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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홉
 

[소개]

'작은 우주'라는 극찬까지 받았던 체홉의 또 다른 농민 소설 <골짜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체홉 농민 소설의 쌍벽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골짜기>가 인생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해부를 그 핵심에 깔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보다 풍속화적인 요소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당시 러시아 농민층의 삶에 대해 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묘사를 담고 있다. 또한 분석하고 메스를 들이대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농민들의 삶을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 소개]

안톤 체홉(Anton Chekhov, 1860-1904) :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단편 작가, 극작가로서 5백여 편의 단편/중편 소설과 수십 편의 희곡을 남겼다. <벚꽃 동산> <세 자매> 등은 오늘까지도 전세계 연극계의 최고봉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해방 농노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톨스토이가 '귀족 출신 농사꾼'으로 불린 것과 대조적으로 '농노 출신의 귀족'으로 불리기도 했다.





모스크바 '스라비얀스키 파자르' 호텔에서 급사 생활을 하던 니콜라이 치키레제프는 병이 들었다. 다리가 마비되어 걸음이 부자유스러운 탓에 하루는 복도를 걷다가 걸음을 헛디뎌 접시를 든 채 그대로 넘어지고 만 것이다. 접시에는 푸른 콩과 햄 요리가 담겨 있었다. 그는 별 수 없이 일자리를 그만두어야 했다.

저축했던 돈과 아내가 갖고 있던 돈까지 모조리 치료비로 날려버리고 이제는 아침 저녁 끼니 이을 일이 걱정이었다. 또 마냥 놀고 있기도 지루했다. 그래서 그는 별 수 없이 고향에라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병을 앓더라도 집에서 지내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지내기도 나을 것이다. 첫째, 옛말에도 내 집에서는 담벼락이라도 쓸모가 있다지 않던가.

그는 해질 무렵에 고향인 주코버에 도착했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고향은 무척 살기 좋고 편안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상 고향 집에 돌아와 보고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은 어두침침하고 좁은데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함께 온 아내 오리가와 딸 사샤는 그을음과 파리가 늘어붙어 새까매진 뻬치까를 기가 막힌 듯 쳐다보고 있다. 그 커다란 뻬치카*는 좁은 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슨 파리가 이렇게 많을까! 뻬치카는 한쪽으로 기울었고 벽의 기둥도 틀어져서 마치 오두막 전체가 금방 쓰러질 듯한 모습이었다.

*방 한쪽에 흙이나 벽돌을 쌓아 밑에 불을 피우는 러시아식 벽난로. 그 위에 올라가 누울 수도 있다.

아랫목이라고 할 수 있는 한쪽 구석에는 성상(聖像)이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병에서 벗겨낸 레테르나 신문에서 오려낸 사진 따위가 붙어 있었다. 그것이 이를 테면 이 집의 벽지 구실을 하는 셈이다. 가난, 가난! 어른은 아무도 집에 없었다. 모두 밭으로 추수하러 간 것이다.

얼굴이 더럽고 머리가 지저분한,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애가 뻬치카 옆에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계집애는 사람들이 들어와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뻬치카 밑에는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부지깽이에 몸을 비벼대고 있었다.

"야옹아, 야옹아." 사샤가 불러보았다. "야옹아, 야옹아."

"우리집 고양이는 귀가 먹었어." 계집애가 말했다.

"어쩌다 그렇게 됐니?"

"얻어맞아서 그런 거지, 뭐."

니콜라이와 오리가는 한 눈에 이 집의 사는 형편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부는 서로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잠자코 보따리를 내려 놓고 거리로 나갔다. 그 오두막집은 마을 끝에서 세 번째 집으로 제일 낡고 초라해 보였다. 다른 집들도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맨 끝의 집은 양철 지붕을 올리고 창문에는 커튼까지 쳐 놓았다.

울타리도 없이 외따로 서 있는 그 집은 이 마을의 음식점이었다. 집들은 한 줄로 나란히 서 있었다. 마을 전체가 조용하고 호젓했다. 집집마다 마당에 심어놓은 버드나무, 백양나무, 소나무 가지들이 담 밖으로 뻗어나와 뭔가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농가들이 서 있는 뒤쪽에는 냇물이 있었다. 냇물 쪽으로 급하게 비탈이 진 붉은 진흙 땅에는 여기저기에 검은 돌들이 박혀 있었다. 그 비탈에는 도자기 굽는 인부들이 여기저기 파 놓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과 돌들 사이로 좁은 길이 구불구불 뻗어 있다. 갈색과 붉은 색의, 오지그릇 깨진 조각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 저편으로는 밝은 초록색 벌판이 넓게 퍼져 나간다. 평평한 들판은 이미 낫질을 해 놓아서 지금은 그 위를 가축 떼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냇물은 마을로부터 5 베르스따쯤 떨어져 있었다. 냇가에는 풀이 무성하고 그 너머에는 또 넓은 벌판이 펼쳐져 거기에 가축 떼와 하얀 거위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들판 끝은 언덕으로 솟아올라 다시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 마을에는 탑이 다섯 개나 되는 성당과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지주의 커다란 저택이 보였다.

"당신 고향 마을은 참 좋은 곳이네요."

오리가는 성당을 향해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말했다.

"정말 조용하기도 하지!"

바로 그때 저녁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왔다(마침 일요일 저녁이었다). 저 아래서 물통을 나르던 작은 계집애가 그 소리를 듣고 성당 쪽을 돌아다 본다.

"스라비얀스키 파자르에서는 지금쯤 한참 저녁 식사를 하고 있겠군..." 니콜라이는 꿈이라도 꾸듯이 중얼거렸다.

언덕배기 아래 나란히 앉아서 니콜라이와 오리가는 해가 저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금빛과 밝은 보라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냇물과 교회의 창, 그리고 주위를 둘러싼 대기 전체가 부드럽고 온화하게, 그리고 무척 밝게 빛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부드럽고 밝은 모습이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자 가축 떼가 짖어대고 울면서 앞을 지나갔다. 냇물 저편에서는 물오리 떼가 날아왔다. 이윽고 온 누리가 조용해지면서 하늘의 조용한 빛도 사라졌다. 그리고 어두움이 금방 주위에 퍼져 나간다.

이럭저럭 하는 사이에 노인들이 돌아왔다. 니콜라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두 사람은 마르고 허리가 굽은, 이가 빠진 서로 비슷한 나이의 늙은이들이었다. 아낙네들도 돌아왔다. 냇물 건너 지주 댁에서 품팔이를 하는 두 며느리, 마리아와 표쿠라였다. 마리아는 맏형 키리야크의 아내로 아이가 여섯이었다. 병정으로 나간 아우 데니스의 아내 표쿠라는 아이가 둘이었다.

니콜라이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집안 식구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뻬치카 위와 그물 침대 등 구석구석에 득실대고 있었다. 그 크고 작은, 가지 각색의 사람 그림자. 노인네와 아낙네들이 시커먼 빵을 물에 적셔가며 아귀아귀 먹는 모습을 보고 니콜라이는 자기가 이 집에 돌아온 것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잘못한 일이다! 병든 몸으로 손에 돈 한 푼 지닌 것 없이 처자식까지 데리고 이 집으로 돌아오다니!

"그래, 키리야크 형님은 어디 계시우?" 그는 식구들과 인사하면서 물었다.

"장사꾼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단다." 아버지가 대답한다. "산지기가 되었어. 좋은 농사꾼인데, 술이 너무 심해서..."

"돈 벌 위인은 못돼..." 노파도 끈적끈적한 말투로 덧붙였다. "우리집 애들은 죄다 글러 먹었어. 집에 가지고 오는 건 하나도 없고 노상 들고 나가기만 하니 말이야. 키리야크 그 놈은 술을 좋아하지. 하지만 이 늙은이도 어디 술집 가는 길을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아는감? 숨길 것도 없지만, 정말 성모님이라도 화내실 일이란 말이여."


 


그래도 손님이 왔다고 싸모바르를 준비한 모양이다. 차는 비릿하고 퀴퀴한 맛이 났다. 설탕은 누가 씹다가 뱉어놓은 것처럼 거무스레하고 빵을 담은 접시에는 벌레가 기어 다닌다. 먹는 것도 가슴이 메슥거릴 지경이고 듣는 이야기도 괴로운 것들 뿐이다. 언제나 가난과 병 얘기밖에는 없기에 그렇다... 그런데 식구들이 차 한 잔을 채 다 마시기 전에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리를 길게 끄는,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마리아아 - !"

"흥, 키리야크가 온 모양이야." 노인이 중얼거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식구들은 숨을 죽였다. 조금 있다가 또다시 거칠고 길게 꼬리를 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땅속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마리이아아아 - !"

맏며느리 마리아는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뻬치카에 찰싹 달라붙었다. 마리아는 어깨가 떡 벌어지고 미련스럽게 몸집이 큰 여인이었다. 이 못생긴 여인이 얼굴에 공포의 표정을 짓는 모습은 아무래도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그 뻬치카 위에 아까부터 멍청하게 앉아 있던 그녀의 딸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어댔다.

"정신차려, 이 고릴라 같은 것아..." 역시 어깨가 우람하게 떡 벌어졌지만 비교적 얼굴이 반반한 표쿠라가 마리아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설마, 죽이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 거야?"

니콜라이는 아버지로부터 마리아가 산 속에서 키리야크와 함께 지내는 것을 무척 무서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키리야크가 술에 취하기만 하면 그녀를 찾아와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그녀를 아주 늘씬하게 두들겨 팬다는 것이었다.

"마리이이야아아 - !" 소리는 이제 바로 문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다들, 제발... 나 좀 제발 살려주... 다들 제발..." 마리아는 마치 찬 물속에라도 던져진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혀 짧은 소리로 애원했다. - "나, 나 좀 살려주우... 제발 다들 날 좀..."

오두막집 안의 애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놀라 사샤까지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주정뱅이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키가 크고 턱수염이 시커먼 농사꾼이 겨울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방으로 들어왔다. 램프 불빛이 흐릿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더욱 무섭게 보였다. 바로 키리야크였다.

키리야크는 제 아내 쪽으로 걸어 가더니 느닷없이 주먹으로 그녀의 얼굴을 정통으로 후려갈겼다. 그녀는 얻어맞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찍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원, 이런 창피한 일이 있나, 원 세상에 이렇게 창피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이냐." 노인은 뻬치카 위로 기어 오르면서 중얼거렸다. "원 세상에 손님들 앞에서... 저런 천벌을 맞을 놈이 있나!..."

그러나 할멈은 등을 구부리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표쿠라 역시 그저 그물 침대 속의 어린애를 흔들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제서야 키리야크는 모두가 자기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리아의 손을 움켜쥐고 문간으로 끌고 갔다. 거기서 한층 더 무섭게 보이려는 듯 짐승처럼 으르렁대다가 그는 언뜻 손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었다.

"어, 왔구나..." 그는 아내를 놓아주면서 말했다. "내 친동생이 처자식을 데리고 이렇게... "

그는 취해서 시뻘겋게 핏줄이 선 눈을 부릅뜨고 비틀거리며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흠, 아우가 처자식을 데리고 부모네 집으로 왔다 그 말이지... 그러니까 그 모스크바에서 말이여, 거 임금님이 계시는 서울 모스크바 말이여... 저 모든 거리의 어머니 되시는 모스크바에서 말이여... 이거 참말 미안허구먼..."

그는 싸모바르 옆의 평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요란하게 후루룩거리며 차를 들이마셨다... 거의 열 컵 가량이나 차를 앉은 자리에서 더 마시더니 그는 평상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코를 골기 시작했다.

모두들 잠자리로 기어 들어갔다. 니콜라이는 병든 사람이라는 이유로 노인과 함께 뻬치카 위에서 자게 되었다. 사샤는 마룻바닥에서 잤다. 오리가는 다른 아낙네들과 함께 헛간으로 갔다.

"형님,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그녀는 마리아와 함께 나란히 마른 풀 더미 위에 누우며 말했다. "운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저 매사에 참는 것이 제일이에요. 성경에도 써 있잖아요... 누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도 치게 하라구요... 그러니 형님이 참으세요."

그녀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마치 노래라도 부르듯이 모스크바 얘기와 거기서 자기네들과 사귀던 집안들 얘기, 식모로 생활하던 때의 얘기 따위를 들려주었다.

"모스크바엔 말이에요, 돌로 만든 굉장히 큰 집이 있어요..." 그녀는 이야기했다.

"교회도 도대체 몇 개나 있는지, 셀 수도 없구요... 큰 집에는 나리님들이 살고 있지요. 훌륭하고 정말 신기한 그런 나리님네들 말이에요."

마리아는 모스크바는커녕 제가 사는 마을의 읍내 동네에조차 가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말 그대로 무식 그 자체였다. 성경 구절 하나 아는 게 없었다. 심지어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렇게 말할 줄조차 몰랐다. 그들과 조금 떨어져 앉아서 얘기를 듣고 있는 표쿠라 역시 무식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두 사람 다 오리가가 하는 얘기를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했다.

두 사람 다 자기 남편을 끔찍이 싫어했다. 마리아는 키리야크가 무서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고, 그가 집에 와 있으면 치를 떨며 무서워했다. 몸에 찌든 보드카와 담배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옆에만 있어도 골치가 지끈지끈 쑤셨다. 남편이 없어서 쓸쓸하지 않느냐고 표쿠라에게 묻자 그녀는 씹어 뱉듯이 대답했다.

"흥, 그까짓 자식!"

아낙네들은 얼마 동안 더 지껄여대다가 마침내 조용해졌다.

공기가 으스스해진데다 헛간 부근에서 이따금 닭이 요란하게 울어대는 바람에 사람들은 잠을 깨곤 했다. 밖이 파르스름하게 밝아오면서 새벽빛이 벌써 문 틈으로 비쳐 들고 있었다. 표쿠라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그녀가 맨발인 채로 어딘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리가는 교회에 갔다. 마리아와 함께였다. 작은 길을 따라 풀밭으로 내려가면서 두 사람은 즐거웠다. 오리가는 이 한적한 시골이 마음에 들었고, 마리아는 이 손 아래 동서에게 아주 친밀한 기분을 느꼈던 것이다.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 커다란 매가 한 마리 풀밭 위를 졸린 듯 낮게 날고 있다. 냇물은 묵직하게 흐리고, 여기 저기 안개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냇물 건너 저편 언덕 위에는 벌써 아침 해가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성당의 건물은 번쩍번쩍 빛나고 지주 댁 마당에는 주둥이가 하얀 까마귀가 요란하게 우짖고 있다.

"할배는 괜찮은데 말이여." 마리아가 얘기를 꺼냈다. "할매가 잔소리가 너무 많어. 그래서 노상 말다툼이 끊이질 않는다네. 오는 사육제 때까지는 빵을 남겨둬야 하는데, 벌써 마을 술집에서 밀가루를 사와야 하는 형편이여. 그걸 놓고 할매는 또 화를 내고 야단이여. 너희들이 소처럼 처먹어서 그런다나!"

"글쎄, 형님! 그저 참아야 한다니까요. 성서에도 있잖아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모두 내게로 오라구요..."

오리가는 노래하듯 목소리를 빼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걸음걸이는 순례자처럼 빠르고 바빠 보였다. 그녀는 매일 복음서를 읽었다. 마치 사제라도 되는 것처럼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이다. 그 내용은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신성한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이 솟구칠 정도로 감동했다.

그녀는 성경의 '그러므로' 또는 '그 때까지'라는 표현들을 마치 영혼이 달콤하게 얼어붙는 듯한 목소리로 읊곤 했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고 성모를 믿고 성도들을 믿고 있다.

또한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독일 사람, 집시, 유태인일지라도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성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있었다.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재앙이 내린다고 믿었다. 그녀가 그러한 말들을 단순히 입 밖으로 꺼내기만 해도 그녀의 얼굴은 자비롭고 부드럽게 빛났다.

"임자는 고향이 어디여?" 마리아가 물었다.

"블라디미르 군이에요. 하지만 모스크바로 간 지 무척 오래됐어요. 8년 동안이나 거기서 살았으니 말이에요."

두 사람은 냇가 가까이로 갔다. 냇물 저편에 어떤 여자가 옷을 벗고 있었다.

"저거, 우리집 표쿠라 아녀?" 마리아가 그 여자를 알아보고 말했다. "저기 냇물 건너 지주님 댁에 다닌다네. 관리인한테 말이여. 뭐든지 제 멋대로고, 입이 거친 계집이라네... 참말 그렇고 말고!"

표쿠라는 눈썹이 검고 아직 젊은, 처녀처럼 튼튼한 몸매였다. 표쿠라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더니 두 발로 물장구를 쳤다. 물소리가 사방으로 퍼져갔다.

"참말 제 멋대로여! 참말 그렇다니깐!" 마리아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냇물에는 흔들거리는 통나무 다리가 걸려 있었다. 그 아래 투명하고 깨끗한 물 속에 이마가 노란 숭어 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푸른 나무들이 새벽 이슬을 번쩍이며 물 속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날씨는 온화하고 기분은 상쾌하다. 얼마나 아름다운 아침이냐! 이 사람들의 삶 역시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그 가난만 없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무서운 가난만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잠깐만이라도 마음을 돌려 어제 하루 본 일만 생각해도... 온누리에 가득찬 행복의 환상은 순식간에 깨져 버리는 것이다.

두 사람은 교회에 도착했다. 마리아는 문간에 서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8시가 지나서 미사의 종이 울리는데도 의자에 앉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대로 그냥 서서 버티는 것이다.

복음서를 읽을 때쯤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대며 길을 비켰다. 지주 댁 가족을 위해 길을 터주는 것이다. 눈처럼 하얀 옷에 테가 넓은 모자를 쓴 두 소녀와 세일러 복을 입은 소년이 함께 들어왔다. 통통하게 살이 찐 소년의 얼굴은 장미빛이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오리가는 감동했다. 그녀는 한눈에 그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틀림없다고 믿어버렸다. 그러나 마리아는 흰 눈을 치켜뜨고 성이 난 듯한, 음울한 표정으로 그들을 흘끔거리며 노려봤다. 마치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자칫 피하지 못하면 사람을 마구 잡아 죽이는 그런 괴물 말이다.

이윽고 신부가 낮은 음성으로 무언가 소리 내어 읽었다. 마리아에게는 그 소리가 마치 말끝마다 "마리아아야!" 하고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새 손님이 왔다는 소문은 마을에 금방 퍼졌다. 미사가 끝나자 마을 사람들이 오두막집으로 몰려들었다. 레오누이치 집안 사람들도 모스크바에서 남의 집 살이를 하는 친척들 이야기를 들으려 모두 몰려왔다. 글자 나부랭이라도 읽는다는 주코버의 젊은이들은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모스크바로 보낸다. 거기서 으레 급사나 청소부 일을 하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냇물 건너 마을 젊은이들은 모두 빵집 직공이 되곤 한다).

이런 관습은 역사가 꽤 오래 되었다. 이제는 전설 속의 인물이 되어버린 이 마을 농사꾼 출신 루카 이바누이치라는 젊은이가 농노 시대에 모스크바의 어느 클럽에서 식당 책임자가 된 이래 생긴 관습이다. 이 사나이는 책임자가 된 뒤부터 자기 아래 부리는 사람들을 모두 고향 사람으로만 썼던 것이다. 이 친구들은 모스크바에서 조금만 기반이 잡히면 모두 일가 친척들을 불러들여 술집이나 요리 집에 취직을 시켰다.

그래서 이 무렵부터 주코버 마을은 이웃 마을 주민들로부터 종살이 마을이라는 뜻의 하모스카야 또는 호루에프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니콜라이가 모스크바로 보내진 것은 그의 나이 열한 살 때의 일이었다. 당시 '엘미타이주 가든'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던 마토베이 집안의 이반 마카루이치가 일자리를 알선해준 것이다. 그래서 니콜라이는 지금도 마토베이 집안 사람들에게 엄숙하게 말하곤 했다.

"이반 마카루이치는 저의 은인입죠. 저는 그분을 위해 매일 밤낮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만큼라도 사람이 된 것은 모두 그분 덕분이니까요."

"여보게, 이 사람아." 이반 마카루이치의 누이인 키 큰 할멈이 눈물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제 그 사람 소식을 통 들을 수가 없다네.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지난 겨울에는 그분이 오몬에서 일하고 있었지요. 지금은 마침 그분의 대목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어디든 모스크바 교외의 요정에서 일을 하고 있다더군요... 그분도 이제 나이가 드셨지 않습니까? 옛날 같으면 여름철 하루에 10루블 벌이는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어딜 가나 시세가 없어서요! 그래서 그분도 지내기가 힘드실 거에요."

할멈들과 아낙네들은 펠트 신발을 신고 있는 니콜라이의 발과 창백한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니콜라이 오시프이치, 자네도 돈 벌 사람은 못돼! 암, 그렇구 말구!"

모두들 사샤를 귀여워 했다. 그 애는 나이가 이미 열 한 살이었으나 몸매가 작고 가냘픈데다 살이 없어서 언뜻 보기엔 일곱 살 정도 아이 같았다. 햇볕에 그을리고 머리도 제대로 빗지 않아 엉망인, 빛 바랜 속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는 다른 계집애들 사이에서 그 애는 무척 신기해 보였다. 시원한 검은 눈에 머리에 붉은 리본을 매고 살결이 흰 그 아이는 마치 들판에서 막 잡아온 작은 동물 같았다.

"이 애는 벌써 글자를 읽을 줄 안답니다." 오리가는 자기 딸을 자랑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떠벌렸다. "얘야, 이것 좀 읽어보렴." 그녀는 구석에서 복음서를 집어 주면서 말했다. "읽어봐라. 정교를 믿는 분들이 지금 듣고 계시니까 말이야."

복음서는 오래 되어서 묵직한 가죽 표지 모서리가 닳아 말려 있었다. 그 책이 나타나자 이 오두막집 안은 마치 신부라도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사샤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노래하듯이 목소리를 높여 읽기 시작했다.

"그 지나간 다음에 보라, 주의 사자,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오리가는 따라서 읊었다. 그녀는 흥분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집트로 도망가... 내가 고할 때까지... 그... 곳에 머물...라..."

'때까지'란 부분에서 오리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먼저 마리아가 따라서 눈물을 흘렸고 곧 이어 이반 마카루이치의 누이도 울기 시작했다. 할아범은 연거푸 기침을 콜록거리며 이 기특한 손녀에게 뭐 상이라도 줄 것이 없는지 주위를 두루 살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어서 그저 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낭독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감동했다. 그리고 오리가와 사샤를 본 것을 무척 흐뭇하게 여기며 각자 자기 집으로 흩어져 돌아갔다.

축제일이었지만 온 집안 사람들은 하루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손주는 말할 것도 없고 늙은 남편이나 며느리들까지도 모두 '할매'라고 부르는 그녀는 무슨 일이든 자기가 혼자서 도맡아 하려고 했다. 뻬치카 불도 직접 피워야 하고 싸모바르도 자기 손으로 끓이고 밭으로 해 나르는 점심까지 손수 해야 하는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으레 몸은 고되고, 일은 점점 늘어만 간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온종일 누가 무엇을 더 먹지나 않는지, 남편이나 며느리들이 일손을 놓고 게으름을 피우지나 않는지 그런 걱정만 하고 있었다. 어느 때 술집에서 키우는 거위가 샛길로 해서 그녀의 채마 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기라도 하면 그녀는 긴 작대기를 들고 뛰쳐나갔다. 그래서 거의 반 시간 동안이나 쇳소리를 지르며 그녀만큼이나 말라빠진 채마 밭 주위를 뛰어다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느닷없이 까마귀가 병아리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라치면 마당으로 뛰쳐나와 꽥- 꽥- 까마귀 쫓는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통 역정을 내고 잔소리를 했다. 하도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바람에 어쩔 때는 집 밖을 지나가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는 일도 있었다.

늙은 남편에 대해서도 그녀는 부드러운 구석이라곤 털끝 만큼도 없었다. 늘 게으름뱅이라는 둥, 고릴라라는 둥 욕만 퍼부어댔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사실 게을러빠니고, 미덥지 못한 농사꾼이었다. 만약 그녀가 그렇게 늘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챙기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저 뻬치카 위에 눌러앉아 입만 놀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아들을 붙잡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자기 원수들의 이야기며 자기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매일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듣는 사람으로서는 답답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글쎄 말이여..." 그는 두 손을 옆구리에 대고 떠벌린다. "글쎄 말이여... 성 십자가 절기가 1주일쯤 지난 뒤에 말이여, 내가 마른 풀을 한 푼뜨에 30꼬페이카로 팔지 않았느냐 말이여... 요량껏 말이지... 글쎄 말이여... 그게 괜찮았단 말이여...

그런데 말이여, 오늘 아침에 내가 또 마른 풀을 갖고 가려고 그러니깐 말이여... 그것도 내 요량껏 말이지,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는 게 아니란 말이여. 아 그런데 말이여, 마침 그때 술집에서 촌장이 나오더란 말이여, 안티프 세데리니코프 말이지, 그 작자가 나오더니만... 야, 영감, 그걸 어디로 가져가는 거여? 이러면서 내 귀싸대기를 주먹으로 갈기더란 말이여..."

한편 키리야크는 엊저녁에 마신 술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아우 보기도 민망해서 "다 그놈의 보드카 탓이란 말이여. 어이구, 어이구" 이렇게 욱신대는 머리를 흔들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우나 제수씨 모두 예수님 덕분에 용서해달란 말이여, 낸들 좋아서 그 지랄을 하는 줄 아는감..."

축제일이건만 그들은 술집에서 비웃을 사다가 그 대가리로 수프를 끓였다. 점심 때는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아서 오래도록 땀이 솟아나도록 차를 마셨다. 찻물로 우선 배를 채운 다음에 수프를 마시는 것이다. 그러나 비웃은 할매가 잽싸게 감추어 두어서 보이지 않았다.

저녁 때가 되자 비탈 위에서 오지그릇 굽는 사람들이 항아리를 굽기 시작했다. 그 아래 풀밭에서는 처녀들이 둥글게 팔장을 끼고 모여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있었다. 냇물 건너편에서도 아궁이 하나에 불이 지펴지고 처녀들이 노래를 불렀다. 멀리서 들으면 그것은 아주 부드럽고 흥겨운 가락 같았다.


 


술집 주위에서는 농사꾼들이 모여 떠들어대고 있었다. 술이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제멋대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입에 담지 못할 쌍소리를 뱉으며 서로 싸우기도 한다. 오리가는 그 다투는 소리를 듣고 치를 떨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말했다.

“아이구머니나, 하나님이시여…!” 특히 그녀가 놀란 것은 할아범 때문이었다. 욕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내일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처럼 보이는 할아범이 누구보다도 큰 소리로 계속해서 욕을 퍼부어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장의 아이들이나 처녀들은 누구 하나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런 것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부터 그런 소리를 들어와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한밤중이 지나자 냇물의 이편과 저편의 모닥불들은 모두 꺼졌다. 그러나 냇가 풀밭과 술집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남아 떠들고 있었다. 할아범과 키리야크는 곤드레가 되어 팔짱을 끼고 어깨를 맞대고 헛간쪽으로 걸어왔다. 헛간에는 오리가와 마리아가 함께 자고 있었다.

“그러지 마라.” 늙은이가 말렸다.

“그러지 마란 말이여… 그 앤 순한 여자여… 벌 받을 짓이란 말이여…”

“마리이아아…” 키리야크가 소리쳤다.

“그만 두라니께… 벌 받으려고 그러냐… 그 앤 착한 애란 말이여…”

두 사람은 잠시 헛간 옆에 서 있다가 걸어갔다.

“우리네는 들에 핀 꽃이 더 좋다나…”

갑자기 할아범이 높고 잘 울리는 테너로 노래를 불렀다.

“풀밭에서 따는 꽃이 우린 제일 좋다나…”

그리고 가래침을 탁 하고 뱉더니 지저분한 쌍소리를 늘어놓으며 오두막집 안으로 사라졌다.

할매가 사샤를 부르더니 채마 밭 옆에 지켜 서서 거위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시켰다.

무더운 8월 어느날이었다. 술집의 거위들이 뒷길로 해서 채마 밭으로 숨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용히 꺽꺽대면서 술집 옆에서 술 찌끼를 주워 먹느라 바빴다. 다만 숫놈 한 마리만이 할매가 작대기라도 들고 쫓아오지나 않을까 망을 보듯이 목을 길게 뽑고 있었다.

다른 거위들은 멀리 냇물 건너 풀밭에 마치 꽃다발 모양으로 모여서 모이를 쪼아먹고 있었다. 사샤는 채마 밭 옆에 조금 서 있다가 거위들이 오지 않는 것을 보고는 심심해져서 언덕으로 걸어 올라갔다.

사샤는 거기서 마리아의 맏딸 모티카를 만났다. 모티카는 큰 돌 위에 서서 교회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아는 아이들을 열 셋이나 낳았으나 죽지 않고 자란 것은 여섯 뿐이었다. 그나마 모두 계집애들 뿐이고 아들은 하나도 없었다. 큰 애는 이제 여덟 살이었다.

모티카는 기다란 셔츠를 걸치고 맨발로 뜨거운 뙤약볕 아래 서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내리 쪼이는데도 모티카는 그런 건 알 바 없다는 듯 화석처럼 서 있었다. 사샤는 그 애와 나란히 서서 교회쪽을 바라보다 말을 붙였다.

“교회에는 말이야, 하나님이 계셔. 우리들 집에선 남포나 초에 불을 켜지만, 하나님 집에선 빨갛고 파랗고 쪽빛 등불을 켠단 말이야. 하나님은 밤중에 교회 안을 걸어 다니신다는 거야. 성모님과 성자님과 함께 말이야. 쓰윽-쓱, 이렇게 걸음 소리를 내면서… 그래서 교회지기가 무척 무서워한대! 그리고 말이야, 얘…” 사샤는 엄마 말투를 흉내내서 말했다. “그리고 말이야, 세상이 끝나는 날이 오면 교회는 모두 하늘로 올라가 버린대.”

“그럼 저 조, 종도 함께 가는 거야?” 모티카는 한 음절씩 길게 뽑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종도 올라가지. 그리구, 마지막 날에는 좋은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고, 나쁜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서 타게 된대. 그래서 우리 엄마나 마리아 아줌마에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 너희들은 아무에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오른쪽 천당에 가거라. 그러나 키리야크 아저씨나 할머니에겐 말이지, 이렇게 말씀하실 거야 - 너희들은 왼쪽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해. 고기를 먹은 사람도 불 속으로 가야 한단다."

사샤는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말했다.

"하늘을 쳐다보렴. 눈을 깜박이지 말고 말이야. 천사가 보이지 않니?"

모티카도 함께 하늘을 쳐다보았다. 일 분쯤 침묵이 흘렀다.

"보이지?" 사샤가 물었다.

"안 보이는데?" 모티카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보여. 아주 작은 천사들이 많이 하늘을 날고 있어. 날개를 움직이면서... 너무 작아서 모기처럼 보여."

모티카는 잠시 땅바닥을 들여다보며 생각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를 불에 태우게 되니?"

"그럼, 얘는... 불에 태우고 말고..."

그들이 서 있는 돌에서부터 저 아래 밑까지는 푸른 풀에 덮인 밋밋한 비탈이 이어지고 있었다. 손으로 쓸어주고 싶은, 그 위에 뒹굴고 싶어질 만큼 푹신하게 느껴지는 비탈이었다. 사샤는 누운 채 그 아래까지 미끄럼 쳐 내려갔다. 모티카도 뭔가 무척 큰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엄숙한 표정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함께 누워 미끄럼 쳐 내려갔다. 그 바람에 모티카의 낡은 셔츠가 어깨까지 찢어졌다.

"아이, 우스워!" 사샤는 재미가 있는지 소리를 쳤다.

둘이는 한 번 더 미끄럼을 타려고 위로 올라갔다. 바로 그때였다. 귀에 익은,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몸서리를 치며 꼼짝도 못하고 바로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이가 모조리 빠지고 뼈에 가죽만 남은 할매가 짧은 백발을 바람에 휘날리며 긴 장대를 들고 채마밭에서 거위들을 쫓으며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었다.

"망할 놈의 거위 새끼들... 저것들이 캐비지를 몽땅 먹어버렸어! 이 때려잡을 짐승들, 이 쌍놈의 것들아! 벼락이나 맞아 뒈져버려!"

할매는 계집애들을 보자 장대를 팽개치고 나뭇가지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대나무 가지처럼 비쩍 마르고 왁살스러운 손으로 사샤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사샤는 무섭고 아파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숫거위 한 마리가 목을 앞으로 내밀고 걸음마다 궁둥이를 뒤뚱거리며 할머니 옆을 지나갔다. 거위는 마치 할매를 나무라는 듯 소리를 치며 울어댔다.

그 놈이 제 무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이번엔 암거위들이 일제히 그 놈을 환영하듯 울어댔다. - 꿰엑- 꿰에꿱- 꿱꿱! 그러자 할매는 또 모티카를 붙잡고 때렸다. 그러자 모티카의 셔츠가 더 찢어졌다. 사샤는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혀 큰 소리로 울어대면서 엄마에게 이르려고 집으로 달음박질쳤다. 모티카도 따라갔다. 그 애도 울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베이스에 가까웠다.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아 얼굴이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온통 젖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냐?" 둘이서 오두막집으로 들어가지 오리가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머니나, 성모님이시여!"

사샤가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도중에 할매가 큰 소리로 욕을 퍼부으면서 오두막집으로 들어왔다. 표쿠라도 덩달아서 대단치 않은 일을 가지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둘의 고함소리로 오두막집이 떠나가라고 시끄러워졌다.

"그만둬라. 괜찮아." 오리가는 새파할게 질린 사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분은 할머니야. 할머니가 하시는 일로 화를 내면 못써. 별것도 아닌 일인데 뭘 그러니. 이제 됐어. 괜찮다, 괜찮아..."

니콜라이는 - 벌써부터 이 끊임없이 아귀다툼과 석탄 냄새, 그리고 퀴퀴한 악취가 지긋지긋했다. 가난을 경멸하고 미워하고 있었다.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아내와 딸에게 보여주는 것이 창피했다. 그는 두 다리를 난로 위에서 힘없이 늘어뜨린 채 신경질적인 울음 소리를 내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 애를 때리지 마세요. 어머니는 저 애를 때릴 권리가 전혀 없단 말이에요!"

"흥, 네깟 것은 방구석에나 뒹굴고 자빠져 있어! 병신 같은 새끼야!" 표쿠라가 독을 품고 그에게 악을 썼다. "도대체 뭘 빌어먹으려고 너 따위가 여기까지 기어온 거야? 이 밥 벌레 같은 자식아!"





사샤도 모티카도 다른 계집애들도 모두 집안 한쪽 구석에 모여 니콜라이의 등 뒤에 쭈그리고 앉아서 숨소리를 죽이고 표쿠라가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작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집안에 오래 살 희망이 없는 환자가 있으면 누구나 내색은 안 해도, 마음속으로는 한 번쯤 빨리 죽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순간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들만은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한 집안 식구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지금도 계집애들은 숨을 죽이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니콜라이를 바라보았다. 그가 머지 않아 죽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또 가엾어서 동정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니콜라이는 오리가에게 몸을 바짝 기대고 마치 그녀의 보호라도 바라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여보, 오오리야.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집에서 버티지를 못하겠어. 이제는 더 이상 그럴 기력이 없어. 제발 부탁이니 당신이 크라우데야 아브라모브나 처제에게 편지 좀 하구려. 있는 것을 몽땅 팔든지 저당 잡히든지 해서 돈을 좀 보내달라고 해 주오. 우리들이 이 집을 나갑시다. 어이구!"

그는 진저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모스크바를 보고 싶어! 꿈에라도 모스크바를 한 번 보고 싶어!"

해가 저물어 오두막집 안이 어두워지자 입을 뻥긋하기도 귀찮을 만큼 분위기가 우울해졌다. 역정을 내던 할매는 딱딱한 밀기울 빵 조각을 오랫동안 찻물에 적셔가며 우물우물 한 시간 이상 씹어먹고 있다. 마리아는 우유를 짜서 통에 담아왔다. 할매는 그것을 느릿느릿 항아리로 옮겼다.

지금은 성모 승천제의 근신 기간이다. 그래서 아무도 우유를 먹을 수 없다. 그러니 우유가 고스란히 오붓하게 남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할매는 혼자 흐뭇해 한다. 다만 아주 조금만 표쿠라의 아기를 위해 접시에 우유를 따라 놓았다. 할매와 마리아가 항아리를 밖으로 내가자 모티카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접시에 담긴 우유를 할매의 빵 부스러기가 담긴 나무 사발에다 쏟아 부어버렸다.

할매는 다시 돌아와 계속 빵 부스러기를 씹기 시작했다. 사샤와 모티카는 할매를 바라보았다. 할매는 근신 기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이제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둘은 이런 생각을 하며 기뻐했다. 두 아이는 이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누워 자리에 들었다. 사샤는 졸면서 최후의 심판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질그릇 굽는 아궁이 같은 커다란 아궁이들이 불을 내뿜는다. 그 옆에는 소처럼 머리에 뿔이 솟고 온 몸이 시꺼먼 마귀들이 기다란 몽둥이로 할매를 불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마치 할매 자신이 아까 거위를 쫓던 것처럼...

성모 승천제의 밤 열 시가 넘어, 풀밭에서 놀고 있던 처녀와 청년들이 갑자기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마을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위 언덕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처음엔 무엇 때문에 그런 소동을 벌이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불이야! 불!" 아래쪽에서 누군가 절망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불이야!"

언덕 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위쪽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 앞에 무서운 광경이 펼쳐졌다. 마을 끝에 있는 오두막집 하나가 불에 타고 있었다. 짚을 씌운 지붕에서 불기둥이 2미터 가량이나 솟아오르며 타고 있었다. 불기둥이 회오리 바람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분수처럼 사방으로 불꽃을 뿌려댄다. 지붕은 순식간에 완전히 다 불길에 싸여 부지직 부지직 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마을 전체가 이글거리는 붉은 불빛에 휩싸여 달빛조차 어두워진 것 같았다. 땅 위에는 검은 그림자들이 웅성거리고 뭔가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아래에서 뛰어올라온 사람들은 모두 숨이 턱에 차고 몸을 떨며 말도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부딪히고 뒹굴며 갑자기 눈에 들어온 강한 불빛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 서로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더욱 무서운 일은 불길 위로 솟아오르는 연기 가운데를 비둘기들이 날아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술집에서는 불이 난 것조차 모르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손풍금을 켜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세묜 할아범 집에 불이 났다!"

누군가 큰 목소리로 거칠게 소리쳤다.

마리아 네 오두막집은 불이 난 곳과 멀리 떨어진, 마을 끝에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쩔줄 모르고 손을 비비고 턱을 까불고 울어대면서 자기네 오두막집 주위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펠트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왔고 아이들은 셔츠 하나만 달랑 걸치고 불난 곳으로 뛰어갔다.

지서에서도 철판을 두드려댔다. 쟁, 쟁, 쟁...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하늘을 달리고 그 소란스러운 음향은 심장을 조이고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나이 먹은 아낙네들은 성상을 끌어 안고 나와 섰다. 양, 송아지, 암소 따위가 길거리로 몰려나왔다. 사람들이 상자나 양가죽, 나무통을 들어 날랐다.

다른 말들을 물거나 걷어차는 버릇이 있어 말 떼 속에 섞이지 못했던 검은색 숫말이 고삐가 풀려 자유롭게 되자 큰 소리로 울어대면서 마을을 뛰어다녔다. 검정 말은 두 번쯤 마을을 뛰어 돌다가 갑자기 짐마차 앞에 서더니 뒷발로 마차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강 건너 교회에서도 종을 치기 시작했다.

불에 타는 집 주위는 뜨거웠다. 그리고 땅 위의 풀 한 포기까지 샅샅이 보일 정도로 밝았다. 간신히 끄집어낸 상자 가운데 하나에 세묜이 걸터앉아 있었다. 코가 빨갛고 털도 붉은 농사꾼 세묜은 신사복을 걸치고 테 없는 모자를 귀를 가릴 만큼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세묜의 마누라가 기절해 엎드려 있었다.

이 고장 사람이 아닌, 난쟁이처럼 키가 작고 턱수염을 길게 기른 여든 살이나 먹은 노인이 모자도 쓰지 않고 하얀 보따리를 두 손으로 감싸안은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아마 틀림없이 이 불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노인의 벗겨진 대머리를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집시처럼 얼굴과 머리카락이 검은, 마을의 촌장 안티프 세데리니코프가 도끼를 들고 나섰다. 촌장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불타고 있는 집에 달려들어 도끼로 창문을 돌아가며 깡그리 부쉈다. 그는 문 앞의 층계까지 때려부쉈다.

"이봐, 마누라쟁이들... 물을 가져 와!" 그는 소리쳤다. "펌프를 가져 오라구! 빨랑 빨랑!"

방금 전까지 술집에서 떠들어대던 농사꾼들이 펌프를 끌어 내왔다. 다들 취해 있어서 비틀거리며 넘어지곤 했다. 누구나 미덥지 못한 얼굴에 눈물에 고여 있었다.

"이년들아! 물을 가져오란 말이야!"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촌장이 다시 소리쳤다. "빨리 가져오란 말이야, 이년들아!"

아낙네들돠 처녀들이 아래에 있는 샘물쪽으로 달려가서 바께쓰와 물통에 물을 그득 그득 채워서 위로 날라 왔다. 그 물을 펌프에 쏟아붓고는 다시 아래로 뛰어 내려간다. 오리가, 마리아, 사샤, 모티카까지도 나서서 물을 퍼 왔다. 아낙네들과 장난꾸러기 사내 아이들이 펌프를 누르자 호스에서 쉭- 쉭- 하는 소리가 났다. 촌장은 호스 끝을 불타는 집의 문으로 향했다가 창문을 겨누었다가 하면서 손으로 호스 주둥이를 눌렀다. 호스가 더욱 높은 소리를 내면서 물을 뿜어댔다.

"야, 잘한다. 안티프!"

"더 힘껏 해라!"

안티프는 타고 있는 집의 대문으로 들어서면서 소리쳤다 -.

"자, 힘껏 눌러라! 정교(正敎)를 믿는 여러분들, 이런 재난을 당하면 모두 힘껏 나서서 일해야 합니다!"

농사꾼들은 몰려 서서 팔짱을 낀 채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타고 있는 집 주위에는 노적가리, 건초 더미, 헛간, 마른 나무 더미 따위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키리야크와 아버지인 오시프 할아범도 있었다. 둘은 다 한 잔씩 걸쳐서 얼큰해져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만 있는 변명이라도 하듯이 쓰러져 있는 아낙네에게 말했다...

"뭐, 너무 상심 마슈, 아주머니! 이 집은 보험에 들지 않았나요? 뭐 그렇게 울어댈 건 뭐란 말이우?"

세묜은 아무나 붙들고 어째서 불이 났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저 노인네, 보따리를 안고 있는 키 작은 노인네 말이여, 주코버 장군 댁의 일꾼인데... 그 장군 댁에서 요리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말이여... 천국이나 마찬가지란 말이여, 그 자리가... 그런데 저 노인네가 지난밤에 우리 집에를 와서 말이여... '하룻밤만 묵어 가자'고 그러는 거여...

그러길래 재워주기로 하고 둘이서 한 잔씩 걸치지 않았겠나... 마누라는 저 노인네에게 차 대접을 한다고 싸모바르 옆에서 부스럭거리고... 아 그런데 싸모바르를 문간에서 끓이는 바람에 그 불길이 똑바루 지붕으로 치솟아서 짚에 불이 붙었단 말이여... 하마트면 타 죽을 뻔했지. 저 노인네는 모자를 태워버리구, 제기랄..."





이러는 동안에도 철판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강 건너 교회에서도 계속 종이 울렸다. 오리가는 온 몸에 불빛을 받으며 언덕을 위아래로 뛰어다니느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얀 양들이 벌건 색으로 보이고 연기 속을 나는 비둘기들도 불빛을 받아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그녀 귀에 들려오는 소리들이 모두 날카롭게 찌르는 것 같았다.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사샤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 아닐까?

드디어 우르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불타던 집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마치 오늘 밤 안으로 마을 전체가 몽땅 쑥밭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그녀는 맥이 풀려 바께쓰를 내려 놓고 언덕 위에 주저앉았다. 물을 더 이상 퍼 올릴 기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녀 주위 위 아래로 다른 아낙네들도 큰 소리로, 마치 사람이 죽어서 애곡하는 것처럼 큰 소리로 슬피 울어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강 건너 지주 댁에서 관리인과 하인들이 달려왔다. 두 대의 마차에 나누어 타고 펌프를 싣고 달려온 것이다. 그 뒤를 이어 하얀 여름옷의 앞가슴 자락을 풀어헤친 대학생이 말을 달려 쫓아왔다. 아직도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학생이었다.

도끼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아직까지 불타고 있던 대들보에 사다리가 걸쳐지고 다섯 사나이가 거기에 기어 올랐다. 제일 앞에는 아까 그 대학생이 나섰다. 대학생은 얼굴이 빨개져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며 지휘하고 있었다. 불 끄는 데 익숙한 모양이다. 그들은 오두막집을 때려부수고 가축 우리와 싸리나무 울타리, 노적가리 따위는 불에서 멀리 떼어 놓았다.

"저 놈들이 집을 부수지 못하게 해라!" 군중들 가운데에서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부수지 못하게 하란 말이야!"

키리야크가 그 말을 듣고 다른 동네 사람들보다 앞서 험악한 얼굴로 오두막집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지주 댁 하인 하나가 그를 붙잡아 휙 돌려세우더니 턱을 보기 좋게 한 대 먹였다. 와 하는 웃음 소리가 군중들 가운데서 일어났다. 키리야크는 하인에게 한 대 더 얻어맞고는 그 자리에 나뒹굴었다. 그리고는 엉금엉금 기어서 구경꾼들 가운데로 돌아왔다.

강 건너편에서 이번에는 모자를 쓴 어여쁜 처녀 두 사람이 달려왔다. 아마 아까 그 대학생의 누이들인 모양이다. 두 처녀는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불을 보고 있었다. 집에서 끄집어낸 통나무들은 이제 불이 붙지는 않았지만 연기를 엄청나게 뿜어대고 있었다. 대학생은 호스를 들고 뛰어다니면서 이리저리 물줄기를 뿜어댔다. 불타는 나무 때로는 농사꾼들이나 물을 나르던 아낙네들이 물줄기를 뒤집어썼다.

"조루지!" 처녀들이 나무라듯, 걱정이 되는 듯 대학생을 소리쳐 불렀다. "조루지!"

불은 다 꺼졌다. 사람들이 흩어질 무렵에는 이미 날이 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미 날이 새고 있다는 것, 다들 얼굴이 연기에 그을려 창백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 하늘의 마지막 별이 사라질 때쯤에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이기는 하지만...

농사꾼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주코버 장군 댁의 그 요리사 노인네 이야기를 했다. 그 노인네 모자가 타 버렸다면서? 그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서 웃고 장난을 쳤다. 불이 난 것이 마치 좋은 농담거리라도 되는 모양이다. 오히려 이렇게 불이 빨리 꺼진 것이 아쉬운 심정인지도 모른다.

"도련님, 정말 불을 잘 끄시더군요." 오리가는 대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 같은 분이 우리 모스크바에 계시면 참 좋을 텐데... 거기서는 매일같이 불이 나거든요."

"그럼 자네는 모스크바에서 왔나?"

아가씨 가운데 하나가 오리가에게 물었다.

"그렇답니다. 우리 주인 양반이 전에 스라비얀스키 파자르 호텔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리고 애는 제 딸이랍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사샤를 가리켰다. 사샤는 추워서 엄마에게 바싹 붙어 서 있었다. "이래 봬도 이 애는 모스크바 태생이랍니다."

두 아가씨는 프랑스 말로 대학생에게 무언가 얘기를 했다. 대학생은 20 코페이카 은전을 하나 꺼내더니 사샤에게 주었다. 오시프 할아범이 옆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할아범의 얼굴이 갑자기 희망에 찬 듯 밝아졌다.

"나으리, 하나님 덕분에 그래도 바람이 없었습죠..." 그는 대학생을 향해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한 시간 안에 몽땅 다 타버렸을 겁니다요, 나리님, 마나님..." 그는 머뭇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헤헤, 그런데 나으리 새벽에는 무척 춥습니다. 소인도 몸이 얼어붙어서 좀 녹여야 할 텐데... 헤헤, 반 병만 받아 마실 수 있게 해 주십쇼, 나리님... 헤헤."

그러나 대학생은 할아범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오두막집으로 비칠비칠 걸어갔다. 오리가는 벼랑 끝에 지켜 서서 대학생 일행이 강을 건너는 것, 그리고 풀밭을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강 건너편에 마차가 서서, 대학생 일행이 건너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 감동했다. 오두막집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남편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훌륭한 분들이에요. 정말 아름답고... 그 아가씨들은 정말 천사같지 뭐예요..."

"그 빌어먹을 연놈들을 모조리 여덟 조각으로 갈가리 찢어놔야 하는 건데, 빌어먹을!" 반쯤 졸고 앉아 있던 표쿠라가 독이 잔뜩 오른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리아는 스스로 불행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러나 표쿠라는 반대로 지금 하는 이런 생활이 성격에 딱 들어맞는 모양이었다. 지독한 가난, 지저분한 것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귀다툼마저도...

그녀는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먹고 아무 데서나 졸리면 쓰러져 잤다. 집 앞 층계에 구정물을 좍좍 뿌리고 아무 거리낌도 없이 맨발로 그 위로 걸어다니곤 했다. 그녀는 니콜라이와 오리가가 이 집에 온 첫날부터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표쿠라가 그들 부부를 싫어하는 것은 그들이 이 집의 이런 생활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어디 임자들은 과연 무얼 잡숫고 사시는지 한 번 두고 봐야겠네. 어이구, 저 알량하신 모스크바 나리님네들 말이여..." 그녀는 독을 잔뜩 품은 목소리로 이렇게 빈정거리곤 했다. "흥, 어디 한 번 두고 보잔 말이여!"

이미 9월로 접어든 어느 날 아침이었다. 표쿠라가 저 아래에서 물통에 물을 잔뜩 길어서 두 손으로 받쳐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표쿠라는 새벽 찬 바람에 씻겨서 얼굴이 장미빛으로 건강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대 마침 마리아와 오리가는 탁자 앞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얼씨구, 차와 사탕을 잡수신다 그거지?" 표쿠라는 비웃으며 지껄였다. "워낙 고귀하신 귀부인네들은 뭔가 다르다니깐..." 그러고 나서 한 마디 덧붙였다. "흥, 날마다 차를 홀짝거려? 너 주제에 그게 당키나 한 말이여? 지랄맞을! 너무 처먹어서 배지가 터져 나올라... " 그러면서 표쿠라는 오리가를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며 악을 썼다. "이년아, 모스크바에서 늘상 놀구 처먹어서 그렇게 살이 쪘구나! 이 돼지 같은 계집년아!"

그녀는 작대기를 집어들더니 오리가의 어깨를 후려갈겼다. 두 아낙네는 하도 기가 막혀서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그저 하나님 아버지만 부를 뿐이었다. 표쿠라는 그러고 나서 속옷을 빨려고 냇물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렇게 가면서도 계속 집안이 쩡쩡 울리도록 새된 목소리로 계속 오리가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해가 저물었다. 기나긴 가을 밤이 다가왔다. 오두막집에서는 모두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고 있었다. 표쿠라만 그 자리에서 빠졌다. 표쿠라는 강 건너편에 가 있었다. 누에는 근처의 공장에서 받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온 집안 식구가 다 달라붙어도 몇 푼 되지 않아 벌이는 시원찮았다. 한 주일 내내 일해봤자 기껏 20 코페이카 정도 버는 것이다...

"나리님 밑에서 머슴살이 할 때가 훨씬 지내기가 좋았지." 실을 감으면서 할배가 중얼거렸다.

"일을 하고 나서는 먹고 자기만 하면 됐단 말이여. 그런 상팔자가 어디 있겠남, 그래. 점심을 먹고 나서는 스튜와 카샤를 먹고, 저녁에도 스튜하고 카샤가 나온단 말이여! 아, 오이 절임이나 배추 그 따위 것은 배가 불러서 먹지를 못했지. 암, 그렇구 말구! 그래도 그때는 사람들이 법도를 딱딱 지켰단 말이지. 다들 제 분수들을 잘 알고 있었단 말이여!"

하나뿐인 램프에 불이 켜져서 희미하고 무딘 빛을 집안에 비치고 있었다. 누가 램프 앞을 가로막기라도 하면 커다란 그림자가 창문을 가려 오히려 밖의 달빛이 훨씬 더 밝게 느껴졌다. 오시프 할아범은 느릿느릿 쳐지는 말투로 지나간 시절의 얘기를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주로 농노 해방 이전에는 얼마나 즐겁게 살았던가 하는 얘기들이었다.

이제는 이 고장의 생활이 이렇게 비참하고 지루해졌지만, 옛날에는 곤치이와 보르조이, 보스코프 등 멋있는 개들을 풀어서 얼마나 커다랗게 사냥을 하곤 했던가... 사냥이 한창 고비에 이를 때쯤이면 농사꾼들에게도 보드카를 얼마나 흥청망청 뿌렸던가 하는 얘기였다. 사냥한 새는 마차에 실어 모스크바 젊은 주인들에게 보냈다.

그 때에는 나쁜 짓을 한 놈들은 매를 때린 뒤에 토베리의 영지로 보내곤 했다. 그리고 반대로 정직하게 행동한 사람들은 상을 받았다... 할아범은 이런 얘기들을 느릿느릿 늘어놓았다. 할매도 덩달아서 여러 가지 얘기를 꺼냈다. 할매는 온갖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로 옛날 여주인의 얘기를 했다. 그 여주인은 마음씨가 곱고 신앙심이 돈독한 부인이었다.

그러나 그 남편이란 사람은 오입장이 난봉군이었다. 그리고 딸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그렇게 형편없는 사내들과 결혼을 했는지... 하나는 주정뱅이를 남편으로 얻었고, 다른 하나는 보잘 것 없는 장돌뱅이 같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다른 하나는 어떤 사내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 달아났다(실은 그 때 처녀였던 할매도 그 사내의 꼬임수를 도왔던 것이다). 그 세 딸은 모두 자기 어머니처럼 비참해져서 신세 한탄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다가 할매는 옛날 생각에 젖어 찔끔찔끔 눈물까지 흘렸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식구들은 모두 두려워서 부르르 떨었다.

"오시프 영감, 하룻밤만 재워 주시구려!"

키가 작은 대머리 노인이 들어왔다. 쥬코버 장군 댁의 그 요리인, 모자를 태워 버렸다는 그 노인네였다. 그는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더니 나머지 식구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자기도 옛날 겪었던 일들을 여러 가지 생각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니콜라이는 난로 옆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옛날 나으리들 집에서는 주로 무슨 요리를 만들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비프스테이크와 돼지고기 튀김, 그리고 그런 음식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소스와 수프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나이 많은 이 요리사는 무엇이든지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없어진, 오래 전 요리 이름을 늘어놓았다. 가령 소의 눈알로 만드는, '새벽 눈뜨기'라는 요리 따위였다.

"그럼 그 무렵엔 마레샬 돼지고기 튀김 같은 요리는 만들지 않았나요?" 니콜라이가 물었다.

"그런 건 만들지 않았어."

니콜라이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다면 어르신도 별로 대단한 요리사는 못되는 거예요."

계집아이들은 앉거나 눕거나 한 채로 눈도 깜빡이지 않고 어른들이 하는 수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안 가득히 우글거리는 아이들은 마치 구름 속에 천사들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야기라면 무조건 다 좋아한다. 때로는 기뻐서, 때로는 무서워서 한숨을 내쉬거나 몸을 떨거나 파랗게 질리곤 한다. 특히 누구보다도 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준 할매가 이야기를 할 때면 숨을 죽이고 꼼짝도 않고 앉아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모두들 묵묵히 잠자리에 들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흥분했던 늙은이들은 젊었을 때가 얼마나 더 좋았던가 하는 생각을 되새기고 있었다. 젊었을 때의 즐거운 기억... 그것이 어떤 성격의 것이건 간에 그 기억은 사람의 머리에 싱싱하고 감동적으로 새겨지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은 바로 산 너머에 있다. 그 죽음은 얼마나 무섭고 냉혹한 것이란 말인가. 아아, 그따위 것은 차라리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램프의 불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창이 달빛에 비쳐 환하게 드러났다. 정적 가운데서 그물 침대가 흔들거리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든 것이 어쩐지, 우리의 삶은 이제 다 지나갔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렇게 어렴풋이 잠이 든다... 비몽사몽... 이럴 때 대개 누군가 어깨를 건드리거나 뺨에 입김을 불어대곤 한다. 그러면 벌써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몸은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다. 머리 속에는 다시 죽음의 생각이 스며든다.

몸을 한 번 더 뒤척이면 그따위 죽음에 관한 상념 따위는 금방 사라지지만,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 속으로 파고든다. 가난과 먹을 양식, 보리 가루 값이 더 올랐더군...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리 속을 지배해왔던 그런 생각들이다. 귀찮고 괴롭기만 한 이런 상념들이 온통 머리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다 조금 더 있으면 또 다시 우리의 삶은 이제 다 지나갔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그런 생각이 머리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아, 하나님!" 늙은 요리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가만히 창문을 두드린다. 표쿠라가 돌아온 모양이다. 오리가가 일어나서 하품 속에 기도를 섞어 중얼거리며 빗장을 뽑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문을 열어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밖의 찬 바람이 방안으로 불어오고, 문 주위가 달빛에 비쳐 환해졌을 뿐이다. 열어젖힌 문으로 사람의 자취가 없이 호젓한 길거리와 하늘에 걸린 달의 보였다.

"거기 누구여?" 오리가가 물었다.

"나여, 나..."

홀딱 벌거벗은 표쿠라가 문 옆 벽에 바싹 몸을 붙이고 서 있었다. 그녀는 추위에 몸을 덜덜 떨고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서 있었다. 밝은 달빛을 받아 그녀는 창백하고, 환상 속의 여인처럼 아름다웠다. 그 하얀 살결 위에 그려진 달빛과 그림자가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싱싱하고 묵직한 젖통이 두드러져 보였다.

"강 건너에서 나쁜 놈들을 만나 이렇게 옷을 벗겼단 말이여..."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요 모양 요 꼴로 그냥 이대로 온 거여... 울 어매가 낳아줬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여... 빨리 뭐 입을 것 좀 주란 말이여..."

"하여간 일루 들어와." 오리가도 그녀와 함께 떨면서 가만히 말했다.

"늙은 것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단 말여!"

사실 할매는 진작부터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뭐라고 웅얼대고 있었고, 할배도 "거기 서 있는 게 도대체 누구여?" 하고 물었다.

오리가는 자기 속옷과 치마를 들고 나와서 표쿠라에게 입혀 주었다. 그런 다음에 두 여인네는 소리 나지 않게 가만히 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오냐, 바로 너로구나, 우라질 년 같으니라구!" 할매는 누가 들어왔는지를 눈치 채고 화를 내며 투덜거렸다.

"이 우라질 년아, 너 같은 년은 나가서 뒈져 버려... 요 박쥐 같은 년아!"

"괜찮아, 괜찮아..." 오리가는 표쿠라를 감싸주듯이 속삭였다... "걱정 말라니깐..."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 오두막집 사람들은 사실 언제나 한 번 잠을 푹 자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뭔가 귀찮은 일이 생겨나서 그들의 잠을 방해했다. 할배는 잔등이 쑤시고, 할매는 마음속 울화병으로 항상 화를 낸다. 마리아는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은 온몸이 가려운데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깊이 잠든 것이 아니었다. 모두들 부스럭 부스럭 엎치락뒤치락... 한쪽에선 잠꼬대를 하는가 하면 조금 있으면 다른 사람이 물을 마시러 일어나곤 했다.

표쿠라가 갑자기 "헉!"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울음을 안으로 삼켰다. 그리고 울음이 완전히 속으로 잦아들 때까지 천천히 소리를 낮춰가며 가끔씩 흐느꼈다. 강 건너편에서 이따금씩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묘하게도 다섯 시를 친 다음에 다시 세 시를 쳤다.

"아아, 하나님!" 늙은 요리사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창문을 바라보아도 짐작을 하기 어려웠다. 아직 달빛이 비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벌써 날이 다 샌 것인지를... 마리아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마당에서 금방 그녀가 우유를 짜며 "가만 있으라니깐, 요것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매도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두막집 안은 아직 어두컴컴했으나 벌써 이것저것 물건들을 알아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니콜라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일어나서 초록색 궤짝을 뒤져 자기의 연미복을 끄집어 냈다. 그는 그 옷을 입고 창문으로 다가가 옷소매의 주름을 폈다. 다림질한 자국을 만지면서 그는 혼자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 조심조심 다시 연미복을 벗고 잘 개서 궤짝 속에 집어 넣고 다시 드러누웠다.

마리아가 집안으로 돌아와서 뻬치카에 불을 지폈다. 그녀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걸으면서도 비척거렸다. 아마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다. 아니면 어젯밤 노인네들에게서 들은 얘기라도 생각하는 것일까. 그녀는 뻬치카 앞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군시렁댔다...

"아녀, 누가 뭐래도 그래도 자유가 좋지 않냔 말이여!"





나으리가 오셨다 - 마을에서는 경찰지서 주임을 이렇게 불렀다. 그가 언제, 무슨 일로 오는지는 오기 1 주일 전부터 사람들에게 낱낱이 다 알려져 있다. 주코버 마을은 겨우 40세대에 불과했으나 국고와 지방 자치회에 내야 할 돈의 체납액이 무려 2천 루블이나 된다는 얘기였다.

지서 주임은 마을에 들어서자 일단 술집에 들렀다. 그는 거기서 차를 두 잔 '잡수시고는' 걸어서 촌장네 집으로 갔다. 그 집 주위에는 이미 체납자들을 떼를 지어 몰려 주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촌장 안티프는 아직 나이가 젊지만, 어울리지 않게 무척 까다롭게 구는 작자였다. 스스로도 가난해서 세금이 늘 밀려 있는 주제에 마을의 다른 체납자들을 만나기만 하면 들들 볶아대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촌장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이를테면 권력을 자각하며 흡족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겁을 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 때문인지 마을의 모임에서는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여 그의 의견에 무조건 찬성했다.

그는 마을의 길거리나 술집에서 느닷없이 주정꾼에게 달려들어 손을 뒤로 묶어 유치장에 집어넣곤 했다. 한번은 오시프 집안의 할매를 갑자기 붙잡아 유치장에 집어넣고 며칠씩 구류를 살게 한 적도 있었다. 오시프 할아범이 마을 모임에서 욕설을 했다는 이유였다. 할배 대신에 할매를 잡아넣은 것이었다.

촌장은 아직까지 읍내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책이라곤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디선가 몇 마디 어려운 문자를 주워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그 문자를 빼놓지 않고 써먹었다. 농민들은 그가 입밖에 내뱉는 그 어려운 문자의 뜻도 모르면서 그냥 그가 유식하다면서 존경하고 있었다.

오시프가 자기 집 세금 장부를 들고 촌장 집에 갔을 때 지서장은 집 안 상석에 앉아 있었다. 하얀 턱수염을 기른 늙은 지서장은 잿빛 평복을 입고, 구석에 앉아 무언가 서류에 써 넣고 있었다. 집안은 구석구석 말끔하게 치웠고, 벽에는 온통 잡지에서 오려낸 가지각색 그림들을 붙여 놓았다. 성상의 곁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는 전(前) 불가리아 공(公) 바텐베르히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탁자 옆에 촌장인 안티프 세레리니코프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나으리, 이 자식이 낼 것은 백 십구 루블입니다요." 촌장은 오시프 차례가 오자 지서장에게 말했다. "부활절 전에 1루블을 내곤 아직 한 푼도 낸 적이 없습니다."

지서장은 오시프 영감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도대체 이유가 뭐야?"

"네, 그저 용서해 주십쇼, 나으리... 각하님!" 오시프는 사지를 벌벌 떨면서 변명을 시작했다...

"그게 말씀입니다... 아, 작년에 류토레츠키 나리께서 저에게... '오시프, 마른 풀을 내게 팔게나, 마른 풀 말이야...' 이러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팔지 않을 수가 없습죠. 그때 저희 집에는 마른 풀이 백 푸드 쯤 남아 있었걸랑요. 며느리 년들이 들판에 가서 낫질을 하루종일 해서 거둬온 것입죠, 네... 그래서 값을 정했는데요... 뭐 잘못된 것은 전혀 없었는데요..."

그는 촌장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중언부언 중얼거렸다. 곁에 서 있는 다른 농사꾼들을 계속 쳐다보면서 그들이 뭔가 유리한 증언을 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는 얼굴이 벌개진데다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쥐처럼 생긴 눈이 번쩍거렸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그래서 어쩧다는 거야? 도대체 무슨 얘긴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지 않으냐 말이다!" 지서장이 도중에 말을 가로챘다. "지금 내가 너에게 묻는 것은 왜 체납금을 마저 내지 않느냐 하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너희 자식들은 모조리 세금을 체납한 놈들이야. 지금 그 책임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자는 거야, 뭐야?"

"아뇨,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저 제게는 돈이 없어서..."

"각하, 이 자식들 수작은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항상 입에 발린 말로 발뺌을 하려는 것 뿐이니까요." 촌장이 도중에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사실 이 치키리제프 네 집은 빈민 계층에 넣어야 하겠지만, 그 원인은 다른 게 아니고 모두 보드카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게으르기는 이루 말할 수 없죠. 한마디로 도저히 구제불능인 인간들입니다."

지서장은 서류에 뭔가 적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는 부드러운 말투로 오시프에게 말했다. 마치 냉수라도 한 그릇 청하듯 그렇게 나긋나긋한 말투였다.

"이제 그만 돌아가."

지서장은 금방 자기 일을 끝내고 마을을 떠났다. 그가 싸구려 자가용 마차에 몸을 싣는 모습, 쿨룩쿨룩 기침을 하는 모습, 길고 비쩍 마른 얼굴의 표정을 보아도 그가 이 마을의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머리에는 오시프나 촌장, 주코버 마을의 세금 체납자 따위는 아에 들어 있지 않다. 그저 자기 개인의 문제로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가 마을을 떠나 채 5베르스따도 가기 전에 주코버 마을에서는 안티프 세데리니코프가 이미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재빨리 치키리제프 네 집에 쳐들어가 싸모바르를 압수해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 뒤를 할매가 쫓아가고 있었다. 할매는 앞가슴을 다 풀어헤친 채 쇳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못 가져간다! 이 날강도 같은 놈아! 도로 이리 내놓지 못해! 이 순 강도 같은 자식아!"

촌장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발걸음을 크게 띄어 할매와의 거리를 넓힐 뿐이었다. 할매는 허리를 굽히고 숨이 턱에 차서 얼굴 표정을 완전히 일그러뜨린 채 그 뒤를 쫓았다. 머리에 쓴 수건이 어깨로 흘러내리고, 푸른 기운이 감도는 백발이 바람에 헝클어졌다. 그러다 할매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마치 깡패들처럼 두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악을 써댔다. 커다란 목소리로 울부짖는 것이 마치 노래라도 부르는 것 같았다...

"하나님과 정교를 믿는 여러분들! 내 말 좀 듣소! 저 놈이 사람 잡네! 사람을 잡아! 등골을 뽑아가네! 아이구 여러분들! 사람 좀 살리소!"

"이봐 할멈! 할멈!" 촌장이 화를 버럭 냈다. "왜 이 지랄이야! 찢어진 아가리라고 뱉으면 다 말인 줄 알아?"

싸모바르가 없어지니 치키리체프 네 오두막은 더욱 처량하게 되었다. 싸모바르가 없어진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마치 오두막집의 명예라는 게 있고, 그게 누군가에게 박탈되어 모욕과 수치를 당한 것 같은 몰골이었던 것이다. 촌장이 만약 탁자나 의자, 또는 무슨 항아리 같은 것을 가져갔더라면 이렇게 허전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매는 계속 욕설을 퍼붓고, 마리아는 울음을 터뜨렸다. 계집애들도 덩달아 모두 목을 놓아 울어댔다. 할배는 모두 제 잘못이라고 나무라는 것 같아 방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고개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니콜라이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 동안 할매는 그를 측은하게 여겨 무척 잘해 주었고 지금은 그런 생각마저 모두 잊고 그에게까지 삿대질을 해가며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녀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 이건 모두 네 놈 잘못이야! 네놈은 집에 보내는 편지마다 '스라비얀스키 파자르 호텔'에서 매달 50 루블씩 받는다고 떠벌리지 않았더냐? 그런데 집에는 그렇게 조금밖에 돈을 보내지 않았더냐? 겨우 풀칠도 못할 몇 푼 말이야! 그러더니 뭐하려고 이 똥구녘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구석에 돌아왔어? 처자식까지 줄줄이 데리고 말이야! 네 녀석이 죽는 날에는 도대체 무슨 돈으로 장사를 치르란 말이냐?

몰골이 이쯤 되고 보니 니콜라이와 오리가, 그리고 사샤의 처지는 차마 옆에서 지켜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할배는 입맛을 다시더니 모자를 집어들고 촌장 네 집으로 걸어갔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안티프 세데리니코프는 뻬치카 옆에서 뭔가를 땜질하고 있었다. 방안은 석탄 가스가 가득 들어차 역겨운 냄새가 났다. 치키리제프 네 아이들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야위고 지저분한 아이들이 마루바닥 위에 뒹굴고 있었다.

촌장의 옆에서는 촌장의 주근깨 투성이 마누라가 누에고치 실을 감고 있었다. 마누라의 배는 보기 싫게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이 집도 별 수 없이 가난하고, 불행한 집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안티프 혼자만 몸을 단장하고 스스로 잘났다고 으스대고 있는 것이다. 평상 위에는 싸모바르가 다섯 개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할배는 바텐베르히의 초상화에 잠깐 기도를 드린 다음 입을 열었다.

"안티프, 제발 부탁이니, 우리 싸모바르 좀 돌려주우. 이렇게 부탁이오!"

"3 루블을 갖고 오슈. 그럼 당장 돌려줄 테니."

"내게 어디 그럴 여유가 있남? 그러지 말구 좀 봐 달라니깬..."

안티프는 제대로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뻬치카 불꽃이 나란히 놓인 싸모바르에 비쳐 눈에 들어왔다. 할배는 모자만 만지작거리며 어물거리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애원했다...

"그러지 말구, 제발 도루 돌려줘!"

그렇잖아도 검푸른 촌장의 얼굴이 역정 때문에 더더욱 귀신처럼 시꺼매졌다. 그는 오시프 할아범을 돌아다 보면서 꽉 잠긴 목소리로 대꾸했다.

"만사가 다 자치회장의 권한이란 말이여. 오는 26일에 행정회의가 있으니깬, 불평 불만이 있거들랑 그때 와서 서면이나 구두로 제대로 제출하란 말이여!"

오시프 할아범은 촌장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그 말대로 하기로 하고 결국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열흘쯤 지나서 지서주임이 또 다시 마을로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시간 정도밖에 마을에 머물지 않았다. 이 무렵엔 이미 찬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강은 벌써 얼어붙었다. 길이 별로 좋지 않아 사람들은 바깥 나들이를 하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저녁에 이웃 농사꾼들이 오시프 네 집으로 놀러왔다. 그들은 어두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절주절 지껄여댔다. 주일에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 불을 켜지 않았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몇 가지 사건들이 화제에 올랐다.

마을의 몇몇 집에서는 체납금의 담보랍시고 닭들을 압수해갔다. 하지만 읍내 사무실로 보낸 이 닭들은 아무도 모이를 주지 않고 버려두는 바람에 모조리 굶어 죽어버렸다. 양들도 압수해갔는데 여러 마리를 한 데 묶어서 마차에 태워 보냈다. 하지만 들르는 마을마다 마차를 바꾸는 바람에 양들 가운데 몇 마리가 지쳐 뻗어서 죽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지금 오시프 네 집에 모인 사람들은 도대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져보는 중이었다.

"그야 모두 지방 자치회 탓이지 뭐겄어?" 오시프가 말했다. "그 사람들 아님 누구 탓이란 말여?"

"맞어, 맞어. 결국 자치회가 잘못한 거지 뭐여."

모든 잘못은 자치회 탓으로 돌려졌다. 체납금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관리들의 횡포나 심지어 농사가 흉년이 든 것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지방 자치회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그저 부유한 농가 사람들이 자치회 제도에 대해 불만을 품고 떠드는 것을 들은 탓이었다. 그 부자들은 공장이나 상점, 여관 따위를 소유한 사람들로, 지방자치회의 의원으로 나선 적도 있는 치들이었다. 그들이 자기네 공장이나 술집에서 자치회에서 욕을 퍼붓는 것을 농민들은 주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밖에 눈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 하나님이 눈을 내려주시지 않는다... 땔나무를 운반해야 하는데, 길마다 구멍이 패어 있어서 마차가 다닐 수 없고, 걸어 다니기도 곤란했다. 옛날에는, 그러니까 10년이나 20년 전에는 이 주코버 마을의 화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그 시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하나씩 비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나름대로 알고 있는 게 있었고,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훨씬 더 자신에 차 있었다. 노인들은 금 글씨로 인쇄된 칙령에 대한 이야기나 토지 분배, 누군가 새로 사들인 토지, 어딘가에 감춰진 보물 등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그런 말을 할 때면 뭔가 요긴한 것을 가진 사람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주코버 마을 사람들에겐 비밀이란 것이 없어져 버렸다. 그들의 생활이란 것은 누구나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뻔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화제로 올리는 것이란 기껏 가난한 서로의 형편이나, 양식이 부족하다는 얘기, 눈이 오지 않아서 큰일이라는 따위가 되고 만 것이다...

농사꾼들이 주고받던 얘기가 잠깐 끊겼다. 그러다가 금방 누군가 또 체납금 담보조로 뺏긴 닭과 양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러자 다시 그게 누구의 잘못 탓인가가 입에 올랐다.

"자치회 탓이지 뭐여?" 오시프 할아범이 슬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잖으면 도대체 누구 탓이란 말이여?"





이 고장 교구의 중심인 교회는 이 마을에서 12베르스따쯤 떨어진 고스고로바에 있었다. 농사꾼들은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즉 세례를 받거나 결혼식 또는 장례식이 있을 때에만 그곳으로 갔다. 보통 때 기도를 드리는 것은 강 건너 교회에서 했다.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이면 처녀들은 새 옷으로 치장을 하고 떼를 지어 미사에 참석했다.

처녀들이 저마다 빨강, 파랑, 노란색 옷을 차려 입고 초원을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무척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날씨가 나쁘면 모두들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나 헌신 기도는 대개 큰 교회에서 드렸다. 고난 주간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부활절 때 15 코페이카 씩 드려야 했다. 교회 사람들이 나와서 십자가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돈을 거두어 갔다.

할배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태어나서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뭔가 초자연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은 여자들이나 하는 일로 여기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종교나 또는 여러 가지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누군가 그에게 의견을 묻기라도 하면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성의하게 대답하곤 했다.

"아, 알 게 뭐여? 누가 그런 걸 봤어야 말이지!"

그러나 할매는 하나님을 믿었다. 무척 막연한 믿음이긴 하지만 말이다. 할매의 머리 속에는 하나님에 관한 온갖 생각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었다. 죄나 죽음, 또는 영혼 등의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할라치면 갑자기 가난이나 당장 처리해야 할 걱정거리들이 도중에 튀어나와 그녀의 생각을 헤집어 놓았다. 그녀는 기도문을 외우지 못했다. 그래서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성상 앞에 서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카잔의 성모님, 스모렌스크의 성모님, 세 손을 가지신 성모님이시여..."

마리아와 표쿠라 역시 십자를 긋고 해마다 근신도 하곤 했으나 그렇다고 뭔가 알고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고, 하나님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어른도 없었다. 무슨 계율을 지키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근신 기간에 고기를 먹는 것만은 엄격하게 금지했다. 이것은 이 마을 어느 농가나 대개 비슷했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는 자도 드물었고, 아는 자도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성경을 사랑하고 아꼈다. 부드럽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공경했지만 사실 그건 성경 외에 다른 책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성경을 읽고 설명해줄만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오리가가 이따금 복음서를 읽어줄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존경했다. 사람들은 그녀와 사샤를 부를 때 '당신'이라는 경칭을 썼다.

오리가는 자주 교회당의 미사에 참석하러 나갔다. 또 이웃집에도 기도하러 가고, 근처에 있는 두 곳의 수도원과, 교회가 27개나 있는 군청 소재지로도 자주 찾아갔다. 이렇게 순례하며 다니는 동안에는 믿음에 전념할 수 있었다. 가족에 대한 근심 걱정 따위를 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집에 돌아올 때가 되면 자기에게 남편과 딸이 있다는 것을 즐겁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얼굴에 생글거리는 미소를 가득 띠고 활짝 갠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신 거예요!"

그녀가 보기에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는 못마땅한 점이 무척 많았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늘 괴롭혔다. 마을 사람들은 이리야 성자의 기념일이나 성모 승천제, 성십자가 절기 등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 지난 번 성모제 때에는 주코버 마을에서 교구제가 열렸는데도 불구하고 농사꾼들은 사흘 동안 계속해서 술을 퍼마셨다. 공동 기금으로 마련한 돈을 50 루블이나 술값으로 축내고도 모자라 집집마다 술값을 더 걷어야 했다.

치키리제프 네 집 역시 교구제 첫날 양을 한 마리 잡아서 하루 세 끼를 그 고기만 먹었다. 모두들 옆구리가 터질 정도로 꾸역꾸역 먹고도 아이들은 밤참으로 좀더 먹으려고 자다 말고 일어나는 형편이었다.

키리야크는 사흘 동안 계속 취해 있었다. 그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모자나 장화 따위를 모조리 술로 바꿔 마셔버린 다음에는 마리아를 개 패듯 후려갈겼다. 마리아는 너무 얻어맞아 기절해서 나중에는 물을 끼얹어 깨워야 했다. 그렇게 난리 법석을 피운 다음에는 모두들 서로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우울해져야 했다.

이런 주코버 마을 또는 종살이 마을로 불리는 이곳에서도 단 한 번 진지한 종교 의식이 올려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8월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읍내 전체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어주는 성모상을 메고 돌아다녔다. 주코버 마을에서 그 성모상을 맞이하려고 기다리던 날은 하늘이 찌뿌등한, 찌는 듯 더운 날이었다.

처녀들은 새벽부터 단 한 벌뿐인 나들이옷을 차려 입고 성모상을 맞이하러 나섰다. 그리고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성모상을 맞아들여 십자가를 모시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마을로 들어왔다. 그러자 강 건너편 교회에서 종이 연거푸 세 번 울렸다.

마을 사람들과 다른 마을 사람들... 길이 가득 메워졌다. 시끄러운 소리와 먼지, 북적거리는 사람들... 할매도 할배도 키리야크도... 모두 성모상에 두 손을 뻗고 뜨거운 기도를 가슴에 담고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축원했다.

"우리들을 지켜주시는 성모님! 아, 성모님!"



 

사람들은 이 하늘과 땅 사이에는 공허가 없으며 부자도 권력자도 이 모든 것을 앗아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흔연히 인정하게 된다. 부당한 모욕이나 노예처럼 짓눌려 지내는 것,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고 괴로운 가난, 끔찍한 보드카...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힘이 뚜렷이 계신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는 것이다.

"우리들의 수호신인 성모님이시여!" 마리아는 감격에 겨워 흐느껴 울었다.

"성모님!"

그러나 성모상을 맞이하는 행사가 끝나고 성모상이 다른 마을로 가 버리자 모든 것은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술집에서는 여전히 주정뱅이들이 꼬부라진 혀로 막되 먹은 얘기를 지껄여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부자 집 사람들 뿐이었다. 그들은 실상 부자가 될수록 하나님을 믿고 영혼의 구원을 믿는 마음이 엷어졌다. 다만 이 지상의 풍부한 물질을 누리는 생활이 끝나는 것이 두려운 것일 뿐이다. 그래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농사꾼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할매와 할배 눈앞에서도 사람들은 그 동안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죽어도 괜찮은 때가 되었다고 서슴없이 얘기했다. 할매와 할배 역시 그런 얘기에 대해 골을 내거나 하지 않았다. 이들 가난한 농사꾼들은 니콜라이 앞에서도 그런 얘기를 꺼리지 않았다. 표쿠라에게 '니콜라이가 죽을 때쯤이면 남편인 데니스도 군대를 마치고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특히 마리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 자식들이 죽으면 오히려 좋아했다. 왜 지금까지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는지 서운하게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병에 걸리는 것만은 기이할 정도로 지나치게 부풀려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할매는 소화가 잘 되지 않거나 가볍게 몸에 오한이 들거나 하는 아주 가벼운 증세에도 엄살을 부렸다. 자리에 곧장 드러누워 담요를 뒤집어쓰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죽을 것만 같다고 야단을 치곤 했다. 그러면 할배는 허둥지둥 사제를 불러다가 할매에게 성찬식을 시키고 성유(聖油)를 바르곤 했다.

농사꾼들은 모여 앉기만 하면 감기나 회충 따위 얘기를 했다. 처음에는 그냥 뱃속에서 굴러다니다가 마지막에는 심장으로까지 밀고 올라간다는 종기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감기다. 그들은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한여름에도 옷을 두껍게 자기를 좋아했다.

할매는 의사에게 보이는 것을 좋아해 걸핏하면 병원으로 쫓아갔다. 그리고 병원에 가면 으레 자기 나이가 일흔이 아니고 쉰 다섯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있는 그대로 일흔 살이라고 a말했다가는 의사가 고쳐주려고 하지 않고 이제 너는 죽어도 좋을 나이라고 윽박지를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할매는 병원에 갈 때면 으레 계집애들 두 셋을 데리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에야 자기가 먹을 물약과 계집애들에게 발라 줄 고약을 받아들고 돌아오곤 한다. 그러면서 배가 고파 잔뜩 역정을 내곤 했다.

한 번은 니콜라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 후 한 두 주일 동안은 니콜라이도 받아온 물약을 마시고 꽤 나아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할매는 마을 주위 30 베르스따 이내의 의사나 점장이는 모르는 사람 없이 줄줄이 꿰고 있었으나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성모제 때 사제가 십자가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닐 때였다. 함께 다니던 교회 사람이 할매에게 읍내 감옥 근처에 사는 노인네가 무척 용하니 가보라고 권했다. 그 노인은 군대에서 군의관의 조수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할매는 그 말을 듣고 그 노인에게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눈이 오던 날, 할매는 읍내로 들어가 그 노인네를 데려왔다. 힘줄이 울퉁불퉁 솟은 덥수룩한 얼굴에 소매가 긴 프록코트를 입은 노인네였다. 마침 그때 오두막집에서는 날품팔이 일꾼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지독하게 도수가 높은 돋보기를 낀 늙은 양복공이 넝마 조각을 붙여 조끼를 만들고, 두 명의 젊은이는 가죽으로 펠트 신발을 만들고 있었다. 술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키리야크는 늙은 양복공 옆에서 마구(馬具)를 손질하고 있었다.

오두막집은 비좁고 답답했다. 역겨운 냄새도 풍겼다. 읍내에서 온 노인은 니콜라이를 진찰한 다음 부항을 써서 피를 뽑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노인은 니콜라이의 몸에 부항을 붙였다. 늙은 양복공과 키리야크, 계집애들이 옆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니콜라이의 몸에서 병이 쫓겨가는 모습이 선히 보이는 것 같았다. 니콜라이 역시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 웃었다. 자기 가슴에 붙인 부항이 점점 붉은 피로 가득 차는 것을 보면서 정말 그 동안 자기를 괴롭혔던 병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정말 그럴싸한데!" 늙은 양복공이 말했다. "이제 진짜 효험을 보면 좋겠구먼!"

읍내에서 온 노인은 먼저 부항을 열 두 개 붙인 다음 다시 열 두 개를 더 붙였다. 그리고는 차를 실컷 마시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뒤 니콜라이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얼굴이 갑자기 핼쓱해졌다. 아낙네들 말을 빌리자면 얼굴이 마치 주먹만하게 오그라들었고, 손가락은 피가 빠진 탓에 검푸른 색으로 변했다. 그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양털 외투까지 몸에 둘렀지만 오한이 점점 더 심해졌다.

밤이 되자 니콜라이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마루 위로 내려 달라는 둥, 양복공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아달라는 둥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조용해졌다. 니콜라이는 아침이 채 되기도 전에 죽어 버렸다.



 

아아, 그 겨울은 어쩌면 그리도 길고 황량했을까!

오두막집엔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양식이 떨어져 가게에서 밀가루를 사와야 했다. 키리야크는 이제 늘상 집에 붙어 있으면서 밤이면 밤마다 행패를 부려서 온 집안 식구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다가도 아침만 되면 민망하고 골치가 쑤시는 탓에 옆에서 보기가 딱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가축 우리에서는 굶주린 암소가 끊임없이 울어댔다. 할매와 마리아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일부러 사람들을 골탕먹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혹독한 추위가 몰려왔다. 타는 불길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지독한 추위였다. 쌓인 눈이 얼어붙어서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솟아올랐다. 이 겨울은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수태고지 절기에는 본격적인 겨울 눈보라가 몰아쳤다. 부활절에도 눈이 내렸다.

그러나 지루하던 겨울도 결국 물러갔다. 4월 초에는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추운 날씨가 계속 이어졌다. 겨울은 끈덕지게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결국 어느 따뜻한 날이 겨울을 물리쳤다... 드디어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냇물 옆 초원과 수풀이 흠뻑 봄 물을 머금고 주코버 마을과 강 건너 마을 사이의 넓은 땅은 벌써 거대한 물결 속에 잠기고 있었다.

하늘에선 물오리가 여기저기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녁마다 불타오르는 석양이 구름 가운데서 아름다운 광경을 펼쳐 보였다. 그 모습은 너무 화려하고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마치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두루미는 화살처럼 날으면서 사람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처량한 목소리로 울어댔다. 오리가는 비탈에 서서 들판에 넘쳐 흐르는 물과 태양, 반짝반짝 빛나며 마치 새로 태어나 젊어진 것 같은 교회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곤 했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어디든 발 닿는대로 이 세상 끝까지 가버리고 싶은 생각이 복받쳐 올랐다. 그럴 때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지며 숨이 가빠졌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모스크바로 올라가 하녀 자리를 구해볼 생각이었다. 키리야크도 함께 올라가 문지기가 됐건, 머슴이 됐건 남의 집 살이를 하기로 얘기가 되어 있었다. 아아, 하루라도 빨리 이 곳을 떠나버리고 싶다...

길이 마르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그들은 길 떠날 준비를 했다. 오리가와 사샤는 자루를 짊어지고 나막신을 신고 새벽에 길을 떠났다. 마리아도 두 사람을 전송하려고 함께 길을 나섰다. 키리야크는 몸이 좋지 않아서 1 주일 쯤 지나서 떠날 작정이었다.

오리가는 죽은 남편을 생각하여 교회를 향해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렸다. 울지는 않았지만 그러는 그녀의 얼굴은 주름이 잡히고 겉늙어서 마치 나이 많은 할머니 같았다. 지난 겨울 동안 그녀는 몸이 야위고 늙어버렸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도 눈에 띄게 늘었다.

옛날의 보기 좋던 미소와 애교는 사라지고 그 대신 쓰라린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비탄을 인내하는 서글픈 표정이 두드려졌다. 눈에도 뿌옇고 멍청한 표정이 깃들여 마치 바보 같기도 했다.

그녀는 이 시골 마을과 농사꾼들과 헤어지는 것이 서글펐다. 그녀는 니콜라이를 묻던 때를 떠올렸다. 집집마다 부조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모두들 그녀의 슬픔을 동정하고 함께 울어주었던 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난 여름과 겨울을 보내는 동안 이곳 사람들은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게 두려웠던 일도 많았다. 그들은 사납고, 정직하지 않으며, 지저분한데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도 않고 늘 싸우기만 한다. 그 이유는 뭘까? 서로 존경할 줄을 모르고 두려워하고,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술집을 만들어 농사꾼들을 주정꾼으로 만든 사람이 누군가? 바로 농사꾼이다. 마을의 조합이나 학교나 교회의 돈을 축내고 술로 바꿔서 마셔버리는 사람이 누군가? 바로 농사꾼이다. 이웃집의 물건을 훔치고 불을 지르고 보드카 한 병 때문에 법원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은 또 누구인가? 바로 농사꾼이다.

지방 자치회나 다른 모임에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농사꾼의 이익을 반대하고 설쳐대는 사람은 누구인가? 역시 농사꾼이다. 그렇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정말 싫고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사람이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괴로워하기도 하고, 눈물도 흘린다. 그리고 이런 온갖 악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 가운데 변명할 수 없는 행위는 없다.

고달픈 노동 때문에 매일 저녁마다 사지가 쑤시고 아프다. 겨울 날씨는 혹독하리만큼 춥고, 수확은 보잘 것 없다. 사는 오두막은 좁고 답답하다. 이런 것들 가운데서 그들을 구원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뭔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조차 없는 것이다. 그들보다 부유하고 힘이 센 사람들은 그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들 스스로가 야만스럽고 부정직하고 주정뱅이이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똑같이 더러운 쌍소리를 내뱉어가며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는 말단 공무원이나 가게 심부름꾼마저도 농사꾼이라면 마치 부랑자를 대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인다. 마을의 늙은이나 교회의 장로가 되어도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서슴없이 그들을 '너'라고 부른다. 마치 자기들에겐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게다가 이따금 마을에 찾아오는 그 욕심 사납고 방탕하고 무뢰하기 짝이 없는 무리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오로지 농사꾼들을 모욕하고 착취하고 위협하기 위해서 마을을 찾아오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나 기대할 것이 있단 말인가?

오리가는 지난 겨울에 키리야크가 태형(笞刑)을 받으러 끌려갈 때 할배가 짓던 그 표정을 생각해 보았다. 얼마나 무참하고, 비굴한 표정이었던가... 그리고 이제 그녀는 이 모든 사람들이 불쌍하고 애처롭게만 여겨졌다. 그녀는 길을 걸으면서도 농사꾼들의 허름한 오두막집들을 계속 돌아보았다.

마리아는 십 여 베르스따 쯤 배웅을 하더니 드디어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바닥에 비벼대며 큰 소리로 울음을 토해냈다.

"아이고, 아이고... 나는 이제 또 외톨이란 말이여! 어째서 내 신세는 요 모양 요 꼴이냔 말여! 어째서 이렇게 처량하고, 기구하냔 말이여!"

그녀는 오랫동안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오리가와 사샤는 한참 동안 마리아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몇 번이나 거듭거듭 앞을 바라보면서 무엇엔가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머리 위로 주둥이가 하얀 까마귀가 높게 날고 있었다.

해가 높이 솟아올라 이제 공기가 더워졌다. 주코버 마을에서도 이제 멀리 왔다. 오리가와 사샤는 걷는 것이 즐거워서 금방 마을이고 마리아고 다 잊어 버렸다. 둘은 기분이 흥겨워져서 듣는 것, 보는 것이 모두 기쁘기만 했다. 길가의 오래된 무덤, 줄지어 선 전봇대 따위도 흥겹기만 하다. 전봇대는 한 자루 한 자루 끊임없이 이어져 저 멀리 지평선 끝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전기 줄은 윙윙 신기한 소리를 낸다.

어쩔 때는 멀리 파란 수풀에 아늑하게 싸인 농가가 보이고, 눅눅한 바람과 삼베 삶는 냄새가 풍겨오기도 한다. 그러면 그곳에는 어쩐지 행복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들판 가운데에 하얗게 색이 바랜 말 뼈다귀를 하나 보는 일도 있었다. 종달새는 끊임없이 지저귀고, 뜸부기는 서로서로 짝을 불러댄다. 물새는 마치 누군가 헌 쇠고리를 달각거리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울어댄다.

정오쯤 되어 오리가와 사샤는 커다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넓은 거리에서 두 사람은 주코버 장군 댁의 요리사였던 키 작은 늙은이와 마주쳤다. 날씨가 무척 더워 그의 대머리는 땀에 젖고 시뻘개져서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오리가와 그 할배는 처음에 서로 몰라보고 그냥 지나쳤다가 둘이서 동시에 서로 돌아보고 얼굴을 알아봤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제각기 걸음만 재촉했다.

오리가는 다른 집들에 비해 그래도 비교적 살림살이가 나아 보이는 새로 지은 어떤 농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집의 활짝 열어젖힌 창문 앞에서 공손하게 절을 하고, 가늘게 목청을 뽑아 마치 노래라도 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교를 믿으시는 분들이시여, 예수님을 보시와 저희를 도와주세요. 당신의 적선 덕으로 부모님들은 천국에 가시고 영원히 평안을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정교를 믿으시는 분들이시여!" 사샤도 따라 했다. "예수님을 보시와 저희를 도와주세요. 당신의 적선 덕으로 부모님들은 천국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