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erigo
P. 메리메
[소 개]
도박으로 재산을 몽땅 날려버린 페데리고. 영락한 신세를 숨기고 사냥으로 소일하는 그에게 어느날 예수님이 열 두 제자와 함께 찾아온다. 정성껏 나그네를 대접한 페데리고에게 예수님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얘기하는데... 카톨릭에 대한 유쾌한 불경이라고나 할까. 이탈리아 기질이 프랑스 소설가에 의해 잘 형상화된 맛있는(?) 소품이다.
[작가 소개]
P. 메리메(Prosper Me'rimee, 1803-1870) : 프랑스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 스탕달의 친구이며, 그의 영향을 받아 냉혹하리만큼 자기 의사를 배제한 문체로 격렬한 정열을 그려냈다. 대표작으로 단편집 < 모자이크(1833)>, 장편으로 <콜롬바(1840)>, <카르멘(1845)> 등이 있다.
옛날에 페데리고라는 젊은 영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잘 생긴데다 몸매도 늘씬하고 예의 바르고 상냥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품행이 몹시 방탕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술과 여자와 도박, 특히 도박을 가장 좋아했죠. 그는 결코 고해를 하러 간 일이 없었습니다. 만약 성당에 간다면, 그것은 못된 짓을 할 기회를 엿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페데리고는 노름을 해서 가문이 좋은 청년들을 열 두 명이나 파산시켰습니다. 그 청년들은 나중에 강도가 되어서 임금님의 병사들과 싸워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채 죽어갔습니다. 페데리고 역시 자기가 노름을 해서 딴 것은 물론이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까지 삽시간에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그의 수중에는 집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카바(*)의 언덕 뒤에 있는 그 집에 숨어 자기의 비참하게 몰락한 생활을 감추었습니다.
카바(Cava) : 이탈리아 반도 나폴리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
낮에는 사냥을 하고, 저녁 때에는 소작인과 카드 놀이를 하며 그는 삼년 동안 그렇게 고독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그 집에 온 지 처음으로 많은 짐승을 잡아가지고 사냥에서 막 돌아온 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성스러운 12명의 사도들을 거느리고 그의 집 문을 두드리며 그에게 자선을 구했습니다.
마음씨가 너그러운 페데리고는 마침 손님이 그나마 대접할 것이 많은 날 온 것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그네들을 집에 불러 들이고 최고의 치하를 하면서 식탁에 앉히고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혹시 대접을 잘 못하더라도 용서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방문이 마침 적당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의 친절한 대접을 참작해서 그 사소한 허영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오." 예수님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저녁 식사 준비를 서둘러 주시오. 왜냐하면, 식사가 너무 늦어져서 이 친구가 몹시 시장해 하니 말이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성 베드로를 가리켰습니다.
페데리고는 곧 분부대로 했습니다. 그는 사냥에서 잡은 것 외에 다른 음식을 더 내놓고 싶어서 그의 집에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염소 새끼마저 잡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어린 염소는 즉각 통째로 구워졌습니다.
만찬이 다 준비되고 모두들 식탁에 둘러 앉았을 때, 페데리고는 딱 하나 섭섭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집 포도주였습니다. 그 포도주는 맛이 별로 좋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르신."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말했습니다.
"어르신, 마음 같아선 최상품 포도주를 드리고 싶지만, 그래도 이것이나마 진심으로 어르신께 드립니다."
주님은 술 맛을 보시더니 페데리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이 술 맛이 뭐가 불만이란 말인가? 당신의 술은 분명 최상품인데... 어찌 됐건 저기 저 친구의 의견도 들어보도록 하지."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베드로 사도를 가리켰습니다.
성 베드로 역시 술 맛을 보더니 썩 훌륭하다고 단언하고(Proprio Stupendo*), 함께 마시자고 주인에게 권했습니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라는 뜻의 이탈리아 말.
그 모든 말씀이 인사 치레일 것이라고 생각한 페데리고는 그래도 사도의 말에 응했습니다. 그러나 그 술은 페데리고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에 맛본 그 어떤 술보다도 맛이 훌륭했습니다. 그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 기적을 보고서야 그는 구세주께서 자기 집에 찾아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귀한 분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나치게 격식을 따지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페데리고의 소작인과 그 마누라의 시중으로 식사가 끝난 다음, 예수 그리스도는 미리 준비된 방으로 사도들과 함께 자리를 옮겼습니다. 페데리고는 식당에 소작인과 둘이 남아서 그 기적 같은 술을 마저 비우면서 카드 놀이를 했습니다.
이튿날, 성스러운 나그네들은 집 주인과 아래층 방에서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페데리고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준 환대에 대단히 감사하오. 그래서 그 사례를 하고 싶소. 마음대로 세 가지 소원을 말하시오. 우리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능을 갖고 있으니 말이오."
페데리고는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던 카드 한 벌을 호주머니에서 꺼냈습니다.
"주님." 그는 말했습니다. "제가 이 카드로 노름을 할 때는 언제나 이기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될지어다(Tisia concesso)!" 예수 그리스도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페데리고의 곁에 서 있던 성 베드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자넨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가엾은 죄인이여. 주님께 영혼의 구원을 부탁하게나."
"그것은 별로 걱정이 되질 않는군요." 페데리고는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두 가지 소원을 더 말할 수 있소." 예수 그리스도가 말했습니다.
"주여." 집 주인이 말을 이었습니다. "무한히 자비스러운 주님, 제발 누구든지 저의 집 문 앞에 있는 저 오렌지 나무에 올라가면, 제가 허락하지 않으면 내려오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럴지어다!" 그리스도가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성 베드로는 자기 곁에 있는 그 어리석은 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면서 말했습니다.
"가엾은 죄인이로군. 자네는 자네의 못된 짓에 대한 대가로 지옥에 준비되어 있는 형벌이 두렵지 않나? 그러니 주님께 천국에 넣어 주십사 하고 부탁하게. 아직 늦지는 않았어."
"왜 그리 서두르세요?" 페데리고는 이렇게 말하면서 사도의 옆에서 비켜났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또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소원은 무엇인가?"
"누구든지 저 난로 모퉁이에 있는 저 의자에 앉으면, 제 허가 없이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 페데리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앞서 두 가지 소원이나 마찬가지로 그 소원도 마저 들어주시고 제자들과 함께 그 집을 떠나셨습니다.
마지막 사도가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페데리고는 자기 카드의 힘을 실험해 보기 위해서 소작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노름의 수를 잘 따져보지 않고 한 판 벌였습니다. 그는 대번에 이겼습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시내로 들어가 가장 좋은 호텔에서 최고급 방을 하나 잡았습니다. 그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옛날의 그 좋지 못한 친구들이 여러 명 그를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자네가 영원히 사라져버린 줄 알았네." 동 주제프가 외쳤습니다. "아주 은자가 되어 버렸다고 하기에 말일세."
"사실이 그랬지." 페데리고가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모습을 감춘 지 삼 년이나 됐는데, 그 동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지냈나?"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페데리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기도를 드렸다네, 여보게들." 경건한 말투로 페데리고는 대답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나의 기도서라네." 그는 호주머니에서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 카드 뭉치를 꺼냈습니다.
사람의 그것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페데리고가 어디선가 서투른 떠돌이 노름꾼을 봉으로 잡아, 한 재산 모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 번 그를 파산시키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그를 도박에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페데리고는 노름은 밤으로 미루자고 간청하고, 고급 요리를 주문해 차려 놓은 식탁으로 사람들을 안내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대접에 무척 만족했습니다.
그날의 저녁 식사는 전날 사도들과 함께 했던 만찬보다도 더 즐거웠습니다. 그들이 그날 마신 술은 말바지와 라크리마라는, 최고급 포도주였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만 빼놓고는 아무도 그 이상 맛있는 술을 맛본 적이 없었습니다.
손님들이 노름 자리에 앉기 전에 페데리고는 문제의 그 카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카드를 한 벌 더 준비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바꿔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카드 놀이를 할 때 세 번이나 네 번에 한 번씩은 져 주어야 상대방이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는 두 가지 카드를 좌우에 한 벌씩 놓아 두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그 고상한 노름 패거리들은 도박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습니다. 페데리고는 우선 보통 카드를 테이블에 놓고 그날 밤 노름에 걸 돈의 액수의 상한선을 정했습니다. 우선 진짜 노름의 재미를 보고 또 자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고 싶었기 때문에 그는 처음 두 번 진짜 실력을 다해 싸워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 번 다 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은근히 약이 올랐습니다.
그는 술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딴 사람들이 앞서 두 판의 승리와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축배를 드는 틈을 타서, 한 손으로 보통 카드를 들고 딴 손으로 주님의 축복을 받은 그 카드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세 번째 판이 시작되었습니다. 페데리고는 자기 카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딴 사람들의 손놀림을 여유를 갖고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상대방들이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발견한 것이 대단히 즐거웠습니다. 자기가 파산했던 것은 그들의 속임수 때문이었지, 결코 뛰어난 실력이나 행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긴 사람들과 비교해 자기의 실력도 결코 뒤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부심(사실 사람이란 무슨 일에나 자부심을 느끼는 존재인 것입니다)과 복수에 대한 확신, 승리에 대한 자신 이것들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세 가지 감정입니다. 페데리고는 그날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에 그 풍족했던 자기 재산을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자기가 그 재산을 모으는 데 희생양이 되었던 열 두 명 청년들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과거에 상대했던 노름꾼들 가운데 그 열 두 명만이 정직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그들에게 이긴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솟아나기 시작했던 기쁨의 빛이 사라지고 어두운 구름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 번째 승부를 이겼지만 깊은 한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노름은 여러 판 계속됐습니다. 페데리고는 적절히 승리하는 횟수를 조절했기 때문에 그 첫날 밤에 그날의 만찬 비용과 한 달치 방값 정도를 벌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그 이상 바라지 않았습니다. 상대 노름꾼들은 의외의 사태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그 다음날 다시 와서 판을 벌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페데리고는 적당히 이겼다가 땄다가 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진실을 의심받지 않고 삽시간에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호텔을 나와서 커다란 저택으로 이사하여 거기서 때때로 성대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절세의 미인들이 그의 시선 하나로 서로 다투고, 가장 진귀한 술들이 매일 그의 식탁을 덮었습니다. 페데리고의 그 궁전은 환락의 중심지로 그 일대에 소문이 났습니다.
조심스럽게 그런 노름을 1년 동안 계속한 끝에, 그는 그 고장 주요한 재산가들의 호주머니를 완전히 말려버리는 철저한 복수를 하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재산을 보석으로 바꾸어놓고 1주일 전부터 특별 파티의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파티를 위해 가장 뛰어난 악사들과 광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 파티의 대단원은 실컷 배를 채우고 환락을 즐긴 다음 도박으로 끝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돈이 없는 자들은 유대인들에게서 돈을 빌려 왔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동안 모아 두었던 돈을 전부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돈을 그날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페데리고는 노름에서 딴 금은보석을 몽땅 챙겨서 그날 밤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질이 나쁜 노름꾼들하고 노름을 할 때만 그 카드를 사용하기로 원칙을 세웠습니다. 보통 노름꾼들이라면 자기의 원래 실력으로도 이길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이 세상의 온갖 도시를 돌아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 노름을 했고, 그 때마다 그는 이겼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 고장의 최고급 음식을 먹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희생당한 그 열 두 명의 청년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추억은 끊임없이 마음에서 되살아나 그의 즐거움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페데리고는 그들을 구원해 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 그들과 함께 지옥에 떨어지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마음을 굳히자 그는 지팡이를 손에 들고, 등에 봇짐을 하나 짊어지고, 귀여워하던 암컷 사냥개 마르케젤라만을 데리고 지옥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시실리에 도착하자 지벨 산(*)에 기어올라가서 화산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산의 높이, 피아몬테에서 솟아오른 높이와 같은 그 정도 만큼 밑으로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지벨 산 : 시실리 섬에 있는 화산. 에트나 화산이라고도 부른다.
거기서 플루톤의 집까지 가려면 세르베에르가 지키고 있는 마당을 지나가야 합니다. 페데리고는 세르베에르가 자신의 사냥개와 희롱하고 있는 틈을 타서 쉽사리 거기를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지옥의 왕 플루톤의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가 플루톤 앞으로 가자 지옥의 왕은 "너는 누구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는 도박사 페데리고라고 합니다."
"그래,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
"플루톤이시여!" 페데리고가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도박사인 저하고 한 판 벌이자는 얘기를 하려고 왔습니다. 만약 당신이 승낙한다면 이런 조건을 걸겠습니다. 즉 당신이 원하는 대로 노름을 하되, 만약 내가 한 번이라도 지면 당신의 나라에서 있는 모든 영혼처럼 내 영혼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기면 내가 노름에서 이길 때마다 당신의 포로가 되어 있는 영혼 가운데 하나씩 골라 내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좋다." 플루톤이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카드 상자를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여기 한 벌 준비했습니다." 그 신기한 카드를 재빨리 호주머니에서 꺼내면서 페데리고가 말했습니다.
그들은 노름을 시작했습니다.
페데리고는 첫 게임에서 이기자 그 열 두 청년 가운데 하나인 스테파노 파가니의 영혼을 플루톤에게 요구했습니다. 플루톤은 즉시 그 영혼을 페데리고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그 영혼을 받아서 봇짐 속에 넣었습니다. 그는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열 두 번까지 이겼습니다. 그는 그 때 그 때 자기가 찾던 영혼을 하나하나 찾아서 봇짐 속에 넣었습니다. 열 두 개가 다 차고 나서도, 그는 플루톤에게 노름을 계속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야지." 플루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계속 지기만 하니까 재미가 없군. 우리 잠깐만 밖으로 나가세.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여기 공기가 답답하니까 말이야."
그러나 사실 그것은 페데리고를 내쫓아 버릴 구실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사나이가 영혼이 든 봇짐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플루톤은 서둘러 문을 닫으라고 큰 소리로 외쳐댔던 것입니다.
페데리고는 세르베에르가 그의 암캐에게 홀딱 반해서 어르고 있는 동안에 다시 지옥의 앞마당을 지나 가까스로 지벨 산 꼭대기에 도달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마르케젤라를 불렀습니다. 그 개는 곧 그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번 지옥에서의 승리가 일찍이 속세에서 누렸던 어떤 성공보다도 기뻤습니다. 그는 그 영혼들을 소중히 간직해 다시 메시나를 향해서 내려왔습니다. 메시나에 도착하자 그는 대륙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낡은 저택에서 여생을 보내고자 배를 탔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그의 사냥개 마르케젤라는 작은 괴물들을 여러 마리 낳았습니다. 그 중의 어떤 놈들은 대가리가 셋씩이나 달려 있었습니다. 페데리고는 그것들을 모조리 가져다가 물 속에 버렸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나서 페데리고는 일흔 살이 세가 되었습니다. 저승사자가 그의 집에 들어와 그에게 죽을 때가 왔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각오는 되어 있네." 임종의 자리에 누운 병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 저승사자여, 나를 데려가기 전에 부탁이 하나 있네. 제발 나에게 우리집 문전을 뒤덮고 있는 저 오렌지 나무의 열매를 하나만 따 주게. 그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비로소 만족스럽게 죽어갈 수 있을 것 같네."
"겨우 그 정도라면..." 저승사자가 말했습니다.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지."
그래서 저승사자는 오렌지를 따러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내려오려고 하니 내려올 수가 없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을 페데리고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페데리고! 나를 속이다니!" 저승사자가 외쳤습니다. "이젠 너에게 꽉 붙들렸구나. 어찌 됐건 이제 좀 내려다오. 그러면 10년 더 살게 해주지."
"10년이라고? 거 참 엄청나구먼 그래!" 페데리고가 이죽거렸습니다. "거기서 내려오고 싶거든 좀더 넉넉하게 구는 게 좋을 거야."
"그럼 20년 더 살게 해주지."
"지금 나를 놀리는군!"
"그럼 30년!"
"3분의 1도 못 왔어."
"그럼 너는 앞으로 1세기를 더 살겠다는 말이야?"
"바로 그거야."
"페데리고, 너무 심하구먼 그래."
"할 수 없어! 나는 앞으로 그 정도는 더 살아야겠어."
"좋아, 그럼 백 년으로 정하지." 저승사자가 말했습니다. "어쩔 수 없구먼..."
그 말이 끝나자 저승사자는 곧 나무에서 내려올 수가 있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떠나가자 페데리고는 이내 완전히 건강한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사람의 체력과 노인의 오랜 경험을 모두 소유한 채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새로운 삶에 관해서 알려져 있는 사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자기의 모든 욕망, 특히 아리따운 여성에 탐닉하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열중했다는 것만이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또한 기회가 있으면 그때 그때 선행을 하기도 했지만, 그 전 생활에 못지않게 자기 영혼의 구제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백 년이 흘러 저승사자가 다시 그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저승사자는 방으로 들어와 병석에 누워 있는 페데리고를 보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제 각오가 됐겠지?"
"나는 지금 막 신부님을 부르러 보냈다네." 페데리고가 대답했습니다. "신부님이 오실 때까지 그 불가에 좀 앉게. 자네에게 붙들려 저승에 가려고 이제 속죄만을 남겨놓고 있으니 말일세."
마음씨 좋은 그 저승사자는 그 부탁을 듣고 의자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을 꼬박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신부는 도대체 오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저승사자는 지루해진 끝에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이 망할 늙은이 같으니, 백 년 동안이나 너를 잡아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두지 않았던 말이야?"
"나는 정말 할 일이 많았다네." 그 늙은이는 비웃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저승사자는 그 늙은이의 경건치 못한 태도에 화가 났습니다. "이제 1분도 더 살려두지 않겠다."
"흥!" 페데리고가 코웃음을 쳤습니다. 저승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허사였습니다. "나는 자네가 무척 친절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네. 그런데 이제 몇 년 더 참아줘서는 안될 이유가 뭔가?"
"몇 년이라고? 이 나쁜 놈 같으니!" 저승사자는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온갖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암, 그렇고 말고. 그러나 이번에는 나도 너무 욕심을 내지는 않겠어. 게다가 나 역시 이렇게 노인으로 사는 것은 싫어졌어. 그러니 이번에는 40년만 더 살면 충분하다네."
저승사자는 과거 오렌지 나무 위에서 그랬듯이 이번에도 신기한 힘으로 인해 의자에 붙들려 있게 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에 페데리고와 전혀 타협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네가 정신을 차리게 될지 나는 잘 알고 있다네." 페데리고가 말했습니다.
페데리고는 장작을 세 다발 더 난롯불에다 던져 넣도록 시켰습니다. 순식간에 불꽃이 난로 안에서 활활 피어올라 저승사자는 완전히 화형을 당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살려 줘! 제발 살려 줘!" 저승사자는 자기의 늙은 뼈가 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울부짖었습니다. "앞으로 40년 더 살게 해주겠어."
그 말을 듣고 페데리고가 그 주문을 풀었기 때문에 저승사자는 몸이 절반쯤 구워진 채 도망쳤습니다.
약속한 40년 기한이 다시 찼습니다. 저승사자가 또 그 사나이를 데리러 왔습니다. 사나이는 이번엔 어깨에 봇짐을 지고 태연히 두 발로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
저승사자가 요란스럽게 문으로 들어오면서 말했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어. 그런데 그 봇짐은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이 속에는 전에 내가 지옥에서 끄집어 내 온 내 노름 친구 열 두 명의 영혼이 들어 있다네."
"그것들도 당연히 너와 함께 지옥으로 가야지!" 저승사자가 말했습니다.
저승사자는 말이 끝나자마자 페데리고의 머리채를 붙잡아 공중으로 뛰어올라 남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이 포로를 데리고 지벨 산의 화산구 속 깊이 들어갔습니다. 지옥의 문 앞에 이르자 저승사자는 문을 세 번 두드렸습니다.
"누구야?" 플루톤이 물었습니다.
"도박사 페데리고입니다." 저승사자가 대답했습니다.
"열지 마." 플루톤이 대답했습니다. 그는 옛날에 자기가 지고 만 열 두 판의 노름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그 녀석은 내게서 영혼을 빼앗아 내 나라를 텅 비게 만들어버릴 거야."
플루톤은 문 열기를 거절했습니다. 별 수 없이 저승사자는 포로를 데리고 연옥의 문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연옥의 문지기 천사는 페데리고가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자인 것을 알고 연옥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페데리고를 미워하는 저승사자는 너무나 약이 올랐지만, 결국 그를 천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승사자가 페데리고를 천국의 입구로 데리고 가자 성 베드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전에 한 번 저희 집에 숙박을 시켜드렸던 사람입니다."
페데리고는 대답했습니다. "옛날에 사냥에서 잡아온 짐승들을 대접해드린 일이 있었지요?"
"그런 꼴을 하고 감히 여기 나타나다니!" 성 베드로가 소리쳤습니다. "천국은 너 같은 녀석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뭐라고! 연옥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그래 그런 작자가 천국에 들어오겠다는 말인가!"
"성 베드로님." 페데리고가 말했습니다. "백 팔십년 전 쯤, 당신이 주님과 함께 우리 집에 찾아와서 자선을 바라셨을 때 제가 여러분을 이렇게 대접했던가요?"
"그거야 맞는 말이지만..." 비록 마음이 좀 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성 베드로는 화가 난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래도 너를 천국에 들이는 문제는 내가 결정할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께 네가 왔다고 말씀 드린 다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봐야겠어."
주님은 그 소식을 듣고 천국의 문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여섯 개씩 양쪽 어깨에 열 두 개의 영혼을 짊어지고 천국의 문지방에 무릎을 꿇고 있는 페데리고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보니 주님은 측은해졌습니다.
"너 혼자라면 또 모르지만..." 예수님은 페데리고에게 말했습니다. "지옥에서 찾고 있는 이 열 두 개의 영혼까지 여기에 넣어주는 것은 좀 양심에 거리끼는 걸."
"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페데리고가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집에 오셨을 때 나그네를 열 두 명이나 함께 데리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 분들을 저는 주님과 마찬가지로 대접하지 않았던가요?"
"이 사나이에게는 어쩔 수가 없군."
예수님이 말했습니다. "하여간 왔으니 들어 오거라. 그러나 내가 봐주었다고 너무 자랑하면 안돼. 다른 사람에게 나쁜 본보기가 되니까 말이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