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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ort Happy Life of Francis Macomber


E. 헤밍웨이

[소개]

남자라면 누구나 이런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을까. 여러 사람, 특히 아내 앞에서 자신의 가장 비겁한 모습을 보여버린 남자... 이 남자는 남편으로서도,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도 위엄과 자신감을 유지할 수 없다. 그는 발가벗겨진 것 같다. 인생의 원래 모습은 이렇게 잔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짧고 행복한 생애는 바로 그러한 순간이었다. <노인과 바다> 등에서 헤밍웨이가 즐겨 묘사한, '패배하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형을 단편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느낌이다.


[작가 소개]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8-1961) : 미국의 소설가. 10대 때 언론계에 들어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위생부대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했으며 이때 포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전후 창작을 시작, 독특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구사했으며 소위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61년 7월 엽총을 손질하다가 오발로 사망한 것으로 발표됐으나 자살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대표작으로는 <무기여 잘있거라>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점심때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사로운 표정으로 모두들 이중 천으로 만들어진 초록색 식당 텐트 속에 모여 앉았다.

"라임 주스로 하겠소, 아님 레몬 스콰시로 하시겠소?"

매코머가 물었다.

"나는 짐레트로 하지요." 로버트 윌슨이 대답했다.

"저도 짐레트로 할래요. 무어라도 좀 마셔야겠어요." 매코머의 아내가 말했다.

"그게 좋을 것 같군." 매코머도 찬성했다.

"짐레트로 세 잔 줘."

식당 보이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텐트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보이는 그 바람을 받아 흠뻑 젖어 있는 냉각용 가죽 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냈다.

"저 사람들에게 얼마나 주면 될까?" 매코머가 물었다.

"일 파운드만 주면 충분합니다." 윌슨이 대답했다. "버릇을 나쁘게 하면 안되니까요."

"추장이 나누어줄까?"

"그럼요."

프랜시스 매코머는 반 시간 전에 요리사, 보이, 가죽 벗기는 사나이, 그리고 인부들의 팔과 어깨 위에 올려 얹혀져 캠프 끝에서 여기 텐트까지 의기양양하게 운반돼 왔다. 엽총 운반인들은 이 개선 행렬에 끼어들지 않았다. 토인 소년들이 그를 텐트 문앞에 내려놓자, 그는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축하를 받았다.

그는 그러고 나서 텐트 속으로 들어가 아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내는 잠시 후 들어와서도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는 곧 밖으로 나가 휴대용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식당 텐트로 건너갔다. 거기 앉아 그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늘 밑 안락의자에 앉았다.

"드디어 사자를 잡은 겁니다." 로버트 윌슨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 엄청난 놈이지요."

매코머 부인이 힐끗 윌슨을 쳐다보았다. 여자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오 년 전만 해도 그녀는 화장품 광고에 자신의 사진을 넣는 모델료로 오천 달러를 받기도 했다. 물론 그녀는 그 화장품을 한 번도 써본 일이 없다. 그녀는 아직도 그러한 미모와 사교계에서의 위치를 아직 유지하고 있었다.

여자가 프랜시스 매코머와 결혼한 지 이제 십 년 하고도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아주 굉장한 사자였지?" 매코머가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여자는 마치 이 두 사나이를 처음 보는 것처럼 그들을 쳐다보았다. 둘 중 하나인 백인 사냥꾼 윌슨을 여자는 여태까지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윌슨은 머리카락이 모래빛이고 입 주위 수염이 무성한, 중키의 사나이였다. 얼굴이 몹시 붉고, 파란 눈은 무척 싸늘해 보였다. 눈가에 희미한 주름이 잡혀 웃을 때 고름이 패이는 것이 유쾌한 인상을 주었다.

그 윌슨이 지금 여자에게 미소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그의 억센 어깨부터 쭉 훑어 내려갔다. 헐렁한 웃옷 왼쪽 호주머니 자리에 커다란 탄약 상자가 네 개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여자는 햇빛에 그을린 갈색 손등을 거쳐 낡은 바지와 흙투성이 장화를 훑은 뒤, 다시 그의 붉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햇빛에 그을린 밤색 얼굴 윗 부분이 모자의 자취 때문에 둥그렇게 하얀 선을 그려놓고 있었다. 그의 스테트슨 모자는 지금 텐트 기둥 못에 걸려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사자를 위해 축배를 듭시다." 로버트 윌슨이 말했다. 그는 또다시 여자에게 미소를 던졌다. 여자는 따라서 미소를 짓지도 않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초리를 남편에게 돌렸다.

프랜시스 매코머는 키가 무척 크고, 뼈대가 굵지는 않았지만 무척 당당한 체격이었다.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거무스름했고 머리칼은 뱃사람들처럼 짧게 깎았다. 입술이 다소 엷은 편이지만 그만하면 미남자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윌슨이 입은 것과 같은 사냥복을 입고 있었지만 윌슨 것보다는 새것이었다. 나이는 서른 다섯, 늘 건강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몸의 상태는 무척 좋았다.

그는 테니스를 잘하고 낚시에도 취미가 있어 큰 고기를 낚은 기록이 몇 개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조금 전에, 그는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만 겁쟁이의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 사자를 위해서..." 그는 말했다.

"당신 도움이 너무 컸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의 아내 마카레트는 남편에게서 눈을 돌리고 윌슨을 돌아보았다.

"사자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합시다." 여자가 말했다.

윌슨은 미소를 띄우지도 않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여자쪽에서 그에게 미소를 던졌다.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낮에는 천막 속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어야 했겠죠?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던가요?"

"쓰고 있는 게 좋죠." 윌슨이 대답했다.

"얼굴이 정말 붉으시군요, 윌슨 씨." 여자가 이렇게 말하고 다시 웃음을 던졌다.

"술 때문이죠."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프랜시스도 술이야 늘 많이 마시지만 얼굴은 전혀 붉어지지 않거든요."

"나도 오늘은 얼굴이 붉어졌어." 매코머는 농담을 하려고 했다.

"아뇨." 마가레트가 부인했다. "오늘은 제가 얼굴이 붉어졌지요. 그러나 윌슨 씨는 언제나 얼굴이 붉어요."

"아마 인종이 다른 모양입니다." 윌슨이 말했다.

"하지만 제 이 잘생긴 얼굴을 놓고 험담하려고 그러시는 건 아니겠죠?"

"이제 겨우 얘기를 꺼냈을 뿐이에요."

"그만 집어치웁시다." 윌슨이 말했다.

"이야기가 점점 어려워지는군요." 마가레트가 말했다.

"어리석은 얘긴 집어치워, 마고트." 여자의 남편이 말했다.

"별로 곤란한 얘긴 아닙니다." 윌슨이 말했다.

"그저 굉장한 사자를 한 마리 잡았을 뿐이죠."

마고트는 두 사나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두 사나이는 그녀가 울상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윌슨은 아까부터 그녀가 울지나 않을까,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매코머는 그걸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그런 창피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여자는 울먹거리며 자기 텐트로 가버렸다. 울음 소리를 내지는 않았으나 입고 있는 장미빛 열대 셔츠 밑으로 두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이 보였다.

"여자들은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가 봅니다." 윌슨은 키 큰 사나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말입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별 것 아닌 것에도 마음이 쓰이곤 하는 거지요."

"아니오." 매코머가 말했다. "나도 앞으로 일생 동안 그 일 때문에 고민하게 될 것 같소."

"쓸데없는 소리... 사냥꾼다운 배짱을 가져야 합니다." 윌슨이 말했다. "모두 다 잊어버리세요. 그 일 따위는 전혀 상관 없어요."

"잊어버리려고 애는 쓰겠어. 하지만..." 매코머가 말했다. "당신이 나를 위해서 해준 일은 잊지 못할 거야."

"원, 천만의 말씀. 별로 대단치도 않은 걸 가지고..." 윌슨이 말했다.

가지가 벌어진 몇 그루 아카시아나무 그늘에 캠프가 있었다. 그들은 그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아카시아나무 뒤에는 바위가 드러난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 앞으로는 풀밭이 돌멩이 투성이인 냇물 언덕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에 숲이 보였다.

심부름꾼들이 점심 식탁을 차리는 동안 두 사나이는 마주 앉아 차가운 라임주를 마시면서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윌슨은 심부름꾼들도 그 사건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코머의 시중을 드는 심부름꾼이 테이블에 접시를 늘어 놓으며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주인을 살폈다. 윌슨은 그걸 보고 스와힐리 말로 심부름꾼을 나무랐다. 심부름꾼은 무표정한 얼굴을 외면하고 가버렸다.

"뭐라고 그런 거요?" 매코머가 물었다.

"별 것 아니오.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열 몇 대 후려갈기겠다고 했지요."

"그게 무슨 말이지? 매질을 한다는 거요?"

"불법이지요." 윌슨이 말했다. "당신이라면 매를 드는 대신 토인들에게 벌금을 물리겠지만..."

"당신은 아직 토인들을 때린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토인들도 정 불만이면 온통 난리법석을 떨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녀석들은 벌금을 내느니 차라리 매를 맞는 걸 더 좋아하지요."

"거 참 이상하군." 매코머가 말했다.

"전혀 이상할 것 없어요." 윌슨이 말했다.

"당신 같으면 어느쪽을 고르겠소? 매를 맞겠소, 아님 돈을 덜 받겠소?"

그런 질문을 던져놓고도 어쩐지 기분이 거북했다. 그래서 그는 매코머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사실 어떤 점에서는 우리도 매일 못 볼 꼴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이것도 역시 이상하다. '빌어먹을...' 그는 생각했다. '내가 무슨 중재자라고 나서는 꼴 아닌가.'

"그렇지, 우리도 실상 못 볼 꼴을 보는 셈이지." 매코머는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말했다.

"나는 그놈의 사자 사건 때문에 정말 미치겠어. 설마 소문이 더 이상 퍼지지는 않겠지? 누구 다른 사람 귀에 그 얘기가 들어가는 것 아닐까?"

"내가 마사이까 클럽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까 봐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요?" 윌슨은 쌀쌀하게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이 작자는 굉장한 겁쟁이일 뿐만 아니라 또 체면치레도 대단한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 오늘까지도 나는 이 친구에게 오히려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 미국 친구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말도 안됩니다." 윌슨은 말을 이었다. "나는 직업 사냥꾼이오. 손님의 일을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훌륭한 태도는 못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터는 게 더 좋을 거라고 그는 판단했다. 그렇게 되면 혼자서 식사를 할 것이다. 식사하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은 그들끼리 따로 식사를 하겠지. 그리고 사냥 여행 동안 서로 매우 형식적인 격식을 차리며 대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형식적인 격식을 프랑스 사람들은 뭐라고 부르지? 품위 있는 배려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무튼 서로 그런 격식만을 차리게 될 것이고, 차라리 그 편이 이 따위 감정적인 헛소리를 꾹 참는 것보다는 뱃속 편할 것이다.이 친구에게 욕이나 퍼부어주고 깨끗이 헤어지는 거다.

그러면 식사를 하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고, 게다가 이 작자들의 위스키는 위스키대로 계속 마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냥 여행이 뭔가 틀어졌을 때 사냥꾼들끼리 쓰는 표현이었다. 다른 백인 사냥꾼을 만났을 때 "어때요?" 하고 묻는다 치자. 상대방이 "아, 이 놈들의 위스키는 여전히 마시고 있지"하고 대답하면 그건 그 여행이 엉망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정말 미안하오." 매코머는 이렇게 말하면서 윌슨을 바라보았다.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 얼굴에는 여전히 앳된 구석이 남아 있었다. 윌슨은 매코머를 다시 바라보았다. 매코머는 뱃사람처럼 머리를 올려 깎고 작은 눈은 뱃심은 없지만 영리해 보였다. 코 모양도 좋고, 입술이 얇고, 턱도 보기가 좋았다.

"정말 미안하고. 미처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소. 세상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일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친구가 잘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윌슨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친구와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거지 같은 작자는 나를 방금 모욕해 놓고서도 금방 또 이러니저러니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그는 부러 또 한번 건드려 보았다. "내가 소문을 낼까 봐 걱정하지는 마시오."

그는 덧붙여 말했다.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자도 사자를 보면 놓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백인 남자라면 절대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셔야 할 겁니다."

"그래, 나는 토끼 새끼마냥 도망쳤지." 매코머가 말했다.

글쎄 이따위로 대꾸하는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취급해야 한다는 말인가... 윌슨은 속으로 궁리를 해봤다.

윌슨은 매코머를 쳐다보았다. 그 파란 눈은 기관총 사수처럼 생기가 없었다. 그러자 상대는 그에게 미소를 보냈다. 기분이 나빴을 때의 그 눈초리를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웃음이 기분 좋은, 빙그레 웃는 미소로만 여겨질 것이다.

"아마 물소라면 나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텐데." 그는 말했다. "이 다음엔 어디 한번 물소를 잡는 게 어떨까요, 응?"

"원하신다면 내일 아침이라도 좋죠." 윌슨이 대답했다. 아마 내가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해나가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 미국인에 대해서 또 이러니 저리니 욕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다시 나는 매코머 이 작자 편이 되는 거다. 만약 오늘 아침 일만 잊을 수 있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그 일을 잊을 수는 없다. 오늘 아침의 사건은 이 사람들이 이곳에 온 것 자체만큼이나 꼴불견이었다.

"부인이 오시는군요." 그는 말했다. 여자는 원기를 회복했다. 쾌활하고 아주 어여쁜 모습으로, 자기 텐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계란형 얼굴이었다. 너무 둥글고 반반해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여자는 바보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바보이기는커녕... 윌슨은 생각했다.

"붉은 얼굴의 미남자, 윌슨 씨 안녕하세요? 여보, 프랜시스... 나의 진주...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그럼, 많이 좋아졌소." 매코머가 대답했다.

"저도 이전 일은 다 잊어버렸어요." 여자는 테이블에 앉으면서 말했다. "프랜시스의 사자 잡는 솜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건 이 사람 직업이 아니걸랑요. 그건 윌슨 씨의 직업이지요. 윌슨 씨는 무엇이든지 잡는 데 명수란 말이지요. 당신은 무슨 짐승이든 다 잡을 수 있겠죠?"

"그렇죠. 무엇이든지 잡을 수 있어요." 윌슨이 말했다. "무엇이건, 종류를 가리지 않지요." 이 여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상대다... 냉정한데다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가장 사나운 약탈자면서 매혹적이다. 이런 여자들이 냉정해지면 상대 남자들은 노근노근해지거나 신경이 완전히 조각나 버리고 만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여자들은 아마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남자를 골라 남편으로 삼는 것일 게다. 이 여자들이 결혼할 때의 나이로는 경험상 그런 것까지는 알 수가 없을 텐데... 그는 생각했다. 그는 지금까지 대충이나마 미국 여자들에 대해 경험을 쌓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의 이 여자는 매우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엔 물소를 잡으러 갈 겁니다." 그는 여자에게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여자가 말했다.

"아니 당신은 안됩니다."

"아니 저도 갈 거에요. 프랜시스, 제가 가면 안되나요?"

"왜? 캠프에 남아있지 않겠단 말이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여자는 말했다. "오늘 같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칠 수 없으니까요."

윌슨은 마음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아까 이 여자가 자리를 떴을 때는, 울려고 밖으로 나갔을 때만 해도 이 여자는 무척 얌전하고 우아해 보였다. 이해심도 있고, 눈치가 빠르다. 남편이나 자신의 일로 마음이 상했지만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십 분쯤 자리를 떠났다가 돌아온 것을 보니 저 미국 여자다운 냉정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 형편없는 여자들이다. 정말 형편없는 것들이다.

"내일은 오늘과 다른 구경을 시켜주지." 프랜시스 매코머가 말했다.

"부인은 오지 마십시오." 윌슨이 말했다.

"당신은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자가 말했다. "당신이 또 멋지게 해내는 것을 보고 싶다는 거에요. 오늘 아침 당신은 정말 기가 막혔어요. 짐승 대가리를 날려 버리는 게 멋있다고 할 수 있다면 말이에요..."

"점심이 왔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당신은 무척 즐거운 모양이군요."

"그럼요. 전 우울해지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죠. 지금까지는 지루하지는 않았죠." 윌슨은 말했다. 냇물 속에 잠겨 있는 돌멩이와 나무가 우거진 저쪽 높은 언덕을 바라보니 오늘 아침 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럼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내일도 그럴 거에요. 제가 그걸 얼마나 학수고대하고 있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에요."

"지금 드린 것은 큰사슴 고기입니다." 윌슨이 말했다.

"큰사슴은 저 산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는 소 비슷한 동물 아닌가요?"

"글쎄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윌슨이 대답했다.

"맛이 아주 좋군." 매코머가 말했다.

"프랜시스, 당신이 쏜 건가요?"

"그래."

"그 짐승은 별로 위험하지 않겠죠?"

"높은 곳에서 덤벼들지만 않으면 그렇죠." 윌슨이 대답했다.

"그렇담 전 참 기뻐요."

"마고트, 쓸데없는 소리 이제 작작해." 매코머가 나무랐다. 그도 큰사슴 고기 스테이크를 베어내고 그 고기 조각에 포크를 꽂았다. 그리고 그 포크를 뒤집어 매슈테이트와 소스를 치고 당근을 얹었다.

"네, 그만두기로 하지요." 여자가 말했다. "당신 말씨가 너무 고와서요."

"오늘 저녁은 사자를 기념해 샴페인이나 마실까요?" 윌슨이 말했다. "낮에는 좀 더우니까 말입니다."

"그래요, 참 그 사자가 있었지요." 마고트가 말했다. "전 그 사자가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이제 보니 이 여자는 남편을 놀리고 있었구나... 로버트 윌슨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잖으면 한바탕 쇼라도 벌일 속셈인가? 자기 남편이 지독한 겁쟁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때 여자들은 도대체 어떤 태도를 보일까? 이 여자는 무섭게 잔인하다. 대체로 여자들은 모두 잔인하다. 이런 여자들은 남편을 쥐고 마구 흔들어대는 법이다. 마음대로 흔들려니 아무래도 잔인해질 수밖에 없겠지. 더구나 나 역시 이런 여자들의 소름 끼치는, 잔인한 행동을 실컷 맛보지 않았던가...

"큰사슴 고기를 더 드시지요." 그는 공손히 여자에게 말했다.

그날 오후 늦게 매코머는 윌슨과 토인 운전수, 그리고 두 명의 엽총 운반인을 데리고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매코머 부인은 캠프에 남아 있었다. 너무 더워서 나갈 수는 없고, 내일 아침 일찍 동행하겠다는 얘기였다.

윌슨은 멀어져 가는 차 위에서 여자가 큰 나무 아래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장미빛이 섞인 카키복을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앞이마에서 뒤로 넘겨 목덜미 아래로 땋아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오히려 사랑스러워 보였다. 마치 영국 땅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생기가 넘치는 얼굴이군... 그는 생각했다. 여자는 무성하게 높이 자란 풀을 헤치며 멀어져 가는 자동차에 손을 흔들었다. 차는 숲을 구불구불 헤치고 나가 과일나무 숲이 있는 언덕 가운데로 들어갔다.

과일나무 숲에서 그들은 사슴의 무리를 발견했다. 다들 거기에서 차를 내려 뿔이 길게 뻗은 늙은 사슴의 뒤를 살금살금 뒤쫓았다. 매코머는 이백 야드쯤 떨어진 거리에서 멋들어진 솜씨로 수사슴을 쏘아 맞추었다. 사슴 떼는 후다닥 뛰어오르더니 서로 들을 뛰어넘으며 도망쳤다. 다리를 오그리고 펄쩍 날으듯이 뛰어가는 모습이라니... 사름들이 때로 꿈에서 경험하는 것 같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장관이었다.

"아주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과녁으로 쏴 맞추기엔 작은 편이었는데..."

"머리를 겨눴는데... 괜찮았나요?" 매코머가 물었다.

"아주 훌륭했어요." 윌슨이 대답했다. "그렇게만 쏘면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내일 물소를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놈들은 아침 일찍 물을 먹으러 오거든요. 재수가 좋으면 넓은 들판에서 쏴 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난 사자 사냥의 실패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어." 매코머가 말했다.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 장면을 아내가 본다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테니 말이야."

나 같으면 아내가 있거나 말거나, 또는 지나간 일이 소문으로 퍼지거나 말거나,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 자체가 훨씬 더 불쾌할 텐데... 윌슨은 생각했다. 그러나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일은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누구나 처음 사자를 만나면 당황하는 법이지요. 이제 다 지나간 일입니다."

그러나 프랜시스 매코머에게는 그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매코머는 모닥불 옆에서 위스키 소다를 마시고 잠자리로 갔다. 모기장을 친 침대에 누워 밤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던 그에게는 그 일이 끝난 것도 아니었고, 이제부터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일은 일어났던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더구나 그 어떤 부분은 도저히 씻어낼 수 없을 만큼 다시 강조되고 있었다.

그는 비참한 심정으로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아니 부끄럽다기 보다 그는 온몸으로 싸늘하고 텅 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때 자신만만했던 그 지점을 두려움이 채우고 있었다. 차디차고 불쾌하게, 마치 폐허와도 같은 공허가 그 지점에 남아 있어 그는 견딜 수 없는 묘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아직도 그와 함께 거기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건은 사실상 그 전날 밤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매코머는 잠에서 깨어, 상류 어디선가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로 시작한 그 울부짖음은 곧 기침 소리 같은 신음으로 바뀌었다. 마치 사자가 텐트 바로 밖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밤중에 깨어 그 소리를 듣고 프랜시스 매코머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내가 잠을 자는 가벼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무서움을 나눌 사람도 없이, 그는 혼자 누워 있어야 했다. 아무리 용감한 사나이라도 사자에게 세 번은 놀란다고 한다. 즉 처음 발자국을 보았을 때, 처음 그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처음 마주쳤을 때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마리 사람들의 속담이었다.

하지만 매코머는 그런 속담을 모르고 있었다. 아침 해가 뜨기 전, 식당 텐트에서 램프를 켜놓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다시 사자가 울부짖었다. 프랜시스는 사자가 바로 캠프 가까이에 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늙은이 울음 소리 같군요." 말린 연어와 커피를 먹고 있던 로버트 윌슨이 얼굴을 들고 말했다. "자식이 기침하는 소리 좀 들어 보시오."

"바로 가까이에 와 있는 거요?"

"상류 쪽으로 일 마일 가량 될 겁니다."

"지금 볼 수 있을까요?"

"나가 봅시다."

"이렇게 멀리까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다니! 마치 캠프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군."

"굉장히 멀리까지 들립니다." 로버트 윌슨이 대답했다.

"사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멀리까지 들리는지 신기할 지경이지요. 괜찮은 놈이라면 좋겠는데. 이 근처에 매우 큰 놈이 돌아다닌다고 애들이 그러더군요."

"어디를 쏴야 좋을까요?"

매코머가 물었다. "한 방에 쓰러뜨리자면 어디를 쏘는 게 좋겠소?"

"글쎄요, 어깨쪽이 낫겠죠." 윌슨이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목이 제일 좋습니다. 뼈다귀를 으스러뜨리는 거지요."

"제발 잘 겨눌 수 있어야 할텐데..."

"당신이야 솜씨가 좋지 않습니까?" 윌슨이 대답했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목표를 잘 겨누어 틀림없는 곳을 쏘아야 합니다. 첫발만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끝장낼 수 있어요."

"거리는 어느 정도로 잡아야 할까요?"

"그건 알 수 없지요. 그건 사자에게 달려 있다고 해야 할 겁니다. 확실하게 하려면 충분히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백 걸음 정도?" 매코머가 물었다. 윌슨은 얼른 그를 쳐다보았다.

"그렇죠. 백 정도면 괜찮을 겁니다. 좀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더 좋겠지만. 그 이상 떨어지면 아예 쏘지 마세요. 백 정도면 알맞습니다. 그 거리라면 어디든 잘 맞출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부인께서 오시는군요."

"잘들 주무셨어요?" 그녀가 인사를 했다.

"우리, 이제 저 사자를 잡으러 가는 건가요?"


"부인이 식사를 마치시는 대로 곧 떠나도록 하지요." 윌슨이 대답했다. "기분은 좀 어떠세요?"

"아주 좋아요." 여자가 말했다. "신바람이 나는 걸요."

"준비가 다 됐는지 좀 나가 보겠습니다." 윌슨은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갈 때 사자가 다시 울부짖었다.

"그 자식 더럽게 시끄럽게 구는군." 윌슨이 소리를 질렀다.

"당장 아가리를 못 놀리게 만들어 놓구 말겠어."

"갑자기 왜 그래요, 프랜시스?" 아내가 그에게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매코머가 대답했다.

"아니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여자가 말했다. "어쩐지 기분이 언짢은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라니깐." 그는 말했다.

"자, 말 좀 해 봐요." 여자는 그를 쳐다보았다. "기분이 언짢은 거죠?"

"저 망할 놈의 사자 울음 소리 때문에 그래." 그는 말했다.

"저 자식은 밤새 저렇게 으르렁대더군."

"저를 깨우시지 그랬어요?" 여자가 말했다. "전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구요."

"난 저 망할 놈의 사자를 잡아야 해." 매코머는 금방 풀이 죽어서 대답했다.

"그럼요. 당신이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것도 그것 때문이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어쩐지 초조해. 저 놈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단 말이야."

"그렇다면 윌슨이 말한 것처럼 그 놈을 죽여버리면 돼요. 그래서 울음 소리도 내지 못하도록 하는 거에요."

"그럼, 그렇게 해야지." 프랜시스 매코머는 말했다.

"말로야 뭘 못하겠어, 안 그래?"

"당신 설마 지금 무서운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밤새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니까 어쩐지 신경이 날카로워진 거야."

"당신은 그 놈의 사자를 잘 잡을 수 있을 거에요."

여자가 말했다. "당신은 꼭 제대로 쏴 맞힐 거에요. 전 그 모습이 너무나 보고 싶어요."

"우선 아침 식사를 해요... 그리고 같이 떠나도록 하자구."

"아직 날이 밝지도 않았어요." 여자가 말했다. "이 시간이면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 들곤 해요."

바로 그때 사자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듯한 소리로 다시 울부짖었다. 갑자기 목구멍을 울리는 그 소리, 점점 높아지며 공기를 뒤흔드는 그 소리는 어느덧 한숨 소리 비슷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가슴에서 솟아나는 묵직한 한숨 소리로 바뀌어 사라졌다.

"바로 옆에 와 있는 것 같아요." 매코머의 아내가 말했다.

"저 소리!" 매코머가 말했다. "저 지긋지긋한 소리가 정말 듣기 싫어."

"인상적이지 않아요?"

"인상적이지. 몸서리쳐질 정도로..."

그때 로버트 윌슨이 505 구경의 기브스 라이플을 들고 싱글싱글 웃으며 돌아왔다. 총신이 짧고, 구경이 보기 흉할 정도로 큰 라이플이었다.

"자, 이제 갑시다." 그가 말했다. "엽총 운반인이 당신의 스프링필드 라이플과 대구경 라이플을 가지고 갈 겁니다. 준비는 차 안에 다 갖춰 놓았어요. 총탄은 챙겼겠죠?"

"물론이죠."

"저는 다 준비 됐어요." 매코머 부인이 말했다.

"저 놈의 시끄러운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야죠." 윌슨이 말했다.

"당신이 앞에 타십시오. 저는 부인과 함께 뒤에 탈 겁니다."

그들은 차에 올라타서 잿빛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나무 숲을 지나 상류쪽으로 올라갔다. 매코머는 총 개머리판을 열어 총알이 클립 속에 들어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곤 쇠마개를 닫아 안전 장치를 걸었다. 그는 자기 손이 와들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나머지 탄약통이 제대로 들어있는지 만져봤다. 또 손가락을 움직여 윗도리 가죽 허리띠에 걸린 탄약통도 만져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붕이 없는 박스형 자동차 뒷자리에는 윌슨이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남녀는 상기된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윌슨이 앞으로 몸을 숙여 귓속말로 소근댔다.

"자, 보세요. 새들이 땅으로 내려오지 않습니까? 그놈이 잡은 짐승을 버려두고 가버린 모양입니다."

냇물 건너편 언덕 근처에 독수리 한 마리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나무 숲 위를 날고 있었다. 독수리는 빙빙 돌다가 수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놈이 물을 마시러 이쪽으로 올 것 같군요." 윌슨이 속삭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리 올 겁니다. 잘 봐야 합니다."

그들은 언덕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이 근방은 냇물이 거의 말라붙어 저 아래 바닥에 있는 돌멩이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수풀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며 차를 몰았다. 매코머는 건너편 언덕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때 윌슨이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차가 멈춰섰다.

"저기 있습니다." 윌슨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른 쪽, 조금 앞으로, 이제 어서 내려서 쏘세요. 굉장히 큰 놈입니다."

그제서야 매코머도 사자를 발견했다. 사자는 옆구리를 거의 다 드러낸 채 서 있었다. 그놈은 커다란 머리를 쳐들더니 그들 쪽을 돌아보았다. 이른 아침의 부드러운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날려 사자의 검은 갈기털이 보기 좋게 곤두섰다. 묵직한 두 어깨와 굵은 몸뚱이가 매끄러운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잿빛 아침 햇살을 받으며 검은 영상으로 서 있는 그 모습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거리는 얼마나 될까?" 총을 들어 올리며 매코머가 물었다.

"칠십 오쯤 됩니다. 차에서 내려서 쏴야 합니다."

"여기서 쏘면 안될까?"

"차에서 쏘면 안 됩니다." 윌슨이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빨리 내려요. 저놈이 하루종일 저기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오."

매코머는 앞 자리의 문을 나와 땅으로 뛰어내렸다. 발에 풀들이 밟혔다.

사자는 아직도 그 자리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냉정한 눈초리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사자의 눈에는 이쪽의 물체가 그저 희미한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 냄새는 그쪽까지 풍겨가지 않는다. 그래서 사자는 이쪽을 유심히 바라보면서도 여유 있게 그 큼직한 머리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사자가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 자기 앞에 버티고 있으니까 물 마시러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잠시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윤곽이 그 물체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 눈에 비치자 사자는 그 큼직한 머리를 돌려 나무 숲 아래로 숨을 듯이 크게 움직였다. 그 순간,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30-06의 220 그레인 라이플의 단단한 총알이 사자의 옆구리를 맞혔다.

총알은 사자의 창자를 뚫고 지나갔다. 사자는 뜨겁게 지지는 듯한 느낌과 토할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사자는 총알에 맞은 커다란 배를 출렁거리며 큼직하고 묵직한 발을 질질 끌며 우거진 수풀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뭄을 감출 수 있는 우거진 덤불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다시 요란한 총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또 다른 총알 한 발이 몸통을 꿰뚫었다. 그리고 또 한 방이 울렸다. 이 총알은 늑골의 아래 부분을 뚫고 들어갔다. 사자의 입에 뜨거운 피와 피거품이 솟구쳐 올랐다.

사자는 무성한 수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 웅크리고 앉아 몸을 숨겼다. 터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는 그 물건을 가까이 유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와락 덤벼들어 그 물건을 쥐고 오는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생각이었다.

자동차에서 내렸을 때 매코머는 사자가 어떻게 느낄까 하는 것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자기의 두 손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을 뿐이다. 차에서 몇 걸음 걸어나가려고 했지만, 거의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넓적다리가 뻣뻣해졌다. 근육은 반대로 덜덜 떨렸다. 그는 총을 들어 사자의 머리와 두 어깨가 만나는 곳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

손가락이 부러질 것처럼 힘껏 당겼으나 방아쇠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그는 안전 장치를 아직 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총을 내려 안전 장치를 풀고 얼어붙은 듯한 발을 간신히 움직여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때 사자가 휙 돌아서서 빠른 발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자가 자동차에서 떨어져 나온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매코머는 쏘았다. 총알이 정통으로 들어맞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사자는 마구 달리고 있었다. 매코머는 또 쏘았다. 달아나는 사자를 총알이 비켜가 푸석! 먼지를 일으키는 것이 누구의 눈에나 뚜렷이 보였다. 좀더 낮은 데를 겨누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그는 또 쏘았다. 총알이 사자 몸에 맞는 소리를 모두 다 들었다. 사자는 죽어라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가 총을 다시 겨누기도 전에 사자는 수풀 속으로 뛰어들어가 숨어버렸다.

매코머는 뱃속이 이상하게 불쾌해졌다.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스프링필드 라이플을 겨눈 채 꽉 움켜쥐고 있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내와 로버트 윌슨이 옆에 와 서 있었다. 엽총을 운반하는 두 명의 토인들도 와캄바 말로 뭐라고 지껄이며 옆에 서 있었다.

"맞았어." 매코머가 떠들었다. "두 발이나 맞았어."

"맞히긴 했는데, 약간 앞쪽에 맞은 것 같습니다." 윌슨이 신통치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엽총을 운반하는 토인들도 무척 침울한 표정이었다. 이제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혹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윌슨이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 더 기다렸다가 찾으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또 왜 그렇소?"

"쫓아가기 전에 놈에게 더 고통을 맛보도록 해 주자는 거지요."

"으흥, 그래요?" 매코머가 말했다.

"아주 근사한 놈이었는데..." 윌슨이 쾌활하게 말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주 고약한 곳에 가서 숨었어요."

"그건 또 왜 그렇소?"

"그놈하고 딱 마주치기 전에는 도대체 어디 숨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참, 그렇구만." 매코머가 말했다.

"자, 이제 가보실까요?" 윌슨이 말했다. "부인께서는 자동차에 그대로 남아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린 지금 핏자국을 쫓아가야 하거든요."

"마고트, 여기 남아 있어요." 매코머는 아내에게 말했다. 입안이 너무 바짝 말라붙어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왜요?" 여자가 물었다.

"윌슨이 그렇게 하라고 그러지 않소."

"잠깐이면 됩니다." 윌슨이 말했다.

"부인은 여기 남아 계십시오. 여기 이대로 계시는 것이 더 잘 보이실 겁니다."

"그렇게 하겠어요."

윌슨은 스와힐리 말로 운전수에게 뭐라고 말했다. 운전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네, 잘 알았습니다, 나리."

그들은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개울을 건넜다. 자갈밭을 지나 언덕을 돌아 건너편 언덕에서 땅 위로 솟아오른 나무 뿌리를 붙잡고 올라가 냇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드디어 매코머가 처음 총을 쏘았을 때 사자가 있다가 달아난 곳에 이르렀다. 엽총 운반인들이 갈대 줄기로 키가 작은 풀줄기를 가리켰다. 거기에 시꺼먼 피가 묻어 있고 그 핏줄기가 냇물 기슭 숲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매코머가 물었다.

"어떻게 하다니요? 별 수 없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차를 몰고 들어갈 수도 없어요. 언덕이 너무 가파르거든요. 놈을 좀더 괴롭힌 다음에 저하고 같이 둘이서 안으로 들어가 찾아봅시다."

"풀에다 불을 지르는 것이 어떻겠소?"

"풀이 아직 파래서 불을 붙이기도 어려워요."

"몰잇군을 집어넣는 것은 어떨까?"

윌슨은 마치 물건을 감정하듯이 상대방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물론 그렇게 할 수야 있습니다만..."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사자는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사자가 다치지 않았다면 그냥 몰아내는 것도 좋지요. 소리만 들어도 달아날 테니까요. 하지만 다친 사자는 이쪽으로 공격해 옵니다.

갑자기 딱 마주치기 전에는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토끼 한 마리 숨기도 어려운 곳에 바짝 엎드려 누워 있을 수 있다니까요. 그런 곳에 사람들을 몰라넣는 건 너무 심한 태도지요. 누가 됐건 반드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엽총 운반인들은 어때요?"

"아, 그 친구들이야 우리랑 함께 가지요. 그게 그 녀석들 일이니까. 우린 그것 때문에 녀석들에게 돈을 줘 가면서 부리고 있는 거구요. 그러나 녀석들도 그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도 안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소." 매코머도 말했다. 미처 머리 속으로 생각하기도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물론 억지로 들어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내가 비싼 돈을 받고 여기 따라온 것도 그런 필요가 있으니까 그런 거구요."

"그럼 당신 혼자 들어가겠다는 말이오? 까짓 것 그냥 놔두고 가버리면 되지 않을까?"

로버트 윌슨은 그때까지 사자와 자기가 말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서 매코머에 대해서는 그저 조금 겁을 먹었구나... 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매코머의 말을 듣고는 문득, 호텔 같은 곳에서 갑자기 실수로 남의 방문을 열었다가 봐서는 안될 장면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그러셨소?"

"그냥 버려두고 가면 어떻겠느냐 하는 거요."

"맞지 않은 걸로 해두자, 그런 얘깁니까?"

"아니, 그냥 내버려두자는 거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안 된다는 거요?"

"먼저 지금 사자는 엄청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누구 다른 사냥꾼들이 그 사자를 잡아버릴 수도 있구요."

"응, 알겠소."

"하지만 당신은 별로 신경을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들어가고는 싶소. 하지만..." 매코머는 말했다. "그저 좀 겁이 나는구먼."

"안에 들어갈 때는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콩고니를 시켜 사자 발자국을 쫓아가게 하고, 당신은 내 옆에 한 걸음 물러서서 따라오십시오. 놈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됩니다. 놈이 보이기만 하면 바로 둘이서 쏘아 버리는 겁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내가 책임지고 지켜드릴 테니까요. 그러나 사실은 당신이 오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 편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아요. 제가 처리하는 동안 저기 부인에게 가셔서 같이 계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 나도 같이 가보겠소."

"그럼 좋아요." 윌슨이 말했다. "하지만 내키지 그만두세요. 아시다시피 이 일은 제가 처리할 일이니까요."

"같이 가겠소." 매코머가 말했다.

그들은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잠시 담배를 피웠다.

"제가 잠깐 가서 부인에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시라고 전하구 오죠."

"그렇게 하시오." 매코머가 말했다. 그는 겨드랑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입 안이 바짝 마르고 뱃속이 텅 빈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혼자 앉아 있었다. 윌슨에게, 혼자서 가서 사자를 해치우고 오라고 말할 만한 용기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지금 자기가 보이고 있는 태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지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윌슨이 자기 아내에게 갈 때도 화가 난 상태였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조금 앉아 있자, 윌슨이 돌아왔다. "더 큰 총을 가져 왔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이걸 쓰세요. 이제 사자에겐 충분히 시간을 줬습니다. 자, 어서 일어나서 가봅시다."

매코머는 커다란 총을 손에 들었다. 윌슨이 말했다.

"제 뒤를 따라오세요. 오른쪽 뒤로 오 야드쯤 떨어져서 따라오는 겁니다. 뭐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윌슨은 울상을 하고 있는 두 명의 흑인 운반인에게 스와힐리 말로 뭐라고 지시했다.

"어서 갑시다." 그는 재촉했다.

"물 한 모금만 마시면 좋겠는데..." 매코머는 말했다. 윌슨은 허리에 물병을 차고 있는 나이 먹은 흑인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 흑인이 물병을 풀어 마개를 열고 매코머에게 주었다. 매코머는 물병이 무척 무거울 거라고 생각하면서 받았다. 그러나 펠트로 만든 커버가 생각보다 털이 무척 많고, 손에 쥔 촉감도 아주 좋았다.

매코머는 물을 마시려고 물병에 입을 댔으나 그 시선은 앞쪽의 무성한 수풀을 향하고 있었다. 수풀 뒤에 키가 고른 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와 수풀이 가볍게 물결치며 흔들렸다. 그는 엽총 운반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으로도 엽총 운반인들 역시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숲속 한 삼십 오 야드 가량 들어간 곳에 아까 그 사자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사자는 두 귀를 뒤로 젖히고, 길고 검은 털이 수북한 꼬리만 위아래로 약간씩 흔들 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사자는 이 절대절명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바로 이 장소에 숨었던 것이다. 커다란 배는 총알에 맞아 격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허파 역시 총알이 꿰뚫어 기운도 거의 빠진 상태였다.

허파를 꿰뚫은 총알 때문에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서 거품이 섞인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피에 젖은 양 옆구리는 뜨겁고, 또 아팠다. 총알 구멍이 뚫린 황갈색 가죽에는 벌써 파리 떼가 달라붙고 있었다. 노랗고 커다란 두 눈이 증오에 불타고 있었다. 사자는 그렇게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은 숨쉴 때마다 깜박거렸다. 고통 때문이었다.

사자의 날카로운 발톱은 햇빛에 달아오른 부드러운 흙을 힘껏 긁어대고 있었다. 사자의 모든 힘, 상처와 고통과 증오, 그리고 사자의 몸에 남아 있는 모든 힘이 한 곳에 모이고 있었다. 뛰어나가 돌격하는, 그 하나의 목표에 모여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수풀 속으로 들어오자 사자는 뛰쳐나갈 준비에 온 힘을 다 기울였다. 그리고 기다렸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자는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수풀 끝에 이르자 사자는 기침하는 것 같은 신음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돌진해 왔다.

나이 많은 엽총 운반인 콩고니는 핏자국을 따라가면서 앞장서고 윌슨은 큰 총을 겨누고 풀이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는지 살피고 있었다. 또 다른 운반인은 귀를 기울이며 똑바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매코머는 총을 겨누고 윌슨 곁에 붙어 있었다.

이렇게 그들이 수풀 속으로 막 들어서는 찰라, 매코머는 목구멍이 피에 꽉 찬 것 같은,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사자는 벼락처럼 수풀 속을 돌진해오고 있었다. 앗! 하는 순간, 그는 벌써 미친 것처럼 도망치고 있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공포였다. 그는 넓은 풀밭, 그리고 냇물이 있는 쪽을 향하여 미치광이처럼 마구 달렸던 것이다.

그는 윌슨의 커다란 총이 꽝!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또 다시 꽈광! 하는 두 번째 총알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사자의 무서운 모습이 보였다. 머리통이 거의 절반은 날라간 듯한 처참한 모습이었다. 사자는 그러면서도 무성한 수풀 사이를 기어 우뚝 서 있는 윌슨을 향해 오고 있었다. 또 다시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불이 뿜었다.

기어오던 사자의 누런 몸뚱이가 뻣뻣해지며 축 늘어졌다. 총알에 부숴진 커다란 머리통이 앞으로 푹 숙여졌다. 매코머는 사자가 죽는 것을 보았다. 그는 도망쳐 나온 빈 터에 혼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손에는 총알이 든 총을 아직 들고 있었다. 그를 뒤돌아보는 두 명의 흑인과 한 명의 백인... 그들의 눈에는 업신여기는, 경멸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윌슨에게 다가갔다. 키가 껑충한 그의 몸 전체가 노골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자 윌슨이 그를 보고 물었다.

"사진이라도 찍겠습니까?"

"아니오..."

매코머의 아내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도 아내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뒷좌석 아내 옆에 나란히 앉았고, 윌슨이 앞 자리에 앉았다. 그는 아내의 옆으로 다가 앉았다. 아내를 쳐다보지 않고, 아내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아내는 슬그머니 손을 빼냈다.

냇물 저편에서 엽총 운반인들이 사자의 가죽을 벗기는 것이 훤히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내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장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아내는 앞으로 다가 앉더니 윌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뒤돌아보자 아내는 낮은 의자 너머로 몸을 굽히더니 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어어, 이거 참..." 윌슨은 놀라서 얼굴을 붉혔다. 그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그의 보통 때 얼굴보다 훨씬 더 붉어졌다.

"로버트 윌슨 씨." 그녀가 말했다. "얼굴이 붉은 우리 미남자, 로버트 윌슨 씨."

여자는 그러고 나서 다시 매코머 옆에 앉아 개울 건너 사자가 놓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사자는 거기 앞다리를 쳐들고 누워 있었다. 흑인들이 가죽을 벗겨 사자의 커다란 배가 하얗게 드러나고 있었다. 마침내 흑인들이 축축하게 젖은, 무거운 가죽을 둘둘 말아 가져와 자동차 뒤에 탔다. 캠프에 돌아올 때까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이상이 바로 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매코머는 그 사자가 맹렬하게 달려올 때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또 505구경 총알의 초속 2톤의 충격을 받은 정통으로 얻어맞은 기분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뿐 아니라 허리 근처에 두 번째 충격을 받고도 자기를 파멸시킨 그 무서운 물건을 향해 기어오게 만든 그 힘이 무엇인지도 전혀 알 바 아니었다.

윌슨은 그런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만 그러한 것을 "대단한 사자입니다"라는 말로 표현할 뿐이었다. 그러나 매코머는 윌슨이 이런 일에 대해서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만 아내가 자기를 무척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그밖에는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실망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그런 것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는 굉장한 부자였고, 앞으로는 더욱 큰 부자가 될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이번에도 자기를 버리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만이... 그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 중의 하나였다.

그밖에도 그는 우선 오토바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동차와 오리 사냥과 숭어나 연어 또는 바다의 커다란 물고기 낚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책에 나와 있는 섹스에 대해서도 그는 알고 있었다. 많은 책... 너무나 많은 책에서 그는 섹스에 관한 지식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테니스에 대해서도, 개에 관해서, 말에 대해서도 약간, 돈 버는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의 세계와 관련된 기타 여러 가지 일들... 그리고 아내가 자기를 아주 버리지는 않으리라는 것, 대충 이런 것들에 대해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한때 굉장한 미인이었고, 지금도 아프리카 같은 데서 보면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본국에 돌아가면, 그를 버리고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미인은 아니었다. 그녀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그를 떠나 버릴 기회를 놓쳐 버렸던 것이다.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여자를 다루는 솜씨가 좀더 능숙했다면, 그녀는 아마 그에게 무척 앙탈을 부렸을 것이다. 그가 혹시라도 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손에 넣지나 않을까, 두려워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 대해서 구석구석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언제나 관대한 편이었다. 만약 그에게 그처럼 추악한 점이 없었다면 아마 그의 성격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장점으로 무척 돋보였을, 그런 특징이었다.

그들 부부는 금슬이 좋은 것으로, 대체로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주위에 알려져 있었다. 물론 가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헤어지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다. 그렇다고 그런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신문의 사교계 담당 기자가 기사로 쓴 것처럼 그들은 암흑의 아프리카의 사냥 여행을 떠나는, 남들의 선망의 대상인 셈이었다.

이것은 그들의 계속되는 로맨스에 흔해빠진 모험의 분위기 이상의 것을 불어넣고 있었다. 마틴 존슨 부부의 사냥 여행은 많은 영화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그들은 '심바(사자)' '물소' '뎁보(코끼리)' 등을 쫓아 다녔으며, 그리고 그러한 수집품들은 나중에 박물관의 표본으로 전시되어 세상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들의 사냥 여행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동떨어진 오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매코머 부부의 사냥 여행에 대해서 기사를 쓴 기자는 이들 부부가 과거에 적어도 세 번 이상 헤어질 뻔했으며, 이번에도 역시 그런 상태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런 위기를 벗어났다. 그들은 반드시 함께 결합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매코머가 이혼을 하기에는 마고트는 너무 아름다웠다. 마고트가 매코머를 영영 차버리기에는 매코머는 너무 부자였던 것이다.

세벽 세 시 경이었다. 프랜시스 매코머는 사자 생각을 하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고,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머리가 피로 범벅이 된 사자가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악몽에 소스라쳐 잠을 깨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텐트 저쪽 침대에 아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깨닫자 두 시간 동안이나 눈을 뜬 채 누워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나자 아내가 텐트로 돌아왔다. 모기장을 들추고 기분 좋은 듯 침대에 기어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매코머는 어둠 속에서 물었다.

"여보..." 그녀가 말했다. "자지 않고 있었어요?"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잠깐 밖에서 바람 좀 쐬었어요."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알 게 뭐야?"

"그럼 어떻게 말해 줄까요, 여보?"

"어딜 갔다 왔느냐 그 말이야."

"바람 좀 쏘이고 왔다니까요."

"흥, 그런 것도 핑계라고 대는 거야? 개 같은 년!"

"흥, 그런 당신은 겁쟁이 아닌가요?"

"좋아." 그는 말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

"내가 알 게 뭐에요... 이제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맙시다. 난 지금 졸려 죽겠어요."

"그래 무슨 짓을 해도 내가 가만 있을 줄 알았나?"

"그럼요."

"천만에, 어림도 없어."

"제발 부탁이에요. 이제 그만 해요. 난 지금 너무 졸립다니까요."

"그런 짓은 두 번 다시 안 한다고 했잖아. 다시는 그러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여자는 어리광을 부리듯 말했다.

"너는 이번 여행에서 그 따위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래요, 약속했죠. 나도 처음엔 그러려고 마음 먹었어요. 하지만 어제 일로 이번 여행은 완전히 망쳐버린 거에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이제 별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 않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생각나면 얼른얼른 해치운단 말이야?"

"제발 부탁이에요. 그만둬요. 난 지금 졸려 죽겠어요."

"아냐, 난 계속 말해야겠어."

"그럼 혼자서 떠들든지 말든지... 아무튼 난 자야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잠에 빠져들었다.

해 뜨기 전 아침 식사에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식탁에 같이 둘러 앉았다. 그때 프랜시스 매코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싫은 인간도 많았지만, 로버트 윌슨처럼 끔찍하게 싫은 인간은 없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잘 주무셨습니까?" 윌슨은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아주 푸욱 잘 잤지요." 백인 사냥꾼 윌슨은 대답했다.

이 때려 죽일 자식 같으니... 매코머는 뱃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개 같은 후레 자식 같으니...

이제 보니 여자가 텐트에 돌아갔을 때 이 자식이 잠에서 깬 모양이군... 윌슨은 무표정한 냉랭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이 자식은 그래 제 여편네도 제 옆에 꼭 붙들어 두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이 자식이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덜 여문 허수아비 같은 자식아, 네가 남편이라면 마누라 하나쯤 제대로 꽉 붙잡아야지. 이건 전부 네 잘못이란 말이야...

"물소를 찾을 수 있을까요?" 마고트가 앵두 접시를 밀어내면서 물었다.

"글쎄요, 과연 어떨지..." 윌슨은 말하면서 그녀에게 미소를 던졌다. "그냥 캠프에 남아 계시지 그러세요."

"특별한 까닭은 없지만..." 그녀는 말했다.

"부인이 캠프에 남아 계시도록 당신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윌슨이 매코머에게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명령하면 될 텐데..." 매코머는 쌀쌀하게 말했다.

"명령이라니, 그 따위 말이 어디 있어요?" 마코트는 매코머를 향해 유쾌하게 말했다. "그 따위 어리석은 말은 집어치워요, 프랜시스."

"출발 준비는 다 된 거요?" 매코머가 물었다.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습니다." 윌슨이 대답했다. "부인이 같이 가시도록 할 겁니까?"

"내가 그렇게 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소?"

빌어먹을, 될 대로 되려므나... 로버트 윌슨은 생각했다. 그래, 될 대로 되겠지. 그렇지, 그러면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거야.

"글쎄 별로 상관은 없겠죠." 윌슨은 말했다.

"설마 당신은 내 아내와 함께 캠프에 남아 있고, 나 혼자 나가서 물소를 잡아오라는 얘기는 아니겠죠?" 매코머는 물었다.

"그럴 리야 있습니까?" 윌슨은 말했다. "내가 당신이라면 그런 잠꼬대 같은 얘기는 꺼내지 않을 겁니다."

"잠꼬대가 아니야, 나는 이제 진절머리가 나!"

"진절머리가 나다니, 말투가 좀 심하시군요."

"프랜시스, 말을 좀 더 조심할 수 없어요?" 그의 아내가 말했다.

"나는 지금 너무 지나치게 말을 조심하고 있는 거야." 매코머는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더러운 것을 먹어본 일이 있나?"

"글쎄, 음식이 잘못되기라도 했나요?" 윌슨이 조용히 물었다.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아."

"좀 진정하시지요." 윌슨이 극히 냉정하게 말했다. "심부름꾼 가운데는 영어를 약간 아는 놈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심부름꾼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윌슨은 일어나서 파이프를 빨면서 그를 기다리고 서 있던 흑인 운반인에게 천천히 걸어가서 스와힐리 말로 무어라고 말했다. 매코머와 그의 아내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커피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시끄럽게 소동을 피운다면 전 당신하고 헤어질 거에요." 마고트가 조용히 말했다.

"흥, 넌 그렇게도 하지 못해."

"어디 한 번 시험해 보시죠."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걸."

"그래요." 그녀는 말했다. "저는 헤어지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 당신도 좀 더 신사답게 행동을 해 보시란 말이에요."

"신사답게 행동하라구? 지금 말 다 했어? 신사답게 굴라구?"

"그래요, 신사답게 좀 똑똑하게 행동하시란 말이에요."

"그럼, 넌 왜 숙녀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거야?"

"전 오랫동안 숙녀답게 행동해 왔어요. 정말 무척 오랫동안이요."

"난 저 낯짝이 벌건 자식, 저 돼지 같은 자식이 싫어!" 매코머는 말했다. "저 자식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난단 말이야."

"그 사람은 정말 훌륭한 분이에요."

"입 닥쳐!" 매코머는 거의 외치다시피 말했다. 바로 그때 자동차가 와서 식당 텐트 앞에 멈춰 섰다. 운전수와 흑인 엽총 운반인 두 명이 차에서 내렸다. 윌슨이 다가와서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그들 부부를 보았다.

"지금 사냥을 나가시겠습니까?" 그는 물었다.

"그래." 매코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지."

"털옷을 가지고 가는 게 나을 겁니다. 차 안이 추우니까요." 윌슨이 말했다.

"전 가죽 잠바를 가지고 가겠어요." 마고트가 말했다.

"그건 심부름꾼이 가지고 있습니다." 윌슨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운전수와 함께 앞 좌석에 나고, 프랜시스와 그의 아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뒷좌석에 앉았다.

이 멍청한 거지 같은 자식이 설마 내 뒤통수에 총을 갈기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윌슨은 생각했다. 사냥 여행에서는 여자란 정말 귀찮은 것들이야...

잿빛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자동차는 자갈 투성이의 길을 내려가 강의 얕은 곳을 건넜다. 그 다음 깎아지른 듯 가파른 강 기슭을 기어 올라갔다. 그 전날, 삽으로 길을 만들어 두도록 지시했던 곳이다. 그래서 그들은 건너편 나무 숲이 들쭉날쭉 서 있는 곳까지 차를 몰고 있었다. 마치 공원처럼 보이는 숲이었다.

상쾌한 아침이다... 윌슨은 생각했다. 이슬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차 바퀴가 풀과 낮은 덤불을 헤치고 지나가자 윌슨은 키가 작은 이파리 식물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아마 바베나의 냄새이리라. 자동차가 이른 아침 길도 없는 공원 같은 곳을 지나갈 때, 이슬이 서린 식물이나 짓밟힌 고사리의 냄새, 새벽 안개 속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나무줄기의 거뭇거뭇한 모양이 그는 좋았다.

지금 그는 뒷좌석에 앉아 있는 두 남녀의 생각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다만 물소 생각에만 잠겨 있을 뿐이었다. 지금부터 쫓아야 할 물소란 놈은 낮에는 수풀이 우거진 깊은 늪에 숨어 있기 때문에 도저히 쏘아 맞힐 수가 없다. 그러나 밤이 되면 물소는 풀을 뜯어 먹으려고 넓은 초원으로 나온다. 차를 몰아서 놈들이 모여 있는 늪 사이를 비비고 들어가면 매코머가 넓은 들판에서 여유 있게 그 놈들을 쏠 수 있겠지.

매코머와 함께 무성한 덤불 속에 들어가 물소를 몰아대고 싶지는 않았다. 매코머하고는 물소건 다른 무슨 짐승이건 전혀 같이 사냥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런 것이 직업 사냥꾼의 비애라는 것이다. 젊고 혈기가 왕성했을 때는, 정말 괴팍스러운 꼴통들과 함께 사냥을 한 적도 있었다.

만약 오늘 물소를 잡게 되면, 다음에는 코뿔소 정도가 목표가 되겠지. 그렇게 되면 이 처량한 자식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냥 여행도 그럭저럭 마무리되는 셈이다. 그러면 결말이 지어지고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여자하고도 이 이상 뭘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다. 매코머와의 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럭 잊혀지리라.

하는 꼬라지를 보니, 이 친구는 전에도 이런 일을 몇 번씩 당한 것 같다. 이 불쌍한 거지 같은 자식아... 이 자식은 그래서 그런 못 볼 꼴도 대충 견뎌내는 그런 방법을 저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건 틀림없어. 글쎄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자기 스스로 저지른 실수란 말일세...

이 로버트 윌슨이란 작자는 사냥 여행을 나갈 때면 항상 더블베드를 가지고 다녔다. 언제 뜻밖의 행운이 갑자기 굴러들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단골 손님들과 함께 사냥을 나간 적이 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뒤섞인 일행을 이끈 적도 있었다. 스포츠라면 사죽을 못 쓰는, 행동이 방탕한 무리들에게 고용된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행들 속의 여자들은 직업적인 백인 사냥꾼과 동침하지 못하면 돈을 써가며 사냥 여행을 온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썩 마음에 드는 여자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헤어진 뒤에 생각해 보면 모두 다 경멸스러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무리들 덕분에 밥을 먹고 살아온 것이다. 그들에게 고용된 동안에는 그도 그들의 표준에 따라 행동을 했을 뿐이다.

총을 쏘는 것 외에 다른 모든 일에서는 그들이 그의 표준이어야 했다. 다만 사냥에 있어서만은 그는 자기 자신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사냥에서는 그들은 그의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게 싫으면 다른 사냥꾼을 고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모두 자신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매코머란 작자는 이상한 녀석이다. 제기럴... 이 자식만 없다면... 그런데 녀석의 아내는? 그렇지, 녀석의 아내지. 그녀는 녀석의 마누라란 말이다. 흥, 아내라고? 제기럴, 그 따위는 모두 잊어버려라. 그는 고개를 돌려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매코머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앉아 있고, 마고트는 미소를 띠며 윌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그녀는 유난히 젊어 보였다. 다른 때보다 더욱 순진해 보이고 더욱 신선하다. 창녀의 아름다움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여자가 머리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간밤에 이 여자는 별로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 여자의 얼굴만 봐도 무척 즐거워지지 않느냐...

자동차는 천천히 오르막을 기어올라 나무들 사이를 달려갔다. 그리고 풀이 무성한 넓은 초원의 빈터로 나왔다. 운전수가 자동차 속도를 늦추었다. 그리고 들판의 주위 잘 보이지 않는 곳을 골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윌슨은 초원 너머 저쪽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았다.

윌슨은 차를 멈추게 하고 쌍안경으로 들판을 샅샅이 살폈다. 그런 다음 몸짓으로 운전수에게 다시 앞으로 나가도록 했다. 자동차는 울퉁불퉁 패인 들판의 구멍을 피해 흰개미 집을 비켜가며 천천히 굴러갔다. 그때 들판을 살펴보고 있던 윌슨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있습니다."

자동차는 튀어오르 듯 달려나갔다. 윌슨이 운전수에게 스와힐리 말로 재빨리 뭐라고 말했다. 윌슨이 손가락질하는 곳을 바라보니 거대한 검은 짐승 세 마리가 매코머의 눈에 띄었다. 길고 묵직한 몸뚱이가 마치 둥근 원통 같았다. 커다란 검은 물탱크 차 같기도 하다. 짐승들은 초원의 저 끝을 달려서 건너가고 있었다. 번쩍 치켜든 그 머리 끝에, 위로 솟아오른 검은 뿔이 보였다. 그러나 머리를 흔들고 있지는 않았다.

"세 마리 모두 늙은 물소들이군." 윌슨이 말했다. "습지에 가기 전에 놈들의 길을 가로막아야 합니다."

차는 시속 45마일의 속도로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매코머의 눈에 물소가 점점 크게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잿빛 털을 가진, 우둘투둘한 피부의 거대한 물소 한 마리가 분명히 눈에 드러났다. 어깨 사이에 목이 푹 파묻혀 있고, 뛰어가는 흔들림에 맞춰 검은 뿔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 앞에는 다른 두 마리가 몸을 앞으로 내민 채 곧장 달려가고 있었다.

차가 한 번 크게 흔들리며 길을 뛰어넘자, 일행은 물소에 무척 가까워졌다. 넘어질 듯 앞으로 달려가는 물소의 거대한 몸집, 털이 듬성듬성한 피부는 먼지 투성이다. 뿔은 양쪽으로 넓게 벌어졌고, 넓은 콧등에 콧구멍이 드러나 보였다. 이 모든 것을 보자, 그는 총을 집어들고 사격 자세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자 윌슨이 외쳤다.

"차에서 쏘면 안돼요, 바보처럼..." 이때 그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오직 윌슨에 대한 증오만을 느꼈을 뿐이다. 브레이크가 걸리고 차는 옆으로 미끄러지며 거의 멈춰섰다. 윌슨이 한쪽 문으로, 그는 다른 쪽으로 해서 차에서 내렸다. 땅이 아직 흔들려 그는 발을 비틀거렸다. 그러나 곧 총을 치켜들고 달아나는 물소를 겨냥해 쏘았다.

총알이 한 발 두 발 물소 몸에 들어맞는 소리가 들렸다. 물소는 그래도 우직하게 계속 달리고 있다. 그는 총알을 있는 대로 계속 쏘았다. 이때 겨우 앞 어깨와 어깨 사이를 집중적으로 쏘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총알을 재려고 총을 만지작거릴 때 물소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무릎을 꿇고 커다란 머리를 앞으로 내젓고 있었다.

나머지 두 마리가 계속 달리는 것을 보고 매코머는 이번에는 앞에 선 놈을 쏘아 맞추었다. 그리고 또 쏘았다. 이번에는 맞지 않았다. 그는 꽝 하고 울리는 윌슨의 총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앞에 선 물소가 거꾸로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 또 한 마리를 쏴요." 윌슨이 소리쳤다. "지금 쏜 것 말이오."

그러나 물소는 여전히 유유한 발걸음으로 뛰고 있었다. 그가 쏜 총알은 물소를 맞추지 못하고 푹 하고 먼지만 일으켰다. 윌슨도 맞추지 못해 먼지가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윌슨이 외쳤다.

"갑시다. 거리가 너무 멀어요." 윌슨은 부르짖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그들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매코머와 윌슨은 차의 양쪽에 매달려 우둘투둘한 지면을 흔들리며 돌진했다. 똑 같은 속도로 여전히 넘어질 듯 앞으로 곧장 달려가는 물소를 뒤쫓아갔다.

일행은 물소 뒤로 다가갔다. 매코머가 총알을 재다 땅에 떨어뜨렸다. 그는 다시 총알을 주워 서둘러 총에 넣었다. 그러는 동안 차는 거의 물소와 부딪힐 정도까지 가까워졌다. 윌슨은 "정지!" 하고 고함을 쳤다. 차는 뒤로 미끌어져 뒤집힐 뻔했다.

물소는 등을 구부린 모습으로 달리고 있었다. 매코머는 앞으로 뛰어내려 노리쇠를 뒤로 젖히고 될 수 있는 대로 검은 등 앞쪽을 겨누어 다시 쏘았다. 그리고 또 겨누어 쏘았다. 그리고 또 다시 쏘았다. 총알은 모두 물소에게 맞았다. 그러나 물소는 끄덕하지 하지 않았다.

그때 윌슨이 또 쏘았다. 쓍 하고 귀를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물소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매코머는 조심스럽게 겨누어 다시 한 반 쏘았다. 다음 순간 물소는 무릎을 꿇고 퍽 쓰러졌다.

"잘 됐어요." 윌슨이 말했다. "훌륭한 솜씨입니다. 결국 세 마리 다 잡고 말았군요."

매코머는 마치 취한 것 같았다. 너무 기뻤다.

"당신은 몇 발 쏘았소?" 그는 물었다.

"딱 세 발 쏘았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첫번째는 당신이 잡았고, 그게 제일 큰 놈이오. 나머지 두 마리도 당신이 잡는 것을 저는 도왔을 뿐입니다. 놈들이 수풀 속으로 들어가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아무튼 당신이 잡은 겁니다. 나는 그저 손을 좀 빌려드린 셈이구요. 아주 정확한, 대단한 솜씨였소."

"차로 돌아갑시다." 매코머는 말했다. "한 잔 마시고 싶군."

"그 전에 저 놈을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물소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둘이 다가가자 물소가 사납게 머리를 쳐들었다. 돼지 눈 같은, 가느다란 눈에 분노를 담고 그들을 향해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저 놈이 일어나면 큰일입니다. 주의하세요." 윌슨이 말했다. "조금 옆으로 돌아가서 귀 바로 뒷 부분을 쏘세요. 보기 좋게 한 방 쏘시는 겁니다."

물소는 분노에 가득 차 커다란 머리를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매코머는 그 목덜미 한복판을 조심스럽게 겨누어 한 방 쏘았다. 그러자 머리가 앞으로 푹 수그려졌다.

"이제 됐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척추에 맞았습니다. 참 대단한 놈들이지요?"

"자, 이제 한 잔 합시다." 매코머가 말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기분 좋았던 적은 없었다.

차 안에는 매코머의 아내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잘했어요, 여보." 그녀는 매코머에게 말했다. "길이 너무 험해서 고생했어요."

"차를 너무 거칠게 몰았던 것 같군요." 윌슨이 말했다.

"정말 혼났어요. 생전 이렇게 긴장했던 적이 었었어요."

"다 같이 한 잔 합시다." 매코머가 말했다.

"좋지요." 윌슨이 말했다. "우선 부인부터..." 그녀는 휴대용 수통을 들고 그대로 위스키를 들이마셨다. 그녀는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약간 몸을 떨었다. 그 다음 그녀는 매코머에게 병을 넘기고, 매코머는 그걸 윌슨에게 다시 돌렸다.

"정말 손에 땀이 나더군요." 여자가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머리가 아파요. 그런데 이렇게 차에서 총을 쏴도 좋은 줄은 몰랐어요."

"차에서는 총을 쏘지 않았는데요." 윌슨이 쌀쌀하게 말했다.

"제 말은, 자동차로 짐승을 쫓았다는 거에요."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윌슨이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쫓는 게 재미있지 않습니까? 웅덩이나 그밖에 여러 가지가 널려 있는 초원을 자동차로 달리는 거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걷는 것보다는 사냥하기가 좋습니다. 물소라는 놈은, 우리가 총을 쏠 때 갑자기 달려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걸으면서 쏘면, 놈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셈이지요. 하지만, 이런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하자면, 이건 사실 위법 행위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엔 그건 비겁한 것 같은데요." 마고트는 말했다. "덩치만 크고, 대항할 수단이 없는 짐승을 자동차로 쫓는 것 말이에요."

"그런가요?" 윌슨이 대답했다.

"나이로비 사람들이 들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제가 면허증을 뺏길 수도 있습니다. 그밖에 여러 가지 기분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윌슨이 수통을 들어 또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실업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이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매코머가 그날 처음으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당신은 내 아내에게 약점을 잡힌 셈이로군."

"여보, 당신 말이 아주 그럴 듯하군요." 마고트 매코머가 말했다. 윌슨은 두 남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호모 남자가 레즈비언 여자와 결혼하면 도대체 그 애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러나 입밖으로는 "엽총 운반인 한 사람이 보이지 않네요. 혹시 어디 갔는지 알고 있습니까?"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글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매코머가 말했다.

"아, 저기 오는군요." 윌슨이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처음 물소 있는 곳에서 차가 출발할 때 아마 차에서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중년의 엽총 운반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그물 모양으로 짠 모자를 쓰고 카키색 윗도리와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고무신을 신은 발을 절룩거리며,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윌슨에게 다가와 스와힐리 말로 뭐라고 말했다. 백인 사냥꾼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모두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뭐라고 그러는 거에요?" 마고트가 물었다.

"처음 쐈던 그 물소가 일어나서 수풀 속으로 도망쳤답니다." 윌슨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매코머는 멍하니 말했다.

"그럼 꼭 그 사자 꼴이네요." 마고트가 무언가 예상하고 있다는 듯 말했다.

"사자하고는 전혀 다를 겁니다." 윌슨이 대답했다. "매코머 씨,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고맙소. 한 잔 더 하리다."

지난번 그 사자에게 느꼈던 그런 느낌이 되살아오지나 않을까...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그는 공포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그런 기분이었다. 공포 대신 분명 무언가 가득 차오르는, 그런 사기충천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물소를 한 번 보러 가지요." 윌슨이 말했다. "운전수에게 말해서 자동차는 그늘 아래 두도록 하겠습니다."

"뭘 하려고 그러는 거에요?"

"잠깐 물소를 보려고 그럽니다." 윌슨이 말했다.

"저도 가겠어요."

"그러시죠."

세 사람은 두 번째 물소가 누워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물소는 들판에 거무스름한 자태로 누워 있었다. 머리가 풀 위에 누워, 커다란 뿔이 양쪽으로 기다랗게 솟아 있었다.

"아주 멋진 머리로군." 윌슨이 말했다. "폭이 오십 인치는 될 것 같아요."

매코머는 기쁨에 넘친 표정으로 쓰러진 물소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보기만 해도 흉측해요." 마고트는 말했다. "그늘에 좀 들어가도 될까요?"

"그럼요." 윌슨은 이렇게 말하며 매코머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보세요, 저기 숲이 끊어진 데 보이시죠?"

"보입니다."

"운반인이 그러는데, 처음 물소가 바로 저기로 들어갔답니다. 그 친구가 처음 차에서 떨어졌을 때에는 물소가 쓰러져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차를 몰고 갈 때 그 친구는 물소 두 마리가 뛰어서 달아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 처음 물소가 일어나서 노려보고 있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 녀석은 죽어라고 도망친 거죠. 그리고 물소는 저 수풀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버린 겁니다."

"지금 당장 뒤쫓아가면 안될까요?" 매코머는 열심히 물었다.

윌슨은 살피는 듯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신기한 일 아닌가...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는 그렇게 겁을 집어먹고 있더니, 오늘은 또 이렇게 용기 충천하다니...

"아니, 조금 더 기다리는 게 좋겠습니다."

"제발, 우선 좀 그늘 밑으로 들어가요." 마고트가 말했다. 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세 사람은 자동차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자동차는 멀리 떨어진, 가지가 사방으로 널찍하게 퍼진 나무 아래에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어쩌면 그 놈이 저 안에서 죽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윌슨이 말했다. "조금 더 있다 보러 갑시다."

매코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걷잡을 수 없는 행복감이 복받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거야말로 진짜 사냥인 것 같소." 그는 말했다. "여태까지 이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오. 마고트, 신나지 않소?"

"전 싫어요."

"왜?"

"전 싫어요." 그녀는 내뱉듯이 말했다. "전 소름이 끼쳐요."

"난 이제 두 번 다시, 어떤 상대고 두렵지 않을 것 같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매코머는 윌슨에게 말했다. "처음 물소를 보고 쫓아간 그 순간부터 뭔가 내게 변화가 일어났소. 마치 둑이 무너져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아. 순수한 흥분이라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오."

"그게 당신의 그 겁쟁이 담보를 깨끗이 씻어버린 모양입니다." 윌슨이 말했다. "인간에겐 여러 가지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법이지요."

매코머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 그는 말했다. "나는 이제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된 것 같소."

그의 아내는 아무 말없이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뒷자리 깊숙이 파묻혀 있고, 매코머는 앞으로 몸을 내밀고 몸을 비스듬히 뒤로 돌려 바라보는 윌슨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그놈의 사자와 부딪혔으면 좋겠어." 매코머는 말했다. "이제 사자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아. 놈들이 뭘 어떻게 하겠어."

"바로 그겁니다." 윌슨이 말했다. "기껏해야 죽이기 밖에 더하겠어요? 그 다음엔 뭘 하겠습니까? 세익스피어가 뭐라고 한 말이 있는데... 참 그럴싸한 말이 있지요. 뭐라고 그랬더라? 그래 정말 멋있는 말이었는데, 한때는 곧잘 인용도 하고 그랬는데, 가만 있자...

'결코 걱정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죽은 것은 오직 한 번뿐, 죽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자. 올해 죽는 놈이 내년에 또다시 죽을 리는 없으니까...' 정말 멋있는 말 아닙니까?"

그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삼고 있던 이 말을 하고 나서 속으로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전에도 사람이 갑자기 자기 나이 값을 하는 것을 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늘 깊은 감동을 받곤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물 한 번째 생일 잔치를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인 것이다.

매코머에게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냥 때문이었다. 미처 이것저것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갑자기 행동에 들어가야 하는 이 기묘한 행위... 사냥 때문에 이런 우연한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왜 일어났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런 변화가 틀림없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저 거지 같은 자식의 꼬락서니 좀 보라구... 윌슨은 생각했다. 저런 녀석들 중에는 오랫동안 계속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놈들도 있다. 잘못하면 죽을 때까지도 어린애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저 위대한 미국인, 어른의 가면을 쓴 어린애들 말이야... 정말 묘한 녀석들이지... 그러나 어쨌든 난 지금 이 매코머라는 작자가 마음에 드는 것 같단 말이야...

정말 이상한 친구야. 아마 이제 저 마누라도 더 이상 서방질을 하지는 못할 거야. 맞아, 그럴 거야. 그건 정말 좋은 일이지, 정말 좋은 일이야. 이 거지 같은 녀석은 평생 겁만 내면서 살아왔을 거라구.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이제 그것도 끝난 것 같아. 물소 따위를 상대로 겁을 먹을 시간 여유가 없었던 거야... 또 화를 낼 시간도 없었고...

자동차 덕분일지도 몰라. 차가 있었기에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주 기세 당당하군. 나는 전쟁터에서도 똑 같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 처녀성을 잃는 것보다 더 큰 변화인 셈이야. 마치 수술해서 제거한 것처럼 공포란 것이 사라져버리는 거지. 그리고 그 자리에 뭔가 다른 것이 자라나는 것이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어떤 것 말이다. 사람을 어른으로 만드는 것. 여자들도 이런 것을 알고 있다. 겁먹을 건더기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맨 구석 자리에서 마가레트 매코머는 두 사나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윌슨에게는 아무 변화도 없다. 그 전날, 그녀가 그의 위대한 재주가 어떤 것인지 처음 알아차렸을 때와 전혀 다름이 없다. 그러나 프랜시스 매코머에게는 지금 뭔가 변화가 엿보였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 그 일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소?" 매코머는 새로 얻은 풍성함을 여전히 흐뭇하게 느끼고, 탐구하면서 윌슨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할 줄은 몰랐습니다." 윌슨은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히려 두려움으로 떨린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요? 지금부터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 얼마든지 생길 테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틀림없이 이 다음에 생길 일이 행복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윌슨이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대해서는 너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말이 많으면 일을 다 망쳐버리기 쉽습니다. 무슨 일이건 너무 말이 많으면 신통치 않는 결과가 되는 법입니다."

"두 분 다 쓸데없는 소리만 하시는군요." 마고트가 말했다. "저 불쌍한 짐승을 자동차로 쫓으면서, 마치 무슨 영웅이나 된 것처럼 얘기하시는군요."

"죄송합니다." 윌슨이 말했다. "너무 허풍을 떤 모양이군요." 이 여자는 이렇게 말해놓고도 금방 후회하고 있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들이 하는 얘기를 이해할 수 없으면 잠자코 있는 게 낫지 않겠소?" 매코머는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무척 용감해졌군요, 그것도 느닷없이 말이에요." 그의 아내는 경멸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 경멸의 느낌은 뭔가 석연치 않았다. 뭔가 무척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코머는 껄걸 웃었다. 그것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척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확실히 그런 느낌이야." 그는 말했다. "정말 그런 느낌이 들어."

"너무 늦은 것 아닌가요?" 그녀는 입맛이 쓴 듯이 말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과거 두 사람이 지낸 오랜 세월 동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왔던 것이다. 지금 그들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은 결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너무 늦은 게 아니야." 매코머는 말했다.

마고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 한구석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제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은데." 매코머는 쾌활하게 윌슨에게 말했다.

"이제 보러 갈까요?" 윌슨이 말했다. "총알은 아직 남아 있지요?"

"운반인이 좀 가지고 있을 거요."

윌슨이 스와힐리 말로 흑인을 불렀다. 물소의 머리를 벗기고 있던 나이 먹은 흑인이 일어나 호주머니에서 총알 상자를 꺼내 매코머에게 주었다. 매코머는 탄창에 총알을 넣고 나머지 총알은 호주머니에 넣었다.

"당신은 스피링필드 라이플을 쓰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윌슨이 말했다. "손에 익숙한 것이 좋지요. 맨리처 라이플은 부인께 맡겨두고 갑시다. 무거운 총은 엽총 운반인이 들고 갈 겁니다. 나는 이 큰 총을 들고 가겠습니다. 자, 그럼 다음은 그 물소 말인데요..."

그는 매코머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소가 덤벼들 때는 머리를 숙이고 똑바로 달려듭니다. 뿔이 앞으로 쑥 내밀어져서 머리를 총알에서 보호하게 되는 거지요. 치명타를 먹이려면 똑바로 코를 쏘아야 합니다. 그밖에 가슴팍을 겨누든가, 또 옆으로 서 있을 경우에는 목덜미나 어깨를 쏴야 합니다.

한 번 제대로 맞으면 녀석들은 발광을 하는 것처럼 몸부림을 치게 되지요. 절대 무리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자리에서 제일 편한 사격을 하세요. 저 친구들도 머리를 다 벗긴 모양이군요. 자, 이제 출발합시다."

그는 엽총 운반인을 불렀다. 그들은 손을 닦으면서 가까이 왔다. 나이 먹은 흑인이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콩고니만 데리고 가도록 합시다." 윌슨이 말했다. "다른 놈들은 새나 쫓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넓은 늪지대를 가로질러 물이 흘러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자동차는 그 자국을 따라 넓은 초원을 덜컹대며 나아갔다. 자동차는 풀잎이 혀 모양으로 뻗어 있는 덤불 수풀 쪽을 향했다. 매코머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시 입 안이 바짝 말라왔다. 그러나 그것은 공포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흥분 때문이었다.

"놈은 여기로 숨어 들었어요." 윌슨이 말했다. 그러고 나서 흑인 운반인에게 스와힐리 말로 "자국을 쫓아가라"고 말했다.

차는 덤불 사이에 반듯하게 멈췄다. 매코머가 내리고 다음에 윌슨, 그리고 운반인, 이런 순서로 그들은 차에서 뛰어내렸다. 매코머가 뒤를 돌아보니 아내는 총을 옆에 놓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덤불은 더 무성해졌다. 땅은 말라 있었다. 중년의 엽총 운반인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윌슨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매코머 바로 눈 앞에 그 붉은 목덜미가 드러나 보였다. 엽총 운반인이 갑자기 윌슨에게 스와힐리 말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앞으로 달려갔다.

"저 놈이 저기 뻗어 있군요." 윌슨이 말했다. "잘됐군요." 그는 뒤로 돌아 매코머의 손을 잡았다. 서로 쓴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하고 있을 때, 토인이 비명을 지르며 덤불 속에서 옆으로 게걸음을 치며 튀어 나왔다. 물소가 그 뒤를 쫓아온다... 코를 번쩍 쳐들고, 입은 꽉 다물고, 피를 질질 흘리면서 큼직한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덤벼드는 것이다.

물소는 조그마한, 돼지 같은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핏대가 올라 있었다. 앞에 서 있던 윌슨이 무릎을 꿇으며 쏘았다. 매코머도 쏘았다. 그러나 그의 총소리는 윌슨의 총소리에 덮여 들리지 않았다. 다만 커다란 뿔 끝에서 파편이 슬레이트처럼 튕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새 짐승의 머리는 쑥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쳐든 콧구멍을 겨누어 또 쏘았다. 뿔이 흔들리고 파편이 날리는 것이 보였다.

이미 윌슨은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겨누어 그는 또 쏘았다. 이미 물소의 거대한 몸뚱이가 그에게 거의 덮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총은 덤벼드는 물소의 코에 거의 닿을 지경이었다. 악에 치받친, 사악한 작은 두 눈이 보였다. 그리고 머리를 아래로 숙인다. 순간 그는 하얗게 빛나는, 눈이 핑 도는 섬광이 머리 속에서 터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그가 느낀 모든 것이었다.

윌슨은 물소의 어깨를 쏘려고 한쪽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 매코머는 똑바로 선 채 물소의 코를 겨누어 쏘고 있었다. 그러나 겨냥이 약간 높아, 총알은 번번히 묵직한 뿔을 맞췄다. 마치 슬레이트 지붕에 총알이 맞은 것처럼 파편이 날렸다.

차 안에 있던 매코머 부인은 6.5 파운드 짜리 맨리처 라이플로 물소를 겨누어 쏘았다. 남편의 몸이 금방이라도 물소의 뿔에 찔릴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총알은 이 인치 가량 빗나가 남편에게 맞았다. 두개골 아래 한쪽 끝에 맞은 것이다.

프랜시스 매코머는 얼굴을 밑으로 하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거기서 이 야드도 못되는 곳에 물소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시체 옆에 무릎을 꿇었다. 윌슨은 그 옆에 서 있었다.

"몸을 뒤집어서는 안됩니다." 윌슨이 말했다.

여자는 히스테리컬하게 울고 있었다.

"나는 차 있는 데로 가봐야겠소." 윌슨이 말했다. "총은 어디 있습니까?"

그녀는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엽총 운반인이 총을 집어올렸다.

"그대로 그냥 둬." 윌슨이 소리쳤다. 그리고 말했다. "가서 아부들라를 불러와. 이 사건의 증인으로 세워야 하니까."

그는 무릎을 꿇고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는 그것을 펴서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게 깎은 머리를 덮었다. 바싹 마른 땅속으로 피가 스며들고 있었다.

윌슨은 일어나서 옆으로 넘어져 있는 물소를 보았다. 네 다리를 쭉 뻗고, 가는 털이 난 배에는 진드기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정말 멋있는 물소야.' 그의 머리 속에는 기계적으로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오십 인치? 아니 그보다 더 될 것 같군. 훨씬 더 클 거야.' 그는 운전수를 불러서 시체 위에 담요를 덮고 옆에 서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동차 있는 곳으로 갔다. 여자는 좌석 한 구석에 앉아 울고 있었다.

"엄청난 일을 저질렀군요." 윌슨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 양반도 당신하고는 헤어지고 싶었을 테지만..."

"그만둬요." 그녀는 말했다.

"물론 이것은 사고일 뿐입니다." 그는 말했다. "사실이 그렇지요."

"그만두라니까요."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걱정할 건 없소." 그는 말했다. "좀 기분 나쁜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취조할 때 도움이 되도록 사진을 좀 찍어 둡시다. 엽총 운반인들과 운전수도 증인이 되어줄 거구...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지요."

"그만두라니까!" 그녀는 말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차를 호수까지 보내 무전을 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셋을 나이로비에 실어가도록 비행기를 보내달라고 해야죠. 왜 독약을 쓰시지 그랬소? 영국에서는 그런 방법을 많이 쓴다고 하던데..."

"그만, 그만, 그만 하라니까!" 여자는 울부짖었다.

윌슨은 파란 눈으로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나도 이제 속이 후련합니다." 윌슨이 말했다.

"물론 화야 조금 났지만, 당신 남편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는데..."

"아, 제발 좀 그만둬요." 그녀는 말했다. "제발, 제발 그만둬요."

"그러는 게 좋겠군." 윌슨은 말했다. "제발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훨씬 낫군. 그럼 나도 그만두기로 하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