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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오 헨리가 활약하던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유쾌한 상상의 소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낭만적인 상상의 소재라기보다 강철처럼 차갑고 분명한 현실 묘사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지금 시대에 사랑의 신이 재물의 신 앞에서 감히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할 수 있을까? 신들의 세계에서도 간이 배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작가 소개]

오 헨리(O. Henry, 1862-1910)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윌리암 시드니 포터며 O.헨리는 필명. 견습 약제사로 일하다가 텍사스 주에서 양치기와 우편 배달부 노릇을 했다. 은행의출납계원으로 일하면서 저널리즘과 관계를 맺었으나 공금 횡령 사건에 휘말려 투옥되기도 했다. 3년 동안의 옥중 생활 동안O.헨리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출옥 후 뉴욕으로 이주하여 작가로서 크게 활약했다.

그의 작품은소재가 다양하고 인물의 성격 묘사보다는 플롯 위주의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미국의 대도시 생활을 배경으로 극히 평범한 인물들의다양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한 것도 그의 미국 문학에 대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 약 280여편의 단편 작품을 발표, 단편장르를 본격화했으며 미국의 대표적인 단편 작가로 평가받는다. 단편집으로〈양배추와 임금님〉 <4백만 명〉 〈준비된 등불〉〈서부의 마음〉 〈도시의 목소리〉 〈구르는 돌〉 등이 있다.

 






락웰 유리카 비누 회사의 전 경영주였던 앤서니 락웰 노인은 5번가에 있는 자기 집 서재의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이웃에 사는 귀족 사교클럽 회원 G. 반 스칼라이트 서포크 존스 씨가 대기시켜 놓은 자동차로 오더니, 이 집 현관에 서 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식 조각을 바라보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경멸하는 표정으로 콧날을 찌푸리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거만한 장사꾼 영감 같으니라구!"

과거의 비누왕은 입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에덴 박물관(납인형 전문 박물관)에서 저 싸가지 없는 영감태기를 가져다가 진열할지도 모르지. 올 여름에 이 집을 네덜란드 국기처럼 붉고 희고 푸른 색깔로 칠해 버릴 테다. 저 네덜란드 영감태기의 코가 납작해지도록 말이야."

락웰 노인은 그리고 서재의 문으로 다가가서 과거 캔자스 벌판을 호령하던 그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이크!"

초인종이 장치돼 있었으나 그는 그런 물건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도련님에게 외출하기 전에 이리로 들르라고 전해주게."

노인은 하인에게 말했다.

락웰 2세가 서재에 들어왔다. 노인은 신문을 내려놓고 커다랗고 붉은 얼굴에 부드러우면서도 의젓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을 바라보면 한 손으로는 흰 머리를 긁적이고 다른 손으로는 호주머니 안의 열쇠 뭉치를 짤랑거렸다.

"리처드!"

노인이 말했다.

"네가 쓰는 비누 값이 한 다스에 얼마인지 알고 있니?"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돌아온 지 이제 여섯 달이 지난 리처드는 당황했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묻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사교계에 나온 애숭이처럼 그에게는 이런 질문들이 낯설기만 했다.

"한 다스에 6달러인 것 같은데요."

"그럼 네 옷값은?"

"60달러쯤 되겠지요."

"됐어.넌 신사야."

노인은 거침없이 말했다.

"듣자니, 요즘 젊은이들은 한 다스에 24달러짜리 비누를 쓰고, 한 벌에 100달러가 넘는 옷을 예사로 걸친다고 하더구나. 너는 그런 녀석들 못지않게 돈이 많다. 그런데도 돈을 쓰는 것으로 봐서는 성실하고 검소한 태도를 갖고 있다. 나는 지금도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유리카 비누를 쓰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 비누가 우리 것이라서가 아니라 실제로도 가장 좋은 비누이기 때문이다. 비누 한 개에 10센트도 못되는 것을 쓰면 안 된다. 그것은 나쁜 향료와 상표를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네 나이, 너와 같은 지위와 신분의 젊은이라면, 50센트짜리 비누를 쓰는 게 당연하지. 내가 지금 말한 것처럼 너는 이제 어엿한 신사야.

신사 한 사람을 만들려면 3대에 걸친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 하지만 그건 세상에서 괜히 하는 말이다. 돈이 인간의 때를 말끔하게 벗겨주는 법이란다. 마치 비누나 마찬가지지. 돈이 널 신사로 만든 거야. 암, 그렇구말구. 우리 집 양쪽에 사는 늙은 네덜란드 신사들 사이에 집을 장만하고 끼어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불만이 많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투덜대곤 하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이나 우리나 다를 것도 없단다."

"하지만 돈으로 못하는 일도 얼마든지 있어요."

아들은 약간 침울한 말투로 말했다.

"얘야,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라."

앤서니 노인은 볼멘 소리로 말했다.

"나하고 내기를 하자꾸나. 난 돈으로 살 수 없는 물건을 찾아보려고 백과사전을 뒤져보기까지 했단다. 다음 주에는 아예 백과사전 증보판까지 뒤져볼 생각이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돈이 이긴다는 쪽에 건다. 그래, 도대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하나는 있죠."

락웰 청년은 쑥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자격 요건이 엄격한 상류 사교계에는 돈을 주고도 들어갈 수 없어요."

"뭐? 상류 사교계에 들어갈 수 없다고?"

노인은 큰 소리로 외쳤다.

"만약에 애스터가 이 나라에 올 배삯이 없었던들 네가 말하는 그 상류 사교계라는 것 자체가 생겨날 수 없었을 게다."

 


 



락웰 청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바로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노인은 아들에게 말을 계속했다.

"너를 불러들인 것도 이것 때문이란다. 너 요즘 무슨 고민이 있는 거 아니냐? 벌써 두 주일이나 안절부절하는 모습이더구나, 문제가 있으면 털어놓고 애비에게 말해보렴. 난 24 시간 안에 부동산을 팔지 않고도 1,100만 달러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만약 너한테 무슨 고민거리가 있다면, 램블라 호가 석탄을 싣고 이틀 후면 바하마제도로 떠날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둬라."

"아버지 짐작이 사실 어느 정도 맞췄어요."

"암, 그렇겠지."

영감은 얼른 아들의 말을 받았다.

"그래, 그 여자의 이름은 뭐냐?"

락웰 청년은 이제 서재를 이리저리 불안하게 거닐기 시작했다. 이 무뚝뚝한 노인이 보여준 사랑과 관심이 아들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런데 너는 왜 그 여자에게 청혼을 하지 않는 거니? 그 여자는 기꺼이 네 품에 뛰어들 텐데 말이야. 넌 돈도 많고 인물도 좋은데다, 신사답지 않으냐? 게다가 넌 어느 모로 보나 신선한 분위기란다. 유리카 비누 냄새가 아직은 풍기지 않는단 말이야. 넌 대학도 나오지 않았느냐? 아마 그 여잔 이런 걸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구나."

"전 아직 청혼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어요."

락웰 청년은 말했다.

"기회는 자기가 만들어야 하는 거란다."

노인이 대꾸했다.

"공원을 함께 산책하거나, 차를 타고 시골로 가거나 아니면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래다 준다고 하거나 그럼 되잖니. 기회가 없다니, 말이 안 되지."

"아버지는 사교계라는 물레방아를 모르고 계셔요. 사실 그 여자는 그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의 일부나 마찬가지에요. 그 여자의 일정은 제가 끼어들기 어렵게 빈틈없이 약속이 잡혀 있으니까요. 아버지, 저는 꼭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그렇지 못하면 제가 사는 이 거리는 저에게 영원히 시커먼 신갈나무로 뒤덮인 진창이나 마찬가지일 거에요. 그렇다고 고백하는 편지를 보낼 수도 없어요. 그런 짓은 차마 못하겠어요."

"참 딱하기도 하다."

노인은 말을 계속했다.

"내 돈이 다 네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래 그런 여자애에게서 한두 시간도 얻어내지 못한단 말이냐?"

"저는 사실 너무 늑장을 부린 셈이에요. 그녀는 앞으로 2년 동안 머물 예정으로 내일 모레 배를 타고 유럽으로 떠납니다. 저는 내일 밤 겨우 몇 분 동안 둘이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녀는 지금 리치먼드의 숙모 댁에 가 있어요. 제가 그리로 찾아갈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녀가 내일 밤 8시 반 기차로 여기 오면 제가 마차를 가지고 마중하러 정거장에 나가기로 했어요.

거기에서 그녀와 함께 윌랙 극장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브로드웨이 거리를 마차로 달릴 계획이죠. 그녀의 어머니와 일행이 극장 로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구요. 겨우 주어진 6,7분 동안 엄청나게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는데, 그 여자가 저의 고백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보세요?

마찬기지로, 연극이 끝난 뒤에 무슨 기회가 있겠어요? 불가능한 얘기에요. 아버지, 이거야 말로 아버지 돈으로 풀 수 없는 매듭 가운데 하나에요. 돈으로는 단 1분도 살 수 없어요. 만약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있다면 이 세상 부자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을 거에요. 그녀가 유럽행 배로 떠나기 전까지 청혼할 만한 시간을 만들 수 없어요."

"얘야, 너무 걱정마라."

노인은 어딘지 장담하듯이 말했다.

"넌 클럽에라도 가 있으렴. 그렇지만 때로는 위대한 재물의 신 머큐리를 위해 신전에 찾아가 푸닥거리라도 할 필요가 있단다. 넌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다고 했지. 물론 우리가 돈으로 시간을 사서 우리 집으로 배달해 달라고 할 수 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시간을 지배하는 신이 금광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발꿈치에 꽤 큰 상처가 생긴 걸 본 적이 있단다."


3. 반지가 주는 사랑의 행운

그날 밤에 상냥하고 감상적인 그러나 재산에 눌려 지겨워하는 엘렌 고모가 집에 찾아왔다. 앤서니 노인은 마침 석간 신문을 펴들고 읽고 있었다. 오누이는 락웰 청년이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애는 나한테 자기 고민을 다 털어놨단다."

노인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난 내 은행 예금을 그 애를 위해 모두 쓰겠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 애는 돈에 대하여 마구 공격을 퍼붓더구나. 돈 같은 건 사실상 쓸모가 없다는 둥, 사교계의 규율은 백만장자 열 사람이 힘을 합쳐도 전혀 바꿀 수 없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대더구나."

"그렇긴 해요, 오빠."

엘렌 고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는 돈을 과대평가하는 것 같아요. 진정한 사랑에 있어서 재물이란 아무 소용도 없답니다. 사랑이란 이 세상 무엇보다 강한 거니까요. 그 애가 그 얘기를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좋았을 걸. 그 여자가 리처드를 마다고 할 리야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젠 너무 늦은 것 같아요. 그 애는 여자에게 고백할 기회가 없을 거예요. 오라버니의 전 재산을 갖고도 그 애의 행복을 사줄 수는 없으니까요."

이튿날 저녁 8시 쯤 엘렌 고모는 낡은 상자 속에서 골동품 같은 금가락지를 하나 꺼내 리처드에게 주며 말했다.

"애야, 오늘 밤에 이걸 끼고 가렴. 네 엄마가 나에게 주신 거란다. 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이 반지가 사랑의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을 때 너에게 전해주라고 나한테 맡긴 거란다."

락웰 청년은 엄숙한 얼굴로 반지를 받아 자기 새끼손가락에 끼려고 했다. 하지만 반지는 손가락의 두 번째 마디까지 들어가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반지를 다시 빼서 남성의 예법에 따라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전화로 자기 마차를 불렀다.

8시 32분에 락웰 청년은 정거장의 시끄러운 군중들 사이에서 렌트리 양을 찾아냈다.

"어머니 일행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돼요!"

그녀는 말했다.

"윌랙 극장까지 최대한 빨리 마차를 몰아요!"

리처드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마부에게 지시했다.

그들은 브로드웨이에 이르는 42번가를 쏜살같이 지나, 아침 해가 솟아 오른 산등성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브로드웨이의 불빛 환한 길거리를 달렸다. 리처드는 34번가에서 갑자기 창문을 열고 마부에게 멈춰서라고 말했다.

"제 반지를 떨어뜨렸어요."

그는 마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 반지는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것이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어디서 떨어뜨렸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는 1분도 안 되어 반지를 가지고 마차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1분 사이에 전차 한 대가 바로 마차 옆에 멈춰섰다. 마부는 왼쪽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커다란 우편 화물차가 앞을 가로막았다. 오른쪽으로 나가려고 하자, 가구를 실은 화물차가 갑자기 앞질러 나오는 바람에 오히려 뒤로 물러서야 했다. 마부는 말고삐를 떨구며 화를 냈다. 그는 어느새 많은 차량과 말들이 엉킨 혼란 한가운데 갇히고 말았다.

이 대도시에서는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나곤 했다. 그리하여 군중과 차량의 통행을 막아버리는 큰 혼잡이 빚어지곤 했던 것이다.

"왜 마차가 움직이지 않죠?"

렌트리 양이 초조한 목소리로 외쳤다.

"잘못하면 늦겠어요."

리처드는 마차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다. 브로드웨이 6번가와 34번가 교차로가 대형 짐마차, 트럭, 전차 등으로 꽉 막힌 상태였다. 게다가 옆길에서 수레들이 전 속력으로 이 교차로를 향해 달려와, 붐비는 군중과 엉켜 있는 차량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고 했다. 거리는 차량의 운전수들이 외치는 아우성으로 갈수록 혼란이 심해지고 있었다. 맨해튼의 모든 교통기관이 여기 와서 뒤엉겨버린 것 같았다. 길에 죽 늘어선 수천 명의 구경꾼들은 원래 교통이 혼잡한 뉴욕에서도 이렇게 심한 교통 혼잡은 과거에 보지 못했으리라. 


 



"죄송합니다. 우리는 마치 갇힌 신세처럼 되어 버렸군요. 이 혼잡이 한 시간 안으로는 풀릴 것 같지 않습니다. 이건 제 불찰입니다. 제가 그 반지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리처드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 가락지를 저에게도 좀 보여 주세요."

렌트리 양이 말했다.

"이제 별 수 없군요. 단념해야겠어요. 사실 그 연극은 좀 시시한 거였으니까요."

그날 밤 11시 쯤 락웰 저택의 현관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들어와요."

붉은 가운을 걸치고 해적의 모험소설을 읽고 있던 앤서니 노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엘렌 고모였다. 그녀는 마치 실수 때문에 지상에 남게 된 백발의 천사 같은 모습이었다.

"오빠, 리처드랑 그 처녀가 약혼했다지 뭐에요."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세, 그 처녀가 리처드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대요. 걔들이 극장에 가는 도중에 길이 막혀 마차를 다시 끌고 나오는데 자그만치 두 시간이나 걸렸대요. 그런데 오빠, 다시는 돈 자랑하지 마세요. 진정한 사랑의 작은 상징이 리처드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것이랍니다. 그 애가 반지를 길에 떨어뜨려 그걸 찾으려고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교통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는 거예요. 아무튼 마차가 그렇게 길거리에 묶여 있는 동안 리처드가 사랑을 고백해서 그녀의 승낙을 얻었다지 뭐예요. 오빠, 진정한 사랑에 비하면 돈은 아무 것도 아니라구요."

"그래? 아무튼 우리 아들녀석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잘 되었구나. 나는 그 녀석에게 말해 줬단다. 이 일에 대해서는 결코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이야, 만약에 말이야…."

앤서니 노인은 말했다.

"하지만 오빠, 이번 일에는 오빠의 돈이 무슨 도움이 되었겠어요?"

"얘야!"

앤서니 노인은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서 해적이 엄청나게 곤란한 지경에 빠졌어. 녀석의 배가 곧 침몰할 처지인데, 녀석은 돈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배를 침몰시키지는 않을 것 같구나. 제발 부탁이니 이 부분을 마저 읽도록 해주렴."

이튿날, 손이 거칠고 푸른 바탕에 물 방울 무늬가 박힌 넥타이를 맨 켈리라는 사나이가 앤서니 노인을 찾아왔다. 그는 곧바로 서재로 안내되었다.

"아주 잘했네, 가만있자…. 자네에게 내가 현금으로 5천달러나 줬지?"

"하지만 제 돈이 3백 달러나 더 들었지 말임다."

켈리가 주장했다.

"예산이 좀 초과되었지 말임다. 우편 화물차와 마차에는 5달러씩 들었지만, 트럭과 말 두필이 끄는 큰 마차는 거진 10달러씩 들었지 말임다. 전차 운전수는 5달러를 달라고 말임다. 대형 화물차 운전수는 5달러를 내라고 하지 말임다. 제일 골 때리는 게 짭새지 말임다…. 두 인간한테 50달러씩 주었지 말임다. 그런데 어르신, 일은 그래도 멋들어지게 끝냈습죠?

경찰국장 윌리엄 A. 브레 씨가 이번 소동에 얼굴을 내밀지 않은 게 다행이지 말임다. 윌리엄 씨가 직무에 충실하다가 심장 터지는 걸 보고 싶진 않지 말임다. 그런데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못할 짓이지 말임다. 그 인간들이 1초도 틀리지 않고 제때에 들이댔지 말임다. 무려 2시간 동안 뱀 새끼 한 마리도 그릴리 동상 아래를 얼씬하지 못했지 말임다."

"그래 잘 알았네. 켈리, 자! 1,300달러 더 받게."

앤서니 노인은 수표 한 장을 떼어주면서 말했다.

"자네 몫으로 1천 달러, 그리고 초과된 3백 달러일세. 자넨 설마 돈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아닐 테지."

"제가 말임까?"

켈리가 대답했다.

"전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난을 만들어낸 작자들을 개바르고 싶지 말임다."

켈리가 문까지 갔을 때 노인은 그를 다시 불러세웠다.

"자네 혹시 어제 거리가 한창 복잡할 때 길거리에서 홀딱 옷을 벗은 통통한 소년(편집자 주 : 사랑의 신 큐피드를 비꼬아 말한 것)이 한쪽에서 활을 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그런 건 전혀 못 봤지 말임다."

케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그런 녀석이 있었다면 제가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짭새가 끌고 갔지 말임다."

"물론 나도 그런 꼬마 건달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켈리, 그럼 잘 가게나."

앤서니 영감은 혼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