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정승윤(鄭勝允, 1953년~ ). 전남 강진 출생. 광주고등학교와 경희대 영문학과 졸업. 중고교 교사로 근무하다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해직 당했고, 이후 복직되어 현재 광주고등학교 교사로 근무.
1. 여자의 등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곡예사 마리온의 벌거벗은 등이었다.
그녀는 지친 등을 보이고 무심히 앉아있다. 우리는 모노크롬이 주는 차가운 잿빛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어느 순간 그 등에 따스한 살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점점 그 색이 복숭아의 과육이 익듯이 따뜻한 색깔로 변해간다. 점차 화면은 그녀의 등만을 컬러로 부각시킨다. 주위의 회색 사물들을 배경으로 그녀의 등은 활짝 피어난다. 등은 그녀의 무의식이다. 그녀의 감춰진 욕망과 좌절이 등을 통하여 드러난다. 그녀의 꿈이, 고달픈 일상이, 사랑과 시름이 그대로 등에서 묻어날 것 같다. 누군들 그녀의 등에 손 얹고 싶지 않으랴. 누군들 그녀를 위로하고 싶지 않으랴. 그녀의 등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 따뜻하게 젖어있는 삶의 온기를 누가 거부할 수 있으랴. 어떤 천사라 할지라도 잿빛의 영생보다는 그녀의 등을 만질 수 있는 그 장밋빛 한 순간을 택할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잿빛의 우울한 거리에서 회색 외투를 입고 감추어진 여인의 등을 찾고 있는 타락한 천사들일 것이다.
2. 어머니의 등
세상에서 얻은 가장 따사로운 기억 중의 하나가 어려서 업힌 어머니의 등이다. 어머니를 따라 마실 나갔다가 깜박 잠이 들면 대개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바깥 찬 바람에 잠이 깨었으면서도 짐짓 잠든 척 어머니의 등에 얼굴을 파묻곤 했었다. 그 때 어머니의 등은 세상의 온갖 위험과 추위로부터 나를 막아줄 만큼 넉넉하고도 따뜻했다. 그 등은 대지처럼 여유롭고 볏짚처럼 따스했다. 나는 어머니의 등에서 어머니와 하나 되는 것을 느꼈다. 세상의 그 무엇도 가를 수 없는 완전한 밀착이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세상의 끝까지라도 가고 싶었다.
자분자분한 어머니의 발걸음에 흔들리며 그러다 어느 결에 또 잠이 들곤 했었다. 내가 의식하고 기억하고 있는 최초의 분리는 그 등에서 내릴 때였다. 아쉽고도 허전한 느낌. 쓸쓸하고 버림 받았다는 느낌. 완전한 것에서 멀어졌다는 느낌. 어쩌면 나는 어머니의 태를 끊고 나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등에서 떨어져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점토가 떨어져 나오듯이. 그 날부터 나는 세상의 바람에 마르며 이 세상을 온전히 혼자서 직면해야 하는 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3. 대지의 등
우리는 등이 허전하다고 말한다. 등이 시리다고 말한다. 우리들 배면은 우리들 외로움의 급소이다. 외로움은 맨 먼저 우리의 등을 타고 흐른다. 외로운 사람은 뒷모습이 쓸쓸하다. 그의 뒷모습은 그의 외로움을 숨기지 못한다. 어떤 영화에서 교도소에서 갓 출옥한 사람이 창녀를 샀다. 그로서는 십수 년 만에 처음 접해보는 여자였다. 우리는 당연히 그가 여자를 품고 욕정을 푸리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전혀 엉뚱한 주문을 했다. 다른 것은 일체 필요 없고 단지 하룻밤을 그와 함께 있어달라는 것, 단지 그의 등을 껴안고 그와 함께 잠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대지에 등을 뉘일 때, 우리는 안온한 휴식을 느낀다.
인간의 등은 대지에 속한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엎드리거나 옆으로 누워서 잠들지만 인간은 등을 대지에 눕히고 잠든다. 인간의 등은 대지처럼 편편하다. 그 편편한 등으로 인간은 대지의 온기를 흡수한다. 인간의 등을 보면 인간이 네발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가설이 어쩐지 믿기지 않는다. 저렇게 편편한 등을 하고 어떻게 기어 다닐 수 있었겠는가. 아마 신은 대지에 누워있는 인간의 손을 잡아 바로 일으켜 세웠을 것이다. 대지를 떠난 인간의 직립한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하다. 그래서 우리의 토분은 우리의 등을 다시 대지에 눕히는 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4. 남자의 등
신은 인간의 등에 노역과 고통을 주었다. 노역과 고통의 신 아틀라스는 지금도 지구를 등으로 지고 있다. 손이 정교하다면 등은 우직하다. 손이 문화라면 등은 노동이다. 얼마나 많은 짐을 등으로 져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밭을 등으로 갈아야 했던가. 그러나 손은 우리 문명의 표상으로 칭송 받지만 아무도 우리의 등을 예찬하는 사람은 없다. 더 많은 노역을 위하여 채찍질이 가해졌을 뿐이다. 들판을 누르고 있는 거대한 지석을 보고 누구도 손의 작업을 연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 등의 노동이었다. 그들은 등으로 그 거대한 암석을 끌고 와 들판에 만연하는 죽음을 눌러 놓았다. 오늘도 우리는 땀을 흘린다. 등을 척척하게 적시는 땀은 우리의 노고이며 기쁨이다. 등은 우리의 가장 정직한 노동판이며 가장 넉넉한 웃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