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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loined Letter

에드거 앨런 포우


소개 :

프랑스 궁정의 한 귀부인이 매우 소중한 편지를 도둑맞는다. 눈을 뻔히 두고 상대방이 그걸 가져가는 것을 분명히 지켜보면서도 주변 상황 때문에 꼼짝 못하고 당한 것이다. 편지를 훔친 D 장관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그 편지를 이용해 횡포를 부리고, 편지를 되찾으려는 온갖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사건을 넘겨 받은 G 경시총감은 뒤팽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근대 추리문학의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포우가 뒤팽이라는 명탐정의 원형을 제시하는 작품.

[작가 소개]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 1809-1849) : 미국의 시인, 평론가, 단편소설 작가. <모르그가(街)의 살인(1841)> <검은 고양이> 같은 소설에서 신비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애너벨 리> <갈가마귀(1845)> 같은 시 작품으로도 유명하나 우리나라에선 괴기담과 추리소설로 더 알려진 편이다. 오귀스트 뒤팽이라는, 뒤에 셜록 홈즈 등으로 이어지는 명탐정의 모델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 받는다. 


 



18xx년 가을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날 밤이었다. 어두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파리 포브르 생제르망 듀노 거리 33번지 4층에 있는 친구 뒤팽의 서재에서 나는 뒤팽과 함께 마주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1시간 이상 침묵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숨이 막힐 정도로 가득찬 담배 연기로 두 사람 모두 기절한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밤, 초저녁부터 화제가 된 사건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즉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과 '마리 로제'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 방문이 열리면서 경시총감 G가 들어왔다. 우리는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우연히 찾아온 것을 보고 약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가 때 마침 찾아온 것이 무척 반가웠다. 그는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인물은 아니지만, 가끔 퍽 재미있는 일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 주었고, 또 그날 밤은 몇 년 만에 그를 만나는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G가 방으로 들어오자 뒤팽은 램프를 켜려고 일어섰다. 그러나 G는 단지 놀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건에 대해 뒤팽의 의견을 들으러 온 것이었다. 뒤팽은 램프를 켜려다 말고 입을 열었다.

"그런 얘기는 어두운 곳에서 들어야 어울리지."

"자네는 또 묘한 말을 하는군."

경시총감 G는 뒤팽을 보며 말했다. 그는 자기가 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건 묘하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G는 항상 묘한 일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맞았어." 뒤팽은 G에게 파이프와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사건인가? 사람이 죽은 사건 따위는 이젠 질색이야." 나는 적이 궁금해져 G에게 물었다.

"이번엔 살인 사건이 아니야. 사건 자체는 아주 단순해. 우리 경시청 단독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만... 어쨌든 무척 색다른 사건이어서, 이런 사건이라면 뒤팽이 듣고 싶어할 것 같아서 찾아온 걸세."

"단순하면서도 색다른 사건이라고?" 뒤팽이 물었다.

"사실 사건 자체는 아주 단순하지만 지금으로선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그래서 우리 입장이 무척 난처해."

"그것 참, 일이 너무 쉬워서 때문에 도리어 어렵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절대 그렇지 않아! 그런 소린 하지 말라구." 경감 G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아니, 자네 말만 들으면 그런 것 같은데?" 뒤팽이 흥미를 느끼는 듯 이렇게 물었다.

"너무나 명백한 사건일 거란 말이지? 하하..." G는 배를 움켜 쥐며 웃었다. "뒤팽, 이제 그만 웃기게."

"그러면 어디 사건 내용을 직접 이야기해 보지." 내가 G에게 말했다.

G는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기면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더니, 의자에 푹 몸을 파묻고 입을 열었다.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말하기 전에 하나 약속해줘야겠어. 이 일은 절대로 비밀을 지켜야 해. 만약 이 이야기가 새어 나간다면 나는 경찰에서 쫓겨나게 돼."

"자, 어서 얘기나 하지." 난 이야기를 재촉했다.

"비밀을 지킬 수 없다면 처음부터 그만두는 게 나아. 하여튼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절대 비밀이라는 걸 명심하게. 실은 궁중의 중요한 서류가 도둑을 맞았어. 우리는 그걸 훔친 범인을 알고 있어.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있고, 그 서류가 지금 범인 손에 있다는 것도  분명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서류 자체의 성격이 그래. 또 그 서류가 범인의 손을 떠날 경우 당연히 생겨날 일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렇지. 범인이 그걸 사용할 일이 하나 있는데, 아직 그렇게 하지 않고 있으니까."

"좀더 자세하게 말해주게"

"그 서류를 가진 사람은 어떤 권력, 그것도 아주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게 돼."

"아직도 잘 모르겠군..."

"아직 모르겠다고? 다시 얘기하지. 그 서류의 내용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고급 관리의 명예에 직접 관련되어 있어. 그래서 그 서류를 가진 사람은 아주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거야."

나는 G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아무리 유리한 입장에 선다 해도, 그걸 가진 사람을 뻔히 알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아무리 그 서류를 이용하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 범인은 바로 D 장관이네. 그 사람은 무슨 짓이나 서슴없이 해치울 수 있는 인물 아닌가? 옳은 일이건 아니건 가리지 않는 대담한 인물이다 보니, 두려울 수밖에 없는 거야. 서류를 훔쳐낸 방법도 교묘하고 대담하기 짝이 없어. 사실 그 서류는 어떤 편지인데, 궁중의 어떤 부인이 내실에 혼자 있을 때 받은 것이지. 그 부인은 편지를 받자 곧 봉투를 열어 읽고 있었지. 그 때 마침 고급 관리 한 사람이 찾아왔어. 부인은 편지의 내용을 보이고 싶지 않아 감추려 했지만, 때가 늦어 할 수 없이 겉봉을 거꾸로 해서 책상에 놓고 손님을 맞이했지."

"이 때 마침 공교롭게도 D장관이 또 그 부인을 찾아왔지. 그는 재빠르게도 그 편지의 내용을 짐작했어. 그는 모양이 똑 같은 다른 봉투를 꺼내 읽는 척하다가 편지를 슬쩍 바꿔치기한 것일세. 그러고 나서 다시 공무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하다가 물러나왔지. 이것을 부인은 두 눈 뜨고 다 보고 있었지만, 편지 내용을 알리고 싶지 않은 다른 관리 앞이라서 그만 꼼짝 못하고 편지를 잃어버린 거야."

"거 참 대단하군." 뒤팽은 나를 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그 편지는 요 몇 년 사이에 지극히 위험한 정치적 목적에 조금씩 이용되고 있네. 궁중에서는 하루 속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편지를 되찾으려고 난리를 피웠지만 끝내 허탕만 치고 말았어. 그래서 결국 나에게 지시가 떨어진 거야."






"정말 D장관의 솜씨가 대단하군!"

"그 자를 너무 칭찬하지 말게." G는 얘기를 계속했다. "그 편지는 아직도 분명 D장관의 손에 있네."

"그 편지가 몰고 올 결과를 볼 때, 아직 그 권력을 완전히 이용하는 건 아니란 얘기겠지?"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나도 D에게 그 편지가 있으리란 확신을 갖고 편지를 찾기 시작했지. 먼저 D 장관의 저택을 샅샅이 뒤졌어. 놈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게 가장 힘들었지. 특히 주의할 것은, 만약 D 장관이 우리가 하는 일을 눈치챈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거야."

"하지만 자네에겐 그런 건 문제가 아닐 텐데? 파리 경찰은 그런 일을 많이 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지. 그래서 나는 실망하지 않았네. 게다가 D 장관이 밤에는 곧잘 집을 비워서 다행이었지. 그 집에는 하인도 많지 않은데다 또 그들은 D 장관의 방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나에게는 파리의 어떤 방이나 서랍이든지 열 수 있는 열쇠가 있지. 그래서 나는 지난 세 달 동안 D의 집을 샅샅이 뒤졌네. 내 명예가 걸린 데다, 말하긴 거북하지만 현상금도 두둑이 걸려 있지. 그래서 나는 열심히 편지를 찾아봤는데, D 장관도 어찌나 빈 틈이 없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잠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문득 G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편지가 D 장관의 집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지는 않을 거야." 뒤팽이 말했다. "그 편지의 가치는 어느 때 이용될지 모른다는 것, 즉 필요하면 당장 꺼낼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점으로 봤을 때 D 장관의 손에 있는 것은 확실해. 또 언제든지 없앨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편지는 틀림없이 D의 몸에 무척 가까운 곳에 있을 거야."

"그 말이 맞아." G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강도로 가장하고, D를 습격해 몸을 몽땅 털어 봤지만 역시 헛수고였네."

"물론 헛수고지." 뒤팽이 자신있게 말했다. "D 장관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렇게 중요한 편지를 몸에 지니면서 강도를 미리 예방하지 않을 리 없지."

"물론, 그는 바보가 아니야. 아니, 오히려 시인에 가깝겠지. 바보와 시인의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니까." G가 말했다.

뒤팽은 말했다. "그런데 그보다 자네의 수사 방법을 좀더 자세하게 들려주지 않겠나?"

"음, 그러지. 나는 생각 끝에, 이것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네. 그러고는 수사를 천천히 진행시켰지. D 장관의 집을 하나하나 일일이 조사하기로 했다네, 꼭 일 주일이 걸렸어. 방마다 돌아다니며 서랍과 가구, 선반 등을 깡그리 조사했어. 특히 가구에 어떤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 자로 일일이 재 가며 조사했네. 다음엔 의자를 모조리 조사했지. 쿠션은 바늘로 골고루 찔러 보았고, 책장은 위에 덮은 목재까지 뜯어 보았네."

"왜?"

"책상이나 식탁 같은 것에 뭘 숨기려면 으레 판자를 뜯어내고 거기다 구명을 파서 숨겨두는 경우가 많지. 그래서 나는 책상이나 식탁뿐 아니라, 침대 다리도 조사했네."

"하지만 그런 구멍이라면 겉만 두드려 보아도 알 수 있지않을까?"

"아닐세. 물건을 숨길 때는 솜으로 빈 곳을 채우기 때문에 두드리기만 해서는 알 수 없어. 더구나 절대 소리를 내선 안 되지 않나?"

"그렇다면 책장의 판자를 뜯어 내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또 편지 같은 물건은 램프 심지처럼 똘똘 말아서 책상이나 식탁, 의자 다리 틈에 숨겼는지도 모르쟎아."

"그런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방법이 있네. 도수 높은 확대경으로 비춰 보면 모두 꿰뚫어볼 수 있지. 조금이라도 상처가 난 흔적이 있으면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찾아낼 수 있어. 조금이라도 틈이 있거나, 티끌이라도 묻어 있으면 곧 알 수 있네."

"거울 유리 뒤쪽도 조사해 봤나? 이부자리와 커어튼, 마루에 까는 양탄자는?"

"남김없이 조사했지. 그런 식으로 집 안을 모두 조사했지만 허사였어. 그래서 다음에는 저택 전체를 조사했네. 그 집 전체를 몇 구역으로 나누어 번호를 붙여놓고, 3 센티미터씩 확대경으로 조사했지. 뿐만 아니라 그 옆집까지도..."
 
"옆집까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주 대단한 작업이었겠군!"

"물론 보통 일이 아니었지."

"그러면 집 둘레의 땅도 조사했단 말인가?"

"응, 다행히 땅에는 블록이 깔려 있어서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블록 사이 이끼를 살펴보면 움직인 자리를 금방 알 수 있으니까."

"D 장관의 서류와 책들은?"

"책은 한 장 한 장 다 펼쳐 보았지. 이런 경우 대개 책을 흔들어보고 말지만, 나는 한 페이지씩 끈기 있게 뒤졌다네. 그래도 부족해서 나는 책 겉장까지도 확대경으로 조사해 봤어. 최근에 손 댄 자국이 있었다면 절대 놓치지 않았을 거야. 새로 들여온 책은 일일이 바늘로 찔러 보기도 했으니까."

"양탄자 밑의 마루는 어때?"

"그것도 확대경으로 다 조사했지."

"벽은?"

"벽도 당연히 조사했지!"

"지하실은?"

"물론 조사했지!"

"그렇다면 자네 추측이 틀렸나 보군. 자네 짐작과 달리 편지는 집 안에 있는 게 아닌 모양인데?"

"실은 이제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G는 힘없이 대답했다. "뒤팽!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집 안을 더 철저히 조사해야지." 뒤팽은 대답했다.

"이제 그 일은 아주 질려버렸어. 편지가 D 장관 저택에 없다는 것은 분명해.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네. 그렇지만 나로선 다시 한 번 조사하는 것 밖에 해볼 수단이 없겠지."

뒤팽은 어이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G, 자네는 그 편지의 특징을 자세히 알고 있나?"

"물론이지!" G는 수첩을 꺼내어, 편지의 겉모양과 속모양의 자세한 특징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얼마 동안 멍청하게 앉아 있던 G는 맥이 빠진 듯 힘없이 돌아갔다. 나는 전에 그가 그토록  실망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한 달쯤 지난 어느날, G가 다시 찾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잠시 세상 이야기를 화제로 올렸다. 그러나 나는 그가  왜 또 뒤팽을 찾아왔는지 궁금해 먼저 말을 꺼냈다.

"여보게, G. 그 편지는 어떻게 되었나? D 장관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일찌감치 단념해 버린 건가?"

"실은 뒤팽 말대로 다시 한 번 그 집을 샅샅이 뒤져 봤어. 하지만 역시 허사였네."

"그런데 그 편지에 걸린 현상금은 얼마인가?"

"아주 대단한 금액이야. 확실한 걸 여기서 말하긴 어렵지만, 이것만은 내가 분명히 밝힐 수 있어. 즉, 나에게 그 편지를 주는 사람에겐 내가 서명한 자기앞수표 5만 프랑을 당장 내줄 수 있네. 사실 그 편지는 최근 더욱 중요해져서, 현상금도 두 배로 뛰었어. 그러나 금액이 세 배로 늘어난다고 해도 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알 것 같네."

"그런데 G.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자네가 충분히 노력한 것 같지는 않아. 약간 방향을 바꿔서 좀더 적극적으로 노력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어떻게? 무슨 방법 말인가?"

"가령 이 문제에 대해서 남의 의견도 좀 고려하는 게 어떨까? 하하하... 자네 아바네시(19세기 영국의 유명한 학자)의 얘기를 알고 있나?"

"아바네시?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있나? 그 따위 시시한 이야기는 그만 두게."

"어쨌든 내 말을 들어보게. 옛날에 아주 인색한 부자가 있었는데, 이 부자는 어찌나 구두쇠였던지, 병도 공짜로 치료하려고 마음 먹었지. 그래서 어느날 의사와 만나,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다가 슬쩍 자기 병의 증세를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꺼냈지. '선생님이라면 그런 병에 무슨 약을 처방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은거야. 그러나 그 의사는 한 수 위였지. 그는 '어떤 약을 권하느냐고? 그야 의사의 진찰을 받으라고 권하겠네'라고 대답했어."

"나는 지금 남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네. 그리고 어떤 사례라도 할 생각이야." G는 좀 당황한 것 같았다. "방금 말하지 않았나? 이 문제가 해결되도록 도와주는 사람에게 당장 5만 프랑을 내놓겠다고 말이야."

"그렇다면..." 뒤팽은 잠시 말을 중단하더니 서랍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당장 이 자리에서 5만 프랑을 내놓을 텐가? 이 수표에 서명만 하면 당장 그 편지를 내주겠네."

나는 깜짝 놀랐다. G는 더 놀란 모양이다. 그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의자에서 벌떡 일 어났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멍하게 벌리고, 눈알이 금세 튀어나올 것처럼 서 있었다.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뒤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정신을 차리고 5만 프랑 수표를 떼어 뒤팽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의심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뒤팽은 수표를 조심스럽게 접어 지갑에 집어 넣고 나서, 편지 한 장을 책상 서랍에서 꺼냈다.

G는 다시 한번 놀랐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받아 읽어보더니 미친 듯 문으로 달려갔다. 뒤팽이 5만 프랑의 수표를 요구했을 때부터 G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G가 밖으로 뛰어나가자, 그제서야 뒤팽은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파리의 경찰관들은 누구나 쓸모 있는 사람들이지. 아주 유능하고 끈기가 있고, 지혜롭기도 하고, 또 빈틈 없기로 유명하지. 그뿐인가? 그들은 경찰관으로서 필요한 지식도 충분히 갖추고 있네. D장관 저택을 수색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주었을 때, 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어. 문제는 그게 어디까지나 그들 능력의 범위에 그쳤다는 점이었어."

"그 능력의 범위란 게 뭐지?"

뒤팽은 말을 계속했다. "그의 방법은, 그 방법 자체만으로는 최고였어. 그 최고의 방법을 그는 거의 완벽하게 해냈어. 그 편지가 그들의 수사 능력 범위 안에 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편지를 찾아냈을 거야."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이번 상대에게는 들어맞지 않았어. 그는 사건을 너무 복잡하게 봤거나, 그렇지 않으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서 실수를 한 것이네. 이번 경우는 초등학생만도 못하게 어리석게 군 셈이야."

"내가 알고 있는 한 초등학교 꼬마는 짝수냐 홀수냐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아주 잘하는 걸로 주변에서 유명했지. 이 게임은 자갈 같은 것을 손에 몇 개 쥐고서, 그게 짝수인지 홀수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이지. 내가 알고 있는 그 아이는 자기 학교의 어떤 아이와  게임을 해도 반드시 이겼어. 그런데 거기에는 한 가지 비결이 있었네. 그 아이가 그걸 설명해 주더군."

"그 비결이란 단지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는 것에 불과했어. 아주 어리석은 아이가 '짝수냐 홀수냐?' 하고 물었을 때는, 덮어놓고 한 가지 답을 댄단 말일세. 그게 틀렸더라도 다음부터는 꼭꼭 일아 맞히게 되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원리지. 즉 처음에 저 어리석은 상대방이 이겼으니까, 두 번째도 먼저 쥐었던 수를 쥘 것이란 말일세. 이런 식으로 해서 맞혀 나간단 말야."

"그런데 상대방이 좀 똑똑한 놈일 때는 우선 이렇게 생각해 본다네. '내가 처음에 댄 수가 틀렸으니, 두 번째는 반드시 같은 수를 쥘 거라고 일단 생각하겠지. 하지만, 약은 체하는 저 놈은 이 방법이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해서 결국 처음에 쥐었던 수를 다시 손에 쥘 거야.'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맞추는 거야."

"나는 그 아이에게 다시 물었지. '상대방이 얼마나 똑똑한지를 어떻게 알 수 있지?' 그랬더니 그 아이는 서슴없이 '상대방이 지혜로운가, 바보인가,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그리고 상대방이 지금 생각하는 것을 알려면 우선 자신의 표정을 최대한 상대방의 표정과 비슷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내 마음에 떠오르는지 살펴봅니다.'라고 대답하더군."

"그런데, 이쪽의 아는 힘과 상대방의 그것을 일치시킨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상대방의 아는 힘을 정확하게 잰다는 말이 아닌가?"






"바로 그거야. G는 첫째 이 일치시키는 힘이 없었고, 둘째 상대방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걸세. 가령 누군가 감춘 물건을 찾는다고 하세. 찾는 사람이, 자기가 그런 경우에 감추었을 지점을 찾는다면 실패할 것이 뻔하지. 즉 그들은 상대방을 너무 단순하고 쉽게 생각하고 덤빈 거야. 다시 말하면 그들이 한 조사는 원리의 융통성이라는 것이 없었단 말야."

"사건이 생길 때마다 고작 그들은 자신들이 원래 써오던 수법의 범위를 약간 넓히는 정도에 불과해. 그나마 아주 큰 보수가 주어질 경우에나 그런 적용이라도 하는 걸세. 결국 중요한 원칙을 무시하다 보니, 실패를 거듭하는 것이지. 이번 편지 사건만 해도 그들은 지금까지 해오던 수사 방법을 전혀 바꾸지 않고, 기껏 구멍을 뚫어본다, 바늘로 찔러 본다, 두드려 본다, 확대경으로 살펴본다는 따위, 즉 여느 때 쓰던 수사 방법의 규모를 좀 키웠을 뿐이네."

"다시 말하면 G는 오랜 경험 즉, 누군가 무엇을 숨기려면 의자 다리나 책상의 널판지 등에 감춘다는 식의 경험에 근거해 수사 방향을 지레짐작한 거야. 그렇게 수사를 진행했으니, D 장관 같은 고수에게 통하지 않았을 게 뻔하지. 또, D 장관이 바보 아니면 시인이라고 섣불리 단정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었어."

"D 장관이 시인이라는 말은 사실인가?"

"그의 형제들이 모두 문필가로 유명하다는 것은 사실이야. 그러나 D 장관은 미분학에 관한 책을 낼 만큼 수학에는 뛰어나지만, 시인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나 만일 D 장관이 수학자에 불과했다면, G가 나에게 수표까지 주지는 않았을 거야. 그는 수학자인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지. 그래서 나는 그러한 특징을 중심으로 방법을 생각 해봤지. 그는 행정관이고 또한 대담한 성격이지. 그런 사람이라면 보통 방법으로 편지를 감출 리가 없다고 봤지."

"그는 경찰이 무슨 일을 할 것인지도 미리 짐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네. 밤에 그가 집을 비우는 것도 실은 경찰에게 편지가 집 안에 없다고 믿게 하기 위한 것이야. 그래서 나는 D 장관이 G보다 훨씬 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지. D 장관은 오히려 경찰의 눈이 그다지 쏠리지 않을 곳, 말하자면 아주 허술한 곳을 택했을 거라고 생각했지. 자네도 기억하겠지만 G가 우리를 처음 찾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사건이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도리어 어려워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 그 때G는 웃어댔지만 말이야."

"응, G는 자네 말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지."

"물질계 역시 정신계와 비슷한 점이 얼마든지 있어. 이 두 가지의 비교는 토론의 주제로도 자주 쓰이곤 하지. 자네는 거리의 상점 간판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눈에 잘 띈다고 생각하나?"

"글쎄, 그런 문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럼 이런 놀이는 어떤가? 지명 찾기 말일세. 지도를 펴놓고 한 사람이 도시나 강의 이름을 부르면, 다른 사람이 그걸 찾아내는 놀이 말이야. 이 놀이를 처음 하는 사람은 대개 제일 작은 글씨로 쓰인 지명을 고르지. 하지만 익숙한 사람은 반대로 지도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걸쳐 쓰인 커다란 글자를 골라 부르지. 너무 큰 글자는 오히려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지."

"마찬가지로 상점 간판도 너무 크게 써 놓으면 오히려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다네. G는 너무 영리하거나, 아니면 너무 어리석었지. 그래서 그걸 깨닫지 못했어. 즉, D 장관이 편지를 아주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 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찾는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G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나는 D 장관이 대담한데다, 실로 교활한 두뇌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




"따라서 편지를 잘 이용하려면 언제나 자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둔다는 걸 눈치챘어. G가 그렇게 철저하게 조사했는데도 편지를 찾지 못했다는 것으로도 그건 확실해졌네. 그래서 나는 확신을 갖게 됐어. 즉, D 장관은 편지를 깊이 감추지 않고,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장소에 감춘 것이라고 말이야. 그래 나는 이 생각을 확인해 보기 위하여 파란색 색안경을 가지고 D 장관을 찾아갔네."
   
"그는 마침 집에 있더군. 뭔가 짜증스러운 일이 있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어슬렁어슬렁 방안을 거닐더군. 나는 요즘 아주 눈이 나빠져 안경이 필요하다면서 준비했던 푸른 색안경을 썼지. 그리고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척 하면서, 방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어. D 장관 바로 곁에 있는 커다란 책상을 우선 주목해 보았지."

"책상 위에는 악기, 책이 대여섯 권, 그리고 여러 가지 편지와 서류 따위가 너절하게 놓여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특별한 것은 없었지. 그래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어. 그 때 문득 두꺼운 종이로 만든 값싼 편지함을 발견했어. 조그만 놋쇠 손잡이에 때묻은 푸른 리본이  드리워진, 서너 칸으로 나뉘어진 편지함이었지. 거기에 편지가 하나 들어있는데, 아주 더럽고 구겨진 데다 가운데가 찢어져 있었어. 마치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찢어버릴까 하다가 생각이 달라져 그만둔 것처럼 말야."

"그 편지에는 커다란 검은 봉인이 찍혀 있고, 'D장관에게'라고 눈에 띄는 큰 여자 글씨체로 씌어 있었지. 나는 이 편지를 보고 바로 문제의 편지임을 알아차렸네. 겉으로 보기에는 G가 일러준 편지의 모양과 딴판이었지. 같은 점은 편지의 크기뿐이었어. 그런데 내가 그게 바로 그 편지라고 단정한 것은, 그 편지가 아주 더럽다는 점이었지. D 장관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거야. 이건 보는 사람이 가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수작이라고 짐작했네."

"더욱 수상한 것은 편지가 꽂힌 장소야. 그야말로 누구 눈에나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는 것,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나는 서슴지 않고 단정할 수 있었지. 나는 D 장관을 상대로 되도록 시간을 끌며, 그가 스스로 열중할 수 있는 문제를 꺼내서 토론했지. 그러면서 편지를 좀더 자세히 관찰했네. 나는 새로운 사실을 또 발견했어. 편지봉투를 다시 이용할 때 흔히 쓰는 방법처럼, 새로 봉인을 하고 이름을 썼더군. 이것으로 나는 문제의 그 편지가 맞다고 확신했지."

"나는 D 장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일부러 금빛 담배 케이스를 테이블에 두고 왔네. 이튿날 아침, 잃어버린 담배통을 찾으러 간 것처럼 나는 다시 D 장관을 찾아가 그 전 날 하던 토론을 계속했지. 그런데 창 밖에서 총 소리가 들리고, 비명 소리와 군중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더군. D 장관은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더군. 바로 그 때 나는 편지함에 있는 편지를, 미리 준비해 간 편지와 살짝 바꾸었네."

"물론 그 편지 모양과 똑같이 만드느라고 고생을 좀 했지. 밖에서 일어난 소동은 소총을 가진 어떤 미친 녀석이 여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총을 쏜 사건이었어. D 장관은 미치광이거나 주정뱅이일 거라며 자리로 돌아왔어. 나는 곧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지. 하지만, 실은 그 미치광이 소동도 내가 돈을 주고 시킨 일이었지."

"그런데 왜 가짜 편지까지 만들어야 했나? 처음 갔을 때 당당히 빼앗아도 됐을 텐데..."

"D 장관은 목숨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야. 또 그 집에는 주인을 위해 싸울 하인이 적지 않아. 만약 자네 말처럼 했다면, 나는 살아 돌아오기 어려웠을 거야. 영원히 행방불명으로 처리되는 또 하나의 파리 시민이 되는 걸세. 그리고 또 다른 목적도 있었지. 정치적인 측면에서, 나는 편지를 도난 당한 궁중의 귀부인 편이라네."

"편지 도난 사건 이후 일 년 이상 장관은 그 부인을 자기 마음대로 휘둘러 왔지. 그러나 이젠 정반대 상황이 됐어. 장관은 아직 편지가 없어진 것을 모르고 있어서, 편지가 자기에게 있다고 믿고 여러 가지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할 게 뻔해. 그렇게 되면 D는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고 장관 자리에서도 쫓겨날 수밖에 없겠지."

"대신 놓고 온 편지에 뭔가 써 두지 않았나?"

"글쎄, 그냥 백지를 넣는 것은 좀 쑥스럽더군. 언젠가 D 장관이 비엔나에서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일이 있지. 그 일이 떠오르더군. 그 때 나는 웃으면서 '언젠가는 꼭 이 일을 갚아줄 겁니다.'라고 말했거든. 또 이번 일을 누가 했는지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백지 가운데 이렇게 몇 줄 써 넣었지."

'그토록 가혹한 음모도 디에스테스에게는 적당한 보응이라네.
아트레우스에게는 비록 걸맞지 않은 일일지언정...'

"이것은 크레비용(프랑스의 극작가)이 쓴 <아트레>라는 연극에 나오는 말이라네."

참고 : 아트레 이야기는 그리스의 전설로서 아트레우스와 디에스테스 형제의 비극을 그린 것이다. 디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내를 유혹했는데, 아트레우스는 복수를 하기 위하여 디에스테스의 아들을 죽여 그 고기를 디에스테스가 먹도록 한다는 이야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