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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장 막스 클레망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

 

장 막스 클레망은 몬테카를로 오케스트라의 첼로주자였는데 이 악단을 지휘한 토머스 비첨의 제안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1958년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녹음했다. 클레망의 LP는 음반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된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CD가 나왔다.

 

서른이 다 되어 나는 이 곡을 처음 들었다. 그것도 음악실 문 바깥에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인데, 6번이었다. 첼로를 배우는 아이는 기초교본만 끝내면 바로 이 곡을 배우고 연주한다. 당시 열악했던 환경을 감안해도 많이 늦은 셈이다.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내가 10세 전후에 이 음악을 들었다면 내 진로는 달라졌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면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컸을 것이다. 처음 들은 그 음악이 준 충격은 컸다.

곡이 끝나자 나는 음악실에 입장하지 않고 돌아서 나와 거리를 배회하며 조금 전 들었던 음악이 실체가 있는 것인가? 혹시 내가 환각상태에서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이런 의구심에 시달렸다. 행운으로 어쩌다 보석을 얻은 아이가 그걸 감춰두고도 행운이 진짜인가 전전긍긍하는 심정과 비슷했다.

며칠 뒤 나는 한동안 신체적 부자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때 환청으로 이 곡을 전주곡에서 지그까지 멈추지 않고 들었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처음엔 구내 벽에 매달린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린 줄 알았는데 둘러보니 라디오 같은 건 없었다(물론 완벽한 곡을 들었다고 볼 수는 없고 아마 곡의 흐름을 따라 대강의 윤곽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환청만으로도 나는 이 음악에서 적지 않은 위안과 정신의 고양(高揚), 그리고 얼마간 희망의 격려도 받았다. 바흐는 단순한 연습곡을 의도하고 작곡했는데 그런 엄청난 미덕들이 가능한 것인가?

‘무대 위에서 눈을 꼭 감고 연주했던 카잘스는 작곡가가 아마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영적인 차원을 이 음악에 부여했다. (…) 그는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무렵 공화군 편에 선 노동자들과 투사들을 위해 전곡을 연주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이때) 8000명의 청중 앞에서 E플랫 장조 모음곡(제4번)을 연주했을 때라고 술회했다. 그는 연습곡에 지나지 않는 이 작품에 웅장함과 위엄, 특히 희망을 불어넣었다.’(노먼 레브레히트,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위의 발언은 연습곡임에도 작품이 가진 다양한 미덕을 완벽하게 재생시킨 카잘스의 공헌을 평가하고 있다. 아주 느슨한 단선율로 이어지는 6번의 사라방드는 내게는 곡 전체의 상징물과 같다. 누군가의 연주를 들을 때 먼저 이 부분을 반드시 챙겨 듣는다. 그리고 교회당에 들어선 것처럼 손을 모으고 지극히 경건한 자세로 듣는 버릇이 있다. 비록 세속생활이지만 그 유려한 경건성에 나는 언제나 매료된다. 이 선율은 간절한 염원의 색채를 띠고 있다. 이상향을 지향하는 염원일 수도 있고 구원을 지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수 일대기를 그린 영화에서도 십자가 언덕으로 가는 길에 이 사라방드가 사용되는 게 걸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예수도 결국 이상향을 노래한 인물 아닌가.

프랑스 출신 첼리스트 장 막스 클레망(Jean-Max Clément(1910~61))은 세대로 보면 신인이 아니지만 그에 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서 연주를 들어 볼 당시 신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연주음반도 1958년 스테레오 초기에 녹음된 것이었다. 오지에 숨어 있는 은둔자처럼 생전에 정체를 보여주지 않던 이 연주가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관한 한 거인이며 특별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 첼로의 스타들, 로스트로포비치, 요요마, 미샤 마이스키, 푸르니에 등이 모두 모음곡을 남기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이 곡으로 성가를 높인 인물도 있고 명성을 다소 깎아먹은 인물도 있다. 어느 쪽이건 카잘스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모범연주로 평가되는 그들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조금은 갑갑증을 느꼈고 새로운 감흥을 열어주는 연주의 등장을 은근히 기대했다. 그들의 연주가 모범생의 정답으로 고착되어 이 음악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클레망은 이런 기대감을 단숨에 채워준 최초의 연주자다.

전례 없이 느리게 시작되는 1번의 프렐류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낀다. 호흡은 길고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면서도 구조는 탄탄하고 시종 높은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음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자신의 노래를 들려준다. 강한 저음, 여린 중음, 더욱 여린 고음의 엇갈리는 사이마다 이 음악의 깊은 내면으로 파고드는 연주자의 뜨거운 열정이 생생하게 감지된다. 유장한 호흡이 살아나는 6번의 사라방드는 특히 좋다. 선율에 실린 비원의 절실함이 한층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아주 가끔 비브라토나 보잉에서 다소 거친 부분이 거슬리지만 곱고 산뜻한 연주를 지향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의 한 부산물로 여겨진다. 그의 연주는 장중하고 유장하며 마치 우주를 노래하는 것처럼 큰 스케일이 느껴진다. 어떤 평론가는 모범 연주에서 많이 벗어난 그의 연주를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프랑스 계열의 푸르니에나 모리스 장 드롱 같은 이른바 ‘미학적 연주’를 선호하는 사람에겐 클레망의 연주가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 하나는 클레망의 지지자들이 나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다. 젊은 지지자들이 증가하는 것을 단순히 희소가치나 이색취향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단견이다. 이 모음곡의 연주 성패는 영감의 확보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클레망을 찾는 이들은 깔끔한 미학이 아니라 생생하게 숨쉬는 ‘영감’을 갈구하는 것이다.

 

2 HOURS of BACH - THE COMPLETE CELLO SUITES PLAYLIST

https://www.youtube.com/watch?v=ZPFzg-fToKU

*Performed by Pablo Casals

 

Bach: Cello Suite #5 in C Minor, BWV 1011 - 1. Praeludium - Jean-Max Clément (1958)

https://www.youtube.com/watch?v=P8j34gAfxW4

 

업데이트 - 이정숙