이 편지를 써 놓고도 부치는 것이 죄가 되는 것 같아서 못 부치고 일 주일 동안이나 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이야 기운을 내어서 체신부에게 부탁해 보냅니다. 유순》

 

숭은 편지를 다 읽고나서는 힘없이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날 밤이 다 새도록 잠을 못 이루고 고민하였다.

 

"밤중으로 달아나서 유순에게로 갈까"-이렇게도 생각해보았다.

 

"차라리 정선과 윤 참판에게 남아답게 혼인을 거절하고 유순에게로 갈까"-이렇게도 생각해보았다.

 

이러한 생각을 하기만 해도 한결 맘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일이 혼인 예식인데, 내일 오후 세시만 지나면 만사는 해결되는데-행복(?)된 길로 해결되는데"-이렇게도 생각하였다.

 

숭은 이 세 가지 생각을 삼각형의 세 정점으로 삼고 개미 쳇바퀴 돌 듯이 그 석 점 사이로 뱅뱅 도는 동안에 밤이 새고 혼인 예식 시간이 왔다. 숭은 예복을 갈아 입으면서도, 자동차로 식장에 가면서도 이 석 점 사이로 뱅뱅 도는 동안에 밤이 새고 혼인 예식 시간이 왔다. 숭은 예복을 갈아 입으면서도, 자동차로 식장에 가면서도 이 석 점 사이로 방황하였다. 그리고 목사의 앞에 정선과 나란히 서서 서약을 할 때에도 그러하였고, 반지를 끼일 때에는 숭의 눈은 정선의 손가락을 바로 찾지 못하여 반지를 땅에 떨어뜨릴 뻔하여 깜짝 놀란 일도 있었다.

 

혼인 마치나 회중이나 모두 숭의 감각에는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신부의 팔을 끼고 마치에 발을 맞추어 식장에서 나올 때에도 숭은 신부의 발을 밟을 지경으로 무의식하였다.

 

<1부 끝>

 


 

 

 

살여울 보에 오래 기다리던 물이 늠실늠실 불었다. 삼사 일 이어 오는 비에 살여울 강물이 소리를 내며 흘러, 오랜 가물에 늦었던 모를 내게 된 것이다.

 

논마다 허리 굽힌 사람들의 움직이는 양이 보였다. 길게 뽑는 메나리 가락도 들렸다. 비록 배는 고프더라도 젊은이에게는 기운이 있었다.

 

아침 나절까지도 비가 와서 부인네들은 삿갓을 등에 지고 모를 내었다. 그러나 인제는 비도 개고 파란 하늘조차 여러 조각의 흰 구름이 어울려 흥건하게 닿은 논물에 비치었다. 그래서 부인네들의 등에 졌던 삿갓은 논둑에서 노는 엄마 따라온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혹은 벌거벗고 혹은 적삼만 입고 혹은 고쟁이만 입은 사내, 계집애들은 물장난을 하고 소꿉장난을 하였다. 그들의 몸은 볕에 그을러서 검었다. 그러나 도회의 아이들 모양으로 기름기는 없었다. 기름기가 있을 리가 있나. 그들은 만주 조밥에 구더기 끓는 된장밖에 먹는 것이 없거든. 젖먹이로 말하여도 절반이나 굶은 어머니의 젖을 젖이라기보다는 젖 묻은 그릇을 씻은 물이었다. 다만 물과 일광만이 아직 불하, 대하, 공동 판매도 아니되어서 자유로 마시고 쬐기를 허하였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맘껏 볕에 그을고 맘껏 물배가 불렀다. 인제는 비가 와서 마른다 하던 우물도 물이 늠실늠실 넘었다.

 

모를 내는 여자들의 무릎까지 올려걷은 다리, 그것은 힘은 있을망정 살이 비치는 흰 명주 양말에 굽 높은 흰 구두를 신은 그러한 서울 아가씨네 다리와 같은 어여쁨은 있을 리가 없다. 모내는 아씨네, 아가씨네 다리들은 띵띵 부었다. 너무 오래 서 있어서, 너무 오래 물에 담겨서, 또 너무도 굶어서 부황이 나서. 만일 이 아씨네, 아가씨가 아픈 허리를 펴느라고 고개를 들고 두 손에 물이 옷에 묻지 말라고(젖을 옷도 없건마는) 닻가지 모양으로 좌우로 약간 벌리고 선다하면 그 얼굴도-일생에 한번밖에(그것도 시집 간 여자라야) 분 맛을 못 본 얼굴은 볕과, 굶음과, 피곤과, 너무 오래 고개를 숙임으로 퉁퉁하게 붓고, 또 찌그러져 보일 것이다. 땀과 때와 빗물과 흙물과 더위에 뜨고 쉬인 옷 냄새, 이 냄새가 농촌 모내는 사내의 코에는, 모기장 같은 상긋한 옷에, 불그레 뽀얀 부드러운 살이 비치는 서울 아씨네, 아가씨네의 몸에서 극성스럽게도 나는 향내와 같을 수 있을까.

 

늙은이도, 젊은이도, 여편네도, 처녀도, 한 손에는 못춤을 쥐고 한 손으로 두 대씩, 석 대씩, 넉 대씩 갈라서는 하늘과 구름 비친 물을 헤치고 말랑말랑한 흙속에 꽂는다. 꽂은 볏모는 바람에 하느적하느적 어린 잎을 흔든다. 인제 그들은 며칠 동안 뿌리를 앓고 노랗게 빈혈이 되었다가 생명의 새 뿌리를 애써 박고는 기운차게 자라날 것이다.

 

그러한 뒤에 알을 배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누렇게 익어서 고개를 숙여, 일생의 사명을 끝낸 뒤에는 아마도 모내던 손에 깎이어 알곡은 알곡 따로, 짚은 짚 따로 나고, 알곡은-아아 그 알곡은 모낸 이, 거두는 이의 알곡은 반은 지주의 곡간을, 반은 빚장이의 곡간을 다녀서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몇 상인의 이익을 준 뒤에 논바닥 물에 살은커녕 그림자 한번도 못 잠겨 본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는 밥이 되고, 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논바닥에서 썩는 이 생명들은 영원한 가난뱅이, 영원한 빚진 종, 영원한 배고픈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뻥>하고 고동소리가 들린다. 서울서 봉천으로 달아나는 기차다.

 

이 고동 소리에 모내던 사람들은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유순이도 있었다.

 

유순은 재작년 초가을 허숭에게 안길 때보다 커다란 처녀가 되었다. 그는 길다란 머리꼬리를 한편으로 치우려다가 치마끈에 껴 졸라매어서 늘어지지 아니하게 하고 풀이 다 죽은 광당포 치마를 가뜬하게 졸라매고 역시 풀 죽은 광당포 적삼은 땀난 등에 착 달라붙어서, 통통한 젊은 여성의 뒷 태를 보인다. 비록 옷이 추하고 낯이 볕에 그을렀다 하더라도 순의 동그스름한 단정한 얼굴의 선, 수심을 띤 듯한 큼직한 검은 눈, 쭉 뻗고도 억세지 아니한 코, 더우기 특색있게 맺혔다고 할 만한 입, 그리고 왼손에 파란 잎, 하얀 뿌리의 나불나불 어린 애기와 같은 맛이 있는 볏모를 들고 논에 우뚝 서서 허리를 펴는 양으로 아무리 무심히 보더라도 눈을 끌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순의 얼굴에 약간 수척한 빛이 보이는 것은 여름 때문인가, 피곤 때문인가, 못 먹어서인가, 그렇지 아니하면 속에 견디기 어려운 무슨 근심을 품음인가. 아마 그것을 다 합한 것이겠다.

 

실상 유순은 허숭이가 혼인한 기별을 들은 후로는 넋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처럼 맘에 탐탁하게 믿었던 허숭의 맘이 그렇게도 쉽사리 변할 줄을 유순은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유순의 생각에 허숭은 이 세상에 가장 완전한 남자, 그러니까 가장 믿음성 있는 남자였다. 유순의 참되고 단순하고 조그마한 가슴은 오직 허숭으로, 허숭에게 대한 믿음과 존경과 사랑으로 찼던 것이다.

 

허숭이가 곧 유순의 하늘이요, 땅이요, 해요, 달이요, 생명이었던 것이다. 이 남자 저 남자 입맛을 보고 살맛을 보아, 물었다 뱉었다 하는 도회 신식 여성과 달라, 유순에게는 허숭은 유일한 남편이요, 남자였던 것이다. 허숭 이전에도 남자가 없고, 허숭 이후에도 남자가 없었던 것이다.

 

허숭의 맘이 변하여 다른 여자에게 장가든 것을 본 유순은 하늘, 땅, 해, 달, 목숨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그가 조선의 딸의 맘을 그대로 지니지 아니하였다 하면, 그가 도회적, 이른바 신식 여자라 하면 울고 원망하고 미쳐 날뛰고 혹은 서울로 달려 올라가 허숭의 결혼식에, 또는 가정에 한바탕 야료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순은 가슴에 에이는 듯한 아픔을 품고도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듯한 태연한 태도를 가졌다. 그 부모나 형제에게도 괴로와하는 빛 하나 보이는 일이 없었다. 또 밤낮에 한가한 겨를이라고는 도무지 없는 유순은, 어느 으슥한 구석에서 맘놓고 슬퍼할 새도 없었다. 다만 하루 몇번 앞 들로 지나가는 기차 소리에 한번씩 긴 한숨을 쉬고, 시꺼먼 기차가 요란히 떠들면서 지나가는 것을 바라다볼 따름이었다.

 

여름이 되면, 방학 때가 되면 이 차에나 이 차에나 하고 허숭을 바라고 기다리던 그 버릇이 남은 것일까? 아직도 그래도 행여나 허숭이가 자기를 찾아올까 하고 바라고 기다리는 것일까?

 


 

 

유순은 터덜거리는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잠깐 바라보고는,

 

"내가 기다릴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적막한 한숨을 쉬고는, 오래 한눈을 팔고 섰는 것이 여자의 도리답지 아니하다고 생각하고 남들은 여전히 차를 바라보며 지루한 일에 새로운 자극을 얻은 것을 기뻐하는 듯이 지껄일 때에 유순은 다시 허리를 구부리고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이거 모를 안 내고 무엇들 하고 있어"?

 

하는 소리가 뒤로 들려왔다. 그것은 그 논 임자 신 참사의 음성이었다. 이 사람들은 남자 삼십 전, 여자는 이십 전씩 하루에 삯돈을 받고 신 참사 집 논에 모를 내는 것이었다.

 

"허, 잠깐만 아니 보면 이 모양이어든."

 

하고 신 참사는 노기가 등등하여 단장을 내어두르고 잠자리날개 같은 모시 두루마기를 펄렁거리며 달려온다. 그 뒤에 따라오는 양복 입고 키 작은 사람은 농업 기수다. 정조식 감독하러 다니는 관원이다.

 

"천상 어쩔 수 없는 것들이로군."

 

하고 신 참사는 돼지 모가지같이 기름지고 밭은 모가지를 돌려 농업 기수를 돌아본다. 참 할수없는 놈들이라고 모내는 사람들을 비평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 쉴 새도 없이 모를 내고 있다. 그들은 지금 내는 모가 신 참사의 것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들은 단군 이래로 제가 심은 것은 제가 먹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온 버릇이 있으므로 제가 심는 모가 남의 모라고는 생각하기가 서툴렀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오륙 년 전만 해도 대개는 제 땅에 제 모를 내었다. 비록 제 땅이 없더라도 지주에게 반을 갈라 주더라도 그래도 반은 제가 먹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오 년래로는 점점 지주들이 소작인에게 땅을 주지 아니하고, 사람을 품을 사서 농사짓는 버릇이 생겼다. 품이란 한량없이 있는 것이었다. 하루에 이십 전, 삼십 전만 내어 던지면 미처 응할 수가 없으리만큼 품꾼이 모여들었다.

 

이십 년래로 돈이란 것이 나와 돌아다니면서 차란 것이 다니면서,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고 전에 없던 것이 생기면서 어찌 되는 심을 모르는 동안에 저마다 있던 땅마지기는 차차 차차 한두 부자에게로 모이고, 예전 땅의 주인은 소작인이 되었다가 또 근래에는 소작인도 되어 먹기가 어려워서 혹은 두벌 소작인(한 사람이 지주에게 땅을 많이 얻어서, 그것을 또 소작인에게 빌려주고 저는 그 중간에 작인의 등을 쳐먹는 것, 마름도 이 종류지마는 마름 아니고도 이런 것이 생긴다)이 되고 최근에 와서는 세력없는 농부는 소작인도 될 수가 없어서 순전히 품팔이만 해먹게 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지주들이 모두 평양이니 서울이니 하고 살기 좋은 곳에 가 살고보니, 누가 귀찮게시리 일일이 성명도 없는 소작인과 낱낱이 응대를 할 수가 있나. 제가 믿는 놈 하나에게 맡겨버리고 받아들일만큼 해마다 받아만 들인다면 그런 고소한 일이 어디 있으랴.

 

신 참사는 아직 큰 부자는 못 되어서 기껏 읍내에 가서 살지마는, 그 까닭에 이 사람은 자기의 소유 토지를 직영을 하여서, 소작 문제니 농량 문제니 하는 귀찮은 문제를 해결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신 참사 한 사람이 자기의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이 살여울에 밥줄 떼운 가족이 이십여 호나 된다.

 

"글쎄, 이 사람들아."

 

하고 신 참사는 사람들이 모를 심는 줄에 가까이 와서 단장으로 논두렁을 두드리며,

 

"저러니까 일생에 입에 밥이 아니 들어가지. 모를 내면 모를 낼게지 왜들 우두머니 서서 기차 지나가는 것을 보아. 그 따위로 내 눈을 속이다가는 내일부터는 일을 아니 줄걸. 내가 일을 아니 주면 흙이나 집어먹고 살 텐가. 흙은 누가 주나. 산은 국유지요, 논 밭은 임자가 있는걸. 괜히시리 그 따위로 하다가는 다들 밥 굶어 죽을걸. 개들 사는 집터도 내 땅야. 굶어 죽더라도 내 땅에서는 못 죽을걸. 허 고얀 사람들 같으니, 아 그래 하루 종일 낸 것이 겨우 요거야.

 

이런 여편네 계집애들은 일도 못하고 방해만 하거든. 젊은 녀석들이 계집애들 사타구니만 들여다보느라고 어디 일을 하겠나. 내일부터는 계집애와 여편네는 다 몰아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따로 일을 시켜야겠군. 여보게 문보, 자네는 무얼하느라고 이것들이 핀둥핀둥 놀고 있어도 말 한마디 아니하나? 내가 돈이 많아서 자네를 삯돈 세 갑절이나 주는 줄 아나. 허, 고얀 손 다 보겠군."

 

신 참사의 말은 갈수록 더 사람들의 분노감을 일으킨다. 제 것 남의 것을 잊고, 다만 흙을 사랑하고 볏모를 사랑하는 단군 할아버지 적부터의 정신으로 버릇으로 일하던 이 농부들은, 아아 우리는 종이로구나 하는 불쾌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모를 내는 사람들은 갑자기 흥이 깨어지고 일하는 것이 힘이 들게 되었다. 물에서 오르는 진흙 냄새 섞인 김, 볏모의 향긋한 냄새, 발과 손에 닿는 흙의 보드라움, 이마로부터 흘러내려서 눈과 입으로 들어오는 찝찔한 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제 땀 냄새, 남의 땀 냄새, 쉬지근한 냄새, 굵은 베옷을 새어서 살을 지지는 햇볕, 배고픔에서 오는 명치 끝의 쓰림, 오래 구부리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허리 아픔조차도 즐거운 것이건마는, 신 참사의 말 한마디에 이런 것도 다 괴로움이 되고 말았다.

 


 

 

"망할 녀석, 어찌어찌 하다가 돈 푼이나 잡았노라고-아니꼽게!"

 

"염병할 자식. 제 집에는 계집도 없고, 딸자식도 없담, 그 말버릇이 다 무엇이람"

 

"성나는 대로 하면 그저 그 뚱뚱한 놈을 논바닥에다가 자빠뜨려놓고 그놈의 양도야지 배때기를 그저그저 힘껏 짓밟어 주었으면"

 

"그래도 목구멍이 원수가 되어서 이 욕을 참고…"

 

모내는 사람들은 저마다 속으로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마치 말할 줄 모르는 짐승 모양으로 왼손에 쥔 볏모를 세 줄기, 네 줄기 떼어서는 꽂고 꽂고 하였다.

 

"이거 어디 쓰겠나, 들쑹날쑹해서 쓰겠나."

 

하고 농업 기수가 혼자 논 가장자리로 돌아다니다가 중얼거린다.

 

"볏모라는 것이 줄이 맞고 새가 고르와서 쓰는 게지, 이게 다 무엇이람."

 

농업 기수는 점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논머리로 와서 신 참사를 보고,

 

"이거 어디 쓰겠어요? 저것 보셔요. 모두가 들쑹날쑹 오불꼬불 갈짓자 걸음을 하였으니, 이거 어디 쓰겠어요? 그 중에도 이 이랑은 사뭇 점병인걸."

 

하고 유순이가 타고 온 이랑을 단장으로 가리킨다.

 

모내던 사람들은 농업 기수의 못쓰겠다는 말에 모내기를 쉬고 허리를 펴고 일어선다.

 

"도무지, 이것들이 도야지지 사람은 아니라니까."

 

하고 신 참사가 단장으로 땅바닥을 두드리며

 

"글쎄, 이 사람들아, 남의 금 같은 돈을 받아 먹고 글쎄, 모를 낸다는 게 이 따위야. 지금 이 나리 말씀 들었지, 저게 무에람. 들락날락, 아 저게 손목쟁이로 모를 낸 거야."

 

하고는 농업 기수를 향하여,

 

"그저 쇠귀에 경 읽는 것이지요. 아무리 이르니 들어를 주어야지요. 정조식, 정조식하고 천번은 더 일렀겠소이다."

 

하고는 다시 사람들을 향하여,

 

"글쎄, 짐승들이라니까, 굶어 죽기에 꼭 알맞어. 만주 조밥은커녕 죽국물도 아깝다니까."

 

또 농업 기수를 향하여,

 

"그러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내가 저것들을 데리고 농사를 짓자니 피가 마를 지경이죠. 허, 참 사람의 종자들은 아니라니까. 어디 나리께서 좀 잘 타일러 주시고 이왕 모는 그냥 두시더라도 이 앞으로 고랑은 다시 아니 그러도록 좀 가르쳐 주시오. 이걸 다시 내자면 수십 원 돈이 또 없어진단 말씀야요. 나리 잘 양해를 하시오."

 

하고 애걸한다.

 

농업 기수는 신 참사에게 오늘 점심에 한턱 얻어먹은 것을 생각하고, 또 저녁에 한턱 잘 얻어먹을 것을 생각하였다. 또 이 사람들이 낸 모는 뽑아버리고 다시 내지 아니하면 아니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감독하는 관리로서 현장에 왔다가 한마디 없을 수 없고, 한마디 없으면 자기의 위신에 관계될 것 같았다. 또 신 참사에게 잔뜩 생색을 낼 필요도 있고 그뿐더러 시골서는 얻어 보기 드물 듯한 유순의 아름다움을 보매, 무슨 말썽을 일으켜서라도 유순에게 가까이하고 싶었다.

 

"다들 이리와!"

 

하고 농업 기수는 모내던 사람들을 불렀다.

 

남자들은 기수의 앞으로 가까이 왔으나, 부인네들은 내외하느라고 돌아선 채 오지 아니하였다.

 

"다들 이리 나와! 관리가 명령하시거든 복종하는 법이야!"

 

하고 신 참사가 호령을 하였다.

 


 

 

부인네들도 신 참사의 호령에 마지못하여 절벅절벅 기수의 앞으로 왔다. 신 참사의 뜻을 어기는 것은 곧 당장 밥줄을 끊는 것임을 그들은 잘 인식한 것이다. 저쪽에서 삿갓을 가지고 놀고 있던 아이도 웬일인가 하고 달려와서 근심스러운 눈으로 자기네 부모와 무서운 사람들과를 번갈아 보았다.

 

부인네들은 내외성 있게, 혹은 제 남편의, 혹은 오라버니의 등 뒤에 숨어 섰다.

 

사람들이 다 앞에 모여 선 것을 보고 농업 기수는 연설 구조로, 반말로, 어, 아, 으 하고 마치 조선말이 서투른 외국사람의 발음 모양으로 효유를 시작하였다. 그는 얼굴이 검고, 코가 납작하고, 머리 뒤가 넙적하고, 찌그러진 천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어떤 농부의 아들이라고 한다.

 

"모를 내는 데는 정조식이라는 것이 있단 말야."

 

하고 그는 자기도 잘 알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섞어가며, 가끔 일본말을 섞어가며 일장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는 말이 끝나자 유순을 가리키며,

 

"이리 나서!"

 

하고 농업 기수가 호령을 하였다.

 

유순은 아니 나섰다.

 

"무슨 말씀이셔요? 그 애가 부끄러워서 그럽니다."

 

하고 유순의 과수 아주머니가 대신 말하였다.

 

"웬 잔말이야? 걔더러 하는 말이 아냐!"

 

하고 기수는 성을 내었다.

 

과수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고 입을 다물었다.

 

"이리 나와. 어른이 나오라면 나오는 것이야!"

 

하고 이번에는 신 참사가 호령을 하였다. 그래도 유순은 과수 아주머니 등 뒤에서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조런 년 보았겠나."

 

하고 농업 기수는 더욱 성을 내며 발을 굴렀다.

 

"그래 내가 이리 나오라는데 아니 나올 테야. 내가 이를 말이 있어서 나오라는데. 방자한 계집애년 같으니. 내가 누군 줄 알고 요년, 그래도 아니 나와."

 

하고 기수는 막아선 과수 아주머니를 한 편으로 밀어 제치고, 유순의 볏모 든 팔목을 잡아당기었다. 유순의 볏모에 묻었던 흙물이 기수의 흰 양복과, 신 참사의 모시 두루마기에 수없는 얼룩을 주었다.

 

"이년, 네가 낸 모를 다시 뽑아서 다시 내어라."

 

하고 농업 기수는 손바닥으로 유순의 뺨을 때렸다. 기수와 신 참사는 옷에 흙물 튄 것이 더욱 열이 났다.

 

"여보!"

 

하고 한 청년이 기수의 앞으로 나서며, 유순의 팔목을 잡은 기수의 팔을 으스러져라 하고 꽉 쥐어 비틀었다.

 

"관리면 관리지, 남녀유별도 모른단 말요? 남의 집 과년한 처녀의 손목을 잡고 뺨을 때리는 법은 어디서 배웠단 말요? 당신 집에는 어미도 없고 누이도 없소"?

 

하고 대들었다. 그 청년은 키가 크고, 콧마루가 서고 음성이 큰 건장하고도 다부진 사람이었다.

 

"허, 이놈 보았나. 관리에게 반항한다."

 

하고 기수는 손을 들어서 청년의 뺨을 갈겼다. 그 서슬에 청년의 코가 기수의 손길에 맞아 코피가 흘러내렸다.

 

기수는 청년의 코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상관없이 연해 서너 번 청년의 이 뺨 저 뺨을 후려갈겼다. 청년은 처음에는 참으려 하는 듯하였다. 그는 기수가 때리는 대로 말없이 맞았다. 그러나 기수의 구둣발길이 청년의 옆구리에 올라오려 할 때에 청년의 몸이 한번 번쩍 보이며 청년의 손은 기수의 목덜미를 눌러버렸다. 청년의 코에서 흐르는 피는 농업 기수의 양복 저고리에 똑똑 떨어졌다.

 

"이놈아."

 

하는 그 청년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놈, 남의 처녀의 손목을 잡고, 뺨을 갈기고-넌 이놈,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느냐"?

 

하고 청년은 기수를 홱 잡아 내어둘러서 반듯이 자빠뜨렸다.

 

"그놈을 죽여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덤비었다.

 

청년은 두 팔을 벌려서 모여드는 사람을 밀어내며,

 

"다들 가만 있어요. 이깐 놈 하나는 내가 없애버릴 테니. 너 죽고 나 죽자. 이 개 같은 놈 같으니."

 

하고 청년은 발길로 기수의 옆구리와, 꽁무니와, 머리를 닥치는 대로 질렀다.

 

"아이구, 아이구구."

 

하고 죽는 소리를 하였다.

 

"이 사람,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신 참사가 청년의 팔을 붙들 때에는 벌써 기수는 청년이 가만히 있는 틈을 타서 모자도 다 내버리고 허둥지둥 달아날 때였다.

 

"저놈 잡아라!"

 

하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를 때에, 기수는 황겁하여 논물에 엎드러졌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서는 달음박질을 쳤다.

 


 

 

청년은 기수를 따라 가려고도 아니하고, 볼 일 다 보았다는 듯이 논에 들어서서 여전히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분함과 무서운 광경에 덜덜 떨고 섰던 부인네들도 일을 쉬었다가는 삯을 못 받을 것을 생각하고, 그 청년의 뒤를 따라 모내기를 시작하였다.

 

그렇지마는 어느 사람의 맘에나 무서운 후환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유순도 자기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을 생각하고는 심히 미안하였다.

 

신 참사는 그 청년이 기수를 더 때리지 아니한 것, 자기까지도 때리지 아니한 것만 다행으로 알고 아무 말도 아니하고 씨근벌떡거리며 기수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들이 손에 오르지도 아니하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을 때에 끝이 없는 듯하던 여름 해도 독장이라는 산마루에 올라앉게 되었다.

 

오늘 할 일은 다 되었다. 사람들은 손을 씻고 세수를 하고 발을 씻고 집을 향하여 무거운 다리를 끌었다. 배는 고프고 허리가 아파서 몸이 앞으로 굽혀지려고 하고 눈알 힘줄이 늘어나서 눈알은 쏟아질 듯이 달리고, 다리는 남의 것과 같았다. 입을 다시어 마른 입술을 축이려 하나 침도 나올 것이 없었다. 순사가 나올 텐데, 하고 연해 읍으로 뚫린 길을 돌아보고는 그 청년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직 순사가 오는 모양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살여울 동네 앞에 일행이 가까이 왔을 때에는 다른 논에서 모를 내던 사람들도 들어오는 것을 만나고, 소를 먹여 가지고 타고 오는 아이들이며, 주인을 따라나오는 개들도 만났다. 모두 배가 고프고 피곤하여 마치 상여를 따라가는 사람들과 같이 고개를 폭 숙이고 도무지 말이 없었다. 어린애들까지도 뛰고 지껄일 기운이 없었다. 개들도 얻어 먹지를 못하여 뼈다귀가 엉성하였다. <주린 무리>, <기쁨 없는 무리>-이렇게밖에 보이지 아니하였다.

 

집들에서는 그래도 저녁 연기가 올랐다.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 여남은 살밖에 못된 계집애들의 발은 말할 것도 없고, 치마도 웃통도 다 벗고 땟국을 흘리며 부엌에서 먹을 것을 끓였다. 찐 조밥이면 상등이다. 만주 좁쌀 한 줌에 풀 잎사귀 한 줌, 물 한 사발을 두고, 젖은 나뭇개비를 때어서 불이라는 것보다도 썩은 연기로 끓인 것이 그들의 먹을 것이다.

 

구더기 움질거리는 된장도 집집마다 있는 것이 못된다. 모래알 같은 호렴도 집집마다 있는 것은 못된다. 이렇게 참혹한 것을 먹고 나서 어슬어슬하여 오면 모기가 아우성을 치며 나오고, 곤한 몸을 방바닥에 뉘어 잠이 들 만하면 빈대와 벼룩이 침질을 한다. 문을 닫자니 찌고, 열자니 모기가 덤비지 않느냐. 아아 지옥 같은 농촌의 밤이여. 쑥을 피워 눈물이 쏟아지도록 연기를 피우면 모기는 아니 덤비지마는, 쑥이 꺼지기만 하면 우와 하고 총공격을 하지 않느냐. 아아 지옥 같은 농촌의 밤이여!

 

"그래도 옛날에는…"

 

하고 노인들은 한탄할 것이다.

 

"그래도 옛날에는 제 집에, 제 땅에, 제 낙도 있더니만."

 

하고 집도 땅도 낙도 모두 잃어버린 노인들은 한탄할 것이다.

 

"옛날에는 늙은이, 계집애들은 논밭일 아니하고도 배는 곯지 아니하였건마는"

 

이렇게 배고픈 노인은 과년한 유순이 같은 처녀를 사내들 틈에 섞이어 삯모 내러 보내지 아니치 못하는 유순의 아버지는 한탄할 것이다.

 

"배만 부르면야 모기 빈대가 좀 뜯기로니"

 

"논과 밭이 내것이면야 허리가 아프기로니-내 곡식이 모락모락 자라는 것만 보아도 귀한 자식 자라는 것을 보는 것같이 기뻤건마는. 내가 심어 내가 거두어 내가 먹는 그러한 날을 한번 더 보고 죽었으면"

 

모길래, 빈댈래, 빚 근심일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늙은 농부들은 지나간 날을 생각하고 하룻밤에도 몇번씩 이러한 한탄을 할 것이다.

 

"어찌하다가 우리는 땅을 잃고 집을 잃고 낙도 잃었을까"

 

이렇게 늙은 농부는 유시호 자기네가 가난하게 된 원인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에는 이 문제를 설명할 만한 지식이 없다.

 

"별로 전보다 더 잘못한 일도 없건마는-술을 더 먹은 것도 아니요, 담배를 더 피운 것도 아니요, 도적을 맞은 것도 아니요, 무엇에 쓴 데도 없건마는-여전히 부지런히 일하고 아끼고 하였건마는, 새 거름 새 종자로 수입도 더 많건마는"

 

이렇게 땅을 잃은 농부는 자탄한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서 애를 쓴다.

 

"비싸진 구실, 비싸진 옷값, 비싸진 교육비, 비싸진 술값, 담배값"

 

그는 이러한 생각도 해본다. 채마 한편 귀퉁이에다가 담배포기나 심으면 일 년 먹을 담배는 되었다. 보릿말이나 누룩을 잡아, 쌀되나 삭히면 술이 되어 사오 명절이나, 제삿날에는 동리 사람 술잔이나 먹였다. 그렇지마는 지금은 담배도 사 먹어야, 술도 사 먹어야 한다. 내 손으로 만든 누에고치도 내 맘대로 팔지를 못한다. 그는 이러한 생각도 해본다.

 

넓게 뚫린 신작로, 그리로 달리는 자동차, 철도, 전선, 은행, 회사, 관청 등의 큰 집들, 수없는 양복 입고 월급 많이 타고 호강하는 사람들, 이런 모든 것과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나 하고 생각도 하여 본다. 그렇지마는 이 모든 것이 다 이 늙은 자기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인지 그는 해득하지 못한다.

 

"다 제 팔자지, 세상이 변해서 그렇지."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단념한다. 그에게는 자기의 처지를 스스로 설명할 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장래를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을 계획할 힘도 없다. 그는 모를 내고 김을 매고 거두고 빚에 졸리고, 모기 빈대에게 뜯기고, 근심 많은 일생을 보내기에 정력을 다 소모해 버리고, 다른 생각이나 일을 할 기력이 없다. 마치 늙은 부모가 오직 젊은 자녀들을 믿는 모양으로, 그는 어디서 누가 잘 살게 해 주려니 하고 희미하게 믿고 있다. 그에게는 원망이 없다. 그것은 조선 마음이다.

 


 

 

유순의 아버지 유 초시는 그 날 유순의 말을 듣고 분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내일부터는 모내러 가지 말어라. 그러길래 내가 뭐라더냐, 굶어 죽기로니 내 딸이 논에 들어서랴고. 다실랑 가지말아. 도시 내 탓이다."

 

이렇게 유 초시는 분개하였다.

 

유순도 마음이 괴로왔다. 더구나 한갑이(기수를 때린 청년)가 자기 때문에 장차 일을 당할 것을 생각할 때에 미안하였다. 한갑이는 유순이를 사랑하는 청년으로, 그는 늙고 가난한 과부의 아들이었다. 유순은 한갑이가 자기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줄을 잘 안다. 그는 유순이가 보통학교에 다닐 적에 세 반이나 위에 있던 아이로서 학교에 매양 동행하였다. 개천을 업어 건네다 주는 일도 있었다.

 

한갑이는 말이 없고 진실하고 어떠한 괴로운 일이든지 싫다거나 하고 핑계하거나 앙탈하는 일이 없었다. 아직 나이 젊지마는 동네 어른들도 한갑이를 존경하였다. 이를테면 살여울 동네에서 제일 믿음성 있는 사람이었다. 문벌로 말하면 유순의 집에 비길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타관에서 어떻게 굴러 들어와서 이 동네에 살게 되었으나, 그 아버지는 벌써 죽은 지가 오래여서 유순은 그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갑이 어머니가 한갑이 하나를 길렀다. 남의 집 일을 해 주고, 겨울이면 길쌈을 하고-그 과부는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는 이였다. 한갑이는 그 아버지보다도, 성질에 있어서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 어머니도 말이 없고 부지런하고 믿음성이 있었다.

 

이러한 한갑이다. 그는 속으로는 유순이를 사모하건마는 감히 그 말을 유 초시에게 하지는 못하였다. 돈이 없고 문벌이 낮기 때문에, 유순의 오라범이 글자나 읽었노라고 도무지 일을 아니하고 술이나 먹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유순의 아버지는 집안에 어려운 일을 많이 한갑에게 부탁하였다. 이 집에 장을 보아 주는 사람은 한갑이었다.

 

이러한 한갑이를 죄에 빠뜨리게 한 것을 유순은 퍽으나 슬퍼하였다.

 

유순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물동이를 들고 물 길러 나갔다. 우물이 동네 서편 끝 정거장으로 질러가는 길가에 있기 때문에, 또 서울서 오는 새벽차가 여름에는 새벽 물 길러 갈 때에 오기 때문에, 유순은 여름이면 물 길러 우물에 나와서는 무너밋목을 바라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행여나 허숭이가 오나 하고, 허숭은 벌써 서울 부자집 딸과 혼인을 해버렸지마는 그래도 유순의 이 버릇은 아직 빠지지 아니하였다. 우물 위에는 거미줄이 걸리고, 그 거미줄에는 눈물방울과 같은 이슬이 맺혀서 새벽 빛에 진주같이 빛났다. 마치 유순이가 첫물을 긷기 전에는 이 우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것 같았다.

 

유순은 거미줄에 걸린 이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바가지로 그 거미줄이 상하지 아니하도록 물을 떠서 손에 받아 낯을 씻고 치맛자락을 수건삼아 썼다. 밤에 잠을 잘 못 잔 유순의 피곤한 낯에 찬 샘물이 닿는 것이 시원하였다.

 

유순은 물 한 동이를 길어 놓고 또아리를 머리에 이고 또아리 끈을 입에 물고 물동이를 이기 전에 무너미를 바라보았다. 아침 이슬에 목욕한 풀빛은 짙은 남빛이었다. 구름을 감은 독장이 높은 봉우리에는 불그레 햇빛이 비치었다. 오지 못할 사람을 아침마다 기다리는 유순의 가슴도 무거웠다.

 

유순은 휘유 한번 한숨을 쉬고 허리를 굽혀 물동이를 이려 하였다. 물동이에 엎어서 덮은 바가지 등에 푸른 메뚜기 한 놈이 올라 앉았다가 유순의 손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뛰어 달아나서 이슬에 젖은 풀숲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유순이가 바로 물동이를 들어서 머리에 이려 할 때에 유순의 앞에는 양복을 입고 큰 슈트 케이스를 든 남자가 나타났다. 유순은 물동이를 떨어뜨릴 뻔하도록 놀랐다.

 

유순은 물동이를 든 채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 남자는 허숭이었다. 허름한 학생복 대신에 흰 바지 흰 조끼에 말쑥한 양복을 입은 것만이 다르고는 분명히 허숭이었다.

 

그러나 허숭인 것을 분명하게 본 유순은, 물동이를 이고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집을 향하여 걸었다.

 

남의 남편인 남자를 대해서는 이러하는 것이 조선의 딸의 예법인 까닭이었다.

 

"나를 몰라 보오"?

 

하고 허숭은 슈트 케이스를 이슬에 젖은 풀 위에 내어버리고 유순의 뒤를 빨리 따르며,

 

"내가 숭이외다."

 

하고 말하였다.

 

"네."

 

하고는 순은 여전히 앞으로 걸어갔다.

 

"아버지 안녕하시오"?

 

하고 숭은 다른 말이 없어서, 말을 하기 위해서 물었다.

 

"네."

 

하고 순은 여전히 외마디 대답이었다.

 

숭은 그만 더 따라 갈 용기를 잃어버리고 우뚝 섰다. 마치 장승 모양으로.

 


 

 

순은 한 손으로 연해 물동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떨어버리며 뒤도 아니 돌아보고 간다.

 

해가 솟았다. 순의 물동이의 한편 쪽이 햇빛에 반사하여 동이에 맺힌 물방울에서 수없는 금빛 줄기가 난사하였다.

 

순의 고무신 신은 두 발이 축축하게 젖은 흙을 밟고, 때로는 길가에 고개 숙인 풀대를 건드리며 점점 작아가는 양, 검은 빛인지 붉은 빛인지 분별할 수도 없는, 때 묻고 물 날고 떨어진 댕기, 그것이 풀 죽은 광당포 치마에 스쳐 흔들리는 양을 숭은 이윽히 보고 섰다가, 그것조차 아니 보이게 된 때에 숭은 힘 빠진 사람 모양으로 길가 돌 위에 걸터앉았다.

 

숭은 한 손으로 머리를 버티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숭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집 잃은 사람, 길 잃은 사람, 모든 희망을 잃은 사람인 것을 스스로 느낀 것이었다.

 

숭은 어젯밤 가정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의 아내 정선이가,

 

"에끼, 시골뜨기, 에끼, 똥물에 튀길 녀석."

 

하고 자기에게 갖은 욕을 퍼붓고, 나중에는 세수대야를 자기에게 뒤집어 씌우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 직접 이유는 숭이가 이 남작집 소송 의뢰를 거절하였다는 것이었다. 이 소송은, 이 남작과 그 부인과, 이 남작의 아들과 기타 친족들이 관련된 간음, 이혼, 동거 청구, 재산 다툼 같은 것을 포함한 추악하고 복잡한 사건으로서, 착수금이 이천 원이라는 변호사 직업하는 사람이 침을 흘리는 소송이었다. 그 뿐더러 이 소송은 윤 참판의 소개로 허숭에게로 돌아온 것이요, 또 허숭이가 김 자작집 재산 싸움 소송에 이겼다는 것이 서울 사회에 이름이 높아진 까닭이었다.

 

만일 이 소송을 이기는 날이면 십만 원 가까운 사례금이 오리라는 것인데, 숭은 김 자작집 소송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관계로 다시는 이런 추악한 사건에는 관계를 아니한다고 맹세하여 이것을 거절해버려서, 그 사건은 마침내 어느 일본 변호사와 조선사람 변호사와 두 사람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정선의 감정을 격분시킨 것이었다.

 

"그저 그렇지, 평생 남의 집 행랑방으로나 돌아댕겨. 원체 시골 상놈의 자식이 그렇지 그래"

 

하고 정선은 남편이 굴러 들어오는 복을 박차 내버리는 것이 그가 시골 상놈의 자식이기 때문이라고 단언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근인에 지나지 못하였다. 숭과 정선과 가정 생활을 하는 날이 깊어 갈수록 두 사람의 생각에는 점점 배치되는 점이 많아졌다. 대관절 두 사람의 인생관이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그것이 점점 탄로가 된 것이었다.

 

"이 세상에 돈이 제일이지."

 

하는 것이 정선의 근본 사상의 제일조였다. 둘째는 그가 말로 발표는 아니하더라도 또 한 가지 근본 사상이 있는 것을 숭은 정선에게서 발견하였다. 그것은 성욕을 중심으로 한 향락 생활이었다. 마치 정선의 호리호리한 어여쁜 몸이 전부 성욕으로 된 듯한 생각을 줄 때가 있었다. 이것이 숭에게는 못마땅하였다.

 

숭의 생각에는, 고등한 교육을 받지 아니하였더라도 인격의 존엄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보다도 음란하다는 말을 듣지 아니하는 사람으로는 성적 욕망이라는 것은 비록 부부간에라도 서로 억제할 것이라고, 서로 보이지 아니할 것이라고 믿었다. <서로 대하기를 손같이 하라> 하는 동양식 부부 도덕에 젖은 때문인가 하고, 숭은 혼자 저를 의심해보았다. 그래서 아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 보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숭에게는 자기를 낮추는 듯한 심히 불쾌한 일이었다. 그가 애써서 수양해 온 인격의 존엄이라는 것을 깨뜨려버리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숭의 인격의 존엄을 지키려 할 때에 정선은 이것이 사랑이 없는 까닭이라 원망하고, 심하면 유순이라는 계집아이를 못 잊는 까닭이라고 해서 바가지를 긁었다.

 

원망하는 여자의 얼굴, 질투의 불에 타는 여자의 얼굴은 숭의 눈에는 심히 추하였다. 아내의 눈에서 질투의 불길이 솟고, 그 혀끝에서 원망의 독한 화살이 나올 때에 숭은 몸서리가 치도록 불쾌하였다. 자기의 사랑하는 어여쁜 아내의 속에 이런 추악한 것이 있는 것이 슬펐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요, 여러 번 거듭할수록 숭의 눈에서는 아내의 아름다움이 점점 스러졌다.

 

순결한 청년 남자로서 그리던 여자의 아름다움, 여자의 몸을 쌌던, 여자의 아름다운 맘에서 증발하는 증기라고 믿던 분홍빛 안개가 걷혀버리고, 여자는 마치 육욕과 질투, 원망과 분노를 뭉쳐 놓은, 보다 싫은 고깃덩어리로 보였다. 그렇게도 아담스럽고 얌전하고, 정숙하게 보이던 정선이가 이 추태를 폭로하는 것을 볼 때에 숭은 여자의 허위, 가식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왜 내 아내 정선이가 얌전, 정숙, 그 물건이 아닌가 하고 울고 싶었다. 미소거미(여자를 미워하는 성질)를 자기가 가졌는가고 스스로 의심하여 아내 정선을 재인식하려고 힘도 써 보았다. 그러나 정선은 갈수록 더욱 평범 이하의 여성에 떨어지는 것같이 숭의 눈에 비치었다.

 

숭은 마침내 자기의 정성을 가지고 정선의 정신 상태를, 도덕 표준을, 인생관을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려고도 결심을 해보았다. 그러나 숭의 정성된 도덕적 탄원은 정선의 비웃음거리만 되고 말았다. 정선에게는 남편인 숭에게 대한 우월감이 깊이깊이 뿌리를 박은 것 같았다. 숭의 말이면 무엇이나 비웃고 반대하였다. 그러할 뿐더러 정선은 적극적으로 빈정대고 박박 긁어서 숭을 볶는 것으로 한 낙을 삼는 것같이도 보였다.

 

재판소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숭의 마음에는 조금도 화평과 기쁨이 없었다. 대문 안을 들어서기가 끔찍끔찍하였다. 요행 웃는 낯으로 맞아주는 때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잘 때까지 사오 시간 어떻게나 유지하나 하고, 숭은 애를 쓰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다. 그러다가 무슨 일만 생기면 이 무장적 평화는 순식간에 깨어지고 집안은 찬바람이 도는 수라장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아, 못 견디겠다. 이러하다가는 내 인생은 내외 싸움에 다 허비해버리고 말겠다."

 

고 자탄을 발하게 되었다.

 

이런 일을 수없이 하다가 어젯밤에 대파탄이 일어나 숭은 단연히 집을 버리고 뛰어나온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앉았을 때에 숭의 곁에는 서슬이 푸른 경관 세 명이 달려왔다.

 

숭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셋 중에서 가장 똑똑해 보이는 순사가 바싹 숭의 가슴 앞에 와 서며,

 

"당신 무엇이요"?

 

하고 무뚝뚝하게 물었다.

 

"무엇이요"?

 

하는 말에 숭은 좀 불쾌했다.

 

"나 사람이요."

 

하고 숭도 불쾌하게 대답하였다.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

 

하고 곁에 섰던 순사가 숭에게 대들었다.

 

"사람더러 무엇이냐고 묻는 법은 어디 있어"?

 

하고 숭도 반말로 대답했다.

 

"이놈아, 그런 말버릇 어디서 배워 먹었어"?

 

하고 곁에 섰던 또 다른 순사가 숭의 따귀를 갈겼다. 연거푸 두 번을 갈기는 판에 숭의 모자가 땅에 떨어졌다.

 


 

 

처음에 숭에게 <당신 무엇이요?>하던 순사가 수첩을 꺼내어 들고,

 

"성명이 무어"?

 

하고 신문하는 구조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이 아니어든, 왜 까닭없는 사람더러 불공하게 말을 하오"?

 

하고 숭은 뻗대었다.

 

"아마 이놈이 동네 농민들을 선동을 하여서 농업 기수에게 폭행을 시켰나 보오. 이놈부터 묶읍시다."

 

하고 한 순사가 일본말로 하였다.

 

숭은 어찌 된 영문을 몰라서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러나 이 순사들은 자기를 따라온 것이 아니요, 이 동네 농민과 기수 사이에 무슨 갈등이 생겨서 농민들을 잡으러 오는 것임을 짐작하였다. 그리고는 일변은 변호사인 직업의식으로, 또 일변은 자기가 일생을 위해서 바치려는 살여울 동네 농민에게 무슨 중대 사건이 생겼다 하는 의식으로 이 자리에서 쓸데없는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옳지 아니한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늘 아침 차로 서울서 내려온 사람이요. 지금 내 고향인 살여울로 가는 길이요."

 

하고 역시 일본말로 냉정하게 대답하였다.

 

숭의 유창하고 점잖은 일본말과 또 냉정한 어조에 수첩을 내어든 순사는 좀 태도를 고쳤다.

 

"오늘 차에서 내렸소"?

 

하고 일본말로 좀 순하게 물었다.

 

"그렇소."

 

"그랬으면 자네네들 이 사람 보았겠지"?

 

하고 두 조선 순사를 돌아보았다.

 

두 순사는 물끄러미 숭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응, 본 것 같소."

 

하고 싱겁게 대답하였다.

 

이리해서 급하던 풍운은 지나갔다. 더구나 변호사라는 명함을 보고는 경관들은 좀더 태도를 고쳤다. 숭의 따귀를 때린 순사는 약간 머쓱하기까지 하였다. 숭은 불쾌한 생각이 용이히 가라앉지 않지마는, 이것은 시골에 의례히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꿀떡 참았다-아니 참기로 별 수가 있으랴마는.

 

숭은 짐을 들고 순사들의 뒤를 따라갔다.

 

동네 개들이 요란하게 짖었다.

 

목적한 범인 여덟 사람은 반 시간이 못 되어서 다 묶이었다. 그들은 반항도 아니하고 변명도 아니하고 어디 구경가는 사람 모양으로 열을 지어서 묶이어 섰다. 다만 아들을, 남편을 잡혀 보내는 부인네들이 문 앞에 서서 울 따름이었다.

 

이 사건의 주범되는 맹한갑은 잡힐 때에 매를 맞고 발길로 채어서 그러한 자리가 있었다.

 

숭은 우두커니 서서 이 광경을 보았다.

 

경관대는 담배 한 대씩을 피우고는 범인 여덟 명을 끌고 읍으로 향하였다.

 

허숭은 와 있기를 바라는 일가집을 다 제치고 한갑의 집으로 갔다. 이전에는 쓴 외 보듯 하던 일가 사람들도 숭이가 변호사로 부자집 사위로 훌륭한 옷을 입고 돌아온 것을 보고는 다투어서 환영하였다.

 

"네가 귀히 되어 왔구나."

 

하고 할머니 아주머니뻘 되는 부인네들까지도 환영을 하였다.

 

"아이, 올케가 썩 미인이라더구나."

 

하고 누이 항렬 되는 여자들도 대환영이었다. 그러나 숭은 이러한 환영도 다 뿌리치고, 이 동리에서 제일 작고 가난한 한갑이네 집을 택하였다. 한갑 어머니는,

 

"아이, 자네같이 귀한 사람이 어떻게 우리집에 있나."

 

하고 걱정하였다.

 

"쌀이 없는데, 반찬이 없는데."

 

하고 한갑 어머니가 애를 썼다.

 

"자제 먹던 대로만 해 주세요."

 

하고 숭은 한갑 어머니에게 안심을 주었다.

 

한갑 어머니는 잡혀간 아들이 무사히 돌아올까 하고 부엌에서 숭을 위하여 밥을 짓는 동안에도 몇번이나 나와서 숭에게 물었다.

 

"기애가 글쎄, 그놈을 때렸다네 그려. 순이 손목을 그 놈이 잡고 또 순이의 뺨을 때렸다구, 기애가 글쎄, 그런 애가 아닌가. 학교에 다닐 적에도 남의 일에 참견을 노상 하지 않었나. 글쎄, 어쩌자고 관인(관리라는 받든 말)을 때리나. 그런 철없는 녀석이 어디 있어? 아이, 그 녀석이 이 늙은 에미 속을 이렇게 아프게 하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들락날락하며, 어떤 때에는 부엌에서 머리만 내밀고 또 어떤 때에는 부지깽이를 들고 몸까지 내놓고, 어떤 때에는 소리만 나왔다.

 

"왜 한갑군이 잘못했습니까"?

 

하고 숭은 진정으로 한갑의 행동에 감격하여서,

 

"그럼, 남의 여자 팔목을 잡고, 뺨을 때리는 놈을 가만두어요-두들겨 주지요."

 

"그야 그렇지."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숭의 칭찬에 만족하는 듯이, 부엌 문 밖에 나와서 허리를 펴며,

 

"그렇지만두, 요새 세상에 농부나 해먹는 놈이야 어디 사람인가. 귀 밑에 피도 아니 마른 애들이 무슨 서깁시요, 무슨 나립시요, 하고 제 애비 할애비뻘 되는 어른들을 이놈, 저놈하고 개 어르는 듯하지. 걸핏하면 따귀를 붙이고. 글쎄, 일전에도 전매국인가 어디선가 온 사람이 담배가 어쨌다나 해서."

 

하고 마나님은 비밀의 말이나 되는 듯이 소리를 낮추며,

 

"저, 회나뭇댁 참봉 영감을 구둣발로 차서 까무러쳤다가 피어는 났지마는 아직도 오줌 출입도 못한다오. 그 양반이 지금 환갑 진갑 다 지내고 일흔이 넘은 어른이 아니신가. 말 말어. 그나 그 뿐인가. 그놈의 청결 검사, 담배 적간, 술 적간, 농회비, 무엇이니 하고 읍내서 나오는 날이면 어디 맘을 펴 보나. 글쎄, 남의 집 안방, 부엌 할 것 없이 시퍼렇게 젊은 놈들이 막 뛰어들어와 가지고 젊은 아낙네까지 붙들고 힐거를 하는 수가 있으니, 요새 법은 다 그런가, 서울도 그런가, 나라 법이야 어디 그럴 수가 있나.

 

이래서야 어디 백성들이 살아 먹을 수가 있나. 또 그놈의 신작로는 웬걸 그리 많이 닦는지, 부역을 나와라, 조약돌을 져 오너라, 밭갈 때나 김맬 때나 나오라면 나가야지, 아니 나갔다가는 큰일 아닌가. 우리 같은 것도 그래도 한 집을 잡고 산다고 남 하는 것 다 하라네그려. 이거 원 어디 살 수가 있나. 서울도 그런가. 우리 면장이 몹쓸어서 그런가, 구장이 몹쓸어서 그런가, 나라 법이야 어디 그럴 수가 있나."

 

하고 마나님은 길게 한숨을 지며,

 

"아무려나 우리 한갑이나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지마는, 그 녀석이 왜 글쎄, 관인을 때려! 망할 녀석!"

 

하고 눈물을 떨어뜨린다.

 


 

 

한갑 어머니는 속으로 무한한 슬픔과 불안을 가지면서도, 도회 여자 모양으로 그것을 말이나 몸짓으로 발표하지는 아니하였다. 그에게는 조선의 어머니의 자제력이 있었다.

 

그러나 숭을 위하여 밥상을 들고 나오는 한갑 어머니의 모양은 차마 바로 볼 수 없도록 초췌하였다. 나이는 아직 육십이 다 못되었건마는 이가 거의 다 빠져서 볼과 입술이 오그라지고, 눈은 움쑥 들어가고, 몸에 살이 없어서 치마 허리 위로 드러난 명치 끝 근방은 온통 뼈다귀에다가 꼬깃꼬깃 꾸겨진 유지를 발라 놓은 것 같았다. 게다가 굳은 살과 뼈만 남은 손-그것은 일생에 쉬임 없는 노동과 근심과 영양불량으로 살아온 표적이었다.

 

숭은 일어나서 밥상을 받아 놓고, 서울서 보던 몸 피둥피둥하고 머리 반드르한 마님네를 연상하였다. 그네들에게는 일생에 하인들에게 잔소리 하는 고생밖에 노동이라는 것이 없었고, 그리고도 고량진미에 영양은 남고도 남아서 먹은 것이 미처 다 흡수될 수가 없어서, 끄륵끄륵 소화불량이 되어 보약입시요, 약물입시요, 하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밥상! 숭의 밥상은 몇 백년째나 한갑의 집에서 대대로 물려오는 팔모반이었다. 본래는 칠하였던 것이 벗어지는 동안이 반 세기, 벗어지는 한편으로 다시 때와 먼지로 칠하기 시작하여 완전히 칠해지기까지 반 세기, 가장자리를 두른 여덟 개 어슬 장식 언저리 중에는 겨우 세 개가 남았을 뿐이다. 이 소반은 그래도 한갑의 집이 옛날에는 점잖게 살던 집인 것을 표시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한갑 어머니는 지금도 자기 집 가장의 밥상이, 비록 은반상, 고기 반찬은 못 오를망정 모반(네모난 소반)이 아니요, 팔모반인 것을 큰 자랑으로 알고 있다. 이 소반은 한갑할머니가 한갑의 할아버지에게 시집 올 때에, 그 시조부의 밥상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 전에는 몇 대를 전하여 왔는지 모르지마는, 그 후에 한갑의 조부, 그 후에는 한갑의 아버지, 그리고는 한갑의 밥상이 된 것이었다. 이 밥상은 이 집 가장 이외에는 받지 못하는 거룩한 가보였다. 이 상에 밥을 주는 것이 숭에게 대한 더할 수 없는 큰 대접이었다.

 

상만 아니라 대접과 주발도 옛날 것이었다. 대접은 여러 대 이 집 가장이 써 오는 동안 밑이 닳아져서-그 두꺼운 밑이 닳아져서 뽕하고 구멍이 뚫려서 여기서 사십 리나 되는 유기전에 가서 기워 왔다.

 

"요새에는 이런 좋은 쇠는 없소."

 

하고 유기점 사람이 말하였다는 것은 결코 이 고물을 빈정댄 것만이 아니었다. 사실상 옛날 조선 유기는 요새 것보다 쇠도 좋고 살도 있고 모양도 점잖아서 요새 것 모양으로 작고 되바라지지를 아니하였었다. 숭은 이 비록 다 닳아진 것이나마, 그 후덕스럽고 여유있는 바탕과 모양을 가진 기명과 한갑 어머니와를 비겨보고, 옛날 조선 사람과 오늘날 조선 사람과의 정신과 기상과를 비교해 보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렇지마는 그 그릇에 담은 밥은 불면 날아갈 찐 호좁쌀이요, 반찬이라고는 냉수에 간장을 치고 파 한 줄기를 썰어서 띄운 것 한 그릇(이것이 유기점에서 기워 온 고물 대접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는 호박잎 줄거리의 껍질과 실을 벗기고 숭숭 썰어서 된장에 섞어서 호박 잎사귀에 담아서 화로불에, 글쎄 굽는달까 찐달까 한 찌개 한 그릇뿐이었다. 이 호박잎 찌개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찌개를 찔 그릇이 없는 것, 또 하나는 호박잎을 찌느라면, 된장에 있던 구더기가 뜨거운 것을 피해서 잎사귀 가장자리로 기어나오기 때문에 구더기를 모두 집어 낼 수 있는 편리가 있는 것이었다.

 

조밥 한 그릇 듬뿍 꾹꾹 눌러서 한 그릇, 파 찬국 늠실늠실 넘게 한 그릇, 그리고 구더기 없는 된장 호박잎 찌개 한 그릇-이것이 숭이가 농촌에 돌아온 후 첫 밥상이었다.

 

"아주머니 안 잡수셔요"?

 

하고 숭은 한갑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서 먹게. 나 먹을 건 부엌에 있지."

 

하고 한갑 어머니는 마른 호박잎을 쓱쓱 손바닥에 비벼서, 아마 한갑이와 공동으로 쓰는 것인 듯한 곰방대에 담아서 화로에 대고 빤다. 이것이 호박잎 담배라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콩잎 담배가 생기거니와, 그 때까지는 호박잎 담배로 산다. 정말 담배를 사 먹는 사람이 이 동네에 몇 집이나 될까, 얻어만 먹어도, 대접으로 한 줌을 주기만 하여도 죄가 되는 이 세상이거든 한갑이가 짚세기를 삼아서 장에 내다 팔아서 장수연 한 봉지를 사다가 주면 어머니는

 

"돈 없는데 이건 왜 사왔니"?

 

하고 걱정을 하면서도 맛나게 피웠다.

 

숭은 목이 메어서 밥이 넘어가지를 아니하였다. 그것은 찐 호좁쌀밥이 되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찬국의 장맛이 써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된장 찌개에 구더기 기어나던 생각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갑 어머니의 말이 하도 참담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한갑 어머니라는 비참한 존재, 그를 보는 것,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목이 메었던 것이다.

 

그래도 숭은 이 밥을 맛나게 먹어 보이는 것이 이 불쌍한 노인에게 대한 유일한 위로로 알고 냉수에 밥을 말아서 아무 감각도 없이 반 그릇이나 남아 퍼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숭이 숟가락을 놓을 때에 한갑 어머니는 곰방대를 놓고 일어나면서,

 

"어디 건건이가 있어야 먹지. 그래도 물에 다 놓지 않고, 자 한 술만 더 뜨게."

 

하고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서 밥을 물에 떠 넣으려고 한다.

 

"아이구, 그렇게 못 먹습니다."

 

하고 숭은 한갑 어머니의 팔을 붙들었다.

 

"이걸 원 어떡하나. 서울서 호강만 하던 손님을 쓴 된장에 호좁쌀밥을 대접하니 이거 어디 되겠나. 죽은 목숨야 죽은 목숨."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숭이가 남긴 밥에 물을 부어 그 자리에서 된장 찌개 아울러 먹기를 시작한다.

 

숭은 한번 놀랐다.

 

"이 노인이 밥을 한 그릇만 지어서 내가 남기면 먹고 아니 남기면 자기는 굶을 작정이었고나"

 

하였다.

 


 

 

기실은 이 노인은 끼니마다 밥 한 그릇 지어서는 아들을 주고 아들이 먹다가 남기면 자기가 먹고 아니 남기면 숭늉만 마시었다. 아들이 혹,

 

"어머니 잡술 것 없소"?

 

하고 물으면 그는,

 

"없긴 왜? 부엌에 담아 놓았지. 지금 먹기가 싫어서 있다가 먹으려고 그런다."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모양으로 한갑 어머니는 춘궁기가 되어서부터는 햇곡식이 날 때까지 하루에 한 끼도 먹고 반 끼도 먹고 살아간다. 밖에 나가서 힘드는 일을 하는 아들만 든든히 먹여 놓으면 집에 가만히 있는 자기는 굶어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이 늙은 부인은 피부 밑에 있어야 할 기름을 다 소모해버리고, 아마 내장과 뼈속에 있는 기름도 다 소모해버리고 오직 뼈와 껍질만이 남아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눈은 흐리고 입술은 검푸르다. 피가 부족한 것이다. 피 될 것이 없는 것이다.-이렇게 허숭은 생각했다.

 

한갑 어머니는 그 밥과 된장과 찬국을 하나 아니 남기고 다 먹어버린 뒤에 상을 들어 옮겨 놓으며,

 

"그런데 베노사 벼슬을 해서 귀히 되었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왔나. 이 더운데? 그래도 고향이 그리워서 왔지? 얼마나 있다 가려나? 오늘 밤차로는 아니 가겠지."

 

하고는 늙은 부인은 불현듯 한갑이를 생각하고,

 

"어떻게 우리 한갑이 무사하게 해주게. 이 늙은 년이 그놈을 잃구야 어떻게 사나. 하느님이 도우셔서 베노사가 오게 했지."

 

하고 혀를 끌끌 찬다.

 

"서울 안 갑니다. 여기 살러 왔어요."

 

하고 숭은 귀머거리에게 말하는 높은 음성으로 힘있게 말하였다. 한갑 어머니가 귀가 먹은 것은 아니지마는, 그 초췌한 모양이 보통 음성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이 보인 것이었다.

 

"여기서 살다니? 베노사같이 귀한 사람이 무얼 하러 이런 데 사나. 죽지를 못해서 이런 시골 구석에 살지. 쌀밥을 먹어보나. 대관절 담배 한 대를 맘대로 먹을 수가 없단 말야. 그도 옛날 같으면야 이따금 떡도 해먹고 술도 해먹고 돼지도 잡아먹고 한 집에서 하면 여러 집에서 노나도 먹고 하지마는, 요새야 밥을 땅땅 굶고, 노나먹다니 인심이 박해져서 없네 없어. 또 쌀독에 인심이 난다고 어디 노나먹을 것이나 있다든가. 웬일인지 우리 동리도 요새에는 다 가난해졌거든.

 

신구상계나 하고 농량이나 아니 떨어지는 집이 우리 동리에 초시네 집하고 구장네 집하고나 될까. 다 못살게 되었지. 글쎄, 유 초시네 순이가 삯김을 매네그려, 말할 거 있나. 그 순이가 어떻게 귀엽게 자라난 아가씬데. 다들 못살게 되었단 말야. 글쎄, 베노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데서 사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숭의 농담을 믿은 것이 부끄러운 듯이 싱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연기와 같이 희미하고 연기와 같이 힘없이 스러지고 만다.

 

"정말입니다."

 

하고 숭은,

 

"여기 살러 왔습니다. 어디 집이나 한 간 짓고 농사나 지어 먹고 살러 왔습니다. 인제는 서울 안 가구요."

 

하고 다지었다.

 

"그럼 댁네도 이리로 오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반신반의로,

 

"왜 벼슬이 떨어졌나"?

 

하고 근심하는 빛을 보인다.

 

"아내가 따라오면 할 수 없겠지마는 웬걸 오겠어요."

 

하고 숭은 아내에 관한 말을 길게 하기가 싫었다.

 

"아니, 댁네가 아주 부자집 양반집 따님이라든데. 또 순이가 그러는데 아주 예쁘게 생긴 사람이라든데. 그리고 처가댁에서 좋은 집도 사 주고, 땅도 여러 천 석 하는 것을 갈라주었다두구먼. 오, 그럼 여기 땅을 사러 왔나. 오 그렇구먼, 살여울 논을 사러 왔구먼. 베노사가 논을 사거든 우리 한갑이도 좀 주라고. 지금 논을 사려면 얼마든지 산다네. 모두 척식회사라든가, 금융조합이라든가에 잡혔던 것이 경매가 되게 된다고 다만 몇 푼이라도 남겨 먹게만 준다면 팔아버린다구들 그러는데, 한 마지기 둘 셋 나는 것을 삼십 원이니, 사십 원이니 부르고 있다네.

 

그렇게라도 팔아야 단돈 십원이라도 내 것이 된단 말야. 머 금년까지나 팔면 이 동리에 제 땅 가진 사람 별로 없을 걸세. 그러면 작까지 떨어지거든. 왜 금 같은 돈 주고 산 사람이 이전 작인 붙여둔다든가, 제 맘에 드는 사람 떼어주지. 그러니깐 이 동리에서는 사람 못 산다니까 그러네그려. 모두 떼거지 나구야 말지. 다른 데서들은 다들 서간도로 간 사람도 많지마는, 우리 살여울 동리야 어디 고래로 타도 타관으로 떠난 사람이야 있었나.

 

다들 그래도 제 집 쓰고 제 땅 가지고 벌어먹었지. 몇 해 전만 해두 살여울 땅을 놓으면 맘을 놓는다고 안했나. 우선 베노사네 집은 작히나 잘 살었나. 부자 아니었나. 베노사는 명당손이니까 또 더 큰 부자가 되었지마는, 다른 사람이야 한번 땅을 팔면 모래 위에 물 엎지르는 것 아닌가, 다시는 못 주워담지, 우리 집도 베노사네만은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지는 않지 않었나…."

 

이날 밤 숭은 저녁을 먹고 초시네 회나무 밑으로 갔다. 이 회나무는 본래 숭의 집 것이었다. 지금은 집 아울러 초시라는 사람의 것이 되었다. 이 회나무 밑은 여름이 되면 밤이나 낮이나 동리 사람의 회의실이요, 휴식소요, 담화실이었다. 오늘 저녁에도 모깃불을 피워놓고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늙은이, 젊은이, 아이들, 여러 떼로 모여 앉았다.

 

숭도 그 틈에 끼었다. 끼이자마자 숭은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다.

 


 

회나무는 난 지가 몇백 년이나 되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살여울에 배가 올라오던 시절에, 이 나무에 닻줄을 매었다 하나 그 배 올라오던 시절이 어느 때인지는 더구나 아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배 올라오는 데를 가자면 여기서 남쪽으로 시오 리는 가야 한다.

 

옛날 산에 나무가 많을 때에는 달내강에 물이 깊어서, 배가 살여울 동네 앞까지 올라왔을 법도 한 일이요, 이 동네에 처음 들어온 시조들이 배를 타고 이리로 올라왔을 법도 한 일이다. 그 때에 이 살여울 동네에는 산림이 무성하고 노루, 사슴, 호랑이가 들끓었을 것이다. 그 조상들은 우선 나무를 찍어 집을 짓고, 땅을 갈아서 밭을 만들고, 길을 내고, 우물을 파고, 그리고 동네 이름을 짓고, 산 이름을 짓고, 모든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물이 살같이 빠르니 살여울이라고 짓고, 강에 달이 비치었으니 달내라고 짓고, 달내가 가운데 흐르니 이 젖과 꿀이 솟는 벌을 달내벌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 때에 이 골짜기 그것을 두른 산 달내강, 거기 나는 풀과 나무와 고기와 곡식과 개구리 소리, 꽃향기가 모두 이 사람들의 것이었다. 아무의 것이라고 패를 써 박지 아니하였지마는 패를 써 박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 회나무도 그 나무가 선 땅이 근년에 몇번 소유권이 변동되었지마는, 이 나무는 말없는 계약과 법률로 이 동네 공동의 소유였다. 이 동네에 사는 이는 누구든지 이 나무 그늘의 서늘함을 누릴 수가 있었다. 사람뿐 아니라, 소도 말도 개도 병아리 거느린 닭들도 이 회나무 그늘 밑에서 놀든지 낮잠을 자든지 아무도 금하는 이가 없었고,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이 늙고 점잖은 회나무 그늘을 덥고 아픈 다리를 쉰다 하더라도 누가 못하리라 할 이가 없었다.

 

이 말이 믿기지 아니하거든 이 경력 많은 회나무더러 물어보라. 그는 적어도 사오백 년 동안 이 살여울 동네의 역사를 목격한 증인이다. 이 동네에서 일어난 기쁨을 아는 동시에 슬픔도 알았다. 더구나 이 동네 수염 센 어른들이 짚방석을 깔고 둘러앉아서 동네 일을 의논하고 잘못한 이를 심판하고, 훈계하고 하는 입법, 행정, 사법의 모든 사무가 처리된 것을 이 회나무는 잘 안다.

 

비록 제 일조, 제 이조 하는 시끄럽고 알아보기 어려운 성문율이 없다 하더라도 조상적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거룩한 율법이 있었고, 영혼에 밝히 기록된 양심률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어느 한 사람에게 손해를 지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릇 온 동네의 이익이라든지 명예에 해로운 일을 생각할 줄 몰랐다. 그것은 이 회나무가 가장 잘 안다. 개인과 전체, 나와 우리와의 완전한 조화-이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또 이 회나무는 그 그늘에서 일어난 수없는 연회를 기억한다. 혹은 옥수수, 혹은 참외, 혹은 범벅, 혹은 막걸리, 혹은 개장, 이러한 단순한, 그러나 건전한 메뉴로 짚세기를 결어 가며, 새끼를 꼬아 가며, 치?969루을 결어 가며, 꾸리를 결어 가며, 어린애를 달래어 가며, 고양이까지도 참석을 시켜 가며 즐거운 연회를 한 것을 이 회나무는 잘 기억한다.

 

면할 수 없는 죽음이 이 동네 어느 집을 찾을 때, 이 회나무 밑에서 온 동네의 뜨거운 눈물의 영결식을 하는 것도 아니 볼 수 없었지마는, 정월 대보름날 곱닿게 차린 계집애들이 손길을 마주 잡고 큰 바퀴를 만들어 가지고서,

 

"어딧 장차"?

 

"전라도 장차."

 

"어느 문으로"?

 

"동대문으로."

 

하고 추운 줄도 모르고 웃고 노는 양을 더 많이 보았다.

 

간혹 이 그늘에서, <이놈, 저놈>하고 싸우는 소리도 날 때가 있지마는, 그러한 충돌은,

 

"아서라."

 

하는 동네 어른의 점잖은 소리 한마디에 해결이 되는 것이었다.-숭은 이러한 공상을 하고 있었다.

 

"글쎄, 이놈들아, 왜 불장난을 하느냐."

 

하고 <든덩집 영감님>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가 짚세기를 삼으면서 모깃불에서 불붙은 쑥대를 뽑아서 내두르는 웃통 벗은 아이들을 보고 걱정한다.

 

"이놈들아, 불장난하면 오줌 싸."

 

하고 젊은 사람 하나가 주먹을 들고 아이들을 위협한다. 위협 받은 아이들은 빨갛게 타는 쑥대를 내어둘러 어두움 속에 수없이 붉은 둘레를 그리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깨르륵깨르륵 웃는 소리만 남기고. 그러나 그 애들은 쑥대에 불이 꺼지면 다시 모깃불 곁으로 살살 모여든다.

 

"어떻게 될 모양인고"?

 

하고 든덩집 영감님은 한편 발뒤꿈치에다가 신날을 걸고 꺾꺾 힘을 써서 죄면서,

 

"다들 무사하기는 어렵겠지"?

 

한다. 누구를 지명해 묻는 것은 아니나, 허숭을 향해서 묻는 것이 분명하다.

 

"아 관리를 때렸는데 무사하기를 어떻게 바라오."

 

하고 깨어진 이남박을 솔 뿌리로 꿰매고 앉았던 이가 대답을 가로챈다.

 

"아무리 관리기로 남의 처녀의 손목을 잡고 뺨을 때리는 법이야 어디 있나."

 

하고 든덩집 영감님은 손 뼘으로 신바닥을 재면서,

 

"옛날 같으면 될 말인가. 그놈의 정강이가 안 부러져"?

 

하고 분개하였다.

 

"옛날은 옛날이요, 오늘은 오늘이지요. 관리라는 관짜만 붙으면 남의 내외 자는 안방이라도 무상 출입을 하는 판인데, 처녀 팔목 한번 쥐고 뺨 한번 붙인 것이 무엇이야요"?

 

하고 이남박 깁는 이도 아니 지려고 한다. 그는 나이가 사십 가량 되고, 머리도 깎고 세상 경력이 많은 듯한, 적어도 고생을 많이 한 듯한 말법이다.

 

"때린 것이 잘못이지."

 

하고 어디서 점잖은 음성이 온다. 구장 영감이다. 그는 회나무 밑동을 기대고 앉아서 담배를 빤다. 냄새가 정말 담배다.

 

"어디 때리는 법이야 있나.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때리면 구타거든. 황기수가 잘못했더라도 말로 승강이를 하는 게지 손질을 해서 쓰나. 한갑이가 잘못했지."

 

하고 심판하는 어조다.

 

"누가 먼저 때렸는데요? 황가 놈이 한갑이를 먼저 때려서 코피가 쏟아지니까 한갑이가 황가 놈의 목덜미를 내리 누르고 두어 번 냅다 질렀지요. 아따, 어떻게 속이 시원한지, 나도 이가 득득 갈리드라니."

 

하고 약고 약해 보이는 무슨 병이 있는 듯한 청년이 구장의 말에 항의를 한다.

 

"그래도 손질을 한 것은 잘못이야."

 

하고 구장은 불쾌한 듯이,

 

"내가 모르겠나. 이제 한갑이는 몇 해 지고야 마네. 아까도 주재소에 들르니까 소장이 그러데. 공무집행 방해죄와 폭행죄로 한갑이랑 단단히 걸리리라고. 왜 손질을 해! 어디다가 손질을 해, 백성이 관리에게 손질을 하고 무사할 수가 있나.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다들 조심해."

 

하고 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번 크게 가래침을 뱉고 어디론지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아니꼽게시리."

 

"구장이면 큰 벼슬이나 한 것 같아서."

 

"되지못하게."

 

하고 젊은 패들이 구장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 들릴 때가 되어 한마디씩 흉을 본다.

 

"숭이,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자네야 변호사니까 잘 알지 않겠나. 한갑이랑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죄를 질까."

 

하고 든덩집 영감님이 묻는다.

 

"글쎄요,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고 숭은 이러한 경우에 만족한 대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 슬퍼서,

 

"그렇지마는 별로 큰 죄 될 것은 없겠지요."

 

하고 위안을 주었다.

 


 

 

"거 원, 어떡한단 말인고."

 

하고 든덩집 영감님은 신 삼던 손을 쉬고 호박잎 담배를 담으면서,

 

"그날 벌어 그날 먹던 사람들이 저렇게 오래 붙들려 가 있으면 거 원, 어떡한단 말인고."

 

이 노인은 아직도 상투가 있다. 몸은 늙은 소나무와 같다.

 

"무얼 어떡해요? 징역이나 지면 상팔자지,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고.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요. 콩밥이라도 굶는 것보다 안 날라고."

 

하고 병 있는 듯한 젊은이가 역시 병 있는 듯한 젖먹이를 기어 나가지 못하게 붙들면서 웃는다.

 

"집안 식구들은 다 어떡하고"?

 

하고 이남박 깁던 이가 무릎을 들고 칼을 찾는다.

 

"집에 있으면 별수 있던가요. 빚에나 졸렸지. 이왕 잡아다 가둘 것이면 집안 식구를 다 가두어 주었으면 좋지."

 

하고 병 있는 듯한 이는 자기의 의견을 고집한다.

 

"그래도 집이 좋지, 비럭질을 해먹어도 집이 좋지."

 

하고 아직도 스무남은 살밖에 아니된 얼굴 검은 청년이 언권을 청한다. 마치 어른들 말참견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듯한 수줍은 태도로,

 

"응, 너도 좀 고생을 해봐라. 집도 먹구야 집이지 배때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데 집은 다 무에야"?

 

하고 병 있는 이가 선배인 체한다.

 

"얼마나들 있으면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고 숭은 화제를 돌리려 하였다.

 

<걱정없이 살아 간다>는 말에 사람들은 귀가 번쩍 뜨였다.

 

"그게야 식구 나름이지."

 

하고 이남박 깁던 이가 지혜 있는 양을 보인다.

 

"식구는 댓 식구 잡고."

 

하고 숭이 말을 첨부하였다.

 

"다섯 식구도 식구 나름이지마는, 일할 어른이 둘만 있으면야 글쎄, 논 닷 마지기, 밭 이틀갈이, 한 부엌 땔 산 한 조각이면야 거드럭거리구 살지."

 

하는 이남박 영감의 말에,

 

"논 닷 마지기만 있으면야 밭 이틀갈이 다 가지군들-하루 갈이만 가지군들." 하고 짚세기 노인이 수정을 한다.

 

"그러믄요, 논 닷 마지기만 있으면야 부자 부럽지 않지그려."

 

하고 여태껏 아무 말도 아니하고 치룽 결던 중늙은이가 한몫 든다.

 

"그리구두 벼름이 적어야. 요새처럼 벼름이 많아서야 농사나 해 가지고야 평생 빚지기 알맞지요."

 

하고 병든 이가 불평한다.

 

"그래도 논 닷 마지기, 밭 이틀갈이면 살아, 나뭇갓 있고."

 

하고 이남박 영감님이 자기의 주장을 보증한다.

 

"그야 그럼 그렇지요." 하고 대개 의견이 일치하였다.

 

"내가 모르겠나."

 

하고 이남박 영감님이 자기의 의견이 선 것을 만족하게 여긴다.

 

숭은 생각하였다. 논이 닷 마지기면 두 섬 내기 잡고 오팔은 사십 사백 원. 밭이 이틀갈이면 육백 원, 나무 값 백 원, 도합 일천 백 원, 천 원 돈이면 다섯 식구가 일생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뜯어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논 닷 마지기, 밭 이틀갈이."

 

하고 입속으로 외면서 숭은 집으로(한갑 어머니 집으로)돌아왔다.

 

"인제 오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어둠속에서 소리를 내었다. 그가 빠는 곰방대에서 호박잎 불이 번쩍한다.

 

한갑 어머니는 숭을 위하여 <웃간>이라는 방(건넌방에 비길 것이다)에 모기를 다 내어쫓고 문을 꼭꼭 닫아 놓았다. 숭은 방에 들어가 손으로 더듬어서 자리 있는 곳을 찾고 베개 있는 곳을 찾아서 드러누웠다. 몸이 대단히 곤하다.

 

"아이, 더워!"

 

하고 숭은 제일 먼저 더위를 깨달았다. 말만한 방에 문을 꼭꼭 닫아 놓았으니 이 복염에 아니 더울 리가 없다. 숭의 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숭의 눈에는 서울 정동 집에 앞뒷문 활짝 열어 놓고도 선풍기를 틀어 놓던 것을 생각하였다.

 

숭은 더위를 참고 잘 생각을 하고 눈을 꼭 감았다. 그러나 갑자기 이 변한 환경은 숭의 마음을 도무지 편안치 못하게 하였다.

 

"집을 버리고 아내를 버리고-"

 

하는 생각은 그리 유쾌한 생각은 아니었다. 비록 아내가 숭의 뜻을 몰라 주고 또 숭에게 대하여 현숙한 아내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내를 버리고 나온 것은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뿐인가, 싸울 때에는 원수같이 밉더라도 애정은 그만큼 깊었다. 애정이 너무 깊기 때문에 싸움이 심한 것이 아닐까.

 

"내가 잘못하더라도 왜 참지를 못하우? 내가 잘못하는 것까지도 왜 사랑해 주지를 못하우? 어머니도 없이 자란 년이 남편 앞에서나 응석을 부리지 어디서 부리우"?

 

하고 싸우고 난 끝에 울며 하던 아내의 말을 생각하면 뼈가 저리도록 아내가 불쌍해진다.

 

"내가 악인은 아니유. 내가 당신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유. 당신이 내게 소중하고 소중한 남편이지만두, 내가 철이 없으니깐 그렇게 당신을 못 견디게 굴지. 그걸 좀 용서하고 참아 주지 못하우? 그래두 내 정선이 하고 귀애 주지 못허우"?

 

하고 정선은 싸우던 끝에 가끔 숭의 품에 안겨서 원망하였다.

 


 

 

목덜미에서 빈대가 따끔한다.

 

겨드랑에서 벼룩이 스멀거린다.

 

쑥내를 먹고 어지러워 하던 모기들이 앵앵하고 나와 돌아다닌다. 어디를 뜯어먹을까, 벼르고 노린다. 발등이 갑자기 가려워진다.

 

"이놈의 모기가."

 

하고 숭은 손으로 발등을 때렸다.

 

서울 정동 집의 안방에 생초 모기장, 안사랑 침대에는 하얀 서양 모기장이 걸리어 있는 것을 숭은 생각하였다. 모기장이 없기로니 정동에 무슨 모기가 있나.

 

불의에 남편을 잃어버린 정선은 얼마나 애를 태울까-숭은 모기, 빈대, 벼룩, 더위의 총공격을 받으면서 생각하였다.

 

어젯밤에 숭이가 가방을 들고 다시 이 집에를 아니 들어온다고 뛰어나올 때에, 정선은 비록 분김에 제발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말은 했지마는, 그래도 자정을 땅땅 치는 소리를 듣고는 왜 아직도 아니 올까 하고 기다리기를 시작하였다.

 

"영감마님 사랑에 들어오셨나 보아라."

 

하고 정선은 몇번이나 하인에게 물었다.

 

정선은 눈을 감았다가 뜰 때에는 그동안 자기가 잠이 들지 아니하였던 것을 잘 알면서도 혹시나 곁에 숭이 누워 있는가 하고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비인 베개만이 있는 것을 보고는 금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혼인한 지 일년이 가깝도록 한번도 곁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내외다. 정선은 어쩌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에는 벌써 전깃불이 나가고 동창에는 밝은 빛이 비치었다.

 

"영감마님 아니 들어오셨니"?

 

하고 정선은 저도 놀랄 만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 때는 벌써 숭이가 살여울 동네 우물가에 몸이 있을 때였다. 정선은 남편의 베개에 엎드려 울었다.

 

이튿날 정선은 재판소로 전화를 여러 번 걸었다.

 

"허 변호사 오셨어요"?

 

"아직 안 들어오셨습니다."

 

하는 급사의 대답이 들릴 때에는 정선은 전화기를 내동댕이를 치고 싶었다.

 

지금 살여울서 숭이가 모기와 빈대와 벼룩에게 뜯기어 잠을 이루지 못할 때에도 정선은 서울 집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석왕사로 간 게지"

 

하고 정선은 억지로 안심을 하려 하였다. 계집애에게도 부끄럽고 하인들 보기도 부끄러웠다. 만일 남편이 아주 달아나고 말았다 하면, 무슨 면목으로 행길에를 나서고 무슨 면목으로 사람을 대할까 하였다.

 

숭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내를 생각하였다. 밉던 점을 다 떼어버리고 생각하면 정선은 아름다운 아내였다. 얼굴도 아름답고 몸도 아름답고 맘도 아름답고 목소리도 아름다왔다. 다만 숭의 뜻을 알아주지 아니하였다. 정선이가 만일 갑진에게 시집을 갔으면 얼마나 좋은 아내가 될까 하고 숭은 여러 번 생각하였다. 정선의 머리속에는 도저히 민족이라든지 인류라든지 하는 생각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오직 제가 있고 남편이 있고 제 집이 있을 뿐인 것 같았다. 세상을 위해서 제 몸을 고생시킨다든가, 제 재산을 희생한다든가 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듯하였다.

 

숭은 이것이 슬펐다. 숭은 정선에게 이 생각을 넣어주려고 퍽 애를 써 보았으나 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숭의 말이나 행동이 정선이가 인식하는 범위, 동정하는 범위를 넘어갈 때에는 정선은 무슨 큰 모욕이나 당하는 듯이 발끈 성을 내어서 숭에게 들이대었다. 그는 남편인 숭을 자기의 범주에 우겨 넣으려는 듯하였다. 사실 숭이가 정선과 같은 범주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숭과 정선과는 화합한 부부가 되어 행복된 가정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숭은, 정선의 말법을 빌면 시골 벽창호가 되어서 정선의 주먹에 들지를 아니하였다. 정선의 인생관은 대체로 오랜 세월을 두고 계급적으로 흘러진 것이 아니냐-이렇게 숭은 생각하였다.

숭은 한갑 어머니가 코를 고는 소리를 들었다. 아들을 잡혀 보내고도, 속에 지극한 슬픔을 가졌으련만도 태연한 여유를 보이는 한갑 어머니를 숭은 부럽게 생각하였다.

 

일생에 너무도 슬픔을 많이 경험하여서 감수성이 무딤인가, 인생 만사를 다 팔자로 여겨서 운명에 맡겨버리고 말음인가, 그보다도 기쁨이나 슬픔을 남에게 보이지 아니하려는 조선사람의 성격인가.

 

숭은 문을 열었다. 약간 서늘한 바람과 함께 모기떼가 아우성을 치고 들어왔다. 마치 이 동네에서 보지 못한 인종 숭을 들어내기나 하려는 듯이.

 

숭은 밖에 나갔다.

 


 

 

하늘은 파랗게 맑고 별이 총총하다. 가을이 멀지 아니한 표다. 시루봉 먹고개 흰 하늘이, 고개등 독장산 줄기 산들이 푸른 하늘 면에 검은 곡선을 그었다. 숭은 발이 가는 대로 집 없는 벌판을 향하고 걸어 나갔다. 고요하다. 아직 벌레 소리가 들리기에는 너무 철이 일렀다. 살여울 물소리도 들릴 것같이 그렇게 천지는 고요하였다.

 

숭은 살여울 물가에 나섰다. 숭이 어릴 때까지도 이 물가에는 늙고 붉은 소나무들이 있었지마는, 그것마저 찍어먹고 인제는 한두 길 되는 갯버들이 있을 뿐이다. 검은 밤 들에 물빛은 그래도 희끄무레하였다. 짭짭 하고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위 살여울에 물이 굴러내리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온다.

 

숭은 이 물에 연상되는 어린 때의 꿈, 한없는 하늘, 땅, 쉼없이 흘러 가는 강물, 인생, 이 물에 고달픈 잠이 들어 있는 살여울 동네, 서울에 두고 온 아내…끝없는 생각을 하면서 물가로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닭이 울었다. 닭은 무엇을 먹고 사나, 닭도 한갑 어머니처럼 기름기가 없을 것이다-이렇게 숭은 혼자 생각하였다.

 

동편 하늘에 남빛이 돈다. 이것은 서울서는 못보던 빛이다. 그 남빛이 점점 짙어져서 자줏빛으로 변해 온다. 산들의 모양이 더욱 분명하게, 그러나 아직도 검은 한빛으로 푸른 하늘 면에 나타난다. 흐르는 물조차도 좀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늦은 여름 새벽에 보는 골안개가 일어났다. 아직 저 안개가 일어나기에는 이른 때지마는, 높은 산과 강이 있는 탓인지 여기저기 뿌유스름한 안개가 피어 올랐다. 오른다는 것보다도 소리없이 끼었다.

 

살여울 물이 하늘의 남빛을 받아 청빛으로 보인다.

 

어디서 벌써 말방울 소리가 난다.

 

무너미로서 살여울을 건너 방앗머리, 굿모루를 돌아 검은 오리장으로 통한 큰 길이 바로 이 동네 옆으로 지나가게 된다. 아마 무너미서 자고 검은 오리장을 보려고 가는 장돌림꾼의 짐 실은 당나귀 방울 소릴 것이다. 그 당나귀 등에는 인조견, 광목, 고무신, 댕기, 얼레빗, 참빗, 부채 등속이 떨어진 보자기에 싸여서 실렸을 것이요, 그 뒤에는-숭의 생각은 막혔다.

 

그 뒤에는 예전 같으면 짚세기 감발에 갓모 씌운 갓을 쓴 흔히는 꽁지 땋아 늘인 사람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야 웬 그렇게 차렸을라고. 숭은 그 당나귀 뒤를 따르는 사람의 모습이 도무지 그의 생각에 들지를 아니하였다.

 

"딸랑딸랑."

 

당나귀 방울소리가 골안개 속으로 멀어간다. 숭의 생각은 그 소리를 따라갔다.

 

신작로가 나고 자동차가 다니고, 짐 트럭까지 다니게 된 오늘날에는 조선 땅에 말과 당나귀의 방울 소리도 듣기가 드물게 되었다. 그것이 문명의 진보에 당연한 일이겠지마는 숭에게는 그것도 아까왔다. 그 당나귀를 끌고 다니던 사람은 무얼 해서 벌어 먹는지 심히 궁금하였다.

 

살여울 동네는 미투리를 삼는 것을 부업을 삼았으니, 고무신이 난 뒤여서 그런지 미투리 틀을 못 보았다.

 

동편 하늘은 더욱 밝아지고 붉어진다. 멀지 아니해서 둥그런 빛에 차고, 열에 차고, 영광에 찬 해가 올라올 것이다.

 

"그 해가 오르는 것이나 보고 가자"

 

하고 숭은 물가에 쑥 내어민 산 코숭이에 올라갔다. 여기도 숭이가 서울로 가기 전에는 늙은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여름이면 늙은이와 아이들이 올라와 놀더니, 지금은 오직 구부러진 소나무 한 개만이 서 있을 뿐이다. 아아, 몹시 구부러진 덕에 찍히기를 면한 모양이다.

 

"팔아먹을 수 있는 것은 다 팔아먹었구나!"

 

하고 숭은 늙은 소나무 뿌리에 걸터앉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몸은 밤새도록 흘린 땀에 아직도 끈적끈적한데 그래도 새벽 바람이 선들선들하다. 이틀 밤째 새우는 숭의 머리는 퍽 무거웠다. 눈도 아팠다. 그러나 가슴속은 형언할 수 없는 불안과 괴로움으로 끓었다.

 

"나는 장차 어찌할 것인고"?

 

하고 숭은 굉장하게 빛을 발하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흰 하늘의 고개로 올려 솟는 햇바퀴를 바라보았다. 여러 해 막혔던 자연의 아침 해! 숭의 가슴은 눈과 함께 환하게 트이는 것 같았다.

 

"그 빛, 그 힘!"

 

하고 시인 아닌 숭은 간단한 찬미의 단어로 아침 해를 찬탄하였다.

 

독장산, 살여울 벌, 달내강 물-모두 빛과 힘에 깨었다. 환하다. 강과 논의 물, 풀잎 끝에 이슬 구슬이 모두 황금빛으로 빛났다. 더위와 물것과 근심으로 밤새에 부대낀 살여울 동네도 학질 앓고 일어난 사람 모양으로 빛속에 깨어났다.

 

"인제 동네로 내려가자"

 

하고 숭은 일어났다.

 


 

숭은 살여울 동네에 온 뒤로 이틀 밤을 새웠다. 밤에는 물것일래, 낮에는 파릴래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또 있는 동안에 이 동네에 관하여 이러한 지식을 얻었다.

 

장질부사 앓는 이가 셋, 이질 앓는 이가 넷, 학질 앓는 이가 다섯, 무슨 병인지 알지 못하고 앓는 이가 둘, 만삭이 되어서 배가 아픈 부인이 하나. 만일 의사를 대어 진찰을 한다면 이 동네에 완전한 건강을 가진 이가 몇이나 될까. 비록 큰 병이 안 들린 사람이라 하더라도 혹은 기생충, 혹은 영양불량에서 오는 모든 병, 낯빛을 보면 건강해 보이는 이는 몇이 아니 보인다.

 

숭은 이틀 밤을 이 동네에서 지내어도 정신이 하나도 없고 몸은 죽도록 앓고 난 사람과 같다. 못 먹고, 과로하고, 잠 못 자고, 심려하고, 그리고도 용하게 이만한 건강을 부지해 왔다. 참말 목숨이란 모질구나 하고, 한탄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질이나 장질부사 환자의 똥에 앉았던 파리들은, 그 발에 수 없는 균을 묻혀 가지고 부엌으로 아우성을 치고 돌아다니며 음식과 기명과 자는 아이네의 입과 손에 발라 놓는다. 밤이 되면 학질의 스피로헤타를 배껏 담은 모기가 분주히 이 사람 저 사람 혈관에 주사를 하고, 발진티푸스 균을 꼴깍꼴깍 토하는 이와 빈대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여행을 다닌다.

 

농촌에 의사가 있느냐. 가난한 농촌의 병은 현대의 의사에게는 학위 논문 재료로 밖에는 아무 흥미가 없는 것이다. 그 병을 고친대야 돈이 나오지 아니한다. 농촌에서 도시에 있는 의사 하나를 데려오자면 오막살이를 다 팔아 넣어야 하지 않는가. 자동차빕시요, 출장빕시요, 진찰룝시요, 약값입시요, 이렇게 돈 많이 드는 의사를 청해다 보느니보다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편안한 일이다.

 

그렇다고 의사도 현대에는 병 고치는 것은 수단이요 돈벌이가 목적이어든, 돈 안 생기는 농촌 환자를 따라다니라는 것은 실없는 소리다. 국비로 하는 위생 설비조차, 위생경찰조차 도시에 하고 남은 여가에나 농촌에 세우는 이때여든. 만일 도시의 수도에 들이는 경비를 농촌의 우물 개량에 들인다 하면 몇천 동네의 음료를 위생화할는지 모르지 않느냐.

 

이리해서 농촌 사람은 병 많고, 일찍 늙고, 사망률 높고, 어린애 사망률이 더욱 높고, 그들의 일생에 땀을 흘려서 모든 사람의 양식과 문화의 건설 비용을 대면서도, 자기네는 굶고 자기네는 문화의 혜택을 못 보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할 때에 숭은 일종의 비분을 깨달았다.

 

"옳다. 그래서 내가 농촌으로 오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숭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디 해보자. 내 힘으로 살여울 동네를 얼마나 잘 살게 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계급투쟁 이론의 가부는 차치하고 어디 건설적으로, 현 사회조직을 그대로 두고, 얼마나 나아지나 해보자-이것은 내가 동네 사람들로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 장래의 천국을 약속하는 것보다 당장 죽을 농민을 살릴 도리, 아주 살릴 수는 없다 치더라도, 그 고통을 감하고 이익을 증진할 도리-이것은 내 자유가 아니냐"

 

이렇게 숭은 생각하였다. 그리고 숭은 일종의 자신과 자존과 만족을 깨달았다.

 

"내 일생을 바치어 살여울 백여 호 오백 명 동포를 도와보자!"

 

이렇게 결심하고 숭은 일할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맨 처음 할 일이 무엇일까. 이 동네 사람들의 고통 중에 어느 것을 먼저 들어주어야 할까. 그리하고 어떠한 방법, 어떠한 경로로 매 호에 논 닷 마지기, 밭 하루갈이를 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숭이 자신은 어떠한 생활을 해야 될까.

 

첫째로 할 일은 읍내에 가서 의사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둘째로 할 일은 양식 없는 이에게 양식을 줄 도리를 하는 것이었다. 세째로 할 일은 파리와 모기와 빈대를 없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네째로는 잡혀 간 사람들-한갑이 아울러 여덟 사람을 나오게 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일은 우선 금명간에 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일들이었다.

 


 

 

숭은 아침 일찌기 읍내로 갔다.

 

읍내는 여기저기 옛날 성이 남아 있었다. 문은 다 헐어버리고 사람들이 돌멩이를 가져가기 어려운 곳에만 옛날 성이 남아 있고 총구멍도 남아 있었다. 이 성은 예로부터 많은 싸움을 겪은 성이었다. 고구려 적에는 수나라와 당나라 군사와도 여러 번 싸움이 있었고, 그 후, 거란, 몽고, 청, 아라사, 홍경래 혁명 등에도 늘 중요한 전장이 되던 곳이다.

 

을지문덕, 양만춘, 선조대왕, 이러한 분들이 다 이 성에 자취를 남겼다. 일청, 일로 전쟁에도 이 성에서 퉁탕거려 지금도 삼사십 년 묵은 나무에도 그 탄환 자국이 흠이 되어서 남아 있는 것을 본다. 마치 조선 민족이 얼마나 외족에게 부대꼈는가를 말하기 위하여 남아 있는 것 같은 성이었다. 

 

읍내 한 오백 호 중에 이백 호 가량은 일본 사람이요, 면장도 일본 사람이었다. 읍내에 들어서면서 제일 높은 등성이에 있는 양철 지붕 한 집이 아사히라는 창루다. 이것은 숭이가 어렸을 적부터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큰 집은 군청, 경찰서, 우편국, 금융조합, 요릿집 등이었다. 보통 조선사람 민가는 태반이 다 초가집이었다. 그래도 전등도 있고 전화도 있고 수도도 공사 중이다. 전화 칠십 개 중에 조선인의 것이 십 칠 개라고 한다.

 

숭은 먼저 경찰서를 찾았다. 옛날 질청이던 것을 고쳐 꾸민 집이다.

 

"무슨 일 있어."

 

하고 문 앞에 섰는 순사가 숭의 앞을 막고 물었다.

 

"서장을 만나랴오."

 

하고 숭은 우뚝 서며 대답하였다.

 

"서장"?

 

하고 순사는, "이것이 건방지게 서장을 만나려 들어"?하는 듯이 숭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숭에게 서장을 만나지 못할 아무러한 이유도 없다는 듯이 길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 다시 따라와서 명함을 내라고 하였다.

 

숭은 명함을 내어 주었다. 그것은, <변호사 허숭>이라고 쓴 명함이었다.

 

이 명함은 그 순사에게 적지 아니한 감동을 준 모양이었다. 변호사가 되려면 판검사를 지냈거나 고등문관 시험을 치러야 되는 줄을 아는 그는 숭에게 대하여 다소의 존경을 깨달았다.

 

"잠깐 기다리시오."

 

하고 그 순사는 서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이리 들어오시오."

 

할 때에는 그 순사는 약간 고개까지도 숙였다.

 

서장은 앉은 채로 고개를 숙여 숭의 인사를 받고 의자를 권하였다.

 

"언제 내려오셨습니까"?

 

하고 뚱뚱한 서장은 숭에게 물었다.

 

"이삼 일 되었소이다-나도 여기가 고향입니다."

 

하고 숭은 말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였다.

 

"아, 그렇습니까. 대단히 출세하셨습니다그려."

 

하고 서장은 이 골 태생으로 변호사까지 된 것이 신기하다는 듯이 놀라는 빛을 보이고,

 

"학교는? 어디 내지서 대학을 마치셨나요? 동경? 경도"?

 

하고 친밀한 어조를 보였다.

 

"학교는 보성전문이외다."

 

하고 숭은 서장의 표정을 엿보았다.

 

"보성전문"?

 

하고 서장은 한번 놀라는 빛을 보였다. 그러나 그 끝에는 시들하다는 빛이 따랐다.

 

"퍽 젊으신데…어쨌든지 장하시오."

 

하고 서장은 내 관내 백성이라는 의식으로 칭찬하였다. 서장은 아부라는 경부였다.

 

서장은 사환을 불러 차를 가져오라고 분부하고,

 

"그래 어째 이렇게"?

 

하고 부채를 부치며 일을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시탄리(살여울) 농민 사건에 대하여 서장께 청할 것이 있어서 왔소이다."

 

하고 숭은 말을 꺼냈다.

 

서장은 안경 위로 물끄러미 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답은 없었다.

 

"시탄리는 내 고향이외다. 이번 오래간만에 고향에 오던 날에 바로 그 일이 생겼는데, 여기 잡혀 온 사람들은 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외다. 평소에 양같이 순한 사람들이외다."

 

하고 말할 때에 서장은 픽 웃으며,

 

"양? 도우모 아바레루 히쓰지 데쓰나(거 어지간히 왈패 양들인걸)."

 

하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문다.

 


 

"잠깐 내 말씀을 들으세요. 사건의 진상이 어찌 된고 하니, 황기수가 유순이라는 열아홉 살 되는 처녀의 손목을 잡아끄는 것을 그 여자가 항거한다고 해서, 황기수가 그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 사건의 시초외다. 서장은 물론 조선 사정을 잘 아시겠지마는 조선서는 남의 부녀에게 모욕을 하거나 손을 대는 것이 용서할 수 없는 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한갑이라는 청년이 황기수의 팔을 붙들고 제지를 했는데, 황기수가 맹한갑의 면상을 세 대나 때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맹한갑은 폭력을 쓰지 않고 말로만 승강이를 하다가 황기수가 주먹으로 맹한갑의 면상을 질러서 코피가 쏟아질 때에 맹한갑은 비로소 황기수를 넘어뜨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오는 위해를 면하려는 정당방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일곱 사람은 두 사람이 마주 붙은 것을 뜯어 말리려고 모여 들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 증거로는 첫째, 황기수의 양복 저고리 등에 밖으로 묻은 피가 있다는데 이것이 맹한갑의 코에서 흐른 피요, 그것이 등에 떨어진 것은 맹한갑이가 황기수 뒷통수를 눌러 황기수의 손이 다시 자기의 낯에 오지 못하게 한 것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 믿습니다.

 

또 만일 맹한갑이나 다른 일곱 사람이 황기수를 모진 매를 쳤다고 하면 황기수가 제 발로 뛰어 달아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에 말한 사실로 보아서 맹한갑 등 여덟 사람은 벌할 만한 죄가 없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맹한갑 등 여덟 사람은 그날 벌어서 그날 먹는 사람들이니, 그들이 오래 집을 떠난다는 것은 그 가족들의 굶어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현저한 죄상이 있으면야 그야 무가내하지마는, 사실 이 사건의 책임은 전혀 황기수에게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서장께서는 이러한 점을 밝히셔서 이 동정할 만한, 제 속에 있는 말도 다 할 줄 모르는 가련한 사람들을 하루라도 바삐 청천백일의 몸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내가 서장께 간곡하게 청하는 바입니다."

 

"황기수의 말은 그와는 좀 다른데."

 

하고 서장은 책상 위에 있는 초인종을 누른다.

 

그 소리에 응하여 들어오던 순사(기실 순사부장)는 숭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것은 일전 살여울에서 숭의 따귀를 때리던 사람이다. 숭도 한번 눈을 크게 떴다.

 

"그 황기수, 구타, 공무집행 방해 사건 어찌 되었나. 아직 자백들을 아니하였나."

 

하고 서장은 부장에게 물었다.

 

"네, 다른 놈은 다 자백했는데 한 놈이 아직도 아니합니다. 맹한갑이 한 놈이, 그 놈은 아주 흉악한 놈입니다. 자기는 먼저 맞았노라고, 자기는 절대로 정조식하라는 명령에 반항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허지만 오늘 안으로는 끝을 내겠습니다."

 

하고 자신 있는 듯이 말한다.

 

"배후에 선동자는 없나"?

 

하는 서장의 물음에 부장은,

 

"선동은 맹한갑이가 한 모양이고, 맹한갑이를 누가 선동했는지는 도무지 자백을 하지 아니합니다. 맹한갑은 보통학교를 졸업했을 뿐이니까 무산 대중이니 부르조아 제국주의 정부니 하는 말을 할 지식이 없겠는데, 황기수의 증언을 보면 그런 계급적 투쟁적 언사를 하고 부르조아 제국주의의 주구인 관리를 타도하라고 하더라니, 필시 지식계급에 있는 불량배의 선동이 있는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하고 부장은 허 변호사를 곁눈으로 미움과 악의가 가득한 눈으로 힐끗 보며,

 

"요새 서울 가서 전문학교깨나 댕긴 조선 사람들은 모두 건방지고 불온사상을 가지니까요."

 

하고 말한다.

 

"신 참사는 뭐라나."

 

하는 서장의 말에 부장은,

 

"황기수의 고솟장과 증인을 보장합디다."

 

"응, 알았네, 가게."

 

하여 부장을 내어보내고 서장은 눈에 가득한 승리의 웃음을 보이며,

 

"농민들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요? 당신도 목격한 것은 아니니까."

 

하고 인제는 허 변호사에게 대하여 볼일은 다 보았다는 듯이 서류를 보기 시작한다.

 

"검찰 당국에서 어련히 하시겠어요마는 한 말씀만 참고로 드리렵니다."

 

하고 숭은 서장의 주의를 끌고 나서,

 

"만일 황기수라는 사람이 자기의 허물을 싸기 위하여 허위의 증언을 하였다면 어찌 될까요"?

 

하고 물었다. 서장은 잠깐 불쾌한 듯이 허숭을 바라보더니,

 

"증거가 있지요, 황기수는 옆구리에 타박상이 있어 치료 이 주간을 요한다는 의사의, 공의의 진단서가 있지요."

 

하고 숭을 본다.

 

"황기수의 저고리 등과 맹한갑의 옷에 묻은 피는 증거가 아닐까요? 또 그 격투가 일어난 원인이 황기수가 유순이라는 여자에 대한 폭행이라는 것과 정조식 장려의 공무집행 방해라는 것과는 죄의 구성에 큰 차이가 있다고 믿거니와, 거기 대한 증거는 어떠합니까."

 

하고 반문할 때는 서장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당신은 변호사니까 후일 법정에나 서서 그런 이론을 하시는 것이 좋겠지요. 경찰이나 검사정에서는 변호사의 변론은 없는 법이외다."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감정으로 하실 말씀이 아니외다. 나도 변호사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요, 다만 피의자들이 내 동네 사람이요, 따라서 그들의 평소의 성격이며, 이번 사건의 진상을 잘 안다고 믿기 때문에 아무쪼록 이 사건이 간단하게 해결이 되기를 바라며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 말이 당신의 감정을 해하였다면 심히 유감됩니다."

 

그러나 숭의 이 푸는 말은 서장에게는 아무러한 효과도 주지 못하였다.

 

"당신이 그 농민들을 잘 아느니 만큼, 나는 황기수, 신 참사 같은 사람들을 잘 압니다."

 

하고 서장은 어디까지든지 공격적이었다.

 


 

 

숭은 더 논쟁할 필요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숭은 자기가 서장을 찾아 본 것이 전연 실패라고 생각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첫째 서장이 비록 자기 말을 안 듣는 체하였다 하더라도 자기가 말한 사건의 진상이 서장의 기억에는 남아 있을 것이요, 둘째로는 자기가 장차 그들을 위해서 법정에 설 때에 변론에 쓸 유력한 재료를 얻은 것이다. 그것은 서장과 부장과의 문답에서 황기수의 고소와 증언의 내용을 짐작하게 된 것이었다.

 

서장과 부장의 말을 종합하면 황기수의 주장은, 자기는 농업기수로 공무를 행하기 위하여 정조식을 권장할 때에 맹한갑을 주모자로 한 농민 팔 명의 일단이 공산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자기에게 반항하고 마침내 맹한갑을 선두로 자기를 모욕하고 구타하였다 하는 것이요, 이에 대하여 신 참사는 황기수의 편을 들어서 증언하였고, 의사 공의는 황기수가 이 주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타박상을 받았다고 증명하였고, 이에 대하여 경찰서의 심증은 농민의 반항이라면 의례히 공산주의적, 또 농민의 말과 관리의 말이 있으면 둘째 것을 믿을 것, 이런 모양이라고 숭은 판단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공식적이었다. 숭은 경찰서에서 나와서 공의의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객사(지금은 보통학교) 울퉁불퉁한 넓은 마당(장보는 데) 한편 끝 남문으로 통하는 홍예 튼 돌다리 못 미쳐서였다. 본래는 조선집인 것을 일본식인지 양식인지 비빔밥으로 고쳐 꾸민 집인데, ○○의원이라는 간판이 붙고 또 일본 적십자사 사원 ○○의학사 이 ○○이라는 문패가 붙었다.

 

문안에 들어서니 고무신과 구두가 놓이고 대합실(待合室)이라고 패가 붙은 구석(방이 아니다)에는 안질난 부인과 머리 헌 사내와 다리에 고름 흐르는 농부 하나가 앉았다. 웬 기생인가 갈보인가 한 남 보이루 치마 입고 머리 기름발라 쪽진 여자 하나가 왼편 손 둘째 손가락과 장손가락 새에 연기 나는 궐련을 끼우고 깔깔대고 엉덩이를 휘젓고 나온다. 그것은 보통 환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수부(受付) 약국(藥局)이라고 쓴 구멍을 들여다보니 나이 사십이나 되었을 듯한 궁상스러운 여윈 남자가 오이채 쳐 친 냉면을 먹고 앉았다.

 

"선생님 계시오"?

 

하는 숭의 말에 그 남자는 냉면을 입에 문 채로 눈을 돌리며,

 

"병 보러 오셨소"?

 

하고 묻는다.

 

"네, 병자가 있어서 선생님을 좀 뵈이러 왔소이다."

 

"병자 데리고 오셨소"?

 

하고 그 작자는 냉면 그릇을 놓고 병자 구경을 하려는 듯이 구멍으로 고개를 내어민다.

 

"왕진을 청하러 왔소이다."

 

하고 숭은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수부와 약국을 겸한 이 방은 한 간이 될락말락, 약병이 몇 개 있고 녹쓴 저울이 놓였다. 더울 듯한 방이다.

 

"무슨 병이오"?

 

하고 또 묻는다.

 

숭은,

 

"당신이 의사요"?

 

하고 좀 성을 내었다.

 

"어디서 오셨소."

 

하고 또 묻는다.

 

"어서 선생님을 보게 하시오."

 

하고 숭은 호령조를 하였다.

 


 

그 남자는 별로 무안해 하지도 아니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숭은 진찰실(診察室)이라고 써 붙인 방을 들여다보았다. 거기는 빈 의자와 테이블이 있을 뿐이었다.

 

"의사 계시다오"?

 

하고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가 숭에게 묻는다.

 

"당신은 언제 오셨소"?

 

하고 숭이 물었다.

 

"우리는 온 지가 보리밥 한 솥 질 때나 되었는데,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그 사람이 대답도 아니합니다."

 

하고 부스럼에 붙은 파리를 날린다.

 

"되물어 대답을 아니해요. 우리네같이 촌에서 온 사람이야 성명 있나요"?

 

하고 농부는 분개한다.

 

"우리 온 댐에도 몇 사람이 댕겨 갔게."

 

하고 안질난 부인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뜨려고 애를 쓴다.

 

"돈이 없는 줄 알고 그러지마는 나도 이렇게 돈을 가지고 왔다오."

 

하고 농부는 꼬깃꼬깃한 일원박이 지전을 펴 보인다. 그는 그 지전을 손에다가 꼭 쥐고 있다.

 

의사가 슬리퍼를 끌고 나와서 숭을 보고 의복과 태도에 놀란 듯이,

 

"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경의를 표한다. 그는 가무스름한 얼굴에 콧수염이 나고 금테 안경을 코 허리에 걸어서 보기는 안경으로 안보고 안경 위로 본다. 지금 술과 고기를 먹다가 나오는지 얼굴이 붉고 길다란 금 많이 박은 잇새를 쭉쭉 빨고 있다.

 

"선생님이세요"?

 

하고 숭은 고개를 숙였다.

 

"예, 제가 이 ○○올시다."

 

하고 의사도 답례를 한다.

 

깔깔대고 저쪽 복도로 가던 여자가 와서 의사와 숭을 번갈아 보더니,

 

"황 주사 안 가셨지"?

 

하고 의사에게 추파를 보낸다.

 

의사는 눈을 끔적해서 그 여자를 책망한다.

 

"글쎄, 황 주사가 옆구리를 이 주일이나 치료해야 된다는 양반이 술이 글쎄 무슨 술야"?

 

하고 그 여자가 깔깔대고 웃는다.

 

"병원에서 먹는 술은 약이 되지."

 

하고 의사는 참다 못해서 그 여자의 농담에 끌려 들어가고 만다.

 

"비켜요! 나 황 주사 좀 놀려먹게."

 

하고 여자는 의사의 와이샤쓰 입은 팔을 꼬집고 떼밀고 진찰소 다음 방으로 들어간다.

 

"요년! 어디 가서 또 서방을 맞고 왔어"?

 

하는 남자의 소리가 들린다.

 

"여보, 서방은 그렇게 일분도 못 되게 맞는답디까."

 

하고 깔깔댄다.

 

"그럼. 오, 이년, 너는 서방을 맞으면 밤새도록 맞니"?

 

하는 남자의 소리가 또 들린다.

 

"이년은 누구더러 이년이래, 아야, 아파! 황 주사도 계집이라면 퍽 바치는구려. 그러하길래 벼 모내는, 땀내 나는 계집애를 다 건드리려다가 무지렁이들한테 경을 쳤지. 에, 더럽다! 여보, 비켜라! 아야 아야, 남의 사타구니를 왜 꼬집어. 숭해라!"

 

하고 어디를 때리는 듯한 철썩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야, 요것이 사람을 치네."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다.

 

"치면 어때, 맞을 일을 하니깐 맞지. 하하하하."

 

"아, 요런 맹랑한 년이 안 있나"?

 

"맹랑함 어때, 또 이 의사더러 진단서 내달래서, 이번엔 한 삼 년간 치료를 요함 하고 고소를 해 보구려."

 

하는 여자의 종알대는 소리.

 

"그렇게만 해? 이리 와, 입 한번 맞추자."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

 

"싫소, 그 시골 모내는 계집애 입 맞추던 입에서는 똥거름 냄새가 난단다."

 

하는 것은 여자의 소리.

 

"얘, 입 한번도 못 맞추고 봉변만 했다마는 이쁘기는 이쁘더라, 네 따위는 명함도 못 들어. 내 언제라도 고것을 한번 손에 넣고야 말걸."

 

하는 것은 남자의 소리.

 

"흥, 잘 손에 들어오겠소. 이제 고소까지 해 놓고, 괜히 칼 맞으리다, 그 동네 사람들한테."

 

하는 것은 여자의 소리.

 

이러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 의사는 대단히 맘이 조급한 듯이 연해 뒤를 돌아보며,

 

"왜들 이리 떠들어"? 하였다.

 

그러나 숭은 아무쪼록 의사를 오래 붙들었다.

 

그것은 의외의 소득이 있는 까닭이었다.

 

"환자는 누구세요"?

 

하고 이 의사는 숭을 바라본다.

 

"환자가 한 칠팔 명 되는데요. 모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선생의 왕진을 청하러 왔습니다. 바쁘시겠지마는 좀 같이 가시지요."

 

하고 숭은 이 의사의 맘을 떠 보았다.

 

환자가 불쌍한 사람들이란 말에, 이 의사 눈에는 지금까지 보이던 존경의 빛은 싹 없어지고 조소하는 빛이 보였다.

 

"왕진은 일체 선금입니다. 아시겠지요."

 

하고 이 의사의 말은 빳빳하였다.

 

"선금이요"?

 

하고 숭도 분개하여,

 

"선금이라면 선금 내지요. 왕진료는 얼마 받으시나요"?

 

하고 물었다.

 

"매 십 리에 오원이지요. 차비는 환자가 부담하고, 자동차가 통하지 못하는 곳이면 갑절 받지요."

 

이 때에도 진찰실 다음 방에는 황기수하고 기생하고 가닥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돈을 많이 내고도 왕진을 청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허숭은 공격하는 어조로 물었다.

 

"왕진료 안 받고 왕진 가는 의사는 어디 있습니까"?

 

하고 이 의사도 곧 대항한다.

 

"그러면 가난한 농민들이 병이 나면 어떡허나요? 급한 병이 나도 안 가 보아 주십니까? 와서 청해도 안 가십니까"?

 

하고 숭은 이 의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거 할 수 없지요. 나는 자선 사업으로 병원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원래 촌 사람들의 병은 그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합니다. 촌 사람들이란 진찰료 약값 낼 줄도 모르고 도무지 인사를 모르고. 한약첩이나 사다 먹으라지요. 돈도 없는 것들이 의사는 왜 청해요? 건방지게."

 

이 의사는 아주 전투적이었다.

 


 

 

"그렇지마는 환자가 청하면 진찰을 거절할 수는 없을 걸요, 의사법에 있으니까. 나는 선생께서 거절을 하시려고 하더라도 진찰료 선금 안 내고 왕진을 청하려고 합니다. 환자가 한 사람뿐 아니라, 칠팔 명, 근 십 명 되니까요. 환자들 중에는 중병 환자도 있으니까 곧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동차는 내가 불러 오지요."

 

하고 숭은 명령적으로 말을 끊었다.

 

이 의사는 다른 정신으로 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분이 대올라옴을 깨달았다. 술 기운도 오르기 시작하였다.

 

"웬 말씀이요. 노형이 이를테면 누구와 트집을 잡으러 온 심이요, 어떤 말이요.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싫으면 안 가는 게지. 노형이 무엇이길래 날더러 가자 말자 한단 말이요. 온 별일을 다 보겠네. 그래 내가 안 간다면 어떡헐 테요"?

 

하고 이 의사는 휙 돌아서려 한다.

 

숭은 이 의사의 팔을 붙들며,

 

"나는 급한 환자를 위하여 의사를 청하러 온 사람이요. 만일 선생이 가기를 거절한다면 나는 부득이 경찰의 힘을 빌 수밖에 없겠소."

 

하고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앉았는 눈 앓는 노파와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와 머리 헌 아이를 가리키며,

 

"저들이 수십 리 밖에서 선생을 찾아 온 지가 오래다고 하니 저들 병을 얼른 보아 주시고, 그 동안에 내가 자동차를 부를 테니 나하고 같이 가실 준비를 하시지요."

 

하고 숭은 어조를 좀 부드럽게 하여 타이르는 듯이 말하였다.

 

큰 소리가 왔다갔다하는 것을 듣고 간호부, 황기수, 기생도 나오고 수부에 앉아서 냉면 먹던 말라깽이 친구도 나와서 의심스러운 듯이 염려되는 듯이, 이 의사와 허숭을 번갈아 보았다.

 

숭은 황기수라는 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 검은 얼굴, 찌그러진 머리, 교양 없는 얼굴에도 교활한 빛을 띤 것, 게다가 눈초리 가늘게 처진 것이 색욕이 많고 도덕심이 적은 것이 보였다.

 

이 의사는 숭의 말이 이치에 맞는다는 것보다도 법률에 맞는 숭의 말에, 또 아무리 보아도 시골뜨기 같지는 아니한 숭의 모양에 겁이 나서 간호부를 보고,

 

"저 환자들 무슨 병으로 왔나 물어 보고, 차례차례 진찰실로 불러 들여."

 

하고 명령을 내리고, 자기는 숭에게는 인사도 아니하고 진찰실로 들어간다.

 

황기수와 기생은 일이 심상지 아니한 줄을 눈치채고 숭을 힐끗힐끗 돌아보며 방으로 들어간다.

 

간호부는 환자들을 향하여 퉁명스럽게 몇 마디의 말을 묻고는,

 

"누가 먼저 왔소"?

 

하고 차례를 묻는다.

 

"이 아주머니 먼저 보시죠."

 

하고 농부가 안질난 부인에게 차례를 사양한다.

 

"아이그, 내가 나중 왔는데. 어서 가 보슈."

 

하고 늙은 부인이 사양한다.

 

"누구든지 어서 와요."

 

하고 간호부가 화를 낸다.

 

"그럼 내가 먼저 봅니다."

 

하고 농부가 아픈 다리를 끌고 진찰실로 들어간다.

 

간호부는 의사에게 수술복을 입히고 등 뒤에 끈을 매어 주었다.

 

"왜 이렇게 되었어."

 

하고 의사는 농부의 고름 흐르는 다리 부스럼을 들여다 본다.

 

"모기가 물었는지 가렵길래 긁었더니 뻘개지면서 그렇게 되었어요. 좋다는 약은 다 발라 보아도 도무지 낫지 아니해요."

 

하고 농부는 애원하는 소리를 한다.

 

"긁어 부스럼이란 말도 못 들었어? 긁기는 왜 해"?

 

하고 의사는 부스럼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마구 눌러 본다.

 

"아야 아야!"

 

하고 농부는 소리를 지른다.

 

"커다란 사람이 아야는 다 뭐야"?

 

하고 의사는 더 꾹꾹 눌러 본다.

 

"째지 않고는 안 나아요"?

 

하고 농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안 째고 날 수 있나."

 

하고 의사는 숭 때문에 난 화풀이를 농부 환자에게 하고 앉았다.

 

"조금 스치기만 해두 아픈데."

 

하고 농부는,

 

"아니 아픈 주사가 있다는데 그것이나 놓아 주세요."

 

"주사 한 대에 이원인걸. 돈 얼마나 가지고 왔어"?

 

하고 의사는 흥정을 시작한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이것만 가지고 왔습니다. 추수만 하면야 모자라는 것은 그때에 드리지요."

 

하고 손에 꼭 말아 쥐었던 일원박이 조선은행권을 이 의사의 눈 앞에 내어 보인다.

 

이 의사는 그 돈을 받아 간호부의 손에 쥐어 주고,

 

"돈 일원 가지고 무슨 주사를 해 달래? 진찰료밖에 안되는 걸 째기만 해도 수술비가 삼원야."

 

농부는 수술비 삼원, 주사료 이원이란 말에 눈이 둥그레진다.

 

<벼 한 섬>하는 생각이 번쩍 머리속에 지나간다.그렇지마는 이 다리를 아니 고치고는 농사를 할 수가 있나, 이렇게도 생각하였다.

 

"일원만 내께 그럼 수술을 해 주세요. 수술비는 추수 때에 드리께요."

 

하고 농부는 겨우 결심을 한다.

 

"수술은 내일 해도 괜찮으니, 수술비만이라도 변통해 가지고 오지."

 

하고 의사는 일어나 소독물 대야에 손을 씻는다.

 

"다른 환자 불러. 돈 가지고 왔느냐고 묻고. 안 가지고 왔거든 내일 오라고."

 

하고 이 의사는 황기수 방으로 들어간다.

 


 

 

허숭은 다리에서 고름 흐르는 농부에게 돈 육원을 주어 수술을 받고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였다.

농부는,

 

"이것을 이렇게 받아서 되겠습니까."

 

하고 눈에 가득 감사한 빛을 띠우고 그 돈을 받았다.

 

농부는 돈을 받아 들고는 쓰기가 아까운 듯이 한참이나 보고 섰더니 고름 흐르는 다리를 끌고 절뚝거리며 어디로 가버린다. 손에 육원이나 되는 큰 돈을 들고(일 년에 한번도 쥐어 볼까말까한)는 차마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 돈 중에서 조고약이나 사가지고 집으로 가려고 한 모양이다-이렇게 생각하고 숭은 눈이 뜨거워짐을 깨달았다.

 

숭은 빈대약, 모기장감, 석유유제, 기타 소독 약품들을 사 가지고, 자동차를 얻어 가지고 한 삼십 분 후에 이 의사의 병원으로 돌아왔다.

 

이 의사는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자동차에 올랐다. 숭은 간호부의 손에서 의사의 가방을 받아서 자기가 들고 차에 올랐다.

 

살여울 동리에 오기까지 두 사람은 한마디도 말을 아니하였다. 숭의 속에는 오늘 경찰서와 병원에서 보던 일을 생각하고, 의사는 숭이 때문에 불쾌하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너미에서 자동차를 내려 두어 시간 뒤에 맞으러 오기를 명하고, 이 의사는 잠깐 주재소에 들러 무슨 이야기를 하고는 숭을 따라 살여울 동리로 들어갔다.

 

우물 가에서는 또 유순을 만났다. 유순은 낮물을 길러 왔던 것이다. 숭은 오던 날 아침에 유순을 만나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순은 숭과 의사를 보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의사도 유순에게 눈이 끌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숭과 동행하는 것도 잊어버린 듯이 순을 바라보았다. 순은 또아리를 인 채로 사내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문제의 여자지요."

 

하고 숭은 웃으면서 의사를 돌아보았다.

 

"네"?

 

하고 의사는 순에게 마음을 빼앗겨 숭의 말을 듣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여자 때문에 황기수 문제가 났단 말씀이야요."

 

하고 숭은 이 의사의 안경 뒤에 있는 눈을 바라보았다.

 

"네에"?

 

하고 의사는 어떻게 대답할 바를 몰랐다.

 

"황기수가 저 여자의 손을 잡는 것을 저 여자가 뿌리치니까 황기수가 저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 이 사건의 시초지요."

 

"네에."

 

하고 의사도 할 수 없이 웃었다. 그리고는 병원에서 황기수와 기생과 하던 말을 이 사람이 들은 것을 생각할 때에 의사는 등골에서 찬 땀이 흘렀다.

 

이 자리에서야 비로소 두 사람은 명함을 바꾸었다. 이 의사는 이 사람이 변호사 허숭인 줄을 알 때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도록 놀랐다. 놀랄 뿐 아니라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변호사 허숭에 관한 말은 신문에서 보았고 말로도 들었다.

 

"네, 그러세요? 허 변호사세요"?

 

하고 겨우 놀람을 진정하였다. 그리고는 이 의사의 허숭에게 대한 태도는 갑자기 변하여서 친절을 지나 겸손에 가까왔다.

 

이 의사는 숭과 같이 온 동리 병자의 집을 돌아보고 농담을 할 지경까지 친하였다.

 

"치료비는 내가 다 담당할 테니 어떻게 좋게 해 주세요."

 

하고 숭은 진찰이 끝난 뒤에 강가 정자나무 밑에서 쉬며 이 의사에게 말하였다.

 

"내 힘껏은 하지요. 이 동리가 경치가 좋은데요."

 

하고 이 의사는 강을 바라보았다.

 

숭은 강을 바라보는 곳에 집터를 하나 잡고 초가집 한 채를 짓기로 작정하고 곧 동네에 일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공사를 시작하였다. 임금은 하루에 일원. 그것은 숭이가 자신으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이 회의를 열고 논의한 임금 팔십 전에 숭이가 이십 전을 더하여서 일원으로 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즐겁게 일을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 제일 집 짓는데 경험 있는 노인이 자청해서, 자청이라는 것보다도 자연히 공사 감독이 되었다.

 

집터는 처음에는 강가 높은 곳, 정자나무 밑으로 하려고 하였으나, 온 동네 사람들이 공동으로 쉬는 터를 삼는 곳을 독점하기가 미안해서 그것은 사양하고 동네의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등성이 동남쪽에 터를 잡기로 하였다. 여기서 보면 달내강 한 굽이가 바로 문 앞에 놓이고 그것을 주움 차서 동으로 달냇벌을 바라보게 되었고, 달냇벌을 건너서 흰 하늘이 고개, 시루봉 등의 산을 바라보게 되었다.

 

집터에서 강까지는 이십 미터나 될까, 비스듬하게 언덕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동네 노인들은, 이것은 정자터는 되나 살림집터는 되지 못한다고 반대하였으나 숭은 이것만은 고집하였다.

 

그리고 숭은 파리잡는 약과 빈대, 벼룩잡는 약과 파리채를 집집에 돌리고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손수 두엄 구덩이라고 일컫는 구더기 끓는 곳에 구더기 죽이는 약을 뿌렸다.

 


 

 

집터를 다지는 날에는 온 동네가 떨려나왔다.

 

"동네에 집을 지으면서 삯돈을 받다니."

 

하고 삯을 받을 때마다 노상 말하던 동네 사람들은 이날에는 삯을 아니 받기로 거절하였다. 그래서 숭은 떡과 술과 참외를 많이 장만해서 동네 사람들을 먹였다.

 

"달구질은 저녁이 좋아."

 

하여 낮에는 터만 치고 달구질은 달밤에 하기로 하였다.

 

이날은 어느새에 칠월 백중 더위도 거의 다 지나고, 해만 지면 서늘한 바람이 돌았다. 이 동네에는, 달은 흰 하늘의 고개로 올랐다. 달이 오를 때쯤 하여 동네에서는 남녀노소가 숭의 새 집터로 모였다. 달빛은 달내강 물에 비치어 금가루를 뿌린 듯하였다.

 

"아하 어허 당달구야."

 

"어허 여차 당달구야."

 

달구 소리가 높이 울렸다. 달구 소리를 따라서 동아줄을 열 두 가닥이나 맨, 커다란 달굿돌이 달빛을 받으며 공중으로 올랐다가는 "쿵!"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이 집 한번 지은 뒤엔."

 

하고 한 사람이 먹이면,

 

"아하 어허 당달구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제히 받으면서 동아줄을 힘껏 당기었다. 그러면 달굿돌은 공중으로 솟아 올랐다.

 

"아들을 낳면 효자가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딸을 낳면 열녀가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닭을 치며는 봉황이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소를 치며는 기린이 나구."

 

"아하 어허 당달구야!"

 

"안 노적에 밖 노적에."

 

"아하 어허 당달구야!"

 

"논 곡식 밭 곡식 썩어를 나고."

 

"아하 어허 당달구야."

 

"달냇벌에 쌓인 복은."

 

"아하 어허 당달구야!"

 

"이 집으로 모여 든다."

 

"아하 어허 당달구야!"

 

갈수록 사람들의 흥은 높아졌다. 배부른 것, 막걸리 먹은 것, 달 오른 것, 유쾌하게 일하는 것, 이런 것들이 합하여 사람들의 흥을 돋우었다. 인생의 모든 괴로움을 잊게 하는 것 같았다.

 

숭은 유순이가 왔는가 하고 휘휘 훑어보았다. 이 집에는 유순이가 주인이 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 같았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유순과 둘이 조그마한 가정을 지었으면, 숭은 이러한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숭은 무엇을 돌아보는 척하고 사람들 앞으로 다녀 보았다. 유순의 아버지 유 초시는 담배를 피우고 앉았는 양이 뵈었으나, 동네 처녀들도 더러 와 있는 것이 보였으나 유순의 모양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숭은 실망하였다. 유순이 없으면 하늘에 달도, 달이 비친 달내물도 빛이 없는 듯하였다.

 

숭은 슬그머니 빠져서 동네를 향하고 걸음을 걸었다.

 

동네에는 떠들만한 사람들은 다 숭의 집터 다지는 데로 나오고 조용하였다. 숭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그는 순식간에 유순의 집 앞에 섰다.

 

유 초시 집은 반은 기와요, 반은 초가였다. 사랑도 있고 대문도 있었다. 예전에는 사랑문을 열어 놓고(오고 가는 손님을 접한다는 뜻) 살던 표가 있었다. 유 초시의 조부는 찰방도 지내고 집의까지도 지내어서 이 시골에서는 이름이 높았다. 유 집의의 시와 글을 모아 월천문집이라는 문집까지도 발간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도 바뀌고 재산도 다 없어져서 유 지평의 제삿날,

 

<현고조 통정대부 행사헌부집의>

 

하는 축을 부를 때에만 유 초시는 맘이 흐뭇하였다.

 

옛날 같으면 관속이 나오더라도 사랑 뜰에서 허리를 굽혔지마는, 지금은 순사들이나, 전매국 관리들이나 유 집의댁을 알아볼 줄을 몰랐다. 유 초시도 처음에는 이것이 가슴이 아프도록 분하였지마는 지금은 그것조차 예사로 되고 말았다.

 

숭은 달빛이 가득 찬 마당에서 배회하였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지마는, 어려서는 무상 출입을 하였지마는 지금은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윽고 대문으로부터 순의 얼굴이 보였다. 숭은 처마곁에 선 늙은 오동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순은 대문을 나서서 높은 층층대(이 집은 터가 비탈에 있어서 대문 밖이 층층대가 되었다)로 사뿐사뿐 내려왔다. 그는 멀거니 달을 바라보더니 사뿐사뿐 걸어서 오동나무 곁으로 오다가 숭을 보고 깜짝 놀라 우뚝 섰다. 순의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오직 놀람뿐만 아니었다.

 

"내요, 숭이외다."

 

하고 숭은 나무 그늘에서 나섰다.

 

"네."

 

하고 순은 잠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집터 다지신다는데 어떻게 여기 와 계세요."

 

하고 순은 일전 우물가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반갑게 말하였다.

 

"동네 사람이 다 왔는데도 순씨가 아니 오셨길래 찾아왔지요."

 

하고 숭은 제 손을 만지면서 정성을 기울여,

 

"천하 사람이 다 있어도 순씨가 없으면 천지가 비인 것 같아서…"

 

"고맙습니다."

 

하고 순은 한번 더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아주 이 동네에서 살려고, 일생을 이 동네에서 살려고 서울을 버리고 내려왔지요. 집을 짓는 것도 그 때문이요. 이 동네가 고향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름이 고향이지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생각을 하면 이에서 신물이 도는 고장이지마는 이 동네에서 일생을 보내려고 작정한 것이 무슨 때문인지, 누구 때문인지 아셔요"?

 

하고 숭은 흥분한 눈으로 수그린 순의 오래 빗질도 아니한 머리를 바라보았다.

 


 

순은 고개를 수그리고 섰을 뿐이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순은 숭의 말이 무슨 말인지를 짐작하였다. 그러나 숭은 벌써 아내 있는 사람이 아니냐 하고 생각하면 의아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숭은 순의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내가 누구 때문에 여기 온지 아시오"?

 

하고 다시 물었다.

 

"제가 압니까. 아마 우리 동네 사람들 때문에 오신 게지요."

 

하고 발자취에 놀라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순의 집 개가 자다가 깨어서 순을 찾아 나오는 것이었다. 그 개는 낯선 숭을 보고 두어 마디 짖다가 순이 한번 손을 들매, 짖기를 그치고 순의 치맛자락에 코를 비빈다. 그것은 얼굴이 길고 눈이 크고 순하게 생긴 조선식 개였다.

 

"네, 동네 사람들을 위해서 왔다면 왔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순씨가 없으면 나는 여기 오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저 집을 지으면 무얼합니까."

 

하고 숭은 있는 속을 다 털어놓았다.

 

"부인께서 오시겠지요. 그리고 댁에서 삯 주고 시키실 일이 있으면 가서 해 드리지요."

 

하고 순은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개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버리고 만다.

 

숭은 비통한 생각을 가지고 일터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흥이 나서,

 

"아하 아허 당달구야!"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숭의 귀에는 그 소리가 잘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마치 귀도 막히고 눈도 막히고 오관이 다 막힌 듯하였다. 머리속도 가슴속도 꽉 막힌 듯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자기를 위하여 힘써 주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기색을 아니 보이려고 쾌활한 태도를 강작(强作)하였다.

 

하루 이틀 지남을 따라서 주춧돌이 놓이고 기둥이 서고 보가 오르고 서까래가 걸렸다. 가늘고 둥근 나무를 그대로 재목으로 쓰는 일이라 치목에도 품이 안 들고, 흙이 붙고 영을 올리는 일이라 지붕이 되는 것도 쉬웠다. 방도 놓이고 마루도 깔렸다. 치석할 필요도 없이 산에서 메주덩어리 같은 돌을 주워다가 축대를 쌓으니 그것은 하루 안에 다 되어버렸다. 문, 미닫이는 장에서 미리 사다가 그것을 겨냥해서 문얼굴을 들였다. 뒷간은 바자를 두르고 봇돌 두 개를 놓으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동네로 통하는 길과 강으로 내려가는 길도 순식간에 되었다. 도배, 장판도 이틀에 끝났다. 집터를 다진 지 보름이 다 못 되어서 집은 완성되었다. 담까지도 둘렀다. 담은 길다란 싸리와 참나무 가지로 돗자리 겯듯 결은 것이었다. 이런 것은 저녁 먹은 뒤에 담배 두어 대 태우는 동안을 이용해서 사흘에 다 완성하였다. 우물까지도 하나 팠다. 집은 방 둘, 마루 하나, 부엌 하나, 광 하나, 장독대, 우물, 담, 마당, 뒤꼍, 널찍널찍하게 훤칠하게 해 놓고 돈든 것이 모두 이백 원이 못 되었다.

 

"선화당 같다."

 

하고 새로 지어진 집을 보는 사람들은 이 집이 깨끗함을 칭찬하고 부러워하였다.

 

숭은 트렁크에 빈대 묻은 것을 말끔 잡아가지고 칠월 그믐날 새 집으로 떠나 왔다. 마루에서는 나무 냄새가 나고 방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동네 사람들이 다 돌아간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 숭은 혼자 방에 앉아서 망연히 지나간 일, 올 일을 생각하였다. 생각이 벌레 소리에 끊기우고 벌레 소리는 생각에 끊기웠다. 부모를 잃고 집을 잃은 지 오년 만에 제 손으로 돈을 벌어 제 집을 짓고 들어앉은 것이 대견도 하였다.

 

그러나 혼인한 지 일년도 다 못 되어 파탄이 생기고, 사랑하여서는 아니될 여자를 사랑하여 가슴을 태우는 자기가 밉기도 하였다. 외람되이 힘에 부치는 일(농민운동)을 시작하여 몸과 맘이 어느새에 피곤한 것을 느낌이 막막도 하였다. 벌레 소리는 빗소리 같고, 어지러운 생각은 벌레 소리와 같았다. 숭은 앉으락누우락, 들락날락하며 첫밤을 새웠다. 그것이 숭의 일생의 모형인 것만 같았다.

 

숭은 집을 짓기에, 동네 사람들의 병을 구완하기에, 서울에 두고 온 아내에 대한 뉘우침, 유순에게 대한 새 사랑의 괴로움, 아직 자리 잡히지 아니한 생활과 사업에 대한 불안과 초조, 동네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더러는 비웃음과 악의로 자기를 훼방하고 방해함에 대한 분한 마음, 이런 시름, 저런 근심으로 몸과 마음이 심히 가빴다. 몸이 노곤하고 눕고는 싶으면서도 누우면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이따금 자기의 결심에 대하여 의심까지도 생겼다. 그러나 숭은 이 모든것을 의지력으로 눌렀다. 한 선생을 생각하고 참았다.

 

동네 사람들의 병도 한 사람만 죽이고는 다 나았다. 뼈와 껍질만 남은 병자들이 귀신같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의사는 약속대로 사흘에 한번씩 한 일 주일 동안 와서 치료해 주었다. 이 의사가 이 동네에 부지런히 오는데는 순을 보고 싶은 맘이 반 이상은 되었다. 그는 병을 다 보고 나서도 동네로 휘휘 돌아다니며 어떻게 해서든지 순을 한번 보고야 돌아갔다.

 

그러나 그 동안에 숭은 장질부사 치료하는 법을 대강 배웠다. 해열제를 써서 안되는 것, 땀을 내려고 애쓰는 것, 약이라고는 소화제와 강심제와 지갈하는 것을 먹일 뿐인 것, 오줌 똥을 잘 소독해야 하는 것, 미음과 비타민을 먹여야 되는 것, 장출혈을 주의해야 되는 것, 안정해야 되는 것, 위험이 어디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대강은 배웠고, 관장하는 것, 피하주사 놓는 것도 배웠다. 그래서 간호부가 가질 만한 지식은 가지게 되었다.

 

병자의 집에서는 밤중에라도 겁이 나면 숭에게 뛰어 왔다. 그러면 숭은 집에 준비해 두었던 약품과 기구를 가지고 달려갔다. 병이 위태한 경우에는 숭은 병자의 곁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가끔 있었다. 이런 일이 숭의 건강을 많이 해하였다.

 

다른 병자들이 거의 다 완쾌할 때가 되어서 순의 고모(과부로 와 있는 이가)가 발병하였다. 한참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신열이 높았다.

 

숭의 소견에 그것도 티푸스였다.

 

유 초시는 자기 손으로 처방을 내어서 한약을 몇첩 지어다 먹였으나 물론 효과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유 초시 자신도 열이 나서 머리를 동이고 드러눕게 되었다. 이 때 전후하여 난봉으로 돌아다니던 순의 오라버니가 읍내에서 황기수를 때리고 잡혀서 갇히었다. 황기수를 때린 것은 물론 그 누이에게 한 폭행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러한 소식이 유 초시의 맘을 더욱 불편하게 하였다. 유 초시는 친정에 가 있는 며느리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앓는다 칭하고 오지 아니하였다. 이 며느리는 남편에게는 소박을 맞고 시집에 먹을 것은 없고 한 데 화를 내어서 먹기는 넉넉한 친정으로 달아나 버린 지가 반년이나 되어도 시집에는 발길도 아니하였다.

 


 

 

팔집의공 제사(유초시가 가장 존경하는 조부의 기일)는 유 초시 집에서는 가장 중대한 일이었다. 집의공 제사날에도 며느리가 아니 온다고 유 초시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었다. 이 때에는 유 초시는 반드시 광 속에 몰래 술 한 항아리를 빚었다. 집의공 제사에 사온 술을 써서 쓰느냐 하는 고집에서였다. 유 초시는 열 있는 몸을 가지고 일어나서 술 항아리를 꺼내어 손수 청주를 떠서 제주를 봉하고, 순을 지휘하여 제물을 차리게 하였다. 유 초시의 눈은 붉고 몸은 가누어지지를 아니하였다.

 

유 초시는 허둥허둥하는 걸음으로 아랫방에 내려가 앓는 누이동생을 들여다보았다.

 

"웬만하면 좀 일어나 보려므나. 순이년이 무얼 할 줄 아니." 하였다.

 

이것은 억지였다. 그러나 조부의 제사에는 모든 것을 다 희생하여도 좋았다-유 초시의 생각에는.

 

숭이가 저녁을 먹고 유 초시네 집에 문병을 왔을 때에는 유 초시는 소세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망건을 쓰고 앉았고, 순도 새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웬일이세요. 어쩌자고 일어나십니까."

 

하고 숭은 유 초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늘이 집의공 기일이야."

 

하고 유 초시는 행전을 치고 떨리는 손으로 끈을 매고 있었다.

 

숭은 유 초시의 손을 쥐어 보고 맥을 짚어 보았다. 노인의 맥이건마는 세기가 어려울 만큼 빨랐다.

 

"이렇게 밤바람을 쐬고 몸을 움직이시면 병환이 더하십니다. 좀 누워 계시지요."

 

하고 숭은 앞에 꿇어앉아서 간절히 권하였다.

 

"어, 그럴 수가 있나. 내 집에서는 제사날 눕는 법이 없어.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몰라도, 내 정신이 있으면서 제사를 아니 지내어."

 

숭은 유 초시의 지극한 정성과 꿋꿋한 의지력에 눌려 더 말할 용기가 없었다.

 

"에그, 아주머니가 왜 나오시어"?

 

하는 유순의 소리에 숭은 앞뜰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비틀거리는 순의 고모의 모양을 보았다. 숭은 그가 삼십 구 도 이상의 열을 가진 줄을 잘 안다.

 

그 부인은 부엌을 향하고 서너 걸음 비틀거리다가 순의 어깨에 매달려 쓰러졌다.

 

"응, 젊은 것이."

 

하고 유 초시는 창으로 내다보며 혀를 찼다.

 

숭은 뛰어 내려가 병자를 붙들어서 아랫방으로 인도하였다.

 

"제사를 차려야 할 텐데."

 

하고 병자는 기운없이 숭에게 몸을 던져버렸다. 그는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숭은 병자를 번쩍 들어서 누웠던 자리에 뉘었다. 그의 몸은 불이었다.

 

"냉수하고 수건하고."

 

하고 숭은 순에게 명령하였다.

 

"대단한가"?

 

하고 유 초시가 마루 끝에서 외쳤다.

 

"대단하십니다."

 

하고 숭이 대답하였다.

 

"그렇거든 누워 있거라. 순이더러 다 하라지."

 

하고 유 초시는 가래를 뱉었다.

 

"이거 큰일났소."

 

하고 물과 수건을 가지고 온 순에게 숭은,

 

"아버지도 대단하시오. 이거 큰일났소."

 

하고 말하였다.

 

"어떻게 해요"?

 

하고 순은 울음이 터졌다.

 

"일가 댁에서 누구를 한 분 오시라지요."

 

하는 것은 숭의 말.

 

"누가 오나요"?

 

하고 순은 억지로 울음을 삼켜버리고 부엌으로 간다.

 

순의 고모는 헛소리를 하고 앓는 소리를 하였다.

 

"나도 같이 가요. 나는 싫어요!"

 

이런 소리도 하였다.

 


 

숭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동네 인심이 어떻게 효박해졌는지 염병을 앓는 집과는 이웃과 일가도 수화를 불통하였다. 게다가 경찰이 교통차단을 명한다는 것이 박정한 현대 사람들에게 좋은 핑계를 주었다. 숭은 유 초시 집에서 나와서 한갑 어머니를 데리고 다시 유 초시 집으로 왔다. 한갑 어머니는 그 동안 간호부 모양으로 염병 앓는 집을 다니면서 미음도 쑤어 주고 빨래도 해 주고 부인네의 오줌 똥도 받아 주었다. 숭은 한갑 어머니로 하여금 순의 고모 간호를 하게 하였다.

 

유 초시는 기어이 제사 때까지 꿇어앉았다가 합문까지 하였다. 그러나 합문을 하고 뜰에 내려서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정신을 잃었다.

 

유 초시를 방으로 들어다 뉘이고 제사의 남은 절차는 숭이가 대신하였다.

 

유 초시는 의식은 회복하였으나 병이 대단히 중하였다. 제사를 지내느라고 억지로 몸을 가진 것이 대단히 나빴다. 유 초시의 과수 누이는 영 정신을 못 차렸다.

 

날이 훤하게 밝자, 숭은 동네 사람을 시켜 읍내에 이 의사를 청하였다. 오정 때나 되어서 이 의사가 왔다. 이 의사는 숭에 대하여 두 사람의 증상이 다 험악하다는 것을 말하고 특히 순의 고모가 더욱 중태라는 것을 말하였다.

 

유 초시는 이 의사더러,

 

"죽지나 않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염려 없으십니다."

 

하고 이 의사는 환자에게 대한 의사의 으례 하는 대답을 하였다.

 

"아니, 내야 늙은 것이 죽으면 어떻소마는 내 누이는 대단치는 않사오니까"?

 

하고 병중에도 점잖은 사람이라는 체면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좀 중하신 모양입니다마는 설마 어떨라구요."

 

하고 이 의사는 친절하게 위로하였다.

 

"어떻게 좀 죽지 않게 해 주시오."

 

하고 유 초시는 힘이 드는 듯이,

 

"나도 죽고 저도 죽으면, 자식놈은 감옥에 가고 저 어린 것을, 저 어린 딸년을 뉘게 부탁한단 말이오? 집이 가난해서 보수를 드릴 것도 없지마는, 어떻게 이 선생께서 내 누이만이라도 살려 주시오."

 

하고 유 초시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네, 내 힘이 미치는 데까지는 하지요."

 

하고 이 의사는 연해 눈을 마당으로 향하여 무엇을 찾았다. 그것은 물을 것 없이 순의 모양을 찾는 것이었다.

 

유 초시는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더니 고개를 약간 창으로 돌리며,

 

"순아, 아가, 순아."

 

하고 불렀다. 그것은 속으로 잡아당기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아랫방에 있는 순에게 들릴 것 같지 아니하였다.

 

그래도 순은 아버지의 부르는 소리를 알아듣고,

 

"네에."

 

하고 뛰어나와서 창밖에 서서,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하고 고개를 숙였다.

 

순의 얼굴에는 잠 못 자고 피곤한 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더 어여뻤다.

 

"그 술, 제주 남은 것, 따뜻하게 데어다가 이 손님 드려. 앓는 집에서 음식을 잡숫기가 싫으시겠지마는 술이야 어떠오. 안주는 과일이나 놓고 다른 것은 놓지 말아, 익은 음식은 놓지 말아. 익은 음식은 앓는 집에서는 손님께 아니 드리는 법이야. 알아들었냐"?

 

순은,

 

"네에."

 

하고 공손하게 대답하고 물러갔다. 이 의사의 눈은 순의 몸을 따라 광으로, 마당으로, 부엌으로 굴렀다. 그리고 오분이나 지났을까, 순이가 술상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염치도 없이 뚫어지게 보았다. 금니 많이 박은 이 의사의 입은 벌어졌다.

 

순은 술상을 웃목에 앉은 이 의사와 숭의 새에 놓고 아버지가 덮은 이불을 바로잡고 치맛자락이 펄렁거리지 않도록 모아 쥐고 나가버린다.

 


 

숭은 주전자를 들어 놋잔(옛날 것으로 굽 높은 잔대에 받친)에 노란 청주를 따라서 이 의사에게 권하였다.

 

"영감 먼저 드시지."

 

하고 이 의사는 숭에게 한번 사양하고 받아 마신다.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짭짭 다시고, 두 모금 마시고 짭짭 다시고는 비위에 맞는 듯이 죽 들이킨다.

 

"거 술 좋은데-정종보다도 나은데."

 

하고 이 의사가 칭찬한다.

 

"시지나 않습니까."

 

하고 유 초시가 만족한 듯이 묻는다.

 

"참 좋습니다. 이런 술 처음 먹어봅니다. 이거 어디서 파는 술입니까."

 

하고 입에 침이 없다.

 

"어제 저녁이 내 왕고 집의공 기일이지요. 세사가 빈한하니까 양조 허가를 낼 수도 없고, 그저 한 해에 한번 이날에만 가양으로 조금 빚지요."

 

하고 유 초시는 눈을 감는다.

 

"따님이 당혼이 되셨군요."

 

하고 술을 석 잔이나 먹은 뒤에 이 의사는 순에 관한 문제를 제출하였다.

 

"머, 아직 어린애지요."

 

하고 유 초시는 눈앞에 귀여운 막내딸을 그려 본다. 머리가 아픈 듯이 양미간을 찌푸렸다.

 

"따님이 아주 준수하신데요."

 

하고 이 의사는 마당으로 눈을 굴려서 순을 찾는다. 순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배운 게 있소"?

 

하고 유 초시는 기침을 하고 담을 꿀꺽 삼킨다. 불쑥 내민 멱살이 올라갔다 내려온다.

 

"따님을 내게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머, 잘이야 하겠습니까마는 간대로 고생은 아니 시킬 작정입니다."

 

하고 이 의사는 마침내 불을 내 놓았다. 너무 당돌해 염려도 있었지마는 이 노인이 내일까지 살아 있을지도 염려가 되기 때문에 유여할 새가 없었다.

 

이 의사의 말에 유 초시는 눈을 떠서 한참이나 이 의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과연 내 사윗감이 될 사람인가를 검사나 하는 듯이.

 

유 초시는 <꺾> 하고 이 의사 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애를 쓰다가 실패하고 그대로,

 

"아직 혼인을 아니하였던가요"?

 

하고 묻는다.

 

"하기는 했지요."

 

"그러면 상배를 하였던가요"?

 

"그런 것도 아닙니다마는 상배나 다름이 없지요."

 

"그럼 이혼을 하셨소"?

 

하고 유 초시의 눈은 더욱 커진다.

 

"아직 이혼도 아니했습니다마는 적당한 혼처만 있으면 이혼을 해도 좋지요. 이혼을 아니한다손 치더라도 딴 살림이니까 무슨 상관 있습니까."

 

하고 이 의사는 수줍은 듯이 웃는다.

 

"아니, 그럼 내 딸을 당신이 첩으로 달라는 말이요"?

 

하고 유 초시의 어성은 높고 떨렸다.

 

"장가처지, 첩 될 거 있나요? 그러면 영감께도 야속치 않게는 해 드리지요. 일시금으로든지, 매삭 얼마씩이라든지, 그것은 원하시는 대로, 또…"

 

유 초시는 어디서 난 기운인지, 이 의사의 말을 다 듣지도 아니하고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이놈, 이 고이얀 놈 같으니. 그래 날더러 내 딸을 네 첩으로 팔아먹으란 말이야. 어, 이놈. 냉큼 일어나 나가거라. 죽일 놈 같으니!"

 

하고 호령을 뺀다.

 

유 초시는 잠깐 숨이 막혔다가,

 

"요놈, 요 방자한 놈 같으니. 내 딸이 네놈과 네 계집년을 종으로 사다가 부리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야 죽을테다. 이 발측한 놈 같으니."

 

하고 베개를 집어 던지려고 베개를 향하고 뼈만 남은 손가락을 어물거린다.

 

"이놈 저놈이라니? 누구더러 이놈 저놈이래!"

 

하고 이 의사는 벌떡 일어나면서,

 

"늙은 것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앓지만 아니하면 당장에 잡아다가 콩밥을 먹이겠다마는."

 

하고 발악을 한다.

 

"웬 말버릇이야"?

 

하고 숭은 이 의사의 팔을 꽉 붙들어 마루 밖으로 내어 둘렀다.

 

"노인을 보고 원 그런 말법이 어디 있소"?

 

하고 숭은 쓰러지려는 이 의사를 다시 붙들어서 바로 세웠다.

 


 

 

순과 한갑 어머니가 이 소리에 뛰어나와서 떨고 섰다.

 

숭의 억센 주먹심과 위엄에 이 의사는 벌벌 떨기만 하고 더 말이 없이 구두끈도 아니 매고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다. 대문 밖에 나가서야, 이 의사는,

 

"어디 이놈들 견디어보아라."

 

하고 중얼거렸다.

 

숭은 이 의사가 나가버리는 것을 보고 들어와 유 초시를 안아 뉘었다. 유 초시는 마치 죽은 지가 오랜 시체와 같이 몸이 굳었다.

 

순은 유 초시의 머리맡에 꿇어앉아서,

 

"아버지, 아버지."

 

부르며 울었다.

 

의사가 나간 지 한 시간이 못 되어서 경관 두 사람이 유 초시의 가택을 수색하였다. 그래서 항아리에 남은 술을 압수하고 유 초시와 그 누이가 둘이 다 장질부사라 하여 대문에,

 

<이 집에 장질부사 환자 있으니 교통을 엄금함>

 

하는 나무패를 갖다가 붙이고 숭이를 대하여서는,

 

"당신은 왜 여기 와 있소"?

 

하고 물러가기를 청하였다.

 

"내가 없으면 병 간호할 사람이 없소."

 

하고 또 예방주사를 맞은 것을 말하여 숭은 이 집에 출입하는 양해를 얻었다.

 

이날 밤이라는 것보다도 이튿날 새벽에 유 초시는 고만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 한번 정신을 차려서 허숭을 바라보고,

 

"숭이, 내가 죽거든 이 애는 자네가 맡아서 시집을 보내 주게."

 

하고 또 순을 보고,

 

"내가 죽거든 숭이를 네 친오라범으로 알고 믿고 살아라. 그리고 숭이가 골라 주는 사람한테 시집을 가거라."

 

하고 유언 비슷한 것을 말하였다.

 

유 초시는 끝끝내 그 아들을 믿지 아니하였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유 초시 죽으면 유가 하나가 망해버리는 것만 같아서 퍽 맘이 슬펐다. 그것이 자기의 불효인 것 같았다. 그렇지마는 그는 이러한 슬픔을 낯색에 나타내는 것이 옳지 아니하게 알기 때문에 괴로움이나 슬픔이나 모두 삼켜버린다.

 

이렇게 유 초시는 아들, 며느리, 어린 손녀, 다 보지 못하고 딸과 숭의 간호를 받으며 마지막 숨을 쉬었다.

 

유 초시가 죽은 지 나흘, 장례가 나갈 날에 순의 고모는 치마끈으로 목을 매어서 죽어버렸다.

 

며느리는 머리를 풀고 삿갓가마를 타고 왔었으나 장례를 치르고는 도로 친정으로 가버렸다. 젖먹이를 두고 왔다는 핑계였다.

 

숭은 이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치렀다.

 

물론 장례 비용도 숭이 대었다. 장례가 끝남에 이 집은 채권자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유 초시의 집은 아주 망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유초시의 아들 정근(正根)은 가독상속인이니,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는 남은 재산(재산이래야 세간)을 처리할 방도가 없었다. 마침 황기수 구타사건의 공판 기일이 임박했으니 숭이가 변호하러 가는 길에 정근을 면회하고 법적수속을 하기로 하고, 우선 한갑 어머니로 하여금 순을 데리고 새로 지은 집 건넌방에 거처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숭은 곧 ○○으로 떠났다.

 


 

공판정에는 방청인도 별로 없었다. 검사는 주범 맹한갑에게 공무집행 방해, 폭행죄로 육 개월, 그 나머지 일곱 사람에게 각각 삼 개월 징역의 구형이 있었다. 피고들은 맹한갑 하나를 제하고 다 황기수를 때린 사실을 부인하였다.

 

숭은 변호사복을 입고, 한 손에 연필을 들고 검사의 논고 중에 주요한 구절을 적다가 일어나, 피고들의 평소의 정행이 어떻게 순량하였던 것을 들고, 황기수가 유순이라는 여자의 손목을 잡고 뺨을 친데서 사건이 발단된 것과, 또 맹한갑은 다만 황기수의 폭행을 제지하려 그 팔을 붙든 것이요, 먼저 황기수가 맹한갑에게 폭행을 가한 증거는 맹한갑에게 목덜미를 눌린 황기수의 저고리등에 피가 묻은 것이 증명하는 것과, 또 숭이가 우연히 공의 이 ○○의 병원에서 이 주일 치료를 요할 타박상을 당하였다는 황기수가 기생을 희롱하여 술을 먹고 가댁질한 것을 목격하였던 것과, 황기수가 기생에게,

 

"얘, 입 한번도 못 맞춰보고 손목 한번 못 쥐어보고 봉변만 했다."

 

하는 말을 들은 것과, 또 ○○경찰서장이 농민의 말보다도 공의의 말을 믿는다던 것을 인용하여 무죄를 주장하고 증인으로 황기수, 이 공의, 기생 최 강월, 숭과 함께 그 말을 들은 농부 김 모를 소환하기를 청하였다.

 

재판장은 허 변호사의 변론을 중대하게 듣는 빛이 보였다. 그는 가끔 연필로 무엇을 적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재판장은 허 변호사의 증인 신청은 그러할 필요가 없다 하여 각하하고 판결 기일은 다시 정할 것을 선언하고 폐정하였다. 재판장이 고려하려는 용의는 넉넉히 보였다.

 

허숭은 법정의 흥분이 깨자마자 견딜 수 없이 몸이 괴로움을 깨달았다. 억지로 형무소에 가서 유정근을 면회하고 만사를 다 맡긴다는 위임을 받아 가지고는, 허둥지둥 정거장으로 나와서 저녁차를 잡아타고 살여울 집으로 돌아왔다.

 

허숭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 그 중에도 자식을 보낸 사람들은 어찌 되었느냐고 허숭을 에워싸고 물었다.

 

한갑 어머니와 유순은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동네와 허숭의 집과의 새에 있는 등성이까지 뛰어 나왔다.

 

"우리 한갑이 잘 있더냐"?

 

하고 한갑 어머니는 허숭의 손을 잡았다. 손은 불같이 더웠다.

 

"네 잘 있어요."

 

하는 허숭의 대답은 들릴락말락하였다.

 

허숭은 머리가 핑핑 도는 듯 괴로왔다.

 

"또 순이 오빠는"?

 

하고 한갑 어머니는 순을 대신하여 물었다.

 

"다들 잘 있어요. 정근이는 만나 보았지요. 다들 잘 있어요."

 

하고 숭은 내 집 마루끝에서 구두를 끌렀다.

 

"다들 나오게 되었나"?

 

"판결은 아직 안 났어요"?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자식이나 남편의 소식을 한 마디라도 더 들어 보려고 숭의 집까지 따라 온 사람이 십여 명 되었다.

 

이 동안에 순은 숭의 방에 들어가 불을 켜고 자리를 펴고 모기장을 달았다. 순은 직감적으로 숭의 몸이 대단히 불편한 줄을 깨달은 것이었다. 순은 베개까지도 손으로 떨어서 바로잡아 놓고 마루로 나왔다.

 

"나 냉수 한 그릇 주시오."

 

하고 숭은 방에 들어가는 길로 양복 바지도 아니 벗고 자리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숭은 앓는 소리를 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어디 아픈가."

 

하고 한갑 어머니는 그 때에야 숭이 편치 아니함을 알고 머리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무어 좀 자셔야지. 미음을 쑬까."

 

해도 숭은 대답이 없었다.

 


 

 

숭은 마침내 장질부사에 붙들린 것이었다. 아침에는 조금 정신이 나고, 저녁에는 헛소리를 하였다. 팔다리가 쑤신다는 헛소리를 할 때에는 한갑 어머니와 순이가 번갈아서 주무르고, 머리가 깨어진다는 헛소리를 할 때에는 한갑 어머니와 순은 번을 갈아가며 수건을 축여서 머리를 식혀 주었다.

 

한갑 어머니와 순은 어머니와 누이동생 모양으로 번갈아서 자고 간호하였다.

 

어떤 때에는 흔히 새벽 두시나 세시가 되어서 숭이 눈을 뜨면 앞에 한갑 어머니가 앉았기도 하고 순이가 앉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는 까맣게 탄 숭의 입술에다가 숟가락으로 물을 흘려 넣었다.

 

순은 숭이가 이 동네 사람을 위하여, 나중에는 자기의 아버지와 고모를 위하여 제 몸을 잊고 애를 쓰다가 이렇게 병이 들린 줄을 잘 안다.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와 고모 때문에 여러 날을 잠을 못 자고 피곤한 끝에 성치 못한 몸을 가지고 재판소에 가서 삼사 일이나 고생하다가 온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순은 자기의 생명을 끊어서라도 숭의 생명을 붙잡아야 할 의무를 느꼈다.

 

숭의 병은 열흘이 되어도, 보름이 되어도 낫지를 아니하였다.

 

이 때에 정선은 남편을 잃어버리고 혼자 화를 내어 집에서 울기만 하였다.

 

동무를 만나기도 부끄럽고 친정아버지를 보기도 부끄러웠다. 설사 제가 좀 잘못했기로니 어쩌면 저를 버리고 달아나서 수삭이 되어도 소식이 없느냐고 숭을 원망도 하였다.

 

그 동안에 김갑진이가 가끔 와서는,

 

"숭이 여태 안 들어왔어요"?

 

하고 혹은,

 

"그놈 시골놈이라 시골로 달아났나 보외다."

 

하고 빈정대기도 하였다.

 

정선의 맘에도 유순이라는 계집애가 가끔 맘에 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설마 하고 항상 스스로 부인해버렸다. 그러다가 신문에서 숭이가 ○○ 지방법원에서 농민을 위하여 변호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마침내 숭은 김갑진의 말과 같이 그의 고향인 시골에 달아나버린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는 유순에게 대한 질투와 숭에게 대한 반감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래서 정선은 포도주 한 병을 사다가 먹고 혼자 취하여서 고민하고 만일 지금 김갑진이가 오기만 하면 그에게 안기리라고까지 화를 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 밤에 김갑진은 오지 아니하였다.

 

이러할 때의 어느 날 아침 편에 정선에게 편지 한 장이 배달되었다. 그것은 언제 한번 본 글씨였다. 피봉에도 분명히 유순이라고 서명을 하였다.

 

정선은 질투와 불쾌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불길에 타면서 그 편지를 내어 동댕이를 쳤다.

 

"에그, 욕이다, 욕이야!"

 

하고 정선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정선은 그래도 궁금하여 그 편지를 떼어 보았다. 이번에는 연필 글씨가 아니요 펜 글씨로,

 

《허숭 선생께서 병환이 중하오니 곧 내려오시기를 바랍니다. 허숭 선생께서는 우리 동네에 오셔서 가난한 동네 사람들의 병을 구완하시고 모든 어려운 일을 대신 보시느라고 몸이 대단히 쇠약하신데다가 제 아버지와 고모가 병으로 신고하시는 동안에도 여러 날 밤을 새우시고 아버지와 고모가 돌아가신 뒤에 쉬실 새도 없이 또 ○○에 가셔서 재판소에서 변호를 하시고 돌아오셔서는 신열이 높으시고 오후면 정신을 못 차리시고 헛소리를 하시고 앓으십니다. 곧 선생님께 편지를 드리려 하였사오나 놀라실까 보아서 편지를 못 드리다가 할수없어서 제가 지금 편지를 드립니다.

 

허 선생님은 헛소리로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시고 어떤 때에는 번쩍 눈을 뜨시고 <여보 정선이> 하고 찾으시다가 섭섭한 듯이 다시 눈을 감으십니다. 심히 뵈옵기 딱하오니, 부대부대 이 편지 받으시는 대로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내려오실 때에는 고명한 의사를 한 분 데리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허 선생님을 은인으로, 있는 정성을 다하여 구완해 드리려 하오나 어리석은 것이 무엇을 압니까. 다만 다만, 선생님이 곧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유순 상서.》

 

라고 하였다.

 


 

 

편지를 본 정선은 지금까지 타던 질투와 불쾌의 불길이 다 스러지고 그의 속에 숨어 있던, 가리어 있던, 감추어 있던 깨끗한 혼, 사랑과 동정으로 된 혼이 깨었다. 아아, 그러면 남편은 역시 그가 늘 말하던 농촌사업을 위해서 달아났는가. 아아, 그러면 남편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가. 아아, 그러면 유순이라는 여자는 결코 남편을 유혹하는 요물은 아니던가.

 

"내가 잘못했소. 다 내가 잘못했소. 내 곧 가께요, 내 곧 가께요. 내 곧 가서 병구완할께요."

 

하고 정선은 오직 사랑에 넘치는 마음으로 저녁차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아, 차보다도 비행기로 갈까."

 

정선의 마음은 조급하였다.

 

정선이가 처음으로 할 일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아버지. 정선이야요. 네. 허 서방이 시골 가서 병이 중하다고 의사를 하나 데리고 저더러 오라고요. 네, 네. 저 저녁차에 갈 텐데 아버지 의사를 하나 구해 주세요. 네, 돈은 있어요. 그럼 아버지가 어떻게 가십니까. 네. 떠나기 전에 집에 갈 테야요."

 

이러한 전화다.

 

윤 참판은 일변 놀랐지마는 또 일변 기뻐하였다. 이혼을 염려하던 그는 숭의 부처간에 아직도 애정의 연결이 있는 것을 본 까닭이었다. 딸이 이혼하는 것-시집에서 쫓겨 오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과부가 되는 것이 나을 듯하였다.

 

그날 밤에 정선은 그 친정 동생들의 전송을 받으며 남대문 정거장에 섰다. 의사 곽 박사가 정선과 동행하기로 하였다. 곽 박사에게 여비를 준 것은 물론 윤 참판이었다. 윤 참판은 간호부 하나까지 얻어서 뒤따라 정거장으로 내어보냈다.

 

이리하여 정선의 일행은 세 사람이었다.

 

봉천으로 가는 차. 오후 열시 사십분.

 

차는 떠났다. 정선은 승강대에서 동생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전송 나온 사람들이 아니 보이게 될 때까지 서 있었다.

 

정선은 이 가을밤에는 너무도 선선해 보이는, 살이 비치는 은조사 적삼에 둥근 남 무늬 있는 보이루 치마를 입고 구두만은 검은 칠피를 신었다. 머리는 가마 있는 데 약간 속을 넣어 불룩하게 하고 쪽이 있는 듯 없는 듯하게 틀었다. 그리고 금테 안경을 썼다.

 

그는 아직 여학생 같았고 남의 부인 같지를 아니하였다. 전기불빛에 보는 그의 살빛은 마치 호박으로 깎은 듯하였다. 엷은 옷을 통하여 살까지도 뼈까지도 투명한 듯하였다. 그의 짧은 회색 치마폭이 살빛 같은 스타킹에 씌운 길쭉한 두 다리를 펄렁펄렁 희롱하였다.

 

별로 집을 떠나본 일이 없는 정선은 이렇게 차를 타고 나서는 것이 큰일 같았다. 더구나 경의선이라고는 개성까지 밖에는 못 와본 정선이다. 알지 못하는 나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뿐인가, 앓는 남편을 찾아가는 길이다.

 

정선이가 자리에 돌아오는 길에,

 

"아, 미세스 허!"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십니까"?

 

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은 천만뜻밖에도 이건영 박사였다. 정선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이 박사에게 손을 주었다.

 

이 박사는 정선의 손을 흔들며,

 

"미세스 허. 미스 최, 소개합니다. 최영자씨신데 내량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이번 ○○여자고등보통학교에 부임하시게 되었습니다."

 

하고 이 박사는 고개를 기울여 미스 최영자라는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애정을 보이려 함인 듯하였다.

 

"최영자올시다."

 

하고 미스 최라는 이는 일본식으로 읍하고 허리를 약간 굽혔다.

 

"네, 저는 윤정선이야요."

 

하고 정선은 서양식으로 잠깐 고개를 숙였다.

 

"이 어른은 변호사 허숭씨 영부인, 이화의 천재시요, 미인이시죠."

 

하고 이건영 박사는 얼굴 근육을 씰룩하였다.

 

정선은 이것들은 또 언제부터 만났나 하고 두어 번 두 사람을 보았다. 이건영 박사는 심순례를 차버린 후에도 같은 학교의 여자를 둘이나 한꺼번에 희롱하였다. 그러다가 인제는 이화에서는 완전히 신용과 명성을 잃어버리고 일본 갔던 여학생들을 따라다닌다는 소문을 정선도 들었다.

 

미스 최도 그 중의 하나로 아마 이번에 한 차를 타고 유혹을 하는 모양이로구나 하였다.

 

"그런데 혼자 가시는 길입니까"?

 

하고 이건영 박사는 정선에게 자리를 내어 주며 물었다.

 

"네, 의사 한분하고 같이 갑니다."

 

"의사!"

 

하고 이건영은 얼른 남편을 잃은 정선과 어떤 의사와의 사랑, 달아남을 연상한다.

 


 

 

"저, 그이가 시골서 병이 나서, 그래서 의사를 청해 가지고 갑니다."

 

하고 정선은 남편한테 간다는 것이 맘에 흡족하였다.

 

"그이? 미스터 허가"?

 

하고 이 박사는 한번 더 놀란다.

 

"네. 농촌사업 한다고 시골 가 있었지요. 변호사는 다 집어치우고."

 

하고 정선은 유순의 편지에서 얻은 지식을 이 기회에 자기의 남편이 자기를 떠난 까닭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것이 기뻤다. 실상 세상에는 허숭이가 종적을 감춘데 대하여 여러 가지 불미한 풍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도 가장 정선의 귀에 듣기 싫은 풍설은 허숭이가 정선을 버리고 달아난 것은 정선과 김갑진과의 추한 관계를 안 때문이라는 것이다.

 

"네, 농촌사업, 좋지요."

 

하고 이건영은 자기도 일찍 농민운동을 하기를 결심하였던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오늘날 죽도 밥도 못된 것을 생각하고 감개가 없지 아니하였다. 사실상 이건영은 귀국한 지 근 일년에 계집애들의 궁둥이를 따르고 살맛과 입술맛을 따른 것 외에 그러하노라고 다른 일은 한 것이 없었다. 인제는 교회에서도 신용을 잃고 교육계에서도 신용을 잃어서, 아직 아무 데도 취직도 못하였지마는 그래도 닥터 리를 따르는 그에게 몸을 만지우고 입을 맞추이는 여자는 자취를 끊지 아니하였다.

 

예수교회 계통의 여자들 중에는 이 박사는 색마라는 평판이 났지마는, 그래도 그 예쁘장한 얼굴, 좋은 허위대, 말솜씨, 박사 칭호에 홀려지고 싶은 여자가 노상 없는 것이 아니요, 더구나 교회 이외의 여자들에게는 이 박사는 전혀 온전한 새 사람이었다. 미스 최는 그 중에 가장 재산이 있고 얼굴도 얌전한 여자였다. 이 박사는 조선에서 월급생활로는 도저히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독신인 것을 밑천으로 부자집 딸에게 장가를 들어 처가덕으로 거드럭거려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심순례를 사랑한 것은 그건 상인의 딸이라는 것이요, 그를 차버린 것은 순례의 집에 재산이 없음을 안 까닭이었다. 미인이요 부자인 여자-이것이야말로 이건영 박사의 부인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 교회 안에는 이러한 자격을 구비한 이가 드물었다. 그는 욕먹는 귀족의 딸이라도, 부자집 딸이면 얼굴과 살이 밉지만 아니하면 장가를 들고 싶었다.

 

"돈이 제일이다. 욕을 먹으면 어떠냐. 돈이 제일이다."

 

하는 것이 요새의 이 박사의 철학이 되고 말았다. 미스 최는 어떤 술 회사 하는 도 평의원의 딸이었다. 미스 최라는 여자 자신은 맑은 정신 가진 이 박사가 탐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가 상관 있소? 본인만 보면 고만이지."

 

하고 이 박사는 미스 최와의 교제에 반대하는 옛 친구에게 장담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보는 것은 미스 최 본인보다도 그의 아버지의 돈이었다.

 

싫다는 곽 박사를 침대차로 들여보내고 정선은 혼자 좌석에 앉아 있었다. 젊은 여자가 혼자 침대에 들어가는 것은, 하물며 다른 남자와 함께 침대로 들어가는 것은 마땅치 아니하게 생각한 까닭이었다.

 

정선이가 바라보니 이 박사는 미스 최를 침대로 가자고 유인하나 최도 정선과 같은 이유로 거절하는 모양이었다. 이 박사는 무안한 듯이 혼자 세면소에 가서 세수하고 머리에 빗질을 하고 돌아와 앉는 양이 보였다.

 

정선은 잠깐 졸다가 정거하는 고요함에 깨었다. 유순의 편지를 받은 후로 하루 종일 흥분되었던 까닭에 몸이 몹시 피곤하였다. 이건영 박사가 빨간 넥타이를 펄럭거리며 왔다갔다하는 양이 보였다. 개성이다. 개성이면 알 사람도 많으리라 하고 차창으로 내다보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짐을 들고 왔다갔다하였다.

 

"굿바이."

 

하는 서양 여자의 소리, 그도 귀익은 소리에 정선은 고개를 안으로 돌렸다. 그것은 오래 이화에 있다가 지금은 평양에 교장으로 가 있는 홀 부인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그를 홀 부인이라고 부르지마는 기실은 그는 아직 시집가 본 일도 없는 미스 홀이었다. 그는 문에서 들어온 첫창 앞에 서서 전송 나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차가 떠났다.

 

미스 홀은 조그마한 가방 하나를 들고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정선은 마주 가서 홀 부인의 가방을 받았다.

 

"아, 정선이!"

 

하고 홀 부인은 반가운 듯이 정선의 손을 잡고 어깨를 만졌다.

 

이 박사는 홀 부인을 몰랐기 때문에 두어 자리 건너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하고 홀 부인의 등 뒤에서 정선의 어깨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 순례야."

 

하고 정선은 어깨를 치는 손을 잡았다.

 

"언니, 어디 가우"?

 

하고 순례는 반가움을 못 이기어 하는 듯이 정선에게 매어달렸다.

 

순례라는 말에 이 박사는 얼굴에 피가 모이었다. 순례의 얼굴이 눈에 번쩍 나타나자 이 박사는 바깥을 바라보는 것처럼 창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미스 최도 이 박사의 당황한 양이 눈에 띄었다.

 

"이리 오세요. 여기 자리 있어요."

 

하고 정선은 순례의 눈에 이 박사가 보이지 아니하도록 순례를 한편 옆에 끼고 제 자리로 걸어가려 하였다.

 

그러나 순례의 눈에는 이 박사의 뒷모양이 눈에 띄었다. 그것만으로도 이것이 이건영인 줄을 알기에 넉넉하였다.

 

순례의 발은 땅에 붙었다. 순례의 눈에는 유리창에 비친 이건영의 얼굴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례를 실컷 희롱하고 돈이 없다고 박차버린 이건영이다. 순례의 가슴에 일생 가도, 삼생을 가도, 미래 억만생을 가도 고쳐질 수 없는 아프고 쓰리고 아린 생채기를 내어 놓고 달아난 이건영이다. 슬픔을 모르는 순례에게 피가 마르는 슬픔을 박아 준 이 박사다. 사람은 다 천사로 알던 순례에게 사내는 모두 짐승이요 악마라는 쓰디 쓴 생각을 집어 넣고 달아난 이 박사다. 순례는 이 박사가 그동안 이 여자 저 여자, 살맛과 입술맛을 보며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한 이건영 박사를 오늘 여기서 만날 줄이야.

 

순례는 그 일이 있음으로부터 도무지 밖에를 나오지 아니하였다. 그것은 이 박사를 만날까 두려워함이었다. 도무지 이건영 박사를 만나는 것이 무서웠다. 맘 한편 구석에는 이 박사를 그리워하는 생각이 있으면서도 이 박사를, 그 얼굴을, 그 눈을, 그 입술을 자기의 몸을 두루 만지던 그 손을 보기가 무서웠다.

 

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자기는 귀신을 만난 것과 같이, 맹수를 만난 것과 같이 기색해버릴 것 같았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기가 정신을 잃어버리고 미친 사람이 되어서 이건영의 모양낸 양복을 찢고 빨간 넥타이로 목을 매어 죽이든지, 그 말 잘하는 거짓말, 유혹하는 말 잘하는 혓바닥을 물어 끊어버리든지, 그 여러 여자의 입술을 빨기에 빛이 검푸러진 입술을 아작아작 씹어버리든지, 그 여러 처녀의 살을 맘대로 만지던 손을 톱으로 잘라버리든지 결딴을 내고야 말 것 같았다.

 

정선은 순례를 안다시피 하여서 자리에 끌어다가 앉히고는,

 

"글쎄, 그 사람은 왜 보니. 그까짓 건 잊어버리고 말자, 또 미스 최라나 한 여자를 후려 데리고 가는구나. 일본 유학생이래. ○○여학교에 교사로 간다는데 귀축축하게 따라 가는걸."

 

하고는 해쑥해지는 순례의 낯을 본다.

 

순례는 본래 연약한 여자는 아니지마는 이건영 박사를 생각하면 곧 빈혈을 일으키고 기절할 듯하였다. 오늘도 뜻을 굳이 먹고 참았으나 눈앞이 노랗게 됨을 깨달았다. 순례는 정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조는 듯이 눈을 감았다.

 

이것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억제하는 도리였었다. 홀 부인은 순례의 맞은편에 말없이 앉아서 한참이나 기도를 올리는 모양이었다.

 

홀 부인은 이화에 있는 동안, 순례를 딸같이 사랑하였다. 그는 순례를 부를 때에 사실상 딸이라고 불렀다. 그는 순례가 조선 처녀답게 순진하고, 말없고, 무겁고, 그리고도 지혜가 밝고, 감정이 예민한 것을 사랑하였다. 순례가 이건영 박사에게 농락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홀 부인은 한 선생을 찾아가서 크게 항의를 하였다. 순례는 이 박사와의 혼인에 대한 말을 일체 아무에게도 홀 부인에게도 알리지 아니하였던 것이었다.

 

"정선, 그 사람 닥터 리요"?

 

하고 홀 부인은 비로소 입을 열어서 정선에게 물었다.

 

"네."

 

하고 정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홀 부인은 몸을 기울여서 이 박사가 앉은 곳을 흘겨보았다. 그리고 치미는 감정을 억제하는 듯이 두 손을 깍지를 껴서 틀었다. 입 속으로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

 

한참이나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나 이 박사 그저 둘 수 없소. 말 한번 해야겠소."

 

하고 홀 부인은 모자를 벗어놓고 일어났다.

 

홀 부인은 이 박사의 곁으로 걸어갔다.

 

"이 박사시요"?

 

하고 말을 붙였다.

 

이 박사는 벌떡 일어났다.

 

"나 미스 홀이요."

 

하고 홀 부인은 미스 최에게 대하여 잠깐 목례하고 그 곁에 앉았다. 이 박사는 악수를 기다리고 손을 내밀었으나 홀 부인은 손을 내밀지 아니하였다.

 

"이 박사, 심순례 사랑한 일 있습니까"?

 

하는 홀 부인의 어성은 칼날 같았다.

 

"네, 잠시, 저, 어떤 사람의 소개로 교제한 일 있지요."

 

하고 이 박사는 좀 당황하였다. 상대편인 심순례가 지척에 지키고 있으니 이 박사의 웅변도 나올 예기를 꺾임이 되었다.

 


 

 

"내가 다 압니다. 한 선생 이 박사를 믿고 사랑해서 이 박사에게 심순례 소개하였고, 이 박사 한 선생께 말씀하기를 그 여자 심순례 맘에 든다고 혼인한다고 말하여, 이 박사, 심순례 두 사람 밤에 같이 놀러 나가고, 혼인식 아니했으나 혼인한 부부 모양으로 팔 끼고 다니고, 심순례 마음에 이 박사 내 남편이라고 믿게 하고, 그러하나 다른 여자-그 여자 나 잘 아오. 내 학생이요마는 나 이름 말 아니하오. 다른 여자 부자집 처녀 욕심나서 심순례 교제 끊고, 또 다른 여자 둘, 아니 셋, 심순례 한가지로 사랑하는 줄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다가 또 미스 최."

 

하고는 미스 최를 바라보며,

 

"용서하시오, 나 미스 최 누구신지 잘 알므로, 미스 최 듣는 데서 이 말씀하오."

 

하고 미스 최에게 변명을 한 후에 다시 이건영 박사를 대하여,

 

"또 미스 최 돈 보고, 이 박사 사람 보고 사랑 아니하오, 돈 보고 사랑하오. 내가 잘 아오. 미스 최 돈 보고 또 사랑하오. 그러할 수 없소. 하느님, 하느님 보시고 있소. 사람 속여도 하느님, 전지 전능하신 하느님 도무지 속일 수 없습니다. 나 심순례 딸같이 사랑하오. 심순례, 참으로 좋은 여자요. 그 심순례, 이 박사 때문에 병났소. 병나서 공부 못하고 불쌍해서 내가 평양으로 데리고 가오. 당신 만나는 것 심히 무서워하오. 당신 서울 돌아다니니까 만날까 무서워하므로 내가 집에 데리고 가오. 이 박사 회개하시오. 하느님 믿고 예수 말씀 잘 생각하시오."

 

하고는 이 박사의 대답도 안 듣고 일어나버렸다.

 

홀 부인은 일어나면서 이 박사와 미스 최를 한번 돌아보았다. 이 박사의 낯빛은 파랗게 질리고 입술은 보랏빛이 되어 떨었다. 미스 최는 이마를 창틀에 대고 우는 모양이었다.

 

"오해요. 오해요."

 

하는 뜻을 이 박사는 영어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목 밖에 잘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오해"?

 

하고 홀 부인은 돌아섰던 몸을 다시 돌려서 한 걸음 이 박사의 곁으로 다시 가 서며,

 

"오해요? 내가 이 박사 오해했습니까. 대단히 기쁜 말씀입니다. 이 박사 그렇게 악한 사람 아니라고 내가 믿게 되기 바랍니다. 이 박사가 젠틀맨이요, 크리스찬이요, 조선 동포의 리더-지도자 되어야 할 양반이요. 나 이 박사 그렇게 인격 없는 사람이라고-그렇게 남의 집 딸 유혹이나 하고 그러한 사람으로 믿고 싶지 아니합니다. 내 생각 다 오해라고 하시면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오해 풀리도록 심순례와 나 있는 앞에서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이 박사는 따라오려고 아니하였다. 그는 다만 힘없는 소리로,

 

"홀 부인, 전혀 오햅니다."

 

한마디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오해라는 말씀만으로 오해 도무지 풀리지 아니합니다. 지금 오해 푸실 기회, 마지막 기회 드려도 그 기회 아니 쓰시면 이 박사 변명할 아무 재료 없는 것을 내가 알 것입니다."

 

하고 홀 부인은 자리에 돌아와버렸다.

 

이등 차실에는 손님이 없었다. 만주가 뒤숭숭하고 또 병이 든다고 하여 객이 적은데다가 있는 이도 침대로 들어가버리고 남은 것은 홀 부인, 정선, 순례, 이 박사 일행 밖에는 두어 사람밖에 없었다.

 

홀 부인이 이 박사와 말하는 동안에 정선은 순례에게 여러 가지로 위로하는 말을 주었다.

 

"글쎄, 그까짓 녀석을 왜 못 잊어버리니? 그 녀석이 사람이냐 개지."

 

이렇게도 정선은 말해보았다. 그러면 순례는,

 

"그래도 어디 그렇소. 나는 안 잊히는데."

 

하였다.

 

"무섭다면서"?

 

"무섭긴 해도 안 잊히는 걸 어찌하오? 세상 사람들이 그이를 숭보면 듣기가 싫어."

 

하고 순례는 웃는 듯 우는 듯 낯을 감춘다. 그는 웃는 체 우는 것이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그 녀석이 너한테 다시 오려든"?

 

"그야 그렇지, 언니, 그래두."

 

"도로 오기로 네가 받자 하겠니"?

 

"도로 오면 받지 어떡허우? 내가 이제 다른 데로 시집 못 갈 바에야."

 

"시집은 왜 못 가니? 혼인했다가 이혼도 하는데, 무어 어쨌다고, 너 그 녀석께 몸은 아니 허했지? 처녀는 아니 깨뜨렸지"?

 

"처녀란 어디까지가 처녀요, 언니? 나 처녀 같지가 아니하고, 꼭 그이의 아내가 다 된 것만 같은데."

 

"이애도. 처녀가 무엇인지, 우먼이 무엇인지 모르니"?

 

"난 모르겠어. 난 이만하면 벌써 처녀가 아니라고 생각하우. 내 맘이 그런 걸 어떡허우."

 

하고 순례는 또 운다.

 

이러한 때에 홀 부인이 돌아왔다. 홀 부인은 우는 순례를 본 체 만 체하고 창을 바라보나 그의 눈에도 눈물이 있었다.

 

홀 부인은 일부러 화제를 돌리느라고,

 

"정선이 어디 가오"?

 

하고 물었다. 이 박사 사건 때문에 정선이가 어디 가는 것도 물을 새가 없었던 것이다.

 


 

 

"남편이 시골 가서 병이 나서, 의사를 데리고 갑니다."

 

하였다. 그리고 정선은 이 대답을 하는 자기의 신세를 순례보다 퍽 행복하게 생각되었다.

정선에게 허숭의 뜻을 들은 순례는 감탄하는 듯이,

 

"나도 그런 일이나 했으면."

 

하였다.

 

그 말이 퍽 간절하였다.

 

"이애는."

 

하고 정선은 어린 동생이나, 딸을 귀애하는 듯이 제 손수건으로 순례의 눈물을 씻고, 얼굴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네가 그래 그 시골을 가서 살아? 오줌똥 냄새가 코를 바치고, 빈대 벼룩이 끓고, 도배도 장판도 없는 흙방에서 전등이 있나, 전화가 있나, 아침 저녁 만나는 사람이라곤 시골 무지렁이들인데 네가 그래, 서울서 생장한 애가 그 속에서 살아"?

 

하고 정선은 순례의 슬픔을 잊게 할 겸 깔깔 웃었다.

 

"왜 못 사우? 시골사람들이 서울사람보다 더 순박하고 인정이 많다는데- 난 시골에 가서 살고 싶수-할 일만 있으면."

 

하고 순례는 제 손을 본다. 그것은 세수물도 못 만져본 손이다. 낫자루, 호미자루는커녕 부지깽이 한번도 못 잡아본 손이다. 정선의 손은 더구나 그러하였다. 그들의 손은 노동이라고 하면 끼니 때에 수저 잡는 것, 학교에서 연필 잡고, 피아노 치는 데나 썼을까. 분결같이 희고, 붓끝같이 고운 손이다. 굳은살 하나, 거스러미 하나 없는 살이다. 그 손들은 도회에 있으면 사내들에게 장난감밖에 아니되는 손이다. 오곡이 되고, 백과가 되고, 필육이 되고 하는 농촌여자의 손- 그것은 검고, 거칠고, 크고, 굳은살이 박이고, 모기가 앉아도 주둥이 침이 아니 들어가고, 거머리가 붙어도 피가 아니 나오는 손이다.

 

"흥."

 

하고 순례는 기껏 어멈의 손을 상상하여 제 손과 비교해보았다. 도회여자는 손으로 벌어먹지 아니한다. 그는 이쁘장한 얼굴과, 부드러운 살과, 아양으로 사내의 총애를 받아서 벌어먹는다. 이 세 가지만 구비하면 그 여자는 가만히 누워서 보약과 소화약이나 먹고 남편이라고 일컫는 남자의 장난감이 되면 일생 팔자가 늘어진 것이다(만일 그러한 팔자를 늘어진 팔자라고, 늘어졌다는 팔자가 좋은 팔자라고 할 양이면 말이다).

 

"그럼 언니는 어떡허랴우? 허 선생은 시골 가셔서 농촌사업을 하시는데, 언니는 혼자 서울 있수"?

 

하고 순례는 아까보다 원기를 회복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억제력, 슬픔과 괴로움을 누르는 억제력만은 회복한 모양이었다.

 

"그럼. 왜 혼자 서울 못 있니"?

 

하고 정선도 제 말에 의심이 없지 아니하면서 대답하였다.

 

"아이 참."

 

하고 순례는,

 

"그게 말이 되우"?

 

하고 가볍게 웃었다.

 

홀 부인은 순례가 웃는 것만이 기뻤다.

 

"왜 말이 안돼"?

 

하고 정선은 여전히 자신없는 항의를 하였다.

 

"어디 두고 볼까."

 

하고 순례는 이번에는 좀더 쾌활하게 웃었다.

 

정선도 웃고 홀 부인도 웃었다.

 

정선이가 ○○역에 내린 것은 이튿날 새벽, 아직 해도 뜨지 아니한 때였다. 이 박사는 어디서 내렸는지 알 수 없고 미스 최만이 눈이 붉어서(울고 잠 못 잔 탓인 듯) 부끄러운 듯이, 그러나 정숙스럽게 정선에게 인사를 하였다. 홀 부인과 순례는 물론 벌써 평양에서 내렸다.

 

정선은 일본식으로 허리를 굽히는 미스 최의 손을 힘있게 잡으며,

 

"이 박사와 약혼하셨어요"?

 

하고 물었다.

 

"아니오. 아버지는 약혼을 하라지마는… 아직 아니했어요."

 

하고 낯을 붉힌다.

 


 

 

정선은 이 박사가 어디서 내렸느냐 하는 말도 묻지 아니하였다. 아마 미스 최에게 물리침을 받고 평양에서 내려서 또 어떤 부자집 딸을 고르기로 작정하였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혹은 순례의 뒤를 따른 것이나 아닌가 하였다.

 

"실례 말씀이지마는 이 박사 주의하세요. 못 믿을 남자입니다."

 

하고 손을 흔들었다.

 

미스 최의 눈에서는 새로운 눈물이 쏟아짐을 정선은 보았다.

 

정거장에는 살여울 동네 사람 하나가 나와서 등대하고 있었다. 정선이가 어제 아침에 허숭에게 전보를 쳐놓았던 까닭이다. 그 동네 사람은 이등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바라고 섰다가 마주 와서,

 

"서울서 오시는 윤정선 씨시우"?

 

하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그 사람은 정선의 짐과 곽 박사의 짐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정거장 밖으로 앞서서 나왔다. 밖에는 동네 사람이 이삼 인이나 나와 있었다. 그들은 다 이번 황기수 사건에 잡혀갔다가 일심에 무죄판결을 받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주범 맹한갑만 삼 개월 징역의 언도를 받아 공소하고, 다른 일곱 사람은, 혹은 무죄로, 혹은 집행유예로 다 나왔다. 그들은 이것이 다 허 변호사의 덕이라 하여 나온 뒤에는 숭의 집 일을 제 일같이 보았다.

 

그들은 정선과 곽 박사의 묻는 말에 대하여 허숭의 병이 중하지마는 그리 위험치는 아니하다고 하였다.

 

무너미 고개에는 남녀 군중이 삼사십 명이나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번 재판이 있은 후로, 사람들이 무사히 나온 후로 동네 사람들의 숭에게 대한 존경이 갑자기 더하였다. 더구나 숭이 제 일가 사람들도 아랑곳 아니하는 동네 사람들의 염병을 구완하다가 병이 든 것을 보고는 동정이 심히 깊었다. 그들은 (그 중에 돈푼이나 지니고 사는 거만한 몇집을 빼고는) 하루에 한두 번씩 숭의 집에 문병을 가고, 숭은 정신을 잘 못 차리지마는 양식과 나무와 일습을 대었다.

 

정선은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많이 마중을 나온 것에 놀랐다. 구경을 나온 것이 아닌가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마치 오래 멀리 가 있던 친족이나 만나는 듯이 반가와하는 빛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여 마치 외국사람이나 대하는 듯이, 내외나 하는 듯이 말도 잘 붙여보지 못하였으나 정선이가 차차 한마디 두마디 말대답하는 것을 보고는 친해져서,

 

"차에서 잠을 못 자서 곤하겠군."

 

하고 반말을 하는 아주머니조차 나서게 되었다.

 

정선은 그러한 동안에도 눈을 돌려서 유순이라는 계집애가 어디 있나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럼직한 아이는 없었다.

 

"자, 어서 가보아야지. 이러구 있으면 되나."

 

하는 어떤 노인의 재촉으로 정선을 에워싼 진이 풀리고, 정선은 동네를 향하여 걸음 걷기를 시작하였다.

 

주재소에서 경관이 나와서 정선과 곽 박사를 붙들고 몇마디 물었다.

 

정선의 일행이 우물 앞에 다달았을 때에 유순이가 마주 나왔다.

 

유순은 앞선 곽 박사를 위하여 옛날식으로 길가에 돌아서서 길을 피하였다. 그리고는 몇걸음 더 걸어오다가 정선을 바라보고는 머뭇머뭇하다가 아무 말도 없이 정선에게 길을 피하였다.

 

"순아, 이 이가 허 변호사 댁이다."

 

하고 어떤 부인네가 유순에게 말하였다.

 

이 말에 정선은 기회를 얻어 발을 멈추고 돌아섰다.

 

정선은 손을 내밀어 유순의 손을 잡고,

 

"유순씨세요? 나 윤정선이야요. 편지 주신 거 고맙습니다."

 

하고 웃어보였다.

 

"유순입니다."

 

하고 유순은 학교에서 선생 앞에 하듯이 경례를 하였다.

 


 

 

"이 애가 여태껏 허 변호사 병 구완을 한다네, 어디 친부모 형제는 그렇게 할 수가 있나."

 

하고 옆의 노인이 유순을 위하여 말하였다.

 

"고맙습니다."

 

하고 정선은 유순의 인사에 답례로 고개를 숙였다.

 

유순은 낯을 붉혔다.

 

동네를 지나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정선을 맞았다. 그리고 남편의 병을 위하여 근심하고,

 

"가만히 호강을 해도 좋을 사람이 우리를 위해서…"

 

하여 주는 사람도 많았다.

 

정선은 자기 남편의 사업이란 것의 뜻이 알아지는 것 같았다.

 

정선이 남편의 집 마루에 발을 올려놓을 때에는 곽 박사는 벌써 숭의 병을 보고 있었다.

 

숭은 마침 정신이 좀 났다.

 

열은 삼십 구 도. 복부가 상하여 의사는 관장의 필요를 말하였다.

 

정선은 병실 문 안에 들어서서 앓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탄 입술, 거뭇거뭇하게 난 수염,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것은 차마 못 볼 광경이었다.

 

곽 의사는 정선을 위하여 병자 곁으로부터 물러앉았다. 정선은 곽 의사가 내어준 자리에 앉으며 남편의 여윈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걷잡을 수 없이 울었다. 무조건으로 울었다.

 

숭도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로부터 이주일 후 숭은 정선에게 부축을 받아 마당으로 거닐게 되었다.

 

정선은 전 심력을 다하여 남편을 간호하였다. 병중에 있는 남편에게서 정선은 전에 몰랐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도 적지 아니하였다. 숭도 정선의 속에 있는 아름다운 정선을 발견하였다.

 

"병이 낫거든 서울로 갑시다."

 

하고 하루는 정선이가 달내강 가에 앉아서 늦은 가을의 볕을 쪼이며 이야기하였다.

 

"날더러 서울로 가자고 말고, 당신이 여기 있읍시다."

 

하고 숭은 팔을 들어 정선의 허리를 안았다. 정선은 끌리는 대로 남편의 몸에 기대었다. 남편의 몸에는 벌써 그만한 힘이 생겼다.

 

"그래두."

 

하고 정선에게는 아직도 시골에 있을 결심이 생기지를 아니하였다.

 

"그래, 이 달내강의 맑은 물이 청계천 구정물만 못하오"?

 

하고 숭은 아내의 낯을 정답게 들여다보았다.

 

"그야 달내강이 낫지."

 

하고 정선은 웃었다.

 

"또, 저 벌판은 어떻고, 산들은 어떻고, 대관절 이 공기와 일광이 서울 것과 같은 줄 아오? 당신같이 몸이 약한 사람은 이런 조용하고 공기 일광 좋은 곳에 살아야 하오. 당신 오라버니도 호흡기 병으로 안 죽었소? 여기 있읍시다. 우리 여기서 삽시다. 여기서 농사하는 사람들과 함께 삽시다. 그리고 우리 힘껏 이 동네 하나를 편안한 새 동네로 만들어봅시다. 이 동네 사람들이 서울서 내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인생 가치로는 더 높소. 또 조선은 십분지 팔이 농민이란 말요. 이천만이면 일천 육백만이 농민이란 말요. 나머지 사백만은 농민의 등을 긁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고, 우리도 농민의 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만일 양심이 있다고 하면, 좀 갚아야 아니하겠소. 정선이, 서울 갈 생각 마오, 응."

 

하고 숭은 이번 만나서 처음으로 정선의 입을 맞추었다. 정선은 마치 처음으로 이성에게 키스를 당하는 처녀 모양으로 낯을 붉혔다. 그리고 누가 보지나 않는가 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람은 없고 강 건너편에 아직 코도 꿰지 아니한 송아지가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당신이 있으라면 있지요."

 

하고 정선은 숭을 바라보고 웃었다. 숭의 얼굴에는 살이 부었으나 아직도 병색을 놓지 아니하였다.

 

 


 

 

정선은 남편에게 대해서 시골에 있으마고 말은 해놓았으나 도무지 서울이 잊히지를 아니하였다. 서울은 정선에게는 잔뼈가 굵은 데일 뿐더러, 수십 대 살아오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예산이 집이라고 하지마는 벼슬하는 조상들은 만년에나 예산에서 한 일월을 보냈을 뿐이요 일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산 것이다.

 

게다가 정선은 시골 생활이라고는 삼방, 석왕사의 피서지 생활밖에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시골은 외국 같았다. 외국이라 하더라도 야만인이 사는 외국, 도무지 서울사람이 살 수 없는 오랑캐 나라와 같았다. 그 발벗고 다니는 촌 여편네들, 시꺼먼 다리를 내놓고 남의 집을 막 드나드는 사내들, 걸핏하면 무엇을 집어가는 아이놈들, 이 무지하고 상스러운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무지스럽소 사람들이. 어디 그리 순박이나 하우? 애들은 모두 도적질이 일수고, 그 사람들이 오면 무시무시해. 그 사람들 속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났소? 호호, 노여지 말아요. 당신은 시골 숭을 보면 노엽데다, 호호."

 

하고 정선은 앓고 난 남편을 괴롭게나 하지 아니하였는가 하여 숭의 기색을 엿보았다.

 

"그야."

 

하고 숭은 점잖게,

 

"농촌사람의 성격 중에는 우리보다 나은 점도 있지마는 못한 점도 있지요. 바탕은 좋지마는 원체 오랫동안 웃계급에 시달려 지냈거든. 게다가 근년에는 먹을 것조차 없으니 인심이 몹시 박해졌지요. 그걸 누가 다 그렇게 만든지 아시오"?

 

하고 숭은 정선의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몸매를 들여다보았다.

 

"누가 그랬을까"?

 

하고 정선은 어리광하듯 생각하는 양을 보였다.

 

"양반들, 서울양반들, 시골양반들, 조선은 모두 양반들이 망쳐놓았지요."

 

"또 양반 공격이로구려."

 

하고 정선은 새뜩하는 양을 보인다.

 

"당신네 양반은 큰 양반이지. 내 조상 같은 양반은 적은 양반이고. 죄야 큰 양반 적은 양반 같이 졌지요."

 

하고 숭은 말을 좀 눅였다.

 

"그야 양반이란 것들이 나라 정사를 잘못해서, 이를테면 국민을 바로 지도하지 못해서 조선을 망쳐버린 것이야 사실이겠죠. 그렇지만 백성들은 왜 남 모양으로 혁명을 못 일으키우? 그놈의 양반 계급을 다 때려부수고 왜 상놈 정치를 해보지 못했소"?

 

하고 정선은 상놈 공격을 시작한다.

 

"도무지 교육을 안 주었거든. 그리고 유교, 그 중에도 노예주의인 주자학만 숭상해서 그 생각만 무지한 백성들에게 집어넣었거든. 그래서 양반, 중인, 상놈을 금을 그어 가지고는 벼슬은 양반만 해먹고 중인은 역학이나, 이학이나, 수학 같은 기술 방면에 밖에 못 나가고 나머지 상놈계급은 자자손손이 아전 노릇이 아니면 농, 상, 공업밖에 못해 먹고- 농, 상, 공업이 천한 것이 아니겠지마는 조선 양반들은 그것을 천한 것으로 작정을 해 놓았거든.

 

그리고는 나라 일은 양반들만 맡아두고 했는데, 그 나라 일이란 무엇인고 하니 나라 일이 아니라 기실은 자기네 집안이 잘 살 길, 요새 말로 하면 제 지위와 재산을 마련하는 데 이용을 해먹었단 말이오. 그분들이 농사개량을 했겠소, 상공업 발전을 생각했겠소, 국방을 생각했겠소? 생각이라고는 어떡허면 높은 벼슬을 많이 하고 어떡허면 돈을 많이 벌까 하는 것뿐이었소. 그 중에는 정말 나라를 위한 사람도 있겠지마는 근대에는 그런 사람은 별로 없었지요. 그러니까 말이오. 양반들이 죄를 지어서 농촌을 저 모양을 만들었으니 양반이 그 죄를 속해야 하지 않겠소. 어디 당신 양반을 대표해서 한번 농민 봉사를 해보구려."

 

하고 숭은 웃었다.

 

"난 큰 양반 대표고, 당신은 적은 양반 대표로!"

 

하고 정선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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