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여기 실린 이광수의 수필들은 거의 해방 이후 이광수가 서울 근처 교외에서 은거하며 쓴 것들이다. 당시 이광수는 반민특위 등의 추적을 받고 심신이 무척 피곤한 상태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거의 세상을 피하여 사는 당시 심정이 이 글들에는 비교적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작가 소개]
이광수(李光洙, 1892-1950) : 한국의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사상가.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계몽주의, 민족주의 문학가 및 사상가로 한국 근대 정신사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본관은 전주. 아명은 보경(寶鏡). 호는 춘원(春園)·고주(孤舟)·외배 등.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유랑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소년 시절에는 동학 활동을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에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었으나 일제 말엽에는 친일 행각으로 논란을 빚었으며 이 때문에 해방 이후 반민특위 활동에 따른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서울에서 인민군에 납치돼 그 해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랑> <흙> 등 장편소설이 많으며 작품에는 초기에는 계몽주의적 성향이 강했으나 차츰 불교와 톨스토이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서문
이 책에 넣은 글은 병술년 구월부터 금년 즉, 무자년 이월까지 사이에 씌워진 것들이다.
<산에서>는 내가 봉선사에 들어가 있는 동안의 일기다. 나는 오랫동안 세상을 떠나서 수도생활을 할 작정으로 꽤 크고 비장한 결심을 가지고 봉선사로 간 것이었다. 내가 봉선사를 숨을 곳으로 정한 까닭은 광동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내 삼종 운허당 이학수(耘虛堂 李學洙)를 의지함이었다. 아이들 작문장이나 꼬나주고 영어 마디나 가르쳐주면 밥은 먹여준다는 것이었다.
운허당은 나를 위하여서 방 하나를 수리하여 주었다. 벽을 떨고 남향 창을 내어서 볕이 잘 들었고 벽장과 선반을 만들어서 선비의 한 살림을 할 만한 깨끗한 서재가 되었다. 문미에는 '茶經香'이라는 추사체로 쓴 누구인지의 액을 붙였으니, 이것은 내 방의 내용을 고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나는 향을 피우고 경을 읽고 차를 달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석을 치기 전에 일어났고 늦어도 대허 대사의 주문 외우는 소리를 듣고는 일어났다. 나는 화롯불을 불어 일으켜서 물을 끓여서 소세하고 차를 달여먹고 아침 예불에 참예하고 방에 돌아와서 화엄경을 읽고 좌선을 하였다. 나는 적어도 백 일 동안 이 생활을 계속하리라고 속으로 결심하고 있었다. 나는 이리여 내 업장을 다 떼어버리고 한 낮의 깨끗한 수도자가 되어보려 하였다. <산에서>는 이런 생활의 시초에 쓴 것이었다.
그 밖에 것은 <내 나라>, <인생의 기쁨>, <사랑의 길> 등 세 편 서울 집에서 쓴 것을 내어놓고는 다 내 사릉(思陵) 집에서 쓴 것이다. 사릉이란 단종 왕비 송씨의 능으로 동대문에서 동북으로 사십 리쯤 되는 산골이다. 나는 우연한 인연으로 이 땅에 작은 집 한 채를 지었으니, 때는 갑신년 태평양전쟁이 마루판에 오르려 하던 때였다.
나는 여생을 이곳에서 지내려 하여 돌작밭 두어 뙈기와 소 한 마리를 사고 젊은 벗 박정호 군과 함께 농사짓기를 시작하였다. <돌베개>의 글들은 다 여기서 감흥이 나는 대로 쓴 것이었다. 나는 석벽에 적는 생각으로 이 글들을 쓴 것이요, 언제 출판될 것을 예기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 글을 쓰면 박정호 군이 그것을 소리내어 읽어주었고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이것으로 이 글의 목적은 달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수필들은 손님 앞에 내어놓으려고 필요한 단장을 한 것은 아니요, 일상 생활의 모습 그대로다. 나라고 하는 한 사람의 지극히 평범한 생활에서 때때로 느껴진 것을 슬슬 적어 놓은 것이다.
이 몇 편의 글 속에 내 종교도, 예술도, 철학도 있는가 하고 내 스스로 생각해본 일도 있다. 소리 하나만 들어도 그 짐승이 무슨 짐승인지 알 수 있다고 하면, 내 소리인 이 글 속에도 내가 아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사릉에서 한 벗과 한 소와 한 강아지와 그리고 몇 그루 소나무와 몇 포기 국화와 새들과 파리와 모기와 벌레들과 살았다. 벗은 나와 같이 어리석고 소는 누런 황소요 강아지는 검정인데 오요라고 불렀다.
우리들은 어찌어찌한 인연으로 이렇게 함께 모여 살았다. 뒤 울안에는 까치가 집을 지었고 까마귀도 와서 울었다. 여름이면 남에서 북으로 지나가는 꾀꼬리, 뻐꾸기들도 와서 울었고, 겨울이면 밤중만 하여 기러기도 울고 내 집 우으로 지나갔다. 제비도 와서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동네 사람들도 찾아왔다.
농사하고 사릉에 와 사니
벗 하나와 소 하나러라
창을 열어 산을 바라보고
귀 기울여 시내를 듣더라.
동네 나서 봇돌을 치다가
석양에 막걸리를 마시니라
종달새 새벽 안개에 울고
해오라비 비에 젖어 졸더라
오이랑 따 먹고
냉수랑 마시고
잠시 돌베개를 베고
창 밑에서 낮잠을 자니라.
이러한 것이 내 사릉 생활의 풍경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반드시 몸과 마음이 한가한 것도 아니요, 또 한가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돌작밭이니 돌도 주워야 하고 건답이니 물도 대어야 하고 아침저녁으로 소도 끌고 댕기며 풀도 뜯겨야 한다.
때로 동네 사람도 찾아오고 멀리 서울 친구들도 찾아온다. 정신적으로는 가물어 걱정, 비가 와서 걱정, 몸에 병으로 걱정, 소가 똥질을 해서 걱정, 강아지가 비리가 먹어서 걱정, 곡식에 벌레가 붙어서 걱정, 이러한 생활에도 걱정이 끊일 날은 없었다.
게다가 집안 살림살이는 날로 어려워가고 세상 일은 갈수록 시원치 못하니 마음 편안한 날이 있을 리가 없지마는 도봉과 삼각산에 떨어지는 해가 하도 좋으니 그것을 보면 내 몸이 극락에 있는 듯하였다.
나는 지난해 추수도 끝이 나고 겨울을 이 사릉서 지내려 하였다. 나는 그러께 봉선사에서 이루지 못한 마음 공부를 이 겨울에나 종종 하게 계속할까 하였더니, 신장의 고장과 고혈압으로 가족에게 서울로 끌려오게 되었다. 앓는 몸을 시골에 혼자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 집에 있으면 조석으로 식구들과 만나는 낙이 있다. 아이들도 인제는 중학생이어서 이야기 동무도 되고 또 아비를 위하는 모양도 보여준다. 그러나 내 마음은 집에 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끝없는 방랑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이제는 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찾아내어야 한다. 육십이 내일 모레가 아니냐. 게다가 병약한 몸이 아니하냐. 이 몸을 가지고 태어났던 총결산을 할 때가 가깝지 아니하냐. 날은 저물고 길은 바쁘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올 때에 가지고 온 심부름을 잊어버린 것만 같다. 내가 무엇하러 왔던고? 좋은 청춘의 세월을 다 허망하게 보내고 백발이 성성한 오늘에 와서 호주머니를 뒤져본다는 것도 기막힌 일이다.
내가 무엇인고? 어디서 무엇하러 왔노?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 것인고?
마치 먼 길을 가던 사람이 중로에서 술이 취하여 놀고 졸다가 번쩍 잠이 깨어보니 앞길은 막막한데 햇발은 길지 못한 것과 같다. 이에 부지런히 정신을 가다듬고 호주머니를 뒤져서 무엇하러 어디로 가던 것인가를 찾아보는 것이다.
생각하면 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다. 큰 어른으로는 공자님, 부처님, 예수님 같으신 이도 뵈옵고 다음가는 이들로는 노자, 장자며 플라톤, 칸트 같은 이들도 만났다. 만나서는 서럽을 들었다. 그러하는 동안에 어리석고 어두운 내 마음에도 일종의 철학이 일러졌으니 그것을 적어본 것이 <내 나라>, <인생의 기쁨>, <사랑의 길> 등, 이 책 마지막에 넣은 세 편이다. 이상에 말한 것이 이 책 <돌베개>속에 실린 짧은 글들이 씌어진 유래다.
내가 금후에 얼마나 더 살는지, 또는 어떻게 발전이 되어 무엇을 할는지 그것은 옥합에 담긴 비밀이다. 그러나 나는 얼마동안 이 몸을 가지고 더 살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길을 더듬어서 끝까지 해맬 것이다. 만일 내 생명이 허락하기만 하면 나는 <돌베개> 이후의 내 생활의 기록을 만들 것이요, 그것을 <돌베개> 모양으로 출판하여 주는 이가 있다면 아마 <돌베개> 모양으로 여러분에게 보고될 것이다.
이 책에 내는 데는 생활사 주인 오 억 형과 거기서 출판 일을 맡아보는 장기환 형의 힘이 크다. 오형은 나를 위하여 내 저서를 출판하기에 많이 근념하실뿐더러 항상 내 건강을 염려하고 생활을 도와주셨고, 장기환 군은 때때로 친절한 격려와 재촉을 주셔서 이 책의 완성을 채찍질하셨다.
나는 지나간 삼십여 년내에 수십 권의 책을 발표하였지마는 이 책처럼 참으로 내 것이다 하는 것은 없었다. 수년 전에 <춘원시가집>을 내인 일이 있었거니와 그 속에 있는 수십 편의 시조가, <돌베개> 외에는 나 자신의 속을 말한 것이었다.
넓은 의미로 보면 내가 쓴 글은 소설이거나 논문이거나 다 내 속에서 나온 것이어서 내 인격의 설명자이겠지마는 이 수필과 저 시조만은 일점 일획이 다 내 혼의 사진이다. 과거 내 문필생활 사십 년 동안에 내 글을 읽어 주신 이는 다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이거니와 나는 이 <돌베개>를 사랑하는 내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를 삼는 바이다.
무자년 이월 삼일 서울 백악산 밑에서
돌베개
옛날 한시에 "孤枕石頭眠"이라는 구가 있다. 돌베게를 높이 베고 잔다는 말이다. 세상을 버린 한가한 사람의 모양을 말한 것이다. "眠巾掛石壁. 露頂새松風- 갓 벗어 바위에 걸고, 맨 머리에 솔바람을 쏘이다." 함과 같은 맛이다. 옛날뿐 아니라 지금도 산길을 가노라면,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돌베개를 베고 자는 사람을 보는 일이 있다. 대단히 시원해 보인다.
구약 성경에는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좋은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야곱은 세상을 버리거나 잊은 사람은 아니요, 한 큰 민족의 조상이 되려는 불붙는 야심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는 유대 민족의 큰 조상이 되었다.
나는 연전에 처음 이 집을 짓고 왔을 때에 아직 베개도 아니 가져오고 또 목침도 없기로 앞개울에 나가서 돌 하나를 얻어다가 베개를 삼았다. 때는 마침 여름이어서 돌베개를 베고 자는 맛은 참 시원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돌베개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돌베개에는 한 가지 흠이 있으니 그것은 무게가 많은 것이다. 여간 기구로는 도저히 가지고 다닐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광릉 봉선사에 유할 때에는 다른 돌베개 하나를 구하였다. 그것은 참으로 잘 생긴 돌이었다. 대리석과 같이 흰 차돌이 여러 만년 동안 물에 갈리고 씻긴 것이엇 희기 옥과 같았다. 내가 광릉을 떠날 때에는 거기 두고 왔다.
내가 돌베개를 베고 자노하면 외양간에서 소의 숨소리가 들린다. 씨근씨근, 푸우푸우하는 소리다. 나는 처음에는 소가 병이 든 것이나 아닌가 하였더니 그런 것은 아니였다. 이십여 일 연하여 논을 가느라고 몸이 고단하여서 특별히 숨소리가 크고 또 가끔은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못난이니, 자빠뿔이니 갖은 험구를 다 듣던 우리 소는 이번 여름에 십여 집 논을 갈았다. 흉보던 집 논도 우리 소는 노엽하게 생각하지 않고 갈아주었다. 그러고는 밤에 고단해서 수없이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백로
바로 내 집 문전이 해오리가 다니는 길인가 보다. 문재산의 푸른 병풍을 배경으로 해오리가 흰 줄을 그어서 날아가는 것을 한 시간에도 여러 번 볼 수가 있다. 느릿느릿 여러 가지 곡선을 그리고 날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한가해진다.
나는 가끔 내 서창 앞 방죽 위에, 흔히 식전에 허연 것이 웅승거리고 앉았는 것을 보고 사람인가고 놀라는 일이 있다. 그것은 해오리다. 봇돌에 아침 먹이를 엿보는 것이겠지마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꼼짝도 아니하고 앉았는 것을 보면 옛 사람들이 망기(忘機)로 비기는 것도 그럴듯한 일이다. 더구나 참새가 깝죽대고, 제비가 팔랑거리고 나비들이 나불대는 것을 전경으로 하고 볼 때에 해오리는 세상을 잊은 사람에 비길 수밖에 없다.
여기도 해오리가 많지는 아니하다. 사릉의 노송도 다 찍히니 따오기, 황새와 같은 점잖은 새들이 의접할 곳이 차차 줄어간다.
"저놈 저 못자리, 밟는다."
하고 해오리도 농부의 미움을 받는 일이 있으나 원체 수가 적기 때문에 미움보다도 사랑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이놈, 이놈!"
하고 돌팔매를 들고 따라가다가도 너슬너슬 도롱이 같은 꼬리(그것도 꼬리라고 할까)를 늘이고 한 다리를 들고 조는 듯이 앉아있는 양을 보면 누구나 손에 들었던 돌을 살며시 버리게 된다.
해오리는 쌍으로 다닐 때는 드물다. 대개는 혼자 날아다닌다. 어디까지나 높고 외로운 선비의 모습이다.
아무리 보아도 그는 열정가는 아니다. 담담한 성격이다. 까분다든가, 방정맞다든가 허욕을 부리고 싸움질을 한다든가 그러한 마음을 가진 자는 아니다. 그에게 기러기와 같이 만리장공을 날아 새 경지를 개척하려는 야심도 없다. 꿩과 같이 겁많고 성 잘 내는 패도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부엉이나 올빼미 모양으로 의뭉스럽지도 않다.
아마 그에게 비길 벗은 오직 두루미가 있을 뿐일 것이다. 그러나 두루미가 걸걸한 편이라면 해오리는 고요한 편이다. 우선 차림차림부터도 그러하다. 두루미는 아직도 이마에 붉은 장식을 하고 까만 치마를 둘러서 꾸미는 마음이 가시지 못함을 보이지마는 해오리는 이미 그러한 마음까지도 떠났다. 모든 것을 다 버린 경지다. 이른바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지경에 이른 도인이다.
꾸밈없이 아무렇게나 차리기로는 솔개미가 있다. 그는 마치 누더기를 입은 행자나 선승과 같지마는 그에게는 험상이 있다. 그렇지마는 솔개미도 속태를 떠난 일종의 도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속에 불측한 뜻을 품고 슬슬 기회를 엿보는 야심가라고 할까.
죽은 새
나는 지팡이를 끌고 절 문을 나섰다. 처음에는 날마다 돌던 코스로 걸으려다가 뒷 고개턱에 이르러서, 안 걸어본 길로 가보리라는 생각이 나서, 왼편 소로로 접어들었다. 간밤 추위에 뚝 끊였던 벌레 소리가 째듯한 볕에 기운을 얻어서 한가로이 울고 있다.
안 걸어본 길에는 언제나 불안이 있다.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길가에는 무슨 위험은 없나 하여서 버스럭 소리만 나도 쭈뼛하여 마음이 쓰인다. 내 수양이 부족한 탓인가. 이 몸뚱이에 붙은 본능인가. 이 불안을 이기고 모르는 길을 끝끝내 걷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을 보면 길 없는 곳에 첫걸음을 들여놓은 우리 조상님네는 큰 용기를 가졌거나 큰 필요에 몰렸었을 것이라고 고개가 숙어진다. 성인이나 영웅은 다 첫길을 밟은 용기 있는 어른들이셨다. 세상에 어느 길 치고 첫걸음 안 밟힌 길이 있던가.
내가 걷고 있는 작은 길은 늙은 솔밭으로 산줄기 마루터기를 타고 서남쪽으로 올라간다. 보기 좋은 소나무들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서로 얽히어서 사람의 손 아니 닿은 솔밭에서만 볼 수 있는 경치였다. 솔 수풀에는 언제나 바람 소리가 있는 모양이어서 우수수 소리가 은은히 울리고 산새들의 연연한 노래도 들렸다. 대단히 고요하고 내 마음에 드는 경치였다.
이름을 지으려면 무슨 '대'라고 할 만한 봉우리에 올라섰다. 노송들이 드문드문 둘러서고 머리에는 평평한 데가 있었다. 내 몸은 마치 인간에서 멀리 떠난 곳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기실은 평지에서 얼마 아니 되는 데언마는 나무에 가리운 까닭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나무, 천리 만리를 가도 인간은 없을 것 같았다. 가엷은 우리 육안의 착각이다.
한 굽이 또 한 굽이, 한 봉우리 또 한 봉우리 돌고 오르는 동안에 어느덧 처음 가는 길의 불안도 없어지고 좋기만 하였다. 가슴속에 후련하고 머리 속은 시원하여서 오래 떠났던 내 집에 돌아온 것은 같고 반가운 벗의 집에 간 것도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문득 같이 걷는 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나는 평생에 그리워하던 그림자들이 차례차례로 내 앞에 나타나는 것같이 상상하면서 허전한 생각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내 마음 구석구석에서 평생에 억제되었던 사랑들이 반항하고 원망하는 소리를 치고 일어나는 것도 같았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더 깊이 더 높이 산으로 올랐다. 고운 버섯들도 보고 이름 모를 이끼들도 보았다. 모두 생명이었다.
점점 길은 분명치 아니하고 나무는 보이다. 거미줄이 많이 앞을 가리웠으나 거미는 날이 추워서 벌써 들어가 숨은 모양이었다. 이제는 거미줄에 걸린 벌레도 없다. 그 거미줄은 인제는 고물이요 역사적 유적에 불과하다.
나는 지팡이로 아낌없이 거미줄을 후려갈겨서 길을 내면서 젊은 솔이 자욱한 속으로 헤어올랐다. 내 키보다 위는 가지와 잎으로 빽빽하고 아랫도리는 줄기만이 얼레빗살 같다. 붉은빛, 누른빛 섞인, 비둘기보다는 크고 꿩보다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땅으로 가다가 힐끗 보고는 용하게도 빗살 같은 나무 틈을 헤어서 날아간다.
나는 이 산줄기에서는 제일 높은 봉인 듯한 곳에 올라섰다. 소리봉의 엄전한 양자가 바로 내 이마 앞에 나선다. 나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보이는 것은 나무와 산뿐이었다. 다만 내 마음이 세상에서 멀어졌다 하는 것만이 분명하였다.
문득 내 눈에는 회색빛 나는 무엇이 보였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그것이 있는 곳으로 몇 걸음 가까이 갔다. 그것은 땅에 떨어져 있는 죽은 새 한 마리였다. 솔새보다는 크고 비둘기보다는 작고, 몸의 생김생김이 비둘기보다 경첩하고 주둥이가 몸에 비겨서 긴 것을 보니 딱따구리 족속인 모양이었다. 아무려나 무척 어여쁘게 생긴 새였다. 사람의 눈에도 저렇게 어여쁘니 사랑하는 저희끼리의 눈에야 오죽이나 잘 생겨 보였을까.
어찌해서 죽었을까. 무엇에 먹힌 것이면 몸이 온전할 리가 없고, 어디를 보아도 치명상이 될 마한 상처도 없다. 왼편 다리가 하나 뻗었으나 부러진 것은 아니었다. 마치 땅에 펄썩 주저앉은 모양으로 한편으로 약간 몸을 기울이고 죽어 있었다. 커다란 검정 개미 한 마리가 시체 위로 돌아다니고 있었으나 아직 몸이 썩지 아니하여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함인지 분주히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 작은 새가, 몇 해 동안인지 모르거니와, 그렇게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던 몸이 이 모양으로 던져진 것이 슬펐다. 그 털 한 대도 그에게는 귀하던 것이다.
어느 때에 어떤 모양으로 죽었는지 몰지마는 그가 죽을 때에는 몹시 아프고 괴로웠을 것이다. 아프다 못 해서 괴롭다 못 해서는 죽은 것이다. 그 고통이 옆에서 보는 자에게 잠시 잠깐이었겠지마는 당자에게는 마치 끝이 없이 오래고 오랜 것이었을 것이다. 영원! 그렇다! 그 괴로움은 그에게는 무한하고 또 영원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 혼자 괴로워하였을 것이다. 그의 부모와 형제와 자녀와 또는 사랑하던 여러 짝들이 그가 운명하는 곁에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아픈 것을 참다 못하여 괴로운 소리로 울었을 것이지마는 그 소리를 들은 자가 누군가.
그래도 그는 그러할 기운이 있은 때까지는 몇 마디고 슬픈 소리를 지르며 무엇을 피하려는 듯, 무엇에 기대려는 듯 날개를 퍼덕거리고 다리를 버둥거리고 고개를 내어두르고 눈으로 허공에서 무엇을 찾았을 것이다. 그렇지마는 그 소리를 들은 자는 누구? 그 애타는 광경을 본 자는 누구? 허공아 대답하라! 우주야 대답하라! 그것은 누구?
그는 혼자 애쓰다가 혼자 누구를 부르다가 죽었다. 아아, 암만 불러도 쓸데없구나 하는 듯이 그의 콩알만한 심장은 움직이기를 그쳤다. 그리고 아마 전신에 일순간의 경련이 있고는 그의 시체가 고요하듯이 우주는 고요하였다.
그의 그 물 끓듯 하고 불 타듯 하고 질풍과 같고 신뢰와 같고 천지가 온통 뒤집히고, 오그라지고, 찌그러지고, 찢어지고 부서지는 듯하던 것은 모두 한바탕 꿈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그랬는데, 그것이 어디 갔나? 그 괴로워하던, 괴롭다고 보던 그는 어디로 갔나?
나는 지팡이 끝으로 두어 치 깊이, 서너 치 길이 되는 구덩이를 파고 이 이름 모를 새의 시체를 묻어주었다. 그러고는 돌아섰다. 내 마음에는 그 새의 생각이 가득 찼다. 나는 오던 길을 걸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왔다.
내가 어찌하여서 오늘 여기 올 생각이 났을까. 내가 묻어준 그 새와 나와 무슨 인연이 있었나. 그 새가 죽던 순간에 나를 간절히 생각하여서 그래 내가 오늘 여기를 왔나?
'내 시체라도 보아주고 나를 묻어나 주오.'
이렇게 그가 생각한 것이 내 마음에 통한 것인가. 숙명통이 없는 나는 그와 나와의 전생의 인연을 알 길은 없다. 그러나 혹은 부자나 부부나 친구나 무슨 심상치 아니한 인연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제 몸은 새요, 나는 사람이어서 크고 작기와 걷고 날기는 다르다 하더라고 그와 나와 마음은 하나요 인과 응보의 줄은 하나다.
내게 기쁨과 슬픔이 있으면 그에게도 있었고, 내가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면 그도 그러하였다. 그의 몸에 돌던 피는 곧 내 몸의 피였던 것이다.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때때로 생각하고는 그리워도 하고 설워도 하던 모양으로 그도 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잠을 못 일고 그 어미가 품어주던 것과 먹여주던 정을 생각하였을 것이요, 내가 집에 두고 온 처자를 생각하는 모양으로 그도 이제는 어디 가 있는지 모르는 처자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도 그의 부모의 애욕으로 몸을 얻었고 또 그와 다른 어떤 새와의 애욕으로 여러 생명을 끌어들인 것이 나와 다름이 없다. 일언이폐지하면 그와 나와는 같은 생명과 운명의 고리들이었다.
그는 무엇하러 새의 몸을 받아 가지고 나왔었나? 일생에 몇천 마리 벌레는 잡아먹고 배고픈 일 추운 일 다 겪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싸우다가 죽고, 다만 이것이 그의 목적이었을까.
나는? 나는 왜 사람이라는 이 몸을 타고 났나? 내 목적은? 내 사명은? 지난 일을 돌아보면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끌려서 웃고 울고 헤맨 것만 같다. 앞으로 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거니와 그 날들이 어떤 모양으로 지나갈 것인고?
나는 쉬임없이 발을 옮겨놓는다. 해가 늦음인지 솔바람은 아까보다 크게 울고 새의 소리도 더 많은 것 같다. 모두 그 죽은 새를 조상하는 것 같다. 우툴두툴한 소나무 껍데기에 숭숭 뚫린 벌레의 구멍, 소나무가 몸이 가려워서 편할 날이 없을 것 같다.
간밤 된서리에 축축 늘어진 나뭇잎을 보면 추위를 피하여 땅 속으로 껍질 틈으로 황망하게 파난하는 수없는 생명들이 눈에 암암하다. 금년 추위는 피난하손 치더라도 조만간 그 새 모양으로 아프다 아프다 못 하여 죽어버릴 몸이건마는 그래도 그것이 아깝고 소중하여서 하루라도 한 시각이라도 더 길게 살려보겠다고 중생들은 갖은 꾀를 다 부리고 있는 애를 다 쓰고 있다. 보약, 기도, 피난 등등.
꽤 많이 내려왔다. 어디서 텅텅 나무 찍는 소리가 울려온다. 마을 사람들이 겨울 준비를 하느라고 나무를 훔치는 것이다. 산림 간수한테 들키면 찍던 나무를 내버리고 지게와 도끼를 가지고 달아나 숨어야 한다. 그에게 아내와 아들과 딸들이 있을 것이다.
저도 살아야, 그들도 살려야 한다. 그건데 그는 박복하여서 훔치고 훔치니 또 박복하다. 그도 필경은 죽으려니와 그가 사랑하는 처자들도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들킬까 보아서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저렇게 나무를 도벌하고 있다.
무엇하러 왔나? 왜 사나? 왜 죽나? 절에 돌아오니 손님 셋이 나를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나이 팔십이 가까운 애국자 조 여사. 하나는 공연한 장가를 들어서 어린 것을 셋이나 낳아 가지고 쩔쩔 매노라는 천축 중. 또 하나는 가난에 시달리면서 공부도 계속하고 양반의 체통도 보전하려는 성 생원이었다.
천축 중은 김여사의 심부름이었다. 김 여사는 욕심은 그대로 두고 향락도 그대로 하면서 극락 왕생을 위하여서는 염불을 모시고 천당 길을 위하여서는 십자 성호를 그리는 이였다. 조 여사는 나를 민족운동의 동지라고 허위단심으로 이 산골짜기에를 찾아오셨고, 김 여사는 나를 불교의 선지식이라고 중을 전인하여서 내게 법을 물은 것이요, 성 생원은 나를 선배 학자라고 찾아왔다. 나를 알기는 다 달리 알았으나, 잘못 알기는 셋이 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늘 묻어준 새 이야기로 세 사람에 대한 공통한 대답을 삼았다.
-병술 시월 오일
나는 바쁘다(1) - 제비와 뱀
글을 써 보려고 대문을 닫고 혼자 책상 앞에 앉았다. 만년필에 잉크를 잔뜩 넣어 들고 원고지 위에 손을 놓았다. 그러나 글을 쓸 새가 없이 나는 바쁘다.
제비 새끼들이 재재재재하고 모이 물고 들어오는 어버이를 맞아들이는 소리가 들린다. 받아먹는 것은 번번이 한 놈이지마는 다섯 놈이 다 입을 벌리고 나도 달라고 떠든다. 그러나 어버이는 어느 놈에게 주어야 할 것을 잘 알고 새끼들도 이번이 제 차례인지 아닌지를 잘 알면서도 괜히 입을 벌리고 재재거려 보는 것이다. 차례가 된 동생이 받아먹은 뒤에는 다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
인제 제비 새끼도 깐 지 이 주일이나 되어서 제법 제비 모양이 다 되었다. 뒤를 볼 때에는 그 좁은 데서 비비대기를 쳐서라도 꽁무니를 밖으로 돌려대는 것은 사오 일 전부터도 하는 일이지마는 어제 오늘은 두 발로 잔뜩 집 언저리를 거머쥐고 꼬랑지를 내밀 수 있는 대로 밖으로 내밀어서 부정한 것이 집터에 묻지 아니하도록 애를 쓰게 되었다. 방바닥에 싸놓은 똥을 어미 아비가 물어내던 것은 벌써 옛날 일이다.
인제는 그들은 눈깔을 떠서 배 타고 앉은 사람들 모양으로 고개를 내어둘러서 사방을 바라보기도 한다.
어저께는 어버이 제비들이 거진 한나절이나 새끼들에게 모이를 안 먹이고 빨랫줄에 돌아와 앉아서 소리를 하였다. 이것은 새끼들더러 날아 나와 보라는 뜻인 모양이나 새끼들은 아직 그 날갯죽지에 자신이 없는 모양이어서 어버이를 바라보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어미 제비들은 하릴없이 다시 물어다가 먹이기를 시작하였다.
새끼들이 자란 탓인지, 아비 제비가 어제 오늘은 어미 제비를 어르는 행동을 시작했으나 어미 제비는 거절하였다.
"주책도 없이. 어디다가 알을 낳으란 말이오?"
암제비는 이렇게 남편을 책망하는 것이었다.
"찌째, 찌째."
하는 소리를 어미 제비가 반복하는 것은 '조심하라, 적이 가까이 왔다."하는 경보다. 그저께는 하도 이 경보가 심하기로 나가 살펴보았더니, 아래채 기와 끝에 젊은 구렁이 한 마리가 참새집을 찾느라고 슬슬 기고 있었다. 접때 안마당 쪽으로 가지런히 넷이나 있던 참새집이 갑자기 없어진 것도 이놈 때문이었다.
참새는 농가의 미움받이라 뱀이 잡아먹어도 괜찮지마는 제비집을 건드려서는 큰일이다. 나는 작대기를 가지고 때려잡아서 땅을 파고 묻으려고 했더니 마침 와 있던 창욱이라는 사람이,
"뱀은 묻는 것이 아니랍니다. 막대기에 걸어서 내다가 홱 던지는 법이랍니다."
하고 뱀 장수 하는 예법대로 하였다.
뱀이란 언제 보아도 싫은 짐승이다. "사람의 자손은 네 자손이 머리를 까고, 네 자손은 사람의 자손의 발뒤꿈치를 물어서 영원히 서로 원수가 되리라."고 하느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창세기 말은 우리 감정으로 보아서 꼼짝할 수 없는 진리다. 그 입하고 눈하고! 생각만 하여도 몸에 소름이 끼치는 짐승이다. 뱀의 편으로 보면 사람도 그러할까.
그러나 뱀에는 업구렁이라는 것이 있다. 집터에 있어서 쥐와 새를 잡아먹으므로 주인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상사뱀이란 것이 있다. 남녀간에 외짝 사랑을 하다가 죽으면 뱀이 되는 것이다. 생전에 사랑하던 여자의 몸에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뱀이 되어서 남자에게 붙는지 않는지는 나는 듣지 못하였다. 재산에 탐을 내면 구렁이가 되고 여자에게 탐을 내면 상사뱀이 된다. 무릇 무엇에나 탐을 내어서 잊지 못하면 뱀의 몸을 받는 것이다.
뱀은 이렇게 악업이 깊은 짐승이라, 그의 일생이 대단히 괴롭다고 법화경에도 씌어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비방한 자는 큰 구렁이가 되어서 그 비늘마다 벌레가 있어, 가려워 못 견딘다고 한다. 돈에 욕심과 독을 품고 항상 그늘로만 숨어 다니는 그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세상이 넓고 중생이 많다 해도 뱀을 사랑하는 이가 있을까. 사람 중에도 뱀 같은 이가 있지 아니할까.
나는 바쁘다(2) - 소를 옮겨 매야
글을 쓰려고 붓을 들고 앉아서 이러한 생각에 바빴다. 안 되겠다 인제부터는 글을 쓰자.
나는 기분을 전환하려고 앉음앉음을 고친다. 이때에 우수수 하고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뜰가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난다. 서창을 아니 열어볼 수가 있는가, 서창은 바로 내가 책상을 놓은 쪽 쌍창이다.
나는 서창을 열었다. 삼각산 불암산은 빗속에 녹아버리고 바로 앞개울 건너 문재산도 묽은 숯먹으로 그린 듯하고 희미하다.
며칠 전에 핀 달리아 꽃잎이 비와 바람을 맞아서 산산이 떨어져 땅에 깔린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떨어지기 전에 벌써 다른 꽃이 피어서 한창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달리아의 꽃 공양은 쉬일 새가 없는 것이다.
달리아 이웃에 있는 토마토가 그 있는 듯 마는 듯한 꽃이 피었다. 남들은 순을 친다는데 나는 토마토 자신에게 맡겨버리고 말았다. 몇 가지를 치든지, 열매를 몇 개를 달든지 제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또 어떤 모양의 토마토가 열릴는지 무론 나는 모른다. 그 왁살스럽고 까닭없이 혹이 돋치고 찌그러진 열매의 모양이 생각나서 나는 웃었다.
그 옆에는 대싸리가 났다. 가만 내버려두었다. 또 그 옆에는 살구나무가 났다. 그것도 가느단 가지와 이파리가 너불너불하고 있다. 보리 타작할 때에는 살구가 익는다. 젊어서는 독한 청산을 풀어도 누렇게 익으면 그 독하던 것이 달고 향기로운 살구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나무가 자라서 살구가 섬으로 달리자면 아마 삼십 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 때에 우리 우물을 파던 그 기운찬 제하도 환갑 노인이 될 것이다.
비를 맞으면서도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흰나비 한 마리에 쫓기는 알락나비가 피하다 피하다 못 하여 달리아 꽃에 모가지를 박고 흰나비의 사랑을 거절하고 있다.
비는 더 와야 하겠는데 방죽 위의 버드나무가 남으로 고개를 숙인다. 바람이 서쪽으로 돌았다가는 걱정이다. 비가 왜 이리 시원치 아니하냐고 사람들이 성화를 하고 있다. 비를 맞으며 써레를 지고 소를 앞세우고 울타리 밖으로 지나간다.
"모는 꽂아 놓아야지. 소서가 낼 모렌데."
하는 것이 농가의 속 소리다.
때까치가 소나무 중턱에 붙어서 비를 피하며 깨깨거린다. 내가 어릴 적에 살던 집 뒤란 오동나무에서 비가 올 때면 이 새가 짖었다. 깨깨깨깨, 어머니는 저놈이 제 어미를 개울가에 묻고 비만 오면 저렇게 애를 쓰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때에 들은 이름은 개고마리라 하였는데 이 고장 사람들은 그것을 때까치라고 한다.
이름이야 무엇이거나 내 귀의 기억으로는 소리는 마찬가지다. 오십 년 전 내 집 오동나무에 울던 그 개고마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가 없고 설사 살아 있기로서니 천리 밖에 그 늙은 몸이 나를 따라와서 내 창 밖에서 울리는 없다. 그러나 한 개고마리는 죽어도 그 종족은 살아서 같은 소리를 영원히 전하는 것이다.
장난꾼이 아이녀석 같은 옥수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고 소나무 소리가 물결 소리와 같다.
아차, 소를 옮겨 매어야 하겠다. 오늘은 다섯 집에서나 소를 빌려온 것을 모조리 거절해버렸다. 줄창 너무 오래 일을 하여서 소가 꺼칠하게 몸이 깠을 뿐더러 설사가 대단하다. 말이 통하지 못하니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어도 너무 몸이 고단한 것과 갑자기 햇풀을 뜯긴 까닭이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잔디판 위에 누운 소는 그린 듯이 있다. 고개를 들고 어딘지 모르게 바라보고 있다. 나고 자란 고향을 생각함인가. 수없이 논을 갈고 밭을 헤친 기억을 더듬음인가, 코를 꿰이고 고삐에 매인 지도 이미 오래였으니 고삐 기럭지 밖에 나갈 생각도 잊은 지 오래다. 당당한 황소이면서 암소 곁에 한 번도 못 가보고 햇풀이 길길이 자라도록 묵은 여물과 콩깍지를 먹고 목이 터지도록 멍에를 메어야 한다.
주인 없는 물가 풀판에서 마음놓고 먹고 놀고 하던 것은 그의 수백 대조 할아버지 적 일이다. 그의 집안에는 역사를 적는 이가 없으니 글을 읽어서 조상 적 일을 알 수는 없으되 어미에서 새끼에게 끝없이 전하는 그의 마음이 개벽 적부터의 그 집안 풍속을 그의 몸맵시와 함께 전하여 주는 것이다.
머리로 받는 버릇은 뿔과 함께, 새김질하는 법은 천엽과 함께, 무슨 풀은 먹고 어떤 것은 안 먹는 재주는 그의 코와 함께 받은 것이다. 뿔이 있으니 받아도 보고 싶고, 몸이 있으니 자손도 보고 싶으련마는 이것저것 다 마음대로 못 하게끔 코를 꿰인 그는 사바세계의 참는 도를 닦을 수밖에 없이 된 것이다.
조상 적부터 따라오는 파리와 등에와 모기는 어디를 가든지 그에게 묵은 빛을 내라고 재촉하고 있다. 아무리 피를 빨리고 가려움과 아픔을 받아도 그 몸을 벗어놓기 전에는 면할 수 없는 빚이다.
밤마다 내 베개에 오는 그의 한숨 소리의 뜻을 나는 안 것 같다.
-정해 유월 이십팔 일 사릉에서-
우리 소(1) - 소를 흉보는 사람들
사릉에서 농사를 짓는다 하여 동대문 밖 우시장에서 소 한 마리를 산 것이 지나간 삼월이었다. 육만 원이라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큰 돈이다. 더구나 내 농토 전체의 값과 얼마 틀리지 않는 큰 돈이다.
소를 사리 말리 하기에 우리 내외는 두 달이나 의논도 하고 다투기도 하였다. 십만 원어치도 못 되는 농토를 갈겠다고 육만 원짜리 소를 산다는 것이 아이보다 배꼽이 큰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군도 없는 우리 농사에 소까지 없고는 품을 얻을 수가 없는 것하고, 또 소를 안 먹이고는 받을 길이 없다는 이유로 마침내 소를 사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를 가져본 일이 없는 우리는 소를 사는 것이 우선 큰 문제였다. 소란 네 발을 가지고 두 뿔을 가졌고 잡아먹으면 맛이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우리로서 어떻게 소를 고르기는 하며 값을 알기는 하랴. 없는 돈에 속아 사기가 싫을뿐더러 속았다 하면 두고두고 속이 상할 것이 걱정이 되었다.
소를 살 때에는 입을 벌려서 이를 보아서 나이를 알고, 걸음을 걸려보고 꼴을 먹여보고, 이 모양으로 한다는 말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얻어들었으나 지식이란 경험 없이 효과를 생하는 것은 아니다.
"속을 심 대고 사자. 아무리 속기로니 소 대신에 개야 오랴."
하는 배짱을 대고 장날을 기다렸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것도 호랑이 담배 먹을 때 말이요, 지금 세상은 눈깔 후벼내고 코 베어간다는 세상이다. 믿을 사람이 어디 있나. 모두 도둑놈으로 알아라 하는 말을 날마다 듣는 이 세상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다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천에 하나나 만에 하나 악한 사람이 있으면 세상이 온통 악해 보이는 것이다. 천 명에 악인이 하나라면 우리 삼천만 동포 중에 악인이 삼만 명 가량, 만 명에 하나라면 삼천 명. 아마 삼천 명쯤 속이고 훔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다지 겁낼 것도 없는 일이다.
소 장날이 왔다. 소를 사러 가는 일행은 모두 세 사람, 하나는 내 아내, 하나는 나와 같이 농사를 지을 박 군, 그리고 또 하나는 내 동서 되는 박 서방이다. 그 중에서 쇠고삐를 한 번이라도 잡아본 것은 박 군뿐인데 이 이도 삼십이 넘도록 책만 보던 패요, 내 동서는 돌구멍 안에서 나서 남으로는 한강, 북으로는 모악재까지밖에 못 나가보고 환갑을 넘긴 노인이다.
내 아내는 뿔이 있고 없는 것으로 겨우 소와 마를 구별하는 위인이다. 소를 입도 벌려보고 걸음도 걸려보는 것은 박 군이 할 일이거니와 무론 자신은 없고 박 서방은 허우대와 소 묘리를 잘 아는 것처럼 뽐내어서 거간과 소장수를 위협하는 소임이었다. 이렇게 사온 것이 우리소다.
소는 다 떨어진 짚세기를 신고 동대문 밖 시장에서 사십 리 길을 걸어서 내 사릉 집에를 왔다.
지난해 만 원 이만 원 하는 바람에 웬 떡이냐 하고 소를 다 팔아먹고 이제 육만원 칠만 원, 크면 십만 원을 하게 되니 새로 소는 살수가 없어서 칠십 호 농촌 부락에 우차 소 다섯 마리밖에 없는 이 동네라 우리 집에서 소를 사왔다는 것은 큰일이 아닐 수가 없다.
마치 새색시나 들어온 것 모양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소를 보러들 왔다. 와서 보고는 무른 소리나 한 마디씩 비평을 하였다. 본래 친분이 있는 점잖은 이들은 주인이 듣기 싫은 소리는 삼가지마는 나와 면식이 없는 젊은 축들은 대개는 우리 소의 흠담이었다.
"어, 자빠뿔이다."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빠뿔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뿔이 앞으로 뻗지 아니하고, 뒤로 자빠졌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듣고야 나는 비로소 우리 소 뿔이 남과 다른 것을 알았다. 이 동네 어느 소도 뿔은 모두 앞으로 향하였다.
"우리 소는 인자한 소야, 뿔은 있어도 받지 아니하거든."
나는 어떤 사람을 보고 이런 소리를 하였다. 그런즉 그 사람은,
"흥, 자빠뿔이 소가 심술이 나면 무섭다는 게요, 자빠뿔이 호랑이 잡는다는 말도 못 들었소?"
하고 코웃음을 하였다.
"평소에는 순하다가 호랑이를 보면 기운을 내는 것이 잘난 것이어든."
하고 나는 그 사람의 코웃음을 반박하였다. 나는 정말 우리 소를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허, 그 소 살 많이 쪘다."
이것은 우리 소가 마른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마르기는 과연 말랐다. 소장수 말이, 이 소가 칠백 리를 걸어온 길소라고 하였고 보름만 잘 먹이면 윤이 찌르르 흐른다고 하였다. 소는 삼남 소라야 쓴다는데, 칠백 리라면 적어도 대전 저쪽이니 삼남인 것이 분명하고 발에 신긴 짚세기를 보아도 먼 길을 온 것이 분명하였다. '길소'란 말도 나는 처음 배운 말이었다.
털빛이 윤이 없느니, 뒷다리가 어떠니, 무엇이 어떠니 하고 대체 사람마다 한 가지씩 보는 흉이 많기도 많았다. 하도 흉들을 보는 것을 들으니 일변 심사도 나고 낙심도 되었다.
우리 소(2) - 누른 털 검은 입술
그러나 이 사람들의 말이 다 믿을 수가 없는 것을 한 가지 발견하였다. 그것은 어떤 사람은 우리 소가 너무 어리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너무 늙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비평가의 대부분은 세상의 다른 비평가들 모양으로 별로 근거도 없이 아는 체하는 자들인 것이 분명하였다.
나와 박 군은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소가 남의 흉을 안 듣는 소가 되도록 잘 먹이자고 결심하고 콩, 콩깍지, 등겨며 짚도 썩 좋은 것을 구하여서 비싼 장작을 아낌없이 때어가며 죽을 끓여 먹였다.
"흥, 주제에 먹새는 잘 하는데."
사람들은 우리 소가 궁이 밑에 한 방울 국물도 아니 남기고 다 먹는 것도 코웃음으로 비평하였다. 아무려나 우리 소는 이 동네에 들어와서는 몇 사람이 손꼽아 셀 만하게,
"소, 순하다."
"먹기는 잘 먹는데."
"한참 잘 먹이면 논은 갈 것 같소."
하는 칭찬을 하였을 뿐이고는 열이면 아홉은 우리 소를 할 수 없이 못난 소로 돌려버렸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도 다들 흉을 보니까 나도 우리 소가 과연 못난이나 아닌가 하고 마음이 찜찜하였다.
"박 군. 우리 소가 자네나 내게 꼭 맞는 솔세. 세 못난이가 모였네 그려."
하고 웃었다.
그런데 하루는 C라는 글 잘하는 노인이 우리 집에를 왔다가 가는 길에 대문 밖에 매어놓은 우리 소를 보고,
"허, 그 소 좋다!"
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였다. 나는 이 노인은 조롱하는 말을 할 이가 아닌 점잖은 이라고 알기 때문에 대단히 마음이 기뻐서 그 어른께 물었다.
"다들 우리 소를 못난이라고 흉을 보는데 선생께서는 무엇을 보시고 우리 소를 칭찬하시오?"
그 노인은 지팡이 머리에 두 손을 포개서 얹고 대단히 유쾌한 듯이,
"사전에 황우 흑순(黃牛黑脣)이로소니 하는 말이 있지 않소. 이 소가 황우 흑순이야. 털은 누르고 입설이 검거든. 털이 누른 소는 흔하거니와 입설 검은 것은 드문 것이오. 이 소는 순하고 일 잘할 것이오"
하고 자신 있게 설명하였다.
황우 흑순이라는 시전 문자가 얼마나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인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삼천 년 전 문헌인 것과 그것을 내게 말한 이가 팔십을 바라보는 늙은 선비인 것만 하여도 우리 소를 위하여서는 큰 영광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나는 그 후부터는 황우 흑순이라는 문자 하나로 우리 소에 대하여 자신을 얻었다.
그러나 걱정은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가깝도록 계숙이 어머니는 동넷집 뜨물까지 얻어오고 박 군은 정성을 다하여서 쇠죽을 끓여 먹이건마는 영 살이 찌지 아니하고 다른 소들은 다 털을 벗고 암내를 내어서 영각들을 하는데 우리 흑순은 길마 자리에는 밍숭밍숭하게 닳아져서 털 한 대 아니 나오고 털이 있는 부분도 꺼칠하고 누덕누덕한 대로 있었다.
"이거 어디 소 구실 하겠어. 내다가 팔고 돈 만 원이나 더 쳐서 다른 소를 사와야지, 어디 금년 농사짓겠나."
소 애비로 정한 T서방까지도 거진 날마다 이런 소리를 하였다.
"흉보지 말아요!"
하고 나는 우리 소를 위하여서 변명하였다. 내 변명의 요지는,
"이 소가 삼남 어느 가난한 집에 태어났거나 팔려가서 잘 얻어먹지 못하고 짐실이를 하였다. 등에 털 한 대 없는 것을 보면 알 것이 아니냐. 그러다가 칠백 리 길을 소장수에게 끌려서 걸어올 때에 오장에 있던 기름까지도 다 마른 것이다. 그러니까 그 동안 한 가마나 먹은 콩이 이제 겨우 내장에 잃은 기름을 채웠을 것이니 앞으로는 멀지 아니하여 털을 벗고 살이 찌리라"
하는 것이었다.
내 말은 맞았다. 청명 때 채마를 갈 때쯤부터 벌써 우리 소를 흉보던 입들이 쑥 들어갔다.
"곧잘 끄는데."
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장작 가뜩 실은 마차까지도 끌게 되었다.
나도 나도 하고 우리 소를 빌리러 왔다. 우리 소는 이제는 논갈이, 씨레질, 무엇이나 하는 소가 되었다. 역시 황우 흑순이다!
이거 못쓰겠으니 팔아서 바꾸자는 소 애비 T씨를 씨레질하다가 한 번 보기 좋게 둘러메친 것은 거짓말 같은 정말이다. 설마 '네가 내 흉을 보았겠다.' 하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마는 사람이 흉보는 말이 소에게 아니 통할 리가 없다. 하물며 우리 황우 흑순이랴.
우리 소는 쉬일 새가 없이 우리 동네 사람들의 논을 갈았다. 오늘도 비가 오는데 멍에에 터진 목을 가지고 동넷집 논을 갈러 갔다. 벌써 박 군이 쑤는 쇠죽 가마에서 구수한 풀 향기가 무럭무럭 나건마는 우리 흑순은 아직도 아픈 목을 참고 연장을 끌고 있는 모양이다. 소가 시장한 배를 안고 허겁지겁 대문으로 들어와 외양간에 들어와 그 순하고 큰 눈을 뒤룩뒤룩하면서 쇠죽 가마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기울일 것도 아마 반시간 이내일 것이다.
밤이면 내 베개까지 그의 곤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고단하지나 아니한가, 요새는 또 살이 쭉 빠졌다.
하지만 앞으로 일 주일밖에 없으니 모내기도 그 안에는 끝날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 흑순은 하루 종일 풀밭에 누워 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흑순의 터진 목덜미가 아물고 투실투실 살이 오를 날도 멀지는 아니할 것이다. 수고한 자는 쉴 날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물(1) - 못자리가 마른다
못자리에 물이 말랐다. 오래 가물어서 봇물이 준 데다가 하지가 가까워 저마다 다투어서 모를 내느라고 물이 마른다.
"에 고이한 사람들 같으니, 아무러기로 남의 못자리까지 말린담."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꼭꼭 막아놓은 내 물꼬를 들여다보고 섰다.
'물꼬를 터 놓을까.'
나는 혼자 생각한다. 내 윗논에서 물을 대느라고 봇물은 조금밖에 없다. 이것을 내 논에 대면 저 아래 모내는 논에는 물이 한 방울도 아니 갈 것이다.
'저 논에 모내기가 끝날 때가지 참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못자리는 바싹 말라서 높은 곳에 틈까지 텄다.
'설마 몇 시간 더 마르기로 어찌 될라고.'
나는 참기로 작정한다.
윗논은 벌써 모를 내었건마는 뱃심 좋은 사람들은 절절 물을 대고 있다.
"못자리가 말랐소 그려."
삽을 메고 오던 꺼먼 늙은이가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이 동네에 온 지도 얼마 안 되고 또 꼭 집에만 있는 나는 그 꺼먼 늙은이가 누구인지 모르나 공손히 답례를 한다.
"물꼬를 좀 터 놓으시우. 못자리가 말라서야 쓰겠소?"
하고 그는 제 손으로 내 물꼬를 터 준다. 그리고 아래서 내려가는 물을 막아서 내 논으로만 들어가게 하고 나서,
"어디 물이 얼마 되나, 그까진 거 내려보내기로 저 모내는 데까지는 기별도 안 가겠소. 댁 못자리에나 대우."
하고 위로 올라간다.
나는 모내는 집에 미안하다 하면서 졸졸졸 내 논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본다. 이 따위로 들어가 가지고는 열 시간을 대어도 찰 것 같지 아니하다.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은 여기저기 떠 있건마는 비가 될 듯한 구름은 안 보였다.
"산은 가까이 보이는구먼."
하던 어떤 노인의 말을 생각하고는 나는 서쪽을 바라본다. 삼각산과 도봉이 한결 가깝게 파르스름한 기운을 띠고 보인다.
'뻐꾸기가 쌍으로 운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금년에는 외뻐꾸기만 울어서 흉년이라고 사람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쌍으로 울었다. 나는 속으로 기뻤다.
나비가 쌍쌍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도 비가 가까운 징조라고 한다. 비만 왔으며 물 걱정은 없다. 오늘도 낼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내 물줄기를 바라보고 섰다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물이 소리를 하며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아까 그 꺼먼 늙은이 올라간 데로 돌렸다. 그도 나를 향하여 싱그레 웃고 있다. 그는 자기 논에 대던 물을 나를 위하여 터놓아 준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내가 소리를 질렀더니 그는 유쾌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날 밤이었다. 상노가 그저께 모낸 자리가 바싹 말랐으니 오늘밤에 한 번 축여주지 못하면 다 말라 죽는다고들 남들이 걱정해주었다.
"밤중에 가서 좀 내시우. 염치 보다가는 물 한 방울 못 얻어봅니다."
어떤 이웃의 훈수를 듣기로 하고 밤 열한 시가 지나서 박 군이 삽을 메고 나갔다. 그는 두 시간이나 있다가 돌아왔다. 그를 혼자 보내고 나만 누워 잘 수가 없어서 나도 그때가지 책을 보고 앉아 있었다.
"한 절반 닿는 것을 보고 왔어요."
박 군은 만족한 모양이었다. 나도 우리 모가 이틀은 살았다고 마음놓고 잤다.
물(2) - 저마다 잘나서
이튿날 아침에 누가 와서,
"어젯밤 물은 괜히 댔습니다. 남의 모낼 물을 댔다고 댁 논두렁은 여러 군데 잘라놓아서 물 한 방울 없습니다. 댁 논 밑에 생갈이할 논에만 물이 그득합니다."
하고 일러주었다. 제 논에 들어올 물을 우리 논에 넣은 것이 분해서 우리 논에 닿은 물을 제 논도 아닌 논에 찌어버린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나비가 쌍쌍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이지나 않는가 하고.
나는 다시 남과 다투어서 봇물 댈 생각을 버렸다. 비오기나 기다리자.
물은 왜 없나? 정말 없나? 나는 이 동네에 유명한 실농군인 Y노인에게 물어보았다. 그이와의 문답을 종합하면 이러하다.
이 동네 논은 샘논, 고래논, 봇돌논, 세 가지가 있다. 샘논이란 것은 제 논 안에 또는 제 논 가까이 샘을 가진 논이다. 그 샘이 논보다 높이 있으면 가만히 있더라도 저절로 논에 물이 닿으니 영영 물 걱정은 없는 논이다. 만일 샘이 논과 같은 평면 이하에 있으면 사람이 물을 퍼 대어야만 논에 물이 드는 것이니 이것은 좀 인력이 드는 것이어서 누워서 떡 먹기는 못되는 것이다.
고래논이란 것은 산골짜기에 있는 것으로서 산에서 졸졸 내려오는 장류수를 받는 논이니 이것도 누어서 떡 먹기와 같은 논이지마는 이런 것은 대개는 큰 배미는 없고 조그마한 배미가 층층대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세모난 놈, 찌그러진 놈, 꼬부라진 놈, 이 모양으로 생김생김이나 크기가 형형색색이어서 소위 마늘 배미, 종지 배미, 접시 배미하는 별명을 가진 것이 있고 양푼 배미, 대야 배미라면 무척 큰 배미이다. 이곳에 그중 착한 사람인 P노인이 부치는 꽃나미 논이란 것은 겨우 서마지기가 배미 수로는 마흔 다섯이나 된다는 것이다.
봇돌논은 보라고 하는 돌을 쳐서 개울물을 끌어대는 것으로서 이것은 좀 대규모의 관개법이다. 우리 동네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을 끌어대는 보가 상노깨보, 두리개보, 사갑들 웃보, 아랫보 이 모양으로 넷이 있는데 그 중에 두리개보라는 것이 제일 물이 넉넉한 보라고 하나 그것도 요새 가물에는 겨우 차례를 정하여 이 논에 하루 저 논에 하루씩 물을 대고 있는 형편이다.
이상한 것은 두리개보에는 약간한 법이 있어서 물싸움이 적은데, 상노깨보라는 것은 조금도 질서가 없어서 뱃심 좋고 염치없는 사람만이 물을 얻어보게 되어 있다. 아마 두리개보에는 언제 한 번 좋은 지도자가 나서 법을 정했던 모양이다. 법이란 한 번 정해서 한참 동안 실시에 힘을 써서 한 번 자리만 잡히면 용이히 변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런 성질이 있기 때문에 나라도 되고 문화도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상노깨보의 몽리 관계자는 사십 명이나 된다는데 도무지 법이 없다. 여기는 개벽 이래에 아직 한 번도 지도자가 난 일이 없는 것이다. 이 원시 상태, 무정부 상태를 정리하여서 물을 골고루 받게 하는 일은 오직 대정치가의 출현을 기다려서야 될 일이다.
오늘도 상노깨보를 친다고 다들 나오라고 해서 우리 집 박 군도 삽을 메고 나갔다. 이것이 금년 철 잡아서 벌써 네 번째다. 금년 철이라야 두 달 동안이다. 처음에는 해묵은 봇돌을 하느라고 전부 났고, 둘째 번 셋째 번은 상노깨돌에 못자리를 가진 사람들만이 났고 이번에는 모가 거진 난 뒤라 전원이 출동하라는 것이다.
Y노인의 말을 듣건대 만일 사십 명이 나서 하루만 잘 일을 한다면 이 보는 두리개보보다도 물이 흔하리라고 한다. 첫째로 수원지를 길게 올려 파면 얼마든지 샘을 얻을 수가 있고, 둘째로 물을 돌려오는 돌창 밑에 진흙을 깔면 물이 새지 아니할 것이요, 셋째로 물을 서로서로 차례를 정하여 대기만 하면 마르는 논이 없으리라고 한다.
"그러면 왜 그것을 안 해요?"
하고 묻는 내 말에 Y씨는,
"사람들이 말을 들어먹어야지요. 나오라니 나오기를 해요? 나오더라도 일을 아니해요. 사십 명이 다 나와서 제 일을 하듯 하면야 하루에 다 되지오니까. 이건, 사십 명더러 나오라면 스물도 잘 안 오고, 오더라도 노라리란 말씀야요. 그러고는 남이 애써 파서 봇돌에 물이 내려올 때 나도 나도 하고 제 논에만 물을 대겠다고 아우성을 하지오니까."
하고 쓴웃음을 웃는다.
"그럼, 물을 두고 논을 말리우는 것 아냐요?"
"이를테면 그렇지요."
"거, 어떻게 잘 해볼 수 없을까요?"
"안 됩니다. 말을 들어먹어야지요. 저마다 잘난 걸요. 민주주의고요."
Y노인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썼다. 이 노인이 아는 민주주의는 '저마다 잘나서 아무의 말도 아닌 듣는 주의'다.
Y노인의 생각에는 사람들이 말을 아니 들어먹으니 상노깨벌은 만만세가 가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아, 물을 두고도 논을 말리우는 우리 신세여!
제비집(1) - 천만 뜻밖으로
내 집을 지은 지 사 년 만에 제비가 들어와서 집을 지었다.
나는 이 집을 지은 후로 몇 달을 살다가는 떠나고 또 며칠을 묵다가는 떠나서 지난 사 년 동안에 들어서 산 것은 모두 일 년 턱이 못 된다. 아마 그래서 제비도 집을 안 짓는 모양이었다.
재작년 여름에 소위 소개통에 아이들이 이른 여름부터 이 집에 나와 있었다. 그때 어느 날 제비 두 마리가 집에 들어와서 처마 밑으로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열 일곱 살 먹은 아들이 보꾹에 못 두 개를 박고 지푸라기로 얽어서 제비가 집을 짓기에 편하도록 해주고는 날마다 제비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으나 이내 집을 안 짓고 말았었다.
금년에는 천만 염외에 - 그야말로 천만 염외다 - 하루는 제비들이 들어와서 집 자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하루, 이틀, 사흘 삼사 일을 두고 그들은 집에 들어와서는 여러 번 처마 밑을 두루 살폈다. 아들이 만들어놓은 집터를 처음에는 아마 위태하고 의심스러운 물건으로는 보는 모양이었으나 차차 의심도 풀려서 거기 올라가 앉아보는 일도 있었다.
마침내 그 터에 집을 짓기로 정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사흘째 되는 날부터는 우리 집 차양 밑 철사에 내외가 가지런히 앉아서 자고 있었다.
이튿날 그들은 흙을 물어들여서 집터 위에 기초 공사를 개시하였다.
"자, 이제야말로 집을 짓는다."
하고 나는 자신있는 듯이 자랑을 하였다. 그러나 내심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조것들이 집을 짓다가 중도이폐를 하고 가버리면 어찌할꼬 함이었다. 제비들이 보기에 내가 그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탁할 만할까. 나 자신의 복력에 자신이 없는 나는 제비들의 신임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만 같았다.
나는 제비들의 편리를 위하여 마당에 줄을 매주었다. 그들을 만류하는 호의를 보이자는 것이다.
과연 그 줄에 올라앉아서 좋아라고 지저귀었다. 나는 기쁨을 누를 수가 없었다.
'不知吾屋是明堂
海燕雙雙飛入樑'
(우리 집이 명당이란 걸 꿈에도 몰랐는데
바다제비가 쌍쌍이 대들보로 날아오누나 - 편집자 주*)
이러한 소리를 썼다.
하루 동안 부지런히 집짓기에 바쁘던 제비들은 웬일인지 이튿날은 역사를 중지하였다. 내 실망은 컸다. 역시 그들은 나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다. 내 집에는 그들이 의타할 만한 복력이 없는 것이다.
그 이튿날도 그들은 역사를 계속하지 아니하였다. 이웃의 W씨는,
"괜히 믿지 마세요. 제비 집은 틀렸소이다."
하고 빈정거렸다.
이튿날도 제비는 일할 생각은 아니하고 내가 매어준 줄에 앉아서 재재거리기만 하였다.
대관절 무슨 변괴가 난 것일까. 줄에 가만히 앉았는 것을 살펴보면 수놈은 연해 암놈을 싸고돌고 지껄이는데 암놈이 몹시 새침하고 있었다. 시무룩하다는 것이 더욱 적당할 것 같았다.
'내외간의 불화인가.'
나는 이런 걱정을 하엿다. 내 이 걱정에는 이유가 없지 아니 하였다. 그것은 하루에 한두 차례씩 난데없는 제비가 한 마리 날아 들어와서는 우리 집 수놈과 한바탕 승강이를 하고 가는 일이다.
우리 수놈이 이 침입자를 멀리로 내어쫒고 돌아와서 아직도 줄에 새침하고 앉아는 암놈의 곁으로 가까이 가나 암놈은 야멸치게도 패끈패끈 몸을 비켜서 수놈의 호의를 귀찮은 듯이 물리쳤다. 그러면 수놈은 하릴없이 줄에 올라앉아서 목을 놓아 한바탕 울었다. 마치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제비집(2) - 정말 다 지었구려
'옳지. 이놈이 남의 계집을 빼앗아왔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 계집이 다른 수놈의 노림을 받고 있다?'
나는 이런 궁리를 하게 되었다. 두 가지가 다 상서롭지 못한 일이었다.
이날 U대사가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우리 집 제비가 하루 U역사를 하고는 사흘째나 쉬고 있다는 사정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덕과 복을 의심하여서 걱정이 된다는 말까지는 아니하였다.
U대사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제비 중에도 그런 놈이 있어. 제 집을 두고도 동넷집에 댕기면서 여기도 집을 좀 지어보고 저기도 집을 좀 짓다가는 내버리고, 그런 버릇을 가진 놈이 있습니다. 아마 그런 놈인가 보오."
하고 줄에 앉아 지저귀는 우리 제비를 바라본다.
"하, 하"
하고 나는 U대사의 말을 재미있게 생각하였다. 그러면 우리 제비가 과연 그런 놈인가. 그렇다면 그는 나를 모욕하는 괘씸한 놈이다. 그러나 역사를 쉬면서도 제비 내외는 우리 집에서 자는 것을 보면 다른 데 집을 두고 우리 집을 장난터로 아는 제비는 아닌 상 싶었다.
혹시 수놈이 딴 계집을 데리고 나온 것일까. 그래서 날마다 찾아와서 한바탕씩 야단을 치고 가는 제비는 그 본서방일까, 또 본여편네일까. 그 어느 편이라 하여도 괘씸한 일이어서 집에 붙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흘째 되던 날 우리 제비들은 역사를 계속하였다.
"야아, 우리 제비가 역사를 한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나는 동네방네 다 듣소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인제 망신살을 벗었다. 제비가 집을 짓다가 그만두고 갔대서야 낯을 들 수가 있는가. 나는 제비들에게 절을 하고 싶도록 고마웠다. 기뻤다.
제비들은 참말 열심히 흙을 물어들였다. 조것들이 지치거나 아니할까 하리만큼 부지런히 흙을 물어다가 대가리를 마치삼아 흔들면서 만 년 가도 무너지지 말라고 힘있게 꼭꼭 박는다.
집은 당일로 한 치 이상이나 올라갔다. 검불이 너슬너슬 달린 것을 제비는 입으로 물어서 나꿔채었다.
"허, 허, 금년에도 큰물 나겠는걸."
하고 T노인이 걱정하였다. 제비 집에 티검불이 너슬너슬 달리면 큰물이 나고 맹숭맹숭하면크게 가문다고 한다.
"금년에는 암만해도 큰물이 올 듯해. 꿩이 산꼭대기에 알을 낳았단 말야."
하고 Y노인이 또 한숨을 쉬었다.
내게는 큰물보다도 또 걱정이 생겼다. 이튿날 또 제비가 역사를 쉬었다. 그러고는 마치 무슨 일난 집 식구들 모양으로 제비들은 후줄근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줄에 앉아서 웅숭그리고 있었다. 대체 또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고.
또 이삼 일을 지나서 다시 제비들은 역사를 시작하여서 이날은 더욱 부지런하게 서두르는 모양이더니 당일로 집을 낙성이 되고 말았다.
"정말 다 지어놓았구려."
하고 괜히 믿지도 말라고 빈정대던 W씨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또 이 삼일을 쉬었으나 인제는 나도 제비들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태연하였다. 그들이 역사를 쉰 것은 마음이 변한 것도 아니요 게으름을 핀 것도 아니요 흙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나는 그것을 모르고 마음을 졸인 것이었다.
제비집(3) - 얌전하고 작은 몸
집이 보송보송하게 마르기를 기다려서 그들은 보드라운 털을 물어들이기 시작하였다. 이제야말로 알을 낳아놓을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수놈은 연해 암놈을 건드렸다. 암놈은 집이 다 되기까지는 몸을 허하지 아니하였으나 인제는 보금자리도 다 되었으니 마음놓고 남편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었다. 내가 암놈을 새침하다고 보고 야멸치다고 보고 남편에게 이심을 품었다고 본 것은 전연히 내 무식에서 나온 오해였다. 암놈이 새침한 것은 남편의 철없음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아이, 알 자리도 되기 전에!"
하고 뿌리치는 것이었었다.
그들은 인제는 새로 간 새끼들이게 벌레를 물어다가 먹이기에 바쁘다. 제비 새끼 모양은 아직 아니 보이나 그 집 밑에 가까이 가면 짹짹 하는 가련한 소리가 들렸다. 아직 털도 안 나고 노란 주둥이만 커다란 보기 흉한 괴물일 것이다. 그렇지마는 제 어미 아비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여운 아들과 딸들이다. 제 자식 못난 줄을 아는 총명은 사람도 가진 이가 없다.
그들은 내외가 같이 집 자리를 찾고, 같이 역사를 하여서 집을 짓고 알을 낳는 것은 암놈이지마는, 안기도 내외가 번갈아 하고 새끼가 까면 벌레를 잡아다가 먹이는 것도 둘이 다 하고 있다.
암놈이 알을 안고 앉았을 적에 수놈은 줄에 앉아서 망을 보며 소리를 하지마는 그러는 동안에도 연해 집 있는 쪽을 돌아보고 가끔 집에 날아가서는 암놈이 무사히 있는 것을 보고야 또 줄에 나와 앉는다. 옆에서 보기가 애처로워서 차마 못 할 만큼 애를 쓰고 있다. 우리 조상 네가 제비에게 집자리를 빌려주고 그들에게 무한 애정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인가 한다.
새끼를 둔 제비가 가장 무서워할 것이 뱀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고양이도 그의 원수다. 뱀으로 보면 갓 깐 제비 새끼는 참새 새끼와 아울러 가장 탐나는 밥일 것이지마는 고양이도 어지간히 이런 것을 좋아하는 식성이다.
동넷집 어떤 할머니가 와서 고양이가 제비를 잡아먹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
밤에 방문을 열 때에 불빛에 놀라서 처마 밑에서 자던 어미 제비가 떨어진 것을 마침 옆에 있던 고양이가 덥석 집어먹었다. 그 이튿날부터는 아비 제비 혼자서 벌레를 물어다가 새끼들을 먹이고 있었다.
둘이서 물어와도 넉넉지 못한 것을 혼자서 대자니 저도 힘들고 새끼들도 배고플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삼사 일 후에 아비 제비는 어디서 후처를 얻어왔다. 후처도 남편과 함께 전실 자식을 먹이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에 새끼 한 마리가 집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튿날 또 한 마리가 떨어져 죽은 새끼의 배를 갈라보았더니 가시 돋고 단단히 엉겅퀴 열매가 하나씩 뱃속에 들어 있었다. 제비 계모가 전실 자식을 죽이는 약이 아마 이것인가 보다고 할머니는 웃지도 않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날마다 찾아와서 헤살을 놓는 그 제비가 년인지 놈인지 미상하나 필시 무슨 악의를 품은 놈인 것 같아서 염려가 되었다. 어미 아비가 다 나가고 없는 틈에 들어와서 새끼를 어떻게 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여 나는 가끔 제비집을 바라본다.
아직도 대가리를 내놓지 못하는 것을 보면 새끼들은 무척 어린 모양인데, 이것들이 어버인지 남인지도 몰라보고 철없이 원수가 주는 독약이나 받아먹지 아니할까. 아마 이러한 걱정은 나보다도 제 어미 아버지가 더 할 것이다. 대체 그놈은 제 집도 배우도 없는 놈이란 말인가. 벌써 남들은 새끼를 다 깠는데도 혼자 돌아다니며 헤살꾼 노릇만 하고 있으니 그놈의 소갈머리는 어찌된 것인가.
제비들 속에는 언제부터 어찌하여서 악이 생겼는고, 그렇게도 얌전하고 작은 몸을 가지고도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는 것이 사람과도 같아라.
그러나 누가 무에라 하더라도 우리 제비는 선량한 제비다. 그들은 정식 부부요, 또 자녀를 사랑할 줄 아는 어버이다. 나는 그들은 몇 대조 조상 적부터 선량한 혈통을 가지고 오는 제비라고 믿는다.
도적 제비도 아니요, 남의 집에 헤살을 놓으러 다니는 난봉 제비도 아니요, 수놈은 군자요 암놈은 숙녀인 제비라고 믿는다. 나는 이 제비의 자손이 더욱더욱 번창하고 더욱더욱 착하게 되어서 작게는 제비 종족을 건지고 크게는 일체 중생을 건지는 가문이 되기를 바란다.
-정해 유월 십칠 일 사릉에서
여름의 유머
- 일명 소가 웃는다
(1) - 어딜 비 맞고 갔다오슈?
보는 마음, 보는 각도를 따라서 같은 것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극치에 달하면 같은 세계를 하나는 지옥으로 보고, 다른 이는 극락으로 보고 또 다른 이는 텅빈 것으로 보는 것이다.
농촌의 여름도 그러하다. 이것을 즐겁게 보는 이도 있고 괴롭게 보는 이도 있고 또 고락이 상반으로 보는 이도 있다. 어느 것이 참이요 어느 것이 거짓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의 태도와 그가 보는 각도에 다라서 변하는 것이다. 여름의 농촌을 유머의 마음으로 유머의 각도에서 보는 것도 한 보는 법일 것이다.
초복을 앞둔 어떤 날, 선선한 아침이었다. 나는 소를 개울가에 내다 매고 방에 앉아서 뒤꼍 옥수수에 붉은 솔이 늘어진 것이 꼭 등에 업힌 어린애와 같다고 보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그것이 어린애 같았다. 옥수수 대는 어린 것이 잠이 깰세라 하고 고이고이 업고 있었다.
달리아 자줏빛, 보랏빛, 원추리꽃의 노란빛, 호박꽃, 오이꽃도 노랗고, 인제는 벌써 옛날이거니와 복숭아꽃, 살구꽃도 붉거나 분홍이었다. 꽃들의 이런 빛과 처녀나 새 아기들의 분홍 치마 노란 저고리나 다 같은 뜻이라고 생각하고 빙그레 웃고 있을 때에 삼각산과 불암산이 차례로 스러지고 문재 봉우리에 뽀얗게 비가 묻어 들어왔다.
"저 건너 갈뫼봉에
비가 묻어 들어온다.
우장을 허리에 두르고
기심매러 갈까나."
는 언제나 들어도 우리의 농촌 정조다.
비는 소리를 내고 왔다.
'소!'
나는 개울가에 맨 소를 생각하였다. 이 비를 맞혀도 좋을까. 이렇게 선선한데. 소를 금년 처음 맨 나는 소의 습성을 잘 알지 못하였다. 여름비를 좀 맞는 것이 좋을 것도 같고 찬비를 맞는 것이 고통일 것 같기도 하였다. 그의 코 안에 꿰인 조상들이야 비도 맞고 한뎃 잠도 잤겠지만 수백 대를 외양간에서 살아온 그는 조상 적 기운을 많이 잃어서 찬비에 못 견딜지 모른다.
나는 마침내 소를 끌어들이기로 결심하고 대단히 큰일이나 하러 가는 사람 모양으로 빗발을 뚫고 긴 방죽을 걸어서 개울가로 갔다. 소는 시름없이 풀을 뜯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았다. 말은 못하나 반가운 것이었다.
나는 말뚝을 뽑고 바를 사려들었다.
"이랴!"
하고 소를 끌려다가 보니 비는 그치고 말았다. 어느 틈에 동쪽 하늘은 훤하게 열렸다. 나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하늘을 휘둘러보고는 싱거운 듯이 웃었다. 그러고 도로 말뚝을 박아놓고 집으로 향하였다. 소는 한 번 고개를 들어서 나를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이웃 벗이 내 꾀죄죄 흐르게 젖은 꼴을 보고 빙글빙글 웃으며,
"어딜 비 맞고 갔다오슈?"
하고 물을 때에 나는 말없이 웃었다.
강아지와 소와는 의좋은 사이는 아니다. 강아지라고 다 그런지는 모르지마는 우리 집 놈은 소를 못 견디게 구는 것으로 큰 재미를 삼는다. 소가 외양간에 들어오면 우리 강아지 오요는 소 곁으로 달려가서 한바탕 앙앙거리고 짖는데 소는 우선 그것부텀이 싫어서 머리를 내어두르고 발을 구른다.
그러면 강아지는 더욱 신이 나서 앞으로 뒤로 배 밑으로 뱅뱅 돌며 짖기도 하고 무는 시늉도 한다. 그래도 소는 커단 체지(體肢)에 한참은 눈을 껌벅거리고 참고 있다. 그러나 소가 가만히 참고 있어서는 강아지에게는 아무 재미도 없었다. 강아지는 모든 수단을 다해서 소를 성을 내어놓고야 말 작정이다.
그는 더욱 짖고 더욱 빨리 뛰어 돌아가다가 마침내는 고삐를 물어 나꿔채고 꼬랑지를 물고 늘어진다. 이에 소는 잔뜩 골이 나고 약이 올라서 꼬리를 두르고 발을 구르고 받는 동작을 한다. 그러나 강아지는 좁은 외양간에서 그 체대한 소가 자유로 용맹을 쓸 수 없는 것과, 아무리 받는댔자 제 편이 더욱 민첩해서 얼른 피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소를 못 견디게 굴고 놀려먹는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런 일이 반복되노라면 강아지 발이나 꼬랑지를 소 발에 밟히는 일도 있고 고삐에 매달렸다가 소 이마에 얻어받히는 수도 있다. 그때에 강아지는 깡이깡이하고 우는 소리를 하고 그 우는 소리를 들으면 소는 갑자기 가여운 생각이 나는 모양이어서 얼른 발을 들어주고 또 킁킁 강아지를 맡아준다.
여름의 유머(2) - 포로 된 영웅일지언정
'내가 너를 죽이려는 생각은 아니다.'하는 것과 같은 눈이 된다.
이렇게 한번 되게 혼이 나면 강아지는 외양간에서 뛰어나와서 궁이를 새에 두고 소와 마주보는 위치에 쭈그리고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밟히거나 받혀서 아픈 것이 나을 만하면 강아지는 또 버릇없는 장난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소를 끌고 나가면 강아지도 따라온다. 소에게 풀을 뜯기면 강아지는 또 고삐에 매어달리기, 꼬랑지를 물고 늘어지기를 시작하거니와 그 중에도 가장 소가 화를 내는 것은 강아지가 방금 풀을 뜯고 있는 소 주등이를 슬쩍슬쩍 스치고 연해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소는 이것도 몇 번은 참고 여전히 풀을 뜯지마는 하도 강아지가 성가시게 굴면 그만 눈이 뒤집히는 모양이어서 흥 소리를 치며 강아지를 받는다.
'흥, 네 따위헌테 받힐 낸 줄 알고.'
하는 듯이 강아지는 재빨리 몸을 피해서 얼른 뒤로 돌아 소 꼬리를 물고 네 발을 버틴다. 소는 한 번 한숨을 쉬고는 또 풀을 뜯는다. 좁은 외양간에서나 한번 만나자 하고 벼르는 모양이었다. 우리 소와 강아지는 이 모양으로 벌써 석 달째나 살았다. 그리 의좋은 친구는 아니나 역시 피차에 정이 든 모양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강아지는 유머를 알건마는 소는 그것을 모르는 일이었다.
세퍼드와 포인트의 트기인가 싶은 우리 강아지가 황소를 어리석은 놀림감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오요는 젖 떨어진 지 며칠 아니하여 우리 집에 온 즉시부터도 오줌똥을 잘 가리어서 꼭 울타리 밖에 나갔다.
그런데 우리 소는 여섯 살이나 나이를 먹어서 벌써 어른이건마는 선 자리에서 오줌을 누고 똥을 싸서 자리를 어질러놓고는 그 위에 펄썩 드러누웠다. 그래서 그 커다란 볼기짝과 배때기가 밤낮 온통 똥 투성이였다.
코를 꿰어서 고삐에 얽매우고 외양간에 갇힌 몸이니 뒤를 보러 울타리 밖에까지는 못 나가더라도 한편 구석으로 꽁무니를 돌려댈 수는 있지 아니한가. 그것을 보고 우리 다섯 달 된 강아지가 못난이라고 업신여기는 것은 허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마는 소의 편에서 보면 강아지란 하잘 것 없는 미물이다. 고것이 감히 소의 앞에 버릇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귀엽게 본다면 몰라도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기운으로 보든지 용기로 보든지 소는 능히 호랑이와 싸워서 이기는 맹수다.
불행히 땅 껍데기의 변동으로 독립한 생활을 못하고 사람의 집에 붙어서 사는 신세가 되었거니와 포로 된 영웅일지언정 항복한 노예가 아니란 것은 대대로 콧도리를 꿰인 사실이 증명하는 것이 아니냐.
천하의 소치고는 어느 소 한 마리도 코를 꿰이지 아니하고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비루한 자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소의 기개로 주인을 보고 꼬리를 치고 멀쩡한 어금니를 두고도 사람의 손발을 곱게 핥는 강아지를 볼 때에는 새김질할 때가 아니고도 아니꼬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소는 죽도록 일하여서 사람을 벌어 먹이고도 마침내 떡메로 골사대기를 맞아서 죽어 피와 살을 사람에게 먹히운다. 그러나 사람에게 항복하여 그 귀염을 받는다는 개도 필경은 올가미를 쓰고 혀를 빼어 물지 않는가.
소를 순하다고 하고 어리석다고 하고 말 안 듣는다고 한다. 순한 듯한 것은 단념하고 참는 까닭이다. 어리석은 것은 지혜를 쓸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이려', '어디어' 같은 말을 알아듣는 것만 해도 소로서는 수치다. 훼절이다. 그러나 그것은 최소한도의 양보라고 할까.
강아지와 주인의 집지기가 되고 노리개가 되는 그런 영리함은 소의 겨레가 취하지 않는 바다. 개는 미친 뒤에야 비로소 조상적 위신과 용기를 발휘하지마는 소는 미래 영겁에 포로의 생활을 달게 받을 것이다. 오줌을 어디서 싸거나 똥 위에 주저앉거나 그런 것을 염두에 둘 소는 아니다. 대장부 소절에 구애 않는다는 것이다.
"개는 제 주인을 알아도 소는 몰라본다고?, 흥."
소는 이렇게 코웃음할 것이다. 소는 일찍 어느 사람에게고 충성을 맹세한 일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호의를 보일 때에도 굽실거릴 것도 없는 동시에 비록 심 년 묵은 주인이라도 잘못하면 받아넘길 자유를 보류한 것이다.
소는 불평가다. 더욱이 여름에 그러하다. 일은 고되어 목은 멍에 터지고 등은 채찍에 부었다. 적이 한가하게 되어 개울가 풀판에 누워 쉴 만하면 물 것이 덤빈다. 생물 치고 물 것이 없는 것이 없지마는 아마 물 것 단련을 가장 많이 하는 이는 소일 것이다. 적어도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낮에는 등에와 여러 종류 되는 파리에 뜯기고 밤이면 모기에게 뜯긴다. 시험조로 여름날의 그의 몸을 보라. 온통 두드러기 천지니 이것은 다 물 것에 피를 빨린 자국이다. 또 사람으로 이르면 이나 벼룩이 같은 물 것이 털 하나에 하나씩이라 할 만하게 들어박혀서 그를 가렵게 하는 것이다.
여름의 유머(3) - 어디를 가면 대수냐
그가 천지에게 받은 물 것 막는 법은 꼬리와 목을 둘러서 몸에 붙은 파리 따위를 쫓는 것, 또는 피부를 푸르르 떨리는 것이 있고 가려울 때에는 파리의 떼를 이루 다 쫓으려면 소의 머리와 꼬리를 비행기의 프로펠러 모양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내어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인 운명으로 돌리고 꾹 참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눈에 수십 마리, 몸에는 수백 마리 큰 놈, 작은 놈, 중간 놈, 파리가 붙어도,
'그래, 마음껏 뜯고 빨아라.'하고 한숨을 쉬이며 새김질을 하고 있다. 호랑이 사자라도 받아넘길 뿔과 기운이 있건마는 뿔에도 안 걸리는 파리 떼, 모기 떼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는 입정한 증 모양으로 고개를 번쩍 들어서 멀리 지평선에 피어오르는 저녁 구름 봉우리를 바라본다.
그는 콧도리와 물 것이 없고 부드러운 풀 많은 개울가를 가진 극락세계를 염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원한의 빚을 받아내고야 말려고 찐득찐득하게도 덤비어들고 파고드는 작은 원혼들은 그에게 극락의 꿈을 허하려 아니하여 저녁때가 될수록 채무 지불기일의 최후의 일각을 다투고 그 아프고도 가렵게 하는 주둥이를 살에다가 박는다.
소는 참다 참다 못하여 벌떡 일어나서 네 굽으로 땅을 차서 흙바래를 구름과 같이 일으키며 영각을 하고 날뛴다. 고삐를 끊어지거나 콧도리가 튕겨지거나 땅아 부서져라, 하늘아 무너져라 하고 그는 눈을 부릅뜨고 미친 듯이 몸을 들었다 놓는다. 거기는 무서운 분노와 저주가 있다. 그러나 천지는 그가 반항하기에는 너무나 컸다. 그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혀서 땅에 돋은 풀을 뜯고 인과의 사슬이 한 마디 한 마디 넘어가기를 기다릴 수밖에는 없다.
그렇다고 그에게는 전혀 부드러운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병아리가 그의 누은 등에서 걸어다닐 때에 그는 귀여움을 느껴서 꼬리로 쳐버리지는 않는다. 어린애가 제 고삐를 갈 때에 그는 버티고 서려 아니한다. 암소를 볼 때에 일어나는 애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직 굴레를 아니 쓴 송아지가 엄매엄매 부를 때에는 그는 귀를 솔깃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부드러운 감정을 쏟을 데도 없고 때도 없다. 까만 옛날 엄마의 젖에서 떨어져서 소장수의 손에 들어가서부터는 평생이 고독의 생활이다. 외양간에 누웠거나 들에 나가서 풀을 뜯거나 언제나 혼자다. 만일 우레 번개 치고 폭풍우 날치는 날 그가 개울가에 고개를 번쩍 들고 혼자 누워 있는 양을 본다면 그것이 그의 평생을 상징하는 대표적 경계이다.
그는 수도자다. 그는 참는 바라밀을 닦고 있다. 어쩌다가 인자한 사람을 만날 때에 그는 자비의 설법을 듣는다. 그 설법은 말로가 아니요 행동으로다. 가려운 데를 긁어줄 때에, 풀 많은 데로 옮겨 메어줄 때에, 땀을 흘리며 꼴짐을 지고 들어오는 이를 볼 때에 그는 자비의 빛을 보고 몸과 마음이 누긋해진다. 이 빛에 비추어진 세계는 물 것 등살에 네 굽을 놓아 흙바래를 일으키거나 무지하게 때리고 사정없이 부려먹는 주인을 받아넘길 때의 세계와는 단 모양의 세계다.
암소에게는 새끼를 떼이는 슬픔이 있거니와 황소에게는 그것은 없다. 그 대신에 새끼에게 젖을 빨리고 그 배틀한 몸을 핥아주는 낙이 없다.
한여름 일도 끝나면 가난한 주인은 대개 소를 팔아버린다. 이래서 육칠 월이면 소 값이 뚝 떨어진다. 굴레며 장식 있는 판자끈이며, 풍경이며, 이런 것은 다 벗기고 짚으로 꼰 굴레에 허름한 고삐를 갈아매면 소는 제가 이 집을 떠나는 줄을 안다.
어른 주인은 주판만 생각하지마는 아낙네 주인과 아이들은 정들인 소를 떠나보내는 것을 섭섭히 여겨준다. 소는 또 한 번 인정이라는 것을 느껴서 마음이 느긋해진다. 그렇지마는 다시 돌아보도록 안 잊히는 주인집, 편안한 외양간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다.
그는 주인이 이끄는 대로 끌리고 모는 대로 몰려서 장으로 간다. 어떤 집 어떤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고? 뚱뚱한 푸줏집 주인의 손으로 팔려간다면 앞날이 며칠 안 남은 것이요, 만일 어떤 농가로 간다면 김장밭 보리밭부터 갈기를 시작할 날이 또 며칠 안 남았을 것이다.
'어디를 가면 대수냐.'
하는 듯이 팔려가는 소는 앞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다. 그는 이 동네에 들어오던 때와 다른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것뿐이다. 그는 맨몸으로 왔다가 맨몸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마 다시 이 동네나 이 주인의 손에 돌아올 기약은 없을 것이다.
쌍둥이 할아버지는 언제나 일터에 나갈 때에 테 없는 헌 맥고모를 쓴다. 그 만든 제로 보아서 전쟁 전 것이 분명하다. 비가 오나 볕이 나나 늘 테 없는 맥고모다. 멀리서 보아도 이것으로 그를 알아볼 수가 있다. 그는 수염이 노랗고 살은 까맣고 술을 좋아하나 주정하는 일이 없는 노랑이다. 그는 자수 성가하여 금년에도 논과 밭을 샀다. 이웃간에서는 인색하고 이약하다는 평을 듣는다.
박 생원은 일하러 다닐 때에는 테없는 중절모를 눌러쓴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그는 이것을 쓴다. 뙤약볕에 연장질을 할 때에도 그의 머리에는 이 테 없는 중절모가 있다. 그는 여름에 쓰려고 겨울 동안 이 겨울 모자를 싸두는 모양이다.
박 생원은 아들이 없는 늙은이다. 그는 술은 입에도 아니 대나 담배는 좋아하고 땔나무를 할 때에도 푸른 가지는 아니 건드린다. 이웃간에 착한 노인으로 이름이 났다. 그는 마치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사람의 모양으로 도무지 욕심이 없고 또 근심도 없다.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낯이다. 지금 세상에 이런 사람을 존경할 사람은 많지 않지마는 그를 시비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착한 이가 왜 못살까."
사람들은 이렇게 그를 애석하는 한편으로 착한 자에게 복이 온다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근거로 삼는 모양이다. '못산다'는 것은 '잘산다'의 반대로 가난하단 말이다.
여름의 유머(4) - 평화는 내가 지는 데서
'재봉이'는 서양 여자의 겨울 모자와 같은 모자를 쓰고 다닌다. 그는 아직 삼십 전 청년이다. 떡 벌어진 어깨에 제 손으로 걸었다는 지게를 지고 한 편 팔꿈치에 작대기를 비스듬히 끼고 벙글벙글 웃는 그의 모양은 청춘의 힘의 화신이다. 머리에 얹은 서양 부인의 모자도 용사의 투구와 같아서 퍽 어울린다.
그는 무슨 일이나 다 잘하고, 해도 남의 세 갑절은 한다. 자갈을 채판에 퍼담는 일을 할 때에는 장정꾼이라야 삼백 원을 번다는 데 그는 능히 오백 원 어치를 하고도 석양에 길게 목청 좋은 소리를 뽑는다. 어디서 목청 좋은 소리가 들리거든 보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그가 안재봉으로 알라.
그는 아내와 딸이 있다. 옹솥 하나, 사발 둘, 숟가락 둘로 세간을 난 그는 삼 년 만인 금년에는 오백 평을 샀다.
"작년에 병으로 수술만 안 했으면 밭 천 평이나 샀을 게야요."
하고 웃었다.
임 생원은 무르팍 나간 양복바지를 입고 쇠고삐를 끌었다. 그는 검은 테 있는 말짱한 파나마를 쓰고 비를 맞으며 소에게 풀을 뜯겼다. 마치 발만 벗고 비만 맞으면 농부가 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는 도시에서 쫓겨나서 할 줄 모르는 농사를 해보려는 망계를 내인 늙은이다. 그는 아직 소에게 하는 말을 못 배워서,
"아앗! 아, 안돼!"
이 모양으로 사람의 말을 하면서 쇠고삐에 매달렸다. 소는 한 입 물어뜯은 콩잎을 문 채로 모가지를 길게 빼고 턱을 쳐들었다. 소가 웃는다는 것이다. 소는 파나마를 쓴 그에게,
'네나 내나 딱한 신세다.'
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덕관이 할아버지라는 노인이 흙 묻은 잠방이를 무르팍까지 걷어올리고 찾아왔다. 그는 모자를 쓰는 대신에 깍은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서 마치 아이녀석 같다. 초면 인사를 하고 보니 그가 그였다. 우리 논에 대는 차례가 된 봇물을 대고 돌아만 서면 따돌리던 그 늙은이다. 그의 논에는 어젯밤 밤새도록 대고 난 뒤였다. 그는 도리어,
"내 논에 먼저 대고 당신 논에 대면 피차에 좋을 것 아니오?"
하고 그가 물을 따돌리는 것을 내가 가만두지 않았다고 승강이를 하러 온 것이었다. 이 노인이 왼장을 치고 마루 끝에 올라앉아서 따지는 폼이 대단히 불온하였다.
"아따, 지난 일이야 할 수 있소? 내년부터는 댁 논에 실컷 대신 뒤에 내 논에 떼어 돌려주시구려."
이렇게 나는 말해버렸다. 이 노인과 시비곡직을 따져야 쓸데없다고 나는 생각한 때문이었다. 내 말에 덕관이 할아버지는 입을 딱 벌리고 한참이나 멍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하도 의외여서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또 한 번 같은 뜻의 말을 하였다. 그제야 알아들은 듯이 벌떡 일어나며,
"우리 가십시다. 내가 영감을 꼭 술을 한잔 대접해야 하겠소. 만나보니 좋은 양반이구먼그래. 자 갑시다."
하고 나를 끌다시피 하였다.
나는 이 동네에 온 후로 처음 술집에를 가서 잔뜩 이 늙은이에게 막걸리 대접을 받았다. 그는 거나해서 신세타령까지 하였다. 한 아들은 서울 어느 회사에 고원으로 다니고 손자는 좌익의 한 투사였다. 작은 손자는 금년에 국민학교를 졸업하였고, 자기는 사무 한신으로 술이나 먹고 다니면 고만일 팔자였다. 입으론 이렇게 말하건마는 이 늙은이 노는 때는 없었다. 가래질도 나가고, 특별히 가물 때 물싸움에는 맹장이었다.
"논 이웃도 이웃이라는 거요. 우리 사이좋게 지냅시다."하고 말끝을 번쩍번쩍 드는 말투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에 말하였다.
'평화는 내가 지는 데서 온다.'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혼자 웃었다.
"지고 살자."
하는 것이 썩 훌륭한 인생관인 것 같았다. 아내가 들으면,
"또 못난 소리 하오."
하고 펄쩍 뛸 소리다.
-정해 칠월 십칠 일 사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