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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소월(金素月, 1903-1935) : 본명은 정식(廷湜), 소월은 아호. 평북 곽산군에서 출생, 1917년 오산중학에 입학 스승 김 억의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22년 김 억의 주선으로 <꿈자리> <먼 후일> <진달래꽃> 등을 <개벽>에 발표했다. 김동인이 주재하는 문예지 <영대(靈臺)> 동인으로 많은 시를 발표했다.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짙은 향토성과 민요풍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의 민족 정서를 설움과 한 등으로 보편화한 것은 그의 시가 끼친 긍정적 또는 부정적 결과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초 혼(招魂)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금(金)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산유화(山有花)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十里)

어디로 갈까.

 

산(山)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定州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이 하나 없소.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