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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istorie om en Perle

작가 : K. 브리크센

소개 :
유럽에 아직 귀족 계급이 남아 있고, 신분의 차이라는 것이 적지 않게 사람들 사이의 삶의 차이를 만들어내던 시절. 돈 많은 상인의 딸이 지체 높지만 별로 경제적 여유는 없는 근위사관과 결혼한다. 분명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이었지만, 부부 두 사람의 차이는 뚜렷하다. 게다가 그 사실을 너무 뚜렷이 느끼고 고민하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그러한 사실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두 사람의 차이는 과연 신분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의 원작자이기도 한 이 여성 작가의 심리 묘사는 '주옥 같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남과 여, 신분의 차이에서 비롯한 미묘한 갈등에서 시작해 이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인간상의 차이에까지 접근해 들어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작가 소개]
카렌 브리크센(Karen Blixen, 1885-    ) : 덴마크의 여성 작가. 미국과 영국에서는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이란 필명으로 알려져 있다. 덴마크의 명문 디네센 가문 출신으로 사촌 오빠인 브리크센 남작과 결혼하여 오랫동안 아프리카에서 커피 농장을 경영하기도 했다. 당시의 경험을 묘사한 작품이 영화로도 만들어진 <아프리카의 농장>이다.


농장 경영 시절부터 갖가지 필명으로 단편이나 평론을 쓰고 있던 이 작가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커피 농장 경영이 위태로워지자 미국으로 이주, <일곱 개의 고딕 소설>(1930)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특이한 제재와 이상하리만큼 고답적인 작풍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했다. 그의 작품은 극히 적으나 현대의 가장 특이한 예술적 작가의 한 사람으로 종종 노벨상 후보에 오르곤 했다.
<진주>는 두 번째 단편집 <겨울 이야기>에 수록된 작품이다.


[목 차]
1. 결혼에 얽힌 전설
2. 세계 - 상상도 못한 높이와 심연
3. 승리 혹은 항복의 표지
4. 구둣방 주인과 시인
5. 두려워할 것이 없다
6. 있는 힘을 다해 도움을 청하리라


80년 쯤 전에 유별나게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결혼식이 있었다. 어떤 집안 좋은 근위사관이 부유한 모직물 상인의 딸과 결혼한 것이다. 그 상인의 아버지는 유틀란드에서 온 행상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이런 결혼은 예외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화제가 되었고, 그 결혼을 꼬집는 유행가까지 생겨서 퍼지기도 했다.

신부는 스무 살이었다. 검은 머리에 하얀 살결, 키가 늘씬한 처녀로 온 몸이 조각과 같은 기품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행상인 조부의 친척인 나이 많은 숙모 두 사람이 있었다. 그 할머니들은 둘 다 미혼이었다. 이 노처녀들은 집안이 부자가 되어 바쁘게 일하는 처지를 벗어나 한가하게 손님 접대나 하는 팔자였다. 두 숙모 가운데 언니가 조카딸의 약혼 소식을 듣고 곧장 찾아와 이런 옛 얘기를 들려줬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에 젊은 로센크란츠 남작이 돈 많은 금은 세공인의 딸과 약혼했지. 혹시 그런 얘기 듣지 못했니? 너희 증조모님은 이 처녀를 알고 있었지. 신랑한데는 쌍둥이 누이가 있어서 대궐의 시녀로 있었어. 그 사람이 마차를 타고 금은 세공인의 가게로 이 처녀를 보러 왔지. 신랑의 누이가 돌아가고 난 후 처녀는 애인에게 이렇게 말했대. '당신의 누이는 제가 평소에 입는 옷을 보고 흉봤어요. 그 분이 프랑스어로 말을 건네자 대답할 수도 없었구요. 아마 심술궂은 분인가 봐요.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당신은 두 번 다시 그 분과 만나서는 안돼요. 저는 참을 수 없어요'라구 말이야."

"젊은 남작은 약혼녀를 달래기 위해 두 번 다시 그 누이를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지. 그 후 얼마 지나 주일날 그는 처녀를 어머니에게 보이려고 데려갔어.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처녀는 또 이렇게 말했어. '당신 어머니는 저를 보시더니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그 분은 더 좋은 며느리감을 원하셨던 거예요. 만일 당신이 저를 사랑하시면 당신은 어머니와 헤어져야 해요.' 이렇게 처녀는 요구했단다."

"처녀에게 정신없이 반한 남작은 또 한번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했어. 어머니가 과부인데다 남작이 독자여서 몹시 가슴 아픈 일이긴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나서 남작은 심부름꾼을 시켜 처녀한테 꽃다발을 보냈어. 그러자 다음날 처녀는 애인한테 '당신 하인이 저를 보는 눈초리를 참을 수 없어요. 다음달 곧 그를 쫓아버리세요'라고 했지."

"그래서 로센크란츠 남작이 말했지.

'아가씨 저는 하인의 눈초리에 마음을 쓰는 정도의 아내는 필요 없습니다. 자, 이게 당신의 반지입니다. 그럼 영원히 안녕.'이라고 말이야."

얘기 도중에 숙모는 작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조카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숙모는 성격이 강한 여자로 일찍부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작정한, 독립적이고 양심적인 여성으로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아무 희망도 공포도 주지 못하는 그녀는 다른 가족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활발하지만 낡아빠진 도덕적 기생충에 불과했다. 정열적인 젊은 신부 엔신은 이러한 기생충의 좋은 먹이였다. 게다가 늙고 젊다는 차이는 있지만 두 여자는 기질적으로 공통점이 많았다.

처녀는 조용히 커피를 따르면서도 마음속으론 분개해서 이렇게 다짐했다.

"마아렌 숙모님에게 이 복수를 하고 말테다."

그러나, 흔히 있는 일이지만 숙모의 충고는 그녀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몇 번씩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5월 어느 맑게 개인 날, 코펜하겐의 큰 교회에서 식을 올린 후 젊은 부부는 노르웨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멀리 북쪽 하르당겔까지 갔다. 당시 분위기에서 신혼여행을 노르웨이로 가는 것은 좀 상식 이하의 일이었기 때문에 신부인 엔신의 친구들은 왜 파리로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엔신은 결혼 생활을 남편과 함께 황야에서 단 둘이서 시작하고 싶었다. 그녀는 속으로 그밖에는 아무 것도 소용이 없고, 바라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덧붙였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라고.

코펜하겐에선 신랑은 돈, 신부는 지위를 노린 결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양쪽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연애 결혼이었고, 밀월여행은 문자 그대로 목가적(牧歌的)이었다. 엔신은 사랑하지 않는 사나이와는 결단코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의 신 큐피드에게 대단한 존경심을 갖고 있어서 벌써 몇 년 전부터 매일같이 작은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빨리 와주지 않으십니까?"라고.

그러나 이제 그녀는 사랑의 신이 그녀의 기도를 오히려 복수의 심정으로 들어주었다는 것, 그녀가 읽은 책들은 사랑의 진짜 모습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최초로 정욕을 경험한 노르웨이의 풍광은 압도적인 감명을 던져줬다. 자연 풍경이 가장 아름다울 때였다. 하늘은 푸르고 벚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고, 대지는 달콤 쌉쌀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한밤중도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밝았다. 엔신은 후프 스커트에 등산 지팡이를 짚고 남편의 팔에 매달리거나 단 혼자서 험한 산길을 올라갔다.

그녀는 건강하고 다리가 가벼웠다.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면서 산꼭대기에 올라서 미칠 듯이 기뻐하고 또 기뻐했다. 그녀는 덴마크에서 자랐으며 류베크의 하숙에서 1년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대지에 대한 생각은, 발 밑에서 평평하게 혹은 파도 치면서 수평으로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산들은 모두 괴이하게 수직으로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뒷다리로 일어선, 무언가 거대한 짐승처럼… 놀기 위해서인지, 누군가 쳐부수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공기는 마치 포도주같이 그녀의 머리에 와 닿았다. 또 그녀가 눈을 보내는 곳은 어디나 치솟아 오른 바위 산에서 호수로 흘러내리는 냇물이 보였다. 냇물은 은실 혹은 우렁찬 폭포가 되어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자연 그 자체가 소리높이 흐느껴 울거나 깔깔거리며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눈에 새로웠기 때문에 그녀는 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낡은 관념이 마치 스커트나 숄처럼 사방으로 흩날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이 인상은 더 없이 깊은 놀라운 생각 -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놀라움으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신중하고 계획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자신이 손해 보는 것도, 손님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도 두려워하는 정직한 상인이었다. 때로는 이 양쪽의 위험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신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의 늙은 숙모는 세상의 뜬소문에 민감한 엄격한 도덕가였다.

집에 있을 때 엔신은 때때로 자기를 용감한 혼이라 자부하며 모험을 동경했다. 그러나 신혼여행에서 마주친 이 난폭하고 낭만적인 풍경에 엔신은 놀랐다. 그리고 자기 마음속의 사납고 무서운 힘, 자신도 알지 못했던 그 힘에 압도돼 그녀는 의지할 것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어디에서 그것을 발견해야 하는가? 그녀를 여기에 데리고 온, 그리고 지금 그녀와 같이 단 둘이 있는 그녀의 젊은 남편은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오히려 남편은 그녀의 혼란의 원인이었다. 또 그녀가 보기에 남편 역시 이 외부 세계의 위험에 놓여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까닭은, 엔신이 결혼하고 나서 곧 아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남편은 공포를 전혀 모른다기보다 아예 그것이 결여돼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책에서 영웅에 관한 얘기를 읽고는 진심으로 그들을 찬미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그녀가 읽은 책 속의 영웅 같지는 않았다. 그는 이 세상의 위험을 멸시하거나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산은 운동장이며 연애까지도 포함해 인생의 모든 것은 모두 흥겨운 놀이의 소재일 뿐이었다.

"여보, 백년도 되기 전에 모두 마찬가지 결과가 되어버리는 거야"하고 남편은 말하곤 했다.

그녀는 남편이 지금까지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는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의 인생은 모든 점에서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제야 그녀는 공포를 갖고 그 점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자기는 꿈에도 보지 못한 높이와 심연을 지닌 이 세계에서, 중력의 법칙 같은 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남자에게 맡겨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에 대한 감정은 깊은 도덕적 불만으로 이어졌다. 마치 남편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배반한 것처럼 느꼈다. 동시에 그녀는 버림받은 아이가 마찬가지로 의지할 데 없는 다른 어린애에게 느끼는 것 같은 지극히 다정한 감정을 남편에게 느끼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열정은 그녀의 성질에서 아마 가장 강력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점차 속도를 더해가서 나중에는 완전히 그녀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그녀는 공포를 배우기 위해 여행을 떠난 소년의 얘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또는 남편을 보호하고 구하기 위해서 남편에게 무서움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녀의 마음 가운데서 진행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또한 숭배하고 존경했다. 그녀는 천진난만했고 자수 성가해 재산을 모은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말할 수 있고 역사나 지리에도 정통했다. 이러한 능력 전부에 대해 그는 일종의 종교적인 존경을 바쳤다. 그는 그녀에 대해 경탄할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그녀를 알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사소한 것이었다. 결혼할 때까지 겨우 서너 번밖에 만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는 여자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고, 그녀들의 신비한 점을 오히려 매력의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 젊은 아내의 변덕이나 기분이 상하는 것 모두 이 여자야말로 자기 인생에서 필요한 존재 - 최초에 만났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지만 - 라는 신념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그녀를 친구로 맞아들이기를 바라고 자기가 지금까지 한 사람의 진실한 친구도 갖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과거의 연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듣고 싶었다 해도 그 애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점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데까지 충분히 얘기했다.

어느날 그는 바덴바덴에서 도박을 하고, 마지막 1센트까지 털어넣고는 딴 얘기를 했다. 그는 아내가 자기 곁에 앉아서 "이 사람은 확실히 도둑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훔친 물건을 받은 사람이며 즉 도둑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또 과거에 자기가 진 빚이나, 양복점 주인에게 돈을 치르지 않아 피하느라고 고생한 경험을 재미 삼아 얘기했다.

이 얘기는 엔신의 귀에는 정말 기괴하게 들렸다. 그녀에게 빚은 큰 죄였다. 때문에 남편이 거기 파묻혀 살아오면서, 행운이 돌아오면 언젠가 갚게 되겠지 하면서 유유히 살아온 것이 전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운명이 친절을 베풀어서 부잣집 딸인 자신이 적당한 때 나타나 그 양복점의 신뢰를 정당화해 준 것이라고.

그는 또 독일의 한 장교와 했던 결투를 얘기하고, 그 때의 흉터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 사방이 다 보이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남편의 품에 안겨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신이여, 만일 가능하다면 아무쪼록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시옵소서"하고.

엔신이 남편에게 공포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했을 때 그녀는 마아렌 숙모의 얘기를 생각해냈다. 하지만 결코 도움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스스로 맹세했다. 자기와 남편의 관계가 그녀에게는 존재의 중심 요소였던 것이다. 때문에 그녀가 먼저 자기를 잃어버릴 가능성을 가지고 상대를 위협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천진한 처녀였기 때문에 단순한 수단밖에는 몰랐다.

그 때부터 그녀는 등산을 할 때 남편보다 모험적으로 나섰다. 낭떠러지 앞 파라솔에 기대어 골짜기의 깊이를 남편에게 묻기도 하고, 격류 위에 높이 걸려있는 구름다리를 건너가며 남편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천둥과 비가 쏟아지는 호수에서 보트를 저어가기도 했다. 밤이 되면 낮 동안의 모험이 꿈에 되살아나 소리지르며 잠에서 깨기 때문에 남편은 꼭 껴안고 아내를 달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모험은 소용이 없었다. 남편은 수줍은 처녀가 왈큐리(오딘 신을 섬기는 여전사)로 변한 것에 놀라고 또 매혹됐다. 그는 그것을 결혼생활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고 적잖이 자랑스러워 했다. 그녀 자신도, 결국 남편을 정복하겠다는 결심보다도, 그의 자랑과 칭찬 때문에 이런 비상한 재주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보곤 했다.

알렉산더는 가끔 낚시를 하러 나갔다. 그것은 엔신에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럴 때 젊은 신부는 혼자 산속을 헤매곤 했다. 한두 번은 이렇게 방랑하는 동안에 아버지 생각을 하고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염려를 생각하며 눈물지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것은 곧 떨쳐버렸다. 그녀는 혼자이며, 아버지가 조금도 알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느날 그녀가 돌 위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양치기 소년들이 다가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들을 불러서 과자를 주었다. 엔신은 인형을 좋아했다. 그리고 당시의 얌전한 소녀들처럼 자기의 어린애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갑자기 꺼림칙해졌다. "나는 결코 어린애를 갖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남편에 대해서 나를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 우리들은 결코 애를 단 하나도 낳지 않을 것이다." 이 생각이 너무나 그녀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어 그녀는 일어나서 그 자리를 떠났다.

고독하게 방랑하면서 그녀는 자기를 사랑했던, 아버지 상점의 젊은 점원을 생각해냈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알아왔던 피터 스콥은 훌륭한 일꾼이었다. 그녀는 이제 생각해냈다. 그녀가 홍역에 걸렸을 때 그가 머리맡에 앉아서 매일 책을 읽어주던 것과, 스케이트를 타러 갔을 때 그녀를 따라와서 혹시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까, 또는 얼음이 꺼져서 빠지지나 않을까 하면서 그가 얼마나 애태웠던 것일까.

지금 그녀가 서 있는 곳에서는 멀리 남편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였다. "그렇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다. 코펜하겐으로 돌아가면 아직 우리에게 명예가 남아있을 동안에 저 피터 스콥을 애인으로 삼자."

결혼식 날 알렉산더는 신부에게 진주 목걸이를 선물했다. 그것은 옛날에 독일에서 온 그의 할머니의 것으로, 미래의 손자 신부를 위해 보관해왔던 것이다. 알렉산더는 신부에게 여러 가지로 할머니 얘기를 하고, 그녀가 이 할머니를 닮았기 때문에 자기가 그녀를 사랑한 것이라고, 이 진주 목걸이를 매일 목에 걸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진주 목걸이를 가진 적이 없었던 엔신은 이것을 대단히 소중하게 취급했다. 요즘 자주 의지할 데가 필요해지면서 그녀는 이 끈을 입으로 물어 당기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하면 목걸이가 끊어져"라고 어느날 알렉산더가 말했다. 그녀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남편이 불행을 예고한 최초의 장면이었다.

"이 사람은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 남자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죽어야만 하나?"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 때부터 그녀는 곧잘 이 노부인을 생각하곤 했다. 그녀도 자기의 환경을 떠나 남편의 가족이나 친구들의 이방인이 된 것이었다. 자기는 현재 알렉산더 할머니의 이 목걸이를 갖고, 이것에 의해서 자손들의 기억에 남게 되는가.

이 진주는 도대체 승리의 표지인가, 아니면 항복의 표지인가… 그녀는 의심했다. 그래서 엔신은 이 조모를 가족 가운데 첫째 친구로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손녀로서 이 사람을 방문하고 자기의 고민에 대해 의논하려고 생각했다.

밀월의 마지막이 가까워졌지만 싸움 상대방의 한쪽만 알고 있는 이 기묘한 전쟁은 결말이 나지 않았다. 두 젊은이는 모두 돌아가는 것이 슬펐다. 이제 와서야 겨우 엔신은 주변 경치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알게 됐다. 그녀는 그것을 결국 자신의 동맹자로 만든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 이 고지에서는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위험이 언제나 목전에 놓여있다.

코펜하겐에서는 인생이 극히 안전해 보이지만, 그것은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거기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아담한 집에 대해 생각했다. 레이스 달린 커텐, 샹데리아, 보를 씌운 식탁. 그곳에서 하는 생활이 어떤 것일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귀항하기 하루 전날, 그들은 연안 부두까지 마차로 여섯 시간쯤 걸리는 어떤 작은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침식사 전에 외출했다. 돌아와서 엔신이 모자를 벗었을 때 목걸이의 끈이 그녀의 팔찌에 걸려 끊어지며 진주가 마룻바닥에 쫙 흩어졌다. 마치 그녀가 와락 울음을 터뜨린 것처럼 알렉산더는 네 발로 바닥을 기면서 한 알 한 알 주워 가지고 아내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달콤한 공포 속에 앉아 있었다. 이 세상에서 깨뜨리기 두려웠던 한 가지를 깨뜨리고 만 것이다. 이것은 무슨 징조일까? "몇 알 있었는지, 당신 아세요?"하고 그녀는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은 마룻바닥 위에서 대답했다. "그래, 할아버지는 금혼식에서 이것을 할머니에게 주셨어. 50년, 한 해마다 한 알씩. 그러나 이후 할머니 생신 때마다 하나씩 보탰지. 그러니까 52개야. 트럼프 카드 장수와 같으니까 외우기 쉬워."

이윽고 그들은 전부 주워서 비단 손수건에 쌌다.

"이제 코펜하겐에 갈 때까지 걸지 못하겠군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때 여관 주인 아주머니가 커피를 갖고 왔다. 그녀는 이 재난을 보고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마을의 구둣방 주인이 목걸이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2년 전에도 영국의 귀족 부부가 수행원을 데리고 산에 왔을 때 젊은 부인이 진주 목걸이를 끊어뜨렸고, 그 구둣방 주인이 보기 좋게 수리해서 부인을 만족시켰다.

구둣방 주인은 매우 가난하고, 게다가 앉은뱅이였지만 성실한 노인이라고 한다. 젊을 때 눈보라로 길을 잃고 이틀 뒤에야 겨우 구조됐지만 양쪽 다리를 잘라야 했다. 엔신이 진주를 구둣방에 가지고 가겠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남편이 짐을 꾸리는 동안 혼자 길을 내려가 구둣방 주인을 작고 어두운 일자리에서 찾아냈다. 그는 오랜 고생으로 수척해진 얼굴에 수줍은 웃음을 띤,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키가 작은 노인이었다. 그녀는 진주를 한 알씩 세어 정중하게 그의 손에 맡겼다. 그는 그것을 내일 정오까지 고쳐놓겠다고 약속했다. 얘기가 끝난 뒤에도 그녀는 무릎에 손을 얹은 채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기 위해서. 그녀는 진주 목걸이를 끊어뜨린 영국 부인의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노인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방을 둘러보았다. 가난하고 초라한 방이어서 벽에는 한 두 장의 종교화를 압정으로 붙여놓았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여기 있으면서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운명에 의해서 무섭게 시련을 겪은 성실한 인간이 이 작은 방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하며, 매일의 빵을 위해 걱정하면서, 끈기 있게 고난을 견디어온 장소였다.

그녀는 아직 학교의 교과서를 손에서 놓은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심해어에 대해서 읽은 것을 생각해냈다 - 그들은 몇 천 미터 깊이 물의 무게를 견디어온 까닭에 만일 수면에 나오면 파열해 버리고 만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생활의 중압 밑에서 안정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심해어가 아닌가 의심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가족도 모두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만일 자기가 이 폭포에서 뛰고 있는 연어 혹은 날치와 같은 사내와 결혼했다고 한다면 이 심해어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녀는 나이 먹은 구둣방 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자기 앞으로 검은 모자에 검은색 웃옷을 입은, 키가 작고 건장한 사내가 바쁜 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 사내를 전에도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집에 묵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길가에는 벤치가 하나 있어서 거기서 멋진 전망을 볼 수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거기 앉고, 산에서 마지막 날을 보낼 엔신도 다른 한쪽에 앉았다. 사내는 그녀를 향해 잠깐 모자를 들었다. 그녀는 사내가 중년 정도 나이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30을 많이 넘긴 것 같지는 않았다. 정력적인 얼굴과 맑고 투명한, 쏘는듯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잠깐 있다가, 그는 미소를 띄면서 그녀에게 얘기를 걸었다.

"당신은 구둣방에서 나오셨지요. 산에서 구두를 잃으셨나요?"

"아뇨, 진주를 좀 가지고 갔어요"라고 엔신은 말했다.
"진주를 가지고 가셨다구요?"

낯선 사내는 유머러스하게 말했다. "저는 또, 그것을 바로 그 사람 집에 모으러 가는 길입니다."

그녀는 상대방이 머리가 좀 돌지 않았나 생각했다.

"저 노인은 저 집에 우리 민족의 보배를 많이 모아두고 있지요. 말하자면 진주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을 저는 모으고 있지요. 옛날 얘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노르웨이에서 저 구둣방 주인만큼 많이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옛날 저 사내는 공부를 하고, 시인이 될 꿈을 꾸고 있었지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나 운명에 짓밟혀서 구두 직공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거지요."

잠깐 침묵을 지킨 뒤에 그는 또다시 말을 이어갔다.

"당신 부부는 덴마크에서 신혼 여행을 오셨다구요. 희귀한 일이군요. 이곳 산들은 높고 위험하거든요. 여기로 오시려고 생각한 분은 두 분 가운데 어느편입니까? 당신입니까?"

"그래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가 높이 날아오르는 작은 새인 것같이, 그리고 나는 그를 싣고 가는 미풍인 것 같이' 이런 시 구절을 아세요? 무엇인가를 당신에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글쎄요." 그녀는 약간 당황해서 대답했다.

"저 푸른 산!" 이렇게 말하고 산책 지팡이에 손을 얹고 그는 말없이 고쳐 앉았다.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그는 계속했다.

"산꼭대기라! 뭘, 우리 두 사람은 구둣방 주인이 유명한 시인이 되는 꿈을 버려야 했던 불운에 동정하지만, 실제론 그 사람이 운수대통한 건지도 모르지요. 위대한 시인, 대중의 박수갈채! 정말이에요. 젊은 부인, 자식들을 가만 두는 게 좋아요. 구둣방 간판이나 구두창을 붙이는 귀한 지식이라 해도 적당한 값으로 팔기는 어렵죠. 원가로 흥정이 되면 그건 성공한 셈이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인?"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상대는 얼음같이 푸른 두 눈으로 그녀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정말, 이 아름다운 여름날에, 그게 당신의 충고인가요. 행상인이여, 너의 짐 곁에 머물러 있으라, 이건가요. 이 세상의 병든 인간이나 가축을 위해서, 환약이나 물약을 만들어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킥킥 웃었다.

"이건 제법 괜찮은 재담인데. 백년 내에 책으로 될 거예요. 덴마크에서 온 조그마한 부인이, 그에게 짐 곁에 서 있으라고 충고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그 말에 복종하지 않았다, 이렇게요. 저는 갑니다. 부인, 안녕!" 이렇게 말하고 그는 일어서서 가 버렸다. 그 검은 모습이 산 사이로 점점 작아지는 것을 그녀는 지켜봤다.

여관 아주머니가 나타나서, 구둣방 주인을 찾았느냐고 물었다. 엔신은 낯선 사람의 뒷모습을 눈으로 전송하면서 물어보았다. "저 분은 누구예요?"

아주머니는 눈 위에 손을 갖다대고 말했다. "어머, 정말 저 분은 학자이고 훌륭한 분이예요. 이곳에 옛날 얘기와 민요를 수집하러 오신 거예요. 옛날엔 약제사였대요. 그러나 베르겐에서는 극장을 갖고 있고, 연극 각본도 썼대요. 이름은 입센이라고 해요."

아침이 되자, 선창에서 전갈이 왔다. 배가 예정보다도 빨리 올 테니까, 빨리 떠나야 한다고. 아주머니는 작은 아들을 구둣방에 보내서 엔신의 진주를 찾아오게 했다. 나그네들이 마차에 올라탈 무렵 아들이 그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책에서 찢어낸 한 장의 종이에다 싸고, 초를 칠한 실로 동여맨 그것을 풀어 진주의 수를 세어보려다 엔신은 갑자기 중지하고 그대로 목에 걸었다.

"세어보지 않아도 돼?" 알렉산더가 물었다. 그녀는 힐끔 남편을 보고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도중에서는 쭉 말이 없었다. 남편의 말이 귓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세어보지 않아도 돼?"

그녀는 남편 곁에 승리자로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제 승리자가 어떤 기분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렉산더와 엔신이 코펜하겐에 돌아온 것은, 사람들이 대개 마을을 떠나버린 뒤라 큰 사교 행사가 없을 때였다. 그러나 젊은 장교의 친구 부인들이 여러 번 그녀를 방문하기도 하고, 또 함께 여름 저녁 나절 다과회에 가기도 했다. 엔신은 여러 사람들에게 대단히 존경을 받았다.

그녀의 집은 마을의 낡은 운하 가까이 있어서 트르와르센 박물관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때로 그녀는 창가에 서서 배를 바라보며 하르당겔에 대해 생각했다. 이때까지 쭉 그녀는 한 번도 목걸이를 벗어 진주를 세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진주가 한 개는 없어졌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목에서 느끼는 무게가 전과는 달라진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남편에 대한 승리를 위해서 희생한 것이라면, 그게 어떻단 말인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의 금혼식이 오기 전 결혼 생활의 1년 2년? 이 금혼식이 아득하게 먼 것으로 생각됐지만 그러나 그 1년 1년은 귀중한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 하나 하나를 보탰던 것일까?

여름의 마지막 달이 되자, 사람들은 전쟁의 가능성을 놓고 떠들기 시작했다. 슐레스피-홀스타인 문제가 긴박해진 것이다. 덴마크 왕은 3월에 선언을 발표, 슐레스피에 대한 독일의 요구를 일절 거부했다. 현재 7월의 각서는 연방제 실행의 조건으로 이 선언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었다.

엔신은 열렬한 애국자로서, 인민에게 자유헌법을 준 국왕에게 충성스러웠다. 이 소문은 그녀를 극도의 흥분에 빠지게 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알렉산더의 친구인 젊은 장교들이 국가의 위기를 말하는 태도는 가볍고, 자신만만하고, 경솔하다고. 진정으로 이 위기를 말하고 싶으면 그녀는 친정집 사람들에게 가야 했다. 남편과는 전혀 얘기할 수 없었지만 남편이 덴마크의 불패와 자기의 불사(不死)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신문을 구석에서 구석까지 샅샅이 읽었다. 하루는 <베링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지금은 국민에게 중대한 시기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의 정의를 믿고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킨 것은 이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한 말이었다. 그녀는 창가 의자에 앉아 목걸이를 벗어 무릎에 놓았다. 한순간 기도라도 하는 듯 그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있다가 그것을 세기 시작했다. 끈에는 53개의 진주가 있었다. 자기의 눈을 믿을 수 없어서 또 한 번 세어 보았지만 틀림없이 53개가 있었다. 한 가운데 한 개는 제일 컸다.

엔신은 눈이 핑 도는 것 같아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악마의 존재를 믿고 있었지만, 이 순간에는 그 딸도 마찬가지였다. 소파의 그늘에서 커다란 웃음소리를 들었다고 해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우주의 여러 힘을 합해서 이제 가엾은 딸을 희생물로 하는 것인가 하고 그녀는 의심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녀는 생각해냈다. 이 목걸이를 받기 전에 남편의 친척인 늙은 세공사가 이 쇠줄을 수리했던 것을. 그러면 그 노인은 원래 진주의 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녀에게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 놀랐기 때문에 혼자 노인을 찾아갈 용기가 없었다. 2,3일 후 찾아온 피터 스콥에게 부탁, 겨우 목걸이를 가져가게 했다.

피터는 돌아와서 얘기했다. 늙은 금은 세공사는 안경을 쓰고 진주를 살펴보더니 놀래서 소리쳤다고. 그 전에 보았을 때보다 한 개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요, 알렉산더가 제게 하나 더 준 거예요." 자신의 거짓말을 대단히 부끄러워하며 엔신은 설명했다. 장교와 결혼한 신부에게 훌륭한 선물을 하는 것은 흔해빠진 선심이라고. 그러나 피터는 노인의 말을 그대로 그녀에게 되풀이해서 전했다. "당신의 남편은 대단한 진주 감정가이군요. 저는 주저하지 않고 말하지만, 이 한 알의 진주는 나머지 전부를 합한 것만큼 값이 있는 거예요."

엔신은 놀라면서도 미소를 띄고 피터에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는 슬픈 듯이 그곳을 떠났다. 자기가 그녀를 난처하게 했거나, 또는 놀라게 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얼마 동안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9월이 되자 코펜하겐에는 무덥고 우울한 날이 계속되어 그녀는 창백해지고, 제대로 잠자지 못했다. 아버지와 두 숙모는 놀라서 교외의 스트랜베이에 있는 아버지 별장에 그녀를 머무르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집과 남편을 모른 척 버려두고 싶지는 않았다. 또 저 진주의 비밀을 모두 알아내지 않고는 자기가 회복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1주일 후 그녀는 결심을 하고 옷다의 그 구둣방에 편지를 쓰기로 했다. 입센 씨가 얘기한 것 같이 만일 저 노인이 한 번이라도 학교 공부를 하고, 시인이 되려고 했다면 반드시 편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고 틀림없이 답장도 보내줄 것이다. 현재 그녀에게는 이 세상에 저 앉은뱅이 노인 외에는 다른 친구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차라리 저 구둣방의 뻥 뚫린 벽과 세발 의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밤이 되면, 거기 가 있는 꿈을 꾸었다. 노인은 친절하게 그녀에게 미소를 보내며, 잔뜩 옛 얘기를 해주었다. 저 노인이라면 그녀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가 벌써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순간 몸을 떨었다. 그 때는 영원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몇 주일 동안 전쟁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과 프레데릭 왕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사태가 되자, 전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도, 이 늙은 상인은 딸을 장교에게 시집 보낸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와 두 사람의 숙모는 알렉산더와 엔신에게 대단한 경의를 보였다.

어느날 절반은 본의가 아니었지만 엔신은 남편에게 솔직하게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즉석에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암, 일어나지. 피할 수는 없는 거야." 이렇게 말하고 그는 휘파람으로 군가의 한 구절을 부르다 아내의 안색을 보고 당황해서 뚝 그치고는 물었다.

"두렵소?"

그녀는 전쟁에 대한 자기의 감정을 남편에게 설명하는 데 절망했을 뿐 아니라 실례를 했다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거요?" 남편은 다시 물었다. 그녀는 얼굴을 돌렸다.

"영웅의 미망인이 되는 것은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역할일 거야." 그는 말했다. 그녀의 눈은 노여움 못지않은 슬픔의 눈물이 넘쳐났다. 알렉산더는 가까이 다가와 아내의 손을 잡았다. "나는 죽더라도, 당신이 허락해줄 때마다 키스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스스로 위로할 거요." 이렇게 말하고 또 한 번 키스하고는 덧붙여 말했다. "그것은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겠지?"

엔신은 착실한 처녀였기 때문에 질문을 받으면 성실하게 대답하려고 애썼다. 지금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도 위로가 될 것인가? 그러나 그녀는 마음속에서 그 대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일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구둣방 일은 거의 잊어버렸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그녀는 아침 식사 테이블에서 편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가끔 오는, 동정을 청해오는 편지라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남편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식사도 하지 않고 일어나 자신의 작은 방으로 가서 난로 곁에 앉아 봉투를 뜯었다. 정성 들여 쓴 서체는 마치 초상화라도 보내온 것처럼 뚜렷이 노인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편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운 덴마크의 젊은 부인이여, 그렇습니다. 제가 그 목걸이에 진주를 하나 더 넣었습니다. 잠깐 당신을 놀라게 하고 싶어서요. 우선 당신은 그것을 우리집에 가지고 오셨을 때, 제가 하나쯤 훔칠 것이라고 염려하고, 대단히 걱정하고 있더군요. 노인 역시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좀 오락이 없어서는 곤란하죠. 만일 당신을 놀라게 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그 진주는 2년 전 영국 귀부인의 목걸이를 수리했을 때 제 소유가 된 것입니다. 한 개를 끼워넣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중에야 알아차렸습니다. 2년 동안 제가 갖고 있었지만 제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젊은 숙녀한테 있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당신은 가게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대단히 젊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행운을 빌고 당신이 이 편지를 받는 날 무언가 즐거운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 진주는 주 하나님을 믿는 맑은 마음과 멀리 이 옷다의 노인이 보내는 우정과 함께 길이길이 달고 다니세요. 안녕.

당신의 친구 페터 뷔켄으로부터.'

엔신은 맨틀피스 위에 팔꿈치를 얹고 편지를 읽었다. 눈을 들어보니 그 위 거울에 심각한 눈초리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부딪혔다. 그 눈이 엄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진짜 도둑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해도 훔친 물건을 받은 자로서, 도둑과 다름이 없다"라고. 그녀는 꼼짝 못하고 그곳에 오랫동안 서 있었지만 최후에 이렇게 생각했다.

'만사는 끝났다. 이제야 알았다. 나는 조심도 두려움도 모르는 이러한 사람들을 결코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성서에 씌어있는 그대로인 것이다 - 우리는 그들의 발뒤꿈치를 물지만 그들은 우리의 머리를 칠 것이다. 그러니 알렉산더는 저 영국 부인과 결혼했어야 했다.'

그녀 자신도 몹시 놀란 사실에 그녀는 전혀 태평이었다. 알렉산더 그 사람도 인생의 배경 중 하나, 그림 속 대단히 작은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든 조금도 상관이 없었다. 자기가 조롱거리가 된 것도 상관이 없었다.

'백년이 되기도 전에, 모두 마찬가지 결과가 되어버리는 거야'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그때는 전쟁에 대해 생각하려고 했지만, 전쟁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마치 자기 주위에서 방이 꺼져 들어가는 것 같은 이상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돌고 도는 세월 속에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은 남지 않았는가?' 그녀는 이런 시 구절을 생각해냈다. 돌고 도는 세월이라는 말에서, 거울 속 눈은 크게 떠졌다. 두 사람의 젊은 여자는 가만히 서로 건너다 보았다.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인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 지금 세계로 들어와, 백년이 지나도 남게 될 거라고. 진주다.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백년 뒤 한 사람의 젊은 사내가 그것을 자기의 아내에게 주면서 마치 알렉산더가 이것을 그녀에게 주면서 할머니의 얘기를 한 것 같이 이 진주와 그 자신의 인연을 그 젊은 부인에게 얘기하는 것을.

백년 후의 젊은 두 사람을 생각한 것이 몹시 그녀를 감동시켰다. 그녀는 눈물이 가득해져서 마치 그들이 다시 한 번 발견한 그녀의 옛 친구이기나 한 것처럼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도움을 청하지 말라고? 왜?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부르겠어. 왜 나는 부르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생각할 수 없어.'

건너방 창가에서 작은 그림자를 던지며 서 있던 알렉산더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 숙모님이 커다란 꽃다발을 갖고 오셔!"

엔신은 천천히 거울에서 눈을 떼면서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녀는 창가로 갔다.

"정말, 저분들 베라비스타에서 오셨을 거예요." 그것은 아버지 별장의 이름이었다. 남편과 아내는 각자 다른 창문에서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