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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방정환(方定煥, 1899-1931) : 호 소파(小波). 서울 출생.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보성전문(普成專門)을 마친 후 일본 도요(東洋)대학 철학과를 수학했다.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신청년> <신여성> <학생> 등의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동화대회, 소년문제 강연회, 아동예술 강습회, 소년지도자대회 등을 주재, 계몽운동과 아동문화운동에 앞장섰다. 창작동화와 번역·번안 동화와 수필과 평론을 통해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을 하였다. 1940년 <소파전집(小波全集)>을 간행하고, 광복 후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 <소파 동화독본> 5권을 펴냈다. 새싹회에서는 '소파상(小波賞)'을 제정하여 해마다 수여하고 있다.

 

 

[작품 소개]

전래동화풍의 내용으로 대개 한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이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이지만 지금 읽어도 재미있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그리고 그들이 어린아이를 낳아 기르는 한에는 언제나 이런 이야기에 대한 수요는 존재할 것이다.

 

 


 

 

옛날, 어느 산 밑에 아들도 없는 늙은이 내외가 살고 있 었습니다. 천냥(재산)이 없어서 가난하기는 하였지만, 영감 님이나 마나님이 똑같이 마음이 착해서, 남에게 폐를 끼치 거나 신세를 지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이웃집에 마음 사납고, 게으르고, 욕심 많은 홀아비 한 영감이 있어서,날마다 낮잠만 자고 놀고 있으면서, 마음 착한 내외를 꾀거나 속여서 음식은 음식대로 먹고, 돈은 돈대로 속여서 빼앗아 가고 그러면서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는 법 없이, 매양 두 내외를 괴롭게 굴고, 험담을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욕심쟁이를 다시 잘 가르쳐서, 다시 길렀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늙은 사람을 어떻게 다시 길러 내거나 가르치는 수도 없고, 아무래도 별 수가 없었습니다.

 

참말 그 욕심쟁이 늙은이로 해서, 착한 영감 내외는 아 무리 힘을 들여 일을 하고 애를 써서 벌어도 밑바닥 깨진 독에 물 길어 붓는 것 같아서, 돈 한푼 모이지 않고, 단 하루도 편히 쉴 수가 없었습니다.

 

다 꼬부라진 허리를 쉬엄쉬엄 쉬어 가면서 죽을 고생을 들여서,이른 아침부터 밤 어둡기까지 산에 가서 나무를 모아다가 팔지 아니하면 그날 밥을 먹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착한 영감님은 조금도 이웃집 홀아비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아니하였고, 다만 자기가 너무 늙어서 마음대로 벌이를 못 하게 되는 것만 한탄하면서, '조금만 더 젊었으면 좀 더 일을 많이 할 수가 있겠는데……’. 하 면서 지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 하루는 참말로 뜻밖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날도 다른 날과 같이 이른 아침에 산 속으로 나무하러 간 영감님이, 저녁때가 되어 마나님이 저녁밥을 차려 놓고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웬일일까 웬일일까 하고, 자주 산길을 내다보면서 기다려도 영감님은 오지 아니하였 습니다. 벌써 밤이 되었는데 어째 아니 올까 어째 아니 올까 하고, 앉았다 섰다 하면서, 갑갑히 기다려도 오지 아니 하였습니다.

 

‘늙은이가 산 속에서 혹시 다치지나 않았을까? 무슨 무서운 짐승에게 잡혀 가지나 않았나?’ 하고, 무 서운 의심과 겁이 벌컥 나서, 이웃집 욕심쟁이 늙은이를 보고, 암만해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니,횃불을 들고 좀 찾아가 보아 달라 하니까, 의리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는 욕심쟁이 늙은이는, 

 

“이 밤중에 누가 찾으러 간단 말이오?”

 

라고 하면서, 고개도 들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어서 마나님이 혼자서라도 찾으러 가야겠다 고,짚신을신고횃불을켜들고문밖으로나섰습니다. 그러니까 그제서야 나뭇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컴컴한 산길로 영감님이 오지 않겠습니까. 마나님은 어찌나 반가운 지 후닥닥 뛰어가서 손목을 잡으면서,

 

"아이고, 어서 오시오. 어떻게 걱정을 하였는지 모르겠소. 왜 이렇게 늦으셨소?”

 

 


 

 

 

하고 집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나뭇짐을 내려놓고 방에 들어온 후에야, 영감님의 얼굴을 보고 마나님은 깜짝 놀랐습 니다. 이상도 하지요. 영감님의 얼굴은 주름살 하나 보이지 않고 수염도 없어지고, 하얗게 새었던 머리도 새까매지고, 아주 스물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젊디젊은 새 서방으로 변한 까닭이었습니다.

 

"아이고 여보, 어떻게 이렇게 젊어지셨소? 아주 새파란 젊은 사람이 되었으니….”

 

하면서, 하도 이상하고 신기하여서 물어 보았습니다. 영감 님은 목소리까지 아주 젊은 목소리로,

 

“글째, 나도 이상하오. 처음에 산 속에 가서 나무를 베고 있노라니까, 어디에서 왔는지 처음 보는 파아란 새가 후르르 날아와서, 내 머리 위의 나무에 앉더니,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어여쁜 소리로 재미있게 노래를 하는지, 나는 그만 그 새소리에 정신이 쏠려서, 갈퀴를 손에 쥔 채로 가만히 서서 그 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겠소.

 

그랬더니 잠깐 있다가 그 파랑새는 노래를 뚝 그치더니, 후르르 산 속으로 날아갑디다그려. 그래 나는 하도 섭섭하여서 한참이나 그대로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노 라니까 저어 산 속에서 새소리가 나길래 한 번 더 가깝게 가서, 그 소리를 들으려고 그 산 속으로 가니까 또 후르르 하고 더 깊이 날아가길래 그냥 따라서 자꾸 쫓아 들어갔었구려.

 

그렇게 한참 가니까, 생전에 가 보지 못하던 곳인데,거기 조그만 웅덩이가 있고, 깨끗한 샘물이 졸졸졸 솟아서 가득하게 괴어 있는데, 그것을 보니까, 별안간 어찌 목이마른지 그냥 그 샘물을 손바닥으로 떠먹어보았더니, 어떻게나 그 물맛이 시원한지, 좋은 약주를 먹은 것 같습디다. 그래서 나는 그만 파랑새니 무어니 다 잊어버리고, 다섯 번이나 그 샘물을 퍼 먹었지.

 

그랬더니 속이 시 원하면서, 술 먹은 사람같이 마음이 상쾌한 중에, 그만 잠이 들어서 한참 동안이나 자다가 밤이 되니까, 어찌 추운지 그때서야 깨어 가지고 지금 돌아오는 길이오.”

 

하고 태연스럽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이고! 그럼, 그 샘물이 필시 젊어지는 신령한 샘물이 던가보구려.”

 

하면서, 노파도 기꺼워하였으나, 큰일난 것은 영감님이 너무 젊어지고, 마나님은 그대로 있으니까. 마치 영감님은 마나님의 아들같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아니 되겠다고, 이튿날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서 젊은 영감님이 늙은 마나님을 데리고, 산 속으로 샘물을 찾아가서 물을 떠 먹였습니다. 그러자 마나님도 스물두세 살쯤의 젊은 새색시가 되어 이주 기운차고 일 잘하는 젊은 내외가 되어 재미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게으름뱅이 욕심쟁이 홀아비 늙은이가 그것을 보고, 한 시 잠시도 참을 수가 없어서, 착한 새 젊은이를 보고, 그 샘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 하였습니다. 마음 착한 새 젊은이는 싫단 말 아니하고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욕심 쟁이는 부리나케 한걸음에 갈 것같이 뛰었습니다.

 

욕심쟁이도 젊어져 가지고 돌아오려니 하고, 두 내외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저녁때가 되고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밤중이 되어 캄캄해졌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암만해도 의심이 가서, 새 젊은 내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산 속 샘물을 찾아갔습니다. 샘물 옆까지 와 보아도 욕심쟁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필경 늑대나 호랑이에게 물려간 모양이로군.”

 

하고 탄식을 하면서 근처를 찾노라니까, 이것 보십시오! 저쪽 바위틈에 크디큰 어른의 옷을 입은 갓난 어린애가 누워서,

 

“으앙 으앙!” 

 

하고 울고 있지 않겠습니까. 웬일인가 하고 뛰어가 보니, 옷은 분명히 욕심쟁이 늙은이가 입었던 옷인데, 옷 속에서 갓난아이가 

 

“으앙 으앙!” 

 

하고 울고 있으므로, 그 욕심쟁이 늙은이가 샘물을 퍼 먹을 때도 너무 욕심을 부려서, 한없이 많이 퍼 먹고, 젊다젊다 못해서, 아주 갓난아기가 된 것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새 젊은 내외는 깔깔깔 웃으면서, 

 

“우리 집에 어린애가 없어서 쓸쓸하니, 우리가 데려다 기릅시다.”

 

하고, 갓난아이를 안고 내려왔습니다.

 

마음 착한 내외에게 다시 길러져 자라난 후에는, 욕심도 없고 게으르지도 않은 좋은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린이>1923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