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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봄 1부

 

운현궁의 봄 2부

 

운현궁의 봄 3부

 

운현궁의 봄 4부

 

운현궁의 봄 6부 

 

 

 

 


 

 

신유년에서 임술년에 걸쳐서 정치의 타락은 극도에 달하였다.

 

태조 건국한 이래 근 오백 년 간, 이 때만큼 정치적으로 타락해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 권도를 잡은 김씨 일문은, 자기네의 세력을 그냥 유지하기 위하여 갈팡질팡하였다. 자기네들의 지금 권세의 근원되는 상감께 후사가 아직 없고, 그 위에 건강은 나날이 쇠약하여 가는지라, 언제 세상이 뒤집힐지 알 수 없으므로, 뒤집히기 전에 넉넉히 준비하여, 뒤집힌 뒤에도 낭패가 없게 하려고 전력을 다하였다.

 

세상은 어수룩하였다. 세상은 그들의 내막을 똑똑히 알지 못하였다. 그들의 세력이 천만 년이나 가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온갖 일을 그들에게 힘입으려 하였다.

 

김병기는 날래고 꾀 많은 사람이었다.

 

병기의 집에 드나드는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원모(元某)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병기는 특별히 그 사람을 사랑하였다.

 

원모는 사람됨이 착하고 꾀 없는 사람이었다. 꾀만 있는 사람이면 병기에게 그만큼 총애도 받는지라, 벌써 누만의 재산과 권력을 얻어 잡았을 것이로되, 직하고 꾀없기 때문에 매일매일 구차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병기로서 마음에만 있으면 원모를 어떤 고을의 수령쯤으로나 보내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병기는 원모의 인물됨을 잘 아는지라, 수령으로 보낼지라도 역시 꾀 없고 직한 원모는, 구차히 멋적게 지내기나 헐 것을 짐작하므로 그냥 버려 두었다.

 

어떤 날, 병기의 집에 무슨 연회가 있어 사람들이 가득히 모여 있을 때였다. 병기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원 아무개, 원 아무개!”

 

불렀다. 그리고 들어온 원모를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쳤다. 원모는 가까이 이르렀다.

 

중인이 보는 앞에서 병기에게 친히 불리어서 가까이 가는 것만 해도 여간한 우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병기는 원모의 귀를 끌어다가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였다.

 

“여보게, 내 오늘 밤 자네 자당 찾아가네.”

 

음담이었다.

 

마음이 직한 원모는 벌컥 성을 냈다.

 

“대감, 그게 무슨 말씀이오? 철 없는 소리를…”

 

얼굴을 검붉게 하여 가지고 원모는 소매를 떨치고 그만 제 집으로 돌아갔다.

 

원모가 돌아간 뒤에 병기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하인을 연하여 원모의 집에 보내서 노염을 끄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원모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 소문이 퍼졌다.

 

―병기가 많은 사람 앞에서 원모를 가까이 불러서 귓속말로 무슨 부탁을 하였다. 그러매 원모는 그것을 거절하고 돌아갔다. 돌아간 원모를 병기는 연하여 하인을 보내어 달랬다. 그러나 원모는 종내 듣지 않았다.

 

―이런 소문이었다.

 

그 다음부터 가난하고 직한 원모의 집에는 매일 '청대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병기의 청을 거절하고, 또한 거절당한 병기가 도리어 미안해하는 것을 보매, 원모는 병기에게 여간 존경받는 인물이 아니라―이런 견해 아래서 원모의 집은 '청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장마당같이 되었다.

 

이리하여 김병기는 귓속말 한 번으로, 고지식하고 돈벌 줄 모르는 원모를 저절로 앉아서 돈이 생기게 하여 주었다.

 

이것은 병기의 슬기로운 성격을 말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또한 당시 병기―뿐만 아니라, 김씨 일문의 세도가 얼마나 당당하였는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김씨 일문의 일거 일동의 반향은 이만하였다. 진실로 밝은 하늘조차 흐리게 할 만한 세도였다.

 

 


 

 

당시의 정계(政界)가 얼마나 타락하였는지, 여기 몇 개의 에피소우드로써 그 상황을 말하여 보겠다.

 

함경도 사람 홍순필―서울 올라와서 물을 지고 있었다. 순필이의 동생도 역시 형과 같이 물을 져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동생은 나이가 스물, 얼굴이 예쁘장스럽게 생겼다. 그 동생이 우물에서 늘 물을 긷는 동안에, 어느덧 나주 합하 양씨(영의정 김좌근의 애첩) 집 하인과 사귀게 되었다. 사귀게 되자 그 집 행랑에도 놀러 다니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음탕한 양씨의 총애까지 사게 되었다. 동생이 양씨의 총애를 사게 된 얼마 뒤에 형 되는 홍순필은 함경도 어떤 고을의 수령을 배수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어젯날까지의 물장수는 당당한 현령이 되어, 양씨의 주인 하옥 김좌근에게 이끌리어 상감께 사은 숙배를 하러 입궐을 하였다.

 

몸에 어울리지 않는 관복을 입기는 하였다. 양씨며 하옥에게 말을 많이 들었거니, 꼴은 되었건 안 되었건 곡배(曲拜)를 드리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이 장관이었다.

 

“노형이 나랏님이오? 처음 뵙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함경도 아무 데 사는 홍순필이라는 사람이오.”

 

이 현령은 상감과 통성명을 한 것이었다.

 

어진 상감이었다. 그 위에 전생을 초라히 지난 상감이었다. 상감은 이 무지를 관대히 보았다. 그리고 쓴웃음만을 웃었다. 당신의 전생을 생각하여 순필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면의 책임자인 영의정 하옥 김좌근이 가만히 볼 수가 없었다. 유사 이래로 고금 동서를 무론하고, 국왕과 통성명을 한 유일인인 홍순필을 하옥은 황황히 끌고 도로 나왔다.

 

임지(任地)에 부임을 함에 임하여, 이 현령은 다시 상감께 하직을 고하러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들어갈 때는 이전의 망신을 미루어, 하옥은 끈끈히 홍에게 말을 주의시켰다.

 

임금께는 상감이라 하여야 하는 것이며, 자기를 가리켜서는 신이라 하여야 하는 것이며, 온갖 말에 지극히 존경하는 말을 써야 한다고 누누이 일러 주었다. 이리하여 다시 입궐한 때였다.

 

얼마 전에 창피를 당한 이 현령은, 이번은 그 날의 실패까지 모두 회복하려고 잔뜩 마음을 벼르고 들어가는 참, 하옥이 절하기 전에 먼저 덥썩 절을 하고 주저앉았다.

 

“여봅쇼 상감, 며칠 전에는 진실로 안 됐사와요. 그 때 내―아니―저…”

 

말이 막혔다. '신'을 잊었다. 그, 저, 한참을 어물거렸다. 무슨 발에 신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미투린지 갖신인지 버선인지를 잊었다. 그래서 한참 어름거리다가,

 

“버선이 그만 알지를 못 했사와요.”

 

하여 버렸다.

 

상감도 알아 듣지 못하였다. 하옥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어름어름 지났다. 이리하여 무사히 하직을 고하였다. 이 현령이 대궐에서 나와서 자기의 동생에게 한 술회―

 

“임금에게는 저를 기껏 낮추 말해야 한다. 말하자면 '나'라지를 않고 '버선'이라고 기껏 낮추 한단 말이로다.”

 

 


 

 

이러한 조제 남조의 방백 수령들이 팔도 삼백 주로 퍼져 나갔다. 그들에게 선정(善政)이 있을 까닭이 없다. 이 땅의 옛 말의 대부분이 무지한 원님의 넌센스한 정사를 비웃음에 있음이 그 근원이 여기 있다. 진실로 전무후무한 수령 조제 남조의 시대였다.

 

강생(姜生)이라는 사람과 옥생(玉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이 다 같은 고을에서 같이 배우며 자란 젊은이었다. 얼마만큼 배운 뒤에 이제는 배움을 중지하고 벼슬이라도 하기로 하였다.

 

“난 내 고을 수령 노릇을 하겠네.”

 

“나도 내 고을서 하겠네.”

 

같은 고을서 자란 두 사람이 제각기 제 고을의 수령을 별렀다. 그들이 경쟁을 하다시피 벼르기만큼, 그들의 자란 고을은 부읍(富邑)이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꼭 같은 목적을 가지고 묏산자 보따리를 하여 지고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한 사마이 앞에 돈 만냥씩 지녀 가지고―

 

“누가 먼저 성공하나 어디 봄세.”

 

이렇듯 경쟁이 시작되었다.

 

강생은 어떻게 어떻게 하여 김병기에게 가까이할 기회를 얻었다. 그 동안에 옥생은 역시 어떻게 어떻게 하여 김병기의 아버지의 애첩 나합 양씨에게 가까이할 기회를 얻었다. 병기에게 가까이한 강생은 병기에게 드나들 동안 병기의 인물을 알았다.

 

교만하고 혈기 있고 뽐내기를 즐겨하고 체면을 매우 지키면서도, 또한 아첨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하는 병기의 인물을 알아본 강생은, 병기가 알 듯 모를 듯이 뇌물을 드리며 알 듯 모를 듯이 아첨을 하며, 이리하여 얼마를 지내는 동안, 병기에게 사랑을 받게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이러한 얼마 뒤에 강생은 목적하였던 바와 같이 자기의 고향의 군수를 벌었다.

 

이러는 동안, 옥생도 또한 목적하였던 바와 같이 양씨의 마음까지 사게 되었다. 옥생이 양씨의 마음을 산 지 얼마 뒤부터, 양씨는 하옥 대신에게 밤마다 옥생을 모군 군수로 시켜 달라고 졸랐다. 양씨의 청이면 아무 것이라도 듣는 호인 하옥 대신은, 양씨의 엉덩이를 두드려 주며 그러마고 승낙을 하였다.

 

이리하여 양씨에게 승낙을 한 하옥은 자기의 아들 병기를 불렀다. 그리고 옥생을 모군 군수로 임명되도록 주선을 하라고 명하였다.

 

병기는 딱하였다.

 

강생을 모군 군수로 임명시킨 지 불과 사오 일인데, 이제 또 다른 사람을 주선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는 병기는, 유유낙낙하고 물러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군에는 현재 군수가 있다. 그런데 병기는 강생을 보내기 위하여 그 군수를 '수령이 심하여 민원이 크다'는 구실로써 파면하도록 죄상을 하여 그렇게 꾸민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또한 옥생을 어떻게 임명하도록 운동하나?

 

수단은 한 가지밖에는 없었다. 이제 취소는 못할 노릇―강생을 또한 파면하고 옥생을 임명하도록 할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모군 군수 강모는 수령이 심하와 민심이 동요되옵고, 그대로 방치하였다가는 불상사가 생길 줄로 아뢰옵니다.”

 

예궐을 하여 이렇게 상감께 아뢸 때는, 병기의 등에서도 식은땀이 흘렀다. 이리하여 강생은 파면이 되었다. 돈 만 냥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서 병기를 알아 가지고 운동한 강생은, 원하던 바대로 군수를 얻어 하기는 하였지만, 하여금 씨에게 운동한 옥생에게 밀려서 닷새 만에 파면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강생은 임지(任地)를 향하여 출발을 한 뒤였다. 군수에 임명이 되기가 바쁘게 어서 금의환향을 하고자, 강생은 이튿날로 고향을 향하여 출발한 것이었다. 자기의 직이 파면된 것은 알지도 못하고―

 

서울서 이미 파면된 강생은, 그런 줄도 모르고 호호탕탕이 여행을 계속하였다. 하루 바삐 금의로 환향을 하여 뽐내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또한 내려가는 길에 거드럭 거리며 산천 유람도 하고 싶었다. 이리하여 강생은 이 고을 정자에서 하루, 저 고을 누각에서 이틀, 놀아 가며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에 거의 다달았다. 한 놈의 사령은 길을 앞서서 신관 사또의 부임을 보하러 달려 갔다.

 

그러나 달려 갔던 사령은 부시시 도로 돌아왔다. 신관이 벌써 어제 부임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강생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구관이 아직 있다면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자기 이외에 신관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강생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떤 협잡배놈이 자기 이름을 도적해 가지고 못된 일을 하는 것이어니 그리고 또 이렇게 밖에는 해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령 호령해서 배행하는 하인놈들을 모두 먼저 보내서, 남의 이름을 도용하는 흉한을 잡아 가두라고 한 뒤에, 가마를 몰아서 고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는 사실 벌써 신관이 부임을 한 것이었다. 강생이 멋이 들어서 산천 유람을 하면서 천천히 내려오는 동안, 옥생은 길을 채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생은 임지에 도착도 하기 전에 벌써 구관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사태를 짐작하는 옥생은, 머리 관속에서 분부를 하여 구관 사또를 영문에 맞았다.

 

“구관 사또 행차요―”

 

위세 좋게 영문으로 달려 들어오던 강생의 행차가 이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을까?

 

옥생이 벙글벙글 웃으며 강생을 동헌에 맞았다. 먼저 부임한 신관이 지금 부임하러 오는 구관을 맞는 것이었다.

 

신관이자 또는 구관인 강생을 환영 겸 송별하는 성대한 연회가 그 고을 강변 누각에 열렸다. 마지 못하여 거기 출석한 강생의 얼굴에는, 연하여 싱거운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강형, 미안할세!”

 

“아니, 그럴 것 없지!”

 

자기도 역시 구관을 몰아 보내고 이 곳으로 온 강생인지라, 옥생뿐을 나무랄 수가 없었다.

 

강생은 깨달은 바 있었다. 벼슬의 욕망이 앞설 때에는 돌아볼 여유를 잃었거니와, 지금 이렇게 되고 보매, 현재의 벼슬의 허황함이 절실히 느껴졌다. 강생은 그 고을을 떠나서 산골로 이사 갔다. 자기의 발잔등을 밟고 앞서 온 옥생이 또한 며칠이나 군수 노릇을 하다가 남에게 자리를 앗기울지, 그것을 생각해 보매, 지금 좋다고 덤비어 대는 옥생이 도리어 가련해 보였다.

 

이리하여 수령 방백들의 채변이 무상하였다.

 

조제 남조의 방백!

 

지위의 보장이 없는 수령!

 

조세 남조의 수령 방백이라 할지라도 한 군데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그 곳 지리 풍속에 익어져서, 혹은 후일에는 명관이 될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흘이 멀다 하고 갈아 내는지라, 명관도 생기지 않을뿐더러, 명관이 있다 하더라도 명관으로서의 재능을 발휘할 도리가 없다.

 

그런지라, 많은 돈을 써서 수령의 자리를 산 그들은, 자기가 부임하여 있는 (언제 갈릴지 모르는) 짧은 기간 안에 자기의 밑전을 뽑고, 그 위에 얼마간 더 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인부를 차고 부임하는 수령 방백들은, 부임하기가 무섭게 벌써 돈 긁어 올릴 방법을 도모한다. 천 년 묵은 여우와 같은 관속들은 이런 수령들의 고문으로는 또한 능한 인물이었다. 이리하여 별별 기괴한 학정은 전개되어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제 남조의 방백 수령들이, 도임해 있는 짧은 기간 안에 자기의 밑천을 뽑기 위하여는, 어떤 수단을 취하며 어떤 방법을 취하나?

 

무론 그 수단 방법에 있어서는 일정하지 않다. 여기 그 한두 가지의 이야기를 적어 보자. 평안도 어떤 촌에 돈냥이나 가지고 있는 과부가 하나 있었다. 혈혈 단신의 과부였다. 다만 그의 남편이 적지 않은 재산을 남기고 죽었으므로 그것으로 생활만은 부족 없이 지내는 사람이었다.

 

그 집에는 개를 한 마리 치고 있었다. 집 지키기 겸, 가족 겸, 동무 겸 하여, 꽤 종자도 좋은 개 한 마리를 치던 것이다. 그 개는 몸집은 희고 발은 누러므로 황발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애지중지하였다.

 

그 까닭으로 그 동리에서는 그 집을 가리켜 황발이네 집이라고 하였다. 사내 주인이 없고 다른 일가가 없는지라 흔히 있는 예대로 그 집에 기르는 개의 이름을 따서 그 집을 황발이네 집이라 일렀다.

 

재산이 넉넉하여 그 근처에 토지도 많은지라, 그 집은 그 근처에서는 꽤 유명한 집이었다. '황발이네 집, 황발이네 집'하여 소문난 집안이었다. 황발이네 집이 돈냥이나 있다는 소문이 그 고을 원님에게 들어갔다.

 

읍내의 부민을 샅샅이 고르던 원님은, 이 황발이네 집을 놓칠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곧 나라에 상계하였다.

 

“소관의 관내에 황 발이라 하는 한 기특한 백성이 있사와 여사여사하고 여사여사한 일을 하여 표창할 만하오니, 황발이에게 선공감 가감역(繕工監假監役)을 제수합시면 성은(聖恩)이 이 위에 없겠나이다.”

 

하는 상계였다.

 

 


 

 

이리하여 모군 모동에 사는 황발(黃潑)이에게 선공감 가감역을 시킨다는 직첩이 내리게 되었다.

 

한 개의 희극은 전개되었다. 군속들이 나라의 직첩을 받들고 풍악이 자지러지게 황발이의 집으로 왔다. 그리고 황발이의 기특한 행동이 위에까지 달하여, 선공감 가감역을 시키라는 분부가 내렸다는 말을 전하였다.

 

불러 보니 황발이는 사람이 아니고 한 마리의 개였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이제 '황발이는 사람이 아니요 개'라고 도로 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군속들은 연지구지하였다. 그런 뒤에 한 가지의 방책을 안출하였다.

 

황발이의 집에 언젠가 도적이 든 일이 있는데, 그 때 황발이가 몹시 짖어서 도적은 목적을 달하지 못하고 달아났다. 군속들은 이 소문을 캐내어 가지고, 이것을 구실삼아 어리석은 과부를 속였다. 이 황발이의 기특한 소문이 나라까지 올라가서 성은(聖恩)이 금수에까지 미쳤다는 기괴한 결론을 빚어 낸 것이다.

 

이러한 기괴한 말은 과부를 몹시 기쁘게 하였다. 재산은 있으나 미천하던 자기의 집안이, 이제는 개의 덕으로 이 근린의 당당한 명문이 되려니 하였다. 그래서 흔연히 벼슬을 받기로 하였다.

 

상납전(上納錢) 팔천 냥, 중비(中費) 삼천 냥을 지출하였다. 그리고 황발이는 가감역이 되었다.

 

그 뒤부터는 과부는 개에게 비단 옷을 지어 입히어 가지고 자랑스러이 늘 나다녔다. 그 뒤부터는 그 집을 뉘라서 감히 황발이네 집이라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당당한 '황 감역(黃監役)의 댁'이었다.

 

이 양반 개는, 그 뒤 몇 해를 더 살다가 늙어 죽었다. 개는 죽은 뒤에도 그 집은 역시 '황 감역의 댁'이라 불렀다.

 

성은이 금수에게까지 미친 것이었다.

 

××감사 모는 재임 일곱 달 동안에 수십만의 재산을 만든 사람이었다.

 

당시의 방백들이 행한 온갖 일을 다한 뿐 아니라, 지혜 많은 그는 그의 독창적 취재법까지 발명한 것이었다.

 

관내의 부민들을 모두 긁어 먹는데, 혹은 벼슬을 갖다 씌워 주고 상납전을 벗겨 먹고 중비를 받아 먹으며, 혹은 명목 없는 죄를 씌워 가지고 잡아다 옥에 가두고 뒤를 두드려서 뇌물을 받아 먹고, 혹은 한협으로 받아먹고―이런 별별 짓을 다 하여 벗겨 먹을 대로 벗겨 먹기는 하였는데 아직도 먹지 못한 부민들이 많았다.

 

너무도 자꾸 벼슬을 시키거나 잡아다 가두기도 어색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연구한 끝에 한 가지의 묘책을 안출하였다.

 

가사는 어떤 날 한 부민(富民)을 불렀다. 그리하여 첫째로는 그 백성이 덕이 많음을 칭찬하고, 그런 뒤에 이런 말을 하였다.

 

나라에서는 이즈음 재정도 곤핍하고 강기도 매우 퇴폐되었으므로, 그 진흥책으로 각 곳에 덕 있고 재간 있는 재산 있는 사람들을 모두 골라서 벼슬을 시키기로 하여, 그 가운데는 당신도 끼었으니, 치하 드리노라―이런 뜻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좀 상세히 변역하자면, '나라에서는 재정이 곤핍하여 지금 재산 있는 백성들에게 벼슬을 팔려는데, 당신도 그 축에 끼었다.'하는 뜻이었다.

 

벼슬을 하나 하자면 상납전이라 중비라 하여ㅡ적어도 이삼 만냥은 걸린다. 그래서, 백성은 감사에게 재쳐서 얼마쯤이나 들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감사는 미리 조사한 바 그 백성의 재산이 합계 삼만 냥쯤 되는 줄을 짐작하면,

 

“아마 못해도 이만 오천 냥은 걸리겠소.”

 

대답하였다.

 

부민에게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이만 오천 냥을 내고라도 어떤 고을 수령이라도 되면 밑천 뽑을 길도 있겠지만, 감사의 말하는 벼슬은 명예직에 지나지 못하는 것으로서, 그 벼슬을 한달사 혹은 뽐내기는 할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생활은 파멸이 되고 말 것이다.

 

백성은 제 집으로 돌아가서부터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나라에서 벼슬을 주신다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 벼슬을 하면 이튿날부터는 굶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나라에서 주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이리하여 누워 있는데 어떤 날 호방(戶房)이 이 백성을 찾아왔다.

 

 


 

 

여기서 상의(商議)는 거듭되었다. 백성은 자기의 진심을 토로하였다. 벼슬은 고맙지만 벼슬을 하면 그 날부터 굶어야 할 지경이니, 이 딱한 사정을 어찌하리까고 사정하였다.

 

호방도 매우 동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호방도 머리를 수그리고 한참 생각한 뒤에, 이 난경을 모면할 묘책을 하나 강구하였다. 즉, 지금 사또는 나라에서도 매우 세가로서, 사또가 잘 주선하면, 혹은 그 벼슬을 모면 할 수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고―

 

며칠 뒤에, 이 백성은 호방에게 삼천 냥의 뇌물과 감사에게 만 냥의 뇌물을 바치고, 그 벼슬을 모면하기로 하였다.

 

그 뒤부터 감사는 관내의 부민들을 차례로 불러서 이 '말 벼슬'을 시켰다. 그리고 벼슬 모면비로서 그 백성의 재산의 약 절반쯤씩을 거두어 올렸다.

 

마달잇벼슬―

 

“이제는 마달이가 없느냐?”

 

벼슬을 마달 사람―즉 '마달이'였다. 이 마달이를 차례로 들추어 내서 이 감사가 긁어 올린 재산이, 재임 일 곱 달 동안에 육십여 만 냥이었다. 눈 뜬 사람의 코를 베는 것과 다름이 없는 교묘한 정책이었다.

 

군포(軍布)라 하는 것이 있었다.

 

첨정(簽丁―지금 이름으로 微兵)은 상민들의 의무제였다. 상민으로 태어난 이상에는 첨정에 뽑힐 의무가 있었다.

 

먼저 군적(軍籍)에 등록이 된다. 그런 뒤에는 붙들리어 가서 병대에 복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한 집안에 장정이 첨정에 나가게 되면, 그 뒤는 그 집안은 호구지책이 없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모면하는 방책으로 일정한 세반을 관가에 바치고 피하는 것―말하자면 첨정 모면비가 '군포'였다.

 

군포는, 베 두 필이든가, 돈 넉 냥이든가, 쌀 열 두 말이든가, 이러한 것이 원 제도였다.

 

그러나 첨정의 제도에 일생에 한 번이라든가 일 년에 한 번이라든가 하는 제한이 없었다. 이 점을 악관들은 악용하였다. 그 집안이 돈냥이나 있는 백성이면, 일년에 두 번 세 번 첨정에 넣었다.

 

뿐만 아니었다. 처음에는 일정한 액수를 작정하여 제정한 바이지만, 차차 흐리게 되어서, 되는 대로 그 집안의 재물을 압수하여 가게 되었다. 소고 말이고, 반닫이고 무엇이고를 막론하고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거두어 갔다.

 

그 위에 첨정에는 나이의 제한이 없었다. 이것 역시 악관들의 이용하는 바가 되었다. 늙은이, 어린애를 막론하고 돈냥이나 있는 집안에 사내라고 생긴 것이 있기만 하면 군포를 징수하였다.

 

무론, 억지로라도 피하려면 피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어린애게 무슨 군포냐고 억지로 거절하려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절하였다가는 이 뒤에 반드시 무슨 다른 벌이 그 집에 내렸다. 그리고 그 때 내리는 벌은 군포 징수의 몇 곱이 되는 혹독한 종류의 것이다.

 

그런지라, 뒤가 무서워서 할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이 악제도에 복종하는 것이다. '불알이 원수'라는 유명한 속담이 이 때 생겨난 말이었다. 그것 있기 때문에 이 곤경을 겪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할 수 있는 대로 그 집에 사내가 나면 그것을 관가에는 감추어 두었다.

 

놀라운 악정이었다. 상납미(上納米)를 벗겨 먹는다. 환곡미(還穀米)를 속여 먹는다. 경주인(京主人), 영주인(營主人)이 가운데서 잘라 먹는다. 그 고을에 좀 낡은 정자나 누각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수리한다는 핑계로 각호에 얼마씩 거두어서 벗겨 먹는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 핑계를 만들어 내어 가지고는 벗겨 먹는다.

 

 


 

 

당시에 있어서 가장 업적(業績)이 많았다는 수령 방백은, 가장 많이 벗겨 먹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 상관이 벗겨 먹노라면 그 수하에 달린 많고 많은 속관들이 또한 그만큼 벗겨 먹는 것이었다. 한 상관이 십만 냥을 벌었다 하면, 속관들이 먹은 것까지 합하면 이십 만냥은 넘을 것으로서 백성의 곤란은 그만큼 컸다.

 

이렇게 오중 육중 칠중 팔중으로 벗기우는 백성들은, 이 학정 아래서 허덕허덕 그들의 삶을 계속하였다. 한 마디로 크게 고함도 치지 못하였다. 고함을 칠지라도 들어 줄 위(上)가 없는 가련한 백성들이었다.

 

위로는 삼공 육경으로부터 아래로는 말청의 천리(賤吏)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백성을 좋은 봉(鳳)으로 여기고 벗겨 먹기만 위주하지, 굽어 보고 보호하여 주려는 어진 상관을 못 가진 이 가련한 백성들은, 숨 한 번 못 쉬며 숨이 박혀서, 가들의 가늘고 참혹한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 나라의 백성의 위에는 아직껏 인군(仁君)이 임하여 본 적이 적었다. 여러 분의 명군은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임금은 진실로 드물었다. 놀랄 만한 문치(文治)의 업적을 남긴 세종이며, 국토 확장에 그 거둠이 적지 않은 세조며, 모두 현군이며 명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런 분들의 큰 업적까지라도 겨우 향대부의 위에까지 미쳤지, 그 이하의 백성에게까지 미친 적이 적었다. 그런지라, 이 나라의 백성들이 자기네의 통치자에게 가지는 바 관념은 지극히 모호하고 약한 것이었다.

 

옛날 단종이 선위를 하고 세조가 등극할 때에도, 눈 한번 까딱하지 않고 이 방계(傍系)의 임금―좀더 혹심하게 말하자면 탈위한 새 임금을 묵묵히 맞고 그 아래 공손히 복종한 백성이었다.

 

그로부터 세 대 더 내려와서 제 구대의 임금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燕山君)이 오른 뒤의 일이었다.

 

연산군은 무론 많은 선비를 죽였으며 음탕한 일을 많이 한 임금이었다. 그러나 이씨 수백 년 간에 연산군보다 더 많이 선비를 죽이고 더 많이 황음하였던 임금이 없는 바가 아니다. 더구나 연산군의 그 모든 정도에 어그러진 행동은, 어떻게 보자면, 횡사한 당신의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 행동으로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연산군의 아드님이 그 다음의 위를 잇고―이리하여 전면히 내려왔으면, 연산군은 지금은 연산군이 아니라 무슨 종(宗)이든가 무슨 조(祖)로서 역사상에 뚜렷이 여러 가지의 업적이 특필되었을 것이다. 왜? 연산군은 정당한 왕통이거니, 연산군을 배반하는 사람은 당연히 역적일 것이다.

 

그러나 일이 순조로이 진행되지 못하였다. 연산군 제위 십 이 년 뒤에 성희안(成希顔), 박원종(朴元宗) 등이 의논을 하고 임금을 폐하기를 도모하였다. 말하자면 다시 생각할 여지가 없는 역모였다. 그리고, 그 일이 성공이 되어 진성군(晋城君)이 영립되어 신왕이 되었다. 소위 중종(中宗)의 반정이었다.

 

일이 성공이 되었기에 무론 '반정'이라 하는 빛 좋은 명색이 붙었다. 만약 실패로 돌아가기만 하였더면 역모로 모두 함몰했을 것이다.

 

이 놀랄 만한 역모의 성공에 대하여서도, 이 백성은 눈 까딱 아니 하고 방관하였다. 역모가 실패로 돌아갔을지라도 이 백성은 역시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왕위는 왕족이 잇(繼)는 것―

 

이런 평범한 생각으로서 백성은 이 변동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이 사건도(역사의 이면이 증명하는 바에 의지하건대) 결코 연산군의 실정을 들추어 낸 것이 아니고, 단지 재상들의 권력 다툼에 연산군이며 중종 대왕이며는 그 한 역할을 맡은 바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몇 대 더 내려와서 또한 광해군(光海君)의 사건이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같이 황음하지도 않았다. 단지 신하들을 지배하기에는 시대가 험악했기 때문에, 그의 재위 십 오 년 간은 대북(大北)과 서인(西人)의 굉장한 당쟁(黨爭_으로 종시하다가, 이 당쟁의 결말로서 소위 '인조(仁祖)의 반정'이 생기게 되었다.

 

말하자면 몇 대 전의 '중종의 반정'과 꼭 마찬가지로, 놀라운 역모 사건이 여기서 또 다시 성공이 된 것이었다. 선왕을 위하여 떨구어 군(君)으로 강봉하고, 종친 중의 한 사람이 위에 오른 것―말하자면 왕위 찬탈이었다.

 

그러니 이 때의 왕위 찬탈에 있어서도, 이 나라의 백성은 역시 이전 연산군의 때와 꼭 마찬가지로 아주 냉담한 태도로 나왔다.

 

 


 

 

인조의 반정은 곧 뒤를 이어서 또한 이괄(李适)의 난이 있었다.

 

인조의 반정에 그 일등공은 이괄에게 있었는데, 그는 논공행상(論功行賞) 때에 일등공에 들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겨서 거기 불평을 품었었는데, 그 가운데는 또한 이간하는 무리까지 있어서, 이괄이 반란을 도모한다고 나라에 등장을 들었으므로, 그 때문에 나라에서는 이괄을 토벌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이괄은 비로소 자유행동을 취하였다. 그리고 군사를 몰아 가지고 일사천리의 세로 서울을 짓부쉈다.

 

신왕 인조는 놀라서 신하들을 거느리고 공주로 피하고 서울은 이괄의 세력 범위 아래 들어갔다. 서울에 입성을 한 이괄은 선조의 열째 아드님이요 선왕 광해군의 동생되는 흥안군(興安君)을 모셔서 왕으로 추대를 하고 새 정부를 조직하였다. 이리하여 일이 여기서 그쳤으면 무슨 '흥안군의 반정'이라 하고, 인조는 그 이름조차 역사상에 올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괄의 반정(혹은 반란)에 대하여도 이 나라의 백성은 아주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 또 임금을 추대하게 되거니 이쯤 생각하고 열심히 신왕 환영의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주로 난을 피한 인조의 신하들이 군사를 몰아 가지고 다시 왕위 회복의 난리를 일으켰다. 이 난리에 있어서 이괄 일파가 이겼으면 '인조의 반란'이라 일컫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이괄이 참패를 하여 서울을 내어 버리고 달아나다가, 이천(利川)에서 자기의 부하에게 죽은 바 되고 다시 인조 복위의 세상이 되었다. 이리하여 이괄의 것은 '반정'이 아니고 '반란'으로 끝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머리가 어지럽도록 왕위가 변동될 동안도, 이 나라의 백성은 아주 무관심히 이를 보았다.

 

―웃사람은 웃사람.

 

―우리는 우리.

 

이렇게 갈라 붙이고 거기 대하여 참견을 하든가 간섭을 하든가 할 생각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자기네의 조반과 저녁에 분주하였다.

 

이 백성의 의견을 듣자면, 웃사람은 웃사람이요, 자기네는 아랫사람이거니, 무엇이든 명령을 하면 복종할 것이요, 또한 웃사람대로 존경을 하면 그뿐이지, 서로 아무 유기적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껏 자기네들을 사랑해 주는 인군(仁君)을 가져 보지 못한 이 백성에게는 웃사람에게 대하여는 당연히 바쳐야 할 존경의 염밖에는, 친애라든가 애모라든가 하는 관념을 가져보지 못하였다. 자기네 집 광의 쌀 항아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기네들의 쌀 항아리들을 긁어 가는) 웃사람에게 대하여 친애의 염이 생겨날 까닭이 없었다.

 

그런지라, 이 백성에게 있어서는 웃사람의 심부름꾼인 수령 방백들에게 대한 관념도 아주 담박한 것이었다. 웃사람의 심부름꾼이라 하는 노릇이거니 한다. 이 이상 별다른 관념을 가져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유유복종'―이것이 이 백성의 유일의 모토였다. 하라는 대로 하고―하기 싫으면 몰래 피하고―그뿐이지, 소위 거역을 하여 보지 않았다.

 

 


 

 

이 순하고 근하고 직하고 온화한 국민은, 몸이 비록 역경(逆境)에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단지 팔자로 돌려 버리고, 웃사람에게 대하여서는 절대 복종으로 종시하였다. 지금의 이 놀라운 학정의 아래서도 이 백성들은 연하여 자기의 팔자를 혀를 차며 조반과 저녁에 분주하였다. 누구를 원망하든가 불복을 한다든가 거역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알지도 못하는 순량한 백성이다.

 

그러나 온순함에도 한도가 있는 것이다. 웬만한 곤란은 모두 팔자 소관으로 단념하여 버리는 이 백성이로되, 참을 수 없게까지 곤란이 심해질 때는 드디어 들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임술년(壬戌年) 이월에는 진주에서 드디어 민요가 일어났다. 백성들은 모두 몽치와 대창을 가지고 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진주 이방을 박살하고 병사 백 낙신(白樂辛)을 잡아 내려고 돌아다녔다. 백 낙신의 횡포가 너무도 심하여, 이 온량한 백성으로도 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 보도가 조정에까지 이르른 때, 조정에서는 망지소조하였다. 아무런 짓을 하더라도 그냥 참는 이 백성의 이번의 봉기는, 궁중만 놀라게 하였을 뿐 아니라, 대신들도 어쩔 줄을 모르도록 놀랐다. 부호군 박 규수(副護軍朴珪壽)를 안핵사(按?使)로 파견하여 사실을 조사시켰다.

 

그런데 이 안핵사가 조정에 들어오기 전에 사월에 전라도 익산에서도 또 민요가 일어났다.

 

수천의 군중은 군청으로 달려 가서 군수 박희순(朴希淳)을 찾아 내려다가 찾지 못하고, 그 대신 박의 어머니를 찾았다. 박의 어머니를 찾아 낸 군중은 옷을 모두 찢어서 벌거벗기고 물과 비(?)를 가지고 박의 어머니의 하문(下門)을 닦으면서,

 

“이 구멍이 못되어서 못된 자식을 낳았다.”

 

고 야단들을 하였다.

 

이 보도가 조종에까지 들어온 때는 어진 상감도 종래 당신의 노염을 감추지 못하였다. 재상들 앞에서도 하고싶은 말씀도 못하고 어릿어릿하기만 하던 상감도, 이 때 뿐은 영의정 김좌근을 힐책하였다.

 

“수상, 이게 웬일이오니까? 어제는 진주, 오늘은 익산 백성에게 죄가 있는지, 방백 수령에게 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무슨 일이오니까? 모두 내가 불민한 탓일까?”

 

여기 대하여 좌근은 아무 말도 하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부호군 이 정현(副護軍李正鉉)을 안핵사로 즉시 파견을 하였다.

 

그런데 그 사월달에 또 경상도 개령(開寧)에 민요가 일어났다. 개령과 때를 같이하여 전라도 함평(咸平)서도 또한 민요가 일어났다.

 

연달아 일어나는 이 민요에 조정에서도 어찌하여야 할지 그 방책을 강구하지 못하였다. 진주 사건은 병사 백 낙신을 고금도(古今島)에 정배를 보내어 이렁저렁 결말을 짓고, 익산 사건은 군수 박희순을 벌을 하여 이렁저렁 결말을 짓기는 지었다. 그런데 그 해 동짓달에 함경도 함흥에도 또 사건이 생겼다. 민요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문제가 적지 않게 벌어져서 안핵사로 호군 이 참현(李參鉉)을 파견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서 계해년 정월에는 제주도(濟州島)에서 또 민요가 일어났다. 일 년이 못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여섯 번의 사건이 생겨난 것이었다. 위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다만 유유복종하던 이 온화하고 순한 백성의 속에도, 정도가 넘는 학정에 대하여는 맹렬히 반항하는 끊는 피가 있었던 것이다. 존경하면서도 또한 반항하지 않을 수 없는 자기네들의 기괴한 운명과 환경을 탄식하면서도, 이 백성들은 분수가 넘는 학정에 대하여는 드디어 반항을 하였다.

 

 


 

 

반항할 줄을 모르는 백성이 아니었다. 오직 착하고 어질고 순하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 대하여는 눈을 꾹 감고 참아 두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참다 참다 못하여 정 참을 수가 없게 되는 때에야 비로소 반항을 시험하여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순간 반항하여 본 뒤에는 또 다시 방관자의 태도로 돌아서고 마는 백성들―

 

이 일 년이 못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여섯 군데서나 분요가 일어난 일 때문에 당시의 정부의 주인인 김씨 일문은 쩔쩔매었다. 백성과 집권자의 사이의 의가 이렇듯 좋지 못하니 이 것이 웬일이냐고, 상감은 연하여 김좌근에게 꾸중을 하였다.

 

그것은 전대 미문의 일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한 곳에서 민요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 책임이 적지 않거늘, 여섯 군데서나 일어난 것은 정치가 얼마나 퇴폐하였는가를 여실히 증명하는 바로서, 그의 전 책임은 정부의 요로자가 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팔도 삼백여 주에 내보낸 방백 수령들은 모두 김씨 일문의 세력 아래서 나갔는지라, 그 책임 문제는 더욱 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씨네들은 연하여 머리를 모으고 회의를 하였다. 자기네들에게도 짐작이 안 가는 바가 아니어서, 이대로 버려 두었다가는 삼백여 주가 한 군데도 떼지 이러고 모두 한번씩 들고 일어설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지금 그렇지 않아도 자기네들의 세력에 흔들림이 기지 않을까 하여 내심 공황 중에 있던 그들이라, 이 민요 문제는 어떡허든 삭여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리하여 회의를 거듭한 결과 그들은 한 가지의 방책을 얻어 내었다.

 

백성들이 분요를 일으킴은 오랫동안 한 사람의 학정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학정이 그냥 계속된다 치더라도 학정하는 사람만 연하여 바꾸어서, 오늘은 이 사람의 학정, 내일은 저 사람의 학정, 모레는 또 다른 사람의 학정―이렇듯 학정하는 인물만 갈아 대면, 백성들은 누구에게 반항을 하여야 할지 분간하지를 못할 것이다.

 

즉, 갑 군수의 학정에 견디지 못하여 반항을 하여 보려고 서로 수군거릴 동안에, 갑 군수를 벌써 갈려서 다른 곳으로 가고 을 군수가 오게 되며, 또 병 군수로 갈리듯―이렇게 끊임없이 군수를 갈아 대기만 하면, 반항의 상대자를 얻지 못하여 백성들은 분요를 일으키지 못하리라, 이런 방책을 세우기로 하였다. 선정하는 사람을 보내서 어지러운 세태를 정돈시키려 하지 않고, 어지러움은 어지러움대로 두고 백성들이 들고 일어설 기회만 없게 하도록 방책을 세운 것이었다.

 

가뜩이나 잦던 수령들의 체변이 더욱 잦게 되었다.

 

조선 역사에 있어서 그 때만큼 지방관의 변동이 많은 때가 과거에 없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서 고종 황제 때에, 민 중전을 배경으로 민씨 일파의 매관 매작 때에 또한 그 때와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과거에 있어서는 그 때같이 변동이 잦던 때가 없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갈아 대었다. 신관의 환영연을 준비할 동안은 벌써 그 뒤에 다른 신관이 부임을 하여, 환영 준비를 하던 신관은 벌써 구관이 되어 버리고―그 새 신관도 또한 그렇고, 이렇듯 눈이 뒤집힐 지경으로 체변되었다.

 

그런지라, 많은 밑천을 들여서 수령 자리를 산 그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최대 스피이드로 긁어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임하러 내려가는 도중에서부터 벌써 착수를 하여, 부임하는 그 날부터 긁어 올리기를 시작하고 하였다.

 

녹아나는 자는 백성들뿐이었다. 그러나 김씨들의 예측과 같이 분요는 일으킬 겨를이 없었다. 일으키려면 벌써 다른 수령이 부임하게 되므로, 행여 이번이나 이번이나 하면서 이 놀라운 학정을 감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달아서 일어나는 각 곳의 민요는 이리하여 좀 머츰하여졌다.

 

 


 

 

“최 찬시, 상감마마께옵서 불러 계시오.”

 

계해년 십 이월 초 여드렛날, 내관(內官)방에서 동관들과 한담을 하고 있던 내시 최 만서는, 나인의 전령으로 황급히 옷깃을 바로잡고 대조전(大造殿) 동온돌(東溫突)로 가서 읍하여 영을 기다렸다.

 

“만서냐? 좀―좀…”

 

섣달 초순부터 상감은 환후가 심상하지 못하여, 모두 경계들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부름으로 말미암아 만서가 등대했을 때는, 상감은 든든히 모는 의대를 차리고 금침 위에 일어나 앉아 있었다.

 

“상감마마, 등대하왔삽니다.”

 

“응, 만서냐? 좀 부액할 내관을 몇 불러라.”

 

“어디 납시오니까?”

 

“뜰이라도―너무 적적해서…”

 

만서는 내시청에 연한 전령줄을 흔들어 불렀다. 그리고 몇 사람의 내시가 협력을 하여 상감을 부액하여 뜰로 산보를 나섰다.

 

혹혹 쏘는 바람이 추녀 끝에서 노래를 하는 겨울날이었다. 댓돌에 나서는 참, 상감은 찬 바람에 혹 하니 느끼었다.

 

“상감마마, 바람이 차옵니다.”

 

“응, 차다.”

 

“도로 듭시면…”

 

그러나 상감은 뜰을 향하여 발을 옮겼다. 환후가 중하여 누워 있던 상감이라, 허공을 짚는 것과 같은 걸음으로 내관들의 부축을 받은 채, 왼편 익각을 끼고 돌아서 차차 중희당 앞으로 돌아갔다.

 

중희당 앞에까지 이르러서 상감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중희당을 바라보았다. 선왕 헌종이 승하한 전각이었다.

 

잠시 중희당을 바라보다가 부액한 내관을 돌아다보았다.

 

“내 나이 서른 셋, 의롭고 괴롭게 삼십여 년을 보냈구나!”

 

“상감마마, 무슨 하교시오니까?”

 

“…”

 

상감은 다시 용안을 들었다. 그리고 고목이 울창한 비원 쪽을 한참 뜻 없이 바라보았다. 자유로운 강화도의 초동 생활에서 궁으로 들어와서, 그 이래 괴롭고 구애 많은 십 사 년 간의 생활을 추억하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비원만 바라보다가 용안을 만서에게로 조금 돌렸다.

 

십 사 년 간을 한결같이 상감께 등후한 만서는, 용안에 나타난 표정으로 어의를 짐작하였다.

 

“상감마마, 매화틀(便器)을 묘오리까?”

 

상감은 고요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 사람의 내관이 매화틀과 뒷목을 가지러 내조전 쪽으로 달려갔다.

 

 


 

 

그 달려가는 내관의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상감은 차차 차차 몸을 그 자리에 종그리었다. 다음 순간 상감은 내관들에게 부액을 받은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상감마마! 상감마마!”

 

“내가 임! 임…”

 

“상감마마!”

 

“임종이로다!”

 

“상감마마!”

 

“대조전…으로, 그리고 정승(정원용)을 불러라.”

 

이것이 상감에게서 나온 최후의 말이었다.

 

내관들이 망지소조하여 상감을 쓰러안아다가 대조전 동온돌에 모신 때는, 상감은 벌써 그 의식을 잃은 뒤였다. 누구 손 쓸 틈이 없었다. 중하던 환후가 오늘 약간 차도가 있는 듯하여, 내관들에게 부액을 받아서 뜰로 나섰다가 거기서 승하를 하였는지라, 남기고 싶은 말씀 한 마디 남길 기회가 없었다. 급보로 입궐하였던 대신들이 내전으로 달려 들어온 때는, 상감은 아직 맥은 약간 동하였지만 모든 의식을 잃은 뒤였다.

 

승후방에 있다가 상감의 승하한 것을 안 조성하는, 가슴이 덜컥하여 어찌하여야 할지 두서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성하는 승후방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금호문으로 향하여 달음질쳤다. 그러나 금호문까지 채 미치지 못하여 발을 돌이켰다. 처음에는 이 흉보에 겸한 길보를 흥선군에게 먼저 알리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순서로 조 대비께 먼저 가서 대비께 알리고 그 분부를 받아야 할 것이므로, 발을 대비전으로 돌이킨 것이었다.

 

“대비마마, 상감마마께옵서 승하하옵셨습니다.”

 

성하가 숨을 허덕이며 달려 들어와서 이렇게 아뢸 때 대비는 안색까지 변하며,

 

“그게 무슨 말이냐?”

 

고 재쳐 물었다.

 

청천의 벽력이었다. 그 사이 환후가 좋지 못하였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로되, 본시 약한 상감인지라, 이렇게 급변하리라고는 뜻도 안 하였던 일이었다. 오늘날이 언제 있을 줄을 예기하고, 흥선과 밀약을 맺은 지도 벌써 이 년 반, 밀약은 맺었지만 천명이 아닌 이상에는 어쩔 수 없는 오늘을 대비는 마음 조급히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성하가 자기의 아는껏 비교적 상세히 아뢸 동안, 대비는 눈을 힘 있게 감고 말 없이 듣고 있었다. 그 동안에 승전빛(承傳色)도 달려 와서 방금 대조전에서 생긴 크나큰 비극을 대비께 아뢰고, 어서 바삐 대조전으로 출어하기를 재촉하였다.

 

상감 승하한 이 날에 있어서도, 임시로나마 이 종실의 권세를 잡고, 안으로는 사직을 받들고 밖으로는 임금을 대리하여, 대신들에게 명령하고 지휘할 사람은 이 종실의 가장 어른되는 조 대비 한 사람 밖에는 없었다. 아직 침의대도 갈아 입지 못했으니, 갈아 입고 대조전으로 나간다고 승전빛을 돌려보내고 고요히 눈을 뜰 때는 대비의 꽤 주름살이 잡힌 눈에도 나란히 광채가 섰다.

 

“성하야!”

 

“네?”

 

“얼른 흥선 댁에 다녀오너라.”

 

“네…”

 

“가서 잠깐 내전까지 들어와 주십사고…”

 

“네.”

 

 


 

 

이리하여 성하를 내보낸 뒤에, 대비는 최씨를 불렀다. 그리고 갈아 입을 의대를 가져오라 분부하였다. 최씨는 분부에 의하여 즉시 옷을 가져왔다. 그러나 대비는 곧 갈아 입으려 하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한 지금이었지만, 오늘 일을 위하여 의논하여 둔 흥선의 지혜를, 대비는 지금 힘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갑자기 다닥친 일이거니, 어떻게 처치를 해야 하며 어떻게 사건을 진행을 시켜야 할지, 흥선과 한마디의 의논을 하고 싶었다. 그 때문에 시간을 보내려 부러 옷도 곧 갈아 입지 않고 꿈질거리고 있었다.

 

승전빛은 연하여 대비전으로 달려 왔다. 갑자기 당한 이 일에, 재상들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종실의 어른되는 대비의 처단을 받들고자, 승전빛을 들여보내서 대비의 출어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할 방책이 아직 서지 못한 대비는, 이제 나간다 이제 나간다 하여 승전빛을 모두 그냥 돌려 내보내고 하였다. 귀를 기울이면, 겨울 바람 소리에 섞여서 궁인들의 애곡성도 벌써 여기까지 들려 온다. 그것을 들으면서 대비는 천천히 옷을 갈아 입으며, 어서 흥선이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이 종실의 최고 권위인 대비―공공히 흥선을 불러서 계획을 세울지라도, 뉘라서 머리를 가로 저을 사람이 없는 신분이었다.

 

가마를 몰아 가지고 흥선 댁으로 달려 간 성하는, 누구를 부르지도 않고 대짜로 흥선의 정침으로 뛰쳐 들어갔다.

 

“대감!”

 

“어?”

 

흥선으로는 희귀한 일―무슨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흥선은 이 침입한에게 눈을 크게 하였다.

 

“대감! 국상 났습니다. 어서 납세요.”

 

흥선은 눈을 성하에게로 굴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오히려 온화한 음성이었다.

 

“전하께서 대조전서 승하하셨습니다. 어서 대비마마께 들어가 뵙고…”

 

흥선은 알아 들었다. 한 순간 몸을 흠칫하였다. 그런 뒤에 자기의 흥분을 삭이렴인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잠시 앉아 있다가. 흥선은 고요히 몸을 일으켜서 북쪽을 향하여 네 번 절하였다.

 

“그래서 대비마마께서 나를 부르시던가?”

 

“네, 어서 잠시 들어오십사고…”

 

“알았네. 나는 안 들어가는 편이 낫겠지. 공연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으니깐―대비마마께 들어가서 어보(御寶)를 얼른 간수하시라고―다른 손이 닿기 전에 어서 간수하시라고―나는 내일이고 모레고 조용히 들어가 뵙겠네.”

 

성하는 눈을 들어서 흥선을 보았다. 그러나 들던 눈을 도로 곧 아래로 떨어뜨렸다. 아랫목에 단정히 앉아 있는 그 인물―그것은 그 사이 늘 성하와 함께 술을 먹고 색항에 출입을 하던 그 흥선이 아니었다.

 

거대한 충동이 그의 마음에 생겼을 지금에 있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이 인물―지금 마음 속에는 어떤 배포를 꾸미고 있길래, 이런 비상한 경우에 다른 사람 같으면 순간을 유예하지 않고 대비께 달려갈 이 때에, 자기는 내일이나 모레쯤 들어갈 테니, 어서 다른 것은 그만두고 어보나 간수하기를 부탁하고 있나?

 

성하가 흥선의 집에서 나와서 다시 대궐로 들어가려고 몸을 가마에 실을 때에, 저 편에서 한 무리의 소년들이 연을 날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보매, 그 가운데는 흥선의 둘째아들 재황 소년도 바야흐로 자기의 다홍치마를 올리려고 얼레를 어르고 있는 즈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지금 연을 올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 소년의 위에, 이제 수삼 일 내로 떨어질 거대한 운명의 그림자를 생각할 때에, 성하는 멀리서나마 뜻하지 않고 그 소년에게 허리를 굽혔다.

 

―올리십시오. 하늘 끝까지 올리십시오. 지금 바야흐로 올라가려는 당신의 운명과 같이, 높이 높이 하늘 닿은 곳으로!

 

 


 

 

다시 대궐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가마에 몸을 싣고 성하는 몸을 틀어 가면서, 소년들의 노는 양을 돌아보면서 속으로 축수하고 축수하였다.

 

다시 금호문 밖에서 가마를 버리고 대궐 안으로 들어서매, 대조전이며 그 익각에서는 남녀의 곡성이 은은히 들려왔다. 대조전 댓돌 위에는 변을 듣고 달려 온 재상들의 신발이 어지러이 놓여 있고, 내관들이 분주히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단숨에 대비전까지 들어가 보매, 대비는 성하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하여 벌써 대조전으로 나간 뒤였다. 성하는 대조전으로 돌아서 나왔다. 승후관인 자기로도 들어갈 기회가 없을까 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누르면서 대조전을 두고 빙빙 돌고 있었다.

 

수심과 슬픔으로 찬 대조전에 대비의 임어―재상들이 좌우편으로 갈라 앉은 가운뎃길로 대비는 여관 몇 명을 거느리고 고요히 걸어서 영해의 침두에 가서 앉았다. 준비하였던 발이 대비의 앞에 늘이어졌다.

 

대비의 임어와 동시에 한 바탕의 곡성이 다시 울렸다. 대비도 영해의 앞에 꿇어 앉았다. 그리고 여관과 함께 대행왕의 천추를 곡하였다. 이윽고 대신들을 향하여 앉은 때에는 대비의 얼굴에는 약간 흥분의 빛이 나돌았다.

 

전내는 다시 조용하여졌다. 뒤에서 이전에 총애를 받은 많은 비빈들의 느끼는 소리만 은연히 들렸다. 이러한 가운데서 대비의 말이 고요히 울렸다.

 

“망국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소이다. 그러나 망극하다고 그저 가만히 있지 못할 일이니, 일의 처리를 차비하여야겠소. 정 돈녕(정원용) 대감은 선왕 헌종께서 승하하옵신 때에도 원상(院相―임금 승하한 뒤에 임시로 대소 정사를 맡아 보는 벼슬)으로서 일을 처리한 경험이 있으니 이번도 일을 보아 주시오.”

 

발을 통하여 보이는 늙은 재상 정원용은 영을 복종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땅에 대었다.

 

“그리고…”

 

거대한 씨름이었다. 지금부터 십 사 년 전 대비의 사랑하는 아드님 헌종이 승하한 때에 대비 당신이 경험한 쓰디쓴 일을 바야흐로 김씨 일문에게 내려 씌우려는 대비는, 당신의 마음을 누르고 또 눌렀지만, 마음에 일어나는 흥분을 더 감추기는 힘들었다.

 

“어보(御寶)는 내가 임시 맡아 둡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파, 어보를 맡는달사 무엇에 쓰리마는, 어보는 하루도 버려 둘 수 없으니 내가 맡아 둡시다.”

 

대비는 여관을 돌아보았다.

 

“어보를 모셔라.”

 

여관이 가져다 바치는 어보를 손으로 더듬어 받으면서, 대비는 발을 통하여 김씨 일문의 동정을 내다보았다.

 

임금의 승하를 곡하고자 들어왔던 김씨 일문은, 대비에게서 어보의 한 마디가 나올 때에, 분명히 대비의 예기한 이상으로 놀라는 모양이었다. 공손히 머리를 수그리고 있던 그들이, 그 순간 겁먹은 듯한 눈으로 발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대비는 더듬어서 어보를 양 손으로 받들었다. 그런 뒤에 무릎 앞에 놓았다. 김문을 대표하는 영의정 김좌근이 드디어 한 마디 하여 보지 않고는 못 견디었다.

 

“대비전마마!”

 

“?”

 

“나라에는 하루도 상감 안 계실 수 없사오니, 거기 대한 하교 계오시기를 바라옵니다.”

 

“너무도 창황 중의 일이라, 나도 미리 생각한 바가 없고 대신들도 역시 그럴 터이니, 닷새 동안을 잘 생각해서 닷새 뒤에 의논을 하도록 합시다. 그 동안은 무식하나마 이 노파가 대리를 보리다.”

 

무법한 하교였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국모(國母)의 한 마디―뉘라서 감히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원상, 전후의 일을 착오 없도록 수고하시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대비는 여관에게 눈짓하여 어보를 받들어 앞세우고, 다른 여관들의 부축을 받아 당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어보를 받들고 돌아가는 이 대비의 양을 김씨 일가들은 모두 닭 쫓던 개 모양으로, 눈이 퀭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임금의 붕어를 통곡할 줄도 잊어버리고, 마치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이리하여 국왕의 권위를 자랑하는 옥새는 대왕대비 조씨의 손으로 들어갔다.

 

즉일로 국상은 반포되었다. 비록 재위 중에 후세에 남길 만한 특별한 시경은 없었으나, 십 사 년 간을 삼천리 강토에 군림하였던 임금의 붕어에 대하여, 온 국민은 흰 갓과 흰 옷과 흰 신으로 조의를 나타내었다.

 

그 날 밤 차디찬 동북풍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흥선도 백립을 마련해 쓰고 대비께 뵈려고 대궐로 향하였다.

 

금호문까지 이르러서 거기서 나오는 김병기의 행차와 마주쳐서, 얼른 외면을 하고 그저 지나가 버렸다. 아직 장래가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는 찰나에, 대궐 문에서 병기를 만났다가는, 약빠른 병기에게 기수를 채이고, 기수를 채이면 일이 어떻게 뒤집힐는지 알 수 없으므로 피하여 버린 것이었다.

 

혹혹 쏘는 찬 바람에 팔짱을 깊이 찌르고, 금호문을 지나서 대궐 담을 끼고 거의 사원전 앞에까지 갔다가 다시 금호문 쪽으로 돌아서서 왔다. 그러나 흥선이 바야흐로 궐 안에 들어가려 할 때에, 궐에서는 또한 무리의 사람이 밀려 나왔다. 비껴 서면서 보니 왕비의 오라버니되는 병필이었다.

 

“음, 재수 없군!”

 

두 번이나 들어가려다가 들어가지 못한 흥선은 드디어 발을 돌이켰다. 재수 없는 이 밤은 그냥 지나고, 밝은 날 다시 틈을 얻어서 들어가서, 천천히 대비와 선후책을 강구하기로 하고 집으로 발을 돌이켰다. 거대한 운명의 열매는 지금 자기의 눈 앞 삼 척 되는 거리에 늘어져 있다. 이제는 손만 한 번 내밀면 넉넉히 딸 수가 있다.

 

제 속 가진 사람으로는 능히 참을 수 없는 온갖 수모요 멸시를 쓰다 하지 않고 받아 오면서,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 비굴한 웃음을 억지로 웃어 가면서 지난 십 여 년의 날짜의 기억이, 벌꺽벌꺽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본시 어버이에게 받아서 타고난 조급한 성미, 노염 많은 성미―이것을 모두 감쪽같이 감추고, 자기의 인격을 가식하느라고 쓴 그 애는 얼마나 컸던가? 지금 이 노력의 열매는 바야흐로 익었다. 

 

자기의 일거수면 넉넉히 따서 주머니에 넣을 수가 있다.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김병기에게 참을 수 없는 수모를 받고도, 억지의 웃음으로 자기의 감정을 속이지 않을 수 없던 과거―생각하면 얼굴에 피가 솟아오르는 노릇이었다. 불끈 쥐어지는 주먹을 슬며시 도로 펼 때마다, 남 모르는 피눈물을 얼마나 속으로 흘렸던가? 그러나 그 때에 용하게 참은 덕택으로 자기의 생명을 곱게 보전하여, 이제 영광스런 열매를 눈 앞에 보는 오늘을 맞게 되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서 어두운 거리를 걸을 때에 흥선은 추위도 감각하지 못하였다. 습관상 팔짱은 깊이 찔렀으나, 쏘는 바람도 그의 속까지 침범하지 못하였다.

 

눈을 들어서 둘러 보매, 새까만 밤의 장막에 감추인 고요한 장안―지금 한 임금을 잃고 새 임금(누구인지 지금은 짐작도 가지 않는)을 맞으려는 장안―그 아래는 무수한 창생이 겨울의 아랫목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위에 복을 주고 그들을 위해 안락을 줄 자는…”

 

아아! 어제까지도 자기의 술친구요 투전 동무이던 이 시민들―수백 년 간의 악정 때문에 머리를 들 기운도 없는 이 백성들―이 친구, 이 시민, 이 백성들에게 복을 주고 안락을 줄 자는, 그들의 이해자요 또한 가까운 장래에(십상 팔구) 이 나라의 왕의 왕이 될 자기 밖에는 없다.

 

겨울의 혹독한 바람을 받고 그 때문에 찡그러지려던 흥선의 얼굴은 도리어 이 때에 빙긋이 미소가 떠올랐다. 어디선가 멀리서 헛개 짖는 소리가 났다.

 

조 대비와 흥선의 밀의―

 

대비는 흥선의 내어 놓은 종이를 받아 들고 묵묵히 보고 있었다.

 

“대비전마마, 아드님을 두시고도 절사(絶嗣)가 되오신 익종 대왕의 대를 이번 기회에 부활시키도록 하시옵소서.”

 

 


 

 

대비의 지아버님 익종의 대를 부활시키자는 데 대하여 대비에게 이의가 있을 까닭이 없었다. 흥선이 내어놓은 계통표를 묵묵히 보고 있지만 대비에게도 적이 희색이 나돌았다.

 

“마음을 굳게 잡수십시오. 무론 김문에서는 반대가 있을 것이옵니다. 반대로 적지 않는 반대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지만 대비마마의 하교는 지금에 있어서는 국명―뉘라서 끝까지 거역은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대비의 입이 비로소 열렸다.

 

“나도 무론 내 힘껏은 하겠지만, 대감도 든든히 준비하시고 장사(壯士)라도 몇 십명 마련했다가, 여차하는 날에는 틀림이 없도록 하시오.”

 

흥선은 반대하였다.

 

“아니옵니다. 장사의 힘을 빌어서야 될 일이면 신은 본시부터 마음도 내지 않겠습니다. 마마께옵서만 마음을 강하게 잡수시면 평온리에 넉넉히 될 일―왜 구태여 그런 준비까지 하겠습니까?”

 

“그래도 김가들이 그냥 반대를 하면?”

 

“아니옵니다. 다른 분을 추대한다면 혹은 김씨들은 굉장히 반대하올지도 모르지만, 신은 김씨들에게 수모는 받았을지언정 김씨들이 신을 무서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깐 종실의 다른 분을 추대하는 것보다는 신을 오히려 쉽게 볼 테니깐 극력 반대는 안 하오리다.”

 

이 날에 있어서 이 말 한 마디를 장담하기 위해서 그 사이 받은 비웃음과 수모―그 모든 것을 여기서 한 마디 펴 놓을 때는, 흥선은 마치 체기가 내려가는 것같이 가슴이 시원함을 느꼈다. 여인의 몸으로서 지금 이 나라의 온 권세를 한 손에 잡은 대비는, 흥선의 코치에 그저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리하여 모든 일은 흥선의 의견대로 진행되었다. 그 사이 십여 년 간을 몽상과 같이 닦고 또 닦았던 흥선의 계획은 차차 실현되기 비롯하였다.

 

대궐에서 조 대비와 흥선의 밀의를 거듭할 때에, 김씨 문중에서도 또한 김씨로서 회의가 열렸다.

 

살아 있었으면 당연히 이 회의의 어른이 될 영은 부원군 김문근(金汶根)은 불행히 작년에 별세를 하여 그 자리에 못 오고, 영의정 김좌근, 그 아들 김병기, 조카 병학, 병국, 병필, 병덕, 일족 김흥근 등이 모인 이 좌석에는 김좌근이 좌장이 되어 회의라 열렸다.

 

일가붙이의 막다른 골목―지금 자기네들의 발 아래 뚫린 커다란 구렁텅이를 들여다보며 그들은 전전긍긍히 의논하였다.

 

이런 경우에 임하여 언제든 기묘한 꾀를 내어서 난국을 타개하는 재간을 가진 김병기도 이 날뿐은 아무 의견도 내지를 못하였다.

 

“자, 말들을 하게. 어떻게 했으면 좋은가?”

 

김좌근이 허연 머리를 들면서 이렇게 의견을 물었지만 거기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 그 사이에 자기네의 세도를 자제삼아, 종친이라도 종친에게는 모두 원한을 진 자기네의 일이었다. 대행왕에게 아드님이라도 있으면이어니와, 그렇지 못한 지금에 있어서 어느 종친 한 사람, 자기네 일족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다.

 

혹은 생질이 되며, 혹은 외손자가 되는 정당한 왕자가 없고, 종친 가운데서 누구를 모셔 오지 않으면 안 될 지금에 있어서는, 그들은 자기네의 입으로 지정할 만한 적당한 사람을 가지지를 못하였다. 서로 묵묵히 다른 사람의 입만 쳐다볼 뿐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들은 자기네 일족의 몰락을 분명히 직각하였다. 순조 대왕의 대로부터 지금까지 삼 대째 보름달과 같이 빛나는 영화에 취하여 있던 그들은, 지금 자기네의 앞에 이른 몰락의 구렁텅이를 보았다.

 

“아버님!”

 

드디어 병기가 입을 열었다.

 

“결과를 기다릴 밖에는 도리가 없겠습니다. 대왕대비전의 일존에 달린 것이매, 여기서 이렇다 저렇다 하면 무얼 하겠습니까? 결과를 보아서 어떡허든 선후책을 강구하여야지 그 밖에는 도리가 없겠습니다.”

 

“만약 대비마마께서 어느 분을 추천하느냐는 하문이 계시면?”

 

“그 때는 누구든 종실 중 왕자의 덕을 가진 분을 한 분 추천할 따름이올씨다.”

 

“그게 누구냐 말이다?”

 

“생각하고 연구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은 하였다. 그러나 이 좌석에서 가장 이번의 일에 마음 태우는 사람은 병기였다. 김문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고 또한 어린 만큼 교하고 혈기 많은 병기는, 따라서 가장 종친들에게 미움 살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그 날의 회의는 아무 결론도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 산회를 하게 되었다. 누구 그럴 듯한 종친을 한 사람씩 마음에 먹어 두었다가, 이제 열 사흗날 대비의 앞에서 회의가 열릴 때에 추천을 하기로 작정을 하고 제각기 헤어졌다.

 

나올 때에 병기가 병학을 붙들었다.

 

“형님!”

 

“?”

 

“더 생각할 여지도 없습니다. 몰락이올씨다. 요행 생명이 부지되면, 시골로 피해서 학이나 희롱하며 여생을 보냈지, 더 생각하고 연구할 나위가 없습니다.”

 

거기 대하여 병학도 탄식하였다.

 

“잘 생각했네. 그렇지만 생명이 부지될지 어떨지 그것부터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천명―인력으로는 무가내하올씨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한 병학을 버려 두고 자기의 행차로 달려갔다.

 

 


 

 

“재황이 좀 불러 오시오.”

 

흥선이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부인은 종에게 분부하였다. 잠시 뒤에 한길에서 연을 날리고 있던 재황 소년은, 얼굴과 손등이 새빨갛게 되어 가지고 연과 얼레를 든 채 들어왔다.

 

“부르셨세요?”

 

“오냐, 거기 앉아라.”

 

소년은 아버지가 지시하는 자리에 앉았다. 자기가 지시한 자리에 앉은 소년을 흥선은 한참 동안을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님, 왜 부르셨세요?”

 

그러나 흥선은 역시 말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이 소년의 위에 바야흐로 떨어지려는 커다란 운명을 생각할 때에, 흥선은 기쁘다기보다도 놀랍다기보다도 오히려 송구하였다.

 

“부인!”

 

“네?”

 

말하여 주고 싶었다. 말은 목젖에까지 와서 돌아왔다.

 

―얘는 내일 모레면 삼천리 강토의 지배자가 될 애외다.

 

목젖까지 나와 도는 이 말을 흥선은 꿀꺽 삼켰다.

 

“얘게 맞게 천담포, 복건, 모두 지어 두었겠지요?”

 

“네, 지어는 두었습니다.”

 

지어는 두었지만 언제 쓸 것이오니까 하는 뜻이었다.

 

흥선은 의아하여하는 부인을 버려두고 이번엔 소년에게 향하였다.

 

“야!”

 

“네?”

 

“한 마디 묻는다.”

 

“네.”

 

“내가 네게 무엇이 되느냐?”

 

“아버님이올씨다.”

 

흥선은 이번은 손을 들어서 부인을 가르켰다.

 

“저이는?”

 

“어머님.”

 

아아! 이 소년의 입에서 아버님 소리를 들을 날도 이제 며칠이나 남았나? 이 소년에게 향하여 오냐를 할 날도 이제 며칠이나 남았나?

 

가까운 장래에는 '하시오'로도 당하지 못할 귀한 몸이 될 소년이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흥선은 그 영화를 축복하면서도 또한 한편으로는 마음에 일어나는 적막감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야, 나는 너의 아버지, 저이는 너의 어머니지만, 아버지고도 아버지가 안 되고 어머니고도 어머니가 못 되는 수도 있다. 알아 두어라.”

 

소년은 무슨 뜻인지 알아 듣지 못하였다. 의아한 듯이 아버지를 우러러보았다. 그 소년의 눈을 피하면서 흥선은 담뱃대를 끌어당겨서 담배를 담았다. 영특한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뛰어 나와서 화로에 성냥을 그어 대었다. 아들이 그어 대는 담배를 힘있게 빨면서, 연기 틈으로 아들의 고치와 같은 타원형의 예쁘장스런 얼굴을 볼 때에, 흥선의 마음에는 더욱 적적함이 더하였다.

 

 


 

 

그 날, 아이들이 다 잠들기를 기다려서 흥선은 다시 내실로 들어가서 부인에게 자기의 지금 계획하는 커다란 음모(?)를 말하였다. 부인은 깜짝 놀랐다. 반신반의하였다. 너무도 의외의 말인지라, 부인으로서는 얼른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 말이 과히 엉터리 없는 말이 아닌 줄 짐작이 갈 때에, 부인은 기뻐하기 전에 먼저 탄식하였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착하고 어진 부인은 이런 경우에 임하여서도 자식의 위에 임한 영화보다도 먼저 자식의 안위를 근심하는 것이었다.

 

종가의 며느리로 들어온 부인은, 아직껏 역사상에 왕위 때문에 흘린 많고 많은 피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는 것이었다. 불행한 왕위보다는 안온한 빈공자(貧公子)의 생활이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더욱 달가왔다. 국상이 반포된 이래 조성하는 여간 분주하지 않았다.

 

벼슬이 승후관에 있으며 임금 없는 지금은 좀 한가할 것이로되, 별다른 임무를 진 성하는 잠시도 엉덩이를 붙일 겨를이 없었다.

 

하루에도 두 번, 세 번씩 흥선 댁에서 대비께로, 대비께서 흥선 댁으로 왔다 갔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차 성하는 흥선을 알았다. 그 기괴한 인격과 기괴한 성격을 보고, 이런 가운데도 흥선 본래의 면목이 따로 있나 하고 반의로 지내던 성하는, 이번에 비로소 흥선 본래의 면목을 보았다. 아직껏 권문들에게 대하여 그렇듯 비굴한 웃음을 웃어가면서 부회하던 흥선이, 사건이 한 번 뒤집히게 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떠한 권력, 어떠한 세도도 모두 초개같이 보았다.

 

“대비께 이렇게 가서 여쭈게. 그리고 또 이렇게 이렇게 합시사고 여쭈게.”

 

각각으로 변하여 가는 동태에, 새로 새 지휘를 연하여 하며, 거기 대하여 만약 성하의 입에서 시의 권문들을 꺼리는 말이라도 나오면,

 

“천작이 막여일봉(千雀莫如一鳳)이라, 내게 심산이 있으니 아무 걱정 말게.”

 

하고 퉁겨 버렸다.

 

일변 대비께로, 혹은 원상 정원용에게로, 또는 좌의정 조두순(趙斗淳)에게로 흥선의 전갈을 받아 가지고 갔다 올 때마다 성하는 흥선의 심산(心算), 흥선의 궁리가 놀랍게도 정확히 들어가 맞는 데 경이의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편지인지는 모르지만, 흥선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좌의정 조두순을 찾을 때, 성하는 무론 조두순에게서 좋은 대답이 있을 줄은 뜻도 안 하였다.

 

근엄하기 짝이 없고 흥선 같은 영락된 인물은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을 두순인지라, 흥선의 편지를 받을지라도 내버리지 않고 펴 보기나 하면 상의 상이거니 이만큼 생각하고 갔더니, 조두순은 펴 볼 뿐 아니라 두 번, 세 번을 다시 보고 그리고 한참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한 뒤에,

 

“대감께 가거든 염려 맙시사고 여쭈오.”

 

하고 흔연히 승낙하였다. 이렇게 자기의 사랑에 들여박혀 성하를 내세워서 좌우편으로 운동해 나아가는 일이로되, 일호의 착오도 없이 순조로이 진행되는 것을 볼 때에, 성하는 흥선의 놀라운 통찰력과 지력에 경복하였다.

 

성하는 여기서 잠든 사자의 일어남을 보았다. 비로소 앞다리를 뻗치며 기지개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사자가 한 번 포함성을 지르며 일어날 때에, 쇠잔한 이 삼천리 강토는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이었다.

 

그것은 빛나는 나라일 것이다. 부강한 백성일 것이다. 가멸은 강토일 것이다. 그리고 위와 아래가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평화의 왕국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장래의 빛나는 나라와, 그 때 이 잠에서 깨어난 사자 아래서 활동을 할 자기를 생각해 볼 때에, 젊은 성하의 마음은 누르려야 떠오르는 흥분을 온전히 눌러 버릴 수가 없었다.

 

 


 

 

흥선 댁에서 대궐로, 대궐에서 원로들의 댁으로, 엉덩이를 붙일 겨를이 없도록 돌아 다니는 성하로되, 그는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어서 날이 지나서 정식으로 신왕이 결정되고, 그뒤에 또한 전무(前無)한 제도―국왕의 사친(私親)의 섭정(攝政)의 날이 나타나기를 마음 조이며 기다렸다.

 

이리하여 꿈결같이 닷새가 지나고 드디어 열 사흗날이 이르렀다. 대비의 앞에서 새 왕을 결정할 중대한 회의를 여는 날이었다.

 

창덕궁 희정당―대왕대비 어전 회의―

 

발 뒤에는 오늘의 절대 권리자 조 대비가 여관 여섯 명을 거느리고 임하였다.

 

순원왕후와 대행왕비의 두 분 김씨의 일문을 대표하는 김좌근, 감흥근, 김병기, 김병덕, 김병필, 김병학, 김병국의 모든 김족이며, 헌종비 홍씨를 대표하는 홍순복이며, 원로로 정원용, 조두순 등, 그 밖에 홍안 소년 한 사람이 끼어 있는 것이 이채였다. 조 대비의 조카 성하였다.

 

몸은 한 개의 승후관에 지나지 못하나, 오늘의 최고 권위자인 조 대비의 조카며, 흥선과 대비에게 중대한 역할을 맡은 성하는, 대비 임어와 함께 대비의 뒤를 따라서 들어온 것이었다. 같은 외척이요, 헌종의 외사촌 동생이요, 종실의 어른 조 대비의 조카로되, 김씨 일문의 세력에 눌려서 겨우 승후관 한 자리로써 명맥을 보전하여 오던 성하는, 오늘은 조 대비의 일족을 대표하는 당당한 척신의 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임한 것이었다.

 

“대왕대비전마마, 막중막대한 일이옵니다. 마음에 계오신 대로 하교해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원상 정원용이 끓어 엎디어 아뢰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노파―먼저 원로 대신들의 의견을 들읍시다.”

 

냉정한 대비의 말이었다.

 

오십까지 시어머님 대왕대비 김씨를 섬기며 자기의 온갖 감정을 감쪽같이 감추기에 단련된 조 대비는, 이런 때에 임하여서도 냉정한 한 마디를 먼저 던져 보았다.

 

그러나 거기 대하여 대신들의 의향은 즉시 나오지 않았다. 무론 어떠한 의향은 있을 것이로되, 국면이 어떻게 전환될지 예측할 수 없는 이 자리에서 덜컥 자기의 의견을 먼저 말하기를 꺼리었다. 다른 사람에게서 무슨 말이 나오면 거기 반대를 하든가, 찬성을 하든가 하여 비로소 자기의 의향을 말할 예산으로, 모두 묵묵히 남의 입만 바라보았다.

 

이번엔 조두순이 아뢰었다.

 

“대왕대비전마마, 이 일은 신 등의 의향뿐으로 결정하지 못한 중대한 일이옵니다. 마마의 심중에 곕신 대로 하교해 주시옵기 바라옵니다.”

 

잠시 말이 끊어졌다. 잠시 있다가 겨우 입을 연 때는, 오십이 훨씬 넘은 대비의 얼굴에도 약간 붉은 흥분이 돌았다. 이제는 수속상 대신들의 의향을 물었는지라, 남은 것은 대비 당신의 의향을 말할 과정이었다. 말을 꺼낼 때는 대비는 음성조차 약간 떨렸다.

 

“대신들의 의향이 그러니, 그럼 내 뜻을 말하리다. 국정이 어지럽고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지금, 한 때도 국왕 없이는 지내지 못할 테니,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 재황이를 익성군(翼成君)으로 봉해서, 이미 절사된 익종 대왕의 대통을 부활하게 하도록 하시오.”

 

 


 

 

청천의 벼락이었다. 순서를 따지자면 대신들이 의향을 내고, 대비는 단지 그 결정만 할 것이어늘, 여기서 대비는 나아가서 그 승통자를 지정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 지정이 다른 사람도 아니요, 종실 친척 중 가장 영락되어 사람의 대접을 받지도 못하는 흥선군의 아들이었다.

 

대신들 가운데 감정의 동요가 분명히 일어났다. 그것을 대표하여 김좌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왕대비전마마, 흥선군은 대행왕 전하의 육촌 백씨로서 그다지 먼 종친은 아닙지만, 그 집안이 너무도 영락돼서 임금의 친가로서는 혹은 좀 부적당하지 않을까 하옵니다.”

 

이 말에 대하여 대비가 대답하기 전에 가로 뚫고 나선 것은 조성하였다. 격식으로 말하자면 대신들의 의논에 어디 뛰어들 자격이 못 되지만, 오늘의 중대한 역할을 맡은 성하는 격식을 무시하고 뛰쳐들었다.

 

“영상 합하!”

 

어디 감히 부르지도 못할 명사를 부르면서 성하는 한 무릎 앞으로 나왔다.

 

“재산이 없으면 가정이 영락되는 것은 정한 이치―영락되었다고 그 사람의 본질까지 더럽는 바가 아니올씨다. 대행왕 전하께서도 본시는 강화서 한미한 생활을 합신 일은 대감도 모르시는 바가 아니겠습니다. 흥선군의 둘째 도령으로 만약 왕자의 그릇이 못 된다 하면 모르거니와, 생활이 영락되었으니 좋지 못하다는 것은 일국의 수상의 말씀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대답한 말에 얼굴까지 검붉게 하고 성하를 노려 본 것은 하옥 김좌근의 아들 병기였다.

 

“여보!”

 

'이놈'이라 부르지 않은 것은 병기의 최대 관용이었다.

 

“당신은 웬 사람이기에 이 좌석이 무슨 좌석이라고 외람되이 주둥이를 놀리오?”

 

“나 말씀이오?”

 

이 때의 성하는 벌써 '소인'이 아니었다.

 

“나도 대감네들과 마찬가지로 외척의 한 사람―”

 

“외척? 외척이라도 이 좌석은 대비전마마와 재상들이 중대한 의논을 하는 좌석―잡인이 섞이지 못할 좌석이니 냉큼 나가오.”

 

그러나 성하는 대척하지 않았다.

 

“나도 대비전마마의 분부로써 오늘 이 좌석에서 한 마디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오.”

 

차차 격론으로 되어 가려는 것을 발 안의 대비가 말렸다.

 

“성하, 잠시 조용해라. 김 찬성도 조용하고…자, 수상의 의향을 들었으니 이번은 원상의 의향을 들어 봅시다.”

 

사 대의 임금을 먼저 보내고 지금 오 대째의 임금을 맞으려는 백발 재상 정원용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대왕대비전마마의 하교에 대하여 신이야 어찌 다른 의견이 있사오리까? 분부대로 거행할 따름이옵니다.”

 

“그럼 좌상의 의견은?”

 

“신도 어찌 다른 의견이 있사오리까? 대왕대비전마마의 하비(下批)는 신으로서는 용훼(容喙)하지 못하는 법이오니 처분대로 거행할 따름이옵니다.”

 

 


 

 

흥선의 편지로써 벌써 마음이 돌아선 조두순은, 대비의 말에 이의를 제출하는 김좌근을 도리어 잘못하였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이번은 어디 좌찬성의 의견을…”

 

“신은 반대하옵니다. 우리나라에 본시 생존한 대원군이 없었사온데, 흥선군의 둘째도령을 영립하오면 흥선군의 대우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왕 이상의 존위는 없는 바오매, 왕도 아니며 신하도 아닌 흥선을 마련할 자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구나 흥선군은 허튼 바탕에 드나들고 허튼 사람들과 교제를 하와, 명문답지 못한 언행이 많으와 왕친으로서의 재목이 못 되는 인물이옵니다.”

 

사활의 분기선이었다. 만약 흥선의 둘째도령을 영립하고 흥선으로서 권세를 잡게 하였다가는, 자기의 지위는커녕 생명까지 위태로운 병기는 악을 써 가면서 반대를 하였다. 김문의 군자(君子)인 유관 대신 김흥근(遊觀大臣金興根)이며, 그 아들 병덕이며, 흥선과 비교적 가까이 사귄 병학, 병국의 형제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차례로 의견을 다 물은 뒤에 대비는 고요히 입을 열었다.

 

“여러 원로 대신들과 의견은 다 들었소이다. 혹은 가하다 하고 혹은 부하다 해서 대신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못하나, 의견을 물은 것은 단지 참고하고자 물은 뿐, 승통에 대해서는 내 이미 마음으로 작정한 바이니 그리 아시오.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도령 재황을 익성군으로 봉해서 익종 대왕의 대통을 잇도록!”

 

최후의 거탈은 드디어 던져졌다. 재상들에게 그 가부를 묻는다면 이어니와, 이미 대비가 스스로 작정하였다 하는 이상에는 움직일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 거탄은 김문의 권세로써도 어찌하지 못할 종류의 거탄이었다.

 

정원용이 한 무릎 앞으로 다가 앉았다.

 

“대왕대비전마마, 분부는 받자왔습니다. 그러나 구전뿐으로는 후일의 증빙이 되지 못하니, 언교(諺敎―한글교서)를 내려 줍시기로 아뢰옵니다.”

 

대비는 여관을 돌아보았다. 한 사람의 여관이 조금 발을 들었다. 언교를 싼 붉은 보를 받들고 있다. 다른 여관이 발 아래로 그것을 내밀었다. 미리 준비되었던 것이었다. 도승지(都承旨) 민 치상(閔致庠)이 무릎걸음으로 나아가서 언교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원상 정원용에게 바쳤다.

 

“흥선군의 둘째아들을 익성군으로 봉하여 익종의 대통을 잇게 하라.”

 

재상들이 차례로 언교를 본 뒤에, 도승지 민 치상이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읽었다.

 

“대비전마마, 틀림이 없사옵니까?”

 

“없소이다.”

 

잠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언교는 이미 내리고, 그 언교가 도승지의 손으로 넘어간 이상에는 이젠 움직일 수 없는 일이었다.

 

 


 

 

“원상!”

 

발 안의 대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령하왔습니다.”

 

“이젠 대통도 결정되었소이다. 용상 맡으실 분을 어서 모셔 오도록 그 차비를 대시오.”

 

“즉시 거행하겠사옵니다.”

 

이젠 대사가 결정된 자리에 앉아서, 조성하는 눈을 굴려서 전내를 살펴보았다. 정원용, 조두순 등 원로 대신은 단지 어명을 복종한다는 엄숙한 표정만 나타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조금 눈을 더 굴려서 영의정 김좌근을 보매, 백두의 이 재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을 검붉게 하고 묵묵히 방바닥만 굽어보고 있었다. 병기는 나이가 젊으니만큼 분명히 그의 얼굴에서 흥분과 절망의 그림자를 감추지 못하였다. 연하여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품이 마음에 커다란 불안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일찍이 이런 중대한 회의에 참여하여 보지 못한 성하는, 적지 않은 흥분과 호기심으로써 둘러보았다.

 

―당신네들의 몰락이외다. 당신네들의 세도가 한 천 년 갈 줄로 믿었습니까? 여름 날 한 떨기의 꽃, 시들 날이 있을 줄을 몰랐습니까?

 

이윽고 대비는 여관들을 거느리고 내전으로 들어갔다. 대비가 돌아간 뒤에는 재상들은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다만 도승지 민 치상의 지휘로 사관(史官)이 오늘의 경과를 기록하느라고 분주히 붓을 놀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영상!”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정원용이었다.

 

“네?”

 

좌근이 흠칫하여 대답하였다.

 

“자, 봉영의 차비를 댑시다. 대감이 민 승지를 데리고 흥선군 댁에 가셔서, 익성군을 모셔 오십시오.”

 

“네…”

 

대답은 하였으나 기운 없는 대답이었다.

 

“민 승지! 영감은 수상을 모시고 흥선군 댁으로 가도록 차비하게.”

 

그리고 이번은 훈련대장 김병국을 돌아보았다.

 

“대장! 대장은 어서 나가서 익성군을 봉영할 의장병을 준비하도록 마련하시오.”

 

금년에 나이 여든 하나―그 육십여 년을 벼슬을 산 늙은 재상 정원용은, 이런 경우를 당하여 일호의 착오없이 지휘를 하여 원상인 자기의 직책을 다하였다.

 

이리하여 신왕을 맞을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운현궁의 봄 6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