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ch-Adagio (from Toccata,BWV564)>

바흐의 오르간 곡은 요즘은 <토카타와 푸가 d단조BWV.565>처럼 관현악 곡으로 변용되기도 하고 다른 독주악기용으로 편곡되어 쓰이는 게 보통이다. 이 짧은 아다지오는 알렉산더 실로티와 카잘스가 첼로곡으로 어렌지한 것인데 관객들 반응은 모르겠으나 이름있는 첼리스트들이 앞다투어 연주한 걸로 미루어 상당한 인기곡이 된 것으로 보인다.
교회 음악은 아니고 세속 음악이지만 애절한 갈망, 비원(悲願)의 감정이 느슨한 선율에서 뚝뚝 묻어나는 걸 느낀다.
여기에 근육경화로 아깝게 요절한 자크린느 듀프레의 단아한 연주가 그 비원의 무게를 더 해주고 있다.

 

1997년도 모스크바 동남부 변두리 부또보의 라뜨나야 거리에 있는 작은 아파트 주방에서 식은 식빵조각을 먹다가 이 아다지오를 듣고 나는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아들은 첼로 레슨을 받으러 통역 아줌마와 함께 콘서바토리로 가고 집에 나 혼자 뿐이었다. 나는 혼자 있는 동안 며칠 전 구입한 카잘스 초기연주 음반이나 들을려고 음반을 콤포에 걸었다가 맨처음 흘러나오는 아다지오에 목이 메어버린 것이다.

 

아들이 연습하는 동안 나는 부엌에서 아들의 먹거리를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데 빵을 구입하려고 몇 킬로미터나 걸어갔다가 말이 통하지 않아서, 그리고 매점에서 빵이 바닥이 나버려서 빈 손으로 돌아왔다. 한창때의 아들은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계속 요구했고 어떤 때는 빵을 구하지 못해 나는 혼자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한정된 예산 - 사실은 대치동 집을 팔아서 가져간 돈 - 때문에 돈을 아껴 쓰느라고 무진 애썼지만 레슨비, 통역비, 첼로를 실어나르는 자동차와 운전기사 비용 등 하루에도 수백달러가 휙휙 날아가버린다.

 

카잘스의 연주는 역시, 특히 초기 연주는 다른 누구의 연주와도 비견할 수가 없는 오묘한 연주였다. 그가 연주하는 이 아다지오를 들으며 여태 억제되어왔던 고통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버려서 나는 혼자 오랜동안 부엌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음악이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니까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닌가."

 

지금도 이 아다지오를 들으면 그때 부또보 아파트 부엌에서 눈물짓던 시간이 떠오른다.
아들은 일년 남짓 첼로를 배우다가 첼로를 가르친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한창 물이 오를 즈음에" 고생을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첼로를 때려치고 돌아와버렸다.

 

http://www.youtube.com/watch?v=MQquknf_3ps

 

* 이정숙 님이 업데이트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