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bermory
사 키
[소 개]
따분한 어느 늦여름의 하루. 인간처럼 말을 하는 고양이 토버모리가 나타난다. 고양이에게 말을 가르친 인물은 이것이 엄청난 업적이라고 자부하지만, 그 결과는 거의 '공황'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세련된 사교계의 매너 한 꺼풀 아래 깔린 인간들의 추악함이 토버모리의 입을 통해 남김없이 까발려지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인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 그 고양이를 죽여 없애는 일일 것이다.
[작가 소개]
사키(Saki, 1870-1916) : 본명은 헥터 휴 먼로(Hector Hugh Munro). 버마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했다. 필명 '사키'는 오마 카얌의 4행시인 <루바이야트>에서 따온 것으로 술좌석에서 시중을 드는 미소년이란 의미이다. 사키는 소년 시절 영국에서 엄격한 두 사람의 백모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이것이 유머 감각과 동물에 대한 애정 등과 함께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토버모리>는 1911년 발행된 단편집 <크로비스 이야기>에 수록된 것이다.
팔월도 거의 다 간, 비 개인 쓸쓸한 오후에 생긴 일이었다. 아직 사냥 시즌이 시작되지 않아 샤고와 같은 새는 냉장고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냥할 짐승도 마땅치 않은 허전한 계절이었다. 물론 브리스톨 채널의 남부까지 가면 합법적으로 살찐 사슴을 쫓을 수야 있지만. 이날 오후 브렘리 부인의 파티에는 구태여 브리스톨 채널의 남부까지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 손님들이 모여 티 테이블 주위에서 북적대고 있었다.
단조로운 모임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허전한 계절 탓인지, 이 자리에 모인 손님들은 깜짝 놀랄만한 피아노 연주나, 오션 브리지(트럼프 게임의 일종)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기색도 없었다. 이날 좌중의 관심은 코넬리어스 아핀이라는, 겉으로는 별로 대단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인물에게 쏠리고 있었다. 브렘리 부인 댁에 찾아오는 손님들 가운데서도 아핀은 그다지 평판이 분명치 않은 사나이였다.
브렘리 부인은 누군가 아는 사람에게서 아핀이 재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재치'를 조금만이라도 보여준다면 그래도 다른 손님들에게 그를 초대한 명분은 서리라는 것이 브렘리 부인의 기대였다. 그래서 이날 파티에 아핀을 초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차를 마시는 시간이 될 때까지도 이 사람의 재치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기지가 있는 사람도 아니며 크리켓의 고수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최면술이나 자그마한 연극을 연출해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겉 모습을 보아도 역시 여자들이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할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뭔가 정신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든지 해서 관심을 끄는 그런 부류의 남자 말이다. 그는 그저 아핀 씨일 뿐이었다. 코넬리어스란 이름 역시 극히 평범한 세례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그는 화약, 인쇄기, 증기기관의 발명을 무색케 할 엄청난 발견을 자기가 해냈다고 말하고 있었다. 요 수십 년 간 과학은 다방면에 걸쳐서 경탄할 만한 진보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발견이란 과학적인 업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윌프레드 경이 말했다. "당신은 정말 동물에게 인간의 말을 가르치는 방법을 발견했다는 건가요? 그래서 저 토버모리가, 당신의 제자 가운데 첫번째 성공 사례라는 얘기를 우리더러 믿으라는 얘깁니까?"
"저는 지금까지 17년간 이 문제를 붙잡고 씨름해 왔습니다." 아핀 씨가 말했다. "그런데 요 8,9개월 동안 아직 분명하진 않지만 겨우 성공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많은 동물을 실험해 봤습니다만, 최근엔 고양이에게만 실험을 집중하고 있었죠. 고도로 발달한 야성 그대로의 본능을 잃지 않으면서도 신기하게 인간 문명과 잘 동화된 저 탁월한 동물 말입니다. 어디서나 고양이 종족은 매우 뛰어난 지성을 보여 줍니다.
일주일 전에 토버모리에게 가까이 했을 때, 저는 즉각 보통 고양이 종류에게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비범한 지성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아마 지능이 좀 부족한 인간의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의 실험에서 저는 이미 상당한 진척을 보았습니다. 성공이 눈앞에 보였던 거죠. 그러다가 드디어 여기 토버모리에 의해서 마침내 완성을 본 것입니다."
아핀 씨는 이 놀라운 선언을 의식적으로, 자랑하지 않으려는 듯한 어조로 끝을 맺었다. 아무도 '쥐'라는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크로비스의 입술은, 분명 그 설치류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미스 레스카가 말했다. "토버모리가 간단한 이야기를 말하거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가르쳤단 말씀입니까?"
"미스 레스카..." 기적을 이룬 이 인물은 별로 비위가 상하지도 않은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린 아이들이나 미개인이나 지능이 저급한 어른일 경우 말씀하신 것 같은 방법으로 조금씩 조금씩 가르칩니다. 그러나 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토버모리 같은 동물을 상대할 때에는, 일단 초보적인 문제만 해결하면 말이죠... 그런 불편한 방법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토버모리는 우리 인간의 말을 완전히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크로스비가 똑똑히 "쥐 이상으로" 라고 말했다. 윌프레드 경은 크로비스 만큼 노골적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회의적이었다. "한 번 그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우리들이 직접 판단하는 것이 어떨까요?" 브렘리 부인이 제안했다.
윌프레드 경이 토버모리를 찾으러 갔다. 모두들 다른 것보다 좀더 교묘한, 살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화술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람들은 찜찜한 기분으로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마침내 윌프레드 경이 돌아왔다. 햇빛에 그을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눈은 놀라서 휘둥그레졌다.
"정말인데요!"
그 당황한 태도에는 꾸민듯한 모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다들 갑자기 흥미가 생겨서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윌프레드 경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다듬고 말을 계속했다. "가보니까, 토버모리가 끽연실에 자빠져 뒹굴고 있더군요. 그래서 차를 마시러 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토버모리는 언제나와 다름없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더군요. '자, 오너라 토비. 다들 기다리고 있단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시겠어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가고 싶을 때 가겠다고 그러더군요. 저는 완전히 놀래버렸습니다."
아핀의 이야기에 절대 회의적이었던 사람들도 윌프레드 경의 이야기에는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윌프레드 경의 말 아닌가! 경악의 부르짖음이 바벨탑과 같은 합창이 되어 나타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핀 씨는 묵묵히, 그러나 자기가 이룬 엄청난 발견이 불러온 최초의 효과를 기뻐하고 있었다.
다들 법석을 떨고 있는 순간 토버모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일부러 의식적으로 꾸민 듯한 무관심한 태도로 티테이블을 둘러싼 손님들을 향해 걸어왔다.
질식할 듯한, 거북스러운 침묵이 흘렀다. 사람의 말을 아는 고양이와 일상적인 말투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어쩐지 서먹했기 때문이다.
"밀크를 마시겠니? 토버모리." 브렘리 부인이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마셔볼까요?" 침착하고 무관심한 목소리가 토버모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일순간 일동의 마음은 긴장과 흥분으로 오싹해졌다. 브렘리 부인의 손이 떨려 밀크를 엎지른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밀크를 엎질러서 어떡하니?" 그녀가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어떻게 되건 그건 제 양탄자는 아니니까요." 토버모리가 대답했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미스 레스카가 쌀쌀한 말투로 사람의 말을 배우는 것이 어렵더냐고 물었다. 토버모리는 잠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지만 이내 태연히 시선을 돌려 딴 곳을 보았다. 그 따위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태도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지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지?" 메이비스 페린튼이 섣부른 질문을 했다.
"특히 누구의 지능에 대해서 묻는 겁니까?" 토버모리가 냉정하게 반문했다.
"글쎄, 말하자면 나는 어떤가?" 메이비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말하기 곤란하군요." 토버모리가 말했다. 그러나 그 말투라든가 태도에는 곤란한 기색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늘 파티에 당신을 초대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윌프레드 경은 친구들 중에서 당신처럼 머리가 나쁜 여자는 없다면서, 손님을 초대한다고 하지만 머리가 나쁜 여자의 말 상대가 되어준다는 것은 지나친 고역이라고 항의했지요.
그러자 브렘리 부인이 얘기하더군요. 사고 능력이 없으니까 더욱 당신을 초대해야 한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자기들의 낡은 마차를 돈 주고 살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당신 밖엔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알고 계시죠? 뒤에서 밀기만 하면 언덕길이라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시지프스의 희망'이라고 부르는 그 마차 말이에요."
브렘리 부인은 항의했다. 그러나 그날 아침 브렘리 부인은 메이비스에게 그 마차가 메이비스에겐 아주 적합한 차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그런 얘기만 하지 않았더라도 브렘리 부인의 그 항의는 좀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바필드 대령이 거북한 말투로 화제를 바꾸었다.
"외양간 얼룩 고양이와는 그 뒤 어떻게 되어 가지, 응?"
그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모두들 그 질문이 엄청난 실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건 보통 사람들 앞에서는 할만한 말이 못됩니다." 토버모리가 냉정하게 대답했다. "이 댁에 오신 후 당신의 행동을 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여기서 제가 화제를 당신의 정사 얘기로 옮긴다면 당신도 좀 난처할 것 같은데요?"
낭패는 대령 한 사람에게만 그치지 않고 계속 피해 범위를 넓혀갔다.
"네 저녁식사가 준비되었는지 가 보지 그러니?" 브렘리 부인은 토버모리의 저녁 식사 시간이 아직 적어도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척하고 황급히 말했다.
"고맙습니다." 토버모리가 말했다. "차 밖에는 아직 얻어먹은 것이 없으니까요. 소화불량으로 죽고 싶지는 않군요."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라고 하지 않은가." 윌프레드 경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토버모리가 대꾸했다. "하지만 그래도 쓸개는 하나밖에 없어서요."
"아들레이드." 미세스 코네트가 말했다. "이 고양이가 하녀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우리들의 소문을 퍼뜨리도록 지금 부추기는 건가요?"
두려움이 벌써 실내를 뒤덮고 있었다. 이 저택의 침실에는 대부분 창밖에, 폭이 좁은 장식용 난간이 있었다. 토버모리가 자주 그 난간을 지나다녔다는 사실이, 모두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다. 그들은 당황했다. 그곳에서 토버모리는 그저 비둘기만 지켜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밖에 다른 무엇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토버모리가 계속 지금과 같은 숨김 없는 말투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면 그 결과는 그저 불유쾌한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틈만 있으면 화장대에 붙어서 늘 화장을 하지만 실상은 유목민 같은 살색이라고 소문이 난 미세스 코네트도 대령과 마찬가지로 불안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를 쓰며 빈틈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미스 스크모엔도 초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단정하고 고결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서 개인 생활을 세상에 알리고 싶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17살 무렵부터 온갖 바람이란 바람은 다 피우고 오래 전부터 그 바람 피우는 일을 중단하려는 노력조차 단념해버린 바티 반 타안은 얼굴이 약간 누르퉁퉁하게 혈기가 사라졌지만, 오드 핀스베리처럼 방을 뛰어나가거나 하는 과오는 저지르지 않았다.
오드 핀스베리는 현재 목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청년으로, 남의 추문을 들으면 결코 그 자리에 남아 잠자코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크로비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방관자다운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토버모리의 입을 막기 위해 뭔가 주변에서 보기 드문 먹음직한 쥐를, 대리점을 통해서 손에 넣으려면 시간이 얼마 정도 걸릴 것인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이 미묘한 입장에 처해도 아그네스 레스카는 언제까지나 뒤로 물러서서 참고 있지는 못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여길 또 왔을까." 그녀는 신파조로 말했다.
토버모리는 결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저께 크리켓 경기장에서 당신이 미세스 코네트와 주고받은 말로 보건대, 그건 음식 때문이었겠죠. 당신 말에 의하면 브렘리 일가는 따분한 사람들 뿐이어서 자고 가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면서요? 그래도 1류 요리사를 둘만한 머리는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손님도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나는 다만 미세스 코네트에게..." 당황한 아그네스가 부르짖었다.
"미세스 코네트는 당신이 한 그 얘기를 나중에 바티 반 타안에게 전했지요." 토버모리가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그러더군요. '그 여자는 마치 굶은 개 같아. 하루에 네 번 한 사발씩 먹여주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는 걸요'라구요. 그러자 바티 반 타안이 하는 말이..."
다행히도 폭로는 여기서 그쳤다. 커다란 누런 수코양이가 목사관에서 빠져나와 관목 숲을 지나 외양간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토버모리가 흘낏 발견한 것이다. 토버모리는 열려 있는 프랑스식 창문을 통해 나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너무나 성적이 좋은 제자가 자취를 감추자 코넬리어스 아핀은 과격한 비난, 걱정스러운 질문, 두려움에 찬 탄원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 책임이 그에게 있기 때문에 이 이상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그가 나서서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은 토버모리가 그 위험천만한 능력을 다른 고양이에게도 전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알고 싶어했다.
아핀 씨는 거기에 대해, 토버모리가 사이가 가까운 외양간의 암코양이에게 그 능력을 전달해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그 범위가 더 넓어지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미세스 코네트가 말했다. "아들레이드, 당신은 그 고양이 토버모리를 무척 귀여워하시겠지만... 토버모리도, 그 외양간의 고양이도 다같이 곧 처치해야 한다는 것에 이의 없으시겠죠?"
"당신은 요 15분 동안 내가 무척 즐거웠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브렘리 부인이 비꼬아 말했다. "우리집 주인도 또 나도 물론 토버모리를 귀여워했죠... 적어도 그렇게 무서운 능력을 갑자기 얻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물론 일이 이렇게 되고 보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급적 빨리 토버모리를 땅속에 묻어 버리는 것 아니겠어요?"
"저녁 먹을 때 늘 토버모리에게 주는 고기 덩어리에 스트리키니네를 섞어주는 것이 좋겠군." 윌프레드 경이 말했다. "그 다음에 외양간의 고양이는 내가 냇가에 데리고 가서 빠뜨려 죽이겠어. 그 고양이를 퍽 귀여워한 일꾼이 상심하겠지. 하지만 그 고양이 두 마리에게 무서운 옴병이 생겨서 개에게까지 전염될까 걱정이라고 말해야겠어."
"그러나 나는 대발견을 했습니다!" 아핀 씨가 항의했다. "오랫동안 연구와 실험을 쌓은 결과..."
"얌전하게 자란, 농장의 작은 뿔 달린 소로 실험하시는 게 좋을 거에요." 미세스 코네트가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물원 코끼리에게 하시든지요. 그런 동물들 역시 고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들 하더군요. 또 우리들의 침실이나 의자 밑 같은 곳에 몰래 기어들어가는 일도 없을 테니까요."
기쁨에 가득찬, 메시아의 천년 재림을 선언했는데 하필이면 그날이 헨리 레가타(*) 행사와 겹쳐 무기한으로 연기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천사장의 표정이 그랬을까. 그 천사장도 자신의 기적 같은 업적에 악평이 쏟아지는 것을 본 코넬리어스 아핀 만큼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사실 이 문제를 여론에 물어볼 경우, 스트리키니네를 사용하자는 의견은 소수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소수 의견은 다수의 의견보다 훨씬 강력한 의지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했을 것으로 보였다.
*Henley Royal Regatta
영국 옥스퍼드셔 주 헨리온템스에서 매년 7월 첫째 주에 4일간 개최되는 조정대회. 1839년 처음 개최되었고, 1851년 앨버트 왕자가 이 대회의 후원자가 되면서 대회 명칭에 '로열(왕립)'이 붙게 됐다.
의논이 결말이 안 나기 때문에, 또 사람들이 다들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초조하게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날 밤 파티는 실패작이었다. 파티가 일찍 파하지는 않았지만 사교의 장으로서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윌프레드 경은 외양간의 고양이와 나아가서는 일꾼을 상대로 씁쓸한 역할을 맡아야 했다. 아그네스 레스카는 식사를 앞에 놓고, 여보라는 듯이 토스트를 단 한 입만, 그것도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하염없이 씹어대고 있었다.
메이비스 페링튼은 식사 중 골똘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부렘리 부인은 좌중에서 횡설수설 이것저것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지만 모든 신경은 온통 문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독을 섞은 생선 접시가 찬장에 준비되어 있었지만 식사 후의 단 음식과 디저트까지 다 먹을 때까지 토버모리는 식당에도 부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지루한 만찬도 그 뒤 끽연실에서 새벽녘까지 기다린 시간에 비한다면 그래도 명랑한 편이었다. 먹고 마시고 하는 동안엔 사람들도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리고 그 자리를 감싼 곤혹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 있었다. 신경과 기분이 날카로워져서 브리지 놀이 같은 것은 아무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감흥도 없는 청중을 향해 오드 핀스베리가 비통한 곡조의 '숲 속의 메리산드'를 부른 뒤에는 사람들은 암암리에 음악을 기피하게 됐다. 열 한 시가 되자 하녀들은 보통 때처럼 토버모리 전용 찬장의 조그만 창을 열어 놓고 침실로 들어갔다.
손님들은 <패드밍턴 라이브러리>라든가 <펀치> 등 잡지의 최신호를 뒤적거리고 있었지만 정작 그 내용에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브렘리 부인은 정기적으로 찬장을 살펴보러 갔다. 그리고 돌아올 때마다 침울하고 새침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아예 질문을 꺼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두 시가 되자 크로비스가 실내를 뒤덮고 있는 침묵을 깨트렸다.
"오늘 밤은 나타나지 않을 모양이군요. 아마 지금쯤 틀림없이 이 지방 신문사에 가서 자기 회고록의 1회분을 진술하고 있을 것 같네요. 누구 누구 부인의 책 따위야 감히 이것과 상대할 수 없겠죠. 아마 첫 회 분이 나가는 그날로 최고 인기 기사가 될 겁니다."
이러한 농담을 해서 일동을 뒤집어 놓고 크로비스는 침실로 물러갔다. 파티에 참석한 다른 손님들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띄엄띄엄 그 뒤를 따랐다.
아침 일찍 차 준비가 되었다고 알리며 방마다 돌아다니는 하녀가 손님들의 똑같은 질문에 마찬가지 대답을 했다. 토버모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 식사는 어제의 만찬보다 더 우울했다. 그러나 식사가 다 끝나기 전에 그 우울은 말끔히 해소됐다. 토버모리의 시체가 운반돼 왔던 것이다. 관목 숲에 있는 것을 정원사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목을 물린 상처와 발톱 사이에 끼어 있는 노란 털로 짐작컨대 목사관의 수코양이와 싸움을 한 것이 분명했다.
정오까지 손님들은 거의 저택을 떠났다. 점심 식사를 끝내자 브렘리 부인은 기력을 회복해 자기가 귀여워하는 고양이를 잃은 데 대해서 목사관에 불쾌한 심정을 전하는 편지를 썼다.
토버모리는 아핀이 교육에 성공한 유일한 제자였다. 그리고 그 후 다른 후계자를 얻을 가능성은 없었다. 몇 주일 후 드레스덴 동물원의 한 코끼리가 쇠고리 줄을 끊고 날뛰면서 가까이 다가간 어떤 영국 남자를 죽였다. 이 코끼리는 그 전에 그렇게 사납게 설친 적이 없었다. 피해자의 이름은 신문에 따라 오핀이라든가, 에페린이라든가, 각각 다르게 보도됐지만 세레명은 충실하게 코넬리어스라고 되어 있었다.
"그 사나이가 코끼리에게 독일어 불규칙 동사를 가르치려고 했다면 그렇게 되는 것은 모두 제 책임이지." 크로비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