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주인공은 오래된 기억 속, 국민학교 시절의 소녀를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물론 똑같은 여인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심리 공간 속에서 이 소녀는 실제 과거의 그 소녀보다 더 실제에 가깝다. 세월의 흐름이 주는 변화를 뛰어넘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슬픈 사랑의 이야기지만, 흔히 말하는 사랑의 슬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작가의 또다른 문제작 '마테오네 집'의 상황과 연관해서 읽으면 좀더 입체적으로 작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금호동 로터리에서 남쪽으로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오다 다시 왼쪽으로 좁은 길을 꺾어 돌아가면 작은 집들이 옹가종기 모여 있는 그 야트막한 언덕이 나타난다. 지금은 그 부근의 집들이 규모로나 모양새로 봐서 너무 초라하고 볼품이 없는 낡은 가옥들이 돼 버렸지만 내가 그 언덕을 자주 찾아다닐 때만 해도 그곳은 마치 잘 닦아놓은 보석처럼 번쩍번쩍 빛이 나는 신흥 주택가였다.
당시로는 제법 득세한 중산층들이 그곳에 아담한 새 집을 짓고 거기에 정착했는데 집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집 구조가 짜임새가 있었고 또 집을 아주 탄탄하게 짰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보면 마을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산뜻하게 보였다.
길은 언제나 부지런한 주민들에 의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이 도시의 모든 시민들이 적어도 이 정도로 안정되고 청결한 동네에서 살게 된 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마을과 넓은 찻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돌아가는 꼬불꼬불한 비탈길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깨끗한 비탈길과 마을이 사실상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얼마 전 나는 그곳에 갔었다. 그런데 비탈길은 여기저기 모서리가 무너지고 길바닥은 휴지와 지저분한 상품 포장지로 더럽혀져 있었다. 아담하고 산뜻했던 작은 가옥들은 이제 빛이 바래고 내 눈에도 너무 왜소하게 비쳐 한낱 빈민들의 은신처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을이 지나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그사이 세상은 말할 수 없이 풍요해졌고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을 했다. 그런데 오직 이 언덕에 있는 마을만 이십 수년 동안 고스란히 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을은 이제 삭막하고 냉랭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마치 비천하게 전락한 여자가 옛 남자의 방문을 무감동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런 싸늘한 분위기를 느꼈다. 마을은 나를, 내 기억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그녀를 발견한 건 저녁때였다. 여름 이른 저녁때라 아직 주위는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마을의 굴뚝 꼭대기에서는 저녁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빗방울이 이따금씩 똑똑 떨어졌다. 동네 복판에는 아직 집을 짓지 않은, 꽤 넓은 빈터가 있었는데 나는 그 빈터의 한쪽 모퉁이에 서서 마을의 저녁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서너 명의 아이들이 갑자기 저쪽 골목 속으로부터 내가 서 있는 빈터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가 소리를 지르며 빈터를 한 바퀴 돌더니 다시 골목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아이들은 아마 그때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부분이 사내들이었는데 녀석들은 고작 국민학교 삼사학년 또래의 아이들이었다.
다만 그 무리 속에 약간 덩치가 큰 계집애가 하나 함께 있었다. 그 애는 아주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애가 사내가 아닌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애는 분명 중학생이었다. 사내애들보다 그만큼 덩치가 더 컸다. 중학생인 여자아이가 조무래기 사내들 틈에 섞여 골목 저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그녀 자신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는지, 조금 전 나와 아주 가까운 곳까지 접근했을 때 나와 우연히 눈길을 마주친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혔었다. 나는 그 순간을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쳤다. 내가 다른 점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때는 그녀가 다만 보통 체격의 여학생이고, 피부가 비교적 하얗고, 검고 큰 눈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는 것만 알았다. 그런 여자아이는 사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내가 그 계집애를 거기서 만난 것이 두 번째의 만남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깨닫게 해 준 것도 그녀였다. 조무래기 아이들과 쏜살같이 달아났던 그녀는 잠시 후 내가 서 있던 지점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조그만 양옥의 창문에서 갑자기 솟구치듯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그 창문은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겨우 3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그 이전까지 창문은 닫혀 있었는데 그 애가 얼굴을 내밀기 위해 갑자기 창문을 열었었다. 창문은 집의 규모에 비하면 약간 커 보였다. 그 집은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빨간 벽돌 건물이었고 누구나 한번 들어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날만큼 앙증맞게 지어진 예쁜 주택이었다. 마당도 제법 넓고 마당에는 새로 옮겨 심은 듯한 몇 그루의 관상수들이 얕은 담장 위로 솟아 있었다.
갑자기 창문을 통해 불쑥 나타난 그 계집애는 처음에는 대담하게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맞은편에 서 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나는 그 이전까지는 남의 집 울타리 바깥에서 집 안에 있는 사람의 시선을 받아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런 경험이 내게 있었더라도 그때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나를 쏘아보는 순간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왜냐하면 그녀는 당연히 자기가 있어야 할 장소에 있는 반면 나는 단지 지나가는 행인에 지나지 않으며, 내가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 건 내가 낯이 설고 무서운 남자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때 두 번째 마주쳤고 그녀도 그걸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그녀는 창을 열고 나를 바라본 것이다.
뒤늦게야 나도 그녀의 유난히 검고 큰 눈을 기억해냈다. 그 기억을 찾아낸 순간 나는 온몸이 떨렸다. 왜냐하면 처음 마주쳤을 때 나는 별다른 목적도 없이 이 계집아이가 살고 있는 동네와 그녀의 집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그것은 막연한 희망이었고 나 자신도 그걸 알게 되리란 기대는 갖지 않았다.
나는 그날 학교에 가느라고 로터리에서 이른 아침의 만원버스에 올랐다. 초겨울이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든 사람도 있었고 기세 좋게 비를 맞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아침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어서 나에겐 지옥 같았다. 버스를 탈 때마다 나는 내가 잠시 동안 지옥을 통과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옥을 통과하는 아침 등교였지만 대학 신입생이었던 내겐 언제나 아침 등교가 즐거웠었다.
버스에 오른 나는 용감하게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갔다. 버스는 곧 로터리를 떠났다. 차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위치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검은 학생 오버코트를 입은 단발머리 여학생이 내 앞으로 바짝 가까이 밀려왔다. 그녀의 키는 내 가슴에 닿았다. 그녀도 나처럼 우산을 들고 있지 않았다. 만약 우산을 들고 있었다면 우리는 더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그녀는 몹시 무거운 책가방을 주체하지 못하고 끙끙거렸다. 나는 그녀가 내 눈앞에 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끙끙거리는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검은 머리는 비에 젖어 있었고 검은 오버코트의 깃에도 물기가 번쩍거렸다. 그녀의 하얀 얼굴에도 빗물이 묻어 있는 것 같았고 검은 눈에도 빗물이 스며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큰 눈은 잔뜩 겁을 먹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의 책가방을 살며시 빼앗아 들었다. 그것은 천근처럼 무거웠다. 내가 한 행동은 선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천근같이 무거운 책가방을 빼앗아 든 순간에 나는 고통 대신 기묘한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다.
갑자기 책가방을 빼앗긴 그녀는 여전히 겁을 집어먹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웃어 보이거나 고맙다는 인사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내가 내리는 정류장에서 그녀에게 말없이 가방을 넘겨주고 버스에서 빠져 나왔다.
그때 버스에서 내린 뒤 그 버스가 떠나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그 계집아이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를 알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걸 알고 싶은 뚜렷한 동기는 없었다. 다만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한 기분이 그때 가슴을 가득 채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래 전 잃었다가 다시 찾은 것을 또 다시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모든 내 기분의 정체를 세밀하게 자각하지는 못했었다.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가까스로 그때의 내 기분의 정체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서로 이미 아는 얼굴이라는 걸 발견한 그녀와 나는 야트막한 블록 담장을 사이에 두고 빤히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낯선 사람이 아니고 구면이란 사실이 신기한 듯 처음에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간은 약 3분 쯤 되는 시간일 것이다.
그동안에 나는 그녀와의 예기치 못했던 재회의 즐거움을 혼자서 마음껏 즐겼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가슴 속에서 솟구쳤다. 그러나 한편 불안하기도 했다. 마치 기적처럼 그녀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이 어떤 불행의 징조일지 모른다는 막연함 불안감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기적 같은 행운에는 거기에 버금가는 불행이 따르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오랫동안 이쪽을 응시하고 있던 그녀는 우리들이 하고 있는 행동이 우스웠던지 갑자기 입가에 픽 웃음을 홀렸다. 그리고 그 웃음을 계기삼아 이윽고 그녀의 변덕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한번 웃고 나서 금방 자기가 언제 웃었더냐는 듯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마치 내가 거기 서 있다는 게 자기를 몹시 화나게 만든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자연히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한 체 했다. 그녀는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곧 그녀는 창문을 꽝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닫아 버렸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창문 안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그녀가 자취를 감춰 버리자, 내 시야는 다시 사막으로 돌변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마치 두 발이 그 자리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다시 창문에 나타나 화해의 웃음을 보여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보지 않고는 결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그 계집애의 출현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비탈길에는 행인도 뜸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방은 불도 켜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들리더니 군용 지프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비탈길을 올라왔다. 지프는 내가 서 있던 빈터를 지나 천천히 빨간 벽돌집 대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엔진을 끄고 멈춰 섰다. 지프에서 경적이 두 번 울렸고 군복을 입은 남자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뒤이어 벽돌집의 대문이 열리고 부인과 딸 그리고 꼬마 사내아이가 함께 뛰어나왔다.
이미 너무 어두워서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자기 엄마와 함께 아빠를 마중 나온 아가씨는 틀림없이 그녀였다. 아빠와 무슨 얘기를 쾌활하게 주고받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분명 그녀의 목소리였다. 군인 한 사람은 상관이고 한 사람은 그의 부관이거나 운전병인 것 같았다. 그들은 차를 밖에 세워두고 모두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소란하던 주변이 다시 정적에 잠겨들었다.
나는 결국 그날 그녀의 출현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빈터에서 떠났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내일이나 그 다음날 어김없이 이곳으로 다시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와 나 사이에 이미 숨바꼭질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기묘한 숨바꼭질은 사실은 내게는 가장 익숙한 세계이고 또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대학에 들어가기 일 년 전까지 나는 염산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3년 동안 살았다. 아버지는 염산어업조합출장소에 근무하셨는데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음주벽이 심하셔서 가족들의 생활은 근근이 나날의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이었다. 나는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하는 일 없이 집 안에 숨어서 놀고 지냈다.
집 안에 숨었다고 하지만 염산에 무슨 거리나 상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따금 자동차를 멀리서나마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건 염전에서 소금을 싣고 밖으로 나가는 트럭이었다. 우리 집 마루에서 바라보면 소금을 가득 실은 트럭이 멀리 해안 가까이에 있는 도로를 먼지를 일으키며 굼벵이처럼 느리게 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을은 바다와 염전에서 내지로 깊숙이 들어온 곳에 낮은 야산을 둥지고 있었는데 불과 삼십여 호의 조그만 마을이었다. 마을 앞에는 제법 넓은 간척농지가 있고 그 농지가 바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염산에 처음 왔을 때는 바다의 소금 냄새와 맑은 공기에 이끌려 나도 부지런히 제방과 들길을 돌아다녔다. 마을의 다른 아이들과 잠시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곧 집안에 숨어 버렸다. 진학을 못한 것이 점점 큰 수치심으로 변했고 더욱 심해진 아버지의 주벽으로 사춘기의 자존심을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지탱할 수가 없었다. 노골적으로 우리 가족과 나를 비웃는 녀석도 있었다. 아마 우리가 외지인이기 때문에 일종의 적대감에서 필요 이상으로 아이들이 우리 가족의 동정에 민감했는지 모른다.
일단 집 안에 숨어 있게 되자, 나는 바깥 출입이 점점 더 무서워졌다. 사람들의 눈길과 말소리와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까지 까닭 없이 두려웠다. 나는 내 방으로 쓰고 있던 한쪽 골방에서 종일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그 골방에는 시골 가옥에는 흔치 않은 제법 큰 창이 있었다. 그 방에 창이라곤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 창을 통해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창은 내게는 구원의 창이었다.
그 창에서 바라보면 건너편에 염전 사장이 사는 규모가 크고 깨끗한 초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집의 마당도 일반 농가의 그것에 견주면 무척 넓었는데 언제나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사장 네 집은 우리 집에서 약 50미터 쯤 떨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는 배추밭과 고추밭이 있었다. 그 집의 깨끗하게 정돈된 마당을 지나 저쪽 염전으로 나가는 들길의 한 모퉁이가 내 방에서 보였다. 그 밖에 그 창에서 보이는 풍경은 달리 없었다.
그러니까 염전 사장 네 집과 그 집의 넓고 깨끗한 마당과 그리고 그 마당 저쪽으로 염전으로 나가는 길의 한 모퉁이가 그때 내가 그 창을 통해 볼 수 있었던 풍경의 전부였다. 아니, 그 밖에 또 있었다. 사람들이었다.
나는 사장 네 가족들과 그 집에서 함께 기거하며 일하는 인부들과 그 집에 이따금씩 나타나는 손님들을 어쩔 수 없이 자주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영애를 자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창을 통해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건 내겐 축복이었고 내가 그 창문에 감사를 바쳐야 할 가장 큰 이유였다.
영애는 사장의 외동딸로 그때 국민학교 6학년에 다니는 어린 계집애였다. 그 아이는 시골아이답지 않게 제 나이보다 훨씬 숙성했고 깜찍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그녀는 제 또래들 중에서 늘 대장 노릇을 했다. 마을의 계집애들은 언제나 영애의 꽁무니를 따라다녔으며 그녀가 하자는 놀이를 고분고분 따라서 했다. 영애는 옷차림도 깨끗했고 머리는 자상하고 똑똑한 제 엄마가 늘 단정하게 빗겨 주었다.
처음에는 다만 그녀를 귀여운 어린아이로만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영애는 내가 지상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성으로 변해갔다. 그 창을 통해 내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여자가 영애였다. 나는 눈만 뜨면 영애를 보기 위해 창 앞으로 달려가곤 했다.
무더운 여름 한낮 같은 때는 영애는 오렌지색 블라우스와 푸른색 치마를 입고 제 친구들과 넓고 깨끗한 마당에서 고무줄넘기를 했다. 그녀가 깡총거리며 고무줄넘기를 하는 동작은 아주 민첩하고 우아해서 마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가을 저녁때나 이른 아침에는 영애는 바로 내 방 창문 앞에까지 와서 배추를 뽑아 가거나 고추를 따서 가져가기도 했다. 그녀와 지척의 거리에 있게 되면 나는 또 두려움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곤 했다. 나는 나의 가쁜 숨결이 그녀의 귀에 들릴까봐 겁이 났다. 무엇보다 두려운 일은 영애가 이쪽 창 안쪽에 숨어 있는 나를 이미 발견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창 안쪽에 숨어서 자기를 매일같이 몰래 훔쳐보며 내가 누리는 비밀스런 즐거움을, 그야말로 내 마음 속의 은밀한 비밀을 그녀가 이미 간파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는 두려웠다. 나는 내가 영애에게 일종의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나는 그녀와 말 한마디 나눈 일도 없었고 영애라는 아이가 도대체 나를 알고 있는지 어떤지조차 몰랐다. 나는 수년 동안 거의 내 몸을 바깥에 드러내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영애는 그 모든 걸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그녀가 알고 있었다는 걸 몰랐을 뿐이었다. 깜찍한 그 계집애는 창 안쪽에 숨어서 자기를 지켜보는 시선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 그 동안 시치미를 떼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 가을 저녁나절 그녀는 배추밭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허리를 굽히고 탐스럽게 잎새가 자란 배추 두 포기를 밭에서 뽑아냈다. 나는 그녀가 배추를 들고 곧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밭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가 갑자기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지극히 냉정한 눈길로 조용히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과 태도는 엄숙할 만큼 침착하고 의젓했다. 그 조용한 눈길은 무엇을 새로 찾는 눈길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자리에 그것이 여전히 있는가를 다시 확인하는, 그런 눈길이었다. 나는 전신이 발가벗긴 채 완전히 노출된 것 같은, 참혹하고도 동시에 후련한 기분에 빠졌다. 그 순간은 영애와 나 사이에 그 기묘한 숨바꼭질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영애는 이따금씩 내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거기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시 조용히 지켜보다가 이내 눈길을 돌리곤 했다. 영애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마당에서 놀다가도 문득 동작을 멈추고 이쪽을 혼자 은밀히 쳐다봤다. 그런 때의 영애의 표정에는 혼자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다소 긴장된 분위기가 엿보였다.
이미 우리는 우리 둘만이 통하는 언어를 갖게 된 셈이었다. 그것은 마을의 누구도, 심지어는 영애의 어머니도 알 수 없는 우리만의 언어였다. 영애가 비밀을 지키기로 한 이상 아무도 우리의 대화를 엿들을 수는 없었다. 영애는 아주 지혜롭고 은밀하게 내게 신호를 보내오곤 했다.
그녀는 밖에 나와 있을 때는 언제나 내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영애는 잘 웃는 아이였다. 이따금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도 그녀는 갑자기 까르르 소리를 지르며 자주 웃었는데 그런 때는 웃음소리를 좀 더 크게 과장하거나 얼굴에 애교를 듬뿍 나타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 때는 영애가 아직 어린 계집애가 아니라 다 성숙한 처녀 같아 보였다.
그녀는 언제나 내 눈길이 잘 미치는 자리에 있으려고 애썼다. 어쩌다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게 되면 그녀는 재빨리 돌아섰다. 고무줄넘기를 할 때도 영애는 갑자기 그 놀이에는 불필요한 이상한 동작을 취하곤 했다. 뜀을 뛰면서 마치 무희가 춤추듯 두 팔을 크게 벌리고 부드럽게 흔드는 것이다. 그 이상한 동작은 적어도 자기의 친구들을 향한 신호는 아니었다. 그 아이들이 영애의 그 이상한 몸짓을 알 턱이 없었다.
나는 종일 하는 일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창 앞으로 다가가서 영애가 내 시야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일이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영애는 나에 비하면 무척 바쁜 아이였다. 그 애는 학교에도 가야하고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염전에도 다녀와야 했다.
일요일에는 영애는 더욱 바빠졌다. 그녀의 어머니가 마을에서 가장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영애도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을의 공소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마을의 공소는 영애네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산비탈 중턱에 있었다.
영애가 그만큼 바빴기 때문에 자연히 나는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나는 기다리는 일에는 곧 아주 익숙해졌다. 어떤 때는 다섯 시간을 줄곧 창가에 서서 시야에 영애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일도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도 그녀를 못 볼 때도 많았다.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씩 다리가 휘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이윽고 마당 한쪽 모퉁이에서 그녀의 모습이 불현듯 나타나면 나는 전신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렸고 마음속에 드리워 있던 그늘이 금방 걷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나타날 때는 그녀는 능청스럽게도 일부러 쌀쌀맞은 표정으로 이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당가를 왔다 갔다 하거나 공연히 빗자루를 들고 나와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마당을 쓰는 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능청은 고작 반 시간도 버티지를 못했다. 어느새 영애는 다시 쾌활하게 떠들고 애교를 떠는 본래의 영애로 돌아갔다.
그녀는 내 마음의 조바심을 아주 세밀하게 읽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즐거움과 낙망의 파문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그녀는 읽고 있었다. 나도 영애의 마음속을 얼마간 읽고 있었지만 이 싸움에서는 나는 영애의 적수가 아니었다. 나는 갇혀 있고 그녀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시야는 그녀가 전부이고 그녀에게는 나 같은 존재는 다만 형체가 없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 창에서 영애를 마지막으로 본 건 늦은 가을 저녁때였다. 그나마 그날 그녀를 볼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일부러 영애를 보기 위해 창 앞에서 그녀의 출현을 기다릴 만큼 내가 한가하지 못했었다. 아버지가 그날 운명하셨던 것이다.
나는 졸지에 상주가 되어 문상을 하려고 물려오는 마을사람들을 맞느라고 종일 마당에서 서서 지냈다. 누군가가 나더러 너무 피곤할 테니 손님이 뜸한 틈에 잠깐 방으로 들어가서 쉬라고 권유했다. 그 집은 방들이 너무 좁아서 빈소는 마당에 마련했었다.
나는 잠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나의 골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도 마을의 여인들이 몰려들어와 상복을 만들고 손님에게 내놓을 음식을 만드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창 앞으로 다가가서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창 가까운 곳에 영애가 다가와 서서 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그처럼 가까운 곳까지 접근해 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창문을 그렇게 혼자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내가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애는 뜻 밖에 내가 나타나자, 흠칫 놀라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달아나지는 않고 물러선 그 자리에서 아주 조용한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다른 때라면 그런 경우 그녀는 멀리멀리 달아났을 것이다. 나는 그때 머리에 굴건을 쓰고 있었다. 상복은 아직 마련이 되지 않아 그냥 늘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영애와 나는 말없이 상대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마음이 편하고 침착했다. 그건 영애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다른 때라면 나는 그처럼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는 영애를 그처럼 태연하게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것이 내가 그 창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는 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영애도 내가 앞으로는 그 골방에 숨어서 그녀를 훔쳐볼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리 가족은 염산에서 생활해야 할 이유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우리가 염산에 간 것은 아버지의 새 직장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굴건을 쓰고 나타난 내 모습을 오랫동안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영애는 이윽고, 돌아서서 마당 저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이 어쩐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이제 숨바꼭질은 끝났다. 그 작은 골방 속에서 내가 바라보던 세계, 조그만 창으로 제한된 그 은밀한 세계도 없어졌다. 장례를 치르고 바로 다음날 우리 가족은 염산을 떠났다. 이삿짐도 없었고 특별히 만나야 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홀가분하게 염산을 떠날 수가 있었다.
비오는 날 그 언덕 위의 마을에 다녀왔던 나는 겨우 나흘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아갈 수 있었다. 그 동안에 여름방학이 끝나 등교 준비를 하느라고 나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나흘씩이나 나는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그 꼬마아가씨를 만나는 일이 아니라도 그 무렵에 나는 거의 맹렬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이웃 동네 먼 동네 할 것 없이 밤이 이슥해서 거의 눈앞이 안 보일 때까지 돌아다녔다. 그건 삼년 동안의 수인과 같은 생활 뒤에 오는 아주 자연스런 욕구라고 할 수 있었다. 요컨대 움직이는 자유를 실컷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욕구 속에는 자신의 시야를, 내면의 시야가 아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넓히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벽돌집과 기와집이 뒤섞여 모여 있는 마을 풍경, 넓은 도로와 비탈길, 구멍가게들이 총총히 늘어서 있는 변두리 마을의 골목 풍경, 이런 따위의 지극히 평범한 풍경들이 그때 내 눈에는 마치 세상이라는 걸 처음 보는 미개인의 눈에 비친 세상 풍경처럼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렇지만 염산의 창을 완전히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내겐 아직 염산의 창에 매달리고 싶은 강한 충동이 살아 있었다. 그건 육안의 시야를 넓히겠다는 욕구와 어느 모로 봐도 상극이었다. 한동안 나는 내가 그 창을 잊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작 내게 남아 있는 건 그 창에 대한 희미한 기억뿐이라고 내심 치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 창의 기억은 단순한 기억이 아닌, 생생한 욕망의 일부로 내면 깊은 곳에 살아 있었다. 다만 일시적으로 대상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그것을 잊었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그 비탈길 언덕의 마을에서 갑자기 유리창 저쪽에 나타난 계집아이를 보았을 때 염산의 창을 통한 구도는 훌륭하게 되살아났다. 그 계집애는 영애와 꼭 닮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로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은 용모가 꼭 닮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말씨나 목소리, 성격도 닮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용케도 그녀는 영애와 목소리나 말씨, 그리고 몸짓이 닮았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청결한 분위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건 영애가 처음에 내 시선을 붙잡아 맨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전체적인 구도는 물론 그때와는 달랐다. 이번에는 내가 자유로운 입장이고 그녀 쪽이 갇힌 몸이었다. 그러나 그건 표면적인 구도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은 나는 여전히 아직도 수인이고 자유로운 쪽은 그 계집아이였다.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서 있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수인이었다. 심리적으로도 나는 얽매인 몸이었다. 거기에 비해 그녀는 실내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인다. 숨었다가 다시 나타나고 다시 또 숨어 버리는 쪽도 그녀였다. 따라서 표면적인 구도 따위는 별 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 계집아이는 집에 돌아왔을까? 그녀는 오늘도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을까? 비탈길을 올라가며 나는 갖가지 궁금증에 사로잡혀 혼자 자문을 계속했다. 내 머리속은 온통 그녀에 대한 무성한 추측과 상상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 아이가 두 번째의 대면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다. 나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을 때 두렵고 겁이 났다. 그냥 돌아서서 오던 길로 가버리고 싶기도 했다.
무더웠던 한낮이 지나고 여름해가 기울어가기 시작한 오후 다섯 시경이었다. 아직 주위는 투명하게 밝았다. 한낮의 열기도 아직 완전히 식어 버린 때는 아니었다. 빈 터에서는 조무래기들이 흙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모두 사내애들이라고 생각하고 가까이 접근했다. 내가 처음에 잘못 본 건 그 애가 그날은 옷을 바꿔 입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빨간색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가까이 접근했을 때 조무래기들 속에서 아이 하나가 이쪽을 힐끗 돌아보더니 질겁을 하고 일어서서 저쪽 골목으로 쏜살같이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그때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달아난 그 아이는 바로 그 계집애였다. 그녀는 소매가 짧은 노란색 블라우스와 재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런 옷차림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홉사 사내 같아 보였다.
함께 놀고 있던 조무래기들이 일제히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그 애들은 곧 다시 흙장난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나를 발견한 그녀가 질겁을 하고 달아난 데 대해서 나는 본능적으로 무안을 느꼈고 당황했다. 쉽게 생각하면 그건 적대감이나 경계심의 표현이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그녀가 그때 그 빈터에서 태연스럽게 놀고 있었더라면 나는 더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숨바꼭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빈터의 한쪽 모퉁이로 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은 내게 익숙한 일이고 그건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나는 그녀가 이젠 자기 집 안방 깊숙한 곳에 숨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시 나타난 내게 겁을 먹었고 따라서 내가 그 빈터에서 떠날 때까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가능성이 많았다. 나의 이 판단은 옳았다. 그녀가 얼마간 겁을 먹었고 무척 당황했다는 건 곧 증거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그 증거라는 것도 그녀의 모습과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에 내가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한동안 맞은편의 유리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은 열려 있었지만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나타난다면 틀림없이 그 창에서 모습을 보여 줄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당가의 나뭇가지가 그때 흔들렸다. 나는 방금 가지가 흔들린 리기다소나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 계집애는 그 리기다소나무 뒤에 몸을 감추고 가지 사이로 얼굴만 반쯤 내밀고 이쪽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큰 새 한 마리가 숲 속에 몸을 감추고 가까이 접근한 사냥꾼의 동정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녀는 새처럼 동작이 날렵하고 촉각이 예민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감쪽같이 나무 뒤에 몸을 숨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게 자기의 모습을 발각당한 그녀는 잔뜩 긴장한 눈초리로 한참 동안 그대로 이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기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빈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던 조무래기들도 어느덧 모두 떠나고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아주 조용했다. 이따금 서늘한 바람이 언덕 위로 불어왔다. 나는 혼자 꽤 오랫동안 서 있었다.
나는 그녀가 제 방으로 들어와서 이윽고 창으로 모습을 나타낼 거라고 확신했다. 오랜만에 내 앞에 나타날 때마다 영애는 꼭 한 번씩 내 조바심을 건드리곤 했다. 일단 모습을 잠깐 보여준 뒤 그녀는 금방 다시 부엌이나 소금창고 뒤편으로 숨어 버린다.
그녀는 내가 창 앞에서 자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너무 잘 알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 앞에 갑자기 나타났을 때 그녀는 쑥스럽고 어색하고 미안한 것이다. 잠깐 나타났다가 다시 숨는 건 그런 감정의 표시였다. 그런 때는 영애는 반드시 금방 다시 나타났다. 그것은 언약을 지키듯 어김이 없었다.
리기다소나무 뒤에서 그녀가 사라진 뒤 반시간 쯤 지났을까? 이윽고 노란색의 형체가 맞은편 창 안에서 어른거렸다. 그녀는 이미 방 안으로 들어와서 창 뒤에 몸을 감추고 이쪽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섣불리 자기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연 그녀의 상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색의 블라우스가 눈이 부시도록 선명했다. 그녀의 하얀 피부, 큰 눈, 그리고 놀란 새처럼 어릿어릿해하는 그 진기한 표정이 마치 액자 속의 정물처럼 한눈에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마구 뛰었다.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구도의 정물화가 거기 있었다. 내가 염산에서 보았던 그 명료한 구도가 아주 훌륭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대담하게 상반신을 드러냈던 그녀는 곧 창문 뒤로 몸을 감췄다. 나는 다시 기다렸다. 30초쯤 지난 뒤 그녀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표정이 전과 달랐다. 그녀는 약간 화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녀는 웃을 수도 찌푸릴 수도 없는 애매하고 난처한 입장이라는 걸 표정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녀와 나, 오직 이 둘만이 존재하는 공간에 엉뚱한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는 분명 침입자였고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에는 내가 침입자일 수도 있었다.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대머리 사내가 이때 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파란 줄무늬의, 마치 환자복 같은 파자마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새까맣게 우락부락한 용모였으며 게다가 코밑에는 콧수염까지 기르고 있었다. 나는 그 대머리 중년남자가 그녀의 아빠라는 걸 금방 알았다.
그는 군인인데 계급은 대령인지 장군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나는 그 사람이 부관을 거느린 고급 장교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이 이 시간에 집에 돌아와 있을까? 그러고 보니 그날이 토요일이었다.
그 남자는 다짜고짜 딸이 서 있는 창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일단 맞은편 빈 터에 서 있는 나를 한 차례 바라보았다. 그 눈초리는 사납고 날카로왔다. 그건 귀여운 딸을 가진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나타내는 기질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나를 노려보았을 때 나는 몸이 얼어붙어 버리는 줄 알았다. 그는 나를 노려본 다음 딸에게 뭔가를 물었다.
틀림없이 저쪽에서 자기네 집 창을 향하고 서 있는 녀석에 관해 물었을 것이다. 나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 계집애가 아빠에게 사실을 고스란히 말해 버릴 가능성이 훨씬 많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런 때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쪽, 즉 밖에 있는 쪽이 절대 불리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눈앞에서, 특히 그녀가 지켜보는 앞에서 달아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계집애는 아빠에게 뭐라고 대답을 했다. 그녀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모든 걸 체념했다. 눈앞이 갑자기 캄캄했다. 기적 같은 행운에는 역시 거기 맞먹는 재앙도 따르는 것이다. 그녀의 아빠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 남자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곱게 딸의 방에서 나가 버렸다. 나는 그의 행동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한마디 불평도 없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건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 공간에 다시 우리 둘만 남게 되자 이번에는 심술장이처럼 얄미운 미소를 입가에 흘렸다. 그것은 아빠의 추궁으로부터 나를 보호했다는 자기의 선행을 내게 뽐내는 미소였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녀와 나는 우리 둘만의 언어를 갖게 되었다. 우리 둘만의 비밀, 우리만이 아는 신호, 말 없는 언약이 그 순간에 성립된 것이었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자주 그 언덕 위의 빈터에 나타났었다. 어떤 때는 거의 매일 그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거기 갈 때마다 그녀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체로 두 번에 한 번꼴로 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면 조바심 때문에 바로 다음날 나는 또 그곳을 찾아갔다.
그렇게 창 앞에 있는 그녀를 자주 보면서도 이상하게도 거리에서 나 혹은 버스 속 같은 데서는 한 번도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우리가 서로 공모해서 만나는 장소를 한 곳으로 제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신께서 우리가 다른 장소에서 만나는 걸 허용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다른 방식으로 만나기를 원한 건 아니었다. 도리어 나는 그런 기회가 있을까봐 두려웠었다. 그런 경우에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는 그런 경험조차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금호동을 떠났다. 자연히 그 장소와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몇 해 뒤에 직장에 나가면서는 나도 그 또래 남자들이 누구나 그렇듯이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연애라는 걸 몇 차례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번번이 어처구니없는 실패로 끝이 났다.
내가 어처구니없는 실패라고 말하는 건 그 당시에는 실패의 원인을 나 자신도 까마득히 몰랐기 때문이다. 실패는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되풀이되었다. 결국 나는 진짜 연애에 관해서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내가 존경하는 어떤 노인께서는 나에게 악귀가 씌어서 아직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 악귀는 전생에 나와 악연을 갖고 있는데 지금 그 화풀이를 내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실컷 화풀이를 하고 나면 내게서도 떠날 것이고 그때는 나도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