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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eo Falcone 

메리메 

 

[소개]

사나이다운 용기에 대한 감수성... 그것은 서양 역사에서 뿌리가 깊다. 기사들의 전설에서 비롯해 아직까지도 유효한 신사도 정신에 이르기까지. 람보나 슈퍼맨 같은 헐리웃 영화의 단골 소재도 그 뿌리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단편 소설에서는 그러한 감수성이 코르시카 지방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전형을 보여준다. 코르시카와 거기서 멀지 않은 시실리 섬 주민들은 분위기나 정서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시실리가 마피아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며 읽으면 또 다른 흥미가 생길지도 모른다.


[작가 소개]

P. 메리메(Prosper Me'rimee, 1803-1870) : 프랑스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 스탕달의 친구이며, 그의 영향을 받아 냉혹하리만큼 자기 의사를 배제한 문체로 격렬한 정열을 그려냈다. 대표작으로 단편집 <모자이크(1833)>, 장편으로 <콜롬바(1840)>, <카르멘(1845)> 등이 있다.


포르트 벡쿄 읍내에서 서북쪽을 향하여 섬 안으로 들어가면 땅이 급한 경사를 이루며 높아진다. 거기에서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넘고, 구덩이 때문에 가끔 끊어져 있는, 꾸불꾸불한 오솔길을 세 시간쯤 걸어가면 광대한 마키(잡목림) 근처에 이르게 된다. 마키는 코르시카의 양치는 목동이나, 경찰의 추적을 받는 무법자들의 고향이다.

코르시카 농민은 밭에 거름을 주는 대신 이 숲에 불을 지른다. 불이 필요 이상으로 퍼져도 할 수 없다. 그냥 될 대로 되도록 내버려둘 뿐이다. 울창했던 나무의 재로 땅이 비옥하게 되면 씨를 뿌린 수확이 좋아지는 것이다. 보리 이삭을 뽑은 후 귀찮게 시간을 들여 보리 짚을 일일이 베어내지 않고 내버려 두면, 땅 속의 타다 남은 뿌리에서는 다음 해 봄에 잔뜩 퍼진 새 가지가 나와서 몇 년 지나면 7,8척의 높이로 자란다.

마키란 이렇게 우거진 잡목 숲인 것이다. 별의별 나무와 관목이 함부로 뒤섞여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숲에 길을 내려면 도끼로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된다. 들의 양들도 지나갈 수 없을 만큼 빽빽하게 우거진 마키도 몇 군데 있다.

만일 여러분이 살인이라도 하거든, 포르트 벡쿄의 마키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좋은 총과 화약과 탄알만 있다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두건이 달린 고동색 외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불과 요 대신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양 치는 목동들은 여러분들에게 양젖과 치즈 등을 판다. 탄약을 사러 동네로 내려갈 때는 별도지만, 경찰이나 죽은 자의 친척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18xx년 내가 코르시카에 머무르고 있던 당시, 마테오 팔코네는 이 마키에서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집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방에서는 상당히 부유한 편이었으며 귀족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축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살고 있었다. 목동들이 가축을 산 위로 이리저리 유목민처럼, 풀을 먹여 가며 데리고 다닌다. 내가 이 사나이와 만난 것은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후였지만, 기껏해야 50세 정도로 보였다. 몸집은 작았으나 튼튼하게 꽉 짜인 모습이었다. 새까만 곱슬머리, 매부리코, 엷은 입술, 크고 날카로운 눈, 구두 뒤창과 같은 피부 색깔 - 이런 사나이를 상상하면 된다.

이 지방엔 워낙 뛰어난 사수가 많지만, 그의 사격 솜씨는 그 가운데서도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마테오는 산양을 쏠 때, 사슴을 잡는 큰 산탄을 쓰는 법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120 걸음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머리든 어깨든, 자기가 쏘고 싶은 곳을 겨누어 한 방으로 맞추곤 했다. 밤중에도 낮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그는 총을 잘 쏘았다.

그의 총 쏘는 솜씨가 뛰어났다는 사례로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온다. 코르시카를 여행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은 아마 터무니 없는 거짓말로 여길지도 모른다. 캄캄한 밤에 80 걸음 떨어진 곳에 접시 만한 종이를 세워놓고 그 뒤에 촛불을 켜 놓는다. 마테오가 거기 겨냥한 후 다른 사람이 그 불을 끈다. 그리고 1분 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4발 가운데 3발은 그 세워놓은 종이를 뚫는다는 것이다.

이런 솜씨로 해서 마테오 팔코네는 대단히 평판이 높았다. 다른 사람들로 보자면 벗으로서는 믿음직하지만, 적으로 돌리면 위험한 존재인 셈이다. 남의 일을 잘 돌봐주기도 하고 자선도 하며 포르트 벡쿄 지방에서 일반 세상과 별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살고 있었다.

코르트의 읍내에 있을 무렵(이 코르트에서 그는 아내를 얻었다) 그는 사랑의 경쟁자를 대담무쌍하게 해치워 버렸다고 한다. 경쟁자 역시 연애에 있어서나, 결투에 있어서 결코 팔코네에 뒤지지 않는 만만치 않은 사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나이가 창가에 조그마한 거울을 걸어놓고 면도를 하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 총알이 한 방 날아와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그 총을 마테오가 쐈다는 것이 이 지방의 소문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이 잠잠해질 무렵 마테오는 결혼했다. 아내 주제파는 내리 딸만 셋을 낳았다. 그래서 마테오는 무척 화를 냈다. 그러나 마침내 아내는 사내 아이를 낳았다. 그는 이 사내 아이에게 폴츄나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집의 대를 이을 아이이며 일가의 희망이었다. 딸들은 모두 좋은 곳에 시집을 가서, 일단 유사시에는 단도나 소총을 든 사위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아들은 겨우 열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아버지의 훌륭한 소질이 엿보였다.

어느 가을날, 마테오는 마키의 빈 땅에 놓아 먹이는 가축을 돌아보기 위해 아내를 데리고 아침 일찍부터 외출했다. 어린 폴츄나트도 함께 따라가겠다고 졸랐으나 거리도 멀고, 누구든 집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한 것이 잘한 것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

부모가 외출한 후 너덧 시간이 지났다. 어린 폴츄나트는 햇볕이 잘 쪼이는 곳에 조용히 누워서, 푸르게 굽이치는 산들을 바라보면서 오는 일요일에는 읍내의 카포라르 백부 댁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얻어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그의 명상을 깨뜨리고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총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불규칙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두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 총소리는 점점 집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들판에서 마테오의 집으로 통하는 오솔길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 사나이는 산에 사는 사람들이 쓰고 다니는 그 뾰족한 모자를 쓰고 수염 투성이 얼굴에 헤어진 옷을 걸치고 총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에 허벅다리에 한 방 맞았던 것이다.

이 사나이는 '산 속으로 도망쳐 들어간 무법자'였다. 밤을 타서 읍내로 화약을 사러 나왔다가 잠복하고 있던 코르시카의 헌병에게 들켰던 것이다. 완강한 저항해서 간신히 혈로를 뚫고 나왔으나 헌병들은 맹렬히 추격해왔다. 무법자는 바위에서 바위로 몸을 숨기며 때로는 마주 총을 쏘아가며 여기까지 빠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군인들을 완전히 따돌리지 못했다. 특히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체포되지 않고 마키에 도착하기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사나이는 폴츄나트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너는 마테오 팔코네의 아들이지?"

"그래요."

"난 자네트 상피에르다. 노란 깃(당시 헌병의 제복은 카키 복에 노란 깃을 달고 있었다)을 단 놈들이 쫓아오고 있다. 날 숨겨다오. 난 이제 걸을 수 없어."

"아버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아저씨를 숨겨주면,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지 몰라?"

"틀림없이 참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하실 게다."

"글쎄?"

"야, 빨리 숨겨다오. 빨리! 놈들이 온다."

"아버지가 올 때까지 기다려요."

"뭐 기다리라구? 바보 같은 소리 말아! 놈들은 5 분도 지나기 전에 여기로 온다. 자, 빨리 숨겨다오! 안 그러면 죽일 테다."

폴츄나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저씨 총은 탄알도 없는 빈 총 같은데? 아저씨의 띠(탄약집도 되고 지갑도 되는 가죽띠)에도 탄알이 없지 않아?"

"단도가 있다."

"그렇지만 나처럼 빨리 뛸 수 있어요?"

아이는 훌떡 뛰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가 섰다.

"넌 마테오 팔코네의 아들이 아니구나! 네 집 앞에서 내가 잡히게 내버려 둘 작정이냐?"

이 말에 아이는 마음이 흔들린 것 같았다.

"아저씨를 숨겨 주면 뭘 줄 테야?" 아이는 가까이 오면서 물었다.

무법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뒤져, 화약을 사려고 아껴 두었던 5 프랑 은화를 한 닢 꺼냈다. 폴츄나트는 은화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그것을 나꿔 채고는 자네트에게 말했다.

"걱정 말아요, 아저씨."

아이는 집 옆에 놓인 마른 풀 더미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자네트가 그 안에 쭈그리고 앉자, 아이는 숨 쉬기 좋도록 약간 공기가 통하게 하고, 이 풀 더미에 사람이 숨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도록 구멍을 틀어 막았다. 거기다가 또 상당히 시골 아이다운 교묘한 생각을 해냈다. 풀 더미가 아까부터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암고양이와 새끼들을 데려다가 그 위에 올려 놓은 것이다. 그리고 집 근처 길의 핏자국을 조심스럽게 흙으로 덮었다. 일을 다 끝내자 아이는 시치미를 뚝 떼고 다시 양지쪽에 드러누웠다.

몇 분이 지나 노란 깃을 단 카키색 군복을 입은 6명의 사나이가, 한 특무상사의 지휘를 받으며 마테오의 집 어귀까지 왔다. 이 특무상사와 팔코네와는 먼 친척이 되는 사이였다. 아시다시피 코르시카에서는 다른 지방보다 훨씬 먼 일가친척까지 다 따진다. 이 사나이는 치오드르 감바라는, 수완이 좋은 사나이로 산 속의 무법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야, 잘 있었니? 많이 컸구나! 지금 막 사람이 하나 지나가는 걸 봤지?" 그는 폴츄나트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

"아냐, 난 아직 아저씨만큼 크지 못했어." 아이는 멍청하게 말했다.

"이제 곧 그렇게 되겠지. 그런데 사람 하나 지나가는 걸 보지 못했니? 너."

"사람이 하나 지나가는 걸 봤느냐구요?"

"응, 검은 뾰족 모자를 쓰고 빨강과 노랑 무늬가 있는 윗도리를 입은 남자 말이야."

"검은 뾰족 모자를 쓰고 빨강과 노랑 무늬가 있는 윗도리를 입은 남자?"

"응, 그래. 빨리 말해. 내 말을 되풀이하지 말고."

"오늘 아침 신부님이 말을 타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갔어. 아버지는 잘 계시냐고 하길래, 난 그 신부님에게 말해 주었어..."

"에이, 건방진 녀석. 시치미를 떼고 있어! 자네트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빨리 말하란 말이다. 우린 그 놈을 찾고 있어. 그 놈이 이 길을 지나간 것을 나는 다 알고 있어."

"알기는 뭘 알아?"

"뭘 아느냐고? 난 네가 그 놈을 본 것도 알고 있단 말이야."

"잠을 자고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나?"

"넌 자고 있지 않았어. 이 고약한 녀석아! 총 소리에 깨어 있었단 말이야."

"아저씨 총 소리가 그렇게 클 거라고 생각해? 우리 아버지 나팔 총은 더 큰 소리를 낸단 말이야."

"할 수 없는 녀석이군. 요 나쁜 자식! 네가 자네트를 본 건 확실해. 뿐만 아니라 아마 네가 숨겼을 거야. 자, 너희들 이 집에 들어가서 그 놈이 있나 뒤져봐라. 그 놈은 한 쪽 다리밖에 쓰지 못하거든. 그 놈은 약아빠져서 그 몸으로 절룩거리며 마키에 가려고 그러지는 않을 거야. 더구나 핏자국도 여기에서 그치고 있어."

"하지만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까? 아버지가 없는 틈에 사람들이 집안을 뒤졌다면 뭐라고 하실지 몰라?" 폴츄나트는 냉소하며 말했다.

"이 건방진 놈아!" 감바 특무상사는 아이의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봐, 내가 하려고 들면 얼마든지 너를 자백시킬 방법이 있어. 칼 등으로 스무 대쯤 때리면 너도 실토 안하곤 못 배길 걸."

그러나 폴츄나트는 여전히 비웃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마테오 팔코네란 말이야!" 그는 힘을 주어 말했다.

"이봐, 꼬마 녀석아. 난 너를 코르트나 바프차에 끌고 갈 테다. 발에 쇠고랑을 채워 감옥의 짚 위에 뒹굴게 할 거야. 자네트 상피에르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으면 기요틴에 올려 놓겠단 말이다."

아이는 이 바보 같은 위협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렇게 되풀이했다.

"우리 아버지는 마테오 팔코네란 말이야."

"특무상사 님, 마테오하고 맞서는 일은 하지 맙시다." 헌병 가운데 하나가 속삭였다.

감바는 난처했다. 그는 사병들과 낮은 소리로 의논했다. 그들은 이미 온 집안을 다 뒤져본 뒤였다.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코르시카 사람들의 집은 대부분 사각형의 방 하나뿐이다. 가구라고 해봐야 식탁과 의자, 궤짝과 사냥 도구, 부엌 도구 정도다. 그 동안 조그만 폴츄나트는 암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선발병과 감바의 난처한 모습을 심술궂게 즐기고 있었다.

한 병사가 마른 풀 더미로 다가갔다. 암고양이를 보더니 자기의 의심이 우습게 느껴져 그는 어깨를 움츠리고 아무렇게나 건초더미를 총검으로 찔렀다.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 얼굴엔 털끝 만큼도 흔들리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

특무상사와 그 부하는 거의 단념한 상태였다. 이미 그들은 오던 길로 되돌아가려는 듯 들판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휘관은 팔코네의 아들에게는 협박 같은 건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최후의 노력으로 회유와 뇌물의 힘을 한 번 시험해 보려고 마음 먹었다.

"너는 정말 빈틈 없는 아이로구나! 넌 머지않아 훌륭한 아이가 될 거야. 그러나 나를 놀리면 못쓴다. 만일 마테오 형님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만 아니라면 너를 당장 잡아갈 거란 말이야!"

"흥!"

"형님이 돌아오면 내가 그냥 돌아간 이유를 설명해줄 거야. 그러면 너는 거짓말을 한 죄로 피가 나도록 회초리로 얻어맞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임마, 두고 봐... 야, 그러나 말이다... 정직하게 말해봐. 그러면 내가 너에게 선물을 하나 줄 테니 말이다."

"난, 아저씨에게 충고하겠어요. 다른 게 아니고, 아저씨들이 이 이상 더 여기서 얼쩡거리면, 자네트가 마키로 들어가버릴 거에요. 그렇게 되면 아저씨들 같은 사람들이 몇 사람씩 더 잡으러 가야 하지 않아요?"

특무상사는 호주머니에서 10 에큐 정도 나갈 은시계를 꺼냈다. 폴츄나트의 눈이 그 은시계를 보고 반짝이는 것을 그는 재빨리 알아챘다. 그는 강철 시계줄을 붙잡고 시계를 흔들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임마! 이런 시계를 목에 걸어 보고 싶지? 이 시계를 목에 걸고 포르트 벡쿄의 거리를 공작새처럼 산보하는 거야. 그러면 모든 사람이 너에게 묻겠지. '지금 몇 시에요?'하고 말이다. 그러면 너는 그 녀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내 시계를 보시오'하고 말이야."

"내가 크면 후제 카포라르 아저씨가 시계를 준다고 했어."

"암, 그렇지. 그러나 아저씨 아들은 벌써 시계를 가지고 있는 걸... 물론 이것만큼 근사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너보다 더 어리단 말이야."

어린아이는 한숨을 쉬었다.

"어떠냐? 이 시계를 갖고 싶지 않니?"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폴츄나트의 모습은 병아리를 통째로 눈 앞에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같았다. 자기가 놀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양이는 쓸 데 없이 발톱을 대지는 않고, 유혹에 저항해 이따금 눈길을 돌려버리곤 한다. 그러나 혀를 계속 내밀면서 주인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당신은 정말 잔인한 농담을 하는군요..."라고.

그러나 감바 특무상사는 자기 시계를 진짜로 폴츄나트에게 주려는 것 같다. 폴츄나트는 손을 내밀지 않았지만, 쓰디 쓴 웃음을 띄우며 이렇게 말했다.

"왜 나를 놀리는 거야?"

"천만에... 놀리기는. 자네트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가르쳐주면 이 시계는 네 것이 되는 거야."

폴츄나트는 의심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특무상사의 눈을, 자기의 검은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상대방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지 알아내려고 했다.

"만일 그 후에 이 시계를 너에게 주지 않으면, 내 견장을 잡아 뜯어버려도 좋다." 특무상사는 큰 소리로 외쳤다.

"내 부하들이 증인이다. 이렇게 하고도 약속을 어길 수는 없지 않겠니?"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시계를 차츰 아이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마침내 시계는 어린아이의 뺨에 거의 닿을 지경이었다.

아이의 얼굴에는 시계를 갖고 싶은 마음과 숨겨 준 자에 대한 의리가 서로 갈등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앞가슴은 심하게 뛰었고 마치 숨이 막히는 듯 했다.

시계는 여전히 좌우로 흔들리면서 빙빙 돌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의 코 끝에 닿기도 했다. 마침내 그의 오른손은 조금씩 조금씩 시계를 향해 뻗어갔다. 손 끝이 시계에 닿았다. 특무상사가 시계줄을 놓지 않았지만, 그는 손으로 시계의 그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문자판은 하늘색이었다... 테두리는 윤이 난다... 햇볕을 받아 마치 불에 타는 것 같다... 유혹은 너무 강했다.

폴츄나트는 왼손을 들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어깨 너머로 넘겨, 자기가 기대고 있는 마른 풀 더미를 가리켰다. 특무상사는 금방 알아챘다. 그는 시계줄을 놓았다.

폴츄나트는 시계가 자기 것이 된 것을 알았다. 사슴처럼 몸도 가볍게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마른 풀 더미에서 열 발자국쯤 떨어져 갔다.

선발병들은 즉시 마른 풀 더미를 허물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른 풀더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사나이가 단도를 손에 들고 나왔다. 그는 일어서려고 했으나 상처 때문에 이미 서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쓰러졌다. 특무상사는 달려들어 단도를 빼앗았다. 사나이는 반항했으나 이내 꽁꽁 묶이고 말았다.

장작처럼 묶여서 땅에 나뒹군 자네트는 다가오는 폴츄나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네가 마테오의..." 그는 분노보다 모멸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아이는 이미 가질 자격이 없어진 그 은화를 무법자에게 내던졌다. 그러나 무법자는 그것을 모르는 척했다. 그는 냉정하게 특무상사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감바, 난 걷지 못한다. 동네까지 둘러메고 가 다오."

"이 녀석 보게. 아까까지만 해도 사슴 새끼보다 더 빨리 뛰더니..." 잔인한 승리자는 대답했다.

"하지만 좋다. 안심해. 너를 잡아서 기분이 좋다. 그러니 십 리쯤 업고 가도 상관없다. 어쨌든 말이야, 나무 가지와 네 외투로 들것을 만들어 주지. 그리고 그레스포리의 농가에 가서 말을 구해 주마."

"좋다." 무법자는 말해다. "그리고 들것에는 짚을 좀 깔아서 편하게 해주게나."

헌병들이 한편에서는 밤나무 가지로 들것을 만들고, 한편에서는 자네트의 상처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을 때 별안간 마테오 팔코네와 그 아내가 마키로 통하는 오솔길 모퉁이에 나타났다. 아내는 밤이 든 커다란 자루를 메고, 무겁게 등을 구부리고 이리로 온다. 그녀의 남편은 손에 한 자루의 총만 들고, 다른 한 자루는 어깨에 메고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다. 무기 이외에 무거운 짐을 진다는 것은 코르시카 남자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일인 것이다.

병사들을 보자 마테오는 대뜸 그들이 자기를 잡으러 온 것 아닌가 의심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마테오가 관헌과 무슨 시비라도 저질렀던가? 아니다. 그는 평판이 좋은 사나이다. 소위 '이름이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코르시카 사람이며 산에 사는 주민이다. 그리고 산에 사는 코르시카 사람 치고 기억을 잘 더듬어 보면, 총으로 누구를 쏘았다거나, 단도로 찔렀다거나, 그밖에 사소한 죄라고 할 수 있는 과실이 전혀 없는 자는 거의 없다. 마테오는 스스로 다른 자들보다 결백하다고 여기고 있다. 십 년 이상 남에게 총을 쏜 일이 없다. 그러나 그는 신중했다. 만일의 경우에는 당당히 대항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여보, 자루를 내려놓고 준비해요." 그는 주제파에게 말했다.

아내는 즉시 시킨 대로 했다. 그는 둘러메고 있던 총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내에게 주었다. 손에 들고 있던 총의 공이치기를 올리고, 길가의 가로수를 따라 서서히 집쪽으로 다가갔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먼저 공격해오는 기색이 보이면, 굵은 나무 뒤로 뛰어들어 거기서 안전하게 총을 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다. 아내는 다른 총 한 자루와 탄약 통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아내의 할 일은 남편의 총에 탄환을 재어주는 일인 것이다.

특무상사는 마테오가 총을 겨누고 방아쇠에 손을 대고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 불안해졌다.

'만일 마테오가 자네트의 친척이든가 친구라면... 그리고 그 놈을 돕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의 두 자루 총이 우체부가 편지 배달하듯 영락없이 우리 가운데 두 사람을 쏘아 맞출 텐데... 내가 친척이라도 해도 상관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는 생각했다.

당황한 끝에 그는 대단히 용감한 결심을 했다. 잘 아는 처지인 것처럼, 그에게 먼저 접근하여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 먹고 걸어가면서도 마테오와의 짧은 거리가 엄청나게 먼 것처럼 느껴졌다.

"아, 형님!" 그는 외쳤다.

"안녕하세요? 납니다. 사촌 감바입니다."

마테오는 한 마디도 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말을 계속함에 따라 차차 총구를 올리고, 특무상사가 그 앞에 왔을 때는 완전히 총구를 하늘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상당히 오래간만이군요."

"오래간만이군."

"지나는 길에 형님과 형수에게 인사하려고 들렀어요. 오늘 우린 꽤 많이 걸었지만 그만한 결과를 얻었어요. 지금 막 자네트 상피에르를 체포했거든요."

"잘됐군요!" 주제파가 외쳤다. "그 녀석이 지난 주에 우리 집 젖 산양을 한 마리 훔쳐갔어요."

이 말을 듣고 감바는 기분이 훨씬 가벼워졌다.

"가엾게도 배가 고파서 그랬던 거야." 마테오는 말했다.

"그 자식, 사자처럼 날뛰었어요." 특무상사는 약간 약이 올라 말을 이었다. "내 부하 헌병을 하나 죽이고, 더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샤르튼 하사의 팔도 부러뜨렸어요. 하기야 별 상관은 없지요. 그 친구는 어쨌든 프랑스 놈이니까... 그리고 그 녀석, 너무 교묘하게 숨어서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뻔했어요. 폴츄나트가 아니었더라면 못 찾았을 거에요."

"폴츄나트라고?" 마테오가 외쳤다.

"폴츄나트라구요?" 주제파도 따라서 외쳤다.

"그래요. 자네트는 저 마른 풀 더미 속에 숨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애가 내게 가르쳐 줬거든요. 그래서 가포랄 아저씨에게, 상으로 훌륭한 선물을 그 애에게 주도록 얘기할 생각입니다. 그 애와 형님 이름을 담당 검사님에게 보내는 보고서에 써 두겠습니다."

"저 바보 같은 자식이..." 마테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 사람은 병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왔다. 자네트는 이미 들것에 누워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그는 감바와 같이 오는 마테오를 보자 야릇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집의 문을 향해, 이렇게 말하며 침을 탁 뱉었다.

"배신자의 집이다."

팔코네에게 배신자라는 말을 감히 하려면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번 휘두를 필요도 없이 그의 단도가 단 일격으로 즉시 그 모욕에 답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는 마테오는 마치 짓밟힌 것처럼 이마에 손을 얹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폴츄나트는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을 보자 집안으로 들어갔다. 즉시 우유를 한 잔 가지고 나오더니 눈을 내리깔고 자네트에게 내밀었다.

"저리 치우지 못해!" 무법자는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병사 한 사람에게 "형씨, 나 물 좀 주게"하고 말했다.

병사는 그의 손에 수통을 쥐어주고, 범인은 조금 전까지 맞대고 총질을 하던 사나이가 주는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서 그는 두 손을 등 뒤에서 묶지 말고 가슴 위에 묶어달라고 부탁했다.

"좀 편하게 눕고 싶어서 그래."

사람들은 얼른 그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다. 특무상사는 출발 신호를 하고 마테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 마테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 빠른 걸음으로 들판으로 내려갔다.

마테오가 입을 연 것은 십 분 가까이 지나서였다. 아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기도 하고 아버지를 쳐다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총을 짚고 서서 분노에 찬 표정으로 아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처음 한 일 치고는 썩 솜씨가 좋구나!" 마침내 마테오는 조용하게,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에게는 정말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버지의 무릎에 매달리려는 듯 앞으로 나오면서 외쳤다.

그러나 마테오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가까이 오지 마!"

아이는 아버지에게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흐느꼈다.

주제파가 다가왔다. 그녀는 폴츄나트의 셔츠에 시계줄이 한 가닥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시계 누가 줬니?" 그녀는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특무상사 아저씨가..."

팔코네는 시계를 끄집어 내더니 돌에 던져서 박살을 내버렸다.

"여보, 이 녀석이 내 자식 맞나?"

주제파의 거무스름한 뺨이 벽돌처럼 빨개졌다.

"뭐라구요? 마테오, 누구를 보고 하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이 자식은 우리 집 핏줄을 받은 것 중에서는 최초의 배신자야."

폴츄나트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더 커졌다. 팔코네는 여전히 삵쾡이 같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총 개머리판으로 땅을 툭툭 치고는 총을 어깨에 메고 폴츄나트에게 따라오라고 소리쳤다. 그는 마키로 가는 길로 걷기 시작했다. 아이는 따라갔다.

주제파는 마테오를 쫓아가 그 팔을 잡았다.

"이 애는 당신 자식이에요." 그녀는 남편이 마음 속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는 듯, 검은 눈으로 남편의 눈을 응시하고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상관 마, 나는 이 놈의 애비야." 마테오는 대답했다.

주제파는 아이에게 키스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마리아 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정신 없이 기도했다. 그 동안 마테오는 오솔길을 거의 2백 걸음 정도 가서 조용한 분지에 이르자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그리로 내려갔다. 총개머리판으로 땅을 두들겨 보니 땅이 물러서 구덩이를 파기 쉬울 것 같았다. 이 장소가 딱 적당할 것 같다.

"폴츄나트, 저 돌 옆으로 가라."

아이는 그 말대로 하고 그리고는 무릎을 꿇었다.

"기도를 해."

"아버지, 아버지... 죽이지 마세요."

"기도를 하란 말이야!" 마테오는 무서운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아이는 흐느껴 울면서 입 속으로 중얼중얼, 파텔(가톨릭의 천주경) 주기도문의 첫 구절과 그레도(가톨릭 종도신경의 첫 구절)를 외었다. 아버지는 하나하나 기도 구절이 끝날 때마다 굵은 목소리로 '아멘'하고 함께 외었다.

"네가 아는 기도문은 그것 뿐이냐?"

"아버지, 또 아베마리아 첫 구절과 아주머니한테 배운 기도문을 알고 있어요."

"그건 좀 길다. 그래도 좋다. 그것도 해라."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기도문을 다 외웠다.

"이제 다 한 거냐?"

"아버지,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이제 다시는 안 그럴께요! 카포랄 아저씨에게 자네트를 용서해달라고 내가 가서 열심히 사정할께요!"

아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테오는 총의 방아쇠에 손을 대고 겨냥하면서 말했다.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라!"

아들은 일어나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무릎을 얼싸안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마테오는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폴츄나트는 퍽 쓰러져 이내 숨을 거뒀다.

마테오는 그 시체를 보지도 않고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들을 파묻기 위해 삽을 가지러 가는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총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달려오는 주제파와 마주쳤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에요! 여보!" 아내는 외쳤다.

"판결을 내렸소."

"애, 애는 어디에...?"

"저기에 있소. 지금 파묻으려는 거요. 그놈은 신자로서 죽었소. 미사를 드려 줍시다. 사위 치오도르 비앙키에게 함께 와서 살잔다고 전하시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