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
[소개]
종교가 인간에게 부여할 수밖에 없는 율법 등 정신적 억압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돌아온 탕자'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여 아버지(창조주), 형(종교 지도자) 등의 인물을 등장시켜 하나님-인간 사이의 관계를 상징화하고 있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제약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는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관계가 진정한 화해의 관계로 회복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 평생에 걸쳐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며 종교적 계율의 틀을 벗어나고자 했던 지드의 지적 모색의 한 흔적을 보는 느낌이다.
[작가 소개]
앙드레 지드(Ander Gide, 1869-1951) : 프랑스의 소설가. 파리 법과대학 교수인 신교도 아버지와 가톨릭 교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강조한 어머니 밑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10대 후반에 문학에 대한 열정을 보이기 시작해 1891년 종매(從妹)에 대한 사랑을 담은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를 내놓았다.
그는 작품 초기부터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사랑의 갈등, 자아에 대한 심리분석 같은 테마를 다루기 시작했다. 1893년 아프리카 여행 이후 엄격한 그리스도교 윤리에서 풀려난 강렬한 생명력을 향유하는 삶의 길을 추구하게 됐다. 작품 활동 외에도 1909년 이후 <신프랑스 평론(NRF : Nouvelle Revue Franaise>지(誌) 주간의 한 사람으로서 20세기 프랑스 문단의 성경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194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교황청의 지하실> <배덕자> <사전꾼들> <여인학교> <전원교향곡> <좁은 문> <지상의 양식> 등이 있으며 자서전격인 <한 알의 밀이 죽지 않으면>과 <일기> 등도 유명하다. 이밖에 <콩고 여행> <소련 기행> 등도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불러 일으켰으며 <도스토에프스키 론> 등 평론도 잘 알려져 있다.
오직 나만이 아는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비유의 말씀을 여기에 그려 놓았다. 마치 세 개의 연속된 화폭 속에 각기 그림을 그려 넣은 옛날 그림처럼 그렇게 한 것이다.
나는 하느님과 내 자신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해서는 굳이 증명할 생각이 없다. 오직 나에게 생기를 넣어주는, 외면할 수 없는 영감에만 의지해서 이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내게서 어떤 동정심 같은 것을 찾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내 그림 속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도 있으리라.
나는 마치 그림 한 귀퉁이에 이름이 적혀 있는 화가 자신처럼 그 탕자와 단짝이다. 그와 나는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얼굴이 온통 눈물로 얼룩진 채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는 단짝이다.
탕자는 집을 나가 오랜 세월 동안 방황했지만 끝내 자기가 찾던 행복을 발견할 수 없었다. 또한 방랑 생활 동안 누리던 향략조차도 결코 자신의 품에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탕자는 배고픔으로 밑바닥을 헤맸다. 그리고 그는 허망한 꿈을 붙잡아 헤매다 심신이 피폐해진 자신을 극도로 혐오한다. 아버지의 모습, 어머니가 가끔씩 들러 자상하게 돌봐주시던 자기의 침실, 맑은 물이 흐르던 정원, 언제나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던 집…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렸다. 형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 형은 조금도 애정을 느낄 수 없는 인색하기만 한 존재였다. 형은 아직 받지 못한, 자신에게 상속될 유산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는 존재였다.
그는 그들에 대해 하나하나 생각해봤다. 아버지는 내가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하지만 나를 보게 되면 지난날의 내 잘못 따위는 까맣게 잊고 너무나 기뻐해 주실 것이다. 나는 초라한 행색으로 먼지투성이가 된 머리를 깊이 숙이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리라. 그리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말하리라.
"아버지, 제가 하나님과 아버지께 진실로 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죄하면 아마 아버지는 나를 잡아 일으키실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이다.
"얘야,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
그러면 나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탕자는 집을 향해 걸으면서도 계속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 저녁 자기 집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이르렀다. 멀리 자기 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초라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숨기고 싶었다. 그는 어둠의 장막이 사방을 덮기를 기다렸다.
멀리서 귀에 익은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이 꿇었다.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자기가 그분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그런 자신은 아버지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그것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몹시 배가 고팠다. 그러나 낡아빠진 외투 주머니 속에는 자기가 돌봐주던 돼지들이 먹는 도토리 한 줌 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집에서는 저녁 준비를 하느라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현관 앞 돌층계로 어머니가 나오는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이제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그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 없어서 언덕을 내려가 뜰 안으로 들어섰다. 개가 그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마구 짖어댔다. 그는 이 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탕자는 하인들에게 말을 붙여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워낙 의심이 많은지라 슬슬 그의 모습을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나타났다.
주인은 방탕한 자기 아들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주인은 아마 그동안 쭉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주인은 반갑게 두 팔을 벌리며 아들을 맞았다. 아들은 비로소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한 팔로는 얼굴을 가리고 오른손을 치켜들어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버지! 저는 하나님과 아버지께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감히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죄인입니다. 이제는 저를 아들로 생각지 마시고 머슴으로나마 데리고 있어 주십시오."
아버지는 아들을 얼싸안았다.
"내 아들아! 네가 돌아온 오늘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날이다!"
아버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아들의 이마에 입맞추던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하인들에게 말했다.
"어서 들어가 장에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와라. 그리고 내 아들의 발에 신발을 신기고 손가락에는 비싼 반지를 끼워 주어라. 그리고 외양간에 있는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준비해라. 죽은 줄 알았던 내 아들이 살아 돌아왔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느냐?"
아버지는 감격에 겨워 몸소 집안으로 달려갔다. 그는 이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 자신이 직접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보, 죽었다고 슬퍼하던 우리 아들이 다시 돌아왔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들뜨게 만들었다.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심지어 하인들까지도 마치 축제날처럼 잔치 기분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딱 한 사람만은 퉁퉁 부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그는 바로 탕자의 형이었다.
그는 성격이 옹졸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함께 식탁에 앉았지만 속으로는 몹시 못마땅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일이 없다. 그런데 이런 나는 제쳐두고 왜 저런 죄인에게 훨씬 큰 영광과 환대를 베푼단 말인가?'
그는 부모님과 다른 사람의 눈 때문에 마지못해 잔치 자리에 참석은 했지만, 내일 부모님이 동생을 꾸짖을 때 자기도 나서서 그를 따끔하게 혼을 내주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밤이었다. 마당에 피운 횃불은 활활 타올라 하늘 높이 불꽃이 치솟았다. 식구들은 화려한 잔치를 즐기노라 다들 지쳐서 차례차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탕자가 누워 있는 방 바로 옆방에서는 탕자의 어린 동생이 한 순간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고 있었다.
주님! 저는 오늘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눈물을 흘리며, 당신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가 당신의 비유를 회상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여기 다시 옮기는 것은, 당신의 탕자를 통해 제가 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당신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이 저로 하여금 비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당신의 말씀을 부르짖게 합니다.
아버지 집에서 일하는 많은 일꾼들조차도 풍성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을 지경이다! 탕자는 아버지의 힘찬 포옹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이 그의 마음을 적셔 주었다. 집에서 지내던 지난날의 갖가지 일들을 떠올린다.
기쁘고 슬펐던 그 수많은 일들… 하지만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 하나 옳지 않은 일, 불의의 것이라곤 없었다. 그는 언덕을 넘어 자신이 떠나왔던 그 푸른 지붕을 보았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가? 왜 곧장 집으로 달려들어가지 않는가? 집에서는 모두 나를 반가이 맞이할 것이다… 살찐 송아지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나에게 먹이기 위해 저 놈을 잡아서 음식을 장만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지는 말자. 탕자여, 잠깐만 기다려라! 나는 네가 걱정스럽다. 너는 먼저 네가 돌아온 다음날 아침식사가 끝난 다음 아버지가 너에게 들려준 얘기를 나에게 들려다오. '아버지! 비록 큰아들이 자기의 의견을 아버지께 강요할지라도 형의 입을 통해서라도 종종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해 주시옵소서!'
"얘야, 너는 왜 내 곁을 떠났더냐?"
"저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어디에나 계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외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쓸데없는 얘기이다. 그런 말은 그만 두자. 나는 너에게 줄 집을 한 채 마련했다. 물론 그 집은 너를 위해 지은 것이었다. 네 영혼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그리고 네 영혼이 분수에 맞는 휴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집 말이다. 그리고 너는 네가 할 일도 가질 수 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일해왔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물려받을 너는 왜 그런 집에서 도망을 쳤느냐?"
"그 집은 저를 가두고 있었습니다. 그 집은 아버지의 집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집은 내가 너를 위해 지은 것이다. 그것을 지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네 아비다."
"아버지는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형에게서 그런 말씀을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이 땅과 집, 그 밖의 모든 것을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집은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지은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요. 그리고 저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머리를 편히 쉬게 할 집이 필요하다. 너는 너무 교만하다! 너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들판에서 잠을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들판에서도 잠을 자니까요."
"가난한 사람들이야 상황이 다르다. 그렇지만 너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잖으냐? 부귀를 내동댕이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 나는 너를 누구보다도 부유하게 해 주지 않았더냐?"
"아버지, 저는 집을 나갈 때 몸에 지닐 수 있는 재물은 모조리 갖고 갔습니다. 아버지도 그건 잘 알고 계십니다. 제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없는 재산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는 가지고 간 재물을 모조리 낭비해 버렸지!"
"저는 아버지의 황금을 쾌락으로 바꾸고, 아버지의 교훈을 환상으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저의 순수함을 운율로, 저의 적극성을 욕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아비의 성품은 소박하다. 내가 너에게 넣어 주었던 수많은 덕성들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정열이 제 마음에 불타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불태우고 싶었습니다."
"성스러운 산에서 모세가 발견했던 그 순수한 불꽃을 생각해 보려므나. 그 불꽃은 아름다운 빛을 냈지만, 무엇 하나 태워 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라."
"저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그런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가르치는 사랑은 목의 갈증을 물처럼 적셔주는 그런 사랑이다. 내 아들아! 집을 나간 뒤에 너는 무엇을 얻었느냐?"
"저에게 남은 것은 쾌락의 기억일 뿐입니다."
"하지만 쾌락의 뒤에는 항상 빈곤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아버지, 저는 그 빈곤 속에서 아버지가 항상 제 곁에 계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 빈곤이 너를 이 아비에게 돌아오게 만들었다는 말이냐?"
"잘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거친 황야에서 배고픔과 갈증을 이 세상 무엇보다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너의 빈곤이 너로 하여금 부귀의 가치를 깨닫게 했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아버지, 제가 말하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온갖 시련으로 제 마음이 텅 비게 되면서 비로소 거기에는 사랑이 담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든 재물을 다 낭비하면서 대신 열정을 사들였습니다."
"그래, 내 곁을 떠나니 행복하더냐?"
"저는 제가 아버지 곁을 떠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집으로 되돌아온 이유는, 네 발걸음을 돌린 것은 과연 무엇이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게으름일지도 모르지요."
"게으름이라고? 너는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게 대한 사랑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게 아니란 말이냐?"
"아버지,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요? 저는 그 거친 황야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저는 날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느라 완전히 탈진해 버렸습니다. 집에서는 그래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어쨌든 사실이다. 집에서는 하인들이 너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공급해 줄 테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너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배고픔이었구나!"
"그 뿐만은 아닙니다. 저는 공포와 질병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저는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을 해쳤습니다. 기껏 보잘것없는 나무 열매와 들 메뚜기, 벌꿀 따위로 하루하루 목숨을 유지했으니까요. 처음엔 고생을 해보고 싶은 의욕이 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차츰 저의 체력이 그런 고생을 감당할 수 없게 되더군요.
추운 밤이면 침대 위에 푹신한 이불이 덮인 우리 집의 따뜻한 침실이 생각났습니다. 먹을 것을 얻지 못해 끼니를 거를 때면, 남아 돌 정도로 풍성한 우리집의 음식들이 떠올랐습니다. 집에서는 사실 배고픈 일이 없었지요. 그래서 저는 드디어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빈곤과 배고픔에 맞서 싸울 힘과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느낀 겁니다. 그리고 또…"
"그랬으니 어제 그 살찐 송아지는 무척이나 맛이 있었겠구나…"
탕자는 방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얼굴을 바닥에 대고 흐느껴 울었다.
"아버지! 아직도 제 입에는 제가 늘 먹었던 그 야생 도토리의 거칠고 향긋한 맛이 남아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음식도 도토리의 그 맛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겁니다."
"바보 같은 녀석!"
아버지는 아들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말을 계속했다.
"내 말이 너무 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 형이 내가 그렇게 따끔하게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이 집에서는 네 형이 모든 일을 맡아 하고 있다. 네 형은 너에게 이런 말도 해달라고 부탁하더구나. 이 집 밖에서는 절대로 너에게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 말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봐라. 네 형은 너를 낳은 사람이 아니다. 너를 낳은 나는 네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이 너를 길거리로 몰아냈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네가 지쳐서 돌아오게 되기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만일 내가 너에게 와주기를 바랐다면… 나는 만사 제치고 곧장 너에게로 뛰어갔을 것이다."
"아버지! 그렇다면 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도 아버지를 볼 수 있었겠군요?"
"하지만 너는 지금 몸이 너무 쇠약해졌다. 그러니 집에 돌아온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이제 그만 네 방으로 돌아가 쉬어라. 오늘은 그저 푹 쉬려므나. 그리고 내일은 형과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는 것이 좋겠다."
탕자는 형에게 일부러 불손한 태도로 대하려고 했다.
"형님!"
그는 입을 열었다.
"우리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형님과 저는 전혀 비슷한 곳이 없지요…"
형이 대답했다.
"그건 모두 네 잘못 때문이지!"
"그것이 어째서 제 잘못이란 말입니까?"
"나는 언제나 규범 안에서 살아왔다.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은 반드시 오만의 열매를 맺거나 오만의 꼬투리가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저에게는 온통 잘못된 것 뿐이라는 말씀입니까?"
"규범에 딱 들어맞는 것만이 미덕이라는 사실을 너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밖의 모든 잘못된 습관은 억제하고 절제해야 한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히려 그런 것들을 억지로 몰아내려는 그 태도입니다. 하지만 형님의 그런 주장도 역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겠죠."
"억지로 잘못된 태도를 몰아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될 수 있으면 그런 것을 줄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형님이 말씀하신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제 미덕을 줄였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지금 너의 미덕을 값지게 평가하는 거다. 너는 스스로의 미덕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내 말을 명심하도록 해라.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너 자신을 위축시키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 너 자신을 발전시키라는 것이야.
그렇게 되면 네가 갖고 있는 다양한 소질들이 훌륭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정신과 육체의 반항적 요소가 마치 교향악처럼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지. 너의 단점은 너의 장점을 길러주고, 나아가서 너의 선량한 기질은 순종의 미덕으로 표현되겠지…"
"제가 그동안 찾아 헤맨 것 역시 제 자신의 발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황야에서 발견한 것도 그것이었구요. 실상은 형님이 얘기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 사실 내가 너에게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심하게 얘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가 너에게 하신 말씀은 나도 대충 짐작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보자면 아버지의 말씀은 언제나 막연하고 불투명하지. 게다가 아버지는 이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신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아버지의 표현을 빌려 나타내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진짜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하인들에게까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직 나뿐이다. 그러니 아버지를 이해하려면 당연히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나는 형님이 없을 때에도 아버지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로서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 너는 아버지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은 게 아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거나 그 말씀을 알아듣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야. 우리가 아버지의 사랑 아래 한 가족이 되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결국 아버지의 집안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겠지요?"
"우리를 이 집으로 불러온 것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다. 너도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게다. 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만 봐도 그걸 짐작할 수 있지 않으냐? 어서 말해 보렴, 네가 집을 뛰쳐나가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니?"
"아버지의 품안이 이 세상의 전부일 수는 없다는 것을 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형님이 바라시는 것 같은 그런 인간이 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땅, 다른 경작지,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는 그런 땅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나 봅니다. 혹은 인간의 흔적이 아직 미치지 않은 그런 곳이요. 그리고 미지의 거리로 달려가는, 또 다른 제 자신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을 뛰쳐나간 것입니다."
"만약 내가 너처럼 이 집을 버리고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번 상상해 봐라. 아마 하인들과 도둑놈들이 우리 집 재산을 모조리 빼앗아가고 말았겠지."
"하지만 저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집에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재산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으니까요."
"너의 태도는 교만하기 짝이 없구나. 이봐, 무질서와 혼돈은 두 번 다시 용납할 수 없다. 너는 아직도 인간이 어떤 혼란을 거쳐 태어났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너는 먼저 그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 인간이 두 번 다시 혼란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걸 용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성령이 인간을 끌어 올려주지 않으면 인간은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스스로 혼란 속에 빠져들고 나서야 성령을 깨달으면 이미 너무 늦은 거야. 너를 구성하고 있는 온갖 요소들이 혼란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네 스스로 그걸 원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곤경에 빠졌기 때문이지. 하지만 인간이 그 상태에 적응하려면 다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너는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거야.
이제 너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여건을 부여잡고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네가 지닌 것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아야 한다고 성령은 이미 경고하셨다. 그리고 이런 말씀도 하셨지… 아무도 너의 왕관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라고 말이다.
너는 네 스스로의 왕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나 너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커다란 권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의 왕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도둑이 있다. 그 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네 주위와 네 마음속을 맴돌고 있다. 얘야! 너의 왕관을 힘껏 움켜잡고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
"저는 이미 오래 전에 제 손에 쥐고 있던 닻줄을 놓아 버렸습니다. 이젠 나의 재산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아니다. 너는 다시 할 수 있다. 내가 네 힘이 되어줄 테니까. 네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에 난 네 재산을 지켜왔다."
"저도 성경의 말씀은 잘 알고 있습니다. 형님은 그 구절을 끝까지 인용하지는 않았지요."
"그래,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있지… 승리한 자를 내 성전의 기둥으로 삼을 것이며, 그는 다시는 그곳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야."
"다시는 그곳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그 구절… 그것이 저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탕자는 말을 계속했다.
"비록 그것이 그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너는 고통 속에서 빠져나왔으면서도 그런 사실에 만족하지 않는 것 같구나. 아직도 그곳을 마음속으로 동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제가 이미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저나 다른 사람들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너는 도대체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만족할 수 있겠느냐? 너의 재산이 있는 곳은 오직 여기 뿐이란다. 그렇지 않으냐?"
"형님이 우리 집의 재산을 잘 지켜오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네가 낭비하지 않은 재산, 즉 토지는 우리 공동의 소유란다."
"그럼 제 개인의 몫은 이제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니다. 어쩌면 아버지께서 너에게 특별한 몫을 남겨주실지도 모르지…"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저는 그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건방진 얘기는 하지 말아라! 내가 네 의견을 받아들일 것 같으냐? 그것은 우리 형제 가운데 가장 신실한 사람의 몫이 될 것이다. 미리 밝혀 두지만 너는 그것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좋을 거야. 너는 너에게 분배된 재산을 가지고 기껏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행동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너는 그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금방 물 쓰듯 없애버렸지 않으냐?"
"저는 저에게 주어진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나머지라도 유지된 것 아니냐? 그래서 너도 그것을 가질 희망을 찾게 된 것이고 말이야. 오늘을 이쯤 해두자. 이제 방으로 돌아가 푹 쉬도록 해라."
"저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너무 피곤하군요!"
"너의 피곤을 하나님이 돌봐주시기를 기원한다! 그럼 어서 쉬도록 해라. 내일은 아마 어머니께서 너와 말씀하실 것이다."
"얘야! 네 형의 말을 들으니 네가 아직도 반항하는 태도라고 하더구나. 우리 좀더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겠니? 어미의 발 밑에 엎드려 어미 무릎에 이마를 파묻어 보렴. 반항하는 너의 목덜미를 쓰다듬는 이 어미의 손길을 느끼면 너는 어떤 심정이 될 것 같으냐?
너는 어쩌자고 그렇게 오랫동안 이 어미를 떠났더란 말이냐? 그저 내 물음에는 눈물로 대답하는구나. 무엇 때문에 이제야 눈물을 흘리는 거냐? 얘야! 이 어미의 눈물은 그 동안 너를 기다리느라 다 흘러서 이제 아주 말라버린 것만 같구나. 그런데 너는 지금에야 집으로 돌아왔어."
"어머니는 그래도 저 같은 자식을 기다리고 계셨군요!"
"네가 돌아오기를 단 한 순간이라도 고대하지 않을 수 있었겠니? 밤마다 잠들기 전이면 나는 너를 생각했다. 오늘밤에 애가 돌아오면 문이나 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나는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또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네가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도를 드렸지. 나는 날마다 기도를 드렸다. 그러니 네가 어떻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겠니?"
"어머니의 기도가 제 마음을 돌이켜 주신 겁니다."
"하지만 어쩐지 비웃는 소리처럼 들리는구나."
"어머니, 저는 겸허한 마음으로 어머니께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고개를 깊이 숙인 것을 보세요. 이렇게 어머니 곁에 와 있으니 이제야 그 동안 제가 집을 떠나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제 또 다시 집을 떠나지는 않겠지?"
"다시는 집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래, 도대체 무엇이 너를 그렇게 집밖으로 몰아낸 거냐?"
"어머니, 거기에 대해서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저를 몰아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제 자신이 스스로 뛰쳐나갔을 뿐입니다."
"그래, 우리에게서 뛰쳐나가면 행복해질 것 같았어?"
"저는 행복을 찾아 나섰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 네가 찾고 있었던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
"저는… 저는… 또 다른 제 자신을 찾아서…"
"너는 부모의 자식이며 형제 중 하나가 아니더냐?"
"저는 형제들을 닮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집으로 돌아와 있으니까요."
"그거야 물론 그렇지. 하지만 너와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너 스스로 다른 형제들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해서는 못쓴다."
"이제부터 저도 다른 가족들과 닮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침 체념한 것처럼 말하는구나."
"주위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동안 저의 방랑은 정말 저를 완전히 녹초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너도 정말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구나!"
"밖에서 워낙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요."
"딱하기도 해라! 아마 잠자리나 먹을 것조차 찾기 힘들었을 거야."
"저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었습니다. 익지 않은 과일이나 상한 과일 따위도 상관하지 않았지요."
"그래 배고픈 것 말고는 다른 괴로운 일은 없었니?"
"한낮의 뜨거운 햇볕, 한밤중의 차가운 바람,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의 모래밭, 두 발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가시덤불, 이런 것들도 제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형님에겐 얘기하지 않았습니다만, 실은 저는 다른 사람의 종노릇까지도 했으니까요."
"어째서 형에게 그런 것을 숨겼느냐?"
"저는 우연히 무척 악독한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엄청나게 부려먹었지요. 그들은 저의 자존심을 짓밟으면서도 먹을 것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악독한 자의 종으로 살 바에야 차라리… 저는 꿈속에서 우리 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탕자가 다시 고개를 숙이자 어머니는 부드럽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계획이냐?"
"이미 어머님에게 말씀 드린 것처럼 될 수 있는 대로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겠습니다. 우리 집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형님처럼 저도 아내를 맞이하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누군가 점찍어둔 사람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머니가 골라 주신다면 어떤 여자라도 상관없습니다. 어머니가 형님에게 해주신 것처럼 해주세요. 어머니의 뜻을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내가 골라주는 여자가 네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전혀 상관없습니다. 제 마음은 이미 다 정해졌으니까요. 저는 지난날의 자만심을 몽땅 다 버리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을 어머니 뜻대로 해주세요. 저는 그저 어머니 말씀을 따를 뿐입니다. 장차 제 아이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께 순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도 비로소 제 결심이 헛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난 지금도 너의 결심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단다. 그런데 얘야, 네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단다. 꼭 네가 보살펴 줘야 할 얘가 있단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동생 말이다. 네가 집을 떠날 때는 아직 열 살도 안 됐었지. 너는 그때 그 애에게 전혀 관심도 두지 않았었고… 그런데 그 애가…"
"어머니, 어서 말씀하세요.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지금 그 애를 보면 마치 집 떠나기 전의 네 모습을 보는 것 같을 거야. 그 애는 지금 집을 나가기 전 네 모습과 꼭 같단다."
"저하고 같다구요?"
"집을 나서지 전의 네 모습 말이야. 지금의 네 모습이 아니라…"
"그렇다면 아마 그 애도 다시 저처럼 되겠군요."
"당장 그 애 마음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그 애와 좀 얘기해볼 수 없겠니? 너의 말은 귀담아 들을지도 모르겠구나. 네가 여행 중 겪었던 일들을 낱낱이 다 이야기해 주려무나. 너처럼 쓸 데 없는 고생을 하지 않도록 말이야."
"어머니는 왜 그렇게 동생에 대해 염려하고 계십니까? 그저 겉모습만 보시고 그렇게 판단하시는 것 아닌가요?"
"아니야, 그렇지 않다. 그 애는 너와 닮은 점이 너무 많단다. 너의 경우에는 아예 모르고 신경을 별로 쓰지 못했지만 지금 그 애는 무척 염려가 된다. 걱정스러운 모습이 너무 많이 눈에 띈다. 우선 그 애는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 그리고 그 책들이 언제나 좋은 책들만 있는 것 같지는 않더구나…"
"그저 그것뿐인가요?"
"그 앤 종종 근처 동산의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가곤 한단다. 너도 잘 알겠지. 그곳에서는 사방 천지가 멀리까지 다 보이지 않더냐?"
"저도 그 기억이 나는군요. 어머니, 그리고 또…"
"그 애는 집에 있는 것보다 농장에 나가서 노는 일이 더 많더구나."
"거기서 걔가 무얼 하는지 아세요?"
"물론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애가 거기서 우리 소작인들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는 아주 질이 다른 불량배들까지 만나고 있어! 그들은 이 지방 사람도 아닌데다 그중 한 사람은 그 애에게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들려주는 눈치더라."
"아, 그 돼지 치는 친구를 말씀하시는 모양이군요."
"그래, 맞았다. 너도 그 사람을 알고 있구나! 네 동생은 저녁마다 그를 만나서 돼지우리까지 따라간단다. 그 사람 얘기를 들으려고 말이야! 그리고 저녁식사 때나 되어서야 간신히 집에 돌아와서는 밥도 제대로 먹질 않거든. 그 옷에선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말이야.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고, 오히려 반항만 늘어가니… 하루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 시간에 그 녀석을 좇아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겠니! 먹이를 주려고 돼지 떼를 몰고 나가는 그런 시간에 말이다."
"그 애도 그런 데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겠어요?"
"너도 그것은 알고 있지 않았니? 그 애도 어느 때인가 집에서 뛰쳐나갈 거야. 나는 그걸 분명히 알 수 있어. 언젠가는 그 애가 집에서 뛰쳐나갈 것이라는 것을…"
"아니에요,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그 애를 한 번 타일러 보겠어요. 그러니 어머니, 너무 염려 마세요."
"그 애도 아마 네 말이라면 귀담아 들을 거야. 나도 그건 알 수 있지. 네가 돌아온 그날 저녁에 그 애가 너를 얼마나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넌 잘 몰랐을 거야. 네가 입고 있던 그 누더기 옷이 얼마나 시선을 잡아 끌었는지! 네 아버지가 곧 너에게 비단 옷을 입혀 주었지. 네가 입은 그 두 가지 옷을 그 애가 서로 혼동하지나 않았을까 나는 걱정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그런 생각조차도 우습게 여겨진단다. 왜냐 하면 지금 생각해보니 분명히 알 수 있는데… 그 애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네가 입었던 그 누더기 옷이었기 때문이지. 얘야, 만약 네가 그렇게 비참한 몰골이 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너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니?"
"어머니! 어떻게 제가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있었는지, 지금은 저 자신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 애에게 그런 얘기를 하나도 빼지 말고 다 들려주려무나."
"네, 내일 저녁엔 그 애에게 제가 아는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겠습니다. 어머니, 이젠 졸립군요. 제 이마에 키스해 주세요. 마치 제가 어려서 잠들어 있을 때 해주시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 이제 돌아가 자려무나, 나는 너희들을 위해 기도를 드려야겠다."
탕자는 램프를 들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아무 장식도 없는 넓은 방 침대에는 동생이 얼굴을 벽으로 돌리고 누워 있었다. 탕자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동생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너와 이야기를 좀 하고 싶구나!"
"누가 못하게 하던가요?"
"네가 잠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잠이 들어야만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꿈을 꾸고 있던 모양이구나. 그래, 어떤 꿈을 꾸었니?"
"형과는 상관없는 꿈이에요! 꿈을 꾸는 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걸 형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꿈들이 매우 흐릿한 모양이구나. 그래도 내게 이야기해주면 나름대로 성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형은 자기 꿈이나 제대로 가꾸세요. 내가 꾸는 꿈은 그냥 내버려두고요. 그것이 서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에요! 형은 내 방에 왜 들어온 거에요? 남이 잠자는 것을 방해하자는 겁니까?"
"너는 지금 자고 있는 게 아니잖아? 나는 너와 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온 거야."
"나에게 무슨 할 이야기가 있나요?"
"아니야. 네가 그런 식으로 얘기한다면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그럼 가서 주무세요."
탕자는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문득 멈춰서서 램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램프는 방안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되돌아와 침대에 앉아 어둠 속에 돌아누운 아우의 이마를 한참 동안 쓰다듬고 주었다.
"나도 형에게 대들곤 했지만, 너는 옛날에 내가 형님에게 한 것보다 더 거칠구나…"
동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히 말해 봐요. 큰형이 형을 제게 보냈지요?"
"그렇지 않다. 큰형이 보낸 게 아니고 어머니가 나를 보내셨다."
"그러면 그렇지. 형이 스스로 여기에 올 리가 없죠."
"하지만 나는 네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동생은 침대 위로 몸을 일으키더니 탕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리 집에서 누가 제 친구가 될 수 있겠어요?"
"네는 큰형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구나."
"큰형님 이야기는 제발 꺼내지도 마세요. 나는 큰형님이 너무 싫어요… 큰형님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에요. 제가 형에게 무례하게 굴었지만 결국 그것도 다 큰형 때문이나 마찬가지에요."
"그건 도대체 왜 그런 거냐?"
"형은 설명해줘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렇다 해도 한 번 말이나 해보렴."
탕자는 동생을 얼싸안고 달랬다. 동생은 형이 하는대로 몸을 맡기고 가만히 있었다.
"형이 돌아오던 날 나는 잠을 잘 수 없었어요. 밤새도록 곰곰이 생각했지요. 저는 큰형님 말고 다른 형님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어요. 우리 집 마당으로 사람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형님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형님은 아마 모를 거예요."
"그 때 나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었지 않으냐?"
"그래요. 나도 형님의 그런 옷차림을 보았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형님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어떤 영광 같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아버지가 형님에게 하시는 모습을 보았어요. 아버지는 형님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시더군요. 큰형도 아직 갖지 못한 그런 반지를 말입니다. 저는 아무에게도 형님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단지 형님이 멀리서 돌아왔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식탁에 모두 둘러앉았을 때 형님은 바라보고 있더군요…"
"너도 그 만찬 자리에 함께 있었던 모양이구나!"
"이제 보니 형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었군요. 하긴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형님은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리고 다음날 저녁 형님은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우었지요… 물론 그것도 좋아요. 하지만 그 다음날 저녁에도…"
"어서 다 이야기를 해보렴."
"전 그래도 형이 저에게 한 마디라도 다정한 얘기를 해줄 줄 알았어요!"
"그래,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그럼요,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린 줄 아세요? 그날 저녁 형님이 큰형과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저는 큰형을 이렇게 미워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도대체 형님들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했습니까? 저는 형님이 큰형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형님에게 관심이 더 많았거든요."
"나는 큰형님에게 무척 큰 잘못을 저질렀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도 죄를 저지른 것은 마찬가지다. 적어도 내가 집에서 도망쳤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지. 너도 그걸 잘 알겠지?"
"그럼요, 잘 알고 있어요. 벌써 오래 전 일이었지요. 그렇지 않아요?"
"아마 내가 네 나이쯤 되었을 때일 거야."
"형님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지. 그건 나의 잘못이었고, 그리고 또한 죄였단다."
"형님은 집을 나갈 때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나요?"
"그렇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집을 떠나는 것을 어떤 의무처럼 생각했단다."
"그럼 그 후 어떤 일이 생긴 건가요? 그 때 형님이 옳다고 생각하던 것이 결국 틀렸다는 말인가요?"
"나는 집을 떠난 뒤에 무척 고생을 했단다."
"그렇다면 형님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건 그렇게 고생을 했기 때문인가요?"
"그렇지는 않아.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다만 그렇게 고생을 했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좀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단다."
"그럼 집을 떠나기 전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건가요?"
"안 한 것은 아니었겠지. 하지만 나의 이성의 힘은 약했어. 그래서 결국 욕망을 따르게 되었던 거란다."
"그렇다면 형님은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군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체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형님은 새로운 존재가 되려던 노력을 포기한 셈이군요."
"실상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
소년은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갑자기 흐느끼며 울었다.
"형님! 저는 지금 형님이 집을 떠날 때와 똑같은 심정일 거예요. 말씀해주세요. 형님은 정말 집을 떠난 뒤에 실망밖에 얻지 못했단 건가요? 그렇다면 바깥 세상은 우리 집과 다르다고 제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는 건가요?
제가 마음속에 그리는 온갖 것들이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란 말인가요? 어서 얘기를 들려주세요. 형님이 그 동안 방황하던 길에서 도대체 무엇을 만나서 그렇게 절망을 하게 된 건가요? 형님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어요?"
"나는 자유를 찾아 집을 나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나는 남에게 매인 몸이 되어 남을 섬겨야 했지."
"여기서도 저는 매인 몸이나 마찬가지에요."
"그건 그렇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훨씬 악독한 주인을 섬겨야 한다. 반면 네가 여기서 섬기는 사람은 부모님들뿐이지 않으냐?"
"살아가기 위해 남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적어도 노예 생활을 선택하는 자유나마 있으니까요."
"나도 그걸 원했을 거야. 그래서 나는 내 몸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지. 마치 암당나귀를 따라가는 사도 바울처럼 욕망의 뒤를 좇아 나선 것이다. 나는 어디엔가 나를 위한 왕국이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어처구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도착한 그곳에는 오직 비극만이 기다리고 있었어. 하지만…"
"혹시 형님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니었을까요?"
"나는 똑바로 앞만 보고 걸어갔다."
"만일 그렇게 하셨다면 왕이 없는 영토, 주인 없는 숱한 왕국들이 형님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요?"
"도대체 누가 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지?"
"저는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실제로 그런 기분을 느낄 때도 있어요. 저는 벌써 제 왕국을 직접 지배하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도 있어요."
"넌 무척 건방지구나!"
"그건 큰형이 형님한테 한 말이죠. 그런데도 형님은 왜 내게 그런 말을 하시죠? 형님은 자존심도 다 버린 건가요? 만일 자존심이 남아 있었다면 아마 형님은 집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너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야."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아마 길에서 형님을 만나게 되면 형님은 제가 친동생이라는 걸 금방 알아봤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집을 떠나는 것 역시 형님을 찾으러 나선다는 것과 마찬가지구요."
"집을 떠난다고?"
"형님은 그걸 모르고 계셨어요? 저에게 집을 뛰쳐나갈 용기를 불어 넣어주실 분은 바로 형님 아니던가요?"
"나는 네가 한 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더러 집을 떠나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뇨,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사실 형님이 하려는 얘기는 그런 게 아닐 겁니다. 형님은 결국 정복자가 되고 싶은 커다란 꿈을 품고 떠났던 것 아닌가요, 맞죠?"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노예 생활이 더욱 뼈저렸다."
"형님은 도대체 왜 굴복하신 겁니까? 형님은 그토록 지쳤던가요?"
"아니다.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지쳤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품었던 생각을 결국 의심하게 되었단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말 모르겠군요."
"나는 모든 것을 회의하게 되었다. 하다못해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었지.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아무 데나 몸을 의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미끼를 던지며 나에게 안락한 생활을 주마고 약속한 주인의 꼬임에 넘어가기도 했다. 결국 이제 와서야 내가 시도했던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탕자는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하지만 집을 떠난 처음에는 어땠나요?"
"나는 오랫동안 황무지를 방황했단다."
"황야를 떠돌았던 겁니까?"
"꼭 황야를 헤맸던 것만은 아니다."
"형님은 거기서 도대체 무엇을 찾아 다녔습니까?"
"이제 와서는 나 스스로도 내가 무엇을 찾아 헤맸던지 잘 모르겠구나…"
"이제 그만 침대에서 일어나세요. 그리고 여기 제 머리맡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보세요. 찢어진 책 위에 있는 것 말이에요."
"벌어진 석류로구나…"
"돼지 치는 사람이 사흘 동안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어제 저녁에 저걸 나에게 주더군요."
"나도 저건 안다, 저건 야생 석류아."
"그래요. 맛이 지독하게 쓰지요. 하지만 정말 목이 마르면 저런 것이라도 마구 깨물어 먹을 것 같아요."
"너도 이제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것 같구나. 황야에서 내가 찾고 있던 것은 바로 네가 말하는 그런 갈증이었다."
"이 열매는 전혀 달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목을 축일 수는 있겠죠?"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갈증을 더할 뿐이다."
"형님은 이 석류를 어디서 딸 수 있는지도 잘 아시겠군요?"
"보살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초라한 과수원이지… 울타리가 없어서 그냥 황야인지 과수원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곳이란다. 한쪽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익다가 만 열매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었지."
"무슨 열매들이었나요?"
"우리 집 뜰에 있는 과일과 비슷한 것들이야.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야생이란 점이 다르지. 내가 그곳을 찾은 날은 몹시 무더웠단다."
"형님,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제가 오늘 왜 형님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세요? 저는 이 밤이 새기 전에 집을 떠날 생각이에요. 밤이 밝고 사방이 어스름하게 밝아오면… 저는 조용히 집을 나가 길을 떠날 거에요. 그래서 오늘밤은 신발도 벗지 않고 있어요."
"뭐라고? 나도 이루지 못한 것을 네가 이루어보겠다는 얘기냐?"
"형님은 제게 길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리고 저는 형님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이겨나갈 거예요."
"너에게 정말 놀랄 수밖에 없구나… 하지만 이제부터 너는 나를 잊어야 한다. 그래 무엇을 갖고 가는 거냐?"
"저는 막내아들이에요. 그러니 유산 따위를 나눠달라고 할 수도 없죠. 그건 형님도 잘 아실 텐데요? 그래서 저는 맨주먹으로 떠납니다."
"오히려 그게 더 나을 거다."
"그런데 창밖으로 무얼 보고 계신 겁니까?"
"우리 조상들이 누워 계신 땅, 그곳 말이다…"
"형님!"
소년은 침대에서 일어나 탕자의 목을 껴안았다. 그의 목소리처럼 그의 팔도 아직 부드러웠다.
"우리 지금 함께 떠나자구요."
"나는 이제 그만 내버려두렴! 나는 이제 집에 남아서 너 때문에 상심하실 어머니를 위로해드려야 한다. 그리고 내가 없어야 너는 더욱 용감해질 수 있을 거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구나. 사방이 밝아오지 않으냐? 이젠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해라. 얘, 이리 와서 나를 안아다오.
너는 나의 모든 희망을 짊어지고 가는 거야. 부디 용기를 갖고, 집에 남은 사람은 잊어버려라. 나도 너를 잊어버리마. 부디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해라. 나갈 때는 발걸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걸어라. 내가 등을 밝혀 주마."
"대문까지 바래다주세요."
"현관 계단을 내려갈 때 조심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