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Goodman Brown
나다니엘 호오도온
[소개]
이 작품의 무대는 식민지 시절 마녀 재판으로 유명했던 세일럼 지방이다. 지금까지도 미국인의 정신 공간에 크나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그 사건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다양한 예술적 시도의 소재가 되고 있다. 특히 호오도온은 직계 조상이 마녀 재판을 주도했던 배경 때문에 더욱 이 소재에 민감했을 것이다.
죄악의 본성을 지닌 인간은 악마의 도전 앞에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과연 누가 악마의 추종자이고, 선과 악의 경계는 무엇인가. 호오도온의 깊은 사색과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굿맨(goodman)은 신사(gentleman)보다는 지체가 낮은, 자작농 신분의 호칭이다.
[작가 소개]
나다니엘 호오도온(Nathaniel Hawthorne, 1804-1864) : 미국의 소설가.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줄고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났다. 보든대학교에 입학해 나중에 시인이 된 롱펠로우와 미국 대통령이 된 피어스 등과 사귀었다. 그의 가정은 엄격한 청교도의 전통을 지닌 가문으로, 그의 조상에는 유명한 세일럼의 마녀 재판에서 가혹한 판결을 내린 재판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가문의 배경은 그의 우울한 성격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주홍글씨> <일곱 박공의 집> 등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Hathorne'이었던 성에 'w'를 집어넣은 것도 그 영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국 리버풀의 미국 영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대표작에 <대리석의 목양신> <트와이스 톨드 테일즈> <이끼 낀 목사관> 등이 있다.
젊은 굿맨 브라운은 해질 무렵 세일럼 마을의 거리로 나왔다. 문을 나서면서 그는 고개를 돌려 젊은 아내 페이스에게 작별의 키스를 했다. 연분홍 리본이 나부끼는 모자를 쓴 페이스는 귀여운 얼굴을 길쪽으로 향한 채 브라운에게 말했다. 페이스란 이름은 그녀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faith'란 이름은 믿음, 신뢰 등을 의미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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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내일 해뜰 때까지 여행을 미루면 안될까요? 오늘밤은 그냥 집에서 주무시구요. 여자들은 혼자 있다 보면 무서운 생각이 들고 좋지 않은 꿈과 불길한 마음에 시달리곤 하죠. 여보, 일년 열두 달 수많은 날 가운데 오늘밤만은 저와 함께 있어 주세요."
그녀는 그의 귀 가까이 입술을 대고 부드럽고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여보, 사랑하는 페이스, 일년 열두 달 수많은 밤이 있지만 오늘밤만은 당신과 함께 있을 수가 없구려. 당신이 말한 대로 나의 이번 여행은 지금부터 해가 뜰 때까지 집을 나갔다 돌아와야 한다오. 착하고 어여쁜 당신이 설마 나를 벌써 의심하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가 결혼한 지 겨우 석 달밖에 안되었다오." 젊은 굿맨 브라운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그럼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잘 다녀오세요." 연분홍빛 리본을 단 페이스가 말했다. "돌아오실 때까지 만사 무사하기를 빌겠어요."
"아멘!" 굿맨 브라운이 말했다. "여보, 페이스. 해가 지고 나면 기도를 올리고 잠자리에 들도록 해요. 그럼 아무 일도 없을 거요."
이렇게 그들 부부는 헤어졌다. 젊은이는 길을 가면서 예배당 근처 길목을 막 돌아갈 때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페이스는 연분홍 빛 리본과는 어울리지 않게 근심에 찬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갸엾은 페이스!' 그는 마음 속 깊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런 일로 아내 곁을 떠나다니, 나는 정말 한심한 인간이다! 그녀는 악몽 이야기도 했었지. 그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근심 어린 표정이었어. 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경고하는 꿈이라도 꾼 것 같아. 그러나 그럴 순 없지. 아내 같은 사람은 오늘 밤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얼어붙고 말 거야. 글쎄, 아내는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천사 같은 사람 아닌가, 오늘 밤 일만 끝나면 아내 곁에 꼭 붙어서 천당까지라도 따라가야지.'
이렇게 앞으로 일에 대해 단단히 결심을 굳히자 굿맨 브라운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결심으로 인해 눈앞에 닥친 사악한 일이 정당화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되도록 숲 속 어두운 곳을 따라 걸었다. 숲속의 나무들 때문에 길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숲 속 오솔길은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양쪽에 빽빽한 수풀은 사람이 지나가는 동안 잠깐 열렸다가 곧 뒤에서 닫히는 느낌이었다. 참으로 쓸쓸한 길이었다. 그 쓸쓸한 느낌은 그저 예사로운 느낌이 아니었다. 빽빽한 나무 줄기와 머리 위 굵은 가지들 뒤에 누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주는 길이었다. 그래서 여행객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 속을 혼자 외롭게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무마다 그 뒤에 악마 같은 인디언들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지." 굿맨 브라운은 중얼거렸다. 그는 겁에 질려 뒤를 흘낏 돌아보며 말했다. "악마 녀석이 내게 와 달라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서 그는 구부러진 길목을 지나갔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어떤 사람이 고목의 등걸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품위 있고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굿맨 브라운이 다가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와 함께 나란히 서서 길을 걸었다.
"늦었구먼, 굿맨 브라운." 그 사나이가 말했다. "내가 보스턴을 지날 무렵에 올드사우스의 시계탑에 종소리가 뎅뎅 울리더군. 그리고 나서 꼭 15분이 지났네."
"페이스가 붙잡는 바람에 늦어졌습니다." 젊은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충분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동행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던 것이다.
숲은 이제 아주 캄캄해졌다. 두 사람은 그 가운데서도 더욱 어두운 곳을 지나고 있었다. 아주 자세히 살펴보면, 나중에 나타난 나그네는 나이가 쉰 살 가량 되어 보였다. 그리고 분명히 굿맨 브라운과 같은 계층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굿맨 브라운과 상당히 닮아 보였다. 용모보다는 표정에서 더욱 그랬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들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부자지간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 나이 많은 나그네는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옷차림이 검소하고 몸가짐도 꾸민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는 세상사를 잘 아는 사람한테 느낄 수 있는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풍겨났다. 뭔가 일이 있어서 주지사의 만찬에 참석하거나 윌리엄 왕의 궁정에 가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 그에게는 유난히 눈길을 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의 지팡이였다. 그 지팡이는 커다란 검은 뱀처럼 생긴 모양이었다. 그 기묘한 모습은 마치 당장이라도 살아있는 뱀처럼 몸을 비틀면서 꿈틀거릴 것 같았다. 물론 이 기묘한 지팡이가 그렇게 보이는 것은 희미한 빛 때문에 일어나는 눈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서두르게 굿맨 브라운." 동료 나그네가 말했다. "이제 막 출발한 것 치고는 너무 느리단 말일세. 정 그렇게 피곤하거든 내 지팡이를 쓰게나."
"이봐요." 젊은이는 느린 발걸음을 딱 멈추며 말했다. "여기서 당신을 만나는 것으로 약속은 지킨 셈입니다. 그러니 전 이제 제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꺼림칙합니다."
"그래?" 뱀 지팡이를 가진 사내가 미소를 거두면서 대꾸했다. "하지만 그건 계속 걸어가면서 한 번 따져보세. 만약 내 말이 납득이 되지 않으면 자넨 되돌아가도 좋아. 우리는 이제 겨우 숲 속에 들어섰을 뿐이니까 말이야."
"아니, 지금도 너무 깊이 들어왔어요." 선량한 브라운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며 소리쳤다. "제 아버님은 이런 일로 숲 속에 들어가신 일이 없습니다. 할아버지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순교자들께서 살아 계시던 시대 이래로 우리 가문은 줄곧 정직하고 선량한 기독교인 가문이었습니다. 브라운 성씨를 가진 사람이 이런 길을 걷는 것은 제가 처음일 겁니다. 그리고 또…"
"나 같은 사람과 관계를 갖는 것도 자네가 처음이라고 말하고 싶겠지?" 연장자는 브라운이 채 내뱉지 못한 말을 이으면서 말했다. "말 한번 잘했어, 굿맨 브라운! 나는 대부분의 청교도들하고 그랬던 것처럼 자네 가족과도 잘 알고 지냈다네. 이건 뭐 괜히 해 보는 소리가 아닐세. 난 보안관이었던 자네 할아버지를 도와드렸다네.
자네 할아버지가 세일럼 거리를 돌아다니며 퀘이커 교도 여자에게 사정없이 회초리질을 할 때였지. 자네 아버지가 필립 왕 전투에서 인디언 마을에 불을 지를 때, 내 난로에서 송진 불을 붙여다가 갖다 준 것도 바로 나란 말일세.
자네 할아버지나 아버지 모두 나의 절친한 친구들이었어. 우리는 유쾌하게 이 길을 따라 산책했고, 한밤이 지나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곤 했지. 난 그들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자네의 친구가 되고 싶은 걸세."
"당신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굿맨 브라운은 대답했다. "그분들이 왜 저에게는 거기 대해서 한 마디도 말해주지 않았는지 이상하군요. 하기야 그런 소문이 조금이라도 퍼졌더라면 뉴잉글랜드에서 쫓겨났을 테니 이상할 것은 없지요. 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착한 일만 하는 기독교도들입니다. 그렇게 사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사악한 일이든 아니든 간에, 아무튼 이곳 뉴잉글랜드에는 나와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네." 뒤틀린 지팡이를 가진 나그네는 말했다. "수많은 교회의 집사들이 성찬식 포도주를 나와 함께 마시고 취하곤 했지. 수많은 마을의 행정위원들이 나를 의장으로 추대했고… 주 의회의 절대 다수가 내 이권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지. 주 지사와 나 사이의 관계 또한 … 그런데 이건 주의 기밀이라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굿맨 브라운은 태연히 걷고 있는 동행을 당혹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그렇다 해도 전 주지사나 의회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 사람들에게야 자기들 나름대로 사는 방식이 있겠죠. 하지만 그건 저처럼 소박한 서민의 생활과는 같을 수 없습니다. 만일 제가 당신과 함께 간다면, 세일럼 마을의 그 믿음 깊은 노 목사님을 어떻게 쳐다볼 수 있겠습니까? 아, 안식일이나 설교하는 날 목사님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전 사시나무 떨 듯이 오그라들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장자인 길손은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면서 어찌나 심하게 몸을 흔들어대는지 뱀처럼 생긴 그의 지팡이도 실제로 꿈틀거려 그에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핫! 하! 하!" 그는 몇 번이나 큰소리로 웃은 다음 평정을 되찾은 듯 말했다. "이봐, 계속하게, 브라운 씨. 계속해 보란 말이야. 하지만 제발 내가 웃다가 죽는 일만은 없도록 해주게나."
"그럼, 제 얘기를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굿맨 브라운은 몹시 초조해하며 말했다. "저에겐 아내 페이스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짓을 한 것을 알면 제 아내의 고운 마음은 터져버리고 말 겁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제 가슴이 터져버리는 게 낫습니다."
"그래, 정 그렇다면 자네 갈 길을 가네나, 브라운 씨."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저기 우리 앞을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저 노파 같은 여자 스무 명을 데려와도 페이스와 바꿀 수는 없겠지."
그는 이렇게 말하며 그 지팡이로 길 가던 여자를 가리켰다. 그 여자는 무척 경건하고 신앙심이 두터운 모범적인 부인이었다. 그 여인은 굿맨 브라운이 어릴 때 그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녀는 지금도 목사님 및 굿킨 집사와 함께 굿맨 브라운의 도덕과 영적인 문제에 대한 상담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저 클로이즈 마나님이 이런 밤중에 이렇게 외진 곳에 오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브라운은 말했다. "하지만, 이것 보세요. 우리는 저 경건한 부인을 피해서 숲 속 샛길로 앞질러가도록 합시다. 저 부인은 당신을 모르고 있을 테니, 저희를 보면 저더러 동행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그런 따위를 물을지 몰라요."
"아무렴 좋도록 하게나." 브라운의 동행은 말했다. "그럼 자네는 숲 속으로 들어가게나. 난 이 길을 계속 걸어갈 테니 말일세."
그래서 젊은이는 숲 속 옆길로 들어가게 되었다. 숲 속을 지나면서 젊은이는 신경이 쓰여서 그의 동행을 계속 지켜보았다. 그 나그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그 노부인과 지팡이 하나 정도의 거리만큼 가까워졌다.
한편 노부인은 나이 많은 부인답지 않게 대단히 빠른 발걸음으로 거침없이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녀는 길을 걸으면서 알아듣기 힘든 말로 계속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건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굿맨 브라운과 함께 길을 가던 동행은 지팡이를 내밀어 뱀꼬리 같은 부분으로 그녀의 말라서 쭈글쭈글한 목덜미를 건드렸다.
"악마야!"
신앙심 깊은 노부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클로이즈 부인께서는 옛 친구를 알아보는 게로군." 나그네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꿈틀거리는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그녀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어머나, 정말이군요. 정말, 경애하는 당신이군요." 훌륭한 부인은 이렇게 소리쳤다. "정말, 당신이로군요. 지금 그 멍청한 녀석의 할아버지인 나의 옛 친구 굿맨 브라운의 모습을 하고 계시군요.
그런데 나으리는 안 믿으실지 몰라도 이상하게도 내 빗자루가 그만 없어졌어요. 사형을 면한 그 마녀 코리 부인이 훔쳐간 것 같아요. 그것도 내가 야생 샐러리와 양지꽃의 즙, '늑대의 독'이라는 식물의 즙을 몸에 바르고 있는 동안 말이죠."
"아주 고운 밀가루와 갓난아이의 지방을 함께 섞은 것이겠지." 옛날 굿맨 브라운 노인의 모습을 한 그가 이렇게 말했다.
"어머나, 나으리께서는 비법을 알고 계시는군요." 노부인이 깔깔대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아까 말한 것처럼 모임에 갈 준비를 다 하고 보니 그만 타고 갈 말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결국 걸어서 가기로 했죠. 오늘밤엔 멋진 젊은이를 성찬식에 데려올 거라고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어쨌건 존경하는 나리께서 이럴 때 팔을 빌려주시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곳에 도착할 텐데."
"그건 좀 어렵겠는데…" 그녀의 친구가 대답했다. "팔을 빌려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 클로이즈 마나님이 원하신다면 여기 이 지팡이라도 빌려 드리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지팡이를 그녀 발치에 던져 주었다. 그 발치에서 그 지팡이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예전에 그 지팡이 주인이 이집트 마술사에게 빌려주었던 그 지팡이처럼 말이다(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지팡이에 대항해 이집트 마술사들이 던져서 뱀으로 변하게 했던 지팡이를 말한다. 이집트 마술사들의 지팡이가 변한 뱀은 모세의 지팡이가 변한 뱀에게 먹히고 만다 - 편집자 주*).
하지만 굿맨 브라운은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깜짝 놀라 하늘을 쳐다보고 다시 땅을 내려다보았을 때는 클로이즈 아주머니도 뱀 같은 지팡이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에는 다만 굿맨 브라운의 동행이었던 그 사람이 홀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굿맨 브라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그 노부인이 저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굿맨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짤막한 말이었지만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계속 길을 걸었다. 연장자인 그 나그네는 동행을 재촉하여 빠른 걸음으로 쉬지 않고 걷도록 했다. 그의 재촉은 워낙 교묘하고 재치가 있어서, 그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라기보다 듣는 사람의 가슴에서 저절로 솟아나오는 생각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길을 가면서 지팡이 대신으로 쓰려고 단풍나무 가지를 하나 꺾더니 저녁 이슬에 젖어 있는 나뭇잎과 잔가지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손길이 닿자 나뭇잎과 잔가지들은 일 주일 동안 햇빛에 쬔 것처럼 시들고 말라버렸다.
이렇게 두 사람은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갑자기 움푹 패인, 음산한 공터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굿맨 브라운은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더 이상 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봐요, 나는 드디어 결심이 섰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일로는 이제 한 걸음도 더 가지 않겠습니다. 천국에 갈 줄 알았던 그 늙은 마나님이 그만 악마에게 갈 것을 선택했지만,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제 아내 페이스를 버리고 그 할망구를 따라갈 이유가 없죠."
"자네는 점점 이 일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될 거야." 그의 동행은 침착하게 말했다. "여기 앉아서 잠시 쉬도록 하게. 다시 걷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 지팡이가 자넬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동행에게 단풍나무 지팡이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나서는 더욱 짙어지는 어둠 속으로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젊은이는 잠시 길가에 앉아서 스스로에 대해 대견한 생각을 하고 있어다. 이제 아침 산책을 할 때 목사님을 만나도 양심에 아무 거리낌도 없으리라. 믿음이 깊은 노집사 굿킨의 눈길을 피해 움츠러들 이유도 없다. 자신의 양심이 떳떳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밤에 잠잘 때에도 평안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사악하게 보낼 수도 있었던 이 밤을 이제 페이스의 팔 안에서 깨끗하고 달콤하게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즐겁고 갸륵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굿맨 브라운은 길을 따라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자 그는 일단 숲 속으로 몸을 숨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당초의 생각을 바꾸어 중단하기는 했지만, 여기까지 왔던 그 일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윽고 말발굽 소리와 말을 탄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두 노인이 엄숙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와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인 채로 그들은 젊은이가 숨어 있는 곳 몇 야드 거리를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곳은 특히 어두운 곳이어서 길손들도, 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몸이 길가의 잔가지를 바스락거리며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밝은 하늘에서 한 조각 비스듬히 비쳐온 희미한 빛이 그들을 순간적으로 비추었지만 그들의 모습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굿맨 브라운은 웅크리고 있다가 발끝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나뭇가지들을 젖히고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고개를 내밀어 봤지만 그림자조차 분별할 수 없었다. 글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굿맨 브라운은 그 목소리에 대해 맹세할 수도 있으리라. 조용히 말을 몰고 가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사람의 목소리는 다름 아닌 노목사님과 굿킨 집사의 것이 틀림없었던 것이다.
교회의 직책을 수여할 때나 성직자 회의에 참석하러 갈 때 그들은 항상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았던가! 그들의 목소리라는 확신이 들자 굿맨 브라운은 한층 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말을 탄 사람 하나가 멈춰서서 가느다란 실가지를 꺾었다.
"목사님, 두 모임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굿킨 집사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말했다. "오늘 밤 모임을 놓치기보다 차라리 성찬식에 빠지는 게 나을 겁니다. 사람들 말로는 오늘 모임에는 팔머스나 그보다 더 멀리서 오는 회원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코네티컷이나 로드아일랜드에서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인디언 주술사들도 여러 명 온다고 그러더군요. 그놈들은 자기네 방식대로 하기 때문에 우리와 다르긴 하지요 하지만 악마에 대해 아는 지식은 우리들 가운데 최고의 인물에 맞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게다가 오늘 모임에는 미모의 젊은 여성도 한 사람 데려오는 모양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굿킨 집사!" 귀에 익은 목사의 엄숙한 음성이 대답했다. "말을 서둘러 몹시다. 자칫하면 늦겠어요. 잘 아시겠지만 내가 거기 도착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을 테니까요."
말발굽 소리가 다시 다가닥 다가닥 들려왔다. 두 사람이 떠들어대는 그 소리는 허공을 울리며 사라져갔다. 이 숲에서는 어떠한 교회 모임도 열린 적이 없고, 이곳에 들어와 기도를 드리는 기독교인도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성직자들은 도대체 무슨 일로 이 어둡고 깊은 이교도의 황야로 들어가는 것일까?
젊은 굿맨 브라운은 괴롭고 무거운 가슴의 짐에 짓눌려 금방이라도 땅에 쓰러져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는 나무 하나를 붙잡고 몸을 의지하였다. 그는 과연 자기 머리 위에 하늘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위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푸른 창공이 있었고 거기 별이 빛나고 있었다.
"위에는 하늘이 있고 땅에는 페이스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단연코 악마와 싸울 것이다!" 굿맨 브라운은 이렇게 외쳤다.
그는 깊고 푸른 창공을 응시하면서 기도를 드리려고 손을 모았다. 그때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 구름 한 점이 나타나 하늘을 급히 가로질러 반짝이는 별들을 가려 버렸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그러나 바로 머리 위에는 짙은 먹구름이 북쪽을 향해 재빠르게 하늘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어두운 구름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듯, 하늘 저 높은 곳에서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듣고 젊은이는 자신의 마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소리 가운데서 자신의 마을에 사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목소리를 구별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거나 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그는 성찬식에서 그들을 만났거나 또는 술집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금방 희미해지더니 사라져버렸다. 그는 자기가 방금 들은 것이 숲에서 나오는 웅얼거림, 바람도 없이 속삭이는 이 오래된 숲에서 들리는 그런 소리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조금 더 기다리자 마을에서 매일같이 듣던 귀에 익은 목소리들이 좀더 강하게 그에게 밀려들었다.
그 소리들은 세일럼의 거리에서 벌건 대낮에 들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목소리들이 한밤중 구름 가운데서 흘러나오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목소리들 가운데 어떤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픔에 잠긴 듯한, 도움을 바라는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그러나 도움을 받더라도 그 슬픔을 덜어줄 수는 없으리라. 눈에 보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 성자이건 죄인이건 할 것 없이 모두 그녀에게 계속하라고 격려하는 것 같았다.
"페이스!" 고뇌와 절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굿맨 브라운은 소리쳤다. 그러자 숲의 메아리가 "페이스! 페이스!"하고 그를 조롱하듯 들려왔다. 마치 길을 잃은 가엾은 무리가 여기저기 황야를 헤매며 그녀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슬픔과 분노, 공포가 담긴 그 외침은 여전히 한밤의 어두움을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불행한 남편은 숨을 죽이고 응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지나가면서 굿맨 브라운의 머리 위에 맑게 개인 고요한 하늘이 잠깐 드러났다.
그 순간, 비명소리가 일어나고 그 비명소리는 그보다 더 큰 중얼거림 가운데 잠겨버렸다. 그리고 희미한 웃음소리로 변해 저 멀리 사라졌다. 바로 그때 무언가 공중에서 가볍게 나부끼며 내려와 나뭇가지에 걸렸다. 젊은이가 집어서 살펴보니 그것은 연분홍빛 리본이었다.
"나의 페이스가 가버렸구나!" 그는 순간 얼이 빠진 것처럼 부르짖었다. "이 땅에 선(善)이란 없다. 죄악이야말로 바로 선이 아닌가. 그래, 악마여, 이 세상은 바로 그대의 것인 모양이다."
미칠 듯한 절망에 빠져 큰 소리로 오랫동안 웃고 나서 굿맨 브라운은 지팡이를 쥐고 다시 출발했다. 그는 엄청나게 빨리 나아갔다. 걷거나 달린다기보다 숲을 따라 날아가는 것 같았다. 길은 점점 더 황량하고 거칠어졌다. 길은 자취가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그는 어두운 황야 한복판에 홀로 서 있었다. 그러나 인간을 죄악으로 인도하는 그 본능의 힘은 그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계속 앞을 향해 달려갔다. 숲 전체가 끔찍한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무들이 부딪히는 소리, 들짐승들의 울부짖음, 인디언들의 고함 소리로 숲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이 소리는 바람결에 멀리서 들리는 교회의 종소리처럼 울리기도 했고, 때로는 직접 이 나그네의 주위에서 요란하게 울부짖기도 했다. 그를 둘러싼 주위의 사물 모두가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의 모습보다 더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것에도 두려워 움츠러들 필요가 없었다.
"핫! 하! 하!" 바람이 그를 비웃는 것처럼 굿맨 브라운 역시 바람을 따라 이렇게 웃으며 으르렁댔다.
"누구 웃음소리가 더 큰지 한 번 들어보자. 너의 악마적 힘으로 나를 놀라게 할 생각은 마라. 마녀여, 덤벼라. 마법사도 덤벼라. 인디언 주술사, 너도 덤벼라. 어디 악마가 직접 와도 좋다. 여기 굿맨 브라운이 간다. 이 브라운에게 겁을 주겠다는 놈들은 먼저 이 브라운에게 겁을 먹게 될 것이다."
사실 온갖 것들이 드나드는 이 숲 전체를 봐도 굿맨 브라운의 모습만큼 더 무시무시한 것은 있을 수 없으리라. 그는 계속 검은 소나무들 사이를 날아가며 미친 것 같은 몸짓으로 지팡이를 휘둘러대는가 하면 때로는 흥분을 못 이기고 신을 저주하는 무서운 말들을 내뱉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때로 엄청난 소리로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였다.
그의 끔찍한 웃음소리 때문에 숲이 온통 그의 웃음으로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마치 온갖 악마들이 그의 주위에서 한꺼번에 웃어대는 것 같았다. 악마의 원래 모습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파고 들어가 분노를 일으켰을 때의 모습이다. 악령에 사로잡힌 그 사나이는 부리나케 달려나가다가 나무들 사이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앞에 불꽃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한밤중에 숲 속 빈터 잘라낸 나무의 몸통과 가지에 불을 붙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불은 하늘을 향해 엄청난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를 여기까지 몰고 왔던 폭풍은 잠깐 멈추었다. 그 사이에 그는 자리에 서서 찬송가처럼 들리는 노랫가락을 들었다. 그 가락은 멀리서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싣고 장엄하고 엄숙하게 덮쳐왔다.
그는 그 노랫가락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을 교회의 성가대에서 자주 들리던, 귀에 익은 가락이었다. 그 노랫가락이 묵직하게 사라져 간 뒤에도 합창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두워진 황야에서 울리는 온갖 소리들이 무시무시한 조화를 이루며 울려 퍼지는 그런 소리였다. 굿맨 브라운은 외마디 비명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의 울부짖음은 황야의 소리에 섞여 사라지고 들리지 않았다.
그 정적을 틈타 그는 불빛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까지 앞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숲의 어둠이 벽처럼 둘러싼 빈터 한쪽 구석에 바위가 하나 솟아 있었다. 그 바위는 사람의 손으로 다듬은 흔적은 없었으나 어딘지 투박하게나마 제단 또는 설교단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주위를 네 그루의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었다. 소나무 꼭대기는 마치 저녁 예배의 촛불처럼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바위보다 더 높게 자란 무성한 잎들이 불길에 휩싸여서 밤하늘 높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불길은 가끔씩 거칠게 타올라 황야 전체를 비춰 주곤 했다. 축 늘어진 실가지며 잎이 무성한 줄기가 불길에 싸여 있었다. 붉은 불길이 치솟아 오르다가 잦아드는 것에 따라 집회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났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불길이 어둠 속에서 되살아나면 이 한적한 숲의 한복판은 다시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어둠을 옷으로 삼아 몸을 숨긴 무리가 떼거리로 모여 있군 그래." 굿맨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들의 모습이 그랬다. 불길에 따라 어둠과 광채가 교차하면서 사람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가운데에는 다음날 그 지방 자문위원회 모임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였다. 또 안식일마다 지극히 거룩한 설교단에서 경건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자애로운 표정으로 교회의 좌석마다 가득 찬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사람들의 얼굴도 보였다.
그곳에 주지사 부인도 와 있었다고 나중에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적어도 그곳에는 주지사 부인처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지체 높은 부인들과 명망 높은 명사들의 아내, 과부들, 평판이 좋은 수많은 부인네들, 노처녀들, 명망 높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엄마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이는 어여쁜 아가씨들도 있었다.
어두운 황야 위를 이따금 밝게 비추는 그 불꽃이 굿맨 브라운의 눈을 현혹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정말 믿음이 깊고 경건하기로 소문난 수십 명의 사람들을 진짜로 본 것일까? 그들은 유별나게 독실한 사람들이어서, 세일럼 마을에서 명성이 자자한 기독교도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믿음이 깊은 노집사 굿킨이 도착해서 그가 존경하는, 성자와도 같은 거룩한 목사 옆에 서 있었다.
놀랍게도 이 엄숙하고 존경을 받고 있는 경건한 사람들, 교회의 장로들, 정숙한 부인들, 갓 피어난 꽃다운 처녀들은 그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서 있었다. 방탕한 삶을 사는 남자들, 부정한 여자들, 비열하고 더러운 모든 악을 저지르는 인간들, 심지어 끔찍한 죄악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인간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선량한 사람들이 사악한 인간들에게서 몸을 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죄인들 역시 고결한 사람들을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선량한 사람들의 적, 창백한 얼굴을 한 그 무리들 가운데에는 인디언의 사제나 주술사 등의 모습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영국의 마술사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마술을 갖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한 마술로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곳의 사람들을 협박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페이스는 지금 어디에 있지?' 굿맨 브라운은 생각에 잠겼다. 희망이 다시 그의 가슴속에 깃들이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떨려왔다.
이윽고 느리고 음울한 곡조의 찬송가가 또 다시 들려왔다. 원래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들리는 그 노래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죄악, 그것을 표현하는 말들을 가사에 담고 있었다. 또는 인간의 죄악보다 한결 더 심한 것을 음산하게 암시하는 모든 말들이 그 노래에 담겨 있었다. 평범한 인간들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악마들의 깊은 지혜가 담긴 그런 노래였다.
찬송가는 계속 이어졌다. 그 사이사이에 거대한 오르간의 깊은 선율과도 같은 황야의 합창이 끼어들곤 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찬송가의 마지막 울림이 은은하게 사라져가자 다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악마들의 왕을 찬양하는 죄인의 목소리였다. 울부짖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 소리, 짐승의 으르렁대는 소리, 그리고 무질서하게 뒤섞인 황야의 온갖 소리들이 하나로 뒤섞여 나오는 그런 소리였다.
불타고 있는 네 그루의 소나무에서는 불길이 아까보다 더 높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 불빛에 비쳐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경건하지 못한 무리들이었다. 그들 위로 연기가 둥글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순간 바위 위에서 불이 시뻘겋게 튕겨 솟아올랐다. 그 불꽃은 제단 위에 하얗게 빛나는 아치 모양을 만들었다.
제단 위로 사람의 형상 하나가 나타났다. 그 형상은 경건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복장이나 태도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교회에서 만날 수 있는 엄숙한 사제들과는 전혀 닮은 점이 없었다.
"개종자들을 이리 데리고 오라!" 그의 목소리가 벌판을 지나 숲 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 말을 듣자 굿맨 브라운은 나무 그늘에서 나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굿맨 브라운은 그의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는 온갖 사악한 것들에 공감하고 있었다. 주위에 모여 있는 무리들에게서 일종의 형제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형상이 소용돌이치는 연기 사이로 그를 내려다보면서 가까이 다가오도록 손짓하고 있었다.
그때 희미하나마 어떤 여인의 모습이 절망에 빠져 일그러진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그에게 물러가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혹시 그의 어머니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한 발짝도 물러서거나 저항할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 믿음이 깊은 노집사 굿킨가 그의 팔을 붙잡은 채 불길에 싸인 바위 쪽으로 끌고 갔다.
저편에서 베일로 얼굴을 가린, 몸매가 마른 여인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굿맨 브라운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쳤던 경건한 클로이즈 부인가 그녀를 이끌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사 캐리, 악마에게서 지옥의 여왕 자리에 오르게 해 준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그 마녀도 함께 오고 있었다. 이윽고 개종자들은 불길의 뚜껑이 드리워진 제단 앞에 나가 서게 되었다.
"잘 왔다, 어린양들이여" 검은 형상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너희와 같은 종족의 성찬식에서 그대들의 타고난 성품과 스스로의 운명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인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어린양들이여, 너희의 뒤를 돌아 보라!"
그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타오르는 불꽃에 비쳐 드러난 악마 숭배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에는 불길한 환영의 미소가 어렴풋이 떠오르고 있었다.
검은 옷으로 감싼 형상이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어릴 때부터 존경해왔던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와 있다. 너희들은 그들이 너희들보다 더 경건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들의 삶은 정의롭고, 하늘을 향해 열심히 기도하는 삶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과 너희들의 죄악을 비교해보고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여기에, 나를 숭배하기 위해 이렇게 모여 있다.
그들이 저질러왔던 비밀스러운 행위들을 오늘 밤 너희들이 알 수 있도록 해주겠다. 하얀 수염을 기른 교회의 장로들이 어떻게 자기 집안의 젊은 하녀들에게 음탕한 말을 속삭였는지, 수많은 여인네들이 과부의 상복을 입고 싶은 욕심 때문에 어떻게 잠자리의 남편에게 독약을 마시게 하고 그래서 자기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게 했는지 말이다.
수염도 안 난 애송이가 어떻게 해서 부친의 재산을 서둘러 상속받으려 했는지, 아리따운 처녀들이 어떻게 - 부끄러워하지 말지어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 - 뜰에 작은 무덤을 파고 거기에 갓난아이를 파묻었는지… 거기에 참석한 손님은 오직 나뿐이었노라.
죄악을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을 너희들이 이해하게 된다면 너희들은 이 세상 어디에서나 그곳에서 저질러진 범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리라. 교회, 침실, 길거리, 들판, 숲 속 그 어디나 마찬가지야. 한마디로 이 세상은 죄악에 물든 하나의 거대한 핏자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이 사실을 진정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야.
너희들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신비롭고도 깊은 죄악의 샘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악한 술책은 바로 그 샘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니까 말이다. 바로 그 샘으로부터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온갖 사악한 충돌이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심지어 내가 최대한으로 능력을 발휘했을 때도 감히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그런 충동들이 거기서 흘러나온다. 그러니 자, 나의 어린 양들이여 이제 서로 바라보도록 하라."
그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지옥에서 타오르는 횃불과도 같은 소나무의 밝은 불빛의 힘을 빌려 그 가련한 사나이는 페이스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페이스 역시 자신의 남편이 신성 모독의 제단 앞에서 몸을 떨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보라, 나의 어린양들이여, 그대들은 내 앞에 나란히 서 있지 않은가." 제단 위의 형상이 깊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엄숙한 말소리에는 어떤 깊은 절망과 슬픔이 담겨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소리는 한때 천사였던 그의 본성이 비참한 인간을 위해 아직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너희들은 서로의 마음에 의지해왔다. 그러면서 선(善)을 갖추는 것이 결코 꿈만은 아니라는 희망을 품어왔겠지. 하지만 이제 그대들은 환상에서 깨어난 셈이다. 악이야말로 인류의 본성인 것이다. 그리고 악이야말로 너희들의 유일한 행복일 수밖에 없노라. 나의 어린양들아, 너희 종족의 성찬식에 온 것을 다시 한 번 환영하노라."
"환영하노라." 악마의 숭배자들이 절망과 승리의 감정을 함께 담은 목소리로 이렇게 따라서 소리쳤다.
이 암흑의 세계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오직 그들 한 쌍의 남녀만이 악에 빠져들 것인가를 미처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며 서 있었다. 제단 바위에는 마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물그릇처럼 움푹 패인 곳이 있었다. 그 안에 담긴 액체는 붉은 빛이었다. 불빛이 비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피였던가? 아니면 그저 불이 붙은 액체였던가?
악의 형상은 거기에 자신의 손을 담갔다가 꺼내어 그들의 이마에 세례의 낙인을 찍을 준비를 했다. 그러한 표지를 받음으로써 그들은 그 신비로운 죄악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죄악에 마음속 깊은 비밀로 또는 직접 행동으로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그 창백한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페이스 역시 남편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서로에게 힐끗 눈길을 주었을 때 그들이 본 것은 죄에 더럽혀진 불쌍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자기가 상대방에게 보여준 모습, 그리고 상대방이 자기에게 보여준 그 모습 때문에 그들은 함께 몸서리를 쳤다.
"페이스! 페이스!" 남편은 소리쳤다.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우리 이 사악한 악마와 싸웁시다."
페이스가 그 말에 순종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소리치는 순간 그는 자신이 고요한 밤 고적한 숲 한가운데 홀로 던져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숲 속을 가로질러 비틀거리며 사라져가는 바람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며 그는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비틀거리며 걷다가 바위에 부딪혔다. 바위는 차갑고 축축했다. 차가운 이슬이 그의 뺨을 적셨다. 조금 전 불길이 타오르고 있던 그 실가지들에 맺혀 있었던 이슬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젊은 굿맨 브라운은 천천히 세일럼 마을의 거리로 들어섰다. 그는 넋 나간 사람처럼 그의 주변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믿음 깊은 그 늙은 목사님이 교회 묘지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렇게 산책을 하면서 목사님은 아침 식사의 식욕을 돋구고 또 설교할 내용을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목사님은 굿맨 브라운을 스쳐 지나가면서 축복의 말씀을 해주셨다.
젊은이는 마치 저주를 피하기라도 하듯 몸을 움츠려 이 거룩한 성자를 외면했다. 노집사 굿킨은 집에서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젊은이는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그의 기도 소리가 새어나온느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저 마술사 녀석은 도대체 어떤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일까?" 굿맨 브라운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머리가 벗겨진 할머니, 경건하기 짝이 없는 크리스찬인 클로이즈 부인은 격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른 아침 햇살에 몸을 맡긴 채 서 있었다. 파운드 짜리 우유 병을 들고 온 어린 소녀에게 교리문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굿맨 브라운은 악마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듯 그 아이를 잡아채서 데리고 갔다. 교회 부근 길모퉁이를 돌자 연분홍빛 리본을 단 페이스의 머리가 흘끗 보였다.
그녀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길거리를 지켜보고 있다가 남편을 보자 얼굴을 활짝 펴고 뛰어왔다. 그녀는 동네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그에게 키스라도 할 모양이었다. 그러나 굿맨 브라운은 엄숙하고 슬픈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인사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그냥 지나쳤다.
굿맨 브라운은 혹시 숲 속에서 잠이 들었던 것 아닐까? 그래서 마녀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사나운 악몽에 시달렸던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젊은 굿맨 브라운에게 불길한 조짐을 보여준, 재수 없는 꿈이었을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꿈에 시달린 밤이 지나고 난 다음 그는 사람이 완전히 변했던 것이다. 비록 절망에 빠졌다고까지 표현할 수는 없다 해도 그는 어딘가 엄숙하고 슬픈, 침울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안식일에 신자들이 성스러운 찬송가를 부를 때도 그는 그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죄악을 찬양하는 노래 소리가 그의 귀에 밀려들어와 모든 축복의 가락을 묻어 버렸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설교단에서 힘찬 웅변으로 설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사님이 성경에 손을 얹고 온 힘을 다하여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성자와 같은 삶과 승리에 찬 죽음에 대해, 미래에 누리게 될 천국의 기쁨이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불행에 관해 설교할 때, 굿맨 브라운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곤 했다. 이 백발의 신성 모독자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로 교회의 천장이 요란하게 무너져내리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때때로 한밤중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면 그는 질겁을 하고 몸을 움츠려 페이스의 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아침저녁으로 온 가족이 모여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릴 때 그는 얼굴을 찡그리거나 혼자말로 투덜대면서 아내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그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이렇게 그는 점점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백발이 되어 죽고 나서 묘지로 옮겨졌다. 이제 할머니가 된 페이스, 자식과 손자들, 그리고 적지 않은 이웃 사람들이 커다란 장례 행렬에 참가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묘비에 희망이 담긴 어떤 비문도 새겨 넣지 않았다. 그의 임종이 너무나 침울했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