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2번. <월광>, <비창> 등 우리가 익숙한 곡들은 대개 초반, 중반 작품들이다. 보통 28번 이하 곡들을 후기작이라고 하는데 후기작, 특히 30번 이하 곡엔 별칭이 없다. 그게 없다는 것은 앞선 작품들처럼 특정한 주제에 갇히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한다. 후기작은 형식 내용이 앞선 작품들과 많이 다른데 32번은 그런 점에서도 두드러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음악은 느낌이 중요하므로 알고 느끼는 만큼 들린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데 이 곡이 특히 그런 것 같다. 어떤 이는 천상의 울림이나 구원의 희구를 말하는데 내 생각에는 그것보다 실제 삶의 과정을 깊이 반추하고 서사적인 회상과 감회의 성격이 더 강한 것 같다. 따져보면 별 차이가 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연주가에게나 감상자에게 이 곡은 유난히 구조가 난삽하고 성격이 미묘해서 어려움을 주는 것 같다. 그러니 복잡한 전제를 늘어놓는 것 보다 먼저 곡을 들어보고 자기 느낌을 다른 의견들과 견줘보는 것이 빠를 것이다.
다만 듣기 전 감상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 사실만 적어놓겠다.
- 이 곡은 다른 소나타와 달리 2악장으로 되어 있고 두 악장은 서로 형태와 성격이 많이 다르다. 1악장은 푸가 형식의 주제를 대위법적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매우 격정적인 악장이다.
시련과 마주 선 것 같은 긴장감이 지속된다. 2악장은 베토벤의 장기인 변주형식인데 완만하게 진행되는 다섯 개의, 매우 정밀하게 조형된 변주가 이 특별한 소나타의 절정을 이룬다.
여기서는 편의상 1악장을 젖혀두고 2악장만 소개한다.
- 연주자 Yura Guiier(1895~1980)는 프랑스 태생. 이 곡은 이 연주가의 연주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굴라 연주를 듣고 나는 이 소나타에 사로잡혔다. 그는 복잡미묘한 변주과정을 적절한 톤으로 높은 격조를 살려 투명하게 묘사해내는, 적어도 이 소나타에는 최적의 연주가로 생각된다. 굴라에 관해서는 그의 독특한 해석에 대한 로맹 롤랑의 격찬의 말이 소개되고있다. 금방 "고매한 이상을 지향하지만 끊임없이 현실의 고행과 마주쳐 좌절하고 다시 몸을일으키는" 소설 <장 크리스토프>의 서사가 떠오른다. 비약일 수 있지만 이 32번 변주곡의 서사성이 <장 크리스토프>의 서사성과 서로 통하는 일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 32번 소나타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대한 내 인식과 이해를 크게 확장시켜 놓았고 작곡자에 대한 친밀감과 경의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줬다. 마치 바흐에게서 정신의 고양과 정화, 위안을 느꼈듯이 이 소나타에서도 유사한 감동을 느낀다. 이 소나타의 2악장이 낭만주의 단초를 열었다는 증언도 있다.
Yura Guller-Beethoven Piano Sonata no.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