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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Leaf

오 헨리
 

[소개]

소개의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오 헨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 사이의 인정과 애환이 잘 드러난, 아름답고 감동적인 작품이지만 역시 오 헨리의 어린애처럼 명랑하고 밝은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작품의 무대인 그리니치빌리지는 뉴욕시 맨해튼섬 남부에 있는 예술가 거주지역으로 무명의 화가 ·작가 ·연예인들이 모여 있으며 미국에는 드문 좁은 길과 레스토랑 ·카페 ·상점 등이 늘어서 있다. '아메리카의 보헤미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작가 소개]

오 헨리(O. Henry, 1862-1910)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윌리암 시드니 포터며 O.헨리는 필명. 견습 약제사로 일하다가 텍사스 주에서 양치기와 우편 배달부 노릇을 했다. 은행의 출납계원으로 일하면서 저널리즘과 관계를 맺었으나 공금 횡령 사건에 휘말려 투옥되기도 했다. 3년 동안의 옥중 생활 동안 O.헨리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출옥 후 뉴욕으로 이주하여 작가로서 크게 활약했다.

그의 작품은 소재가 다양하고 인물의 성격 묘사보다는 플롯 위주의 특성을 갖고 있다. 또한 미국의 대도시 생활을 배경으로 극히 평범한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한 것도 그의 미국 문학에 대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 약 280여편의 단편 작품을 발표, 단편 장르를 본격화했으며 미국의 대표적인 단편 작가로 평가받는다. 단편집으로〈양배추와 임금님〉 <4백만 명〉 〈준비된 등불〉 〈서부의 마음〉 〈도시의 목소리〉 〈구르는 돌〉 등이 있다.




워싱턴 광장 서쪽 좁은 지역에는 구불구불한 골목길들이 이리저리 뻗어 있다. 골목길들은 그 지역을 여러 조각으로 쪼개놓았다. 그 조각들을 사람들은 '플레이스'라고 불렀다. 그 플레이스의 모양은 기묘했다. 모퉁이나 구부러진 모양이 많고, 하나의 길이 쭉 이어지다가 다시 그 길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이 지역은 생김새가 복잡했다.

전에 어떤 화가는 이 거리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물감이나 종이, 캔버스 등 물건 값을 받으러 온 사람을 따돌리는 데 이 거리처럼 안성맞춤인 곳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이 길에 들어서면 돈을 한푼도 받아내기 전에, 자신이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곧 이 낡고 이상한 모습의 그리니지 마을에는 온갖 종류의 예술가들이 찾아와 자리잡게 되었다. 이 마을의 집들은 북쪽으로 향한 창, 18세기식 박공, 네덜란드식 지붕 밑 다락방 따위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세가 무척 쌌다. 예술가들은 그들은 6번가에서 양철 간단한 난로 따위를 두세 개 사서 이 마을로 찾아온다. 그리하여 이곳에는 일종의 예술인 마을이 만들어졌다.

수우와 존시는 볼품없는 3층 벽돌 건물 꼭대기에 화실을 가지고 있었다. 존시는 조안나의 애칭이었다. 수우는 메인 주 출신이고 존시는 캘리포니아 주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8번가에 있는 델모니코 식당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샐러드와 의상 - 신부(神父) 두루마기를 연상시키는 소매가 달린 - 에 대한 취미가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모두 예술가였다. 그리하여 이 마을에 두 사람의 공동 아틀리에가 탄생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난 5월의 일이었다. 11월이 되자 의사들이 흔히 폐렴이라고 부르는 불청객이 이 마을을 휩쓸고 다녔다. 이 냉혹한 손님은 얼음 같은 손으로 온 마을을 휩쓸어버렸다. 빈민가를 대담하게 걸어다니며 엄청난 희생자를 한꺼번에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 불청객은 조용히, 비좁고 이끼 낀 플레이스의 골목길 안에까지 침범해왔다.

폐렴 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사도를 갖춘, 늙은 신사다운 품위를 갖춘 존재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의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자라난 연약한 여성은 특히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 늙은이는 피투성이 주먹을 휘두르며 거친 숨을 내쉬며 사람들에게 대들었다. 그 늙은이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다른 적당한 상대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도 병마는 존시를 습격했다. 존시는 페인트를 칠한 낡은 쇠 침대에 누워 거의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네덜란드식의 조그마한 유리창 밖으로 이웃집 벽돌 벽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동네 여기저기 왕진을 다니느라 늘 바쁘기만 한 의사가 흰털이 섞인 굵은 눈썹을 움직여 수우에게 신호를 했다. 복도로 좀 나와보라는 뜻이었다.

"살아날 가능성은 - 글쎄 열에 하나 정도랄까?"

의사는 체온계를 흔들어 눈금을 내리면서 말했다.

"우선 살아야겠다는 정신력이 있어야 나을 가능성도 생기지. 그런데 환자 마음이 장의사를 부르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리 좋은 처방을 해줘도 아무 소용이 없다구. 이 아가씨는 자기가 낫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단념하고 있어요. 이 아가씨 맘을 확 잡아 끌만한 것이 뭐 없을까?"

"존시는 - 언젠가는 나폴리만(灣)을 꼭 그리고 싶다고 그랬어요."

수우가 대답했다.

"그림이라구? 그따위 건 아무 소용없어! 뭔지 이 아가씨가 푹 빠져들어서 그걸 위해 곰곰이 생각할만한 그런 것 말이야! 이를테면 혹시 뭐 마음에 드는 남자라든가…"

"남자요?"

수우는 뭔가 목에 걸린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어요, 선생님. 그런 사람은 전혀 없답니다."

"흠, 그러니 꼭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길 리 없지…"

의사가 말했다.

"일단 내 힘이 닿은 데까지 힘을 써 보겠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환자의 의지에요. 환자가 자기 장례식 행렬에 차가 몇 대나 따라올지, 그따위 생각만 하고 있으면 치료의 효과는 절반도 낼 수가 없어요. 이를테면 올 겨울 외투는 어떤 소매가 유행하느냐랄지, 환자가 그런 질문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가능성은 열에 하나가 아니라 다섯에 하나쯤으로 늘어날 수 있어요."

의사가 돌아간 후, 수우는 화실로 들어가서 일본제 종이 냅킨이 흠뻑 젖을 정도로 울었다. 그리고 화판을 겨드랑이에 끼고 일부러 휘파람을 불면서 활발하게 존시의 방으로 들어갔다.

존시는 창쪽을 향해 조용히 누워 있었다. 이불에 주름이 하나도 접히지 않을 만큼 조용한 모습이었다. 혹시 잠이 들어 있나 싶어서 수우는 휘파람을 그쳤다.

수우는 화판을 똑바로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 잡지 소설의 삽화였다. 젊은 작가는 스스로의 문학의 길을 열어가기 위해 잡지에 소설을 쓰고, 젊은 화가는 그 소설에 쓸 삽화를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예술의 길을 개척해 가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다호의 카우보이였다. 수우가 승마 클럽의 화려한 승마 복장과 모노클(외눈안경)을 그리고 있으려니,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우는 얼른 일어나서 침대 쪽으로 갔다.




존시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창 밖을 내다보며 뭔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계산은 수를 거꾸로 세는 것이었다.

"열 둘."

조금 더 있다가 또 말했다.

"열 하나."

숫자는 점점 내려갔다.

"열."

"아홉."

이번에는 거의 동시에 수를 세었다.

"여덟, 그리고 일곱…"

수우는 이상해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도대체 존시가 지금 세고 있는 게 뭘까? 창밖에 보이는 것은 인기척 없는 쓸쓸한 안마당과 20피트쯤 떨어진 이웃집의 벽돌 담벼락뿐이었다. 그 벽에는 해묵은 담쟁이덩굴이 벽 중간까지 뻗어 있었다. 차가운 가을 바람이 잎새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바짝 마른 담쟁이 덩굴이 이제 거의 벌거숭이가 되어서 낡은 벽돌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 지금 뭘 세는 거니?"

수우가 존시에게 물었다.

"여섯."

존시는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점점 더 빨리 떨어지고 있어… 사흘 전에는 백 개나 있어서 다 세려면 골머리가 아팠는데… 하지만 이제는 훨씬 쉬워졌어. 아, 또 하나 떨어지는구나. 이젠 다섯 개만 남았다."

"뭐가 다섯이란 말이야? 나한테도 좀 가르쳐주렴."

"저 잎 말야. 저 담쟁이덩굴에 붙은 잎새.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드디어 나도 가는 거야. 삼 일 전부터 난 쭉 알고 있었어. 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지?"

"세상에, 그런 바보 같은 얘기는 하지도 마!"

수우는 말도 안 된다며 강하게 존시를 나무랐다.

"철 지난 담쟁이 잎이 떨어지는 것하고 네 병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 너 완전히 저 담쟁이를 보고 넋을 잃었구나. 아무튼 바보 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 의사 선생님이 아침에 그러셨어. 네 병이 나을 가능성은, 그러니까, 저… 하나에 열 정도라는 거야. 뉴욕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야 보통이지 뭐.

전차를 타고 다니거나 공사하는 건물 옆으로 지나가더라도 그 정도 위험은 있는 거야. 자,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수프라도 조금 먹어봐. 그래야 나도 그림을 그릴 마음이 생길 것 아냐? 그림을 빨리 그려다 주고 돈을 받아야 해. 그래야 아픈 너한테 포트 와인을 사줄 수 있지. 나는 식욕이 왕성하니까 포크찹을 사 먹어야겠어."

"이젠 포도주 따위는 사올 필요 없어."

존시는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또 하나 떨어졌네. 아니, 수프도 전혀 먹고 싶지 않아. 앞으로 겨우 네 개… 더 어두워지기 전에 마지막 하나까지 다 떨어지는 걸 보고싶어. 그러면 나도 저 세상으로 가는 거야."

"존시…"

수우는 침대에 몸을 굽히면서 말했다.

"내가 그림을 끝낼 때까지, 눈을 감고 창 밖을 보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응? 이 그림은 내일까지 갖다줘야 해. 그림이 아니면 커튼을 내리고 싶다만…"

"저쪽 방에서 그리면 안돼?"

존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 옆에 있고 싶단 말이야."

수우는 말했다.

"그리고 제발 저 담쟁이 잎새 따위는 쳐다보지 마!"

"그림을 다 그리거든 내게 말해 줘."




존시는 일단 눈을 감더니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쓰러진 조각상처럼 창백했다.

"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걸 보고싶어. 이제 그걸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 내가 그 동안 매달려왔던 것에서 손을 떼고 싶어. 그리고 어딘지 모르지만 하염없이 떨어져 가고 싶어. 철 지난 저 처량한 잎새처럼 말이야."

"우선 좀 자는 게 좋겠어."

수우는 말했다.

"난 베어맨 할아버지한테 늙은 광부 모델이 돼 달라고 해야겠어. 금방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내가 올 때까지는 꼼짝도 말고 있어야 해."

베어맨은 같은 건물 1층에 사는 화가였다. 나이가 예순이 넘은 노인이었다. 몸뚱이는 도깨비 같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튀르 같은 머리에다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모세 상 같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사실 예술의 낙오자였다. 지난 40년 동안 계속 붓을 쥐고 있었으나 아직도 예술의 여신(女神)의 치맛자락도 붙잡지 못한 처지였다. 늘 걸작을 그린다고 장담을 하면서도 정작 그 걸작을 그리는 작업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상업용 도안이나 광고 그림밖에는 전혀 그린 게 없었다.

그는 직업적인 모델을 둘만한 여유가 없는 이 예술인 마을의 풋내기 화가들을 위해 모델 노릇을 하여 몇 푼 안 되는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진을 자꾸 들이키면서 미래 어느 땐가는 걸작을 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그림은 보잘 것 없고, 몸집도 작았지만 그는 사기 충만한 노인네였다. 그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약해 빠졌냐며 비웃곤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3층에 있는 두 젊은 여성 예술가의 수호신 역할을 떠맡고 있었다.

수우는 아래층에 내려가 베어맨 노인을 찾았다. 노인은 어둑어둑한 지하실에서 노간주 나무 열매(진의 원료) 냄새를 풀풀 풍기며 뒹굴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아무 것도 그리지 않고 텅 빈 캔버스가 이젤에 걸려 있었다. 그의 걸작을 그릴 붓이 닿기를 무려 25년간이나 기다려 온 캔버스였다.

수우는 베어맨 노인에게 존시 얘기를 들려줬다. 담쟁이 잎새가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는다는 환상을 갖고 있는 존시가 저러다가 정말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서 가벼운 담쟁이 잎새처럼 허공으로 날아갈까봐 두렵다는 것이었다.

벌겋게 술에 취한 베어맨 노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늙은이는 존시의 어리석은 망상에 대해 고함을 질러가며 나무랐다.

"멍청한 소리!"

그는 고함을 질렀다.

"담쟁이 잎새가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는다 그 말이야? 세상에 그런 멍청이가 어디 있담? 생전에 그런 얘기는 금시초문이야. 그런데 나더러 다 망가진 늙은 광부 모델을 해달라고? 왜 하필이면 그런 모델이야? 난 딱 질색이야. 그런데 도대체 존시 양은 왜 그따위 생각을 하는 거야?"

"걔는 지금 몸도 너무 아프고 약해져 있어요."

수우는 말했다.

"열이 높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지고 자꾸 환상 같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베어맨 할아버지, 모델이 되기가 싫으면 관두세요. 상관없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늙은 변덕장이라구요."

"여자라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니까!"

베어맨 노인은 더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내가 언제 모델을 하지 않겠다고 그랬어? 먼저 올라가,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난 반 시간 전부터 모델이 되겠다고 말할 생각이었어. 글쎄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존시 같은 순해빠진 아가씨가 병이 나서 누워 있을 곳이 아니야. 나도 이제 곧 걸작을 그릴 거야. 그러면 우리 모두 이 동네를 빠져나가자구. 정말이야! 정말이구말구."

두 사람이 위로 올라가 보니까 존시는 이미 잠이 들어 있었다. 수우는 커튼을 밑으로 내리고, 베어맨 노인에게 옆방으로 가자고 손짓했다. 두 사람은 거기서 두려운 심정으로 창 밖의 담쟁이덩굴을 바라보았다. 담쟁이 덩굴은 이제 정말 잎새가 몇 개 남지 않았다.

잠시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는 어느덧 눈보라까지 섞여 있었다. 베어맨 노인은 낡아빠진 파란 셔츠를 입고 뒤집어 놓은 남비 위에 걸터앉아 바위에 앉은 늙은 광부의 포즈를 취했다.

수우는 겨우 한 시간쯤 자고서 눈을 떴다. 벌써 아침이었다. 존시가 퀭한 눈을 크게 뜨고 초록색 커튼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튼을 올려줘. 밖을 보고 싶어!"

존시가 마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수우는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일까? 벽돌 담벼락에는 담쟁이덩굴의 잎새 하나가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달라붙어 있었다. 기나긴 밤사이에 사나운 비바람이 그렇게 거세게 휘몰아쳤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덩굴에 달린 마지막 잎새였다. 잎새 아래쪽은 아직 어두운 초록색이 남아 있고 가장자리는 시들어가는 노란 색이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잎새는 땅에서 20피트쯤 뻗어간 줄기에 굳세게 매달려 있었다.




"마지막 하나구나…"

존시가 말했다.

"지난밤에 꼭 떨어질 줄 알았는데… 밤새 바람 부는 소리를 들었어. 하지만 오늘은 꼭 떨어지겠지, 그리고 그 때 나도 죽을 거야."

"제발, 제발…!"

수우는 지치고 피곤한 얼굴을 베개에 파묻으며 말했다.

"그런 소린 하지 마. 자기 생각을 하기 싫더라도 내 생각 좀 해주렴. 난 도대체 어떡하란 말이야?"

그러나 존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것은 머나먼 미지의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존시는 이 세상에서 자기와 이어져 있던 모든 매듭이 하나하나 풀리면서 더욱 더 환상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수우에 대한 우정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루가 또 지나가고 황혼이 다가왔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 그 담쟁이 잎새는 여전히 벽에 달라붙은 덩굴줄기에 매달려 있었다. 이윽고 어둠이 닥쳐오면서 또다시 북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계속해서 창문을 두드렸다. 낮은 네덜란드식 처마에서 빗방울이 쉴새없이 흘러 떨어졌다.

그 다음날 또 날이 밝아오자 존시는 커튼을 올려 달라고 졸랐다.

담쟁이 잎새는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존시는 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존시는 수우를 불렀다. 수우는 가스 난로 위에 닭고기 수프를 올려놓고 젓고 있었다.

"수우디, 이봐, 내가 잘못했어."

존시는 말했다.

"뭔가가 내 생각이 잘못이라는 걸 가르쳐 주려고 저기에 마지막 잎새를 하나 남겨두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젠 알겠어. 죽기를 원하는 건 죄를 짓는 거야. 자, 수프를 조금 갖다 줘. 밀크에 포도주를 탄 것도. 아냐, 우선… 거울을 좀 보고 싶어. 베개를 몇 개 등에 받치고 일어나 앉아야겠어. 그래서 네가 아침 차리는 걸 봐야지…"

한 시간쯤 지나자 존시가 말했다.

"수우디, 언젠가는 꼭 나폴리만을 그리고 싶어!"

오후에 의사가 찾아왔다. 의사가 돌아갈 때 수우는 슬쩍 복도로 그를 따라 나왔다.

"이젠 좀 희망이 엿보이는구먼!"

의사는 수우의 가냘프게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제 간호만 잘하면 아가씨 당신이 이길 거야. 난 또 아래층에 가서 새로 병이 난 다른 환자를 봐야겠어. 베어맨이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도 글쎄 무슨 예술가라고 하더군. 그 사람도 폐렴이야. 갑자기 병이 든 모양인데 글쎄, 나이가 많은데다 몸도 약해서 어려울 것 같구먼. 그러나 고통을 좀 덜어줘야지. 그래서 오늘 입원을 시킬 계획이야."

다음날, 의사는 수우에게 말했다.

"이제 위험은 완전히 벗어났어. 아가씨, 아가씨가 이긴 거야. 이제 영양 섭취를 잘하도록 돌봐주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야!"

그날 오후, 존시는 침대에 누워 파란 털실로 목도리를 뜨고 있었다. 그 목도리가 별로 쓰임새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때 수우가 그녀에게 다가와 팔로 베개와 이불까지 한꺼번에 존시를 끌어안았다.

"요 생쥐 같은 아가씨야, 네게 할 얘기가 있어."

수우는 말했다.

"베어맨 할아버지가 폐렴에 걸려 오늘 병원에서 돌아가셨어. 겨우 이틀 앓았을 뿐인데… 병이 나던 날 아침, 관리인이 아래층 할아버지 방에 가보니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신음을 하고 있었단다. 구두고 옷이고 몽땅 젖어서 꽁꽁 얼어 있었다는 거야. 도대체 그렇게 비바람이 사나운 밤에 어디를 다녀왔는지 상상도 못한 거야.

그런데 관리인이 방안에서 무얼 봤는지 알겠니? 불을 켜 놓은 랜턴, 헛간에서 끌어온 사다리, 붓 두세 자루, 초록색과 노란 색 물감을 풀어놓은 팔레트… 이런 것들이 방안에 흩어져 있더라는 거야. 자, 창 밖을 한번 내다 봐. 저기 벽에 담쟁이 잎새가 딱 하나 붙어 있는 게 보이지? 바람이 이렇게 거세게 부는데도 꼼짝도 안 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았어? 존시! 저게 바로 베어맨 할아버지의 걸작이었던 거야.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그날 밤, 그분이 벽에다 저걸 그렸던 거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